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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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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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1일 09시 32분 등록
I. 저자 소개

구본형

그는 변화 경영 전문가이다. 43살, 그리 젊지 않은 나이에 그는 자신에게 이 이름을 붙여 주고서 그에 걸 맞는 변화의 길을 11년 동안이나 걸어간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이 변화 경영 프로젝트에 최초의 수혜자는 본인 자신 ‘구본형’이었다. 그는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변화의 전 과정을스스로에게 수행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에게도 전수를 할 수 없었다. 그는 더욱 더 철저히 자신의 이론을 자신에게 수행했다. 자신을 피실험자 삼아 자신의 논리를 철저히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수행한 이 변화 경영 프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는 이제 독립하여 1인 기업가가 되었으며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고 있으며 이전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는 자신에게 실험하여 성공한 절차만을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용해 준다. 그리고그들이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자로서 거듭나도록 도와준다. 그는 변화 경영에 관하여 주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자기를 찾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는 또한 사회 환원 사업의 일환으로 구본형 변화 경영 연구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그러나 내가 보는 그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귀신 같이 읽어 내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고, 스스로가 변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유연함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매번 시대를 딱 한 발짝 앞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그의 저서들을 내 놓는다. ‘익숙한 것과의 결
별’이 그랬고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가 그랬다.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나긋나긋 말을 하는 사람이고 다른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로 듣는 편이다. 그러나 그는 내면에 불을 품은 사람이다. 그가 쓰는 책을보면 그렇다. 그의 책은 독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대고 독자들을 대신해서 화를 내며 그들에게인생을 변화 시킬 것을 은근히 그렇지만 강력하게 꼬드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II.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68]20년의 세원은 내게 꽤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다. 나는 미국의 기업들이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방법과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지루한 일상을 메워주는 탈출구 였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화에 대하 내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오면 설명해줄 수 있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곤 했다. 나는 변화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오랫동안의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 퇴직금은 적었지만 변화경영에 경도된 지난 20년 자체가 내게 남은 막대한 유산이었다.

[71]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내 과거는 초라한 것이었다. 나는 나보다 유능한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주류가 아닌 작은 샛길에 불과했다.

[72]나도 돈과 승진을 찾아 떠나는 그 골드러시의 물결을 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는 나를 싫어하기도 했다. 좋은 성과를 내 직원들이 단산에 올라 명예를 얻고 돈을 받으며 서서히 승진의 길을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할 일이란 초라하고 어두운 객석에 앉아 박수를 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길을 가고 싶지 않았고 잘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 길은 나보다 훨씬 더 외향적이고 친화력이 있으면 영리한 처세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영역이었을 뿐이다. 승진과 돈은 매력적인 것이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72]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가난했다. 그대 가난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크게 불편해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낭만쯤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합리화가 가능한 시대였다. 그러나 아마 나는 가난의 냄새를 역겨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가난은 냄새로부터 온다. 가난의 냄새는 일산 속으로 스며 들어 왔고 조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고착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영혼의 바닥에 어둡고 더러운 냄새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내 성공의 훌륭한 장식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77]그러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재빠른 사람들은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들 모두가 유능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젊고 유능하며 모험심이 가능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자발적 퇴직 제도는 오히려 인재 유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다 성공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뜨내기처럼 2,3년마다 비슷한 업종을 전전하는 유목민들이 생겨났다.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나면 늘 다른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부유하는 것들의 속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품처럼 떠돌았다. 거품이 가진 속성, 화려함과 불안정성이 공존했다. 그들이 이미 사회의 한 현상을 주도했고, 세상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78]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구조 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말은 떼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과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적절한 관계라는 것은 본인의 성격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적정함의 특징은 하나이다. 폐쇄회로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83]변화 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IBM밖으로 끌고 나와 모든 기업과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나의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들려줄 이야기는 있었지만 들어줄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찾아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루 종일 고객을 찾아 뛰어다녔다. 고객은 도망치고 그들은 고객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술래잡기 속에서 유능한 세일즈맨들도 녹초가 되어가는 것을 냉정히 지켜 보았다.

[87]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새인 것이다. 갑자지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89]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 산업은 가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DT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edge walker)’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사함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가격이 있다.

[91]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8년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다.’

[111]거울 속에서 내 얼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순간순간 움직여 영상을 그려낸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내 얼굴이 아니었다. 저런 모습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은 무한히 많은 얼굴 가운데 겨우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112]나도 날 무서워했고, 밀실에서도 내 의식은 갇혀 있었다.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 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 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113]내 의식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었다. 문학이 우리에게 숨쉴 곳을 제공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표현대로 ‘기본적으로 불온’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조금 미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밖으로, 사회 속으로 자신의 밀실을 확장해가려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자유의 공간을 넓히려고 한다.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 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5]수필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무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쩨쩨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쩨쩨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은 각자 그 안에 가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거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25]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 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132]그러나 내 속에도 불 같은 것이 들어 있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불길이 있어 나를 타오르게 하고, 저항하게 하며, 화내게 하고, 불만을 터뜨리게 한다. 뜨거운 기질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가끔 괴롭히기도 한다.

