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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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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11시 56분 등록
인트로

파블로 네루다, 그가 내 인생에 걸어들어온 건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한 편을 통해서다. 네루다가 망명지 카프리섬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이태리 시골 우체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네루다의 처연한 심정 너머로 펼쳐지던 시 한편,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로 시작하던 그 ‘시(Poetry)’는 느닷없이 내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오래도록 머물렀다.

책을 펼쳤다. 이미 내 안에는 뜨겁게 한 시대를 살다간 시인에 대한 존경과 흠모, 그리고 지극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시인 다운 언어들로 벼려진 첫 페이지, 역시 인트로부터가 다르다. 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는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고 적고 있다. 그의 자서전은 시인의 회상으로 시인이 살아간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 명멸하는 환영들을 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잠깐만, 이 책에서 ‘죽음을 맞아 노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과,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게 될 포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 전에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건 어떨까. ‘성지’를 감싼 넝쿨 숲에 불경스럽게 발 먼저 불쑥 들여놓고 싶지 않다. 그래 일 포스티노 영화를 한 번 더 보자, 그런 다음 그를 만나러 그의 영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보는 게 아니고, 노트북에 다운 받아 보는 것이니 맘에 드는 대화가 나오는 장면은 다시 돌려 그 내용을 음미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분명 네루다 보다는 우체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네루다 스피릿에 젖어보려던 애초의 의도는 잊고 나 역시 마리오를 주시한다. 그의 답답한 연기. 말 하는 것도 답답하고 구부정한 어깨로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도 답답하고, 낡고 볼품없는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해안 도로를 덜덜거리며 달리는 모습도 다 답답하다. 베아트리체를 보고 넋만 놓고 한 마디도 못하는 모습도 답답하다. 온통 답답해 죽겠다. 어깨 좀 한 번 쭉 펴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하는 걸 좀 봤으면 좋겠는데 영화가 다 끝나도록 그는 끝내 세련되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답답함이 그의 순수함이고, 시가 살아나는 터전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나는 막 울었다. 끝내 피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시위 군중에 밟혀 죽어버린 그가 답답해서 울었고, 그가 만들어낸 시심이 묘하게 교차하는 영화라는 공간 안에서 너무 슬프도록 아름다운 희망을 보고 울었다. 그 희망은 그의 어린 아들 파블리코의 눈 안에 있다. 그는 애비 없는 아이로 가난하고 희망 없는 이태리 시골 바닷가에서 그 애비가 그랬듯이 척박하고 희구할 것이 없는 어부의 삶을 숙명처럼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애비가 남긴 시와 시심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삶의 긍정인 것이다.

나는 영화 한편을 보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막 넘나들었다. 내가 허구라는 사실을 잊고 그토록 가슴 깊이 고통을 느꼈다면 그것은 마리오를 연기한 마씨모 트로이시라는 배우 때문이다. 그 어줍음이 연기라면, 그는 천재이다. 그래서 그렇게 일찍 죽었는가. 영화 마지막의 그의 죽음은 며칠 후에 바로 닥칠 실제 죽음의 예행연습이었는가. 그는 극심한 심장병을 앓으면서 이 영화에 몰두했다. 영화를 위해 목숨을 가까스레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재처럼 폭삭 가라앉았다. 한때 작업을 함께 했던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과 나중에 한 번 더 같이 작업하자는 약속을 한 적이 있었는데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불타는 인내심>을 보고, 그가 먼저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까지 가까이 왔는데도 그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자신의 유작을 남긴 것이다.

아직도 내 머릿 속에는 여러 장면과 대사들이 흘러다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이 영화의 마리오는 다름아닌 네루다인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네루다의 시 한 편. 네루다는 둘이 자주 찾았던 카프리 섬의 바닷가에 서 있다. 연락도 없이 무심했던 그가 카프리를 찾았을 때는 이미 마리오는 그곳에 없었다. 포말이 부서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진정한 시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네루다의 얼굴 위로 그의 시가 펼쳐지고, 그 시 속에는 마리오가 선연하다.

나는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순수한 지혜/그리고 나는 문득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파도소리,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소리,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소리, 교회의 종소리, 아내 뱃 속에서 아이의 심장이 뛰는 소리…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네루다를 위해 고향의 아름다움을 소리에 담는 마리오는 영락없는 시인이다. 그의 시가 심원한 자신의 존재와 만나는 순간, 그는 현실을 저항할 힘까지 얻는다.

