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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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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 11시 33분 등록
칼의 노래, 김훈 장편소설, 생각의 나무,2008

1.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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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에게 밥은?
밥벌이로서의 문학

김훈에 관한 자료와, 그가 쓴 글을 읽고 느낀 바는 그에게 ‘밥’은 최고의 화두라는 것이다. 그는 문학을 밥과 무관한 고상한 영역에 두지 않는다. 그에게 밥은 생존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내는 것, 그것이 생존이다. 인간들에게는 생존이야말로 무엇보다 엄정한 현실이다. 그에게 문학은 밥과 같은 것이고, 밥과 무관한 문학은 이미 실존의 근거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밥에 천착하는 것은 지지리도 가난하던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와 관련이 있다. 그의 기억 속에 또렷이 박혀있는 한 장면. 어느 겨울 새벽, 그는 시장판으로 심부름을 갔다. 평소 하던 대로 아버지를 위해 해장국을 사러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사고가 났다. 해장국을 사들고 해장국집 문지방을 넘다가, 그 위에 낀 얼음 위에 자빠져 끓는 국물을 뒤집어쓰고 허벅지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그때 그는 선지와 콩나물을 뒤집어 쓰고 울면서 이 치욕 같은 가난과 아버지의 생애를 뛰어넘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이를 앙당 물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해서나, 신문기자로 30여년을 일하면서도 가난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에게 밥은 늘 현실이었다. 오죽하면 ‘밥벌이의 어려움’이라는 글까지 썼겠나.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정기적인 수입마저 끊기자 그는 바로 가난에 노출되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그걸 글감으로(자전거 여행을 글로 써서 신문에 기고하고, 나중에 책으로 내고) 삼은 것도 작가적인 심미안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밥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나에게 밥벌이의 노동입니다. 매우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지요. 소설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쓰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겠지요. 저의 경우 27년 동안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가 쓴 글이 제가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사에 넘겨야 합니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할 수 없이 비통하죠. 그것을 견디며 밥벌이의 노동을 합니다.”

그런 그이다 보니'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우리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라고 적으면서도, ‘그러나 별 도리가 없으니 밥을 벌자’고 서글픈 결론을 내린다. 한 끼의 끼니를 때움에 있어서는 남녀노소, 지휘고하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 <칼의 노래>에서의 밥은 좀 더 처절하다. 그는 이곳에서도 ‘밥’이라는 장을 따로 두어 전장의 굶주림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정유년 겨울, 혹심한 굶주림이 전장에도 닥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그런 와중에도 장군이라고 밥을 꼬박 먹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무참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이순신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 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포구에 묶인 배의 선실 안에는 주린 수졸들이 포개져 쓰러져 있었다.”

끼니 때는 계속 돌아왔고 그는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기가 민망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 앞에서 지나간 모든 끼니는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군졸은 굶는데 자기는 밥 알을 씹으며 그는 무참하고 긴 겨울과 전장의 부조리를 함께 씹어야 했다.

이런 ‘밥’의 논리는 전장의 싸움의 논리와도 연결된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수없이 싸우고도 새로 맞는 싸움은 늘 첫 번째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운다고 경험되는 것이 아니었다. 싸움은 어김없이 되풀이되지만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싸움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순신에게 싸움은 적과의 싸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실존 전체와 싸워야 했다.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인 현실과 싸워야 했고, 그 무의미한 삶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운명과 싸워야 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과 악몽과도 싸워야 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싸움이기도 했다. 자신을 배반하는 전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그 어떤 것도 없이 내던져진 이순신의 운명은 2000년 필화사건(쾌도난담)으로 퇴사한 후, 긴 시간 혼자 있으며 밥벌이를 위해 소설을 써야 했던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다. 글을 좀 쓴다는 것 외에는 가난한 운명을 헤치고 나올 아무런 전략적 방편도 없는 그는 이순신이 되어 책 속을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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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의 노래’에 대하여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정의롭다고 스스로 외치는) 자들과 작별하였다. 그 가을 나는 혼자였고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를 붙잡고 씨름하였다. 그 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일 듯 싶었다. 그러나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눈이 녹은 뒤 아산 이순신의 사당에 자주 갔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 저물면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 이라고 그 칼은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 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나의 등판으로 식은땀이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그 겨울 나도 쓸쓸해서 내내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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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오늘의 김훈을 만들었나

