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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30일 04시 31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오쇼 라즈니쉬

인도 철학자인 그의 본명은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힌디어: रजनीश चन्द्र मोहन जैन, 1931년 12월 11일 ~ 1990년 1월 19일) 이다. 이후 자신이 1989년 스스로 오쇼 라즈니쉬로 명명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이나교 포목상 집안 출신으로 나이나푸르대학 철학과를 졸업 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1958년부터는 자발푸르 대학에서 한 동안 철학 교수로 활동한다.

1966년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을 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었다가 1970년 봄베이에서 제자 두세 명을 거느리고 라즈니쉬 명상센터를 설립한다. 그 이래로 세계 각국에 그의 명상센터가 설립되고 약 30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는 한편, 인도에서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가 4년 만에 투옥•추방으로 미국생활을 마감했다.

모두 400여 편의 저서를 남겼는데 모두 푸나아쉬람에서의 강론을 정리한 것이다. 기성종교를 비난했으나 자신은 교주처럼 행세했고, 정신의 신비를 가르쳤으나 자본주의의 속성을 적극 활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연대기>
1931년(탄생) - 오쇼 라즈니쉬는 1931년 12월 11일 인도의 Madhya Pradesh에서 자이나교도인 직물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7살이 될 때까지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절대적 자유를 허락해주고, 삶의 진리에 대한 그의 조숙하고 강렬한 탐구를 전면적으로 지원해 준다.

1938년(7세)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인구 2만의 읍인 Gadawara로 가서 부모와 함께 사는데 그의 할머니도 같은 마을로 이사를 와 스스로 손자의 제자임을 선언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가장 관대한 친구가 되어준다.

1946년 ( 15세) - 14살 때 오쇼는 처음으로 사토리를 경험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명상 실험은 깊어져 갔으며, 영적 탐구의 강렬함은 육체적 건강을 손상시킬 정도여서 부모나 친구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1952년 ( 21세 대학생) - 3월 21일, 21살의 오쇼는 인간 의식의 최고 정점인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외적 전기는 끝났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삶의 내적 규율을 갖고 일체성이라는 무아의 경지에서 살면서 외면적으로는 Saugar 대학교에서 학문을 계속하여 1956년 졸업할 때에는 철학 부문의 최고상을 받는다. 그는 인도 토론대회의 우승자로 졸업반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다.

1957년 ( 26세) - 오쇼는 Raipur시의 Sanskrit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1년 후 그는 」Jabalpur 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된다. 1966년 그는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버린다. 60년대를 통해 그는 '아차리야(교사) 라즈니쉬 '로서 인도 전역을 여행하고, 가는 곳마다 기성 체제 측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특권계급의 위선을 폭로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대 권리-자기 자신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그들의 기도를 폭로한다. 그는 수만 명의 청중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가슴속 깊이 감명을 준다.

1968년( 37세 봄베이) - 그는 봄베이에 정착해 살며 가르침을 계속한다. 그는 주로 고원의 피서지에서 정기적으로 명상캠프 '를 열어 혁명적인 '다이나믹 명상법 '을 도입하는데, 그것은 먼저 카타르시스를 허용함으로써 상념의 정지를 돕는 기법이었다. 1970년부터 그는 애정과 개인적 지도로써 사람들을 자기탐구와 명상으로 들어서는 길인 Neo-Sannyas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그는 축복 받은 자라는 의미인 '바그완(Bhagwan) '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70년 ( 39세) - 서양으로부터 최초의 구도자들이 도착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이 때부터 오쇼의 명성은 유럽,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까지 퍼지기 시작한다. 매달 명상캠프가 열렸고, 1974년에는 푸나(Poona)에 새로운 장소가 물색되어 그 곳에서 그의 가르침은 더 강렬해진다.

1968년 ( 37세 뿌나) - 오쇼의 깨달음을 기리는 21번째 기념일에 뿌나에서 아쉬람이 열린다. 오쇼의 영향력은 이제 세계적인 것이 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건강은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점점 자신의 방에 칩거하게 되었고, 아침에 강의를 할 때와 저녁에 구도자들의 입문을 받아들이거나 조언을 줄 때 두 번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된다.

동양의 명상에 대한 통찰과 서양 정신요법의 결합에 기초한 치료집단이 창설된다. 2년 만에 아쉬람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장과 세라피(therapy)의 센터 '라는 명성을 얻는다. 오쇼의 강의는 세계와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을 포괄하고 있었으며 서양의 과학이나 사상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 언사의 명증성, 논의의 깊이는 오랜 동서양간의 단절을 해소시킨다.

70년대 후반까지, 뿌나에 있는 오쇼의 아쉬람이 현대의 진리 탐구자들의 메카였다. 열렬한 전통적 힌두교도인 인도 수상 Moraji Desai는 아쉬람을 인도의 변방으로 옮기려 하는 오쇼 제자들의 모든 시도를 방해한다. 그곳에서는 오쇼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명상, 사랑, 창조성, 웃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를 창설하기 위한 실험이 가능했을 것이다.

