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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일 01시 31분 등록
칼의 노래
김훈 / 생각의 나무


Ⅰ. 저자에 대하여

‘김훈’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가 앞부분에 나온다. 그에 대한 글을 하나씩 찾아 읽으면서 만난 작가 김훈은 매우 다채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김훈의 인생에, ‘가난’, ‘기자’, ‘아버지’, ‘자전거’, ‘난중일기’.... 또 어떤 것을 키워드로 넣을 수 있을까.

그는 가난했고, 대학을 다니다 말고 밥벌이를 위해 한국일보의 기자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숟가락 한개 남겨주지 않았고, 아버지의 묘지 비용은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졌다. 할부금을 다 내고 나니 눈물이 문서와 문물이 남았다. 김훈은 밥벌이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는 그것을 수필로 썼다. 그의 가난은 먼젓번 끼니를 먹었어도 다음번 끼니를 때울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뚜렷이 인식시켰다.

김훈은 대학 때 읽은 난중일기를 30년이 지난 후에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자신이 읽은 난중일기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소설은 반응이 좋았다. 그가 쓴 소설들은 한국문학이라고 이름붙이는 모든 상들을 하나씩 따내었다. 어떤 기자는 그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고도 했다. ‘칼의 노래(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 ‘화장(단편, 2004년에 이상문학상 수상)’, ‘언니의 폐경 (단편, 200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그리고 그가 원하는 비싼 자전거를 살만큼 ‘남한산성’도 인기가 있다.

김훈의 글은 흡인력이 있다. ‘칼의 노래’ 서문을 읽었을 때,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매혹적이었다. 글의 글은 읽을 때 가슴이 아프지만 빨리 읽혔다. 그는 몽당 연필을 깎아서 소설을 쓴다. 다듬고 다듬어서 하루에 3~5장의 원고를 쓴다. 김훈의 소설은 고르고 골라서 세상에 나온 간결한 글들이라고 한다. 간결함에 힘이 있다.

김훈은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역사를 말하고 싶어한다.
“목숨 걸고 쓰는데 하루에 원고지 3장 밖에 못 쓰고, 그나마 갖다 버리는데, 그들이 모르겠다면 난들 어쩌겠어. 헤어질 뿐이지. 사실 나는 독자들을 고문하고 싶었어. 잔혹하게 끝까지 고문하자. 희망은 안 보이는데 고문만 하면 결국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었어.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독자를 고문해서 사지로 몰아넣듯이 했어. 기름 짜는 압유기에 넣어 독자를 짜려고 했어. 그래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지. 그래야 김훈을 욕하더라도 삶과 역사를 생각할 것 아냐.”

조선닷컴의 김광일 기자와의 인터뷰의 한 대목(2007.7.20 기사. 당시 그는 소설 ‘남한산성’을 쓴 후이다)이다. 김훈은 ‘칼의 노래’ 서문에서도 자신이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아팠다고 기술했다. 그는 목숨걸고 글을 썼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보고, 제멋대로 끌어들여 말한다. ‘칼의 노래’에 나오는 명랑해전에 12척이 300척에 대항한 것을, 정치인들이 자신이 그렇게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장담을 하는 모양을 보고 작가 김훈은 한마디한다. 칼의 노래에서 말하는 이순신이 원하는 무(武)는 무가 필요없을 만한 세상에 사치로 있을 무였다. 지극한 사치. 사방에 적은 맞은 지옥 속에서 징징징 울러대는 칼이 아닌, 다른 무를 원했었다. 그런데, 그의 소설을 읽고, 이순신의 이야기가 담긴 TV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은 그 칼을 거꾸로 이해한다. 그래서 김훈은 TV 드라마는 안보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1) 김훈의 글에 대한 치열함 혹은 욕심
김훈이 기자생활을 했던 한국일보의 문화부 기자들이 김훈을 만나 인터뷰(2004.12.29 기사)를 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번 문학동네에 소설 '머나먼 속세'를 쓰셨던데, 만족하십니까.

“작가는 실패할 수도 있지. 기자라고 기사를 매일 잘 쓸수 있냐? 내년 2월부터 ‘치정’에 관한 소설 쓰려고. 앞으로 인류가 소설을 쓸 일이 없도록 만들게. 여기 후배들 예쁘지만 다들 소설 못쓰게 해야지(웃음).”


이 인터뷰를 통해서 그가 쓰는 글이 ‘하나의’ 소설이 아니라 ‘소설’ 그 자체를 담는 절대적인 것을 말하는 치열한 것임이 그의 웃음 속에는 녹아있다.

2)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와 글
“나는 잡놈이여.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깨지는 인간이 바로 김훈이야. 내 살과 뼈는 김구 선생 따라다니던 아버지(김광주)에게서 받은 것이거든. 염상섭 채만식을 존경하지 않아.

세상의 바탕이 폭력이라는 걸 알았던 아버지를 존경하지. 난 대학에서 배운 게 없어. 길바닥, 잡놈 사회서 배운 거야. 기자라는 건 잡놈 근성이 있어야 돼. 아카데미즘도 아니고 리얼리즘의 세계라고.”

