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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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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12시 03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김훈. 그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와 평을 담은 자료들이 넘쳐난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그의 행적과, 그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견해들을 읽다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뺀다면 김훈에 대해 할 말이 없을지언정 여기서는 최대한 작가 김훈이 살아온 행적에 집중하기로 한다.

유년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즉, 그의 나이 세 살 때 6.25를 겪었으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한 유년생활을 보냈다. '칼의 노래'를 읽는 내내, 전쟁 속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가슴깊이 와 닿았다. 어찌보면 이러한 소설 속의 묘사가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발현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산악부에 들어가 등산을 많이 다녔다. 1966년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으나, 2학년 때 우연히 읽은 바이런과 셸리에 반해 정외과에 뜻을 접는다. 그리고는 영문과로 전과한다. 다른 정외과 동기들이 4학년에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으로 다시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등록금이 부족하여 대학생이 된 동생에게 그것을 양보하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한다. 그는 첫 직장으로 한국일보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일보가 당시 대학졸업이라는 학력제한을 두지 않던 유일한 신문사였기 때문이었다.

기자

그는 한국일보에 입사한 후 27년간 기자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의 직장생활은 순탄치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한겨레신문을 떠날 때까지 그는 7번 직장을 옮겼으며, 20번에 가까운 사표를 내는 화려한 경력을 남긴다. 그는 한국일보 시절부터 글쓰는 재주를 인정받아 유명세를 떨쳤다고 한다. 당시 '김훈의 문학기행'을 담당하면서는 한국일보에서 유일하게 팬레터를 받는 기자였다고 한다. 1995년 시사저널 편집국장 시절, 그는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첫 번째 소설을 펴낸다. "문명에 지배당하는 한 소방관과 신석기시대의 여인으로 비유된 장님 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추리소설적인 흥미를 유발하였다."라는 소개글을 지닌 이 책은 500부라는 판매기록만을 남겼을 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후 2000년에 들어서, 그의 이름을 세간에 오르내리도록 만든 사건이 발생한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편집장이었던 그에게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21'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온다. "쾌도난담"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로 당시 한겨레의 의도는 “한겨레를 씹어 돌려 달라.”것이었던 반면, 김훈의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터뷰의 방향이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 인터뷰에서 가부장제, 여성, 조선일보 등과 관련한 그의 발언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주며,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오게 된다. 결국 그가 편집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작가

직장을 나와 그는 후배들의 작업실을 돌며 책을 쓴다. 그리고 2001년 '칼의 노래'라는 제목의 소설 한 권을 세상에 내 놓는다. 그가 내민 소설은 그에게 그 해 동인문학상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대통령 후보의 극찬을 등에 업고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당당하게 발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자신을 시사저널에서 나오게 만든 '한겨레'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그의 글은 소란거리를 만들어내며, 결국 10개월 만에 그의 7번째이자 마지막 직장인 한겨레를 나오게 된다. 그 뒤로 그는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2004년에는 첫 번째 단편 '화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2005년에는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다. 2007년 12월 26일에는 '칼의 노래' 100만부 출간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문학기행1,2』(공저),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현의 노래』, 『언니의 폐경』 등이 있다.

문학

김훈은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고 한다. 모 월간지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 YES24의 작가소개에서 발췌

다소 과격한 표현이 담긴 그의 문학에 대한 지론이다. 그에게 문학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하는 것일 뿐인가 보다. 저 위에서 고상한 사람들의 글쓰기가 아닌 밑바닥에서 구르는 글쓰인가 보다. '칼의 노래' 속의 수많은 장면들이 그토록 끈적이고 질펀하게 느껴진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런지.

경력

1999년 국민일보 출판국 국장
1994년 시사저널 사회부부장
1995년 시사저널 편집국 국장 직대
1997년 시사저널 편집국장, 편집인 이사
1998년 시사저널 심의위원 이사
1998년 국민일보 편집국 특집부 부국장
1999년 국민일보 편집국 편집위원
2000년 한국일보 편집국 편집위원
2000년 시 전문 계간지 편집위원
2002년 한겨례신문 편집국 민권 사회2부 기동취재팀 부국장급
2005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책머리에)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17)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18)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23) 식은땀에 뒤채이는 새벽에 그 환청은 캄캄한 수평선 너머에서 내 피폐한 연안으로 다가오는 수천 수만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로 들렸다.

23) 바다에선 나는 늘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했다.

31) 임금은 가토의 머리에 걸린 정치적 상징성을 목말라 했다.

31)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33)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34)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52)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54)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58)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60) 나는 물었다.
- 칠천량에서는 마땅히 겁을 내야 할 때였소?
배설의 옆자리에서 안위의 얼굴은 얼어붙어 있었다. 배설은 대답했다.
- 용맹과 겁은 흔히 같은 것이오. 다만 쓰일 때가 다를 뿐이오. 송장에 덮인 바다 위에서 목숨의 귀함을 깨닫는 것 또한 용맹이오. 용맹은 인(仁)에 가까운 것이오. 아시겠소? 통제공.
(베어야 하나?)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우는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68)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

75)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77)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80)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곧 날이 밝는다.