그는 대학을 안 다녔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갔다가 곧 중퇴를 했다. 한겨레 신문사를 갔더니 졸업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를 갔다 줘도 되겠냐고 했더니 인사 담당자가 '그만 둡시다' 했다. 대학에 잠깐 다니긴 했지만 그가 책으로 배운 것은 거의 없다. 그때 혼자서 19세기 낭만주의 영시를 공부했다. 워즈워드, 바이런 ,예이츠 ,쉘, 키츠, 딜란 토머스까지 읽었다. 그걸 읽으면서 인간의 이성과 사랑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에 감격했고 사랑과 이성의 힘으로 미래를 영원히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허망한 꿈을 꾸었다. 그 무렵, <난중일기>를 읽었는데 인간의 삶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지옥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싶었다. 그 후 군대를 갔다. 산 속에서 보초를 서는 데 너무 좋았다. 매일 해가 뜨고 꽃이 피니까 제대하기가 싫을 정도였다. 총을 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세상을 향해 말을 할 땐 총을 쏘듯이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의 삶은 노선이나 이념에 따라 살았던 삶은 아니다. 파란도 많았고, 뒤죽박죽도 많아서 수 없이 직장을 나와야 했다. 그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일제 때 태어났으면 어떤 인간이었을까'. 친일하면 다 죽일 놈이라고 하는데 그 시대의 실존으로 돌아가서 '내가 지식인이라면 대체 어떤 놈이 되었을까. 일제 때 태어나서 남보다 글을 잘 쓰는 신문 기자가 되어 명성을 얻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상상만으로도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어떤 인간이 되었을 것이란 대답은 간 데 없고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고통의 세월에 대한 두려움과 역사에 대한 무서움만이 가슴 속에 가득 찼다. 더 이상 그는 정직하게 말할 수가 없다.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런 시절에는 인간에게 신앙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이 아니면 헤쳐나갈 길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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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그에 대한 단상

그의 기사들을 읽다 보니 그는 밖으로는 용맹하되 안으로는 쓸쓸하고, 세상 일에는 밝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매우 무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톡톡 직선적으로 생각을 내뱉지만 삶의 엄정함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연민이 있는 사람 같이 느껴진다. 남들이 안전하게 숨을 때 그는 나는 이런 놈이다하고 솔직하게 안에 품은 생각을 배설하는 사람이다. 전략적으로 세련되진 못했어도 배짱 하나는 좋은 것 같고, 자기 소신대로 세상을 살고, 그렇게 글을 쓰니 겉으로는 욕해도 속으로는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의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한 귀절 옮기면,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섞여 있는 것이다. 그것을 분리하면 관념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현실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아름답거나 일방적으로 추악하지 않다. 인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라든지, 아니면 인간은 이렇게 추악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긴 쉽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같이 섞여 있는 것을 포착하여 그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공존하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쓰고 있는 내 소설은 실패일 것이다. 그러나 난 실패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2.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19.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21.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에 핀 꽃,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자연의 성실은 인생의 비극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한다)

21.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22.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물 비늘을 걷어가면 바다는 캄캄하게 어두워갔고, 밀물로 달려들어 해안 단애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어둠 속에서 뒤채었다.
(풍경을 묘사하는데 왜 그토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이 책 내내 김훈의 글쓰기는 주변과 풍광을 묘사하는 것으로 심리의 가장 깊은 곳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명쾌하다. 가슴이 깊이 찔리는 것이다.)

22.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 있고 함대는 없다

24. 목이 잘린 시체들은 다시 바다에 던져졌다. 그 머리와 코의 숫자로 양측 지휘관들은 승진했고, 장려한 수사로 넘치는 교서를 받았다.

25. 구례에서 바꾸어 탄 말은 순천으로 넘어오는 고개에서 죽었다….눈을 뜨고 죽은 말은 그 죽은 눈으로 한동안 나를 쳐다 보았고, 나는 말의 죽은 눈동자에 비치는 내 봉두난발을 들여다 보았다…다시 내 앞에 펼쳐진 바다는 감당할 수 없는 넓이로 아득했고 나는 한 척의 배도 없었다.

26.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 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30. 나는 안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32.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40.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 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50.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70.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76. 임진년에 나는 농사를 짓듯이, 고기를 잡듯이, 적을 죽였다.

77. 물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이나 무(武)라기보다는 광(狂)에 가까웠다.

