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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02시 59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박병규 옮김, 민음사

I. 저자에 대하여

이번 과제를 하기 전까지 파블로 네루다 라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일까? 그라나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내가 왜 이런 분의 이름조차 몰랐을까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그가 지닌 세계사적 의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시대적 상황에 그는 정면으로 노출되 있었다. 그의 조국 칠례를 위해 그는 시를 썼고 투쟁했다.

워키백과 발췌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년7월 12일~1973년9월 23일)은 칠레의 시인이자 공산주의정치가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의 필명이지만 나중에는 실명이 되었다.

문학세계
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의 시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체는 매우 다양한데, 성적인 표현이 많은 사랑 시들 (흰 언덕 같은)과 초현실적인 시들, 역사적인 서사시와 정치적인 선언문들이 포함된다.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했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정치적인 행태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다.
1945년 7월 15일, 브라질상 파울루의 파깸부 운동장에서 그는 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혁명가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기념하는 낭송회를 가졌다. 노벨상 기념 강연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초대로 에스타디오 나시오날(Estadio Nacional:국립 경기장)에서 7만 명 앞에서 낭송회를 가졌다.


네루다는 생에 많은 외교관 자리를 역임했으며, 칠레 공산당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보수적인 칠레의 대통령 곤잘레스 비델라가 공산주의를 박해했을 때, 네루다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친구들은 몇 달동안 칠레의 항구 발파라이소의 한 집 지하에 그를 숨겼다. 그후 네루다는 산을 넘어 탈출하여 아르헨티나에 들어갔다.
반공주의자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암으로 입원한 네루다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피노체트는 좌파시인 네루다의 장례식을 공개거행할 것을 반대했으나, 수천명의 칠레사람들은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통행금지를 어기고 공개적으로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 네루다의 장례는 칠레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였다.
네루다라는 필명은 체코의 작가이며 시인인 얀 네루다에서 얻어졌으며, 나중에는 그의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13p

1. 시골 소년
하나는 수직으로 그러진 칼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새하연 웃음이었다. 20p

쭈그러진 회색 모자를 쓴 초록색 도토리의 매끈한 생김새에 감탄하고 있을 때나 빼앗길줄 번연히 알면서도 도토리로 파이프를 만들려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우박처럼 도토리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25p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25p

나는 뱃머리 근처에 앉았다. 증기선 수차가 물살을 가르며 돌고 있었고, 엔진은 헉헉거리며 한숨을 토해 냈다. 과묵한 남부 지방 사라들은 갑판 여기저기에 붙박이장처럼 앉아 있었다. 29p

내 관심사는 오로지 석양 무렵 대문을 박차고 나와 마을을 빠져나가는 커다란 말이었다. 31p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어둠과비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엎었다. 나 혼자였다. 수학 공책에 시를 썼다.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났다. 자두는 아직도 파란색이었다. 나는 소금 봉지를 들고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자두나무에 올라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자두를 한 입 베어 낸 다음 소금을 뿌려서 먹었다. 이런 식으로 백 개 정도 먹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먹었다. 35p

광활하고 무서운 개척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년 시인은 무척이나 고독했다. 35p

나는 타조처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집어삼겼다. 37p

길 한쪽 숲에서 개암나무가 인사를 했다. 윤기가흐르는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가끔 개암이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가 보였다. 그 계절이면 빨갛게 익는 개암은 마치 선홍색으로색칠해 놓은 듯했다. 38p

나는 고뇌하는 영혼처럼 좁은 길을 따라 갔다. 방금 깎은 손톱 같은 하얀 초승달이 떠올랐다. 40p

그때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이었으니 벌써 45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악의 꽃』을 품고 처녀림 한복판에 유배된 세 자매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오래된 포도주며, 스무 자루의 촛불이 찬란하게 빛나던 식탁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숲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집과 제재소는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잇을까? 43p