1980년 ( 49세) - 강의 중에 오쇼를 암살하려는 기도가 어떤 전통적 힌두교파의 일원에 의해 일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공적인 종교, 교회들은 그를 비난하지만 그때까지 오쇼는 전 세계에 25만 명이 넘는 제자를 갖고 있었다.

1981년 ( 50세-새로운 국면, 푸람, 미국) - 5월 1일 오쇼는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됨에 따라 그의 육체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슴과 가슴을 통한 침묵의 교감 '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긴급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의 미국 제자들은 센트랄 오레곤의 불모지에 있는 6만 4천 에이커의 목장을 구입하여 오쇼를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한다. 그리고 동물들이 풀을 너무 많이 뜯어먹어서 고갈되어 버린 황무지를 개간하여 5000명이 살 수 있는 녹색의 오아시스로 바꾸는 모범적인 농업공동체를 급성장 시킨다.

해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오쇼의 친구들을 위해 여름 축제가 열리고, 2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라즈니쉬 푸람이라는 이 새 도시에서 숙박하며 음식을 제공받는다. 오레곤 공동체의 급성장과 함께 주요 서방 국가들과 일본에서도 대규모 공동체가 형성되어 독자적 사업으로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오쇼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미국 정부에 영주권을 신청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공적으로 침묵할 것을 서약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동시에 새로운 도시는 오레곤 주정부와 다수파 기독교인들의 가중되는 법률적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원래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했던 '오레곤주 토지 이용법 '이, 불모지를 개간하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라즈니쉬 푸람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요한 무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시도야말로 전 세계를 위한 하나의 생태학적 모델이 되고도 남을만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84년 ( 53세) - 10월, 오쇼는 자신의 저택에서 소수 그룹을 상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985년 ( 54세) - 7월, 그는 라즈니쉬 만디르에서 매일 아침 수천 명의 구도자들에게 공개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9월 14일, 오쇼의 개인 비서와 공동체 관리를 담당하던 몇 명의 구성원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 비합법적인 행위가 밝혀진다. 오쇼는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미 당국자들을 시로 불러 들였으나 당국자들은 이 기회를 공동체에 반대하는 싸움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한다.

10월 29일, 오쇼는 노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샬롯에서 영장 없이 체포된다. 보석심문 때 그는 묶여 있었고, 그의 법정 출두를 위해 마련된 오레곤으로의 귀로는 통상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거리인데도 8일간이나 걸리게 된다. 수일 동안 오쇼는 행방불명이 된다.

나중에 그는 오클라호마주 연방형무소에서 '데이비드 와싱톤 '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염성 헤르페스를 앓고 있는 죄수와 함께 격리 감방에 수용되어 있었음을 밝힌다. 12일 동안 감금당하고 결박당하는 수난을 겪은 후 석방되기 바로 1시간 전, 오쇼가 수감되어 있던 오레곤주에서 보안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던 포틀랜드 감옥에서 폭탄이 발견된다.

오쇼 이외의 죄수들은 모두 대피했는데도 오쇼는 1시간 동안이나 그 안에 갇혀 있게 된다. 11월 중순, 오쇼의 변호사들은 미 사법제도의 손안에 놓인 그의 생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고발된 34개의 죄목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출입국 관리법 위반 ' 등의 두 항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도록 그를 설득한다.

그러나 오쇼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알프레드 항변 '에 들어간다. 그 항변은 미국 사법제도의 특이한 것으로, 그에 의해 무죄를 주장함과 동시에 그 죄목에 대한 논쟁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는 40만 달러의 벌금을 물 것, 즉시 미국을 떠날 것,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을 명령받는다. 그는 자가용 제트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갔고, 거기에서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기자회견에서 미 연방 검사 찰스 터너는 '오쇼의 비서에 대해 이루어진 고발이 왜 오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며 세 가지 요점을 열거하는데, 정부의 첫 번째 관심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당국자들은 오쇼의 추방이 그것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째, 그들은 오쇼를 순교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셋째, 오쇼가 어떠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고 실토한다.

1985년 ( 54세-세계여행) - 12월, 오쇼의 비서와 동료, 의사는 인도에서 떠날 것을 명령받았고, 그들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네팔의 카트만두로 떠나 그곳에서 강의를 재개한다.

1986년 ( 55세) - 2월, 오쇼는 30일간의 관광 비자로 그리이스에 간다. 그는 그 곳에서 한 그리스인 영화 제작자의 집에 머물며 매일 2회씩 강의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들고, 그리이스 정교의 성직자들은 그를 국외로 추방하지 않으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정부를 협박한다.

3월 5일 경찰이 별장에 난입하여 영장도 없이 오쇼를 체포하고, 곧이어 아테네로 이송한다. 아테네에서는 겨우 2만 5천 달러의 금액을 내고 그를 인도행 배에 태우지 못하도록 당국을 움직일 수 있었다. 3월 6일, 오쇼는 자가용 제트기로 스위스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무장 경관들에 의해 7일간의 비자를 취소 당한다.