79.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는 죽기가 싫었다…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다.

82.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는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83. 물은 물을 밀쳐내면서 뒤채었다.

84. 해협은 하루에 네 차례씩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다…물길이 거꾸로 돌아서는 사이사이마다 바다는 문득 기름처럼 고요해졌고…수만년을 거구로 뒤채이는 그 물결을 내려다보면서 우수영 언덕에서 나는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내 몸속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85. 일출 무렵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90.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93.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96. 송여진은 머뭇거렸다.
- 이제 배가 열두척 이온즉…
안위가 말했다.
-열 두 척으로 진을 짠다면 대체 어떤……?
내가 말했다.
-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 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수령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김응함이 입을 열었다.
- 일자진이라 하심은……?
- 횡렬진이다. 모르는가?
- 열두 척을 다만 일렬 횡대로 적 앞에 펼치시다는 말씀이시온지?
- 그렇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다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했다.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개의 한 척일 뿐이다.

100. 새벽에 쌀밥과 소금에 절인 배추와 쇠기름 뜬 무국으로 군사들을 먹였다.

102. …북과 물결의 힘 사이에서 무너져내리는 격군들의 이두박근의 경련이 내 몸에 전해져왔다.

104. 물결은 우우우 울며 내달았고, 이물은 솟고 또 곤두박칠쳤다. 배를 따라 이동하는 갈매기들이 멀리서 너울거렸다. 우짖는 새 떼를 앞세우고 적들은 오고 있었다.

123.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124. 나는 죽은 여진에게 울음 같은 성욕을 느꼈다. 세상은 칼로서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서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물러간 적들은 또 올 것이고, 남쪽 물가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꿈자리는 밤마다 흉흉할 것이었다.

131. 굿이 끝나는 새벽에 죽은 자들의 귀신이 빨래처럼 붙어서 끽끽 울고 있었다.

132. 김수철과 늦게까지 마셨다….

133. – 수철아 죽지 마라. 명령이다. / -네 나으리 읍진에 무싹이 올라오고 있으니…./새벽에 김수철이 이불을 걷어찼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바다는 새벽까지 길길이 뛰었다.

134.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적들이 전장으로 몰려왔고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전장에서 죽었다. 썰물에 밀려갔던 적의 시체들이 다시 밀물에 물려 명량을 뒤덮었다. 죽을 때 그들은 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불타서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위에서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135.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137. 한 자루의 칼과 힘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는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벨 수가 없었다.

140. 소문은 비오는 바다 위의 안개와도 같았다.

140. 도원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143. 아산 고향에서 죽었다.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146. 시선을 던지는 각도까지 아비를 닮고 태어나는 그 씨내림이 나에게는 무서웠다. 작고 따스한 면을 안았을 때, 그 비린 젖냄새 속에서 내가 느낀 슬픔은 아마도 그 닮음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이다.

150.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내 숙사 도배지 아래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다.

151. 젊은 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

155.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 있고, 몸이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162. 나는 죽음에 이르는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167.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은 나에게는 첫번째 싸움이었다. 모든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168.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 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 때 쌌던 푸른 똥의 덜 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 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180.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은 모조리 보고하라.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189. (결국)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 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살려주어야 한다는 울음과 죽여야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193. 상처가 아물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있는 아픔이 살아있는 몸 속에 박혀 있었으나 병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 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 속에 들어와 살고있는 적의 생명으로 느껴졌다.

195.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195.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勢)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196.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202.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 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

213. 정유년 겨울에, 전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천천히 죽어가는 말기암과 같았다. 적이 죽어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216. 생선굽는 냄새를 맡고 모여든 마을의 개들이 눈 속을 뛰어다니며 뒹굴고 서로 핥았다. 깊은 겨울이었다.

217. 눈이 녹아내리는 봄물에 강물은 젖몸살을 앓듯이 불어났고 새파랗게 살아났다.

220-221. 밥이 익는 (장터의) 향기 속에 시장기가 솟아났다. 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장터 멍석 위에서 나는 잠들었다.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했다. …아낙이 멍석 위에 밥을 차렸다….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국에 만 밥을 넘길 때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을 느꼈다. 나는 포식했다.
(전쟁 중에 장터의 한 아낙이 끓여준 국밥을 얻어먹는 장군의 느낌을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표현하였을까)

223. 날이 저물자 봄의 강은 진한 비린내를 토해냈고 안개가 강물 위로 피어올랐다. 정유년 겨울은 지나갔다.