(한국일보 2004.12.29)


-‘비호’를 쓴 소설가이자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광주 선생이 아버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무엇인가. 문장인가. 정신인가.

“나는 유산이라고는 숟가락 하나 받은 게 없어. 우리 집에 장안의 글쟁이들이 다 왔어. 그러나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버지를 묻고 와 그 묘지 값을 못내 13개월 월부로 갚았어. 제대 후(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는데 첫 월급이 2만5000원이야. 아버지가 장흥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히셨는데, 외판원이 와서 내 봉급에서 묘지 값으로 7000원씩 떼 갔다고. 월부로 다 갚고 나자 그쪽에서 10평 묘지에 대한 문서를 주데. 이제 네 것이다. 그날 산소 가서 소주 먹고 통곡했어. 그런 아버지야. 허랑방탕하고 술을 엄청 먹었지. 상해에서 김구 캠프에서 한 20년 먹고, 광복된 서울에서 먹고, 6·25때 부산 피난 가서 먹고, 수복 후 명동서 박인환과 먹고…. 나는 지금 술 먹는 것도 아니야. 아버지는 동아시아의 격변기를 따라다니며 술 먹었지. 술의 본류를 따라다니며 먹은 것이지.”

―지금도 아버지 편인가.

“지금도.”
(조섯닷컴 2007.7.20)

뼈와 살을 준 아버지, 2대에 걸친 '기자' 세상을 향한 눈, 아버지가 후반기에 구구술해서 대필하게 했던 문장들, 가난.... 김훈을 더 알려면 김훈이 말하는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에 좋을 듯 하다. 그의 정신의 바탕이 되어주었을 것 같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정외과 입학 및 중퇴,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시사저널> 편집국장, 국민일보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등으로 일했다. 저서로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풍경과 상처』『빗살무늬 토기의 추억』(1995), 『자전거 여행』(2002),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칼의 노래』『남한산성』이 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책 머리에 – 2001년 봄, 김훈 쓰다.

[19]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칼리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 칼의 울음

[21] 버려진 서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 안개 속의 살구꽃

[31] 원균이 쓰러져 우는 군사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길을 열었다. 원균은 소리쳤다.
- 울지마라, 적들이 듣겠다.
원균은 내 함거 위에 서울의 요로에 보내는 진상품 보따리를 실었다. 말린 홍어와 미역이었다.
- 갈 길이 멀겠소.
- 무운을 비오.
원균과 나의 작별은 그토록 무덤덤했다.

# 다시 세상속으로

[39] 권율은 무섭게도 집중된 위엄을 가진 사내였다.

[40] 나는 종을 시켜 칼을 갈았다. 시퍼런 칼은 구름 무늬로 어른거리며면서 차가운 쇠비린내를 풍겼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 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 칼과 달과 몸

[41]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믿었다가 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숨막혔다. 좀더 정직하게 말해보자. 사실 나는 무인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

[44] 이미 숨이 끊어진 아전의 몸을 으깨던 매와,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었을 그의 식속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47]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 입이 작은 그 여자는 큰 놋숟가락을 힘들어했다.
- 내가 출옥했기로 네가 어찌 왔느냐?
- 전에, 제 몸을 편안해하시기에……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답벽에 비친 그림자의 입이 그렇게 말했다.

[48] 나는 그 여자를 안 듯이 그 여자를 베어주고 싶었다.

[49] 아침에 나는 그 여자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내가 먼저 떠났다. 나는 여진의 삶의 궤적을 알지 못했다. 함평에서도 나는 여진의 내력을 현감에게 물어보지 않았었다.

# 허깨비

[50]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음으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52] 길삼봉인지 아닌지 밝혀지기 전에 그는 옥에서 죽었다. 죽었으므로, 그는 길삼봉의 대접을 받았다. 감옥 안에서 그는 늘 벽에 기대는 일이 없이 단정히 앉아서 옷깃을 여미었고, 그의 낯빛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감옥으로 면회를 온 가족들에게 그는 바를 정(正)자 한 글자를 써서 보여 주었다.
- 너희가 이 글자를 아느냐?

[53] 목격한 사실을 자백하라는 위관의 심문을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때리고 꺾고 비틀고 지지면서 형리들은 울었고, 울던 형리들은 다시 형틀에 묶였다.

[54] 내 칼은 보이지 않는 적을 벨 수 없었다. 나는 두개골 속이 가려웠다. 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헛것은 칼을 받지 않는다. 헛것은 베어지지 않는다.

