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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7일 02시 39분 등록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으니,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선가귀감』p88


1. 저자에 대하여

참을 수 없이 간절하고 열렬하여 꽃으로 활짝 필 수 밖에 없는 나무!

저자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며 큰 나무 아래서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도록 변화경영연구소와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운영ㆍ배달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마음과 같이 그의 정원은 온통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마당이 작아 보인다. 그의 집 전경은 인왕산이 병풍처럼 정면을 에워싸고 있는데 늦은 밤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도로와 불빛은 마치 하늘 길로 열린 듯 밤하늘의 별들과 쉬 구분이 가지 않는다. 풍경을 사랑하는 그가 꼭대기에 집을 마련해 언제라도 먼 경치를 훤히 바라보며 산/땅(生)과 하늘(死)과의 경계를 허문 듯 맞닿아 살기 때문이다.

인품과 능력에 비해 소담하고 약간 작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댁에 들어서면 정갈함과 함께 질박하고 밝은 평화가 느껴진다. 최근에는 흑자갈밭 사이 백색의 현관 앞에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그녀 같은 늘씬한 (**?)나무 한그루를 심어 놓았다. 마치 어느 산장의 멋진 까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하고, 이야기나라의 요술 공주와 왕자가 사는 요정의 집 같은 기분도 들면서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그를 에워싸며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계절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 이색적인 공간은 어쩐지 저자의 또 다른 꿈과 영감의 상징을 내포하는 나무로 다가온다. 장차 동방의 빛! 우리 대한민국에서 출현하게 될 세기의 걸출한 경영의 시인을 탄생시킬 신성한 비나리 나무가 되면 어떨까?

소시민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면서도 아무나 그리 살지 못함을 일상에서 하나하나 수를 놓듯 동화같이 예쁘게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나무처럼 가꾸고 덜어내며 수신하는 저자의 내면과 일상적 취향이 하나의 숨결로서 고르게 상생하여 뿜어져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동심을 잃지 않고 점점 순해지는 스승의 마음결을 따라 함께 걷고 나누며 배우는 길은 미혹된 자의 마음까지도 절로 맑게 정화시켜가니 이 틈에 끼여 노는 것이 그저 기쁘고 즐거울 따름이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실컷 돌아다니며 마음껏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햇빛이 ‘가슴에 역력해지면’ 거기 가 닿으리라 믿었다.
마음속에 넘쳐나면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서구적 배움의 방법이라면,
‘느끼는 것만큼 알게 되는’ 접근법이 동양의 그것이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넘어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이미 이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안으로 쌓여 ‘넘쳐나는 마음’이다.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나의 이야기로 바꾸어가는 변곡점에 내가 있고 싶다.
그때 생각은 없어지고, 마음만 남을 것이다. p4

개정판 서문
내 속에 숨어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끄집어내는 나만의 의식이 절박했다. p5

그때 나는 내게 외쳤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새로운 두려움을 미리 과장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야 한다. 좀 배고프면 어떠냐. 평생에 한 번 찾은 이 일의 불알을 꽉 쥐고 놓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천복이니 이 길이 내 길이다. 엎어지고 뒹굴어도 이 길 위에서 죽으리라. 때마다 주어지는 밥이 사슬이지 않더냐. 굶주림을 두려워하면 들판의 이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까지 나는 매일 걸었다.

8년이 지난 다음 그때 다녔던 곳 몇 군데를 며칠씩 여러 번으로 나누어 되짚어보았다. 홀로 헤매던 그 길들은 그 당시 내게는 나의 길을 묻는 순례길이었다. 날마다 잠잘 곳을 옮겨 다녔고, 비가 쏟아지더라도 길을 나섰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백반 한 상을 시켜 먹었다. 되돌아보니 그때 그 봄바람이 그렇게 차고 매서울 수 없었다. 얼마 전 다산초당에 이르러 홀로 마루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며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중년의 사내 모습이 너무도 깊이 마음속으로 기어들었다. 문득 책을 쓰고, 제자를 기르고, 차를 달이는 행위들이 외로움을 이기고 자신을 잊어버린 세상과 화해하기 위한 처절한 수련이라 생각하니, 외롭지 않고서야 어찌 정순할 수 있으랴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으면 되는데 날마다 너무 많이 퍼먹기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을 쓰고 있구나. 그러다 인생이 끝나고 마는 구나. 아침 상념이 비안개처럼 퍼져들었다. 비는 내리고 숲은 여전히 어두운데 늦은 아침이라 배는 또 고파왔다. 그래그래. 먼저 살지 않고서야 또 어떻게 쓸 수 있으랴. 결국 밥과 존재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사이에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이란 흔들리는 것이고 균형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불안정한 체계인 것이다. 오직 죽은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삶의 원칙이다. p8

되돌아보니 이 책 속의 그 장소들은 목줄이 풀린 내가 이리저리 떠돌던 바로 그곳들이었다. 마흔여섯 살에 매일 아침 짐을 꾸려 여관 문을 나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곳들이었다.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두려움 속을 걸어두게 한 그 장소들이었다. 그렇게 매일 걷지 않았더라면 다리가 꺾여 이미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 속에서 비겁하게 살았던 그 인물들의 외로운 숨결을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것이다. 영광 있으라, 외로움들이여. p9

초판 서문/ 아주 천천히,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천지는 큰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말하지 않는다. -<장자> 「지북유知北遊」중에서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시냇물에는 멈춰 선 물결이 없다. - 곽박(동진東晋의 시인)

