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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 13시 41분 등록


간주곡3
두 번의 간주곡을 치르면서, 우리는 이미 하워드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를 거의 다 짚었다. 이제는 선택사항들을 정리하고, 별표를 쳐야 할 곳에 별표를 치고, 지워야 할 부분은 완전히 지워버리는 일들을 해야 할 때다. 자, 그럼 세 번째 간주곡을 시작해 보자.

앞서 하워드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굳 워크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시작한지 ‘10년’이 되었고, 성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마음가짐이나 윤리 따위의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하면서, 하워드가 ‘10년 법칙’을 주장했으며, 자세한 내용을 간주곡3에서 다루겠다고 이야기했다. 약속대로 10년 법칙을 먼저 살펴보자.

10년 법칙의 핵심은 “개인이 어떤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대체로 10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처음 10년은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히는 기간이고, 두 번째 10년은 가장 인상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며, 세 번째 10년은 또 다른 절정의 작품, 그러니까 앞선 시기의 혁신에 기반을 둔 작품이자 그런 혁신을 좀더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해당 분야 전체에 연결시킨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다.” [505]

너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우습지만, 정확히 그의 논리대로이다. 신기하게도, 7인의 천재들은 대략 10년 법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 / 기원: 샤르코 / 10년: 『꿈의 해석』 / 20년: 『성욕에 관한 3편의 에세이』 / 30년: 사회학적 저술

아인슈타인 / 기원: 사고실험 / 10년: 『특수 상대성 이론』 / 20년: 『일반 상대성 이론』 / 30년: 철학적 저술

피카소 / 기원: 바르셀로나 모임 / 10년: 『아비뇽의 처녀들』 / 20년: 신고전주의 양식 / 30년: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 / 기원: 림스키 코르사코프 / 10년: 『봄의 제전』 / 20년: 『결혼』 / 30년: 후기 양식

T.S. 엘리엇 / 기원: 『프루프록』 / 10년: 『황무지』 / 20년: 『4개의 4중주』 / 30년: 극작가, 비평가

그레이엄 / 기원: 세인트 데니스 무용단 / 10년: 첫 번째 독무회 / 20년: 『프론티어』 / 30년: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 / 기원: 나탈 / 10년: 남아프리카 체류 / 20년: 아메다바드(사티아그라하) / 30년: 소금행진

더욱 재미있는 것은, 하워드 자신도 이 논리를 기가 막히게 재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워드도 비교해서 살펴보자.

하워드
기원: 에릭 에릭슨, 진 피아제, 제롬 브루너 (1963년에 에릭 에릭슨을 만났다)
10년: 『The Quest for Mind』(1973). 첫 번째 저작이다. 진 피아제와 클라우드 레비 스트라우스를 연구했다.
20년: 『마음의 틀Frames of Mind』(1983). 다중지능이론을 처음 소개했다. 교육심리학 분야의 획기적인 저작이다.
30년: 『열정과 기질Creating Minds』(1993), 『통찰과 포용Leading Minds』(1995). 이론을 실재에 적용했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40년: 『Good Work』(2001), 『Making Good』(2005), ‘GoodWork Toolkit’ 소개. 모두 굳 워크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그의 관심분야가 ‘능력의 발군’에서 ‘윤리적 가치’쪽으로 이양되었다.
40년 이후: 『Responsibility at Work』(2007), Trust & Trustworthiness Project, The GoodPlay Project 진행 중.

다음은 ‘생산적인 비동시성(asynchrony)’이다. 생산적인 비동시성은 하워드가 창안해 낸 용어로, “천재들이 가진 요소들 사이에는 모종의 비동시성이 존재하며, 이 비동시성이 창조성의 실현 전망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1)비동시성이 너무 뚜렷하거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는 창조적인 업적이 힘들 다는 것. 다시 말해, 중간수준의 비동시성이 창조성에는 가장 좋다는 것이다. 또한 2)중간수준의 비동시성, 즉 생산적인 비동시성이 많이 존재할수록 진정으로 창조적인 업적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비동시성의 과잉은 창조성 발현에 좋지 않으며, 바람직한 것은 압도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비동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적당한 수준의 ‘비동시성’이 존재할 때, 개인은 더 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 내용 역시 7인의 천재들에게서 잘 드러났다. 다음을 읽어보자.