그는 '미합중국 출입국 관리법 위반 '을 이유로 '탐탁지 않은 인물 '로 선언되어 스위스를 떠나도록 명령받는다. 그는 스웨덴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라이플 총으로 무장한 경관들에 의해 포위되어 '국가의 안전상 위험하다 '는 이유로 경고를 받고 즉각 출국하도록 명령받는다.

그는 영국으로 간다. 이번에는 법률상의 이유로 비행기 조종사가 8시간의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오쇼는 일등급 통과여객용 라운지에서 대기하기를 윈했지만 허용되지 않고 호텔에서 1박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와 그의 일행은 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작고 더러운 방에 갇히게 된다.

3월 7일, 오쇼와 그 일행은 아일랜드로 간다. 그 곳에서 그들은 관광비자를 받고 리메릭 부근에 있는 호텔로 갔으나 다음 날 아침 경찰이 와서 그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했다. 그때까지도 캐나다 정부에서는 오쇼의 비행기가 예정지인 카리브해의 안티구아로 가는 도중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캐나다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료 보급의 권리에 대한 이 이해할 수 없는 거부는, 오쇼가 비행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보증을 했던 런던 로이드 보험 협회의 보증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행된 것이었다. 당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공표는 일체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른 채비가 마련될 때까지 아일랜드에 체재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대기 중에 안티구아는 오쇼의 입국 허가를 철회한다. 홀랜드도 타진했지만 그들 역시 오쇼를 거절한다. 독일은 이미 오쇼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저지법 '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관광비자 신청의 심리가 연기된 상태였고, 10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루고 있었다.

3월 19일, 뜻밖에 우루과이에서 초청장이 발급된다. 3월 19일 오쇼와 그 동반자들은 세네갈의 다카르를 경유하여 몬테비데오로 날아갔고, 우루과이는 영주 가능성까지 밝힌다. 우루과이에서 모든 나라들이 그의 입국 허가를 거부한 이유가 밝혀진다.

오쇼 일행이 '밀수, 마약취급, 매춘 '에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인터폴의 루머에 대해 언급한 '외교상의 비밀정보(이 모든 것은 NATO의 정보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에 관한 텔렉스가 미리 입국 예정국에 도착하여 경찰이 경계태세를 갖출 시간적 여유를 주었던 것이다.

우루과이도 곧 다른 나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 5월 14일, 우루과이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오쇼가 우루과이의 영주권을 얻었다고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그날 밤 우루과이 대통령 상귀네티는 오쇼가 우루과이에 체재한다면 현재의 미국 차관 600억 달러는 회수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차관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하는 미국 정부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6월 18일 오쇼는 우루과이를 떠나야 했고, 다음날 워싱턴에서는 레이건이 우루과이에게 1억 5천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다. 6월 19일, 자마이카는 오쇼에게 10일간의 비자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마자 미해군의 제트기가 오쇼의 자가용 제트기 곁에 착륙하더니 두 사람의 요원이 접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쇼와 그 일행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마드리드를 경유하여 리스본으로 날아갔고, 잠시 동안 발견되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주일 후 경관들이 그가 쉬고있는 별장을 포위했으며, 오쇼는 다음날 인도로 돌아갈 것을 결정한다.

이렇게 모두 21개의 국가들이 그를 추방하거나 입국을 거절했다. 7월 29일, 오쇼는 인도의 봄베이에 도착해 그곳에서 인도 친구의 개인적인 손님으로 6개월간 체재한다. 그는 그 친구의 집에 은둔하며 매일 강의를 재개한다.

1987년 ( 56세) - 1월 4일, 오쇼는 1970년대의 대부분을 보냈던 뿌나 아쉬람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뿌나의 경찰서장은 '시의 평화를 어지럽힐 염려가 있는 문제 인물 '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 명령은 같은 날 봄베이의 고등재판소에 의해 무효화된다.

그러자 1980년 5월 공개 강의 중에 칼을 던져 오쇼를 살해하려 했던 그 힌두교 광신자들이 오쇼를 뿌나에서 추방하지 않는다면 격투기로 훈련된 200명의 기습부대로 아쉬람을 침입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8월, 소위 '자유세계의 정부 '들이 연금 상태로 오쇼를 고립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제자들은 다시 한번 스승과 함께 하기 위해 뿌나로 향한다.

1990년 ( 59세) - 1월, 오쇼는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인도의 뿌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연대기는 인터넷 사이트 http://moksha.ohpy.com/wpage/24 에서 가져온 것임.


II.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4] 역사학은 진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진실은 물질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직 의식의 사건들을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Part One 평범한 인간 전설 뒤에 숨은 역사

[19]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영성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은 순수한 개인성을 필요로 한다. 영성은 어떠한 종류의 의존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자유를 창조해낸다.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 왜냐하면 군중은 결코 어떤 진리도 발견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오직 홀로있음 속에서만 발견되어 왔다.