나는 ‘느낌’을 찾아 떠났다. 고요한 한가로움, 내 마음의 변방과 오지를 찾아 천천히 걸었다. 그곳에 가면 어디엔가 마음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걸었다. 아주 천천히, 달팽이처럼.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움직임의 궤적이 남는다. 온몸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p10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여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비장하지 않다. p11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달빛 그윽한 밤에 홀로 걷는 것이다. 어느 낯선 포구 신새벽에 플라스틱 통 속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보는 것이다. 매화 향기 그윽한 강가에서 술을 한잔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 벚꽃 잎들이 눈처럼 날리는 그 찰나에 그리움으로 터져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햇빛을 쏘이며 바닷가를 걷는 것이다. 빛은 파동이며 또한 입자이다. 다른 사람 속으로 파도처럼 들어갈 수도 있다. 아아, 파도처럼 하나의 물결에 다시 또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행은 또한 가슴에 고이 간직해온 그곳이 쓰레기와 콘크리트와 빠릿빠릿한 상인의 눈매로 가득 찬 것을 발견하고 쓸쓸한 뒷모습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속의 더 먼 변경을 찾아 다시 떠나가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가장 작은 글씨를 손으로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으로 혹은 아주 순수한 하나의 꿈으로 그곳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여행은 그러나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간 나를 지배해온 관습을 버리려고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20년 만에 주어진 한 달 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13

1장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

기차 안에서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
나무는 참을 수 없이 ‘간절하고 열렬해지면’ 꽃이 된다.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었다. p24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그래서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 없는 것이다. 사랑도 해야 하고 눈물도 흘려야 하고 순수한 배움 자체가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가장 고독하지 않다. p25

아아, 섬진강
섬진강을 따라 걸으면 나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사람은 섬진강에 오지 마라. 슬픈 사람만 와라. 자기를 잃은 사람만 와라. 저 푸른 강물에 자기를 두고 간 사람만 와라. 다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만 와라. p29

고흥반도
봄은 늘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열자列子』속에 백락伯樂에 얽힌 고사가 하나 있다. 명마를 알아보는 데 백락만 한 사람이 없다. 백락이 늙어 구방고九方皐라는 사람을 춘추오패 가운데 하나인 진나라 목공에게 추천했다. 왕은 구방고에게 명마를 구해 오라고 했다. 구방고는 천하를 돌아다니다 석 달 만에 돌아와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왕이 어떤 말인지 묻자 구방고는 암놈이며 색깔이 누렇다고 대답했다. 심부름꾼이 말을 데려왔는데 수놈이 빛깔이 검자, 불쾌해진 목공은 백락을 불러 형편없는 자를 추천한 책임을 물었다. 백락은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방고가 본 것은 말의 내면에 있는 명마의 소질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므로 밖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말의 정수만을 파악하고 대강은 잊어버린 것이며, 말의 재질을 살피고 외모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살펴야 할 것만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뜨린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말을 살피니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이처럼 외모로 본질을 보기 어렵다. p31

순하다는 것은 자신도 편하고 남도 편하게 해준다. p33

팔영산은 제1봉에서 제8봉까지 가면서 조금씩 높아진다. 끝에 다다르면 609미터에 이른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강해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세 시간 남짓 걸렸으니 하루 산행하기에는 짧은 등산로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여덟 개의 봉우리들이 어찌나 영준하고 야무져 보이는지 오르기 어려울 것 같더니, 산이 늘 그렇듯 일단 속으로 들면 길을 내어 품어준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다. 겉으로는 폐쇄적이고 무뚝뚝하고 말 걸기도 어렵게 보이지만 서로 친해지면 속을 내줄 것처럼 정이 뚝뚝 흐른다. 한국인은 산과 같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인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둘기장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음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면 산 냄새가 난다. p41

기대 앉아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기둥들을 향한 그리움을 풀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이 늘 잊고 있는 것은,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것들과의 균형이라는 점이다. 걸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한 다리가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한 다리는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걸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은 두 다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늘 잊고 지낸다. p42

다른 사람들의 동의 없는 희생 위에 세워진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나병 환자들의 희생이 이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었다고 말하며 눈웃음치는 그 잔인한 일본인 병원장의 얼굴이 보인다. 자신의 업적을 지금 너희가 즐기고 있지 않느냐고 미소 짓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웃음에 속지 않는 방법은 그들에게 목도를 메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나병 환자의 노동력이 아니라 그 일본인 병원장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고 병원은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그것이 환자와 병원의 관계다. 정원이 좋으면 삽과 괭이를 들고 스스로 가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크든 작은 모든 잔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어려움 그리고 불행 위에 자신의 기쁨을 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이런 사람들은 한때나마 뱃심 있고 추진력이 강한 일꾼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사회가 바로 성숙한 사회다. p45

시대는 변화한다. 절과 스님 또한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변하는 것이니 옛날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출가 이전을 잊고 세속을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을 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변질이며 타락인 것이다. 청허당 서산대사는 이 일을 경계하여 다름과 같이 출가의 뜻을 밝혔다.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三界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p52

다시 찾아온 외로움도 공부이고, 유혹도 수양에 도움이 된다. 사람 사는 곳에 어찌 진공 속의 결벽만이 득도이겠는가. p53

다압리 매화마을
꽃은 절정인데 매향을 들을 수 없다

매화는 이름만큼이나 그 자태가 매혹적이다. 『양화소록』은 성종 때 강희안이 쓴 원예지인데, 매화는 여러 덕성을 가지고 있어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나무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다. 매화는 희귀하기 때문에 귀하고,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추운 시절에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고하다. 둘째는 늙은 모습이 아름답다. 늙어서 추해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 노욕에 지지 않고 작은 일에 역정을 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나이 먹은 매화나무는 살지지 않고 말라 있다. 절제하고 자제한 모습이 보인다. 또 매화는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꽃과 여인이 같은 개념이니 그 다소곳하고 조신한 모양 때문에 찬사를 받았나 보다. p57

대나무 숲 속에 고요한 집이 있어
한 그루 매화가 창 앞에 피었다.
(...... )
아무 생각 없는 듯이 한 해를 보내더니
봄이 오자 저절로 활짝 꽃이 피었다.
그윽한 향기 속세를 떠났으니
붉은 꽃잎만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붉은 매화」다산 정약용의 20살 이전 작품.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면을 닦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적이다. 본질을 닦음으로써 타고난 자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는 유행이 아니다. p59