“모든 종류의 비동시성에서 면제된 사람들은 신동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모든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 역시 여기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크다. (…) 탁월한 공간 및 신체 지능과 빈약한 학문적인 능력 사이에 비동시성을 보인 피카소를 주목한다. 아인슈타인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기(상대성 이론의 발표) 이전의 물리학 분야에는 한동안 긴장된 부조화가 존재했다. 임상적 정신의학의 장(場) 내부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높이 평가하는 부류와 전혀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부류 사이에 깊은 불화가 존재했다.” [654]

다른 천재들도 몇 가지 비동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소개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다. 관심 있는 독자는 본문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하워드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어볼 셈이다)

선택사항 중 마지막으로 다룰 내용은 ‘파우스트적 거래’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연구를 통해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98]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내용 중 하나이다. 거장이 되려면 그 분야에 미쳐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자기 관심사대로, 외곬으로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을 돌봐야 하며, 일을 해야 하고, 각종 지인들과 친지들의 민생고를 돌봐야 하는 둥 인간관계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운동, 독서, 음악, 여행 따위의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여가활동도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일상(routine)이 거장(maestro)이 되려면 ‘다중활동능력’이라는 초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하워드가 지적한 것처럼, 7인의 천재들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실패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동료들을 떠나 보냈으며, 아인슈타인은 가족들을 모른체했고, 피카소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사람들에게 소송을 걸어댔다. T.S 엘리엇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고, 그레이엄은 괴팍한 거장이라 하여 후학들에게 경원(존경하는체하나 가까이하기를 꺼림)의 대상이었으며, 간디는 인도의 만인에게 성인과 같은 존재였으나 정작 가족들에게는 무심했다. 정상적인(?) 삶과 거장의 삶에는, 이처럼 숨길 수 없는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천재가 되고 싶은 일상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주어질 것이다. “초능력을 개발해야 할까, 아니면 한쪽을 포기해야 할까?” 혹은, 이런 질문도 괜찮다. “초능력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하워드의 결론을 살펴보았는데, 그는 이에 대해서라면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의 성의 없는 결론은 이랬다.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미신을 믿거나 비합리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희생했다.”

실망이었다. 천재를 꿈꾸는 일상의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방법을 강구해보아야 하나?

평가 – 1. 하워드의 창조성 (10년 법칙을 중심으로)
하워드는 1963년, 에릭슨을 만난 이후로 인간의 정신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브루너의 영향을 받아 심리학을 탐독하게 되었으며, 대학 졸업반 시절에는 (1964년) 피아제의 저서들을 읽으며 인지심리학으로 자신의 집중분야를 수정한다. 대학원에서는 발달심리학의 연구방법과 기법 등을 터득했으며, 프로젝트 제로라는 새로운 연구 기획을 접하게 되면서, (1967년) 비로소 지금의 성과들을 쏟아내게 되는 교육심리학으로 최종 행선지를 확정한다.

이후 40여 년 동안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와 인연을 맺으며, ‘다중지능이론’, ‘교육방법론’ 등을 소개했으며, 관련 분야에서 30여 편의 저작과 7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95년부터는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윌리엄 데이몬과 함께 굳 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굳 워크 프로젝트에서 얻은 통찰과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의 노하우를 접목해 ‘개인의 성취와 윤리적 가치 문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연구는 하버드를 거점으로 미국 전역의 교육기관(고등학교, 대학교, 코칭기관, 멘토링기관 등)에서 적용, 실행 되고 있으며, 교육방법론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현재 교육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의 교육 대학원 연구교수이며, 학부에서는 심리학, 인지학, 교육학을 가르친다. 보스턴 대학의 신경병학 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22개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1981년에는 맥아더상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외교와 전망Foreign Policy & Prospect』 매거진에서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 100인에 선정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런던의 왕립 과학협회 일원이 되었으며,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와 굳 워크 프로젝트를 비롯해, Trust & Trustworthiness 프로젝트, GoodPlay 프로젝트 등을 이끌고 있다.

간주곡3에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그는 창조성의 작용에 대해 ‘10년 법칙’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하워드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10년 법칙에 근거하여 그의 창조성 발현 과정을 천천히 되짚어보자.

에릭슨과의 만남을 기원으로 볼 때, 하워드는 이후 10년 동안 심리학 분야에서 훈련 받은 셈이다. 피아제의 저서들을 탐독하며 인지심리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원에서는 발달심리학의 기법들을 터득했고, 프로젝트 제로에서는 교육심리학을 연구했다. 처음 10년에 해당하는 이 기간 동안, 그는 심리학이라는 관련 분야의 기예를 익힌 것이다.

하워드의 첫 번째 개인 저작은 『The Quest for Mind』(1973)로 진 피아제와 클라우드 레비 스트라우스를 연구한 내용이다.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그의 학문적 멘토는 진 피아제였다. 스위스의 인지심리학자였던 그의 저작들은, 당시 학부 졸업생이었던 하워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 분야에서 10년의 훈련과정을 거친 후, 그가 처음으로 내 놓은 책이 다름아닌 진 피아제에 관한 연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10년 후에, 자신의 일대 저작인 『마음의 틀Frames of Mind』(1983)을 발표한다. 『마음의 틀』은 하워드가 처음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한 책으로 교육 분야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첫 번째 저작 이후, 10년 동안 무려 5권의 저작들을 소개했으며, 그에 대한 최종 결과물로 ‘다중지능이론’을 내놓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에게 다시 한 번 변화의 전기를 마련해 준 책인 『열정과 기질Creating Minds』(1993)이 소개 된 것도 정확히 10년이 지난 후라는 사실이다. 그는 ‘다중지능이론’을 내 놓은 뒤,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10년 동안 정진했으며, (4권의 저작과 수 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열정과 기질』, 『통찰과 포용Leading Minds』 따위의 또 다른 혁신을 이루게 된다.