84) 찐 고구마로 저녁을 먹인다면 다음날 아침은 대책이 없었다. 밝는 날 아침에, 바다 위에서 적의 군량으로 나의 군사를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어느 가까운 포구로 군사를 물려서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먹일 필요가 없을 것인지를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명량의 물길은 엎치락뒤치락 네 번은 바뀔 것이었다.

90) 물러설 자리는 넓었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었다.

99)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104)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114)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122) 그때, 베어야 할 것들 앞에서 종팔품 젊은 권관의 칼은 날래고 순결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칼로써 지켜내야 하고 칼로서 막아내야 할 세상의 의미를 돌이켜볼 수 없었고, 그 하찮음들은 끝끝내 베이지지 않는다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130) 어두운 수평선 너머에서, 사각 사각 사각, 적의 함대가 노 저어 다가오는 환청에 시달리는 저녁이나,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숙사 방에서 요를 적시는 식은땀의 한기에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주 조선소를 돌아보았다.

131)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131)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137) 우수영에서 머뭇거리다가, 어느 날 밤, 육지와 바다에서 협공하는 적의 야간 기습을 받고 발진하기도 전에 전멸하는 악몽에 나는 오랫동안 시달렸다.

144)
-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159)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 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160) 아베는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무릎 꿇려졌다.
-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칼을 뺐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종사관 김수철이 내 팔을 잡았다.
- 나으리, 어찌 손수....
- 비펴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이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

163)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 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적의 생명으로 느껴졌다.

165)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167) 목재를 구워서 숯을 만들고 숯불에 쇠를 녹였다.

171) 칼은 겨누지 않는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173) 조선은 명군을 천병(天兵)이라고 불렀다.

187) 아낙이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동안 나는 장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송여종이 멍석을 구해와서 깔아주었다. 나는 멍석에 누웠다. 백성들은 다투고 웃고 욕지거리를 하며 하루의 거래를 마무리짓고 있었다.

187) 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 그 국물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액처럼 사람의 몸 속으로 스몄다.

188) 송장 무더기는 나루터 옆이었다. 장터까지는 겨우 백여 보의 거리였다. 송장더미 옆에서도 백성들의 5일장은 평화로워 보였다. 죽음과 삶이 명석히 구분되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197)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202)
- 겨울이 빨리 가야 할 터인데요.
그 말은 밥을 넘기기가 민망한 자의 무의미한 소리처럼 들렸다.
- 겨울이 빠르거나 더딜 리가 있겠느냐?

203)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 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206)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207)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211) 적과 나에게 생사의 조건은 언제나 같았다.

214)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 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236) 나는 적의 공세 안에 적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기를 바랐다. 달려드는 적의 살기 속에 적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적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에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더라도 나는 적에게 이미 내포되어 있던 죽음만을 죽일 수 있었다.

238) 진은 거대한 새처럼 물 위에서 너울거린다. 너울거리면서 적을 가슴 깊이 품는다. 품어서 죽인다. 펼쳐서 가두고, 조여서 품고, 품어서 죽인다. 적을 품어서, 적의 안쪽에 숨어 있는 적의 죽음으로 적을 죽인다.

248) 우수영으로 가는 물길에서 나는 선실에 누워 있었다. 누운 몸이 물결에 흔들렸다. 화약 연기를 쏘여 두 눈이 쓰라렸다. 나는 갑옷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

254)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없었다.

260) 군량 창고에 쥐떼들이 들끓어 백성들의 고양이 10마리를 빌려왔다.

261) 나의 죽음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식으로는 오지 못할 것이었다.

294) 장계를 새로 쓰면서 나는 이 두 통의 장계가 어느 날 임금을 기만한 죄로 나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수를 서두르는 적정(敵情)이 다급했으므로, 임금이 나를 죽이게 되는 날은 내가 바다에서 적의 전체를 맞은 이후가 될 것이었다.

301)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306)
- 나으리 이제 또 수영을 버리시는 것입니까?
나는 대답했다.
- 버리는 것이 아니다. 물 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 그럼 어찌 군사들을 먹이실 된장을 백성들에게 푸십니까?
- 아마도 오래지 않아 전쟁은 끝날 것이다. 된장이 익으면 너희들이 먹어라
- 그럼 다시 수영으로 돌아오십니까?
- 그것은 알 수 없다. 내가 군사를 데리고 다른 포구로 들어가더라도 너희들은 잘 있으라.
- 나으리 부디 ....
- 알았다. 물러가라.

314) 나는 기지를 닫았다. 나는 기지가 없고 모항이 없고, 숙영지가 없는 바다로 나아갔다.

322) 그때, 적들은 경건해 보였다. 적이 경건했다기보다는, 적이야말로, 그 앞에서 내가 경건해야 할 신비처럼 보였다. 신비, 신비라고나 해두자.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든 고요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326)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327)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327)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은 .....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 적들 쪽으로....