아, 에머럴드 빛으로 출렁이는 카프리 섬 바닷가를 처연히 걷고 있는 네루다 얼굴 위로 한 점 더럽힘도 없이 순수히 시에 다가갔던 마리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제 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And it was at that age...Poetry arrived/ in search of me. I don't know, I don't know where/ it came from, from winter or a river/ I don't know how or when/ no, they were not voices, they were not/ words, nor silence/ but from a street I was summoned/ from the branches of night/ abruptly from the others/ among violent fires/ or returning alone,/there I was without a face/ and it touched me.

다시 책을 펼친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카프리 섬은 네루다가 자란 칠레 남부의 숲이고, 마리오의 시 속에 스며든 카프리 섬의 모든 숨결은 네루다의 시 속에 스며든 칠레 자연의 숨결이다. 그들에게 고향의 자연은 마르지 않는 시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그 땅과 숲, 바다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노래했던 것이다.


2. 마음에 들어온 글귀

16. 칠레의 숲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삶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56. 수줍음이란 마음이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이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66. 광기와 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성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정의의 근간인 이성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77.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빳빳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낸 저 순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가는 듯한 저 황홀한 도취의 순간,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꽃봉오리를 응시하는 그런 환희의 순간은 시인의 일생에서도 단 한 번밖에 없다.

83.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84. 우리말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말은 이 야만적인 정복자들의 장화 밑바닥에 박혀있던 조약돌처럼 수염에서, 투구에서, 편지에서 떨어졌습니다. 지금 그 빛나는 말이 여기 남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패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였습니다. 저들은 황금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황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127.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179. ‘에르난데스, 드디어 직업이 생겼어. 자작이 자네에게 한자리 주겠대. 이제 아주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거야. 원하는 자리가 뭔지 말해 봐. 그래야 임명을 하지.’ 에르난데스는 생각에 잠겼다. 때 이른 주름살이 깊이 파인 얼굴에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몇 시간이 지난 오후에야 그는 대답을 주었다.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은 사람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마드리드 근처에서 염소 데를 키울 수 있게 해줄 수는 없을까?’

186. 로르카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날수가 없었다. 로르카는 또 다른 교살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스페인 내전은 한 시인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내 시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195.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를 요동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

209.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210. 시는 언제나 평화적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그러나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

214. 이제 우울한 시는 쓸 수 없었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우수에 찬 주관주의나 <지상의 거처>에 담긴 고통스러운 애상은 막을 내렸다…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15.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는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글라네그라에의 거친 해변과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228.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강렬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을 뿐이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았으니 텅 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비참한 모습의 공장을 둘러보았으나 지붕 밑에서,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228.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고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228. 내 시에서 가장 신비한 재료로 만든 새로운 대륙이 솟아나고 있다. 나는 이 대륙에 정착하고, 이 대륙에 이름을 붙이고, 신비한 해안선을 만져보고, 파도를 잠재우고, 동물들이 사는 땅을 둘러보고, 지형을 측량하는데 어둡고 고독하고 아득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257. 지금 이야기하려는 일이 있은 지 몇 년 뒤, 나와 인터뷰한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이탈리아 소설가)는 신문 기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칠레 시인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아니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262.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았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262.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

272. 칠레에서는 하찮은 돌멩이까지도 내 목소리를 알아먹는다…무성한 숲과 호수의 화산과 밤을 손아귀에 집어 넣은 빗줄기는 이 인간의 은신처가 다른 법을 따르고 또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격노한 나머지 계속 공격해 댔다.

298. 문학에서 새로운 형식, 즉 기존 형식의 혁신은 관습적인 틀을 넘어서거나 깨뜨려야 한다. 하지만 문학이 어떻게 철저하고 광범위한 혁명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민중들이 경험한 승리, 갈등, 인간적인 문제, 풍요, 진보, 성장을 핵심적인 주제에서 제외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잔인한 침략자들에게 짓밟히고 집요한 식민주의자들과 온갖 종류의 우민화를 자행하는 세력에게 포위된 저 소련의 민중들과 연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문학이나 예술이 이처럼 본질적인 사안을 외면하고 공허한 자율성만을 고집해도 된다는 말인가?