1973년부터 1983년까지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혀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했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4권의 책과 수 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또 다른 절정의 작품인 『열정과 기질』을 내 놓았다. 이제 10년 법칙의 논리대로라면, 1993년부터 2003년까지 해당 분야를 총 망라하는 포괄적이고 더욱 혁신적인 작품이 나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1995년부터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몬 등의 동료들과 함께 ‘굳 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인 2005년에는 교육과 윤리, 그리고 인간 정신과 마음가짐, 사회, 일(직업) 따위의 개인의 성취와 관련한 핵심 주제들을 총 망라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냈다. 바로 ‘굳 워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성과라 할 수 있는 『Making Good』(2005)이 소개된 것이다. (개인의 직업윤리에 관한 책이다) 하워드의 관심분야가 ‘능력의 발군’에서 ‘윤리적 가치’쪽으로 이동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7인의 천재들을 조사하면서 스스로가 결론 내린 것처럼, 하워드 자신도 결국 ‘윤리’라는 전통적 가치문제로 회기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세 번째 10년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 굳 워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1년에는 동료들과 공저한 『Good Work』(2001)을 발표했으며, 『Making Good』(2005)이 발표되기 직전인 2004년에는 ‘GoodWork Toolkit’을 소개하는 등 활발한 연구활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GoodWork Toolkit은 젊은 학생들, 선생님, 코치, 감독관, 맨토 등의 역할을 정의하고 이들 간에 대화법과 ‘good work’을 위한 방법론 따위를 제시한다.

가장 최근에는 『Responsibility at Work』(2007)라 하여, 하워드 가드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몬, 진 나까무라가 기술한 수 십 편의 에세이 모음집이 발표되었다. 굳 워크 프로젝트의 ‘사실상 첫 번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간의 연구를 집약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굳 워크 프로젝트는 그간, 9개 분야에서 1,200여 명의 전문 직업인들을 인터뷰해왔다. 이들을 인터뷰함으로써 직업과 개인, 그리고 사회간의 연관을 밝히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이 책에서 “성취의 핵심은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에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며, 그에 대한 실증으로 1,20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다.

굳 워크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두 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Trust & Trustworthiness 프로젝트와 GoodPlay 프로젝트이다. 멘토링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며, 미국 내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시범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가 연구의 주축이다.

하워드는 본문에서 7인의 천재들이 했던 성취를 10년 법칙에 의거하여 표로 구성했다. 그 틀에 맞추어 하워드의 성취를 다시 한번 표식(表式)화 해봤다.

하워드 가드너
기원: 에릭 에릭슨, 제롬 브루너, 진 피아제
10년: 심리학분야 훈련, 『The Quest for Mind』
20년: *『마음의 틀』, 다중지능이론 발표
30년: *『열정과 기질』, 『통찰과 포용』
30년 이후: **『Making Good』, 『Responsibility at Work』, GoodWork Toolkit

* 근본적인 도약
** 포괄적인 창조물

평가 – 2. 하워드의 열정과 기질 (생산적 비동시성)
하워드의 기질은 앞서 잠깐 소개한 바 있다. 언어와 음악에는 관심이 많지만, 신체적인 활용은 잼뱅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을 읽어보자.

“독자들은 내가 스스로 나의 이론을 삶에 적용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바로 다중지능이론 말이다. 나는 실제로 내가 제안한 8개의 지능 영역 중 나만의 특질적 성향을 불러내어 활용해 왔다. 나는 기본적으로 언어와 음악의 창조물이다. 나의 생애는 두 개의 상징으로 점철된다. 언어와 음악이다. 나는 언어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다. (…) 나는 음악적 감성을 내 글에 담으려 한다. 나는 완전히 논리적, 수학적 사고에 맞추어진 사람이다. 공간적인 기술이나 신체 감각적인 시도는, 내게는 전혀 없다.”

그의 말대로, 그는 공간 및 신체 지능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학문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매우 빈약했던 피카소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도 ‘개인성’ 내부에 생산적인 비동시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동시성이 창조성의 실현 전망을 높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불현듯 비교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이 떠올랐다. 그는 대학에서 육상선수로 활동했을 정도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적으로도 탁월했다. 이런 인물은 그가 조사했던 7인 중에서도 몇이 더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논리와 학문 영역에서 뛰어났으나 공간 영역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레이엄의 경우는 탁월한 무용수였으나 학문적으로도 두루 훌륭했다.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은 스트라빈스키로 음악과 예술을 비롯한 다방면에서 재능이 있었고, 철학이나 논리에도 무난했다. 그는 유일하게 개인성 내부에 약점(비동시성)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창조성 실현을 촉진하는 생산적인 비동시성은 개인성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개인성이나 다개인성 내부에도 존재한다. 게다가 각 개인성간의 상호(mutually)에도 존재한다. 하워드의 경우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항목이 개인성과 다개인성이다. 그의 다개인성에 대해 약간 명 더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스스로를 개척자나 창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요한 기술자나 통합자 정도로 보는 것이 어울린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이따금 논의의 쟁점에 서게 되는 것이 놀랍다. (…) 즉 슨, 나의 다중지능이론에 대한 찬반의 논의가 학계를 통해 강하게 술렁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중지능이론은 그가 1983년 『마음의 틀』에서 처음 소개한 내용으로 그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지금껏 인간 지능에 대한 오해가 있어왔다. 인간의 지능은 단일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8개의 각기 다른 지능 영역간의 조합이며, 개인은 서 너 개의 지능 영역이 복합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로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그의 이론은 학계에 충격을 가져다 주었으며, 수용과 천착 그리고 개정이라는 험한 길을 지나왔다. 하워드는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2회의 개정판을 내놓았으며, 이 밖에도 수 십 편의 관련저서와 수 백 편의 논문, 논설 따위를 발표하며 입지를 굳혀왔다.

