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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 10시 14분 등록
칼의 노래 - 김훈/생각의 나무(2001년)


1. 저자에 대하여

김훈은 두 달여에 걸쳐서 『칼의 노래』를 썼다고 한다. 두 달 동안 8개의 이빨이 빠졌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책쓰기에 빠져들어 혼신의 힘을 다한 작업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칼의 노래』다.

저자는 『칼의 노래』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백만부 판매를 돌파한 우리나라의 많지 않은 유명 작가 중 한명이다. 그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수많은 내용들이 나왔다. 그 만큼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고 자기 할 말을 하고 사는 작가란 반증이다.

그는 몇 년 전 <한겨레21>에 쾌도난담 기사로 젊은 네티즌들을 흥분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는 그 기사에서 ‘기자들은 고위 관리들에 비해 열등한 놈들’이란 말을 했다. 또 <조선일보>를 두둔하는 말을 했다가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기자들에 대해서나 조선일보에 대한 자신의 말에 대해 자기 나름의 타당한 논리를 갖고 있고, 그 논리를 예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떳떳하게 밝히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을 찬양했던 부분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다. 그는 한국일보에 재직 할 당시 삼청교육을 옹호하고 전두환을 옹호하는 글을 1년여에 걸쳐 써댔다. 그는 그 당시엔 모든 언론이 그랬다고 말한다. 자기가 안 썼으면 다른 사람이 썼을 거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어쨌든 썼으니까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자신은 그 당시 5년차 기자였고 자기 한 사람을 때려잡아서 그 문제가 청산될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 죄악과 수치를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작가의 말에는 그의 글에서처럼 용감함과 당당함이 배어 나온다.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일보에서 15년여를 근무한 뒤에는 여러 직장을 돌아다녔다. 작가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그의 인생 역정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194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편집장, <국민일보> 출판국장, <시사저널> 편집국장, <한겨레> 신문기자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산문집 『풍경과 상처』『문학 기행 1,2』(공저) 『자전거 여행』,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 1,2』가 있으며, 칼럼집『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을 출간했다.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에게는 생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이 따른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어쩔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김훈]

포탄과 화살이 우박으로 나르는 싸움의 뒷전에서 조선 수군은 적의 머리를 잘랐고 일본 수군은 적의 코를 베었다. 잘려진 머리와 코는 소금에 절여져 상부에 바쳐졌다. 그것이 전과의 증거물이었다. 잘라낸 머리와 코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모든 적들이 모든 적들의 머리를 자르고 코를 베었다. 지방 수령들은 만호진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달아났다. 포구로 몰려온 적들은 산속으로 숨어든 피난민의 아녀자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코를 베어갔다. 피난민들은 다만 얼굴 가운데 코가 있기 때문에 죽었다..... 그 머리와 코의 숫자로 양측 지휘관들은 승진했고, 장려한 수사로 넘치는 교서를 받았다.[19]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21]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늘 산맥처럼 출렁거렸다..... 바람이 몰려가 버린 빈 자리에 밀물로 달려드는 파도 소리가 가득 찼다. 바람의 끝자락에 실려, 환청인가, 누에고치에서 실 풀려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바다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바람이 아니라, 파도에 실려서 수평선을 건너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22]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기동출력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26]

가을빛이 스러져가는 바다는 차가웠고, 외마디로 짖어대는 새들의 울음은 멀었다.[35]

몸 안으로 밀어넣으려는 울음소리가 몸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그 여자는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 작은 몸뚱어리 어디에 그토록 깊은 울음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여진의 울음은 길었다.[36]

보리 다섯 말을 받고 일가족 호적을 부재자로 기재한 아전을 함평 산골에서 붙잡았다. 형틀에 묶고 곤장 40대를 치게 했다. 늙고 병든 아전이었다. 그 아전은 아마 스무대 쯤에서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숨이 끊어진 것을 모른 형리가 나머지 스무 대를 계속 쳤다. 그의 몸은 으스러져서 죽처럼 흘러내렸다. 그날 밤 나는 동헌 객사에 묵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아전의 몸을 으깨던 매와,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었을 그의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37]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41]

길삼봉이라는 이름의 허깨비가 구름을 타고 돌아다니며 산천에 피를 뿌리고 있었다.[41]

우의정 정철이 그 피의 국면을 주도했다.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부지런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44]

..... 지난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한 것은 역시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52]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나의 죄는 유죄가 되어도 하는 수 없을 것이었다.[53]

나는 장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54]

알 수 없었으나,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창검과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싸움이 끝나는 저녁 바다 위에서, 전의(戰意)가 잠들고 살기가 빠져나간 함대는 비로소 기진했고 노을 헤치며 모항으로 돌아가는 항해 대열은 헐거웠다.[65]

