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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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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23시 0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나는 마초다. 기왕 마초라고 하려면 ‘아름다운 마초’라 써달라” 라고 당당히 말하는 작가 김훈.

독립운동가였던 김훈 아버지는 홀의 술값을 다 내셨을 정도로 전형적인 가부장-마초였다.
그 아래에서 자란 영향일까? 그 또한 마초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정도의 남성 우월주의자이다. 여자는 식물 같은 풍경이고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그의 발언들은 오히려 그의 나약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가부장적이며 남자는 큰일을 해야 한다며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 덕택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던 그이기에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또 나의 가족과 지인들을 지키기 위해 가치관과 사상은 그에게 일회용에 불과한 부정적 실용주의자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즉, 그는 겉으로 가부장과 마초라는 단어를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내세울지언정 그의 아버지처럼 대의적이고 그 무엇보다 남성적이라고 정의되는 행동들을 할 만한 강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언행 불일치, 모순이라고 해야할까.

다양한 인터뷰 기사와 글을 통해 만난 그의 모습은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럽다. 그의 말과 태도들은 곳곳에서 너무도 상이해서(예를 들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펴던 그가,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선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의 맡은 바에 충실하다면 어느 쪽의 우월을 논하기 어렵겠지요.” 라고 발언) 보통의 작가가 견지하는 일관되고 색깔 있는 특유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김훈에게서 찾기란 힘들다. 굳이 그의 일관된 사상을 찾자면 "그때그때 개똥 철학도 철학을 펼치면 되는것" 정도랄까.. 즉, 사상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의 갈대와 같은 평범한 우리와 그닥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진정한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다면 그가 내뱉는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글 자체 내뿜는 진실성도 의심이 될 터이니..

내가 작가라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으면서도,
현재 시점에서 정의하는 김훈은 독특한 ‘아우라’를 지난 진정한 작가가 아닌 그저 ‘글을 기똥차게 잘 쓰는 자’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약력
- 출생 : 1948년 5월 5일
- 학력 : 고려대학교 영문학 (중퇴)
- 수상 : 2007년 제15회 대산 문학상
- 경력 : 2002년 1월 한겨레 신문 편집국 민권사회2부 기동취재팀 부국장급
2000년 6월 시 전문 계간지 편집위원
1999년 9월 ~ 2000년 8월 한국일보 편집국 편집위원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
김훈은 70∼80년대에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난 신문기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김훈의 문학기행’을 통해 그는 한국일보 내에서 유일하게 팬레터를 받는 기자가 되기도 했다고. 그가 복잡하고도 바빴을 직장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꾸준히 문학 비평집과 소설들을 써 냄으로써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시간을 쏟고 결과물들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존경과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의 말,말,말
-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고 나의 편견을 끝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잘 쓴 글이라는 건 자기의 많은 편견과 아집이 들어 있어야 한다”
- “여자는 식물 같은 풍경이다”
-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 “나도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바래. 하지만 피부가 아프게 몸을 상해가면서 통일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야. 통일을 바라지 않아. 못살 게 뻔한데…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어느 놈이 통일을 바래. 대통령밖에 없다고.”
-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 그거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거라고. 나도 내집 아들한테 물려줄 판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 하려면 재벌이 자본을 인간화해 리더십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재벌이 무너지면 우리가 무너져. 노동자들이 무슨 연대를 해.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보수주의잖아. 무슨 신기술 도입하면 저항하고 구조조정에 저항하고… 노동자들이 제일 보수적이고 재벌 리더들이 가장 진보적이라고. 지금 여러분은 반대로 생각하겠지. 저는 여러분과 반대로 생각해.”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그는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현충사에 가서 하루 종일 이순신 장군의 칼을 쳐다보며 관찰하고 또 관찰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인 그는 도시적인 감성으로 바다나 구름을 묘사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껴 진도 남쪽에 있는 관매도를 찾아 늙은 어부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문체는 내 것이지만 이야기는 그들의 것입니다. 바다와 구름을 대하는 그들의 정서를 이순신에게 집어넣은 것이죠”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안개 속의 살구꽃
26p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다시 세상 속으로
32p 울어지지 않는 울음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불덩어리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33p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칼과 달과 몸
34p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36p 몸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울음소리가 몸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몸이 살아서
52p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서캐
57p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명이 모질고도 신기하게 느껴져, 칼 찬 나는 쑥스러웠다.

58p 이미 멸망을 체험한 자들의 깊은 무기력이 고기 건더기를 넘기는 그들의 목울대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식음땀
63p 성난 파도와도 같은 한없는 적의가 어떻게 적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작동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지 못했다.