231.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 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232.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전투가 없어도 끼니는 돌아왔고 모든 끼니는 비상한 것이었다.

237. 그 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238).그 해 겨울은 무참했다.

239.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240.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삶을 버린 자가 죽음을 가로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그 경계는 늘 불분명함은 확실했다.

243.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245.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함대는 늘 춤추듯 너울거리며 진을 바꾸었다. 다시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사진을 펼칠 때, 바다는 쓰레기로 덮여 있었다.

246. 바람이 잠든 저녁 무렵의 바다는 몽환과도 같았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퍼지면서 물 속으로 스몄고, 수면을 스치는 잔바람에 빛들은 수억개의 생멸로 반짝였다.

253. 지난간 전투의 기억은 손에 닿지 않았다…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263. 여진의 몸 속은 평화로웠다. 평화롭고 뜨거웠다, 산 것의 몸 속에는 울음 같은 것이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300. 포로들은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라해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은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의 개별적인 것이다.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개별적인 그들의 몸이 왜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가. 전쟁은 어떤 명분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안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쟁은 왜 존재하는가, 인간의 악의 때문이라면 그 악의는 없앨 수 있는 것인가.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에게 역사의 발전이란 무슨 의미인가….복잡한 질문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닌다)

303. 해지는 쪽 하늘에서 붉은 노을과 검은 노을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어깨가 결리고 식은 땀이 흘렀다.

312. 바람과 물결이 함께 먼 바다로 몰려나가서 바다는 비어있었다…빈 바다에는 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오지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317. 정유년 가을에 바람이 고와서 소금은 풍년이었다. 소금은 먼데서 조용히 왔고, 적들은 오지 않았다. 조정의 선전관도, 명의 수군도 오지 않았다. 소금은 창고 가득 쌓였다.

322. 적의 방향에서 떠오르는 해는 붉은 빛으로 수영 내항까지 번져와 군막의 지붕들은 노을에 젖었다. 아침 안개가 수면 위에 오래 머무는 여름날, 먼 섬과 먼 바위들이 안개 속으로 불려가 보이지 않았다.

329.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죽었고 그는 살아생전 일본군의 철수를 명했다) 적의 인후 앞에서 나는 온 천지의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말하여질 수 없는 적의가 산더미처럼, 파도처럼, 내 마음에 밀려왔다. 적은 가까이에 있었다.

338. 히데요시의 말에 새겨진 ‘천하포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칼에 새겨진 물들일 ‘염’자를 생각했다. 그(히데요시)가 조선 철병을 명령하고 죽었다는 것인데,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시는 이러했다는 것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339. 술취한 명의 하급 지휘관들이 히데요시의 유언시를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이국 군대들이 부르는 노래가 칼처럼 내 마음을 그었다.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 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350. 나는 몹시 취했다. 술 취한 머릿 속에서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이 펼쳐졌다…몸은 무력했고, 무력한 몸은 무거웠다.

352. 첩보는 더뎠다. 적의 현재는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철수하는 적들을 바다에서 잡을 수 없다면, 적들이 어느날 홀연히 빠져나간 그 긴 바다의 텅빈 공간, 적이 안개처럼 스스로 물러가서 더 이상 아무런 조준점도 남아있지 않는 그 빈 바다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357.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 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361. 적들은 철수함으로써 세상의 무의미를 내 눈 앞에서 완성해보이려는 듯 했다. 적들이 철수의 대열을 정비하는 밤마다, 적들이 부수고 불태운 빈 마을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꿈을 꾸었다.

363. 여름에 담근 된장은 2백독이 넘었다. 된장은 겨울을 넘겨야 익게될 모양이었다. 나는 된장이 익는 봄을 기약할 수 없었다.

367. 화살이 적에게 닿지 않았고 총통이 적에게 닿지 않았다. 적을 만질 수 없었고 적을 겨눌 수 없었다. 함대를 더욱 조여 적에게 다가갔다. 적은 사정거리는 나의 사정거리였다.

371. 수영은 볏짚으로 쌓은 성처럼 보였다. 날마다 쌓이는 볏짚을 바라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아닌 어떤 힘에게 빌었다. 내가 저 볏짚에 불을 당겨 적선들을 모조리 태우기 전까지는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나는 빌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374. 적과 적 사이에서 바다는 고요했고 달무리가 물 위에 떴다. 적과 적 사이에서 격군들은 곤히 잠들었다.