좋은 변화는 주변에서부터 핵심을 향하는 내면화 작업이다. 쥐가 쥐임을 깨닫는 것이고 쥐로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한 동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나 ‘미니 마우스’가 되는 것이다. 쥐가 되고 싶은 쥐, 이것이 변화의 화두다. p60

운주사
그러나 나는 쉬고 있는 부처가 좋다

운주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천상의 석공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 만에 만들어낸 천불 천탑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겨우 석불 70여 구와 석탑 18기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p61

누워 있는 것도 가르침이다
운주사의 천불 천탑과 와불의 이야기를 미륵신앙과 결부시킴으로써 일약 운주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이다. 나도 운주사의 와불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미륵이 도래하여 새로운 용화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즐겁게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와불이 누워 있는 것도 가르침이기 때문에.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어 계신 게야 - 안도현「아정芽亭아래」중에서

인생만한 변화의 장은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어 이곳에 있다. 노인에게는 어른인 아이가 있고, 어른에게는 아이인 아이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그 변천의 기록이듯,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굽이굽이 후회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숨 막히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나 부끄러워 잊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p70

2장 옛 사람의 마음에 취하다

적벽
이제 달뜨면 아름다울 이곳에 있지 못하리

해남 두륜산 대흥사
아름다운 고목과 청허당의 마음이 있는 곳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당집』에 「자조」라는 시가 있다.

대저 인생은 나이가 귀한 것이니
이제사 지난날의 행동이 후회된다
하늘에 닿은 바닷물을 어떻게 쏟아야
산승의 판사 이름을 깨끗이 씻을꼬

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뜬구름과 같은 명예를 구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승려를 “가사 입은 도둑[架裟賊]”과 다름없다고 질책하였다. 대사의 마음을 몇 군데 짚어보자.

명리승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草衣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가사 입은 도둑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시주받은 과보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먹은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인가? 도대체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은 생각지 않는구나.
종교에 귀의한 사람이 세속에 머무르면 안 된다. 그러나 세속의 중생을 떠나 홀로 있어도 안 된다. 대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p79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으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의주로 피했다.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람을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서산대사 후정에게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대사는 늙고 병든 승려는 절을 지키며 나라를 구해달라고 부처에게 기원하도록 지시하고, 나머지는 직접 통솔하여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전국에 격문을 돌려 각처의 승려들이 궐기 하도록 하였다. 제자 뇌묵당 처영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였고, 살여당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달려갔다. 휴정은 문도 1,500여 명에 이르는 의승을 순안 법흥사에 집결시키고 스스로 의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선조는 그에게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그 후 대사는 많은 나이를 이유로 군직을 제자인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한 채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21일 동안 방안에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묘향산 안심사와 금강산 유점사에 그의 부도가 세워졌고, 해남 표충사, 밀양 표충사, 묘향산 수충사에서 제향을 지냈다. p80

대사는 세속의 국난을 눈감을 수 없어 의승을 이끌고 산에서 나왔다. 선조가 관직을 제수했으나 이를 제자에게 돌리고 산으로 들어가 산이 되어 살았다. 그러나 못내 세속의 지위를 받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후세의 승리가 세속의 명리를 따르게 될까 봐 경계하고 또 경계하였다.

서산대사는 입적하기 전에 의발을 해남 대흥사에 전하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문도가 1,000여 명이나 있고 묘향산 또한 명승인데 어찌하여 벽지해우에 전하라 하십니까?” 하니 서산대사가 말하기를 “하나는 그곳이 기화이초奇花異草 편시광경片時光景하고 포백숙률布帛菽栗이 항구하며 월출산과 달마산, 천관산, 선은산이 위호圍護하고 수류구곡水流九曲하니 만세불훼萬歲不毁의 땅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왕화미급王化未及의 땅이라 나라의 관심을 받으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처영 및 제자들이 모두 남녘에 있고 내가 출가한 곳이니 소귀처所貴處함이 당연하지 않겠나”하였다고 한다. p81

서산대사의 선교관의 핵심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선시불심 교시불어]”라고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선교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는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후세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대사가 만든 『선가귀감』에서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이 선지禪旨가 되고 부처님께서 일생에 말씀하신 것이 교문敎門이 되었다. 세 곳이라 함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밖으로 내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라고 선지의 근원을 밝혔다. 이어 “부처님 일생에 말씀하신 것이란, 49년 동안 말씀하신 다섯 가지 가르침이니, 첫째는 인천교人天敎요, 둘째는 소승교小乘敎요, 셋째는 대승교大乘敎요, 넷째는 돈교頓敎요, 다섯째는 원교圓敎다. 이른바 아난존자가 교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교의 근원을 밝혔다. 또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른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禪法이요, 말은 교법敎法이다. 법은 비록 일미一味지만, 뜻은 하늘과 땅같이 동떨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p82

노산 이은상은 대사의 글을 “사상이라 하기에는 너무 문학적이고 문학이라 하기에는 뜻이 너무 깊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이곳 부도밭에 오면 이끼가 쌓인 돌의 질감이 먼 시간을 느끼게 한다. 먼 시간은 먼 과거만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먼 미래이기도 하다. 먼 과거를 향한 시간과 먼 미래를 향한 시간이 각각 원의 둘레를 따라 거꾸로 흐르다가 먼 어딘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사라지는 그곳에 혹시 나지 않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대사는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不生]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解脫이라 한다”고 했다.

산은 무심히 푸르고 구름은 무심히 희다
여행에서 돌아와 대사의 선시 몇 개를 들추어 읽어본다.