[56] - 어디로 가려느냐?
- 나는 단지 살고 싶었고. 여기가 아닌, 먼 섬으로 가려고 했소.
동헌 노대석 위에 꿇어앉히고 군관을 시켜 목을 베었다. 칼을 받기 직전에 김옥천은 고개를 들었다. 상대를 밀쳐내는 눈동자였다. 젊은 사내의 거친 힘이 끼쳐왔다.
- 나으리, 민망한 말씀이오만…….
- 말하라.
- 우리는 지금도 살고 싶소. 나를 죽이시고 저 여자를 살려 주시오. 저 여자를 나으리께 바치리다. 곱고 착한 여자요. 거두어서, 죽이지는 마소서.
나는 군관에게 소리쳤다.
- 집행하라.
(중략)
나는 여자를 풀어주었다. 풀려난 여자는 갯가로 내려가 해송 가지에 목을 매고 죽었다.
(중략) 그 여자의 늙은 아비인 늙은 어부를 잡아들였다. (중략)
- 그 배는 내 배요, 나으리 배가 아니오. 내 배를 내 딸에게 내준 것이오.
(중략) 동헌 문 밖에는 어부의 처와 아들이 지게를 지고와서 기다렸다. 어부의 아들은 늘어진 아비를 지게에 싣고 돌아갔다.

# 몸이 살아서

[61] 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받던 날, 나를 호송하던 의금부 도사는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64] ... 지난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한 것은 역의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것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65]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나의 죄는 유죄가 되어도 하는 수 없을 것이었다.

[66]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이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서캐

[70]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진도 여자들은 바닷가 언덕에 모여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뛰고 노래했다. 우수영 쪽 여자들도 바닷가에서 둥글게 춤추면서 물 건너 진도 쪽 여자들에게 화답했다. 그 노랫소리는 수영 안까지 들렸다.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명이 모질고도 신기하게 느껴져, 칼 찬 나는 쑥스러웠다. 적들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74] 내 속에서 우는 칼을 나는 달랬다. 칼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았다.

# 식은땀
[76] 성난 파도와도 같은 한없는 적의가 어떻게 적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작동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지 못했다. 적들은 오직 죽기 위하여 밀어닥치는 듯했다. 임진년에 나는 농사짓듯이, 고기를 잡듯이, 적을 죽였다. 적들은 밀물 때면 들이닥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79]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80] 임금은 강한 신하를 두려워했다. 이몽학이 처음에는 의병을 가장했으므로, 임금에게 의병이란 뒤숭숭한 무리들이었다.

[81] 김덕령은 용맹했기 때문에 죽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함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82]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는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武)와 충(忠)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 적의 기척

[85]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 일자진

[93] -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94] 나라의 칼을 찬 장수가 어찌 이러실 수가 있소. 나라의 칼로 백성을 지키지 못할진대 나라의 칼로 다 죽여주시오.
늙은 농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내 마음속에 몇 방울의 눈물이 고여왔다. 나는 겨우 말했다. 거짓말이 되더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칼 찬 자의 죄가 실로 크다. 내 이번 싸움에서 기필코 이길 것이니 그때 너희들은 마을로 돌아오라.

[95] 그(송여종)는 여수에서 의주에 이르는 그 멀고 먼 길 위의 일들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장년이었다. 그가 진을 묻고 있다. 나는 되물었다.
- 송 만호, 어떤 진이 좋겠는가?
송여종은 머뭇거렸다.

[96]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 전환

# 노을 속의 함대

[105] 북서 밀물에 올라탄 적의 함대는 빠르고 가벼웠다. 적은 원양을 건너가는 어족(魚族)의 무리처럼 물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 ‘물의 은총을 받다’

# 구덩이

[117]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124]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 바람 속의 무 싹

* 이 장은 덤덤하면서도 슬프다. 전쟁의 상황은 지옥이라고 했다. 이 장은 전쟁의 상황과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서 역병이 돌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위를 사실로만 묘사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언제가 영화 제목 중에 <아무도 모른다>라는 게 있었다. 전쟁 후의 소년과 소년의 척박한 삶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그들의 상황은 돌보는 사람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것에 동정을 보내는 이가 없고, 영화감독도 무덤덤하게 그냥 그들의 일상을 묘사했는데, 감정을 배제한 체 그냥 지켜보아야만 하는 게 더욱 슬프다고 영화해설가는 말했었다.

[130] 벽진에 경상 연안 쪽 피난민 50여명이 들어왔다. 벽진 백성의 딸과 피난민의 아들이 무너진 향교 마당에서 혼인을 했다.
몽포 백성들이 보리를 심고 무씨를 뿌렸다. 흘레가 순조로워 염소떼가 크게 늘었다.

[132]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대담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입이 무겁고 눈썰미가 매서웠으며, 움직임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김수철은 졸음을 참고 반듯이 앉아서 핥듯이 마셨다.
- 수철아, 읍진이 다 무너지는 것이냐?
- 본래 무너져 있던 세상입니다.
- 수철아, 죽지 마라. 명령이다.
- 네 나으리, 읍진에 무 싹이 올라오고 있으니...... 이제는 주무실 시간입니다.