그가 썼듯이, 사회과학분야는 하나의 이론이 발표되었을 때 그 이론을 토대로 추종자와 반대자가 갈리게 되는 모호한 장(場)이다. 물리학이나 수학분야는 어떤 이론이 타당한 것으로 확정되면 장 단위(standard)에서 그 이론을 수용하는 반면, 사회과학분야는 각 학파로 분열되어 투쟁과 옹호를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처럼 장 내부에서 극단적인 비동시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워드 역시 다개인성 항목에서 적정수준의 비동시성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적절한 수준의 비동시성이 그간의 폭발적인 창조적 저작활동의 연료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여느 천재들처럼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토론에서 나의 몸가짐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인생을 통해 배우고 그 내용을 반추해보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마도 이따금씩 나를 괴롭히는 이런 논쟁들 역시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배움의 일환일 것이다. (…) 나는 법률가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내가 심리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난 40여 년간 내 속에 끓어오르는 법률가 기질은 억압된 상태로 눌려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항상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본의 아니게 전통적 신앙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 신앙에 대해서도 스스로 옹호할 만한 논리와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충돌을 좋아하진 않으나,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평가 – 3. 추측 (파우스트적 거래)
이쯤 되면, 하워드는 천재라 할 만한 창조성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교육심리학의 몇 챕터(chapter)를 새로 썼고, 특히 창조성과 예술성 따위의 인간정신개발 분야를 활짝 열었으며, 최근에는 윤리적인 가치 문제와 인간의 정신활동, 그리고 사회와 일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를 혁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설사 그가 이대로 연구를 멈추고 더 이상의 창조활동을 그만둔다고 해도, 그간의 성과와 영향력만큼은 여전히 탁월한 것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하워드가 7인의 천재들에게 제기했던 질문과 똑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과연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무엇을 약속했던 걸까?” 그렇다. 바로 파우스트적 거래이다. 천재들은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유지하기 위해 원만한 삶을 포기했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그랬다. 그렇다면, 정작 이들의 거래를 밝혀냈던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실 이에 대해서라면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의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을 인터뷰 해본다던가,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를 평가해둔 메모라도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그저 보스턴의 학구적 분위기의 상징인 하버드의 캠퍼스를 거니는 노년의 신사 한 분을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그의 글을 꼼꼼히 찾아 읽으며 작은 실마리를 발견해 낸다던가, 혹은 자신의 저작들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지며 막연한 힌트를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껏 써내려 온 노력보다 더한 노력을 요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다지 정확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의 최근 활동과 견주어서 파우스트적 거래의 고리를 끊으려는 그의 움직임에 대해 기술해보겠다.

미리 고백해두지만, 지금부터 기술할 내용은 100% 나의 추측이다. 그는 자신과 관련해서는 파우스트적 거래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나는 그저 그의 학문적 활동내역과 변화과정, 최근의 관심사 따위를 근거로 정황상의 추정을 할 뿐이다.

나는 그가 1995년에 굳 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점에 집중한다. 그는 1993년과 1995년, 『열정과 기질』, 그리고 『통찰과 포용』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고는 당분간 저작활동을 중단하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몬 등과 함께 굳 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굳 워크 프로젝트는 앞서 밝혀둔 대로, 하워드의 관심사가 개인의 능력의 발군에서 윤리적인 측면, 이를테면 정직과 신용, 마음가짐, 직업관, 사회적 책임 따위의 가치로 이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10년 동안 그의 관심은 이렇게 바뀐 것이다. 천재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해 의미 있는 결과물로 발표해 왔던 1995년부터였다. 나는 그가 이 시점에 파우스트적 거래의 고리를 끊을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천재들의 삶이, 하나같이 인간관계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오히려 “유래카!” 라고 외쳤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주제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느 천재들의 삶에서처럼 자신의 삶에서도 차츰 파우스트적 거래의 마수가 뻗쳐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해왔던 것처럼 묵직묵직한 결과물을 짧은 기간 동안 무진장 쏟아내려면, 그 삶에서 8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연구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생산적인 저작활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연히 가족과의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라는 비동시성이 충만한 장(場)에서 이토록 뚜렷한 성향을 가지는 연구결과들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시오니즘적 성향이 강한 유대 학자로서 장에 대한 반등을 대처하는 방법이 날카로웠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스스로 체감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거래를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나는, 그가 굳 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윤리적 가치 쪽으로 관심사를 확장한 것이 ‘파우스트적 거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연구결과도, 자신의 삶도, 장의 반응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처방법도, 모두 ‘파우스트적 거래’라는 어둠의 골짜기를 가리키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평가 – 4. 못다한 이야기 (시대성, 전통적 가치)
창조성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조사해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바로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하워드 역시 7인의 천재들을 조사해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다른 창조성 연구와 비교해 볼 때 색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다름아닌 시대성에 대한 함의이다.