66p 임금의 사직은 끝없니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고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67p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적의 기척
75p 임금은 적이 두려웠고, 그 적과 맞서는 수군 통제사가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임금의 싸움이었다.

일자진
77p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전율이 장졸들의 얼어붙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전환
84p 찐 고구마로 저녁을 먹인다면 다음날 아침은 대책이 없었다. 밝는 날 아침에, 바다 위에서 적의 군량으로 나의 군사를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어느 가까운 포구로 군사를 물려서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먹일 필요가 없을 것인지를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명량의 물길은 엎치락뒤치락 네 번은 바뀔 것이었다.

노을 속의 함대
96p 연안의 산꼭대기에서 피난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가슴 아픈

구덩이
104p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내 안의 죽음
113p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114p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젖냄새
122p 그때, 베어야 할 것들 앞에서 종팔품 젊은 권관의 칼은 날래고 순결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칼로써 지켜내야 하고 칼로서 막아내야 할 세상의 의미를 돌이켜볼 수 없었고, 그 하찮음들은 끝끝내 베이지지 않는다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128p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물비늘
150p 밀물이 내수면 깊숙이 달려들어 큰 강은 바다가 밀릴 때마다 숨차했고, 썰물은 아득히 멀어서 바다는 개벽을 거듭하는 것 같았다.

그대의 칼
160p 아베는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무릎 꿇려졌다.
-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칼을 뺐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종사관 김수철이 내 팔을 잡았다.
- 나으리, 어찌 손수....
- 비켜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

무거운 몸
165p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물들이기
169p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171p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국물
181p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와 울음
193p …이제 서울 백성들 중 죽음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살아 남은 백성들이 마땅히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하거늘, 상복 입은 자를 볼 수 없으니 괴이하다. 난리 중에 강상이 무너지고 윤기가 더럽혀진 탓이로되, 내 이를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서울의 각 부는 엄히 단속하여라.


197p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아무 일도 없는 바다
203p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 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이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 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206p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 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207p 적들은 달려들 듯이 무너졌고, 기를 쓰고 무너져나갔다. /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더듬이
229p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235p 나의 노와 적의 노를 번갈아 가며 저어야 하는 백성을 생각하면서,

옥수수숲의 바람과 시간
254p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모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 /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255p 적들의 울음이 개별적인 울음이라는 것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그 개별성이 나의 적이라는 것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264p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서늘한 중심
301p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305p 적이 철수 함으로써 이순신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세상이 무의미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306p
- 나으리 이제 또 수영을 버리시는 것입니까?
나는 대답했다.
- 버리는 것이 아니다. 물 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 그럼 어찌 군사들을 먹이실 된장을 백성들에게 푸십니까?
- 아마도 오래지 않아 전쟁은 끝날 것이다. 된장이 익으면 너희들이 먹어라
- 그럼 다시 수영으로 돌아오십니까?
- 그것은 알 수 없다. 내가 군사를 데리고 다른 포구로 들어가더라도 너희들은 잘 있으라.
- 나으리 부디 ....
- 알았다. 물러가라.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322p 그때, 적들은 경건해 보였다. 적이 경건했다기보다는, 적이야말로, 그 앞에서 내가 경건해야 할 신비처럼 보였다. 신비, 신비라고나 해두자.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326p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3. 내가 저자라면
금주에 만난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 중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일정 기간 동안의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었다.

작가 김훈은 이 소설에서 다양하고 날카로운 관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묘사해 나간다.
가령 “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197p)“
라는 그의 끼니에 대한 고찰은 절절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그가 되살려 놓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전쟁중의 민초의 삶은 슬프고도 사실적이다.
살고 싶어 안달하는 민중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파노라마같이 펼쳐놓는 곳곳의 그의 묘사는 너무 생생해 가슴 아려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 당시의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은 적전지가 우리나라인만큼 아군,적군이 분명히 구분되는 싸움이 아닌, 한나라 백성들 스스로도 서로에게 적이고 아군이 되는 매우 불행한 전쟁이었다.
회의가 밀려드는 희생과 상처가 뒤따르는 무의미한 전쟁이 된 듯 하다. 전란 중에는 민초들에게 인간으로서 갖는 가치관과 윤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살고자 하는 본능 하나 뿐이다.삶에 대한 간절한 욕망 하나로 그들은 잔인해 질 수 있는 만큼 잔인해지고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 혹독해 질 뿐이다.
이는 현대의 전쟁지역에서 살아나가는 민중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비록 나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이지만 그만큼 김훈이 묘사하는 전쟁중의 상황과 묘사는 끔찍하고 생생하며 와닿았다.