불일암
깊은 산속 절에는 붉은 꽃비 내리고
우거진 대숲은 푸른 연기라
흰구름은 산마루에 엉키어 자고
푸른 학은 중을 짝하여 조는구나

운유
발우를 씻고 향 사르는 일 외에는
인간사 모른다네
중 깃들인 곳 생각하거니
솔과 전나무 맑은 바람에 시끄러우리
나물뿌리 씹고 누더기 입었으니
꿈엔들 인간사에 이르지 않네
늙은 소나무 아래 높이 누웠으니
구름도 한가롭고 달 또한 한가롭네

만권의 책을 지루하게 읽어
옛 일을 논하고 또 오늘의 일을 논하지만
학문을 쌓음은 다른 재주 익히고자 하는 것 아니라
오직 나의 마음을 거두는 데 있느니

청허가
그대 거문고 안고 늙은 소나무에 기대었으니
늙은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이로다
나는 긴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았으니
푸른 물은 빈 마음이로다
마음이여, 마음이여
오직 나와 그대뿐이로다

일선암一禪庵의 벽에 쓰다
산은 스스로 무심無心히 푸르고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어라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상인上人
이 또한 무심한 나그네일세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위대한 정신은 세속의 명리와 기준에 묶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세속을 떠나 홀로 고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그래서 스스로를 갈고 닦아 도움이 되려 한다. 우리는 더 나아짐으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날 깨달음으로 예전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정진이다. 역시 『선가귀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으니,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통쾌한 말이다. 모름지기 달라지려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p88

강진
햇빛과 동백 그리고 옛사람 그리운 백련사

동백나무 숲을 지나며 옛사람을 그리워하다
백련사 선다원을 나서며 아암兒巖의 자취를 그리워한다.
아암의 성은 김씨이고 법명은 혜장惠藏이다. 해남의 화산방 사람으로 신분이 미천하고 집도 가난하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해남 대흥사에서 머리를 깎고 천묵에게서 배웠는데 몇 년 만에 그 이름이 승려들 사이에 드날리게 되었다. 체격이 왜소하고 순박한 아암은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불경을 배웠지만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듣고 문을 나서면 저절로 ‘비呸’하는 소리가 났다. 비웃음의 소리다. 나이 서른에 이미 두륜 법회의 주맹이 된 그는 두륜산 대흥사 12대 강사가 되었다.

다산이 강진에 귀양을 살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 봄에 혜장선사는 백련사에 있게 되었다. 그는 다산을 애타게 만나고 싶어 했다. 하루는 다산이 마을 노인과 함께 신분을 감추고 혜장선사를 찾아가 한나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 선사는 그가 다산인지 알지 못했다. 작별하고 헤어져 어둑어둑할 무렵 다산이 북암에 이르렀을 때 혜장선사가 헐레벌떡 쫓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공께서 어찌 사람을 이리 속이십니까? 공은 정대부丁大夫
선생이 아니십니까? 저는 밤낮으로 공을 사모하였는데 공이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혜장은 다산의 손을 끌고 그의 방에 묵게 하였다.

다산과 혜장선사는 이렇게 만났다. 혜장은 역易에 밝았다. 다산은 “정신에 환하고 입에 익어서 한 번에 수십 수백 마디를 외었는데, 마치 공이 언덕에서 구르고 병이 물을 쏟는 것과 같이 도도하게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크게 놀라 그가 과연 숙유宿儒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표현했다. 다산이 그를 숙유라고 부른 것은 혜장이 불경뿐 아니라 외전에도 밝았기 때문이다. 특히 『논어』를 좋아하여 그 뜻을 연구하고 탐색하였으며 다른 성리서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연마하였기 때문에 속유들은 미칠 바가 아니었다한다. 시는 좋아하지 않아 지은 것이 매우 적었으며 급히 짓지도 못했다. 그러나 다산이 시를 주면 반드시 뒤에 화답을 하였는데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한다.

혜장은 35세에 의발을 물려주고 4~5년을 쉬더니 신미년(1811년) 가을 병이 들어 9월 보름 무렵에 북암에서 시적하였는데, 불과 40세였다. 다산이 그의 탑명을 지었다. 간 사람을 그리는 다산의 마음을 옮겨 적는다.

빛나는 우담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펄펄 나는 금시조가
잠깐 앉았다가 날아갔네
슬프다, 이 아름답고 깨끗함이
저서는 있어도 전할 이 없네
그대와 더불어 함께 가서
손으로 현관玄關을 열었네
종용한 밤에 낚시를 거두니
밝은 달이 배에 가득했다
지난 봄에 입을 다무니
산림이 쓸쓸하다
그 이름 수동壽童이었는데도
하늘은 그 수명에 인색하였네
묵墨의 이름 유儒의 행실은
군자가 어여삐 여긴 바로세

‘미친 노래 근심 속에 부르고 취한 뒤에 맑은 눈물 흘리던’ 혜장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동백나무 숲을 지나며, 슬픈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알고 지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처럼 좋은 일이 있겠는가? p95


유쾌한 경망


따뜻한 바지

산 1
하늘이 그립다

산 2
구름을 덮고 싶다

계곡
산을 낳은 가랑이

바람 1
천방지축 어린것

바람 2
그대 마음

하늘
너무 파랗다

바다 1
낮은 곳을 차지하려는 물의 승리

바다 2
모든 것을 담고도 푸른빛 하나

바다 3
뛰는 가슴 p99

한세상 살아가기가 본래 어렵다



띠로 이은 주막집 새벽 등잔불이 파르라니 꺼지려 하누나
잠자리에서 일어나 샛별 바라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
나 또한 어리석은 바보 아이
망령되이 무지개를 붙잡고 싶어했다네
아이란 놈 무지개를 좇아갈수록 무지개는 더욱 멀어져
다다르면 또 다른 서쪽 언덕, 서쪽 또 서쪽이고 마네 [율정이별/ 다산] p100

1801년, 집에서 편지 가져온 아이를 보내고 다산은 다음과 같이 쓴다.

집에서 편지 오니 기쁘겠다 말하지만
새로운 시름이 만 가지로 일어나네
아내는 긴긴밤을 울고 있겠지
어린것은 어느 때나 다시 볼 건가
(......)
한세상 살아가기가 본래부터 어렵다네

다시 집에서 보내준 밤 한 자루를 받고 한숨짓는다.