김덕령은 용맹했기 때문에 죽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67]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68]

물이 운다고, 지방민들은 이 물목을 울돌목이라고 불렀다.[69]

물길이 거꾸로 돌아서는 사이사이마다 바다는 문득 기름처럼 고요해졌고, 그 고요한 잠시가 끝나면 물살은 다시 거꾸로 돌아섰다.[70]

몸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이었을까. 희미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내 몸이 그 희미한 역류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증거인지 죽음에 대한 증거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여기는 사지였다.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그것은 순류도 아니었고 역류도 아니었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70]

야습의 목적은 교전이 아니라 탐색과 유인이었다. 그것들은 주력의 앞길을 평탄하게 하려는 예민한 더듬이였고, 적의 더듬이는 벽파진 일대의 나루를 더듬거렸다. 울돌목의 사지는 비어 있었다.[72]

장졸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80]

명량 어귀에서 나는 외가닥 일자진으로 물결을 버텨가며 기다렸다. 명량의 서쪽 어귀였다. 나의 사지는 내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않았다. 물결은 우우우 울며 내달았고, 이물은 솟고 또 곤두박질쳤다. 배를 따라 이동하는 갈매기들이 멀리서 너울거렸다. 우짖는 새Ep를 앞세우고, 적들은 오고 있었다.[87]

북서 밀물에 올라탄 적의 함대는 빠르고 가벼웠다.[88]

이철의 배에 군량 30가마를 실어주어 우선 죽을 쑤어 먹이도록 했다. 군량은 명량에서 깨어진 적선에 올라가 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99]

나는 죽은 여진에게 울음 같은 성욕을 느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물러간 적들은 또 올 것이고, 남쪽 물가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꿈자리는 밤마다 흉흉할 것이었다.[104]

수의도 수졸 30명이 작당해서 배를 타고 달아났다. 군관이 뒤쫓아갔으나 잡지 못했다. 만호가 군관을 매질했다. 매 맞은 군관이 달아났다. 배도 찾지 못했다.... 도양 백성들이 수영을 습격해서 군량 30가마를 실어냈다. 백성과 군관이 함께 달아났다. 달아나던 백성들 12명이 죽은 염소를 끓여 먹고 설사 끝에 죽었다.... 둔전을 맡은 백성들이 역질로 죽어서 묻었다. 당포 군관이 선비 집 유부녀를 강간했고 여자는 자살했다. 무당이 굿을 했다.... 현감이 매일 밤 관기를 끼고 술을 마셨다. 나주에 역질이 돌았다. 백성들이 역질에 걸린 자들을 움막에 모아놓고 불질렀다. 죽은 시체와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을 함께 태웠다.... 달모산 아래 벽진 마을 백성들이 적과 밀통했던 선비 2명을 붙잡아 낫으로 찍어 죽이고 선비의 딸을 강간했다.[108, 109]

미호 군관 셋이 탈영했다. 만호가 군사를 풀었으나 잡지 못했다. ‘이순신이 다시 조정으로 잡혀갔다’ 는 유언이 미호 백성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탈영한 군관이 그렇게 말했다고, 백성들이 말했다고, 향리가 말했다.[110]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은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114]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117]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118]

면은 아산 고향에서 죽었다.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121]

밤이면 전나무의 우듬지들이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해 쩍쩍 부러져나가면서 비명을 질렀다. 군막 안 노루가죽 위에서 잠드는 저녁의 피로는 몸에 뿌듯했고, 밤마다 깊이 잠들어 아침이면 내가 알지 못하던 낯설고 새로운 힘이 내 팔다리에 가득 차 있었다.[122]

면의 칼 솜씨는 크고도 섬세했다. 면은 상대의 공세를 극한에까지 유도해 놓고, 그 극한이 주저앉는 순간의 허를 치고 들어가서 살(殺)했다. 적의 칼이 오른편 위에서 내려올 때 면의 칼은 적의 칼을 받아내기보다는 적의 왼편 허를 향해 나아갔다. 발이 늘 먼저 나아가 칼의 자리를 예비하고 있었다. 칼을 낮추고 있을 때도, 면의 칼은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공세의 기운을 광배처럼 거느렸다. 면의 칼은 수세 안에 공세를 포함하고 있었고, 수세와 공세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 둥글게 말아나가는 부드러움 안에 찌르고 달려드는 격세가 살아 있었고 찌르고 나면 곧 둥글어졌다. 아름다운 솜씨였다.[124]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 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128]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板屋船)과 협선(挾船)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131]