# 내 안의 죽음

[135]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137]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140] 면사첩(免死帖)을 받던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41] 김수철의 시선은 오랫동안 면사첩에 박혀 있었다. 그가 눈물을 떨구었는데, 그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환갑연의 덕담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나으리, 오래오래 사십시오.
- 알았다. 내 그럴 작정이다.
- 보고는 내일로 미루리다. 편히 주무십시오.
- 그래라. 피곤하니 물러가라.
김수철은 들고 왔던 문서 두루마리를 펼치지 않은 채 그대로 들고 갔다.

# 젖냄새

[145] 거기서, 면의 출생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다시 젊은 아버지였다. 삼수갑산에서 임기를 마치고 고향 아산으로 돌아왔을 때 면은 옹아리를 하면서 첫돌을 넘기고 있었다.

[145] 내가 보기에도 면은 나를 닮았다. 눈썹이 짙고 머리 숱이 많았고 이마가 넓었다. 사물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어올리며 빨아당기듯이 들여다보는 눈매까지도 나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눈매는 내 어머니의 것이기도 했다. 시선의 방향과 눈길을 언지는 각도까지도 아비를 닮고 태어나는 그 씨내림이 나에게는 무서웠다. 작고 따스한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비린 젖냄새 속에서 내가 느낀 슬픔은 아마도 그 닮음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이다.

[146] 개구쟁이 때부터 면은 날이 예리한 연장으로 나무나 기왓장을 저미고 자르고 깨뜨려서 모양을 바꾸어 놓는 장난을 좋아했다. 그 아이는 연장의 날이 부딪혀오는 사물의 저항을 신기해하는 듯했다. 면의 장난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것도 별 수 없이 사내로구나’ 싶어서 속으로 눈물겨웠다.

[151] 젊은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이간의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며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면의 죽음을 알아챈 종사관과 군관들은 내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방에는 종사관 김수철이 보고 서류를 부시럭 거리고 있었고 마루 밖 댓돌 앞에는 창을 쥔 위병이 번을 서고 있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 생선, 배, 무기, 연장

[155] 배는 살아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과 협선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랑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는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해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아나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 사지에서

[162] 적은 이미 연안에 육상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적은 오지 않았고, 나는 우수영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 다시 적이 온다면 우수영 앞 명량 수로는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나는 명량 수로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 구도자 갚은 면이 보인다. 이순신의 관점에서 쓰고자 했다던 김훈의 이야기를 감안하면 이순신이 구도자인지, 김훈이 그런지 알 수 없다.
다만, 화가들이 초상화를 실제 인물과 닮게 그리면 그릴수록, 초상화에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담으면 담을수록 그 속에서는 그리는 인물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화가도 드러난다고 했다(그런데, 도대체 나는 이 구절을 어디에서 본 거야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다.)

# 누린내와 비린내

[167]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했다.

[171] -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 물비늘

[174] - 연안 백성들이 수군을 따라나섰습니다. 며칠 전부터 백성들이 술렁거리면서 짐을 챙겼습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내 마음속에서 우레가 울었다. 통곡 소리가 가까워졌다. 군관들이 협선을 몰고 나가 백성들의 배를 막았다.
- 막지 마라. 다가오게 하라.

[178] 영암, 나주, 무안의 넓은 들은 아직도 온전했고, 백성과 풍속이 보존되어 있었다. 백성의 양식을 얻어먹기 편한 자리였다. 백성의 뒷전으로 숨어들어온 것만 같아서 칼 찬 나는 민망했다.
* 매일 매일 자신을 닦아내는 사람.
참회록의 그 사람, 윤동주. 그리고..... 유인창이 생각나네.

[178] 밀물이 내수면 깊숙이 달려들어 큰 강은 바다가 밀릴 때마다 숨차했고, 썰물은 아득히 멀어서 바다는 개벽을 거듭하는 것 같았다.
* 이 구절 왜 이리 슬프노.
작가 김훈과 같이 난중일기의 현장을 여행한다면 나는 내내 울어야 할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나는 숨찬 바다를 볼 것이다. 개벽을 거듭하는 갯벌을 볼 것이다.

[180] 눈으로 보지 않는 것과 귀로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 그대의 칼

# 무거운 몸

[195] 식은땀은 끈끈이처럼 내 몸을 방바닥에 결박시켰다. 나는 내 몸이 밀어낸 액즙 위에서 질퍽거렸다.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내가 어디에 와서 누워 있는지 알지 못했다.

# 물들이기

[200]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201-202] 함경도에서 남해안으로 내려온 뒤, 칼은 존망이 명멸하는 세(勢)의 마당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았고, 내 방에 걸려 있었다.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는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는,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明滅)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
* 도(刀)를 얘기하나? 도(道)를 얘기하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순신이 칼을 보면서 마음을 닦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텐데.... 너무 닦아서 숨막힌다. 몇 차례 읽으면 숨이 쉬어질까? 처음에 읽을 때는 이렇게 묵직하지는 않던데, 숨막히다. 머리에 자꾸 열이 오른다.

# 베어지지 않는 것들

[205] 나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 출병하는 군대의 실전을 신뢰할 수 없었다.