간주곡1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워드는 ‘현대(19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라는 특정한 시대를 상정(의안을 내놓음)하고, 그것이 가진 ‘교차성’과 ‘파급성’에 주목했다. “인간의 능력이나 혁신활동은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을 세워두고,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조사대상(7인의 천재들)을 모두 이 시기의 인물들로 선별한 것이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현대’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일곱 명의 현대의 거장들이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세상이었다. (…)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란, 기회의 시간이자 과거의 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며 표면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 이 시기에 사람들은 모든 측면에서 옛 생활 방식에 투쟁하기 위해 일어서고 있었다.” (교차성)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도와 미국, 스페인과 러시아와 같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인물들이 하나의 세계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 전달 능력의 지속적인 발전, 전쟁 직전의 점증하는 불안감 등 많은 요인이 현대 거장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파급성)

나는 그가 시대성을 밝혀낸 뒤, 그것이 천재들의 성과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결과를 도출할 줄 알았다. 즉 슨, 시대성(x)과 천재성(y) 간의 함수를 밝혀 내어 ‘천재성 상수(y = ax에서 a에 해당하는 것)’라 할 법한 무언가를 보여줄 줄 알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어떤 시대상수(x값)를 대입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천재상수(y값)를 찾아낼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밝혀내겠다는 시대성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현대’라는 시대가 어떤 시기였으며, 그런 시대적 특성이 그 시대 천재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가에 대한 조경을 갖겠다는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실망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허무맹랑한 기대였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같은 맥락에서 하워드가 창조성을 발휘하는 시점인 오늘의 시대성을 간략하게 짚어보자. 그는 ‘현대 이후’에 해당하는 21세기의 오늘에 대해서도 몇 마디 써 두었다. 현대 이후,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설명은 대략 이렇다.

“1)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고양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모더니즘이 아이러니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이러니 이상이라는 것이다. 2)두 번째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전통을 거부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에 탐닉한다는 것이다. 3)포스트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개인적이고 문화적이며 역사적이고 주관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을 창조물에 재도입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에 대한 가치 근거 자체를 무시하는 것으로, 자유라기 보다는 방종에 가깝다. 나는 전에 철학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렇게 썼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의미와 진리, 즉 근원 자체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다양한 시각과 가치에 따라서 새롭게 평가될 수 있다는 사조(思潮)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하에서 형이상학적 질문은 아예 의미가 없다. 이것은 과거의 철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끊임없이 잡고 있어야 할, 근원에 대한 질문의 끈을 잘라버린다. 모든 사람의 모든 철학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나름의 개인철학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진실의 진영에서는 철학의 속임수에 맞서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하워드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꽤나 자신감 있게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이렇다.

“아마도 나의 감성은 포스트모던 시대보다 현대에 더 가까울 것이다. (…) 포스트모던한 정신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내가 다소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통에 대한 반역은 전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나 의미가 있다. 표준적인 해석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전통적인 해석방식이 아직 심층적으로 분석되거나 비판되지 않았을 때나 이치에 맞는다.”

이렇듯 현대 이후의 포스트모던한 사조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학문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보다 긍정적인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나는 항상 기회를 위해 준비한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에 알맞은 때이다. 바로 기회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특정한 능력은 특정한 시대성과 교차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기회의 정점에 서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가?) 게다가 이토록 사회과학자들이 우글거리는 시대를 보라.”

이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서 과거의 전승이나 전통, 가치 따위의 ‘애매한 문제들’에 대해 약간 명 살펴보는 것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겠다.

우리는 그의 책을 통해 현대 거장들이 어떻게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저 힐끔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가치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거장들의 창조물이 결국에는 과거의 전통으로 회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초반에는 전통을 부정하며 기존의 체계를 뒤집는 완전히 새로운 성과로 분야를 장악해갔다. 하지만 창조성이 무르익은 중년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의 성과’와 ‘과거의 전통’ 사이에 다리를 잇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철학을 이으려 했으며, 프로이트는 문화적, 사회학적 주제로 회기 했고,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은,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에 탐닉했다. 이들은 “과거의 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깊이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라면, 하워드도 다르지 않다. 그 역시 ‘다중지능이론’을 발표하며 교육심리학분야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했으나, 이후 굳 워크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의 성취문제에서 윤리와 마음가짐이라는 전통적 가치문제로 자신의 관심을 돌이키게 된다.

