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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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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09시 0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파블로 네루다 <본명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 네루다의 시 〈시〉의 앞부분 -

이 시는 평생 시인으로 살아온 네루다에게 있어서 시가 갖는 의미와 근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시는 그에게 있어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고, 본능처럼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러운 삶의 한 행위였던 것 같다.
그는 자연스럽게 시를 알았고, 그의 모든 감정과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쏟아붓고 표현해 냈다.과연 타고난, 본능적이라고 불리 수 밖에 없을 듯한 그의 인생은 달콤하기도 하며 쌉싸름한 초콜렛과 같았을 것 같다.

순수한 공산주의자
그는 의미가 퇴색되어 변질되어버린 공산주의라가 아닌 이론 자체를 믿고 따르는 순수한 공산주의자였던 것 같다. 처음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글을 읽고 강한 거부감을 느꼈으나 자서전을 통해 만난 그에게 공산주의는 내 동료, 친지, 연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의미했다. 초기 스탈린에 대한 그의 찬사가 후에는 후회로 물든 것은 물론 다양한 한탄들을 볼 때 그가 원하는 형태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순수함을 기초로 만들지는 유토피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정치색에 대해 그가 받는 비판들이 일부 비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자연을 사랑한 보헤미안
그는 칠레의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자란 곳은 그의 몸을 청년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그가 시인이 될 수 있는 감성적 자양분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의 해외 생활동안에도 그 지역의 자연을 감상하고 느끼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양한 지역의 자연은 그에게 시적 영감이었고 그의 시를 이루는 밑간이었다.

아이다운 천진함
그에게는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엿보인다. 그가 수집했던 조개껍질들과 그가 장난감이라 부르는 병속의 범선과 선수상들의 수집은 장난감 시리즈를 모아놓고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까지 저녁까지 논다. - 399p’
그의 시인으로서의 영감과 원천의 하나는 아이다운 천성을 가진 (내지 아이다움을 유지하고자 했던 의식적 노력)들의 결과물이 아닐까도 싶다.

한 시대를 참으로 찬란히도 살다간 그는 저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건달 및 노동자들에서부터 지적 완성을 이룬 유명인사들까지. 모두가 사랑하고 만나보고 싶어한 멋진 사람이었다.
이런 매력적인 그를 아직 시로서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기에 그의 시집들을 시작으로 그가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중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영화 ‘일포스티노’를 통해 매력적인 그를 제대로 탐방해 볼가 한다.

<약력>
- 출생 : 1904년 7월 12일
- 사망 : 1973년 9월 23일
- 출생지: 칠레
- 대표 작품 시집 : 황혼의 노래/ 무한한 인간의 시도 / 열렬한 투석병 / 지상의 주소 / 제3의 주소 / 커다란 노래 / 기본적인 오드 /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12p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p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1. 시골소년
16p 칠레의 숲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17p 남반구의 비는 지구력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25p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27p 기관사인 아버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4시에(왜 새벽4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p…

28p 야생초 향기를 풍기는 이런 역 이름을 발음해 보고 맛깔스러운 음절에 매료되었다.

33p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35p 나는 삶과 책을 통해 조금씩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로 나아갔다.

36p 아주 오래전, 어릴 적 일이다. 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자 적었다. 운율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깨끗한 종이에 정서할 때에도 설렘이라고 할까, 아무튼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깊은 불안, 일종의 고뇌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37p 파도가 바위에 부서졌다가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서는 짬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44p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 있다. 죽음과 망각

45p ..별들은 금방 비로 씻어 낸 것 같았는데..


2. 도시의 방랑자
49p 매년 12월 수학 시험에서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중등 과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겉으로는 산티아고 데 칠레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겉으로'라고 말한 이유는 머릿속이 온통 책과 꿈 그리고 벌 떼처럼 윙윙거리는 시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54p 나는 시골에 있을 때부터 몸에 익은 습관대로 살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 차를 끓여 마시며 매일 여러 편의 시를 썼다.