300. 작가의 작업도 저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41. 나는 파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 역시 그 누구도 파문시키지 않을 것이다…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또 대다수 사람들이 읽고 듣고 번영하기를 바란다.

342. 나는 지금까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우리는 인류애라는 숭고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 어떤 시련도 이런 희망을 꺾을 수 없다.

354. 스탈린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며 우리들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땅도 하늘도 광대한 이 혁명 중국에서, 그것도 대낮에, 한 인간을 신화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혁명적 의식을 독점하게 만드는 신화, 즉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를 한 사람이 손아귀에 맡겨 버리는 신화였다. 나는 이처럼 쓰디 쓴 약을 두 번씩이나 삼킬 수는 없었다.

375.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나는 칠레 구석구석을 다니며 동포들에게 내 시를 뿌렸다.

377-378. 버려진 영혼들이 시에 젖고 있었다..사람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이런 걸 경험한 뒤에 달라지지 않을 시인은 없을 것이다.

387.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

388.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 도움을 준 시인이 바로 맨하튼에 살던 월트 휘트먼이었다.

391.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그러나) 시인의 자부심은 보여주고 싶다…적어도 몇몇 작들은 신성한 노동으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다.

392.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
394.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399.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

411. 인생이란 동반자가 필요해. 자질구레한 인생사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말이야.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 숨통을 조르는 것 같아. – 엘뤼아르

419. 나는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내 고향 아라우카니아의 나뭇잎으로 만든 향기로운 왕관을 드높이 쳐들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보낸다. 바람과 생명이 이 왕관을 살바토레 콰지모토의 이마 위에 내려놓기를 기원하면서. 그러나 이 왕관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초상화에서 흔히 보는 아폴로 신의 월계관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칠레의 숲 속에서 아직은 이름이 없는 나뭇잎, 남극 오로라의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다.

436.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446. 사실, 이 땅에서, 이 땅이 부르는 노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피와 이름 모를 꽃이다.

495.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를 바란다 – 월트 휘트먼

496.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나는 군중이란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506. 낯선 식물이 도시의 담벼락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증오의 이끼였다.

517. (아옌데)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 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3. 내가 저자라면

자서전에 대한 관심

자서전을 한 번은 꼭 쓰고 싶은 나에게 기존의 자서전들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난중일기를 비롯, 백범일지, 라즈니쉬, 그리고 이 책이 우리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자서전이고, 개인적으로 오노요코 자서전과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올해 따로 구입했다. 그 동안 읽어본 자서전들은 ‘내 책’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었고, 또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부터 읽는 책들이 중요하다.

먼저 자서전을 어떤 형태로 쓸 것인지 글의 구성을 눈 여겨 보고, 문체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도 고민해본다. 시적인 은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해 디테일보다는 한편의 아프고 행복한 시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할 것인지, 아니면 비교적 사실 위주의 디테일로, 논픽션이 갖는 날 것의 감동을 더 우선할지…그리고 배열은 시간 순서대로 할 것인지, 몇 개의 커다란 카테고리를 정해 주제별로 배열할 것인지, 혹은 액자 소설처럼 시간을 넘나들며 전개할 것인지…

이런 관심 속에 이 책을 읽었다. 노벨상을 받은 대 시인답게 그는 자서전 한 권 곳곳에 많은 감동을 숨겨두었다. 그는 노벨 평화상도 함께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자서전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인간과 시의 승리,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민중의 편에 서려고 했던 한 인간의 진정성이야말로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 ‘살바도르 아옌데’ 편에서 그는 '이 회고록의 몇 줄을 위대한 동지 아옌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있은 지 3일 후에 서둘러 쓴다’고 밝히고 있다. 아옌데 정권은 그가 민중과 함께 한 긴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권은 너무나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 세력의 공습으로 불꽃과 화염에 휩싸인 왕궁에서 망명을 거부한 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옌데와 함께,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던 네루다의 생의 의지도 꺾여버렸다. ‘저들은 또 칠레를 배신했다’로 자서전의 마지막 문장을 마감한 그는 그로부터 9일 후 아옌데를 따라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1973년 9월 23일의 일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정서의 원천