2. 도시의 방랑자

여자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고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에 못 본 척. 관심 없는 척 그냥 지나쳤다. 그렇다고 정말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등을 떠밀 사람이 없던 탓에 웃음은커녕 쳐다보지도 못하고 매혹의 언저리를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56p

아무도 없는 성당 저 위에서 환하게 타고 있는 촛불은 고인의 두 눈 같았다. 비록 심장은 영원히 꺼져 버렸으나, 봉헌물에 둘러싸인 고인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66p

우리는 가게에서 나왔다. 알바로는 헤어질 때도 사기가 충천해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75p

잔혹한 수줍음에 시달리던 나는 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산티아고에서는 새로운 문학 운동이 태동하고 있었다. 첫 시집은 마루리 거리 513번지에서 탈고했다. 매일 시를 두 편 이상 썼다. 76p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다. 특히 그날 밤의 열광도 불모의 꿈이었다는사실을 좀처럼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밤하늘의 별에 푹 빠져 버린 것도 저 남극 하늘의 폭풍을 내 감각으로 포착한 것도 다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실수를 한 것이다. 영감을 믿지 말아야 했다. 이성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좁은 길로 나아가야 했다. 겸손을 배워야 했다. 찢어 버린 원고도 많았고 다시 써야 하는 원고도 많았다. 이 원고는 10년 후에야 비로소 책으로 출판되었다. 80p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83p

뭐든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노래하는 것은 말(言)입니다. 음정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말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말을 사랑하고 말에 집착하고 말을 추적하고 말을 물어뜯고 말을 용해시킵니다. 그토록 말을 사랑합니다. 예기치 못한 말을 사랑합니다. 풀썩 쓰러질 때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말을 사랑합니다. 84p

3. 세계의 길

한참 앞뒤 없이 살던 그 시절, 우리는 항상 갑자기, 항상 새벽에, 항상 밤을 꼬박 새웠을 때, 항상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을 때, 삼등 열차에 몸을 실었다. 87p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고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예의를 갖춰 길거리까지 따라 나가 공손히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광주리를 들고 마차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중하게 앵무새와 칼을 넘겨주었다. 93p

이곳 사람들은 모두 지진을 기억하고 있다. 지진은 도시의 심장에 붙어 잇는 공포의 꽃잎이다. 94p

계단!
어떤 도시도 발파라이소처럼 계단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지 않는다. 어떤 도시도 자기 얼굴에 이처럼 고랑을 파 놓지 않는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내려가는 듯이 삶이 오가는 계단! 중간에 자주색 엉겅퀴 꽃이 피어 있는 계단! 아시아에서 돌아온 선원이 텅 빈 집이나 화목한 집으로 들어서는 계단! 술 취한 사람이 검은 유성처럼 떨어지는 계단! 태양이 언덕과 정사를 나누기 위해서 오르는 계단!
발파라이소의 계단을 전부 돌아다니면 세계를 한 바퀴 돈 셈이 된다. 96p

4. 빛나는 고독

해변을 채찍질하던 폭풍이 마침내 한풀 꺾였다. 파도는 내가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바다가 수천 개의 물거품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직도 가공할 만한 폭풍의 여파로 술렁대고 있다. 121p

간디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여우처럼 영리한 사람으로 실천적인 인물이다. 과거 라틴아메리카의 크리오요 지도자들과 유사한 정치인이며 쉴 새 없이 각종 위원회를 진두지휘하는 탁월한 전술가이다. 128p

잠을 자다가 가끔 불빛 때문에 눈을 떠 보면 모기장 바깥에서 유령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였다. 하얀 옷을 걸친 채 날이 선 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차마 나를 죽이지 못하고 밤새 침대 주변을 서성거렸던 것이다. 그녀는 “당신이 죽으면 내 공포도 끝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그녀는 내 변심을 막아 줄 신비한 의식을 올렸다. 135p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인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142p

4. 가슴속의 스페인

그런데 로르카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로르카는 또 다른 교살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스페인 내전은 한 시인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내 시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186p