[25]그 어린시절 동안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그래서 나는 그 외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하나의 즐거움이며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천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축복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고 자족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의지해 있지 않았다.

[28]그녀는 (할머니는) 교육받지 못한 단순한 여자였지만 엄청나게 민감한 여자였다. 그녀는 나의 할아버지와 하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삶을 살았지만 그 삶은 우리를 어디로도 이끌어 가지 못했어요. 우리는 전과 똑같이 공허하고 이제 죽음만이 다가오고 있어요.”그녀는 주장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요? 기껏해야 우리처럼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36]종교는 그대 명상의 하나의 방해물이다. 명상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천국도, 지옥도,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보상에 대한 유혹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상은 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면상은 마음을 넘어서 있는데 반해서 종교는 오직 마음뿐이다. 종교는 마음 안에 있다.

[53]나는 이제 거기서 무엇이 나왔는지 안다. 타고난 말썽꾸러기가 아니고서는 붓다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고타마 붓다처럼 단지 붓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다. 나는 조르바 붓다이다. 나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다. 사실 나는 동양과 서양, 높은 것과 낮은 것,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신과 악마를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 몇 번을 물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누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나누어졌던 모든 것을 다시 합친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59]헤어짐은 그 나름의 시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단지 그 헤어짐의 언어를 배워야 할 뿐이다. 그리고 한껏 그 깊이를 체험해야 한다. 그때 슬픔 그 자체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나온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일은 일어난다. 나는 나나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을 알제 되었다. 그것은 완전한 헤어짐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는 늙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61]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그때 하는 죽음이 축하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녀는 처음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겼을 때 불렀던 그 노래를 불렀다.
이 이야기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다. 90년 전에 인도에서, 그녀는 사랑에 빠질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스물네 살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67]나의 관심은 언제나 똑같았다. 궁극의 진리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역에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68]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속에서만 죽음을 만날 수 있다.

[71]첫 7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대는 결코 다시는 그처럼 큰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100]그대가 흐르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과 사람에 빠지게 될 때, 그대는 삶에 대한 다른 시작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은 아스팔트길,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들과 함께 간다. 이러한 것들은 명사들이다. 기억하라. 이러한 것들을 동사들이 아니다. 마천루는 성장하지 않는다. 도로는 밤이든 낮이든, 보름밤이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든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아스팔트 도로에게 있어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들에게 있어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명상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창조해냈고 스스로 세상 속에 갇혀버렸다. 인간은 나무들의 세상을, 강들의 세상을, 산과 별의 세상을 잊었다. 나무나 강은 명사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무나 강은 명사에 대해서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오직 동사만을 안다. 모든 것을 과정이다. 신은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104]만약 그대가 그대 자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전 존재계가 지복에 차 있는 것은 바위가 바위이고, 나무가 나무이고, 강이 강이고, 대양이 대양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돌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대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그대 자신이 되지 말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방식은 매우 교묘하고 교활하다. 그들은 “너는 크리슈나처럼, 붓다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붓다나 크리슈나가 되고 싶은 커다란 열망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 열망이 그대 고통의 근원이다.

[105]그러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나는 결과가 어찌되든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옮든 그르든 나는 나 자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06]천국은 그대의 진정한 존재가 꽃피는 곳이다. 지옥은 그대가 짓눌리고 다은 어떤 것이 그대에게 강요되는 곳이다.

[129]그대는 그 얼굴에 모든 것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완전히 의식적이고 깨어있는 삶을 살았다면 그때 그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있을 것이다. 그의 몸 둘에게는 오라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대는 침묵을 느낄 것이다. 슬픔이 아니라 침묵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지복 속에 죽었을 때 그대는 갑자기 그대 곁에 깃드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131]만약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나와 똑같이 절대적으로 비어 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두 거울이 서로 마주보고 있게 될 것이고 두 비어있음만이 비춰질 것이다. 무한한 비어있음이 비춰질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그러나 그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안에서 그대 자신의 생각을 볼 것이다.

[132]나는 아버지에게 그가 매우 행복한 그가 매우 행복한 죽음, 매우 지복에 찬 죽음을 맞았고 나도 그의 웃음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의 에너지는 웃고 있었다.

[141]물론 육체적으로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점성술가의 이 예언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일찍부터 죽음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명상할 수 있었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150]나의 모든 관심은 나 자신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너무나 자력이 넘쳤고, 그 당기는 힘은 너무나 광대했다. 지금의 물리학자들이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151]이것을 나는 스스로 경험했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그 엄청난 인력의 한해는 나를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리 끌고 갔다. 너무나 멀리 끌고 가서 나 자신의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나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나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자연히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그 한해 동안 나는 미친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 관기를 명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광기의 절정에서 문이 열렸다.