56p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66p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69p "이 철학서를 2월 24일 밤 루나 공원에서 나에게 야유를 퍼붓고, 또 나를 눅이라고 고함치던 4만 명의 개자식들에게 바친다." - 오마르 비뇰레 '소와 나눈 대화' 책에 대한 헌사

72p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단순하다. 이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 아무튼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내 시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더니만 이제는 나를 공격하고, 내 눈을 빼먹으려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분파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 침묵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76p “이런 가죽하고는 결혼할 수 없소”

77p 첫 시집!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

79p 나는 별을 보고 도취했다. 우주적,천상적 도취였다. 그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 없이 써 내려갔다.

80p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는 목가적이고 또 고통스러운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고뇌에 찬 청년 시절의 정열과 칠레 남부 지방의 거친 자연이 혼합되어 있다. 번뜩이는 우수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기쁨이 드러나 있기 떄문에 내가 아끼는 시집이기도 하다.이 시집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 강과 강어귀가 있다. 바로 임페리알 강이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는 산티아고의 로맨스이다. 학생들이 다니는 거리,대학,인동덩굴의 향기가 묻어 있다.

83p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떄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삶,기쁨,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3. 세계의 길
91p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98p 군대 막사와 같은 통일성이 아니라 약동하는 봄철의 다채로운 색깔과 시끄러운 소리로 이루어진 통일성이다.

118p 어디를 가든 내 꿈은 식물처럼 사는 것이다. 한곳에 눌러앉아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에...

119p 알바로는 아침이면 침대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안경을 콧잔등 위로 밀어 올리며 부지런히 타자기를 두들겼었다…알바로의 순발력,비판력,오렌지,정기적인 연락, 뉴욕의 아지트, 너무나 명쾌하게 보이는 혼란스러운 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명쾌한 글…


4. 빛나는 고독
121p 파도는 내가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바다가 수천 개의 물거품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127p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134p 어쨌거나 나는 잠시 들렀다 가는 식민지 관리와 함께 살려고 동양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오랜 정신을 경험하고, 불행한 인간 가족과 함께 살려고 온 것이기 떄문이다.

137p 페인트칠도 안 한 널빤지, 대나무 담뱃대, 중국식 사기 베개뿐이었다… 몽롱해진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 속이 텅 비고 온 몸이 나른해졌다.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도 한데 어우려져 느긋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

138p 눈을 반쯤 감고 섬세하고 감미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는 그 사람들은 바다 밑에서 한 시간 동안 지내는 꿈을 꾸거나 언덕 위에서 하룻밤 지내는 몽환에 젖어 있었다.

139p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 입는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

141p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 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142p 이런 고독은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독이 아니라 감옥의 벽처럼 단단한 고독이었다. 아무리 벽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고함을 치고, 아무리 울어도 달려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149p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


5. 가슴속의 스페인
188p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숙녀게 나이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205p 이런 가면은 혈혈단신으로 나를 분뇨 냄새,아편 냄새,땀 냄새, 진한 재스민 냄새, 프랑기파니 냄새, 길거리 과일 썩는 냄새로 반겨 주던 동양에서 가져온 유일한 기념품이었는데.. 사원 앞의 지순한 춤을 떠올려 주던 가면이었는데.. 신화로 채색한 나무 조각이었는데.. 아메리카 태생의 나에게는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꿈, 관습,악마,신비를 보여 주던 찬란한 신화의 산물이었는데…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209p 이념적 혼란과 무분별한 파괴를 목격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210p 그러나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 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 남아서 갓 씻은 해 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

215p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231p 멕시코는 진홍색과 번쪽이는 청록색이 어우러진 숄의 고장이다. 멕시는 막사발과 항아리의 고장이고, 곤충이 갉아먹은 과일의 고장이다. 멕시코는 노란 가시와 강철처럼 파르스름한 잎을 자랑하는 용설란의 고장이다.

233p 나는 지상의 다양성과 지구 곳곳에서 생산되는 다채로운 산물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254p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8. 암담한 조국
256p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이 집에 책을 쌓아 놓고 다시 고단한 삶을 시작했다.