한 자루 잗다란 이 밤알들이
천리 밖 배고픈 나를 위로해주네
내 생각 잊지 않은 마음 애틋하고
정성껏 묶어 맨 그 손길 생각나라
맛보려고 하다가 도리어 맘에 걸려
고향 하늘만 바라보네 p101

마음에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몸이 병들고 늙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무겁지 않았겠는가? 「느릅나무숲을 거닐며」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작지 짚고 시냇가 사립을 나와
고운 모래 밟으며 천천히 걸어보니
온몸은 병들어 약할 대로 약해지고
옷자락 바람결에 너울거리네
어여쁜 풀 위로 햇빛 비치고
고요한 꽃 위에 봄이 깃드네
(......)
느릅나무 잎사귀 토한 듯 무성한데
우거진 녹음 아래 둘러앉은 촌사람들
(......)
나라 다스리는 방책을 알려거든
마땅히 들농부들에게 물어야 할 일

어둠이 묵직하게 깔려오는데, 그 무게가 그의 마음처럼 무겁다. 그러나 그가 정치판에서 멀리 물러나와 이곳에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역사는 위대한 학자를 한 사람 가지게 되었다. 그는 경전에 진력하여 18년 동안 230권을 저술하였다. 시문을 엮은 것이 70권이다. 그 밖에 목민, 강역, 무비武備, 의약 들을 잡찬한 것이 거의 200권에 달한다. 모두 성인의 경전에 근본하였으되 시의時宜에 적합하도록 힘썼다. p105

칠량 봉황리
가업을 이어가기는 어렵고, 세상은 아직 알아주지 않는다

하고 있는 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미래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아주 잘하려면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천업이라고 믿고 하나의 일에 평생을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제 생긴 대로 살겠다는 뱃심이 중요하다. 나약한 사람은 어떤 경지에도 이룰 수 없다. 정진에는 용맹보다 나은 것이 없다. 백척간두에서 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p111

고금도 충무사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이곳에 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늦은 오후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 이 섬을 지나게 되면 잠시 덕동에 들러 충무사를 찾을 일이다. 이곳에 와서 무엇을 보겠다고 기대하고 찾지는 마라.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이곳에 와서 무엇인가를 들으려고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이 녹나무를 흔들며 지나는 소리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과 그가 칼을 차고 언덕에 서서 그 둥그런 섬들을 그물처럼 세심하게 보고 있는 모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오후 5시에 이곳에 오면 충무공의 정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대가 그의 후예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못나게 살지 마라.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을 마음 아파하지마라. 군대도 좋은 배움터이다. 충무공은 싸움터에서 아들을 잃었다. 힘이 강한 자에게 무작정 기대고 아첨하지 마라. 명나라 진린은 거만하고 무례했지만 충무공을 알고부터 진신으로 탄복하고 마음으로 따랐다. 그에게서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p120

: 갑자기 이 구절이 나타나 무슨 의미인가 하고 깜짝 놀라 다시 책의 앞면을 살펴본다. 스승의 아들 같은 딸 해언이 생각났다. 사부님은 딸을 아들과 차별하거나 아들이 없어 아쉬워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되fp 딸들이 둘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하나쯤은 강인하게 키우려하시나 보다 하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사부님의 큰 딸 해린을 보지 못하였다. 거실에 있는 가족사진을 통해서만 보았을 뿐이다. 작은 딸 해언과는 몽골여행을 함께 했는데 야무진 처녀였다. 천상의 요조숙녀답기도 했지만 그가 표현하는 글로 보나 언뜻언뜻 배려감 속에서 내 비취는 딱 부러지는 듯한 용맹으로 보나 가히 장부의 기질이 스며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해언이 잠시 영국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겸한 유학을 떠날 때 사부님은 ‘통과의례’라는 말씀을 쓰셨다. 여성에게도 성인됨을 치르는 의식의 하나로 남자들이 군대에 가듯 여자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품안의 여식을 먼 이국 타향으로 떠나보내는 아비의 안쓰러움을 담담히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글을 읽으며 부모의 심정이 솟구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스승의 마음의 한 켠이 아리게 숨어 있음이어서 일지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충무공은 싸움터에서도 하루가 지나는 것을 무심코 넘기지 않았다. 그 하루를 기록하여 그날이 그날로서 존재함을 잊지 않았다. 일이 닥쳐서야 어쩔 줄 몰라 하다 모욕을 당하는 일만큼은 피해라. 충무공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하였다. 거북선을 만들고 선박을 축조한 것은 그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만을 최선으로 아는 일개 무장이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개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확실한 승리는 없다. 그는 왜적과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어느 나라의 전사에도 이런 기록은 찾기 어렵다. 아마 없을 것이다. p121

마량의 밤
여관에서 그리움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지닌 인생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축복이다. p123

다산이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지은 「고의古意」라는 시가 있다.

어진 아내도 바라지 않고
넓은 집도 바라지 않는다
아내가 어질면 즐겁게 지낼 생각만 나고
집이 좋으면 편안히 지내고픈 마음만 들지
(......)
한때라도 떠나려 하지 않을 테니
하물며 여름 겨울을 따로 지낼 수 있으랴
(......)

다산은 열다섯 살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였다.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는데 어려서 다 죽고 2남 1녀만이 남았다. 다산은 아들 학유에게 준 많은 편지 중 하나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어머니의 지기인데 전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내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다만 아량이 좁은 것이 흠이다.”