[153] 그대가 처음으로 무심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 그것은 광기처럼 보인다.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미친 밤처럼 보인다. 모든 종교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때문에 모든 종교들은 그대가 무심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스승이 그대를 돕고 그대에게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기 서서 그 새로운 것들을 그대에게 설명해줄 것이다. 그것이 스승의 의미이다. 해석될 수 없는 것을 해석해 주는 것,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것, 설명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는 거기 있을 것이다. 그는 그대가 계속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을 고안해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도망치기 시작할 수 있다.

[158]그리고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대는 하나의 현존으로, 주시자로 단지 거기에 있을 뿐이다.
(중략)나는 그것을 행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누어 있었고, 앉아 있었고, 걷고 있었다. 깊은 곳에서는 행위자가 없었다. 나는 모든 야망을 잃었다. 누군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도달하려는 욕망도 없었다.나는 단지 나 자신 속으로 던져졌다. 그것은 하나의 공이었고 그 공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러나 공은 신에게로 가는 유일한 문이다. 그 말은 오직 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은 안 된다

[160] ‘내가 깨달음을 얻은 날’이라는 말은 단순히 성취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성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의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 아무런 발전도, 어떠한 발전도 필요치 않다. 신은 어떤 것도 불완전하게 창조하지 않는다. 설사 그대가 불구인 사람을 발견한다 해도, 그대는 그 사람이 완벽한 불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은 결코 불완전한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

[161]그날 나는 그것을 얻으려 했던 그 모든 나의 어리석고 바보 같은 노력들 때문에 웃었다. 그날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웃었고 온 인류를 향해 웃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성취하고, 도달하고, 나아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168]그대의 희망없음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 그대의 욕망없음 속에 그대의 유일한 충족이 있다. 그대의 엄청난 무력함 속에 불현듯 전 존재가 그대를 돕기 시작한다.
존재는 기다리고 있다. 그대가 스스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존재는 간섭하지 않는다. 존재는 기다린다. 존재는 무한히 기다릴 수 있다. 존재는 급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는 영원이다. 그대가 그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순간, 그대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 전 존재가 그대를 향해 들이닥친단. 그대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69]내가 희망없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대가 절망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히 내 안에 희망이 없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희망이 부재했다. 나는 내가 절망하고 슬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행복했다.

[170]하루 종일 이상하고 어리둥절했다. 또 그것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체험이었다. 과거가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과거들이 한번도 내게 속한 적이 없던 것처럼…….마치 그 과거들에 관해 어디선가 읽었던 것처럼, 그것에 대해 꿈을 꾸었던 것처럼, 마치 누군가로부터 딴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나는 과거로부터 풀려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일대기로부터 뿌리째 뽑혀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자서전으로부터 삭제되고 있었다. 나는 붓다가 아나타라고 부르는 비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지고 구분이 사라지고 있었다.

[177]처음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나는 더 이상한 개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물방울은 대양 속으로 떨어졌다. 이제 온 대양이 나의 것이었고 내가 대양이었다. 경계가 없었다. 마치 무엇이든지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힘이 솟아 올랐다. 나는 거기 없었다. 오직 힘만이 거기 있었다.

[194]따라서 이러한 것들이 바로 자격요건이 아닌, 액체와 같은 특질들이다. 작은 것들을 보지 말라. 그가 무엇을 먹는지 그가 무엇을 입는지, 그가 어디에 사는지……그러한 것들은 모두 관계없는 것들이다. 단지 그의 사랑을, 그의 연민을, 그의 신뢰를 보라. 심지어 그대가 그의 신뢰를 이용 한다 해도 그의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그대가 그의 연민을 오용하고, 그의 사랑을 훔친다 해도 그것은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의 문제이다. 그의 신뢰, 그의 연민, 그의 사랑은 똑같이 남는다.
삶에서 그의 유일한 노력은 ‘어떻게 사람들을 점점 더 깨어나게 할 것인가? 왜냐하면 깨어남을 통해서 그는 사람의 궁극적인 지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많은 사람들이 깨닫지만 그들이 모두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명료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느끼는 것을 전할 수 없다.

[233]나는 그들의 견해를 듣고 나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뭔가 근본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선생은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선생은 존경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선생이 존경을 요구한다면 그 선생은 단순히 자신이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직업을 잘못 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천직이 아닙니다.

[238나의 통찰 속에서 과학, 종교, 예술, 그것은 하나의 삼각형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참으로 다른 차원들이다. 그것들은 다른 언어들을 쓴다. 그것들은 서로 모순적이다. 그것들은 표면적으로는 조화되지 못한다. 그것들이 모두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깊은 통찰을 그대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나의 노력은 거의 불가능한 것을 하는 것이었다.