378. 바싹 마른 볏짚에서는 새들이 내려 앉아 교미했다. 적의 방향에서 노을이 퍼졌고, 적의 해안기지 위 하늘에서 노을의 띠들은 어지럽게 뒤엉켰다…(379).그날밤 함대는 노량으로 향했다.

380. 노량의 물결은 사나웠다. 치솟는 물기둥의 허리를 바람이 베고 지나갔다. 적들은 바다를 뒤덮고 달려들었다…적들의 살기는 찬란했다.

387.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388-389.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이처럼…가볍고……또…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이 세상에 남겨놓고…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적들 쪽으로…….


3. 내가 저자라면

소설을 읽는 중에, 읽은 후에도 내내, 김 훈, 그 이름이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의 글을 벼리는 솜씨가 나를 압도했다. 구구절절이 묘사하지 않아도 이순신의 마음이 만져졌다. 아픔의 골이 드러나고, 긴장의 결이 느껴지고, 슬픔의 무늬가 전달되었다. 주어와 술어만 살아있는 단문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둘러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질러 들어가는, 닿아야 할 곳에 정확히 직진하는 그의 글에는 미사는 없어도 가장 본질적으로 건드는 힘이 있었다. 다 표현된 것보다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제로 살아났다. 단순하고 거친 붓의 터치, 명료함, 화려함, 폭발하는 울음, 힘, 절박함...이런 단어들이 그의 단문들이 주는 이미지다. 단순해서 더 깊고 아릿하고, 더 슬프고, 더 외롭다. 난중일기의 오리지널리티를 해치지 않으면서 그 위에 간간히 그 만의 대단한 수사를 얹어 장편의 드라마를 완성한 그의 능력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풍광과 사물에 대한 묘사로 심리 상태를 유추하게 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았다. 사물이나 풍경 그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것들이 주는 메시지가 말보다 크다는 건 언제나 감동이다.

‘소설’, 언젠가 한 번은 써보고 싶은 장르다. 아직 너무 멀어서 손이 닿진 않지만 ‘소설’이란 화두를 이 책은 내게 던져주었다. 삶의 진국이 어떤 것인지, 쿨하게 보여주는 그의 글에는 어떤 강요도, 애원도, 끈적함도 없어서 좋다. 호소하거나 촉구하지도 않는다. 무심한 듯 하지만 팽팽한 긴장이 있고 울림이 크다. 그의 글은 버리지 못해 항상 고심하는 내게 ‘버림의 미학’ 을 보여준다. 내가 꼭 배워야 할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의 글 투와 생각의 투가 부럽다. 책에 줄을 너무 많이 쳤다. 모두다 여러 번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다.


각 장들의 제목

제목 만으로도 울림이 있어서 무턱대고 한 번 자판을 두들겨 본다. 그는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썼을까, 아니면 일정 주제를 잡아 글을 먼저 쓴 후에 그 글에서 제목을 뽑았을까. 아무튼 그는 어떤 소설적 구조여야 이순신의 삶을 가장 밀도있게 그려낼 수 있을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그런 고심의 흔적을 이 제목들에서 만날 수 있다.

칼의 울음/안개 속의 살구꽃/ 다시 세상 속으로/ 칼과 달과 몸/ 허깨비/ 몸이 살아서/ 서캐/ 식은 땀/ 적의 기척/ 일자진(一字陣)/ 전환/ 노을 속의 함대/ 구덩이/ 바람 속의 무 싹/ 내 안의 죽음/ 젖 냄새/ 생선, 배, 무기, 연장/ 사지에서/ 누린내와 비린내/ 물비늘/ 그대의 칼/ 무거운 몸/ 물들이기/ 베어지지 않는 것들/ 국물/ 언어와 울음/ 밥/ 아무 일도 없는 바다/ 노을과 화약연기/ 사쿠라 꽃잎/ 비린 안개의 추억/ 더듬이/ 날개/ 달무리/ 옥수수 숲의 바람과 시간/ 백골과 백설/ 인후/ 적의 해, 적의 달/ 몸이여 이슬이여/ 소금/ 서늘한 중심/ 빈 손/ 볏짚/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이순신의 이중의 적

그에게 적은 왜군 만이 아니었다. 죽는 순간까지 이중의 적에게 몰리며 식은 땀을 흘려야 했던 이 순신, 그의 존망의 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으로 백의 종군하던 그에게 임금의 교서가 당도했다.