이들의 일대기를 훑어보며, ‘전통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토록 벗어나려 하고, 깨트리려 하고, 파괴하고 혁신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무엇보다도 역사가 그렇다. 철학이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예술이 그렇고, 문학이 그렇다. 길게 이어져왔기에 그 흐름을 짚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실, 혹은 진리라는 가치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혹자는 길게 돌아가고, 혹자는 가로질러 바로 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것이며, 그래서인지 어느덧 잊혀져 버리곤 하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그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다.

나는 C.S. 루이스를 좋아한다. 아마도 그가 이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치 문제에 대한 그의 훌륭한 경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논의를 맺는다.

“참으로 위대한 도덕 선생들은 새로운 도덕을 소개한 적이 없습니다. 가짜와 괴짜들이나 새것을 소개하는 법입니다. (…) 사람은 가르쳐야 할 때 보다 기억시켜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모든 도덕적 스승들의 진정한 임무는, 우리가 자꾸 외면하고 싶어하는 단순한 옛 원칙을 몇 번이고 다시 일깨우는 것입니다.”

간주곡4
이제 중요한 부분에 별표를 쳐볼 차례이다. 간주곡1, 2, 3에서 살펴보았던 내용을 정리한다.

이 책의 목적
1) 천재들의 창조성 유형을 살펴보고 각각의 특이성(차이점)을 밝힌다.
2) 창조성의 본질, 즉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3) ‘현대(the modern era)’에 대한 결론, 즉 1900년 대의 시대성을 밝힌다.

창조성에 대한 정의
“창조성이란, 재능 있는 개인이 장(field)을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세심한 정의
1) 개인은 (모든 분야가 아닌)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
2) 창조적인 개인은 정규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
3) 문제풀이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 새로운 질문의 고안 따위도 창조성이라 할 수 있다.
4) 그 자체로 창조적인 것은 없다. 창조적 행위는 반드시 특정 문화(혹은, 장)에서 검증, 발현 된다.

두 가지 가설
1)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는 해체의 분위기를 띠는 아방가르드적 시대였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은 그 시기의 특징인 교차성과 파급성의 영향을 받았다. (본 연구 결과는 ‘현대’를 벗어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설명력의 한계가 있다)
2) 개인은 천재성의 싹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창조적인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소질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훈련과정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러한 훈련 과정에는 타인의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선정된 천재 7인 – 모두 ‘현대(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인물들, 각기 다른 분야의 인물들.
1)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 정신의학의 아버지,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이론 물리학자,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 영원한 아이
3)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입체주의를 개척한 화가, 신동
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 새로운 세기를 알린 작곡가, 음악가이자 정치가
5) T.S. 엘리엇T.S. Eliot – 시인, 『황무지』,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6)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 현대무용의 전인(全人),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7)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 인도의 성인, 사티아그라하,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구성적 주제 – 선정된 7인의 일대기는 다음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기술 된다.
1)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 (아동에서 대가로의 성장과정)
2) 창조적인 인물과 작품과의 관계 (새로운 상징 체계를 창조하는 과정)
3)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후원자, 스승, 동료 – 도움과 갈등)

창조성 지도Creativity Map
1) 특정 분야에 대한 유년기의 관심
2) 특정 분야를 선택
3) 선택한 분야에 정통. 새로운 가능성, 혹은 모순점 발견
4) 단계적인 탐구
5) 고립, 방해, 격려, 지지. (후원자, 경쟁자, 스승 따위의 주변사람)
6) 새로운 상징체계를 만듦
7) 관련 장(field)에서 평가를 받음
8)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두 번째 혁신을 이룸

10년 법칙
“개인이 어떤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대체로 10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혀 정통해지고, 다음 10년 동안 전인미답의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 동안 앞선 시기의 혁신과 더불어 해당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또 다른 창조성을 쏟아낸다.”

생산적인 비동시성
“개인은 적당한 수준의 비동시성이 존재할 때, 더 큰 창조성을 발휘 할 수 있다. 이때 비동시성의 과잉이나 모호한 비동시성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적절한 수준의 충만한 비동시성이다.”