커다란 쇠창살이 하나 보였다. 녹이 슬어 있었다. 부서진 동상과 기둥이 낙엽 더미 위로 뒹굴고 있었다. 그는 오래된 저택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드넓은 중세의 장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추운 새벽에 혼자 내버려졌다고 생각하니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다. 갑자기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섬뜩한 느낌이 나뒹구는 기둥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189p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209p

시는 언제나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 210p

두 시집을 형성하는 광맥은 지하 암반에서 캐낸 것이 아니라 온갖 책갈피 속에서 찾은 것처럼 보였다.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14p

한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지금, 그동안의 긴 여행이 헛고생이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새로 발견한 땅 위에 홀로 남게 되었다. 탄생의 순간처럼, 초기 시의 원천이었던 형이상학적 공포에 경악했을 때처럼, 내 작품에서 창조한 새로운 황혼을 어디로 들아갈 것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어디를 향해 침묵하며 또 어디를 향해 소리칠 것인가?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을 제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내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공허뿐. 228p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속 깊은 곳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 대기가 어두워진다. 가끔씩 인광과 공포로 충전된 번갯불이 환하게 빛난다. 명확한 언어, 진부한 언어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구조물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229p

7. 맥시코, 꽃과 가시의 땅

8. 암담한 조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뿌리 뽑힌 사람이 맛보는 좌절감은 어떤 형태로든 영혼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향 땅이 아니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발을 딛고, 내 땅을 만지고, 내 땅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의 물소리와 그림자를 느끼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자양분을 흡수하지 않을면 살 수가 없다. 255p

떠날 때가 임박했다. 산에는 곧 눈이 내릴 것이고, 또 안데스 산맥은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동료들은 매일 길을 찾아 나섰다. 말이 좋아 길이지, 사실은 오래전에 눈과 낙엽으로 뒤덮여 버린 오솔길을 찾아 나서는 탐험이었다. 기다림은 고문 같았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쪽 동지들은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74p

이제 우리는 강을 건너야 했다.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작은 물줄기들은 아래쪽으로 흐르면서 급류가 되어 어지럽게 소용돌이 치다가, 아득한 높이에서 거세게 떨어지는 폭포수로 변하여 땅과 바위를 부셔 놓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에 만난 물은 거울처럼 잔잔한 여울이었다. 278p

피카소는 당국자들과 대화하고, 많은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나 때문에 그리지 못한 걸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피카소의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은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285p

그러나 나무 뿌리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간과 습기와 이끼와 부단한 소멸의 과정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런 뿌리는 오솔길을 가로막고 우리에게 나무가 자라는 땅 속의 비밀을 들려주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질 수 있는 신비를 보여 주며, 식물 와국을 일으켜 세운 근육을 자랑한다. 무성한 이끼에 덮여 비극적인 생을 마치는 뿌리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조각품,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 291p

9. 망명의 시작과 끝

모스크바는 겨울 도시다. 아름다운 겨울 도시다. 첩첩이 겹친 지붕 위에 눈이 내려앉아 있다. 눈에 덮여 한결같이 정갈한 도로는 눈부시게 빛난다. 공기는 매섭도록 맑고 차갑다. 단단한 투명 유리다. 부드럽게 빛나는 강철, 깃털처럼 휘날리는 누발,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행인들. 이런 풍경 때문에 우리는 모스크바가, 어쩌면 살아 있는 듯이 보이고 어쩌면 환영처럼 보이는 이상한 장식품으로 가득 찬 거대한 겨울 궁전이라고 상상한다.
이 같은 영하 30도의 모스크바가 눈과 불로 이루어진 별처럼, 불타는 심장처럼 지구의 가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298p

입장이 난처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여사의 손에 쥐고 있는 담뱃갑이 보이는 게 아닌가. 물론 찾고 있던 그 담뱃갑이었다. 여사는 웃음을 되찾았지만 나는 몇 년 동안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문화대혁명 때 그 아름다운 담뱃갑을 빼앗겼을지도 모르겠다. 315-316p