‘...지난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한 것은 역시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하여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64-65)

이 교서와 함께 이순신은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로 전라 좌수사로 다시 등용되었다.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전율로 몸을 떨었다. 그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걸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강한 신하를 죽여왔다. 그런 임금을 긍정할 순 없어도 신하된 자로 그의 충성은 임금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자신의 무(武)를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건 못대가리 하나 건질 것 없는 텅 빈 바다와 흉흉하고 처참한 연안과 불타버린 진영 뿐이었다. 물러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차라리 편할 법도 하지만 그는 적과 임금 사이에서 늘 위기를 느꼈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195-6)

그에게는 잘 죽는 것이 숙제였다. 목숨을 내려놓을 좋은 때와 장소를 늘 마음 에 헤아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지(死地)에 남겨진, 그의 실존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순신의 위기 의식과 더불어 실존에 대한 질문은 작가가 이 책을 끌고 가는 바탕이다.


발견: 사부님 단문식 대화법이 이 책에

사부님은 긴 설명을 압축된 단문장에 담아 전달하는 데 선수다. 메일이든, 대화에서든 그는 말을 아끼고, 아낀 말 속에 많은 것을 담는다. 심플하지만 심오한 그의 이런 대화 기법은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이 책 속에서는 멋진 대화 장면이 많이 들어있다. 이순신이 구사하는 대화가 바로 사부님의 것이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이순신의 캐릭터를 살렸고, 이 소설은 2001년에 쓰여졌으니, 사부님의 대화체는 이순신 보다 앞선 것이다. 책에서 한 장면만 옮겨 본다. 사부님을 이순신에 대입하고 읽어 보라, 맛이 제대로 난다.

대장장이 몇 명이 고향으로 가지 않고 수영에 남았다. 나에게 줄 환도 한 자루를 만들어놓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어깨에 힘이 빠져 칼이 무거웠으므로 나는 말리지 않았다. 쇠의 두께를 빼서 무게를 줄이라고 일렀다.
-나으리, 대장장이들이 칼에 검명을 새기겠다 하옵니다. 글을 내려주십시오.
내 숙사로 찾아온 김수철이 말했다.
-칼에 문자 장식이란 필요없다.
-하오나, 백성들의 정성이오니, 검명을 새겨서 간직하심이 아름다울 듯합니다. 몇 글자 내려주십시오.
나는 벼루를 당겨 먹을 갈았다. 문구는 냉큼 떠오르지 않았다. 베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세를 바꾸는 순간의 칼을 생각했다. 나는 칼의 휘두름과 땅위로 쓰러지는 쓰레기를 떠올렸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

‘강산을 물들이도다’에서 색칠할 도(도)를 버리고 물들일 염(染)을 골랐다. 김수철이 한동안 글자를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물들일 ‘염’자가 깊사옵니다.
-그러하냐? 염은 공(工)이다. 옷감에 물들이듯 바다의 색을 바꾸는 것이다.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적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때 나는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染)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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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6.09 15:52:58 *.77.6.211
모닝페이지모임하시느라 바쁘셨을 누님께서...
칼의 노래 독후감을 4기중에서 마지막으로 염(染)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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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09 16:29:06 *.248.75.18
아, 연구원 글을 읽어주시는군요. 그래요. 주말 이틀을 모닝 쫑파티에 바치고 연구원 숙제를 하는 일은 참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밤잠을 반납했지요. 오늘 저녁에는 요가하고 일찍 자려고요.
양수씨의 좋은 에너지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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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7:14:02 *.64.21.2
제 기억이 맞다면
'밥벌이의 지겨움'은 소설이 아니라
'세설'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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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10 09:04:13 *.248.75.18
맞아요,제가 그 글을 직접 읽은 것이 아니고, 서치한 자료들에서 인용한 것이라서 착각을 했어요. 창이 까칠하게(?) 칼을 들고 일어서니 저희들 그 서슬에 더욱 긴장하고 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확 일어나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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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6.11 21:34:57 *.145.231.77
오랫만에 들어와 읽어봤어요.
좋아요.
정말 잘 정리했고 글의 힘이 느껴집니다.

어제 나는 진실로 이 산성을 적의 피로 염하고 싶었다.

어제 그렇게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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