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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8일 06시 36분 등록
25장

천지가 생기기 전에
형태가 없으면서 완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소리도 없고, 비어 있다.
홀로 서 있으며, 변하지 않는다.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하고 영원히 존재하니
천하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더 나은 이름을 알지 못하여
나는 이를 그저 도(道)라 부른다.

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거대하다고 하겠다.
거대하면 끝없이 뻗어 가고;
끝없이 뻗어 가면 영원히 흐르고;
영원히 흐르면 변함없이 돌아온다.

그런고로 도(道)도 거대하고,
하늘도 거대하고,
땅도 거대하고,
사람(원문에서는 '왕(王)')도 거대하다.

그러므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땅을 알아야 하고,
땅을 알기 위해서는 하늘을 알아야 하며,
하늘을 알기 위해서는 도를 알아야 하고,
도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그 거대함을 알아야 한다.

거대한 삶(Living from Greatness) - (나중에 이 거대함(greatness)이라는 표현을 위대함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볼 것.)

여러 세기에 걸쳐 도덕경에 대한 연구를 해온 학자들 가운데 많은 수는 이 25장을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 중에 하나로 생각한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장을 번역한 모든 작품은 실제로 묘사를 위해 '거대한(great)'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다.

이 장은 천지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형태가 없고 완전한 무언가"가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는 이 형태 없는 완전함이 "천지의 어머니"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비록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를 "도(道)"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한 "거대한"과 같은 뜻이다. 즉, 거대하지 않은 도의 안 에는 아무것도 없다. - 그 속에는 미약하고, 시시하고, 약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또는 심지어 보통의 것조차도 없다.

이 이야기는 독자가 이 땅 위에 있는 만물의 내면에 존재하고, 형태의 견고한 외관에도 오염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순수하고 무한한 에너지의 존재를 깨닫기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의 결말은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인 여러분을 향해 하나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 형태가 없는 완전함을 알기 위해서 여러분은 "자신 안의 그 거대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바로 이 놀라운 무용담의 주인공이다.

영원한 도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기에 이 이야기의 거대한 메시지는 여러분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라고, 그리고 그 삶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라고 손짓한다. 여러분은 노자가 들려준 이 비상한 관찰과 상반되는 생각과 사상을 고찰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는 역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켜왔다. 릴리안 스미스(Lillian Smith)에 1954년에 출판된 그녀의 책 "여정(The Journey)"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비록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삶의 매일을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보다 큰 무언가, 자기 자신보다 더 살아 있는 무언가, 그리고 더 나이 든 무언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언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무언가와 연결되는 것이다.(The need that one feels every day of one’s life, even though one does not acknowledge it. To be related to something bigger than one’s self, something more alive than one’s self, something older and something not yet born, that will endure through time.)

이 계속되는 "무언가"는 여러분의 거대함 그리고 무한함과 여러분이 온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뒷받침한다. 거기에는 거대함 그 자체인 상급의 짝과 영원히 조화를 이룬 느낌이 있다.

노자는 이 땅과 그 위의 사람들 그리고 하늘에 주목하고 그 거대함을 바라보라고 이른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 스스로를 보라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 모두의 한 구성요소임을 깨달아라. 즉, 여러분 안에 숨겨진 거대함을 발견함으로써 창조의 거대한 신비로 여겨지는 것들과 친구가 되라.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대함을 알아채는 기쁨을 누려라. 스스로의 "거대함이라는 유산"을 집요하게 꼭 잡음으로써 여러분은 언제나 존재하는 도가 의식적으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이다. 거대함의 관점에서는 여러분을 통해 오로지 거대함만이 나올 것이다; 내면의 열등함이라는 관점은(을 통해서라면 여러분은) 그러한 믿음에 걸맞은 사건들만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거대함을 교실에서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밖에도 도제 살이, 선생님, 악의 없는 가족들의 위로의 말들,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여러분의 거대함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한다. 여러분의 내면에 항상 흐르고 있는 거대함을 자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 그렇게 하기 위해 감사의 명상에 잠기는 순간들 속에서 그 거대함을 만나고, 그 반대의 관점들에 의해 좌우되지 말아라.