목수들이 배를 만들어내는 일은 사람의 몸을 빚어내는 일과 흡사했다. 싸우는 바닷가에서 싸움배를 만들 때도, 목수들의 대패와 톱은 연장으로서 평화로워 보였다. 우수영 통합 조선소에서 연장과 무기 사이의 거리가 먼 것인지 혹은 가까운 것인지 나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전선 7척을 진수시키던 날도 나는 그 거리를 가늠하지 못했다. 진수하던 날 새 배에서는 송진 향기가 났다. 목수들이 뱃전에서 시루떡을 바다에 던졌다. 군관들이 새 배를 끌고 나가 연안을 한 바퀴 돌며 총통을 쏘아댔고, 장졸들이 배 위에서 함성을 질렀다. 나는 우수영 쪽 물가에 앉아 있었다.[133]

길에서 쓰러진 조선 계집과 포로들을 마차바퀴로 뭉개버리고 적들은 또 다른 고을의 조선 백성들을 끌어갔다. 적들이 지나간 마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적의 말똥에 섞여나온 곡식 낟알을 꼬챙이로 찍어 먹었다. 아이들이 말똥에 몰려들었는데, 힘없는 아이들은 뒤로 밀쳐져서 울었다. 사직은 종묘 제단 위에 있었고 조정은 어디에도 없었다.[135]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는 우수영보다 훨씬 더 뒤쪽이라야 마땅했다.[137]

서해는 크게 밀리고 크게 썰었다. 작은 강들이 밀물로 달려드는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아들였다.[139]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141]

매일 밤 똑같은 꿈이었다.
어깨가 잘려나가 면의 몸이 개울창에서 일어섰다. 머리는 죽었는데, 몸은 살아 있었다. 죽은 머리가 산 몸 위에 붙어서 건들거렸다. 면은 칼이 없었다. 어깨 잘린 면의 몸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면이 말을 했는데, 잘려진 어깨의 단면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 아버님 저는 죽었습니다.
- 죽은 녀석이 너뿐이더냐? 내가 죽인 적이 헤아릴 수 없고 네가 죽인 적 또한 적지 않거늘, 네 어찌 내 꿈을 어지럽히느냐.
- 아버님, 저의 칼을 찾아주십시오.
- 칼을 어찌했느냐?
- 칼을 놓쳤습니다. 눈이 멀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 물러가라. 무인이 칼을 놓쳤으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느냐.
면은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려 울었다. 면은 잘려진 어깨로 울었고, 거기서 눈물이 흘렀다.
- 아버님, 죽을 때 무서웠습니다. 칼을 찾아주십시오.
-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말아라.
면은 울면서 돌아섰다. 무릎걸음으로 면은 멀어져갔다. 노을 진 갈대숲 속으로 면이 기어들어갈 때 나는 면을 불렀다.
- 면아, 면아.
부르는 내 소리에 내가 가위눌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154]

살려주자. 살게 하자. 살아서 돌아가게 하자.....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 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 죽기를 원하느냐?
- 내 손으로 죽기를 원한다. 칼을 한번 빌려달라.
- 끌어다 베어라 (나는 군관에게 말했다.) (나는 문 밖으로 나가는 군관을 향해 소리쳤다)
- 아니다. 다시 끌어오너라. (아베는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무릎 꿇려졌다.)
-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건넸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 나으리, 어찌 손수.....
- 비켜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159, 160]

칼이 아베의 목을 지날 때 내 오른팔에 와 닿던 진동을 생각했다. 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눈물이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산 쪽에서 목재를 나르는 수졸들의 발맞추는 소리가 들려왔다.[160]

적탄의 깊이는 죽음 직전에서 멎어 있었다. 내 몸 속의 적탄은, 오래 전부터 거기 그렇게 들어와서 살았던 것처럼 무거웠다.[163]

상처가 아물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아픔이 살아 있는 몸 속에 박혀 있었으나 병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 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적의 생명으로 느껴졌다.[163]

위관은 집요했으나,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임금뿐이었다. 임금은 나를 죽여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를 살려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히데요시가 전 일본의 군사력을 휘몰아 직접 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풍문 앞에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165]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165, 166]

칼을 빼자 햇빛이 튕겨져나갔다.[170]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171]

희망은 없거나, 있다면 오직 죽음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172]

여수 좌수영 숙사에서 선전관들에게 술을 먹이며 왕릉의 일들을 들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또 무서웠다.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계사년에 왕릉을 범한 자들을 포로들 중에서 색출해 내라는 유지는 그 허망과 무내용을 완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179]

적은 커서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으나 거대했다.[182]