# 국물

[220] 밥이 익는 향기 속에 시장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장터 멍석 위에서 잠들었다.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했다.
(중략) 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
(중략) 국에 만 밥을 넘길 때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을 나는 느꼈다. 나는 포식했다. 돌아갈 때 안위는 쌀 한 봉지를 아낙에게 주었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내려갈 길에 또 들르시라고 아낙은 말했다.
* 따뜻하다.

# 언어와 울음

# 밥
[232]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 앞에서 무효했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238] 그해 겨울의 밥은 무참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 경상 해안 쪽에, 백성의 군량을 빼앗은 적의 군량은 쌓여 있었다.

# 아무 일도 없는 바다

[239]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 김훈은 아팠다. 그랬을 것이다. 읽는 나도 아프다. 이순신이 아프다. 나도 아프다.

# 노을과 화약 연기

[250] 여수 좌수영에서 옥포로 이동하는 동안 연안 물목의 골짜기 마다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다. 노인과 아이가 짐을 지고 서로 부축하며 물가로 내려왔다. 피난민들은 내 함대를 향해 발을 구르며 통곡했다. 쪽배를 타고 함대 쪽으로 건너오는 백성들도 있었다. 나는 겨우 말했다.
- 내가 싸움을 마치고 돌아갈 때 너희들을 데리고 갈 터이니 그때까지 적에게 들키지 말라. 물가에 얼씬거리지 말고 산위로 가거라.
옥포 싸움을 마치고 여수로 돌아갈 때, 피난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주자앉아 있었다. 나는 피난민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수가 너무 많았고, 뒷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피난민들이 울부짖는 물목을 굽이굽이 돌아서 함대는 좌수영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 나는 피난민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무력과 굴욕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252]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 사쿠라 꽃잎
[254] ‘고니시 유키나가’
* 고니시 유키나가, ‘야소교(p.225)’ ..... 사람이름, 지명을 익숙한 말로 썼다. 김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썼다. ‘풍신수길’이라고 쓰지 않았다. 야소교를 ‘예수교’라고 쓰지 않았다. 읽기 편한말과 시대를 알 수 있는 말로 썼다.

[258] 칼날에서 칼등 쪽으로, 숫돌에 갈리운 칼은 쇠의 푸른 속살을 드러냈고, 쇠의 속살 위에서 빛은 구름 무늬로 어른거렸다. 속의 속살은 피부로 싸이지 않은 고기의 속살처럼 보였다. 언젠가 임금이 몸보신하라고 보내준 쇠고기의 단면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쇠고기의 단면에 목숨의 안쪽을 이루던 난해한 무늬들이 드러나 있었다. 쇠의 안쪽에도 저러한 무늬가 있었구나, 언젠가 내가 적의 칼을 받게 되면 저러한 쇠의 무늬가 내 목숨의 무늬를 건너가겠구나, 적의 칼의 쇠비린내에 내 피의 비린내가 묻어나겠구나, 나는 죽은 적의 칼을 들여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261] 그날 밤 안위는 취했다. 적의 내륙 기지에 조선 백성 수백 명이 끌려와 있고 디들이 모두 적의 최일선에 배치되어, 아군이 순천을 공격한다면 우선 이 전진 배치된 조선 백성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안위는 무표정했다. 안위는 자꾸 마셨다.

# 비린 안개의 추억

[268] 다시 자리 잡아가는 백성들의 삶이 나는 불안했다. 그 해 봄에 적은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 더듬이

[276-278] - 저의 부하들 세 명이 이번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보고받으셨을 줄 압니다.
- 너의 불찰 아니냐? 부하가 죽으면, 그 상급자의 불찰이다.
- 저는 죽지 않겠습니다.
송여종의 말투는 거칠었다.
- 저자들 중에 내 배를 쏜 다들도 있습니다. 저 자들의 머리를 걸지 않으면 어찌 우수영을 통솔하겠습니까?
종을 불러 식은 찌개를 데워오게 했다.
- 그래야 하겠느냐?
- 그래야 하옵니다.
- 송여종, 베어져야 할 자는 너다.
송여종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나다. 네가 백성을 온전히 지켰더라면, 어찌 백성이 너에게 총을 쏘았겠느냐?
송여종은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 데리고 가거라. 이제, 너의 처분에 맡긴다.
다음날 아침에, 송여종은 우수영으로 돌아갔다. 송여종은 조선인 포로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병들고 다친 자들을 귀향시키고 나머지는 우수영으로 보내 협선의 격군들로 배치했다. 검불처럼 앙상한 노인들이었다. 나의 노와 적의 노를 번갈아가며 저어야 하는 백성을 생각하면서, 나는 머리의 비듬을 긁었다. 나는 찬 청정수를 마시고 싶었다. 조선인 포로 1천여 명은 적의 순천 요새에 전진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적에게 둘러싸였고 백성들에게 둘러싸였다. 바다에는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없었다. 붙잡힌 백성들을 앞세우고, 적은 또 다가오고 있었다.