나는 대서양의 잔물결을 바라보며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뱃머리 양쪽으로 하얗고 푸르고 누르스름한 물살이 갈라지자 바다는 포말을 일으키며 요동친다.
대서양이라는 문이 흔들린다.
그 문 위로 반투명한 은빛 물고기가 치솟아 오른다.
이제 망명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오랫동안 바닷물을 응시한다. 나는 이 물건을 건너 다른 무로 나아가고 있다. 내 조국의 격랑을 항해하고 있다.
긴 하루의 하늘이 대양을 뒤덮고 있다.
곧 밤이 다가올 것이다. 신비하고 거대한 초록색 궁전을 다시 한 번 어둠이 뒤덮을 것이다. 332p

10. 여행과 귀환

유치장을 나설 때 정복을 입은 교도관이 다가와 종이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었다. 나에게 바치는 시였다. 민중 예술품처럼 투박한 시였다. 나처럼 자기를 감시하던 교도관으로부터 시를 헌정받은 시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340p

내가 보기에 중국은 수수께끼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현재 강력한 혁명적 추동력을 얻고 있기는 하나, 이미 수천 년 동안 건설되었고, 항상 건설 중인 나라로 보였다. 인간과 신화, 즉 전사와 농민과 신들이 들락거리는 거대한 탑 같았다. 즉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웃음마저도 그랬다. 어떤 이는 작고 조야한 민화, 비록 원근법에 따른 모사는 부정확하더라도 거장의 경지에 근접한 민화를 찾아 사방을 뒤졌으나 헛수고였다. 중국 인형, 도자기, 석물, 목각품은 수천 년 된 모형을 재현하고 있다. 한결같이 완벽한 작품의 재현이라는 표시가 난다. 347p

내가 이런 중국과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마오쩌둥이 아니라 마오쩌둥주의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마오-스탈린주의, 사회주의 신에 대한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그 누가 위대한 조직가로서, 위대한 인민 해방자로서 마오쩌둥의 정치적 위상을 부정하겠는가? 내가 어떻게 마오쩌둥의 고전적이고 우울하고 시적인 소탈함이나 전설적인 후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53p

이제 우리 일행은 전설의 땅이자 힘겨운 노동자의 땅을 향해 날아갔다. 도착한 곳은 아르메니아였다. 멀리 남쪽으로 눈 덮은 아라라트 산이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바로 이 산에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다. 그리하여 지상에 다시 만물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용암대지이기 때문이다. 360p

11. 시는 직업이다.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잇는 특혜를 받았다. 보통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또는 대중 집회의 군중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이 시대와 직면해야만 했다. 375p

라페르테의 말이 떠올랐다. 이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한없이 쳐다보고 있는 무감각한 청중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가 라페르테는 초석 광산 지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저기 강당 뒤쪽에 있는 두 사람이 기둥에 기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말이야. 무슬림처럼 보이지 않아? 터번만 두르면 딱 용맹스러운 사막의 전사들이야.”
이런 청중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 관심을 가질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호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377p

내 이름과 시의 제목을 듣자마자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모자를 벗었다. 정치인들의 뻔한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내 시, 아니 시를 낭독하겠다니까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높은 연단 위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자들을 보았다. 잔잔한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난 듯 1만여 개의 모자가 일제히 파도를 일으키더니, 무언의 존경을 담은 검은색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시를 낭독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과 해방을 강조했다. 381p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당겨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를 다루었다. 구어도 색다른 맛이 있으나 문어 또한 예상 외로 맛깔스러운 면이 있다.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욱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 387p