아메리카 대륙, 칠레 남부 황량한 테무코에서 가난한 철도 기관사의 아들의 태어나, 바로 어머니를 잃은 그를 그토록 사랑받는 시인으로 키운 힘은 무엇일까. 열 아홉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해 40여권의 시집, 3500 여편의 시를 불꽃처럼 터트린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책을 읽으면 그의 시가 다루지 않은 영역은 없어 보인다. 애정, 환상, 자연, 인간, 민중 등 저항시와 연애시를 동시에 쓸 수 있었던 그 정서의 토양은 무엇이었나. 자유롭고 분방하고, 아름답고 싱그럽고, 거침이 없고 사려 깊고, 활화산의 불이 뒤엉키듯 독하고 강렬하고 관능적인 시어가 뚝뚝 떨어지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나. 그의 작업장 용광로를 붉게 타오르게 만든 비밀의 재료들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탱고가 대변하는 남미 특유의 색깔인가, 정열의 남미 예술의 페이토스인가.

책의 독특함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남미 특유의 정서에 빚지고 있을 것이기에, 내가 이 책에서 호흡한 공기와 냄새는 남미의 것임이 틀림없다. 네루다가 끊임없이 노래한 영감의 원천은 의심할 바 없는 칠레의 대자연이다.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그의 시에서 조차 자연은 은유로 함께 한다. 일상적인 사물의 소박함을 노래한 시에서 조차 텁텁한 남부의 흙 냄새와 각종 나무와 꽃들의 그림자가 어려있다. 아직 위대한 시인이 아니었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시속에는 남부의 자연이 근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타고난 보헤미안이었다. 그가 평생 세상을 떠돌아 다닌 것은 단지 직업적인 이유 뿐만은 아니다. 그의 보헤미안 기질은 여성과의 사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밀집 더미 위에서 멋모르게 나눈 16살 풋내기의 하룻밤 사랑을 시작으로 그는 실로 다양한 여인들을 품에 안았고, 3번의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연애시에만 머물지 않고, 민중에 대한 고결한 사랑의 시로 거듭났다. 그는 한 평생 시로 민중들을 위무했으며, 그의 시는 그들이 싸울 투쟁의 칼이 되어 그들 곁에 머물렀다.

번역자 박병규

고려대 서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멕시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그간, 보르헤스의 <허구들>,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 로아 파킨스 사모라의 <마술적 사실주의> 등을 번역하였다.

이 책 번역은 참 훌륭하다. 옮긴 이의 언어 구사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책인데, 네루다의 시적인 글의 맛을 한국어로 참 잘 살렸다. 번역서라는 느낌 없이, 마치 우리 책을 읽듯이 편안히, 술술 읽힌다는 것이 놀랍다. ‘옮긴 이의 말’에서이 책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에서도 그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박사학위가 절대적으로 값을 하는 번역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바치는 헌사

네루다 자서전 속에는 다양하고 많은 시인들과 문학가, 혁명가, 독재자,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유명 예술인들도 많고,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 많다.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작은 단편처럼, 나름의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아름답고 치밀한 언어로 쓰여져 있다. 각각의 글은 그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참으로 깊은 애정의 헌사이자, 유머와 인간미가 가득 넘치는 감동적인 송가이다. 여기 몇 개 소개해 본다.

슬픔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네루다에게 스페인 내전은 36년 7월 19일 밤에 시작되었다. 그날 밤 그는 로르카와 마드리드 프리세 경기장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로르카는 끝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때 암살을 당한 후였다. 그에게 스페인 내전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한 시인의 피살로부터 시작되었다 로르카의 죽음은 스페인 내전 기간에 네루다가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의 시는 그 시점으로부터 저항시로 성격을 바꾸었다. 그때까지 그는 세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보았으니 텅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탄환이 로르카의 가슴을팍을 뜷고 나가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에서 음악대신 피가 솟구치고,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거리에서 그의 시에 새 뿌리가 생겨나고 그는 다름 사람들의 길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남부의 고독에서 북쪽의 민중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그것은 절친했던 친구의 웃음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만든 전쟁의 횡포에 대한 항거였다.
로르카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우아한 기품과 천재성, 뜨거운 가슴과 맑음 폭포수가 완벽하게 결합된 시인이었다. 가슴에 모아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 로르카는 언제나 웃었고 노래했고 악기를 연주했고, 창조했고, 번뜩이는 재치로 사람들을 웃겼다.
‘이봐’, 로르카가 네루다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
‘저 창문 보이지, 초르파텔리코하지 않아?’
‘초르파텔리코가 무슨 뜻인데?’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초르파텔리코한 것과 아닌 것쯤은 알아야지, 저 개좀봐, 정말 초르파텔리코하군!’