다산은 어진 아내와 오랫동안 떨어져 서로를 그리며 살았다. 아내가 어질어도 떨어져 살게 될 자신의 운명을 이 젊은 청년은 알지 못했다.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이다. p125

마량의 아침
산다는 건 망설임이며 차마 어쩔 수 없음이다

산다는 것은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p135

3장 바다와 바람 그리고 길

장환 일몰
바다가 하도 찬란해 쳐다볼 수 없다

천관 초야
보면, 그대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

천관산 장천오미
숨겨두고 혼자 즐긴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송창식 노래 선운사]

천관산 장안사
아름다움이 바로 문 밖에 있으니 또 어디로 가랴

햇빛 가득한 마당의 꽃잎을 스쳐온 바람이 분다
108배를 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온몸에 땀이 난다. 낮아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잡념으로 최초의 정성이 흐트러지고, 때로는 고단하여 중도에서 그치고 싶어진다. 그리고 다시는 시작하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시작할 때와 같은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 이것을 ‘발심發心’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이다. 그것은 학살이거나 기만이거나 지나친 망상이다. p172

가지산 보림사
옛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 본연의 마음이 곧 부처
석탑과 철조 비로자나불과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제 사천왕상을 눈여겨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보림사를 잘 보는 방법은 초대 해동선종의 조사인 도의선사와 2대 염거화상과 가지산문을 연 보조선사 체징으로 이어지는 선종을 이해하는 데 있다.

강력한 통일왕조를 건설한 신라는 삼국에 산재해 있던 여러 종류의 다양한 불교를 하나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법은 하나로 귀일해야 한다’는 만법귀일萬法歸一 의 화엄종 사상을 통일왕국의 주도 이념으로 정립했다. 왕은 곧 부처이고, 귀족은 보살 그리고 백성은 중생이라는 불가의 위계와 질서는 강력한 통일왕조의 통치체제에 잘 부합되었다. 그러나 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통일신라는 정치적 내분을 겪게 된다. 지방에서는 경제력에 기반을 둔 호족 세력이 등장하고 사회는 이에 걸맞은 새롭고 다양한 이념을 요구하게 되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유능한 6두품 이하의 귀족은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옹호할 새로운 이념을 모색했다.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敎外別傳]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直指人心] 본연의 품성에 이르러 부처가 된다[見性成佛]”는 선종의 가르침은 교리와 권위를 중시해온 종래의 귀족불교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 사상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깨우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더 나아가 ‘인간 본연의 마음이 곧 부처[直心卽佛]’라는 믿음은 기존의 체제와 질서보다는 깨우침의 능력을 더 중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6두품과 호족도 능력이 있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었고 결국 호족 출신인 왕건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p180

진리의 빛을 행랑채 아래에 거두고 자취를 항아리 속에 감추다. 동해의 동쪽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북산 북쪽에 은둔하다. p181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해 한용운은 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선은 스스로를 밝히는 것이요, 철학은 연구이다. 참선은 돈오頓悟요, 철학은 점오漸悟라 할 수 있다. (......) 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가졌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려면 염세가 되는 것뿐이며, 그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독선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불교는 세상을 구하는 가르침이요, 중생 제도의 가르침일 터에 부처님 제자 된 사람으로서 염세와 독선에 빠져 있을 따름이라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p183

잘살아야겠다고 작심을 한 사람들은 보림사 한가운데 있는 샘물에서 약수를 한 바가지 들이키며 서원을 해볼 일이다. 이 물은 보통 물이 아니다. 한국자연보호협회가 ‘한국의 명수’로 지정한, 한국에서 손꼽히는 약수이다 예쁘게 기와로 지중을 얹고 돌로 쌓아 물을 가두어두었지만 물은 흘러넘친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도 산다. 아주 맑은 물에만 사는 고기들이 노는 물을 바가지로 휘휘 저어 떠먹은 것이 언젯적 이야기던가? 이곳에서 한번 해보라. p185

4장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땅끝 사자봉에서 보길도 격자봉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데 나도 바닷길 따라 그 섬에 가고 싶다.

위대한 정신은 검소하며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 p197

보옥리 뽀족산
이곳을 놓치면 보길도를 보았다고 하기 어렵다

보길도 예송리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름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p207

티베트의 성자이자 시인인 밀라레파의 시구 하나가 귓가에 머문다.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다
남을 능히 섬기면
나를 섬길 수 있다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미망과 욕망과 적의가 죽으면 열반에 이른다. 이때 마음은 ‘생각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다시 한 유학자와 달마선사의 대화가 내 기억 어딘가에 숨어 있다 모습을 드러낸다.

유학자: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달마: 좋다. 네 마음을 이리 가지고 오너라.
유학자: 그게 문제입니다. 그걸 찾을 수 없습니다.
달마: 네 소원은 이루어졌다. p212

완도 선착장
부두에 매여 있는 배들을 보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장좌리 장도
바람과 파도 속에서 그때를 아쉬워한다

완도에서 녹동까지
아름다운 한려수도 푸른 뱃길을 따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햇빛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같은 2시의 햇빛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물빛 역시 봄엔 초록색이고, 여름엔 파르스름한 녹색이다. 가을엔 푸르며, 겨울엔 검푸르다. 나무에 잎이 나고 지는 것을 보거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며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 왜 피어나고 또 왜 갑자기 그 활력을 잃게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산에 가보라.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런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인문학적 호기심이다. 변화의 능력과 경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돈은 사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p237

하동 쌍계사
벚꽃은 이미 지고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시간이 부족하면 자기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화사회란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아의 실현을 위해 투여하는 사회이다.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인 것이다. p248

목포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주술을 거는 힘을 잃어버린다.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주술을 거는 힘을 잃어버린다. 마법의 힘을 상실했기에 그가 보는 것은 목욕탕이며 수건이며 세숫대야일 뿐이다. 그 속에서 물고기도 커다란 고래도 멋진 하얀 색 배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양 어깨에 짐을 가득 진 당나귀’ 같은 중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했으니 먹고 살아야 한다. 일상의 걱정들과 정해진 일정들이 내적인 성찰을 방해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습득된 지식이 어린 시절의 마법의 힘을 대체하게 된다. p254