# 날개

[279] 나는 적의 공세 안에 적의 죽임이 내포되어 있기를 바랐다. 달려드는 적의 살기 속에 적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적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에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더라고 나는 적에게 이미 내포되어 있던 죽음만을 죽일 수 있었다.

[281] 진은 거대한 새처럼 물위에서 너울거린다. 너울거리면서 적을 가슴깊이 품는다. 품어서 죽인다. 펼쳐서 가두고, 조여서 품고, 품어서 죽인다. 적을 품어서, 적의 안쪽에 숨어 있는 적의 죽음으로 적을 죽인다.

[281] 물은 늘 거칠었고, 물은 노에 저항했다. 배는 저항의 힘으로만 나아갔다.
물은 처덕거리려는 날개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돌아서서 펼치고, 조이면서 다가올 때, 노를 잡은 격군들의 몸은 북과 겉돌았다. 북에는 날개의 환상이 담겨 있었고, 노는 물에 잠겨 있었다.

# 달무리

[287] 이억수는 팔금도 삼대 객줏집 장손이었다. 소싯적부터 노꾼들을 부려 배를 타고 다니며 연안 고을들을 돌며 건어물, 옹기, 죽제품, 소금을 교역했다. 영암, 해남, 강진 보성에 이르는 연안 물길을 이억수는 땅을 딛고 다니듯했다. 그는 여러 갈래 미세한 물길들의 개별적 질감을 알고 있었고, 물길들이 바다에서 합치고 갈라서는 흐름을 알고 있다.

[288] -수군의 일이 지금 다급하다. 네가 이 안개 속으로 물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해가 오르면 휠씬 걷힐 것이니 그 동안만 더듬으면 해남까지는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물길을 찾을 수 있느냐?
-몸이 아는 일입니다. 몸이 아는 시간과 배의 속도를 가늠해서 위치를 잡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바람이 없어 물길이 다를 제 성질로 돌아왔고, 또 가끔씩 안개 사이로 섬 그림자가 보이기도 하니, 배를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격군을 다그쳐서 빠르게 나가지는 마십시오.
* 몸이 아는 일이라... 했다. 몸이 아는 일이라니.

[292] 갑판 밑에서 노를 잡던 적의 격군들이 물위에 쏟아져 내릴 때, 조선말로 비명을 질렀다. 썰물에 떠내려간 적의 격군들은 대부분이 조선 백성들이었다. 생포된 자들이 그렇게 진술했다. 적선 한 척은 대체로 격군 50명이 저었다. 거기에 교대 병력을 3,40은 태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들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그만두었다.

[293] 달무리가 함대를 따라왔다. 함대는 달무리의 가운데를 저어나갔다. 달무리 안에서, 시체들이 이물에 부딪혔고 노에 맞아 으깨졌다. 그날 밤 본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새벽에 우수영으로 들어가 부상자들의 상처를 잿물로 씻었다. 우수영에서 장졸들을 재웠다. 우수영으로 가는 물길에서 나는 선실에 누워 있었다. 누운 몸이 물결에 흔들렸다. 화약 연기를 쏘여 두 눈이 쓰라렸다. 나는 갑옷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

# 옥수수숲의 바람과 시간

[297] 수졸은 고리짝 위에 가마니를 덮고 그 위에 다시 소금을 뿌렸다 고리짝에 담긴 머리통들의 제가끔의 표정들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것들을 칼로 벨 수는 없었다.

[298] 보성만 싸움에서 돌아온 격군들 중늙은이와 병든 자 20여명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암태도 농부들이 보내온 돼지 5마리로 귀향자들에게 저녁을 먹였다. 수영에 남는 장졸들과 귀향자들이 밤늦도록 먹고 마셨다. 고향이 없어져버린 늙은 귀향자들이 술 취해서 제 고향 노래를 부르며 울었다. 늙은 격군의 눈물은 눈가를 겨우 적셨고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장졸들 틈에 섞여 돼지간 몇 점을 집어 먹었다. 나는 귀향자들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300-301] 포로들이 흘러내리는 시신의 조각들을 삽으로 떠서 들것에 실었다. 시신을 옮기면서 포로들은 울었다. 늙은 포로도 울었고 젊은 포로도 울었다. 주려서 퀭한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늙은 포로의 울음소리는 목울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뱃속에서 꾸룩거렸다. 늙은 포로는 메마른 소리로 울었다. 늙은 포로의 울음소리는 파충류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벌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들은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벌적은 것으로 보였다.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생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처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략)
그때, 적들은 죽기로 작정한 자들처럼 필사적으로 울었다. 적의 울음의 기세는, 내 함대의 정면으로 들이닥치던 적의 공세를 닮아 있었다. 그 울음은 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울음을 모두 소진 한 뒤에, 울음의 끝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맹렬한 울음이었다.

# 백골과 백설

[309] 명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해서 강화한다면 나는 고려 때의 삼별초처럼 함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중략) 그러나 나의 죽음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식으로는 오지 못할 것이었다.