파우스트적 거래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들은 이런 과정을 모종의 협정이라고 스스로 결론 짓고 지나치게 그쪽으로 치우친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 – 아놀드 토인비 [5]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빗나간 총탄이라든가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49]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 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잇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 프로이트 [67]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69]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 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78]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78]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79]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 [80]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82]
그 자체로 창조적인 것은 없다. 공동체의 평가가 내려지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은 그것(그 사람)이 ‘창조적인 잠재력’을 지녔다는 지적일 뿐이다. [85]
창조성은 낯설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아주 적절한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9]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나는 탐욕이라 해도 좋은 지적 욕구에 이끌렸을 뿐이다. – 프로이트 [108]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운동의 역사』에서. [127]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 프로이트 [129]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이다. – 프로이트 [130]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 프로이트 [139]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실천 양면을 대표했다. 진지한 학자라면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실천 방안에도 관여하는 학자는 매우 드물며, 처리 방법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153]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원한 아이
천재성이란 의지로 되찾은 유년기이자, 이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의 육체적인 능력을 갖춘 유년기, 그리고 무의지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총합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석적인 정신을 갖춘 유년기이다. – 보들레르, 『근대 생활의 화가』에서 예술가의 천재성에 대해. [170]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 라바이(I. I. Rabi), 물리학자 [171]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 맥스웰 [184]
그(아인슈타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는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악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194]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 [216]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reflective wisdom)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236]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과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 아인슈타인 [237]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미숙함을 경험한 적이 없다. – 헥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가 일찍이 신동의 재주를 뽐냈던 카미유 생상스에 대해 비꼰 말. [254]
특정 분야에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은 그 분야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여 통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신동의 한계) [254]
음악과 달리, 회화 분야의 신동은 없습니다. 어린 천재란 그저 유년기의 천재일 뿐이지요. 나이가 좀더 들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그런 아이도 미술가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가령, 나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처음 그린 그림은 아동 전시회에서도 걸리지 못했어요. 아이다운 천진성이나 소박함이 없었던 거지요. (…) 어린 시절에 나는 그저 아카데미 화풍에 다라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 보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거의 똑같이 베끼다시피 했더군요. – 피카소 [263]
다작(多作)과 풍작(豊作)은 폭력과 활력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 파구스, 피카소의 그림을 칭찬하며 경고성 멘트. [268]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 피카소 [287]
아무리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도, 서로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이점은 특히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창조적인 인물들한테 꼭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302]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미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 화가란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글도 그렇다) – 피카소 [307]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 (글도 그렇다) – 피카소 [317]
그(피카소)는 부분과 전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글도 그렇다) [318]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극소수의 예술가만이 별다른 외부적 자극 없이도 장의 인정을 받을 만큼 운이 좋으며, 소수의 예술가만이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를 만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37]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 스트라빈스키 [342]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355]
위대한 창조자들은 걸작이든 태작(졸작)이든 작품 자체를 다량으로 창조한다. – 딘 키스 사이먼튼 (창조성 연구자) [355]
스트라빈스키는 처음 작품을 구상하고 악보에 옮겨 적을 때 이미 작품 전반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처음의 구상은 매우 도식적이지만 정서적인 색조나 조직적인 구성이 중요한 특색을 이룬다) (글도 그렇다) [358]
흥정이 격렬한 것은 짜낼 이익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The haggling is so bitter because the stakes are so small.) – 경구 [372]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사상 이치다. – 스트라빈스키 [383]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 스트라빈스키 [388]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마중 나간다. – 프로이트 [388]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에 적절하게 활용한다. – 스트라빈스키 [388]
이 작품을 작곡할 때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손가락이 알아서 상이한 리듬의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 손가락을 얕봐서는 안 된다. 악기와 늘 접촉하는 영감의 원천이 바로 손가락이다. 그게 없으면 무의식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 스트라빈스키 [388]
더 많은 곡을 쓰느라고 바쁘지만 않으면 영원히 내 음악을 반복해서 검토했을 것이다. – 스트라빈스키 [388]

7. T.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커다란 강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교감할 수 없는 뭔가를 품고 살아간다. – T.S. 엘리엇 [404]
그러면 갑시다. 그대와 나는 / 마치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 저녁이 하늘에 펼쳐져 있으니 – T.S. 엘리엇 [417]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 마샤 데이븐포트 [437]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 – T.S. 엘리엇 [443]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 T.S. 엘리엇 [444]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456]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그레이엄은 창조력이 풍부한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든 자기 모방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489]
20년 동안이나 의도적으로 과거에 도전한 예술가라면 다시 고전적인 주제와 전통적인 형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513]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 그레이엄 [521]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은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 그레이엄 [521]
시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 W.H. 오든 [521]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 그레이엄 [523]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 – 에드가 바레즈Edgar Varese, 작곡가 [524]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 간디 [544]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고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했다. [555]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 간디 [563]
사티아그라하의 유별난 점, 그리고 사티아그라하를 인간의 위대한 성취로 만든 요소는 그것이 실천적인 철학을 대표한다는 점에 있다. [581]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 간디 [585]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간디 [610]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에필로그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82]
현대의 거장들은 과거의 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깊이 젖어 있었다. (…) 그들은 심연 가까이 접근했지만, 다시 뒷걸음질쳤다. 점차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전통의 존재 이유를 다시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690]
인간이란 어쩌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방향, 장르 혼용의 방향으로 무한정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전통, 모더니즘과 역사주의,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와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 혹은 퇴행적인 시기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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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22:46:33 *.41.62.236

심혈을 기울인 글. 읽다 보니 학교에서 학습심리학 시간에 가워드에 대한 토론을 일장 벌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잘읽고 가요. 왜 글이 안올라 올까 궁금했는데 건재해서 반갑고, 앞으로도 주욱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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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11 12:41:54 *.36.210.11

“이 연구를 통해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98]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미신을 믿거나 비합리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희생했다.”