5장 아름다운 섬 이야기

흑산도
흑산도에는 아직 홍어가 있고 예리 포구에는 옛날의 정취가 남아 있다

홍도
아름답고 슬픈 구녕섬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비한 어둠, 사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공간 그리고 홀로 쉴 수 있는 비밀의 장소 없이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만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육체로부터 해방된 영혼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기 때문에 사람은 욕망과 정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학을 타고 구름 위를 날고 싶다가도 선상에서 먹을 수 있는 소주 한 병과 싱싱한 생선회 한 접시에 쏠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훌륭한 사상과 고고한 사람을 바라지만 아름다운 미인에게서 눈을 떼기도 어렵다. 사바세계는 그런 것이다. 중국인들은 ‘사바娑婆’라는 단어에 여자[女]를 빠뜨리지 않고 겹겹이 넣어놓았다. 그러니 어떻게 ‘구녕’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p276

관매도
잘록한 허리에 천리향 향기로운 섬

진도 용장산성과 제주 항파두리
항전 9개월, 또 2년 그리고 700년 뒤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국토는 나뉘었다. 일제의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옷을 바꾸어 입고, 친일파는 반공주의자가 되어 득세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그는 종속적이며 누군가가 시킨 일만 할 뿐이다. 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몸은 몸대로 고되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증오하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세속화된다. 그의 내면 어디에도 스스로를 위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에 기대고 권력에 탐닉한다. 친몽고파든 친일파든 외부에서 힘을 빌려오는 경우에는 늘 외부에 종속된다. 그런 경우는 자기일 수 없다. 외부의 힘에 따르고 적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적응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자기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허락한 대로.
p300

한라산
구름 속 눈 위의 산책

귀환
다시 일상으로
인간은 상징성을 벗어날 수 없다. 변화는 상징과 함께 나타난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만드는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며 장례식은 삶과 죽음의 화해이고 이승에서의 이별이다. p308

삶의 배후에 있는 삶을 찾아 떠난 여행자들은 때가 되면 귀환한다. 삶에서 얻은 것들을 삶의 뒷전에 놓아두고, 검고 어두운 어머니의 계곡으로부터 잃어버렸던 자아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은 기존 사회의 ‘서릿발 같은 증오와 심문’에 맞서야 한다. p310

후기
자연과 사람 그리고 변화
한국의 산수 속에서 한국의 인물을 보고, 그 인물 속에서 그를 길러낸 한국 산수의 힘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휴식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휴식을 통해 정신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p322


3. 내가 저자라면

요즘 어깨와 팔이 아파 읽고 난 후 한참이나 지난 리뷰를 하다 보니 예전의 정신없이 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할 때처럼 엉성하지만 그런대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
다시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을 읽었는지 인용문을 통해 겨우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올리려고 시도하는 것은 점점 게을러지는 자신을 보는 것도 못하는 리뷰만큼이나 딱하기 때문이다. 하다보면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자꾸 똥배짱만 늘어 큰일이다. ㅋ

하나, 제목이 주는 위안과 정서가 편안하다

이 책은 수년 전 한번 출간되어 나왔던 것을 새로이 <을유문화사>를 통해 발간되었다. 아주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성 싶다. 책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아무런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앞 장에 표시된 행선 경로를 따라 나도 이렇게 이대로 죽 따라가며 떠나고 싶은 열정이 솟구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순간순간 내일 떠날까? 어디로 어떻게 가면 되지? 나라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라는 생각들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면 비오는 날의 촉촉함이 그대로 배어있는데 마치 물방울이 통통 튀기듯 싱그러움이 글과 함께 어우러져 자칫 따분해? 보일 수도 있는 지리한 일상의 막막함을 거두고 무언가 설레고 가슴이 뛰는 곳을 찾아나서는 풋풋함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한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난 이른 봄에 남도 여행팀을 쫓아 여나믓이 어울려 저자와 함께 새로 발간하는 책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에 동참하였던 기억이 나고 더한층 새록새록 한가로운 풍경의 진면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나보다. 나는 그때 우리 일행이 대흥사로 향하기 전 점심을 먹고 나오며 옅은 빗길을 죽 걸어 들어가 잠시 살펴보고 나왔던 <유선여관>에서 묵어보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쉬웠는지 자꾸만 비 내리던 날의 유선여관 입구에 삼각대처럼 나무로 세워놓았던 하얀 바탕의 검정색 글씨로 쓴 입간판이 아른거리곤 한다. 그날 그곳을 애석하게도 스쳐 나오면서 언제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와 묵고가야겠다고 다짐해두었던 기억과 함께 한옥의 고가를 개조한 듯 영화에서나 봄직한 요즘의 여관 같지 않은 여관의 가지런한 돌바닥 위로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촉촉이 젖은 뜰 안팎의 나무들이 정갈하게 고상한 자태를 뽐내던 여관의 운치가 아직도 눈에 삼삼하기 그지없다. 꼭 다문 입술처럼 꽉 닫힌 한지로 바른 문짝들은 내다보는 이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그 방안에서는 밤새 만리장성과도 같은 구불구불한 역사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얼마든지 자아내며 대문 앞에 서있는 입간판은 비오는 날의 나그네의 옷깃을 슬며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유선여관, 그곳에 가서 자보고 싶다. 설마 이불이랑 베개가 나의 이런 설렘과 낭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너저분한 것은 아니겠지. 요즘 같은 유월의 장마 날씨에도 쌀쌀한 저녁이나 새벽녘에는 딱끈히 불을 지펴주며 묵어가는 길손의 치친 몸을 포근히 감싸줄라나?

두울, 자연과 사람 그리고 변화에 대한 주제를 담은 기행문이면서 역사적 사건을 담담히 수필형식의 산문으로 그려낸, 작가의 사상과 성향이 섬세하게 잘 들어난 작품이다.