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 그 국물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액처럼 사람의 몸 속으로 스몄다.... 좁쌀의 알들이 잇새에서 뭉개지면서 향기가 입 안으로 퍼졌다. 조의 향기는 안쓰러웠다.... 나는 짠지를 씹었다. 봄의 짠지 속에 소금의 간은 가볍고 싱싱했다.... 국에 만 밥을 넘길 때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을 나는 느꼈다. 나는 포식했다.[187]

임금은 자주 울었다. 압록강 물가에서 우는 임금의 울음은 조정 대신들과 선전관, 명군 충병부 관리들의 입으로 퍼졌다. 임금의 울음은 남쪽 바다에까지 들렸다. 임금은 슬피 울었고, 오래오래 울었다.[190]

임금은 깊이 울었다. 임금은 버리고 떠난 종묘를 향해 남쪽으로 울었고 북경을 향해 울었고 해뜨는 동쪽을 향해 울었다. 쓰러져 우는 임금의 야윈 어깨가 흔들렸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사무치게 울었다. 아무도 임금의 울음을 말릴 수 없었다. 강 건너로 지는 해가 마루 위로 도열한 중신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중신들은 임금의 울음이 스스로 추슬러질 때까지 임금을 따라 울었다.[191]

서울을 버릴 때 임금은 울었다. 임진강을 건널 때 임금은 중신들을 이름으로 부르며 울었다.... 개성을 버릴 때 울었고 평양에 닿았을 때 울었고 평양을 버릴 때 울었다.[191]

임금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기진하도록 슬피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정무(政務)와도 같았다. 임금의 울음은 뼈가 녹아 흐르듯이 깊었다. 남해 바다에까지 들리는 임금의 울음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은 끝끝내 혼자였고 임금만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직의 장자(長子)였다.[194]

임금의 교서를 받는 날에는, 북쪽 국경 행재소 대청마루에 쓰러져 우는 임금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196]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 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니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끼니들이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군량 없는 수영을 밟고 지나갔다.[198]

전투가 없어도 끼니는 돌아왔고 모든 끼니는 비상한 끼니였다.[199]

겨울에 이질이 돌아왔다. 주려서 검불처럼 마른 수졸 6백여 명이 선실 안에 쓰러져 흰 똥물을 싸댔다. 똥물이 갑판 위까지 흘러나왔다. 똥과 사람이 뒤범벅이 되어 고열에 신음하며 뒤채었다. 먹인 것이 없어도 똥물은 한정 없이 쏟아져나왔다. 낮에는 배에서 나와 양지쪽 바위 위에서 똥물에 젖은 몸을 말렸고 해가 저물면 다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똥물은 점점 묽어져갔고 맑은 똥물을 싸내면 곧 죽었다.[200]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그해 겨울의 밥은 무참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201]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203]

아마도 삶을 버린 자가 죽음을 가로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그 경계는 늘 불분명했고 경계의 불분명함은 확실했다. 길고 가파른 전투가 끝나는 저녁 바다는 죽고 부서져서 물에 뜬 것들의 쓰레기로 덮였고 화약 연기에 노을이 스몄다. 그 노을 속에서 나는 늘 살아 있었고, 살아서 기지맥진했다.[204]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바다에서 내 함대는 늘 춤추듯 너울거리며 진을 바꾸었다. 다시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사진을 펼칠 때, 바다는 쓰레기로 덮여 있었다.[208]

바람 거센 어느 날, 그 물 위에서 일어서는 흰 칼날을 바람 잠든 저녁 바다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고 함대와 함대가 부딪히던 물목은 늘 아무 일도 없었다. 빛이 태어나고 스러질 뿐, 바다에는 늘 아무 일도 없었다.[209]

나는 해전 경험이 없었다.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이 들어온 포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210]

- 송여종, 베어져야 할 자는 너다. (송여종이 눈을 부릅떴다.)
- 그리고 나다. 네가 백성을 온전히 지켰더라면, 어찌 백성이 너에게 총을 쏘았겠느냐? (송여종운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 데리고 가거라. 이제, 너의 처분에 맡긴다.
다음날 아침에, 송여종은 우수영으로 돌아갔다. 송여종은 조선인 포로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나는 찬 청정수를 마시고 싶었다. 조선인 포로 1천여 명은 적의 순천 요새에 전진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적에게 둘러싸였고 백성들에게 둘러싸였다. 바다에는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없었다. 붙잡힌 백성들을 앞세우고, 적은 또 다가오고 있었다.[235]

나는 적의 공세 안에 적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기를 바랐다. 달려드는 적의 살기 속에 적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적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에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더라도 나는 적에게 이미 내포되어 있던 죽음만을 죽일 수 있었다.[236]

안개는 무겁고 끈끈했다. 안개는 물처럼 흘러내렸다.[242]