우정어린 것 – 살바토레 콰지모토
코지모토는 이탈리아 문단의 중심에 있는 시인으로 유럽인다운 학식과 균형감각, 지적인 무기를 적절히 활용한다. 고전주의를 계승한 현대의 유력한 시인이라는 그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투적으로 대립하는 동서 진영의 경계를 지우고 누구나 시, 자유, 평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현대인의 지고한 의무라고 믿는다. 그의 시에는 애잔한 세계의 색채와 소리가 섞여있다. 네루다는 이 시인의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시 세계를 사랑한다. 미의 전통을 완전히 용해시켜 진실하고 감동적인 시어로 변모시키는 그의 시적 능력을 흠모한다. ‘나는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내 고향 아라우카니아의 나뭇잎으로 만든 향기로운 왕관을 드높이 쳐들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보낸다. 바람과 생명이 이 왕관을 살바토레 콰지모토의 이마 위에 내려놓기를 기원하면서. 그러나 이 왕관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초상화에서 흔히 보는 아폴로 신의 월계관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칠레의 숲 속에서 아직은 이름이 없는 나뭇잎, 남극 오로라의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다.’

매우 시적이며 감동적인 것 – 미겔 에르난데스
마드리드 주재 칠레 영사로 발명을 받은 1935년, 그는 그곳에서 많은 스페인 시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알베르카와 로르카를 통해 알게된 젊은 시인 중에 미겔 에르난데스가 있었다. 그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그가 농부들이 입는 골덴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고향 오리우엘라에서 갓 올라왔을 때였다. 그는 흙냄새 물씬 풍기는 농부였다. 얼굴을 보면 아직도 신선한 흙냄새를 풍기는 감자나 흙덩어리 생각이 났다. 그는 마치 다듬치 않은 돌처럼 순수한 숲과 굽이치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에서 솟아나온 작가였다. 잠든 암염소의 배에 귀를 대어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도 애기해 주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젖통으로 젖이 흘러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르난데스는 네루다가 발행하는 <초록말>잡지에 찬연하고 생동감 넘치는 시를 발표했지만 당시 생계가 막연했다. 네루다는 마침 외교부의 고위 관료에게 그의 일자리를 부탁해 두었다. 고위 관료는 에르난데스의 시에 매료되어 기꺼이 도와주겠으니 원하는 직책만 알려달라고 했다. 들뜬 네루다는 그 소식을 에르난데스에게 급히 전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인생의 답을 찾은 사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마드리드 근처에서 염소 떼를 키울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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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섬의 망명, 델리아 델 카렐

가장 그에게 영향을 미친 20년 연상의 두번 째 부인, 델리아 델 카렐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궁금했고, 그래서 그 부분을 기다렸는데, 오다가다 만난 여인들과의 하룻밤 사랑까지도 양념처럼 놓치지 않고 기술하면서 가장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그녀에 대해서는 정작 왜 그리 말을 아꼈는지 모를 일이다.

‘일 포스티노’의 배경이 되었던 카프리 섬에서의 망명 생활에 대한 언급을 본문(324-325 PP)에서 잠시 볼 수 있다. 그가 묵은 저택은 카프리섬의 절반을 소유한 역사가 에드윈 체리오의 별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이 사랑하게 된 마틸데와 오붓한 생활을 즐겼다. 오전에는 내내 시를 쓰고 마틸데는 오후에 타자기로 그것을 옮겼다. 아름다운 카프리의 자연과 함께 그들의 사랑은 익어갔다. 그곳에서 정열적이고 고통스런 사랑의 찬가인 <대장의 노래>가 완성되었고, 그것은 나폴리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그 시집은 남몰래 키워온 사생아 같은 시집이었다.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른 마틸데와의 관계 때문에 그 무렵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델리아 델 카릴이 상처를 받을까봐 그는 굳이 익명을 고집한 것이었다.