이 소설에서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 들여다 보기는 인간 이순신으로서 그를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그에게는 전쟁과 그로 인해 겪는 상황들을 통해 무기력과 우울감이 보인다.
늘상 죽고 사는 일이 벌어지는 전장터에서 그 또한 장군이지만 한명의 인간으로서의 느꼈을 무서움과 두려움, 그것이 장기화 되었을 때에 그에게 쏟아지는 무력감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난중일기>를 통해 단편적으로만 만났던 그가 더욱 생생하며 적절하게 재생되어서 비록 소설이지만 인간 이순신을 합당하며 진실되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칼의 노래’를 쓰는 때 만큼은 작가 김훈도 이순신 스스로가 잠시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가 적어 내려간 이야기 전개로 미루어 보아 작가 김훈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얽힌 3가지 설 중 ‘첫 번째 자살설’을 기반으로 엮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264p) “
라는 작가의 묘사는 직접적인 자살은 아니지만 그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이끈 이순신의 고뇌가 느껴진다.
즉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적의 총탄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한 무력감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아니었을는지..

이 소설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는 잔인함과 ‘여진’이라는 여인과의 정사 및 추억이라는 장치들에 종종 이마가 찌푸려지기는하나 적나라한 표현의 하나였을 뿐, 그러한 요소들이 있기에 더욱 인간 이순신을 깊게,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즉, 이 소설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

인상 깊은 구절
특별히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들을 추려서 정리해 본다.

52p -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197p -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203p -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 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이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 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254p -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모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255p - 적들의 울음이 개별적인 울음이라는 것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그 개별성이 나의 적이라는 것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IP *.34.1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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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7:20:49 *.64.21.2
진정한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다면 그가 내뱉는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글 자체 내뿜는 진실성도 의심이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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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길게 김훈이라는 사람을 지켜보세요.
다른것도 보일지 모르죠.
그리고 '작가'도 결국 사람들중의 한사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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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11 00:24:07 *.36.210.11
안개 속의 살구꽃
26p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33p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몸이 살아서
52p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나는 일찌기 무서운 것과 더러운 것이 한가지라고 생각했는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말은 내게 무서운 거나 더러운 거나 피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등식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무섭거나 더럽게 살아야 하는 걸까? ㅋ

돈이 많고 대가리에 똥만 가득 들은 사람들 혹은 저만 잘나고 남은 다 못났다고 생각하며 거드름 작작 피워대는 족석들이거나 안하무인의 왕 무대뽀의 경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로 무섭기도 하고 더럽기도 해서 절로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는 한다. 진짜 진짜 무섭다.

114p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젖냄새
122p 그때, 베어야 할 것들 앞에서 종팔품 젊은 권관의 칼은 날래고 순결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칼로써 지켜내야 하고 칼로서 막아내야 할 세상의 의미를 돌이켜볼 수 없었고, 그 하찮음들은 끝끝내 베이지지 않는다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128p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 이순신이라면 느꼈을 작가의 섬세한 표현이다. 이토록 생의 모진 끈을 잘 이해할 수 있다니.

이 대목에 이르니 이순신이 <난중일기>에서 아들 면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을 애달아 하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절절한 표현들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305p 적이 철수 함으로써 이순신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세상이 무의미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앙팡진 지혜의 굵은 선이 느껴지기도 하네.

남자들의 이야기 같은 이 책을 지혜는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했다. 그나마 너무 두껍지 않아 다행이었겠다 싶어 안도하면서.

입덧은 꾹 참고 잘 하는 건지 견딜만 한 건지 걱정이 되곤하네. 잘 먹고 잘 쉬면서 지금처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태도 복이었으니 앞으로도 쭈욱~그럴 것이야. 튼튼이네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자로
2008.06.11 21:38:53 *.145.231.77
지금 여러분은 반대로 생각하겠지. 저는 여러분과 반대로 생각해.

오늘 하루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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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8.06.19 09:10:57 *.244.218.9
이 책, 서점에서 많이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인데..
평들을 읽으면서 결심을 굳혔네요. 꼭 읽어야지. ㅎ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많이 생겨요..
인용하신 그의 말말말..에 재밌는 이야기가 많네요.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나도 이 말을 하고싶을지 몰라요. 남녀 자리를 너와나로만 바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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