262p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쳑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 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265p 칠레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낯부끄러워했으나, 왜 일이 이 지경으로 되었는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은 없었다. /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미국의 비호를 받는 흡혈귀 새끼가 되어 버린 것이다.

266p 우리 시인들은 본래부터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연기를 내뿜는 불길이다. 이러한 불길로 나는 창작에 전념했다.

281p 그 오두막 벽에 “조국이여, 잘 있거라.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항상 너와 함께하리다”라고 썼다.

286p 문든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기자 양반, 이렇게 쓰세요. 나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다른 칠레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이름 또한 파블로 네루다라고요."


9. 망명의 시작과 끝
300p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명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03p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몽둥이로 패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하라며 꽃다발을 건네준다.

313p 나는 꿈의 궁전에서 살듯이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았다. 싱가포르, 사마르칸드에 살 때는 지명의 발음을 음미하면서 살았다. 내 죽거들랑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 주기 바란다. 지면을 말할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내 유골 위에서 되울렸으면.

325p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


10. 여행과 귀환
341p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성당에 들어갈 수 있고, 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341p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354p 스탈린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며, 우리들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도 땅도 하늘도 광대한 이 혁명 중국에서, 그것도 대낮에, 한 인간을 신화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혁명적 의식을 독점하게 만드는 신화, 즉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한 사람이 손 아귀에 맡겨 버리는 신화였다.


11. 시는 직업이다.
375p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378p 이처럼 냉대와 열광을 한꺼번에 경험한 뒤에 달라지지 않을 시인은 없을 것이다.

386p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그런데 시인을 위한 시집 출판은 나를 자극하거나 유혹하거나 도발하지도 못한다. 그럴 바에는 출판사고 책이고 모두 버리고 파도나 바위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다.

389p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391p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392p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존재,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 / 오랜 세월 변함없는 애정으로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해 온 장인으로서의 자만심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394p 피와 한숨 그리고 있는 지식과 없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결정한다. 이 모두가 시라는 빵에들어 가는 것이다. /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395p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96p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399p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까지 저녁까지 논다.

406p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지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407p 내가 쓴 것,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아내에게 바친 것이다. 많지는 않으나 아내는 행복해한다.

420p 나는 지금 인간과 작품을 이어 주는 실마리, 안내자, 혹은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로 내 주변 사람들 얘기를 하고 있다.

435p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나에게는 리얼리즘이 맞지 않으며, 적어도 시를 논할 경우에는 리얼리즘을 혐오한다. 그리고 시가 리얼리즘 이상이거나 리얼리즘 이하일 필요도 없으나 반리얼리즘에 될 수는 있다. 내가 말하는 반리얼리즘이란 모든 합리성과 모든 비합리성, 다시 말해서 모든 시를 내포한다.

435p 창조의 영역을 이처럼 반반으로 나누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심장은 반 토막 나 버려 더 이상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436p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445p 우리 집에 있는 늙은 용설란은 자살하고 싶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474p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다.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495p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사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496p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3. 내가 저자라면
‘하늘에서 줄줄이 떨어진 긴 유리 바늘은 지붕에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유리창까지 차오른 물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 집들은 겨울 바다에서 간신히 항구로 대피한 선박처럼 보였다.- 17P’ ‘
네루다가 묘사하는 그의 유년 시절의 기억중 그 지역의 어마어마한 비의 묘사들로 시작한 부분들은 비가 오는 화요일 아침. 통근버스에서 앉아 차분히 네루다를 만나기 시작하는 나와 더욱 친밀한 감정의 소통을 만들어 내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 했다.

네루다는 그의 자서전 한권을 시로 채운듯 하다.
평범한 일반적인 형태의 자서전이 아닌 다양한 소 제목들을 붙인 한편의 시를 자서전으로 만들어 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만큼 그가 써 내려간 자서전 속의 내용들은 시적이고 풍성하다. 또 다른 형태의 자서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이 자서전은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순차적인 방식의 사건 중심 나열이 아닌 어느정도 큰 흐름의 시간을 따르되 그에게 인상적이었고, 또 음미하고 픈 장면들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그만큼 세세하고 자세한 그의 역사와 연보를 줄줄 꾀차기는 어렵지만 ‘네루다’ 라는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구조가 아닐까싶다. 어쨌든 그에 대한 대략의 정보를 모르고있다면 사실 이 자서전으로 그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부 확인하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뒷편에 실린 그의 연보가 설명을 덧붙여 주고 있어 충분히 자서전이라고 불릴만한 멋진 한권의 ‘자서시’ 가 탄생했다.