갑판 밑에서 노를 잡던 적의 격군들이 물 위로 쏟아져내릴 때, 조선말로 비명을 질렀다. 썰물에 떠내려간 적의 격군들은 대부분이 조선 백성들이었다. 생포된 자들이 그렇게 진술했다. 적선 한 척은 대체로 격군 50명이 저었다 거기에 교대 병력을 3,40은 태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들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그만두었다.[247]

격군들은 지쳐 있었다. 함대는 천천히 나아갔다. 사부들은 갑판에 누워 잠들었다. 달무리가 함대를 따라왔다. 함대는 달무리의 가운데를 저어나갔다. 달무리 안에서, 시체들이 이물에 부딪혔고 노에 맞아 으깨졌다.[248]

수졸이 머리카락을 들어올려서 머리를 한 통씩 꺼냈다. 밑에 들어 있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은 끈끈해 보였다. 머리마다 봉두난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흰 머리카락도 있었다. 소금을 맞아서, 얼굴들은 절인 배추처럼 오그라져 있었다. 나는 얼굴들을 들여다보았다. 표정은 제가끔이었다. 눈을 뜬 얼굴, 턱이 돌아간 얼굴, 웃는 얼굴도 있었다. 얼굴의 나이를 가늠해 보다가, 나는 고개를 흔들어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적병의 나이를 지워버렸다.[250]

시신을 옮기면서 포로들은 울었다. 늙은 포로도 울었고 젊은 포로도 울었다. 주려서 퀭한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저마다의 물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254]

적들의 울음이 개별적인 울음이라는 것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그 개별성이 나의 적이라는 것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255]

군량을 빼돌리고 징집 대상자들을 빼돌리는 여러 고을 수령들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적어서 이들을 처형해 달라는 장계를 조정으로 보냈다. 장계는 조정에서 공개되었다. 그 지방 수령들의 뒤를 봐주던 조정 대신들로부터는 아무런 회신도 내려오지 않았다. 백골이 나뒹구는 백성들의 마을을 뒤져 격군과 사부를 충원했고 병든 군사들을 교체시켰다.[259]

우리 천자의 크고 깊은 교화의 덕이 저 금수와도 같은 왜에게까지 미쳐 일본군은 이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려 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함대를 해산하고 군사를 풀어헤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라.(명군 최고사령부 문서)[263]

섬 너머 수평선 쪽에서 바람 속을 날뛰는 물결이 하얗게 일어섰다. 빈 바다에는 시간의 흔적이 없었고, 지나간 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오지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 수철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느냐?
- 나으리, 이미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 일본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을 것이다.
- 나으리, 이 문서는 장졸들에게 발설치 마십시오.
- 너도 발설치 마라. 조정이 가엾구나. 우리는 가엾지 않다.[263, 264]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 수철아, 내가 아프다. 네가 담종인에게 지금 즉시 답장을 써라.
- 고향이 이미 없다고 써라. 기어이 원수를 갚겠다고 써라. 적의 종자를 박멸할 것이라고 써라. 간략히 써라.
- 알았습니다.
- 아니다, 그만두어라. 내가 쓰겠다.[264]

적의 인후 앞에서 나는 온 천지의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278]

히데요시는 전하인(天下人)을 자처했고, 그의 오사카 성에는 늘 천하포무(天下布武)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는 천하포무, 네 글자를 칼에 새겼다. 천하포무의 깃발은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조선에 출병한 깊은 뜻은 천하를 가지런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데요시의 무(武)는 권(權)을 장악하고 상(商)을 장악하는 천하의 칼이었다. 그의 칼은 권세와 이윤을 아울러 천하를 도모하는 칼이었다. 히데요시는 칼의 바탕위에서 오사카에 거대하고 영화로운 저잣거리를 열었다. 히데요시의 칼은 일본 남쪽에 항구를 열어서, 천하의 이윤이 기다리고 있는 구라파와 안남의 또 다른 항구들을 겨누고 있었다.[285]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286]

한 싸움에 대하여 주 건의 다른 장계를 받으니 착잡하다. 대국을 섬기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임을 너는 알라. 허나 스스로 공을 줄여서 천병의 장수를 옹호하는 네 마음이 어여쁘다.[295]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301]

- 장군 막하에 많은 수급이 쌓이기를 바라오. 저도 장군께 수급을 몰아드리리다. 그래 적들이 수급을 실어왔오?
- 아니오. 남해도에 쌓아놓고 있다고 합니다. 남해도에 연락선을 보내 수급을 실어올 터이니, 배를 한 척 통과시켜 달라고 했소.
..... 이 자를 여기서 베어야 하나, 허리에 찬 칼이 천근의 무게로 늘어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임진년에 총 맞은 어깻쭉지가 쑤셨다. 정유년에 형장에 으스러지던 아랫도리가 결려왔다. 나는 진린의 선실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이 자를 베어버리면, 아마도 사직을 끝장이 나고,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맞아야 할 것이었다.[317]