저자는 역사학도로서 역사에 얽힌 사실성에 입각하여 명승지 및 옛 시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가며 책의 깊이를 더한층 원숙하게 이끔과 동시에 현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에 대한 통찰과 함께 선인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고 사색하게 만들면서 자기 계발과 경영의 의식 수준을 한 차원 높게 깨달음의 화두로 승화시켜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서정적이고 잔잔한 운치로 다가와 조용한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며 여울지듯 계속 밀려들고 그 여운은 오래 머문다.

세엣, ‘쥐가 되고 싶은 쥐’ 들에게 자기계발과 경영에 관한 책들은 더 이상 논리와 설득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한 평범한 개인이 20년 동안 뼛속까지 각인된 직장과 조직 생활을 훌훌 벗어던지고 낮술을 즐기며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을 에두르며 최종적으로 모색하러 떠났던 한 달 반 동안의 여행이었고, 돌아와 일인 기업가로서 전문 경영컨설턴트로 작가로 거듭 태어나 새로운 자기를 한껏 끌어내어 만나고 본격적인 개인사적 도약을 굳혀갈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단계의 오롯한 내면과의 탐색을 통해 나온 이성과 감정의 두 축이 조화롭게 균형감을 이루며 쓰여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8년 이라는 세월을 지나 다시 예전의 그 길을 되돌아 밟으며 새로 넣을 사진과 함께 현재의 모습에서 아주 부드럽고 유연하게 살짝 매만져서 다시 탄생시킨 여유로운 책답게 유유자적 한가하다. 마치 한 마리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비가 되어 자신이 벗어놓은 허물을 휘휘 돌아 감상하듯이 말이다.

세월과 함께 원숙한 근육을 훈련한 누에의 양 날개에는 단단한 세월의 무게를 지탱할만한 알이 배어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자신이 실체가 되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경영은 인문학을 떠나서 설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노라고. 저자의 이 간결한 의미는 그가 걸어온 길과 개척해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힘이 실려 있다. 왜? 저자는 구본형이라고 하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상징하는 일상을 주제로 마침내 평범한 한 개인의 거대한 도약을 이루었고 계속해서 비상을 꿈꾸며 줄기차게 묵묵히 비행하여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수필같이 담백하고 한가로운 기행문처럼 약간의 건달 끼를 스멀스멀 풍기기도 하며 유유자적한 여행길로 떠난 사내의 걸음걸이처럼 흥얼흥얼 흥겨움 속에 즐겁고 기쁜 자기 신화를 가지고 벅차게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자기계발과 혁신을 위해서는 충전의 휴식을 위해 잘 놀아야 한다는 새로운 법칙과도 같은 신념으로 새 문화 창조의 선봉에서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과 행진을 아우르고 나아가며 새로운 문화 창출과 인식의 저변 확대에 기여함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리뷰를 하며 느낌을 말하다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떠올라 옮겨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카~ 그날의 평범한 사내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멀리 떠나와 새로운 자기를 설레게 만나며 그렇게 자신의 신기루와 같은 신화를 쌓아가고 확인하며 무던히 즐겨 이루어 가고 있다.

네엣, 까짓. 나도 한 번 확 미쳐서 냅다 10년 쯤 살아봐?

살아보자. 제대로 미쳐서 미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실험해 보면 알게 될 것이 아닌가. 썅!ㅋ
하는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이 책의 가치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떠남의 여행, 자기계발과 경영, 역사와 선인과의 대화 등이 고루 섞인 담론과 수필과 기행을 한데 얼려 버무린 한국형 비빔밥의 탄생과도 같은 맛나고 멋스러우며 쉽고도 여유와 흥이 돋는 보기 드문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가의 품과 역량일 것이다. 독자들도 각자 자신의 취향을 만들고 만나며 나름의 방식을 응용하여 삶의 여러 변방에 따로 또 같이 적용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매력남 청허당에 대한 사모

나는 왠지 서산대사에게 끌린다. 역사와 <청허당집>에 남겨놓은 글들을 읽어봐야겠다. 느낌이 좋고 선인과의 묘한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좋아라~

여섯, 무서운 년이 되기 위해 곱씹어 보는 구절 ㅎㅎㅎ

변화는 삶의 원칙이다. p8

나무는 참을 수 없이 ‘간절하고 열렬해지면’ 꽃이 된다. p24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p25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p25

순하다는 것은 자신도 편하고 남도 편하게 해준다. p33

쥐가 되고 싶은 쥐, 이것이 변화의 화두다. p60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p110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p207

미망과 욕망과 적의가 죽으면 열반에 이른다. p212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햇빛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p237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인 것이다. p247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비한 어둠, 사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공간 그리고 홀로 쉴 수 있는 비밀의 장소 없이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p276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p298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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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6.29 00:11:39 *.248.50.45
써니누님..

사부님 책을 다시 꺼내 보려고 하고 있어요. 책장에 책이 쌓여가는데...또 한 번 버릴 책을 솎아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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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30 08:11:48 *.36.210.11
언제부턴가 기운이 빠져 정리가 잘 안 되요. 요즘 내 방안을 들여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와요. 책이랑 옷가지들이 여기 저기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지요. 치워도 금새 뒤집혀진 듯 어질러질 것이기에 그냥 대강 살고 있지요. 솎아내고 버리고 그래도 안 되면 떠나야 하지만...
일을 두려워한 적이 없는데 웬일인지 이즘은 그 많은 힘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어요. 오는 백발과 가는 청춘 사이에서 헤매네요.ㅋ

이 책 참 이상해요. 자꾸만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아요. 책 한 권 달랑 집어들고 어디로든 가라. 떠나라. 두려움을 벗어젖히고 마음껏 살아라 하는 것 같거든요.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부적처럼 섬길까 봐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처럼 소리 없는 바람처럼 시인의 마음이 되어서 가고 싶은 어디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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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8.06.30 08:29:29 *.246.146.170
마음이 일면 행하시지요 마마.

저야 준비하다 세월 다 가는 스타일이지만...

즐거운 한 주가 다시 시작됩니다.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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