[241]깨어난 사람은 인간을 너무나 깊이 이해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는 모든 인간의 불행한 상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가엽게 여긴다. 그는 연민이 많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애초에 화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그대를 가엽게 여긴다. 그는 그대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244]나는 종교라는 단어와는 어떤 식으로도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종교의 모든 역사는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것은 추하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 비인간성, 그리고 온갖 사악한 것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되풀이하고 있는 똑같은 짓이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나는 아직도 종교라는 단어와 연관되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266]그는 말했다. “감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빌어온 지식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해방감을 주었소. 그래서 나는 다시 젊어졌소.”그는 일흔 살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제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소. 나는 모든 것을 무릅썻소.나는 부자였소. 나는 자이나 승려가 되기 위해 그것을 포기했고 이제 나는 자이나교를 포기했고 승려직을 포기했소.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서 완전한 자유를 실험하기 위해서 말이요.”

[271]그는 말했다. “아니다. 모든 존재는 순간적이다. 좌절할 일은 없다. 나는 그것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나는 그것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만약 대양의 파도가 그것을 부수는 것을 즐긴다면 우리는 둘 다 즐긴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만드는 것을 즐겼고, 파도는 그것을 부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니 존재계 안에는 두 배의 기쁨이 있었던 것이다. 왜 내가 좌절을 해야 하겠느냐? 파도도 나만큼이나 모래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나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276]말들은 부차적이다. 그 말들 사이의 침묵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대에게 명상의 일별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278]나의 성공은 그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공은 그대에게 진정하 명상의 맛을 주는 것. 그래서 그대가 명상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무심의 상태가 단지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자격도 필요치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283] 일단 그대가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이제 그대의 모든 초점이 바뀔 것이다. 그것은 수양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심을 갖추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과 그 모든 헛소리들을 믿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대 자신의 가능성을 느끼는 문제이다. 그리고 일단 그대가 그 가능성을 알고 그것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면 그대의 시야에는 완전히 다른 색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284]그대의 의식이 더 확고해짐에 따라 그대의 모든 삶의 패턴들이 변한다. 종교들이 최라고 부르던 것들은 그대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이라고 부르던 것들은 자동적으로 그대의 존재에서, 그대의 행동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로 해왔다.

Part Two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293] 만약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나와 똑같이 절대적으로 비어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두 거울이 서로 마주보고 있게 될 것이고 두 비어있음만이 비춰질 것이다. 무한한 비어있음이 비춰질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그러나 그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안에서 그대 자신을 생각해 볼 것이다.

[295]그렇다. 나는 프리섹스를 믿는다. 나는 섹스가 모든 사람이 나눌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타고난 권리라고 믿는다. 그것은 즐겁다. 그 안에 심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프리섹스’를 가르친다고 이야기해온 사람들은 정말로 불쌍하다. 그들은 성적으로 억압된 사람들이다.

[298]나는 그대에게 ‘성으로부터 초의식으로’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왔고 그대는 매우 기뻐했다. 그대는 오직 ‘성으로부터’라는 말만 듣는다. ‘초의식으로’는 듣지 않는다.

[299]그대는 섹스의 주인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노예였는가?만약 그대가 섹스의 주인이었다면 그때 그것은 어리석지 않다. 만약 노예였다면 그것은 어리석다.

[302]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운동이다. 사교도 아니고, 종파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 다만 명상을 위한 운동, 내면의 과학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것은 의식의 과학이다

[306]나에게 온 사람들은 점점 더 독립적이 되고 점점 더 그들 자신이 되어간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315]세상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가 그것이다. 네 번째 범주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그 네 번째,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

[320]사람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신이다. 단지 그것을 깨달아야 할 뿐이다.

[324]유일한 문제는 ‘언덕 위의 주시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깨어서 관찰하라, 지켜보는 자가 되어라. 그러면 그대는 충족될 것이다.
[328]나는 언제나 벌기 전에 쓴다. 돈은 어차피 들어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말한다. 써라!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오늘 써라.

[329]부유한 사람이 나에게 올 때, 그는 돈이 있고,직업이 있고, 집이 있고 건강이 있다. 그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깨닫게 된다. 그때 신에 대한 추구가 시작된다.

[337]명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놓치고 있다. 명상은 매우 심각해 보이고, 침울해 보이고, 교회와 같은 특성을 담고 있으며, 죽은 사람들이나 혹은 거의 죽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명상적인 사람은 장난스럽다. 그에게 있어 삶은 재미이다. 그에게 삶은 하나의 놀이이다. 그는 사람을 엄청나게 즐긴다. 그는 심각하지 않다. 그는 이완되어 있다.

[343]내가 아는 한, 춤과 웃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무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이다. 만약 그대가 정말로 춤을 춘다면 생각은 멈춘다. 그대는 춤을 추고 또 춘다. 그대는 돌고 또 돈다. 그대는 소용돌이가 된다.

[347]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좌절하고 실망한 채 돌아오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자기 존재의 중심에 도달한 사람이 실망하거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거나, 자살한 경우는 단 번도 없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그것이 바로 내가 명상을 과학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과학이 그런 것이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그것은 법칙이 된다. 명상은 과학적 방법이다. 왜냐하면 명상이 그대를 궁극의 지복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전 역사를 통틀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358]그들은 그대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진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일깨울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자극할 수 있다. 그들은 그대를 흔들 수 있고 깨울 수 있다. 그들은 그대에게 신, 진리, 니르바나를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그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선처적인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본성 그 자체이다.