적의 전체였다. 내 앞에 드러난 적의 모든 것이었다. 적들은 수군뿐 아니라, 철수하는 육군 병력 전체를 배에 싣고 있었다. 적의 전체는 넘실거리며 다가왔다.
그때, 적들은 경건해 보였다. 적이 경건했다기보다는, 적이야말로, 그 앞에 내가 경건해야 할 신비처럼 보였다. 신비, 신비라고나 해두자.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322]

해지는 쪽의 먼 섬들이 석양에 빛났다. 화약 연기 속으로 노을이 스몄다.[326]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326]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327]

세상의 끝이 ..... 이 처럼 .... 가볍고 .... 또 ....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 이 세상에 남겨놓고 .... 내가 먼저 ...., 관음포의 노을이 .... 적들 쪽으로 ....



3. 내가 저자라면

『칼의 노래』는 이순신을 모델로 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이기 때문에 책의 구조나 보완할 점등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작가 김훈은 이 소설을 쓰게 된 목적을 책머리에서 이렇게 짧막하게 말한다.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어쩔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김훈]

저자는 대학 다니던 시절에 난중일기를 읽고 ‘인간의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지옥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난중일기 중에서도 그가 택한 소설의 주제는 난중일기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즉 백의종군의 시작에서부터 이순신의 사망에 이르는 2년여의 기간을 그는 소설로 엮었다. 이 기간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 그는 전쟁의 비참함, 삶과 죽음,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서의 갈등, 인간의 모진 생명력과 잔인함,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등을 그린다.

김훈의 가장 큰 특징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다. 간결한 문체로 대표되는 그의 문장에는 독특한 그만의 맛과 멋이 풍긴다. 그는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표현을 통해 작가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그 느낌이 섬뜩하고 강열하다.

『칼의 노래』에서는 시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난다. 소설이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한권의 시집을 읽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글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아는 역사적 인물이요 영웅이다. 하지만 그를 소재로 소설을 구성해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의 힘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했던 부분은 바로 전쟁의 참혹함이다. 전쟁을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한 책을 이전에는 읽은 적이 없다. 적의 코와 목을 베어서 공과를 가늠한다는, 어찌보면 전쟁 과정의 논공행상을 다루기위해서 당연한 사실을 나는 역사 시간에 임진왜란을 배울 때는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냉혹함은 바로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상은 본시 냉혹한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역사를 우린 수백 만년 간 살아왔다. 인간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냉혹한, 잔인한 본성을 교육시키고 순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되고 순화될 수 있는 것인가? 수많은 종교가 사랑을 교리로 내세워 인간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지만, 우린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통해서 이런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역사를 살고 있다. 총칼을 든 전쟁이 없는 곳에서도 경제를 무기로 한 전쟁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을 우린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또 한가지 내게 다가온 강열한 느낌은 인간 정신의 강인함이다. 전쟁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이를 극복하고 승리를 일구어 내는 이순신의 강인함이다. 더구나 이순신의 승리는 그가 받은 수 많은 모함, 백의종군이라는 불이익,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왕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몰이해 속에서 일구어 낸 승리란 점에서 돋보인다. 이런 정신이 그를 역사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런 정신의 일면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불끈 거리는 힘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어쩔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이순신이 마치 무의미한 전쟁을 싸웠던 것으로 묘사하지만, 이점에서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이순신은 세상을 무의미한 곳으로, 임진왜란을 무의미한 전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이 마지막 노량 전투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한 행동을 보이며, 그 곳에서 죽기를 바랐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부분도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물론 이건 소설이고, 확인될 수 없는 소설적인 요소를 어떻게 저자가 해석하는 지는 저자의 자유에 속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순신이 죽음을 자처하거나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의 영웅적 인생관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란 느낌에서 그렇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나는 장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54]

수의도 수졸 30명이 작당해서 배를 타고 달아났다. 군관이 뒤쫓아갔으나 잡지 못했다. 만호가 군관을 매질했다. 매 맞은 군관이 달아났다. 배도 찾지 못했다.... 도양 백성들이 수영을 습격해서 군량 30가마를 실어냈다. 백성과 군관이 함께 달아났다. 달아나던 백성들 12명이 죽은 염소를 끓여 먹고 설사 끝에 죽었다.... 둔전을 맡은 백성들이 역질로 죽어서 묻었다. 당포 군관이 선비 집 유부녀를 강간했고 여자는 자살했다. 무당이 굿을 했다.... 현감이 매일 밤 관기를 끼고 술을 마셨다. 나주에 역질이 돌았다. 백성들이 역질에 걸린 자들을 움막에 모아놓고 불질렀다. 죽은 시체와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을 함께 태웠다.... 달모산 아래 벽진 마을 백성들이 적과 밀통했던 선비 2명을 붙잡아 낫으로 찍어 죽이고 선비의 딸을 강간했다.[108, 109]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板屋船)과 협선(挾船)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131]