특히, 여러분 내면의 대화에서 비롯되는 중요한 의견들을 살펴보고 이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한 생각들이 마음 속에 떠오르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도록 내버려두라. 만약 그러한 그저 그런 관념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두면, 여러분은 항상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앙갚음은 없을 것이라고 믿을 시간을 그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기꺼이 여러분 내면의 거대함 속으로 녹아들 것이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도의 힘이 무서운 자기 비판의 방해를 받지 않고 흐르는 한층 거대한 총체(whole)에 참여하게 된다. 이 거대함에 다가감으로써 여러분이 살아가는 방식을 변화시켜라. 그러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이 문자 그대로 변화할 것이다.

다음은 노자가 2,500년 전에 이 글을 쓰며 여러분이 받아들이기를 원했을 생각들이다.

여러분 자신의 거대함을 믿어라.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차지하고 있는 몸이 전부가 아니다. 몸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것이 비롯된 미지의 장소로 돌아가는 중이다. 여러분은 순수한 거대함이다... 모든 생명을 창조한 바로 그 거대함과 정확히 같은 거대함 말이다. 여러분의 마음 속 가장 중요한 곳에 이 생각을 간직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창조의 힘이 스스로에게 끌어당기게 될 것이다: 적절한(right)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여러분이 바라던 바로 그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재정적인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이는 거대함이 자신의 더 많은 것들(more of it own self)을 스스로에게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마치 부적절한 생각들이 여러분의 현실은 온전치 못할 거라는 믿음에 따라 요동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물음에 다음과 같은 응답이 자동으로 튀어 나올 때까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다짐하라: 나는 거대함에서 비롯되었고, 거대함을 끌어당긴다. 내가 바로 거대함이다.

거대한 존재로써 여러분의 상태를 부정하는 생각들을 찾아라.

스스로가 평범하다는 생각을 나타내는 표현에 빠져있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라. 조용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 생각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라. 그 생각은 어쩌면 살아오는 동안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실망이나 고통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에는 그 생각도 항상 거대하다고 느끼길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 여러분은 스쳐가는 실망과 이 땅에서의 삶을 괴롭게 만드는 고통을 충분히 견딜 만큼 훌륭하다. - 그러나 거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여러분이 구체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라.(but trying to protect yourself by believing that you don't embody greatness is overkill)

이러한 그릇된 신념들을 찾아라. 그리고 그들에게 (and you)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 변모할 기회를 주라. 여러분이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거야." 대신에 "조만간 그렇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내면의 변화를 이루어내라. 그리고 나서는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이 정말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아주 작은 증거라도 찾는 과정을 시작하라. 이 고대의 격언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주 결정적이다: 그것을 원하거나 말거나,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내면에 자리한 거대함을 가진 것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운이 좋은 지 생각하라. 지금 여러분은 궁극적인 모순된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은 거대한 사람일 수도 있고 동시에 보잘 것은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다음 표현을 본떠서 여러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라: 나는 거대함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내가 시작된 근원처럼 거대해져야 한다. 나는 결코 나의 거대함과 다른 사람의 거대함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잘 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이고 이 문장들을 매일 읽어라. 이 문장들이 여러분 자신의 거대함에 대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오늘 여러분 내면의 거대함에 초점을 맞추고 10분간 명상을 해보라.




26장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이다.

이를 깨달아
성인은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
침착하고 집중한다;
비록 화려한 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어찌 나라의 군주로써
어리석고 경솔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이리저리 흩날리게 내버려두면
그 근본을 잃게 되고,
침착하지 못하면 군주의 도리(self-mastery, 자제심, 침착함)를 잃게 된다.

평온한 삶(Living Calmly)

도덕경의 이 장은 여러분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보더라도 침착함을 잃지 말라고 권한다. 또한 거기에 더해 진정한 성인은 고요한 상태에 머무르는 능력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비록 비난과 흠잡기가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의 감정과 행동은 여러분 자신의 몫이다. 환경이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을 결정하는 힘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혼란의 복판에 서있다 할지라도 평화로운 내면의 자세를 유지하면 여러분은 자신을 삶을 바꾸게 된다.