[364]스승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다. 그것을 가르칠 방법이 없다. 그것은 경전을 넘어선, 말을 넘어선 전이이다. 그것은 전이이다. 그것은 그대 안의 에너지를 자극하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일종의 동시성이다.

[370]단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라, 만약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즉시 징벌이 따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보상이 따라 올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374] 나의 모든 가르침은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라’ 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포기하고 은둔할 필요는 없다, 오직 겁쟁이들만이 세상을 초기한다. 세상 속에 살라. 세상을 경험하다. 세상은 하나의 학교이다. 그대는 히말라야 속에서 성장할 수 없다. 그대는 오직 세상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377]깨달음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어남이 멈춘다. 사라진다. 그는 단순히 존재한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밤이 별들로 가득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꽃들이 더 이상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이 모든 것들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대 안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잔잔하고 고요하게 남아 있다. 깨달음 후에는 더 이상 일대기가 없다.

Part Three 유산

[380]나는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변치 않고 남아 있을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대고 갈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은 영원히 남을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결코 사라길 수 없다.

[386]과학은 객관적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며 종교는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다. 사실 그것은 한 마래 새의 두 날개이며 하나의 질문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다.

[391]명상은 붓다의 기여이다. 중요한 것은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더 고요해지고, 더 이완되면, 더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에 도달하기 위한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은 전 존재의 중심이다.

[402]나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침묵은 당신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마음이 쉬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그리고 단신에게는 그것이 참으로 쉽게 일어났소. 왜냐하면 당신이 수다장이이기 때문이오. 마음은 지쳐 있소. 거기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통 그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소. 명상을 한다고 자리에 앉았는데 처음부터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407]그대는 명상을 할 수 없다. 단지 명상 속에 있을 수 있을 뿐이다. 명상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명상은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414]아침 명상은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10분 동안 그대는 빠른 호흡을 행하게 된다. 그대는 호흡을 통해 존재 속으로 들어간다. 그대는 호흡에 활력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대의 생명 그 자체를 호흡에 실어야 한다. 그 강렬한 호흡을 통해, 호흡이 나갈 EOAS 그대의 영혼도 호흡과 함께 나가고, 호흡이 들어올 때면 전 존재가 호흡과 함께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대는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오직 호흡만 남을 정도로 강렬하게 호흡해야 한다. 마치 그대 자신이 호흡 그 자체가 된 것처럼…….

[418]내적인 도박은 그 정반대이다. 패배조차도 다가오는 승리의 시작이다. 명상자는 결코 마지막에 지지 않는다.그는 여러 번 진다. 하지만 마침내는 이긴다.

[423]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내가 그대들에게 주는 미 명상법은 머지않아 대단한 주용성을 지닌 요법이 될 것이고,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되돌려 놓는 방법이 될 것이다.

[442]동양에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영적인 공간 속에 있고 싶을 때면 언제나 그들은 히말라야로 가고 싶어한다. 사회가 너무나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 싫증이 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싫증이 나 있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다리를 원한다. 사회와 교통할 수 있는, 타인들과 교통할 수 있는 법을 원한다. 다리를 창조하는 법을, 타인에게로 움직이는 법을 원한다. 그래서 그대 자신을 잊을 수 있게 말이다. 동양의 사람들은 사회에 싫증이 나 있다. 그들은 너무 오래 사회와 함께 살았고 사회는 너무나 도처에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유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로워지고 싶거나 침묵하고 싶을 때면 그들은 언제나 히말라야로 달아난다.

[452]그들은 동양의 지식계급을 거의 이류의 서양 지식계급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서두름, 조급함, 성급함, 끊임없는 고뇌의 근심이라는 그들의 병을 동양에 심어 주었다.

[459]나의 노력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지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461]이 세상과 저 세상, 소리와 침묵, 사랑과 명상, 사람들과 관계 속에 함께 있는 것과 홀로 있는 것. 그대는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함께 겪어야 한다. 오직 그때에만 그대는 그대 존재의 가장 깊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을 알게 될 것이다.

[463]소유는 있다. 그러나 주인은 사라졌다. 커다란 불균형이 일어났다. 부는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부유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가난함을, 커다란 빈곤함을 느끼고 있다.
[468]인도에서 가난은 숭배받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끊임없이 가난을 비난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종류의 가난에도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은 영성이 아니다. 가난은 영성이 사라지는 원이이다.

[471]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부유함이 모두 주어져야 한다. 왜 둘 다여서는 안 되는가? 과학은 그대를 외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종교는 그대를 내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요가, 탄트라, 도교, 수피즘, 하시디즘이다. 이런 것들이 내면의 기술들이다.

[473]동양은 더 이상 동양이어서는 안 되고 서양도 더 이상 서양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전 지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세계는 하나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시대는 갔다. 분열의 시대는 갔다. 정치가들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류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단계는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단계, 오직 하나의 인류만이 존재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그 때 엄청난 에너지가 풀려나올 것이다.