매일 밤 똑같은 꿈이었다.
어깨가 잘려나가 면의 몸이 개울창에서 일어섰다. 머리는 죽었는데, 몸은 살아 있었다. 죽은 머리가 산 몸 위에 붙어서 건들거렸다. 면은 칼이 없었다. 어깨 잘린 면의 몸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면이 말을 했는데, 잘려진 어깨의 단면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 아버님 저는 죽었습니다.
- 죽은 녀석이 너뿐이더냐? 내가 죽인 적이 헤아릴 수 없고 네가 죽인 적 또한 적지 않거늘, 네 어찌 내 꿈을 어지럽히느냐.
- 아버님, 저의 칼을 찾아주십시오.
- 칼을 어찌했느냐?
- 칼을 놓쳤습니다. 눈이 멀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 물러가라. 무인이 칼을 놓쳤으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느냐.
면은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려 울었다. 면은 잘려진 어깨로 울었고, 거기서 눈물이 흘렀다.
- 아버님, 죽을 때 무서웠습니다. 칼을 찾아주십시오.
-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말아라.
면은 울면서 돌아섰다. 무릎걸음으로 면은 멀어져갔다. 노을 진 갈대숲 속으로 면이 기어들어갈 때 나는 면을 불렀다.
- 면아, 면아.
부르는 내 소리에 내가 가위눌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154]

살려주자. 살게 하자. 살아서 돌아가게 하자.....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 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 죽기를 원하느냐?
- 내 손으로 죽기를 원한다. 칼을 한번 빌려달라.
- 끌어다 베어라 (나는 군관에게 말했다.) (나는 문 밖으로 나가는 군관을 향해 소리쳤다)
- 아니다. 다시 끌어오너라. (아베는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무릎 꿇려졌다.)
-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건넸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 나으리, 어찌 손수.....
- 비켜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159, 160]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165, 166]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171]

임금의 교서를 받는 날에는, 북쪽 국경 행재소 대청마루에 쓰러져 우는 임금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196]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 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니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끼니들이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군량 없는 수영을 밟고 지나갔다.[198]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그해 겨울의 밥은 무참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201]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301]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326]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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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7:50:11 *.64.21.2
김훈은 '칼의 노래'쓰면서 이가 빠졌다는데
형님도 이를 많이 빼고 갈았던데......
혹시 '방패의 노래'라도 쓰신거 아닌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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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10 14:50:14 *.36.210.11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어쩔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김훈]
- 왠지 동질감이 느껴진다는. ㅎㅎ

몸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이었을까. 희미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내 몸이 그 희미한 역류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증거인지 죽음에 대한 증거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여기는 사지였다.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그것은 순류도 아니었고 역류도 아니었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70]

- "일출무렵의 아침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이순신의 성격이 들어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성격일 수도 있다. 숨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생의 초연함이 느껴진다.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板屋船)과 협선(挾船)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131]

- 우리가 느끼든 그렇지 않던지 간에 삶과 죽음 그 사이이에서의 사람의 일상이 시시각각으로 적합하게 늘 버머무려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165, 166]

- '어께'란 단어와 의미에서 밥과 함께 늘 선택하고 맞서며 책임져야만 하는 우선순위가 느껴져요. 인생의 지난한 골달픔이겠지요. 이러한 상황들 가운데에서 이중적 시각과 보편적 사상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고요. 가장이라는 무게와 한 몫의 맡겨진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사회 일원이라는 시각에서 말예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고 자유롭게 한가할 권리가 있는 거겠죠.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171]

- 우리의 일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임금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기진하도록 슬피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정무(政務)와도 같았다. 임금의 울음은 뼈가 녹아 흐르듯이 깊었다. 남해 바다에까지 들리는 임금의 울음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은 끝끝내 혼자였고 임금만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직의 장자(長子)였다.[194]

- 이 대목에 이순신보다 사부의 모습이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매일 웃으신다는 그분께 매일 우는 모습을 느끼곤 한다. 또한 제발 우리의 위정자들이 이처럼 사직의 장자의 모습을 갖춰주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부족한 내가 또 먼저 바뀌어야 하겠구나 절실히 깨달으면서.