[312]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오지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 수철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느냐?
김수철의 시선은 바다 쪽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 나으리, 이미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 일본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을 것이다.
김수철이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나으리, 이 문서는 장졸들에게 발설치 마십시오.
- 너도 발설치 마라. 조정이 가엾구나. 우리는 가엾지 않다.
* ‘우리는 가엾지 않다.’

[313] - 수철아, 내가 아프다. 네가 담종인에게 지금 즉시 답장을 써라.
- 전하실 뜻을 말씀해 주시면....
- 고향이 이미 없다고 써라. 기어이 원수를 갚겠다고 써라. 적의 종자를 박멸할 것이라고 써라. 간략히 써라.
- 김수철이 제 숙사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김수철을 불러세웠다.
- 아니다. 그만두어라. 내가 쓰겠다.

# 인후

# 적의 해, 적의 달
* 무술년 배경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정유, 무술(전쟁 7년째...)

[328-329] - 아니 모르시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지난달 죽었소. 일본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오.
(중략)
진린은 철수하는 적의 배후에서, 먼 바다에서 얼씬거리다가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진린은 적의 불가피한 철수를 이미 알고 함대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진린이 돌아가는 적의 뒤통수를 부술 리는 없었다.
진린은 적과 알맞은 거리에 떨어져서 전쟁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부스러기들을 이득으로 챙겨서 돌아갈 것이었다. 임금은 이 진린을 나에게 보내왔다.
적의 인후 앞에서 나는 온 천지의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 ‘그날 밤 나는 숨죽여 울었다.’ 나는 밤이 싫다. 컴컴해서 싫다. 어둠 속에서는 흰 것과 검은 것의 구분이 없어진다. 눈뜨고도 보지 못하는 밤이 싫다. 그래서 밤에 운다.

# 몸이여 이슬이여

# 소금

[348-349] 선전관은 사실을 요구하지 않았고 해결책을 요구했다.
나는 장계 한 장을 새로 써서 선전관에게 주었다.
(중략) 나는 문장의 수사를 띠워서, 곧고 애달픈 충정을 고백하는 문체로 장계를 새로 썼다. 선전관은 새로 써준 장계를 들고 서울로 떠났다. 조선 조성은 내가 새로 써준 장계를 명군의 감찰관에게 제시했다.
*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이순신과 더불어 울었는데... 울 일 만은 아니구나. 이러다 이빨 다 상하겠다. 울고 징징거리는 놈들...

# 서늘한 중심

# 빈손

[361]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오는 적보다 가는 적이 더 무서웠다. 적은 철수함으로써 세상의 무의미를 내 눈앞에서 완성해 보이려는 듯했다. 적들의 철수의 대열을 정돈하는 밤마다, 적들이 부수고 불태운 빈 마을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꿈을 꾸었다.
* 잔인하구만

# 볏짚
[371] 백성들은 볏짚의 용도가 무엇인지 말없이 알고 있었다. 볏단을 묶으면서 부녀들을 때때로 울었다.

#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387] 싸움터를 빠져나가 먼바다로 달아나는 적선 몇 척이 선창 너머로 보였다.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와류 속에서 적병들의 시체가 소용돌이쳤다. 부서진 적선의 파편들이 뱃전에 부딪혔다. 나는 심한 졸음을 느꼈다.

Ⅲ. 내가 저자라면...

친구들과 늦께까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밤중. 내 감성은 살아있다. 몹시도 불편할 만큼.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나는 싫다. 늦은 시각 깨어있는 것이 나는 두렵다. 그 시각에 살아있는 감성은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1) 이순신의 절망은, 울음은
작년 이맘때, ‘난중일기’를 읽었다. 이순신이 밤마다 울었다. 나도 울었다. 정약용의 ‘다산문집’도 읽었다. 정약용은 울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울었다. 백범일지의 초반부를 읽을 때... 김구, 그도 울만한 일이 많은 사람임을 알았다. 칭기스칸도 또한 그러했다. 그들이 우는 소리를 듣다가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그 중에서 사는 것을 보고, 나는 그만 울기로 했다. 저자 김훈이 대학시절에 ‘난중일기’ 속에서 본 절망과 그 절망을 살아낸 치열함에 끌였던게 혹시 이런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훈은 왜 하필 쓰게 되면 말이 많을 이 소재를 택해서 소설을 썼을까하는 의문은 그의 대학시절의 난중일기와의 만남으로 설명될 것 같다. 이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김훈은 30년이 지나서야 난중일기의 리뷰를 내놓은 셈이다.

김훈 덕분에 ‘칼의 노래’를 읽는 동안 아팠다. 이순신이 아프니, 그 글을 쓴 김훈도 아팠을 것이다. 이순신의 관점인지, 김훈의 관점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이순신의 생각으로 소설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진행되어진다. 절망의 공간에서 이순신의 타는 속은 징징징 울어대는 칼이다. 바다를 물들이는 칼. 김훈의 연필은 세상에 거짓을 베어내어 물들이는 것인가? ‘남한산성’을 쓰고나서 모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훈은 자신은 ‘독자를 고문하고 싶다’고 했다. 고문하는 김훈을 욕하더라도 역사를 생각하게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럼 ‘칼의 노래’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고문을 했을까? 소설에서는 대놓고 설명하지 않는다.