시의 힘, 몇가지 에피소드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네루다 시대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가 있었다. 그는 칠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포들에게 그의 시를 뿌렸다. 시는 곧 힘이었다.

1. 산티아고의 베가 센트럴 시장에서의 시 낭독회, 처음엔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던 검고 시들한 눈동자의 노동자들은 <가슴 속의 스페인> 시를 한 편 한 편 낭독하자 그의 시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그의 시에 감동하였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눈시울이 젖은 그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거리로 나왔다. ‘이런 민중의 열광을 경험한 뒤에 달라지지 않을 시인은 없다’고 네루다는 적고 있다.

2. 이탈리아 출신의 혁명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였던 티나 모도티는 러시아 기념물을 촬영하러 갔다가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는 그곳 사회주의자들에게 감동하여 공산당이 되었다.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 청년 지도자와 결혼한 그녀는 지병인 심장병도 숨겨가며 혁명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로부터 12년 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언론은 선정적인 기사로 그녀를 매도했고, 죽은 동료의 이름을 더럽히는 언론에 분노한 네루다는 ‘티나 모도티는 죽었다’는 시를 써서 일간지에 실었다. 그 이후 멕시코 언론은 티나를 모독하는 기사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3. 칠레 로타 지방에서 약 1만 명의 광부들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먼저 정치인들의 지루한 연설이 시작되었다. 연단에 앉아있던 네루다의 눈에는 광부들의 헬멧과 검은 모자만이 보였다. 그는 마지막 연사였다. 마침내 그의 이름과 시 ‘스탈린그라드에 바치는 새 찬가’가 소개되자 사람들은 조용히 모자를 벗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자들을 보았다. 잔잔한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난 듯 1만 개의 모자가 일제히 무언의 존경을 담아 검은색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사라지는 풍경은 그에게 벅찬 감동을 안겼다.

4. 젊었을 때, 탱고가 유행하고 건달이 판을 치던 시절에 친구들과 허름한 술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무대 위에서 쌈박질을 벌이던 두 건달을 혼내주려고 호기롭게 돌진했던 그는 전직 권투선수였던 건달의 주먹 앞에 죽을 뻔한 일을 당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건달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시 한 편을 꺼내 낭독하는 것이 아닌가. 그 시는 건달이, 꿈꿔볼 수도 없는 순수한 여인을 애인으로 얻게된 의미있는 시였던 것. 그녀와 건달을 엮어준 시 한 편 때문에 그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 베끼기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히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줄 유산으로 여긴다.” – 마사 그레이엄

시와 함께 사랑하고 투쟁했던 파란의 대 인생역정을 그 만의 시적인 문체로 녹여낸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읽는 즐거움이 압도적으로 크다(뒷부분에 지루하게 사람들에 대해 불필요한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내 글쓰기에 응용할 시적인 표현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예비 작가들이 습작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자신이 사모하는 대작가의 글을 무작정 옮겨 적는 것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 스타일을 무작정 많이 베끼고 묘사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이 방법을 네루다에 적용해 보고 싶어졌다. 가슴에 고요히 젖어드는 문학적인 표현 뿐 아니라, 유머로 양념을 치는 그의 수법까지도 배우고 싶다. 그냥 쓴 것 같지만, 그의 타고난(혹은 의도된) 구성 감각이 여기 저기 돋보이는 글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시는 나의 운명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고/ 지위 또한 정승에 올랐네./이제는 시 짓는 일 벗을 만하건만/ 어찌해서 그만두지 못하는가/…/어찌할 수 없는 시마(詩魔)란 놈/ 아침 저녁으로 몰래 따라다니며/한번 붙으면 잠시도 놓아 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살고 죽는 것이 여기에 달렸으니/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려워라.

이 시는 이규보의 시벽(詩癖)이라는 시다. 여기에는 시가 숙명인 자의 어쩔 수 없는 넋두리가 애교스럽게 펼쳐져 있다. 네루다에게도 시는 불가항력,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그 자체였다.

아, 예쁜 새소리가 들린다. 네루다의 영이 나를 깨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여명에 새소리에 끌려 베란다 창가에 섰다. 칠레의 숲 한 가운데에 서 있다고 상상하며 주문을 건다. 네루다의 시심이여 내게도 찾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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