329)
칼에 새길 길
劍名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III. 내가 저자라면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의 2년 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기록인 '난중일기'가 이 시대의 작가 김훈에 의해 멋진 1인칭 시점의 소설로 재탄생 하였다. 1인칭 시점인 만큼, '난중일기'속에 담겨 있는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가 그대로 옮겨졌을 뿐 아니라, 이는 김훈 특유의 문체를 만나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매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장수의 고뇌와 죽음에 대한 사유, 자신의 조국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 되먹지 못한 인간들로 인해 나날이 혼탁해져만 가는 조정에 대한 걱정,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등을 가슴 깊숙이 느낄 수가 있다.

1인칭 시점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이다. 일기의 내용을 토대로 소설로 재탄생시킨 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순신이 되고, 이순신은 작가가 되고, 독자는 이순신이 되고, 작가가 된다. 이순신과 작가와 독자는 한 사람이 되어 하나의 눈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내내 전투의 두려움과 비참함이 느껴졌고,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이 느껴졌고, 조국과 백성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렇기에 '난중일기'에서 느꼈던 작자와 소통되지 않는 허전함을 이 소설은 확실히 메워준다.

왜 이순신인가?

"6년 전 소설을 쓸 때는 희망도 없고, 신경질에 가득찬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 싶었어요. 독자가 100만 명이 넘어섰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

2007년 12월에는 소설 '칼의 노래'의 100만부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작가 김훈이 남긴 말이다. '칼의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 한 해 전인, 2000년까지 그는 기자였다. '칼의 노래'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편집장 자리를 그만두고 나와 그가 전업작가로서 쓴 첫 작품이었다. 그 소설은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의 극찬과 동인문학상 수상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의 입지를 굳혔으며, 그 후 '청소년을 위한 칼의 노래', '만화 칼의 노래' 등의 변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평생 해오던 기자라는 직업을 때려치고 나와 그는 왜 소설을 썼으며 그것도 이순신의 이야기를 썼을까? 김훈은 이 소설을 누가 읽을까 싶었다고 고백했다. 다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렇다면,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그 내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조선시대의 명장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어찌 보면 이순신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순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장군이다. 어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장군이라 하면 누구든지 이순신을 떠올린다. 그야말로 민족의 영웅인 것이다. 요즘도 이순신의 파워는 사그라질지 모르고 이렇게 소설로, TV속의 드라마로, 심지어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속에서까지 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영웅이 남긴 유일한 책 '난중일기'는 영웅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작가 김훈도 이것에 끌렸으리라. 김훈은 문학이라는 것이 그리 고귀한 것이 아니라 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며 떠들어 대는 작자들에게 거침없는 한마디를 퍼붓는 사람이며,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개소리라는 말로 일축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고귀하게도 우리가 우러러봐야 하는 영웅이 아닌, 인간다운 영웅의 모습은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소재로 매우 적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은 그저 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존경받아 마땅하고 어디하나 흠잡을 것 없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도 치열한 전투를 앞둔 날이면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고, 어미와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에 쓰러졌으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문학에 고귀함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김훈의 태도로는 영웅에게도 고귀함만을 부여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없이 인간적인 영웅 이순신을 택했을 것이다. 그의 문체를 통해 다시 태어난 이순신의 모습은 '난중일기' 속에서 밋밋하고 재미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이순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책으로만 읽던 이순신을 곁에서 지켜보는 맛이었다고나 할까? '난중일기'를 통해 전해들은 인간 이순신을, '칼의 노래'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무엇을 표현?

김훈은 이 소설을 자신의 내면의 표현이라 했다. 사실 작가의 작품 중 어느 것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않았겠냐마는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는 무엇 이었을까? 책의 머리말에서 김훈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

2000년 그는 세상을 등졌다. 정의로운 자들이라 불리는 자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초야로 돌아갔다.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그는 차갑고 외로운 겨울을 보냈다.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지만, 그 연민이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랑은 그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말한 이순신의 칼에게 그는 '칼의 노래'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김훈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버린 것인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연민이 쉽게 버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칼의 노래'속에서도 그 연민은 버릴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이순신의 칼이 들려준 말에 그는 "그래,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지 몰라도, 난 인간이기에 그것을 계속 하련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자신의 내면은 이것이 아니었을런지. 세상과 등지고자 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소설 한 권을 통해 세상에 그것을 조심스레 고백했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그런 내면의 소리에 사람들이 귀기울여줄지 몰랐지만, 다행스레 세상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독자들은 손 내미는 작가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었다.

인상깊은 구절

짧으면서도 인상깊은 구절이 꽤나 많다.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몇몇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 식은땀에 뒤채이는 새벽에 그 환청은 캄캄한 수평선 너머에서 내 피폐한 연안으로 다가오는 수천 수만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로 들렸다. (23p)

*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33p)

*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77p)

*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131p)

*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165p)

*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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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7:35:29 *.64.21.2
그가 평생 해오던 기자라는 직업을 때려치고 나와 그는 왜 소설을 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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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때려치운것과 소설을 쓴 것은 상관관계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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