얼마 전 내 작품에 관한 비평을 읽었다. 성직자이자 명석하기로 소문난 젊은 비평가의 글이었는데, 명석한 비평가라고 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평가에 따르면 내 시의 약점은 바로 행복감이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고통을 처방했다. 이런 논리라면, 맹장염을 앓가야만 탁월한 산문을 쓸 수 있고, 복막염을 앓아야만 숭고한 시를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라들 마시고 싶다. 392p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비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 393p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394p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시인들 가운데 한 국가나 한 언어권이나 전 세계의 계관시인으로 등극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선거인단이나 찾아다니며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을 음해하기 일쑤이니, 제대로 된 시가 나올 리 없다.
그러므로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95p

아내는 나처럼 시골 출신이다. 칠레 남부의 치얀에서 태어났다. 농부들이 만든 토기로 유명하고, 무서운 지진으로 악명 높은 고장이다. 『사랑의 소네트 100편』에서 아내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
어쩌면 그 시집은 아내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정의일지도 모른다. 삶과 땅이 우리를 만나게 했다. 406-407p

엘뤼아르 얘기를 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순간에도 원대한 시야와 깊은 통찰력을 지닌 파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 곁에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 411p

그가 저세상으로 가 버린 지금, 그의 고귀하고 당당한 침묵보다 더 강력한 침묵에 휩싸인 지금, 우리는 그가 여기에 없다는 그리움, 그 특이한 빛이 땅과 하늘에 묻혀 버렸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413p

솜이오 되르디는 젊지만 완숙한 시를 창작하므로 우리 시대가 주목해야 할 시인이다. 그의 시는 잔잔하고 투명하며, ‘황금모래 시장’이라는 칵테일처럼 우리를 취하게 만든다. 417p

나는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내 고향 아라우카니아의 나뭇잎으로 만든 향기로운 왕관을 드높이 쳐들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보낸다. 바람과 생명이 이 왕관을 살바도레 콰지모도의 이마 위에 내려놓기를 기원하면서, 그러나 이 왕관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초상화에서 흔히 보는 아폴로 신의 월계관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칠레의 숲 속에서 아직은 이름이 없는 나뭇잎, 남극 오로라의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다. 419p

우이도브로의 시는 수정 같다. 시 작품은 모든 면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매혹적인 즐거움을 담고 있다. 어느 작품에나 유럽적인 광채가 반짝이고있는데, 이는 우이도브로가 고갱이만을 뽑아내 지성과 미적 감각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수정처럼 세공해 놓았기 때문이다. 426p

많은 비평가들이 내 시를 연구하고 분석하기 위해 찾아왔으나 알론소만 한 사람도 없었다. 수많은 질문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나서 분명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그 당시에는 나 자신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초현실주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리얼리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시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들 반쯤은 옳고 반쯤은 틀렸다. 434p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나에게는 리얼리즘이 맞지 않으며, 적어도 시를 노할 경우에는 리얼리즘을 혐오한다. 그리고 시가 리얼리즘 이상이거나 리얼리즘 이하일 필요도 없으나 반리얼리즘이 될 수는 있다. 내가 말하는 반리얼리즘이란 모든 합리성과 비합리성, 다시 말해서 모든 시를 내포한다. 435p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436p

우울하지만 내 시집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거처』와 광범위한 공간과 빛이 넘쳐흐르는 『포도와 바람』 둘 다 어떤 면에서는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모순은 아니다. 437p

어떤 신문기자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해[1968년] 세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이순간, 1월 5일 아침 9시 20분. 전 세계는 장밋빛과 파란색으로 감싸여 있다고 봅니다.”
이 말에는 문학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주관적인 함의가 전혀 없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장밋빛 꽃이 만발한 화단이 눈에 들어오고 그너머로 태평양과 하늘이 파랗게 포옹하고 있어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440p