(도덕경의) 이 장이 품은 지혜는 여러분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물고 싶은가? 아니면 고요한 내면의 풍광을 갖고 싶은가? 이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이런 통찰로 무장한 도의 성인은 어떤 외부의 사건에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평온함이 부족한 것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여러분이 도달하고자 하는 존재의 상태로 여러분을 인도하지 않는다. 자제심(self-mastery, 군자의 도리)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을 깨닫고 책임질 때만 꽃을 피운다.

도덕경의 이 특별한 장은 아마도 여러분은 반복해서 빠져들고 싶어할 것이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여러분의 허락도 없이 여러분을 지배한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자유가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의기소침해 있는가? 짜증이 나는가? 실망하고 있는가? 기분이 들떠 있는가? 사랑에 취해 있는가? 현재 여러분이 어떤 상태이든 간에, 만약 변화하는 경제전망이나 주변에 일어나는 융단처럼 짜여진 사건들에 이런 상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 그리고 여러분의 내적인 마음 상태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외부 요소들을 사용한다면 - 여러분은 여러분의 뿌리와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왜냐고? 여러분이 스스로를 변하기 쉬운 환경의 바람 속에 "이리저리 흩날리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조급한 삶을 해결하는 처방은 고요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도의 한적함은 만물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란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도처럼 되어라. 노자가 이른다: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이다." 여러분은 매 순간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신의 후원자(host)가 되어 도의 고요함을 지닐 수도 있고 아니면 아수라장 같은 환경 속에서라면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여러분의 에고에게 인질이 될 수도 있다.

이 아주 간결한 장에서 여러분보다 2,500년이나 앞서 자신이 선택했던 아주 단순한 삶을 통해 노자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여러분 삶의 환경에 대한 고요한 내면의 반응을 찾겠다고 맹세하라.

어떤 종류의 조급함 가운데서도 - 논쟁, 교통 정체, 재정적인 위기 혹은 그 무엇이라도 - 여러분 자신의 고요한 중심을 찾겠다고 당장 결심하라.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는 대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비판하는 마음을 비워내면 정신적으로 "어리석고 경솔"해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조차도 고요함을 선택할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은, 특히 지난 번에 혼란과 분노를 선택했었다면 더욱, 여러분을 "조급함의 주인"이 되게 할 것이다. 나에게도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골치 아픈 상황 속에서도 내가 선택할 것은 도의 방식인 고요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분의 뿌리를 잃어버리지 말라.

집이나 직장에 선언의 문구나 그림을 전략적으로 놓아둠으로써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여러분의 뿌리를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라. 다음에 말하는 내용을 자주 다짐하라: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게 중심을 잡은 채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 번에 조급한 상황이 돌발하면 이 새로운 존재의 방식을 실천하겠다고 단언하라. 이 과정을 사전에 머리 속으로 따라 해보라.(Do the mental work in advance) 그러면 여러분은 이 장에서 노자가 말한 자제심(self-mastery)을 갖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궁극적인 소명인 도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조용한 공간에 앉아서 여러분과 오랫동안 대립해온 사람이 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 이제 크게 소리 내서 그 혹은 그녀에게 말하라. "당신을 용서합니다. 사랑과 빛으로 당신을 감싸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하면 고요함의 느낌이 살아나서 도덕경 26장의 메시지가 여러분을 위해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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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1:38:39 *.36.210.11
25장

거대하면 끝없이 뻗어 가고;
끝없이 뻗어 가면 영원히 흐르고;
영원히 흐르면 변함없이 돌아온다.

즉, 거대하지 않은 도의 안 에는 아무것도 없다. - 그 속에는 미약하고, 시시하고, 약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또는 심지어 보통의 것조차도 없다.

-->거대하지 않고는 도가 아니다. 거대하지 않은 도는 없다. 거대함(위대함/ 원대함) 속에는 도가 들어있다. 라고 생각하면?


26장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조용한 공간에 앉아서 여러분과 오랫동안 대립해온 사람이 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 이제 크게 소리 내서 그 혹은 그녀에게 말하라. "당신을 용서합니다. 사랑과 빛으로 당신을 감싸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하면 고요함의 느낌이 살아나서 도덕경 26장의 메시지가 여러분을 위해 작용할 것이다.


주원이는 참 좋겠다. 주원 엄마도 그리고 그대도 또한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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