[479]나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의 메시지는 신인가, 호모노부스(homo novus)이다.

[481]신인간은 ‘양자택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양쪼 모두’일 것이다. 신인간은 현실적이면서 종교적이고, 세속적이면서 초세속적일 것이다. 신인간은 자신의 전체성을 받아들일 것이며 어떤 내적인 분열도 없이 온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는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신은 악마와 대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도덕성은 부도덕성과 대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립을 모를 것이다.

[486]종교는 내세만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대는 이 세상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소홀히 하는 것은 그대 자신의 뿌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과학은 내세를, 내면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대는 꽃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그대가 꽃을, 내면 깊은 곳의 존재의 핵을 소홀히 한다면 삶은 모든 의미를 잃는다. 나무는 뿌리를 필요로 한다. 인간도 뿌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뿌리는 땅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나무는 자라나기 위해 하늘을 필요로 한다. 인간도 뿌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뿌리는 땅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나무는 자라나기 위해 하늘을 필요로 한다. 무성한 잎을 이루고 수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열린 하늘을 필요로 한다. 그때에만 나무는 충족된다. 그때에만 나무는 의미와 의의를 느낀다. 그때에만 나무에게 있어 삶은 의미가 있어진다.


III. 책을 읽은 후

[속세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내가 붙잡아야 했었던 것은 ‘속세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나’였다. 책을 읽다가 그 안에 빠져들고 있는 나를 수시로 발견했고 그 안에서 나를 끄집어 내기 위해 책 읽기를 쉬어 주어야 했다. 그의 가르침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 동안 내가 학교의 배움에서 얻은 것은 모두 부질 없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버려야 하는 악이었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이 생에서 내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깨달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경험했던 깨어남의 일부의 과정을 겪은 적이 있는데 오쇼의 7일간의 경험을 기록해 놓은 기록을 통해서 그 경험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신기하게도 그가 겪은 경험들이 짧고 얕은 형식으로 그러나 같은 형태로 나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가령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부정적인 과거가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진 느낌을 받았으며, 그 경험이 지나가는 동안 몇 생을 한꺼번에 겪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속세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속세를 떠나서 얻는 깨달음이라면 이 속세 안에서 영원히 구현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깨달음이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속세 안에서 구현이 되지 않는 깨달음이란 어쩌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러고 보니 오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374] 나의 모든 가르침은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라’ 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포기하고 은둔할 필요는 없다, 오직 겁쟁이들만이 세상을 포기한다. 세상 속에 살라. 세상을 경험하라. 세상은 하나의 학교이다. 그대는 히말라야 속에서 성장할 수 없다. 그대는 오직 세상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몇 가지 의문점들을 해결하다.]

개인적으로 종교나 명상의 세계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점들을 풀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몇 가지 의문점들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답을 얻은 것 같다.

<왜 동양인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개인적인 수행을 택하고 반대로 서양인들을 그룹 방편들을 택하는가?>
오랫동안 나에게는 이 점이 의문이었다. 다음의 오쇼의 설명을 통해 나는 그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에서의 인간 관계의 다름, 즉 그러한 문화가 그들이 서로 다른 형식의 깨달음의 과정을 추구하게 만든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것은 내가 한국이라는 동양 사회에 살면서 느끼는 관계의 질척함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일종의 싫증. 반대로 서양인들과의 개인주의적인 관계 안에서 느꼈었던 고립감. 그 고립감에 대한 일종의 싫증. 이 두 가지에 상반적인 싫증의 형태에서 나타났던 내 경험이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게 해 주었다.

[442]동양에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영적인 공간 속에 있고 싶을 때면 언제나 그들은 히말라야로 가고 싶어한다. 사회가 너무나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 싫증이 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싫증이 나 있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다리를 원한다. 사회와 교통할 수 있는, 타인들과 교통할 수 있는 법을 원한다. 다리를 창조하는 법을, 타인에게로 움직이는 법을 원한다. 그래서 그대 자신을 잊을 수 있게 말이다. 동양의 사람들은 사회에 싫증이 나 있다. 그들은 너무 오래 사회와 함께 살았고 사회는 너무나 도처에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유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로워지고 싶거나 침묵하고 싶을 때면 그들은 언제나 히말라야로 달아난다.

또 다른 나의 의문은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부유함과 물질적인 부유함을 왜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도달해 보고 싶다> 였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그가 말하는 다음의 구절에서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 두 가지의 부유함을 동시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은 과학과 영성의 기술을 일치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의 기술을 일치 시킬 수 있다면 두 가지 부유함을 동시에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471] 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부유함이 모두 주어져야 한다. 왜 둘 다여서는 안 되는가? 과학은 그대를 외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종교는 그대를 내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요가, 탄트라, 도교, 수피즘, 하시디즘이다. 이런 것들이 내면의 기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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