지금까지 내 견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 눈에 비친 스탈린은 어둠 위에 떠 있는 스탈린, 내가 전혀 알지 못한 암담한 폭정 위에 떠 있는 스탈린이었다. 이런 스탈린은 선량하고 원칙을 지키는 인물, 수도사처럼 소박한 사람, 러시아 혁명의 굳건한 수호자로 보였다. 게다가 커다란 콧수염을 기른 이 작은 사람은 전쟁을 치르면서 거인이 되었다. 붉은 군대는 스탈린의 이름을 외치며 히틀러라는 악마의 소굴을 분쇄했다. 473p

그날 밤 체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말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자기 운명을 암시한 듯하다. 나를 바라보던 체의 시선이 어둠에 물든 집무실 창으로 옮겨 갔다. 우리는 미국의 쿠바 침공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낮에 둘러본 아바나 시내는 전략적 거점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놓았다. 체는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전쟁, 전쟁...... 우리는 항상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데, 전쟁을 한번 치르고 나면 전쟁 없이는 못살아. 날마다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지.”
혼잣말인데, 나 들으라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 말에 경악했다. 전쟁은 위협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479p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나는 시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 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월트 휘트먼은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부가적인 요소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나 벌거벗은 창조 행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 495p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이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입으로 변모한다.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496p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496p


III. 내가 저자라면

파블로 네루다 처음엔 그가 오로지 시인인줄 알았다. 책을 읽기 전이었고 그에 대해 아는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본 그의 마지막 구절이 다시 떠올린다.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 496p
문학이 궁극은 사람을 향해 있는 것임을 다시 보았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고독과 군중은 무었이었을까?
그에게 고독은 시였고 군중은 칠례 민중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시로 그의 삶과 그리고 그 주변을 노래한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어찌도 한 인간의 삶이 이렇게도 복잡한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적 상황이 낳은 개개인의 삶은 그 시대가 낳은 또다른 단면이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이 책에서는 어두움을 느낄수 없었다. 힘겨움 속에서도 희망을 볼수 있었는데 그러함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다. 그것은 그가 가진 사상이었고 그는 끝까지 공산주의자로 살다가 그렇게 묻혔다.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공산주의자의 모습과 파블로 네루다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했을까? 아마도 그건 그동안 내 뇌리에 꽉 들어차 있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현기증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은 후 출판되었으며 그의 마지막 책이다. 저자의 유년시절부터 그가 고인이 되기 바로 몇일 전까지의 기록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참 사실적이다라는 착각이 들정였다. 이 내용이 사실이 나니라는 것이 나니고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제된 감수성으로 표현되는 문장 하나하나가 읽기에도 편했다. 마치 곁에서 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 같았다.

특히 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을 때면 그 부분을 읽고 또 읽게 되었다. 시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순하고 튼튼한 뿌리가 연상되었다. 군더더기 없이 묵뚝뚝한 뿌리위에 치장없는 장미 한송이.......

도서관에서 자서전만을 읽다가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시색이 너무나 궁금했다. 하긴 시인의 시도 한편 구경못한 상황에서 그의 자서전을 읽는 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이었다. 서재에서 어렵지 않게 네루다의 시집을 찾을 수 있었다. 참 독특했다. 이 독특함은 시가 현란하다는 것이 아니고 마치 이야기를 하듯 술술 내려갔기 때문이다. 뭔가를 꼭꼭 숨겨서 숨바꼭질하듯 하는 시가 아니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가 주는 영감은 볼수록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 이런 감탄사가 몇 번을 읽은 후에 찾아왔다.

책 제목에서 말해주듯 파블로 네루다 그의 삶은 사랑, 노래, 투쟁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그가 투쟁하는 정치가였다기 보다 온전히 시인이었다고 생각한다.

11장 시는 직업이다. 이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비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 393p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394p

책을 읽고 나서
간단히 말하면 글은 이렇게 쓰는거다라는 교본을 보는 듯 했다. 책의 구성은 큰 맥을 집으면서도 치밀했다. 시간의 흐름이 좀처럼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의 색채에 따라 다르게 구성한 면도 명도와 채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다가왔던 부분을 몇 번이고 되새겨 봐야겠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한권을 펴보지 않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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