이 자서전에서 만난 네루다는 감성이 여리고 따뜻하며 가끔은 악동 같기도 한 자연을 사랑한 보헤미안 같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해,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자연’이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묘사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자연은 그의 자서전 곳곳에 나타나있다.
‘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 25p ‘
‘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중략)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속에 남아 있다. - 33p ’

즉, 누구가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네루다를 키운 건 ‘8할이 자연’같다.

그는 과연 시인다운 감성과 면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 야생초 향기를 풍기는 이런 역 이름을 발음해 보고 맛깔스러운 음절에 매료되었다. - 28p ‘
‘ 나는 별을 보고 도취했다. 우주적, 천상적 도취였다. 그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 없이 써 내려갔다. - 79p ’
라고 묘사한 것들을 보면 시인은 과연 타고나게 세밀한 촉각을 가진 인간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에게 시는 창작의 고통으로 태어난 산고의 결과가 아닌 그 스스로가 노래하고 싶고 표현하고 남은 물건이 아닐까 싶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낸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작가들이나 유명 예술가들이 자신의 색을 드러나는 것에 대해 꺼려하는 분위기들을 볼 때 대단히 신선하기도 하며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정치는 자신의 시와 삶을 일구는데 한 부분이었다고. 그에게 정치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감성과 같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문제인식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떄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 83p ‘

그의 자서전을 읽다보니 과연 한 사람이 위대한 ‘시인’으로 불리기까지의 철저한 내면적 여정이마음으로 읽혀진다. 젊었을 때 그는 ‘수줍음 많다’는 자신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류의 친구들과 함께 젊은 객기 내지 한량스러움을 맘껏 발산한 악동이기도 했다. 그가 외교관이 된 과정이나 외교관 초기의 모습들을 볼땐 철 없는 청년의 한량스러움의 발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나 그러한 낯선 타지 생활을 통해 그는 좀 더 자신 다운 진실한 내면으로 집중하고 천착할 수 있었고, 주변의 환경과 문제 인식을 통해 한층 성숙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어쩃거나 나는 잠시 들렀따 가는 식민지 관리와 함께 살려고 동양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오랜 정신을 경험하고, 불행한 인간 가족과 함께 살려고 온 것이기 떄문이다. - 134p ‘
‘ 나는 지상의 다양성과 지구 곳곳에서 생산되는 다채로운 산물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 233p ‘

그에게 외교관으로서의 해외 생활은 이후 단순한 생계수단 내지 취미의 수준이 아니었다. 얼렁뚱땅 시작한 외교관 생활은 그에게 자신을 탐구하고 연마하는 데 좋은 자양분을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자서전에는 많은 인물들이 출현한다. 이국적인 나라의 이국적인 비슷비슷한 이름으로 굉장한 혼동을 주기도 했지만 확실한 건 그에겐 ‘조력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가 ‘시인’으로서의 대단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밑바탕이 된 외교관으로서의 첫발도 조력자를 통해 쉽개 내딛을 수 있었고, 그의 위험한 정치 활동들에 있어서도 수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다양한 성공과 경험을 충분히 마치고 70살이 되는 해에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그의 조력자들만을 두고 봐도 과연 한 시대를 살다간 문학 속 영웅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자서전을 읽다보니 나와 생일이 같다.
왠지 나에게 무언가를 암시하기 위해 내 눈앞에 뚝 하니 떨어진 시인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곧 다가올 내 생일에는 그의 대표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나 스스로에게 선물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샘 날정도로 부러운 ‘네루다’씨의 감성과 편안하고 다정하며 때론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그의 표현력이 들러붙기를 기대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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