임금의 교서를 받는 날에는, 북쪽 국경 행재소 대청마루에 쓰러져 우는 임금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196]

- 이심전심으로 그러나 공경하며 임금을 이해하는 묘사가 잘 들어나 있네요.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 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니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끼니들이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군량 없는 수영을 밟고 지나갔다.[198]

전투가 없어도 끼니는 돌아왔고 모든 끼니는 비상한 끼니였다.[199]

- 살아있는 매일 매일이 왜 전투인가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네요.

갑판 밑에서 노를 잡던 적의 격군들이 물 위로 쏟아져내릴 때, 조선말로 비명을 질렀다. 썰물에 떠내려간 적의 격군들은 대부분이 조선 백성들이었다. 생포된 자들이 그렇게 진술했다. 적선 한 척은 대체로 격군 50명이 저었다 거기에 교대 병력을 3,40은 태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들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그만두었다.[247]

- 전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쇠고기에 얽힌 촛불 시위대와 전경들의 맞부딪침의 광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제발이지 제2, 제3의 광주 사태와 같은 끔찍한 일들은 이 땅에서 완전히 살아져 주길 바란다. 그리고 정정 당당히 임무에 응해 주기 바라고 시민들의 의식도 또한 그래야 한다.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도대체 전경과 시위대가 왜 맞서 싸워야 하나. 우리는 위정자들의 방패막이가 결코 아니고 억지로 뒤집으려는 자들이 아닌 바에야 상호간 적절한 질서를 지켜나가며 도모해야 한다. 쌍방간 폭력과 계략은 누구도 어떤 이들도 정말 정말 싫다.

적들의 울음이 개별적인 울음이라는 것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그 개별성이 나의 적이라는 것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255]

- 나는 이런 대목을 보면 자크 아탈리아의 신 유토피아론 <인간적인 길>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301]

- 장군 이순신으로 남길 바랐고 또 그곳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채 마지막 진액 한 방울까지도 그곳에서 녹아흐르게 하고 싶은 처절한 절실함이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순신은 골백번도 수천 번도 더 이미 죽어서 살아있었을 테고 그러기에 생사 여탈의 죽음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68]

- 오롯한 자기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정심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 혹은 명분을 안고 살아가고자 하는 고독한 울림이 서린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 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128]

- 인간이 신과 합일 되는 순간이고 신하가 임금의 고뇌와 의지에 감정이입 되며 그 가운데서 개인 이순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독립이지가 결연히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 바다에서의 운명은 바다에서 정리하고픈 마음이 언제고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군다나 생을 마감하면 마치 전쟁도 끝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203]

- 하지만 또 이런 구절도 빼놓지 않고 작가는 적어 두었다. 그렇다. 죽겠다 하면서도 결국 죽지 못하고 사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나도 그 경험을 했다. 정말 억지로 생목숨을 끊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접했을 때 돌이켜 보니 많은 것들이 살만했다는 것을 그리고 당연함이라기보다 충만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함 또한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유한한 것인데 굳이 재촉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삶은 또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일부분의 극적 상황이라면 많은 사소한 것들이 펄펄 살맛 나게 하고 살아봄직하며 나쁘지 않은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피식 웃음이 나올 만큼 우수웠다. 이게 낙천적 성격에 대책 없는 낭만적인 짓거리 였을 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런 무모하고 대책없는 갈등 속에 함께 있었다. 목숨을 가볍게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이기적이며 심약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지 모르듯 내 죽음도 딱 부러지게 예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이 순신은 무수히 칼을 휘둘러 대 오는 동안 그 횟수에 비례하여 무의식 가운데 각익된 의식 구조가 나름 형성되어 있었으리라. 결국 장렬한 죽음이 아니고서 살아 부귀 영화를 누린 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애착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여진다. 왜냐하면 차라리 정신없이 적과 &#51225;투를 벌일 때는 또 그렇게 임하면 되지만 전투가 끝나거나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허무와 무려감과 돌이킴의 주변 상황들은 참 덧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생에 대한 집착을 수없이 바다로 떠나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이지 푹 쉬면서 오래 잠들어 있고 싶었을 듯 싶다. 매일 부딪히는 장면에 그 자리에서 한도 끝도 없이 싸워대는 그 절박감과 긴장감과 숨막힘은 그의 혈관을 미치게 만들어 버렸을 지 모른다.


무지하게 재미있네요. 밀리언 셀러 소설이라 그런지. 짧은 문장으로 무찔러 오는 작가의 근력과 장쾌함이 대단하네요.

그리고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도 형아의 인용문 읽기도 재미나네요. 현이 형아도 무지 재미나게 읽으셨을 것 같아요. 읽고 리뷰하며 느끼기만도 치아가 몽땅 날라갔다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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