실망이었다. 천재를 꿈꾸는 일상의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방법을 강구해보아야 하나?

-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희생하지 않는 방법? 천재를 꿈꾸는 일상의 사람들의 강구는?

알고 계시겠지만 일상의 포트 폴리오, 찰스 핸디가 <코끼리와 벼룩>을 통해 제시해 놓은 방법을 살펴보면 좋겠네요. 사부님의 낮술 이론은 또 어떠실까요? 아참, 지금 그보다 진화된 방법으로 시도하고 계시다구요? 오호라, 끄덕 끄덕. 개구장이의 열정과 기절! ㅋ

독자들은 연구자에 비해 참 편한 것 같아요. 요구사항이 많으니까요. 모두 다 해결해 주기란 정말 어렵겠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도 다를 거구요. 천재들이 있어 범인 들은 그대로 배우며 따라 할 수 있지만 정작 천재들은 어떻게 찾아 나가야 할까요?

두 가지 가설
1)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는 해체의 분위기를 띠는 아방가르드적 시대였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은 그 시기의 특징인 교차성과 파급성의 영향을 받았다. (본 연구 결과는 ‘현대’를 벗어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설명력의 한계가 있다)
2) 개인은 천재성의 싹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창조적인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소질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훈련과정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러한 훈련 과정에는 타인의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 여전히 유효한 이 부분의 2)번이 인상적이네요. 교주 집단 같다는 부러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창조성 지도Creativity Map
5) 고립, 방해, 격려, 지지. (후원자, 경쟁자, 스승 따위의 주변사람)

- 이 부분의 표현에서 상당히 거만한 느낌을 받음. 필요적이기는 하나 천재라면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하는. 그러나 천재는 천재들끼리의 승리가 결코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과 관심과 숭고한 사랑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10년 법칙
“개인이 어떤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대체로 10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혀 정통해지고, 다음 10년 동안 전인미답의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 동안 앞선 시기의 혁신과 더불어 해당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또 다른 창조성을 쏟아낸다.”

-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서도 흔히 일어나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면 결혼이나 직장 생활 등을 통해서. 이것을 각자 자기만의 생활에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용해서 자기계발을 위한 기획에 활용하면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 &#8211; 아놀드 토인비 [5]

- '자신의 기쁨과 고락 그리고 꿈에 충분히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이라는 말을 첨가하는 것은 필요 없겠죠.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821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69]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를 읽었을 때 마르크스와 공산주의 혁명에 몰입하며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하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들과 개구장이 님도 이런 고통속의 쾌감을 짜릿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엑스터시까지 느낀다고요? 훔쳐보는 맛도 나쁘지 않은 걸요. ㅎㅎㅎ 갑자기 사부님이 회초리를 드시고 더 해! 더 엉겨붙어! 시시하다! 좋구나, 계속해라! 하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 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78]

- 뜨끔. 백 번 끄덕끄덕.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알아야 할 자세.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78]

- 이 결혼 참 마음에 든다. 혼인서약은 무엇일까?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79]

- 사진작가 윤광준 선생이 무지하게 외치는 소리. 전적으로 동의함. 최소 10년 만 잘 살아도( 열심히 살아도) 분명 괜찮을 것으로 생각함.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 [80]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82]

-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꿈은 그의 직관에 상당한 구실을 하였다고 본다.

창조성은 낯설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아주 적절한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9]

7. T.S. 엘리엇 &#8211;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 &#8211; T.S. 엘리엇 [443]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8211; T.S. 엘리엇 [444]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456]

8. 마사 그레이엄 &#8211;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8211; 그레이엄 [521]

시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8211; W.H. 오든 [521]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82]


대단한 능력이군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서 고소한 참기름을 발랐네요. 재미나게 잘 읽었어요. 베리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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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6.11 23:36:01 *.230.127.27
네, 저는 건재해요. ㅎㅎㅎ

매일 쓰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걸렸어요. 진도도 잘 안나갔고. 오버였던거죠. 아하핫.

벌써 이만큼 뒤쳐졌네요. 그래도 하는데까지 열심히 해보려구요. 앤님의 "주욱 함께 가자"시는 말씀에 정말 힘이나요. 요즘은 코드를 좀 바꾸신 것 같긴 하지만, 역시 앤님의 코드는 'love' 였어요. ㅎ

써니님은 완전분석을 해주셨어요. -_-;;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주시면, 엉뚱한 짓은 못하겠네요. 이번에 하도 애를 먹어서 다음부터는 좀 설렁설렁 하려 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입니다. 진짜 고민. ㅋ

암튼, 덧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썼는데, 아무 덧글도 없었다면 슬펐을거에요. 꾸준히 정진하라는 격려의 박수로 알고, 열심히 태작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간 해 뜰 날이 오겠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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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팬
2008.06.13 02:30:16 *.248.75.18
개구쟁이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글을 보고서는 양성이 다 느껴져서요.
궁금...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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