2) 시간의 선택
‘칼의 노래’는 임진년에 시작한 7년동안의 전쟁중에 끝부분에서 시작하고 있다.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정유, 무술. 무술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싸우다 전사하기까지가 소설 속의 실제 시간이다.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김훈이 뚝 베어다가 그의 소설 속에 담은 시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그런데 거기에 이순신의 생각의 흐름, 기억을 따라,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다가 꼬리를 잡고 과거 속으로 가기도 한다. 임진년에 임금이 신의주까지 도피해가던 시간으로도 가고, 면의 죽음에서는 면을 처음 보았을 때로도 간다. 가장 강렬한 부분인 정상을 드러내기 위해 정상 오르기 전에 숨이 가파서 이제 곧 정상이구나 하는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3) 인물들을 배치하다.
또한 인물의 배치는 두부류이다. 첫 번째 인물유형은 이순신의 주변인물인, 실제로 이순신과 사건으로 얽혀 있는 인물이다. 이들의 특징은 서로 간에 겹치는 면이 없는 독특한 캐릭터들이다. 사람의 특성을 가장 적게 사용하는 배치이다. 이순신을 옆에서 보좌하며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김수철, 백성과 적을 구분에서 힘겨운 만호 송여종, 슬픔과 끊없는 연민의 대상인 아들 면, 전쟁 중에서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는 여인 여진, 물을 몸으로 아는 물길 길라잡이, 임금이 가진 힘이 이순신에게 이르게 하는 게 하는 권율, 명나라 장수 진린.. 이들은 겹치지 않는 면이 모두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과 같다.

두 번째 유형은 실제로 이순신과는 한번도 얽힌 적이 없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이순신과 처지가 비슷하여 비교할 때마다 이순신의 심적 갈등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강했기 때문에 임금의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길삼봉, 의병장으로 나섰지만 나중에는 은거해 버린 곽재우, 전쟁의 혼란한 틈에 의병장으로 나섰다가 충심을 버리고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 이들을 이순신의 의식에서 하나씩 비교해간다. 곽재우의 삶을 부인하고, 길삼봉의 죽음을 부인하고, 이몽학의 선택인 반란도 부인하여 이순신의 삶과 죽음을 완성한다. 이들은 모두 이순신을 상황과 절망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4) 적, 전쟁, 살아야 하는 삶
치열하게 싸웠다 해도 다음날은 다시 깨끗해져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바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밀고 들어오는 적,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파도,
한 끼를 먹었다 해도 다음 끼니에는 다시 먹어야 하는 것, 파도처럼 밀려오는 밥 때, 배고픔.

바다에 빗대어 적을 이야기하고, 바다에 빗대어 생존인 밥을 이야기한다. 삶이 모순이듯 바다의 행태도 모순이다. 작가는 이들을 잘 버물려 내놓는다. 벗어날 수 없는 곳에서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아픈 현실에 놓인 사람은 그 안에서 사유가 치열하다. 바다, 밥, 적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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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02 07:23:43 *.244.220.254
리뷰 잘 읽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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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7.02 09:51:03 *.247.80.52
거암.. 읽어주니 고맙군.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같은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혹은 글쓴이의 이런 면이 궁금하다라던가 하는 거 말이야.

쓸말없다, 못쓰겠다하면서도 부끄러운 것이지만 세상에 내 놓은 용기에 대해서 좀더 친절하게 물어주면 더 고맙겠구만... 왜냐하면, 난 이중적 시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소통이 없으면 엇나가기 쉬워서 타인의 시선으로도 다시 보고 싶거든.

(이순간 '아차 내가 왜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라는 생각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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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7.03 04:55:30 *.51.218.166

반복되는 것, 벗어날 수 없는 것,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 그 아픈 현실에 놓인 사람은 그 안에서 사유가 치열하다. 바다, 밥, 적은 그런 존재다.

이 소설을 잘 읽었네요, 정화씨. 내가 읽은 칼의 노래는 정화씨가 정리한 이 귀절에 다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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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16:02:55 *.123.204.92
'내가 저자라면'의 첫 세줄은 마치 김훈의 글을 읽는듯 하네요.
리뷰를 쓰느라 고민 하더니 완성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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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7.07 12:57:27 *.247.80.52
창은 가끔은 누구를 닮아도 좋아.
파블로 네루다와 사귈때는 그 사람이 되고, 김훈과도 닮고, 이청준도 닮고, 박완서도 닮고, 박경리도 닮고느는 결국은 '창'이 되어도 좋아. 결국은 '창'이니까.

리뷰 쓰는 것 여전히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그 어느 누구의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가봐.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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