[134]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 고민의 옆에, 내 실패의 옆에, 그리고 내 성공의 옆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내 죽음 옆에도 있어줄 것이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다. 덩굴장미가 여기저기 타고 오르는 나지막한 하얀색 나무 울타리처럼 그녀는 그렇게 늘 내 정원이 되어 곁에 있어 주었다.

[157]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60]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찬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 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173]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 개씩, 수백만 개씩 퍼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4]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귀고 그 나무를 부려워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193]실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한들 그게 하늘의 듯이라면 내게 바라는 다른 것이 있을 것이다. 쓰는 데까지 쓰고 못 쓰면 그만이다. 나는 편하게 마음먹었다. 그땐 그때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209]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214] 지상의 모든 갈림길을 잊고,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달로 가고 싶었다. 그 모든 갈림길 가운데 하나가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선책을 넘어 저 내 앞에 굽이굽이 펼쳐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길을 걷고 있다는 축복에 싸이고 싶었다. 나는 달빛을 따라 아름다운 꿈길로 접어들고 싶었다.

[215]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16]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으리라.

[220]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 헬렌 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이 멀쩡한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해서 불행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불행하다. 자신에 대하며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게 때문이다.

[221]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린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여러 곡물이 섞인 밥을 먹고 하루에 30분씩 운동하고 한 시감씩 햇빛을 쪼일 수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 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222] 아,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의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260]내가 잘 하지 못하면 수입의 대부분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사회적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가족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질 것이다. 인세를 제외하면 고정적인 수입도 없었다. 자유는 또한 불안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었다. 지역의료 보험에 가입하면서 완전히 내 손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외로움과 불안과 대면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60]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팔’ .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욕! 그거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나는 가끔 중들이 포효하듯 엉뚱한 욕설을 뱉어내며 깨달음을 가장 하는 것을 어이없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말들을 구겨 넣어 아주 작게 응축해 놓으면 가래 같은 한마디의 욕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씨팔’과 ‘퍼크 유’는 설명이 필요없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 없는 통렬한 동물적 으로렁거림이다. 하고 나면 어쨌든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가!

[261]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일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262]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서게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협지를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를 보호해 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263]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71]경제적으로 학습은 자신을 ‘자본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자신을 자본화할 때는 전략적 배려를 해야 한다. 인생은 길지만 또한 짧고 유한하기 때문이다. 전략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이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 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89]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처음에는 헤겔과 닮았다. 그러다가 ‘현존에 지독한 부정을 가했던’ 쇼펜하우어가 되었고, 바그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떠났다. 이윽고 자기의 개념을 창조해낸 바로 그 니체가 되었지만, 그는 다시 남들이 알고 있는 ‘니체 씨’를 떠나갔다.

[283]’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84]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강연이 없는 날이면 큰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대개는 책을 본다. 어떤 날은 보고 싶은 책의 제목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날은 그것 꺼내든다. 어떤 날은 저자의 이름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날은 그 저자의 책을 골라 본다. 아무 생각도 없을 때는 어제 읽다 만 책의 다음 페이지를 읽는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을 잊었기 때문에 앞에 읽다가 밑줄을 쳐 둔 몇 개의 구정을 다시 뒤적거려 문맥을 잡아준다.

[297]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시장에 나와 하루에 20줄 양파를 파는 것, 이 초라하고 궁핍한 일은 돌연한 에피소드를 통해 통쾌한 반전을 만들어 낸다. 초라한 미국인과 거대한 인디언 노인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철학의 힘이다. 나는 양파장수처럼 살고 싶다.

[298]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299]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업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303]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5]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307]나는 멋진 싸움꾼은 아니다. 싸움꾼이기에는 상처를 쉽게 받는 선천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는 타입은 아니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갈등이 나를 키워주었다. 마음속이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싸움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었다.

[311]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이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314]그러나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점을 활용했다. 내가 찾아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식물적 특성을 고안 해두었다. 세일즈와는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음이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아주 작은 나라는 소우주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쉬지 않고 시그널을 보냈다.

[319]강연은 글쓰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내 직업이다. 나는 많은 강연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의 강연 일정은 마주 매력적이다. 그 이상 되며 하기 싫어진다. 강연은 쏟아 내는 작업이다.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31]”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고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34]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336]불행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발견하는 법과 동일하다. 마음을 조금 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닫게 돼도 우리는 금방 불행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모든 인생의 재미를 희생한 대가로 받은 보상이라는 것이 시시할 정도로 쪼들리는 월급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340]어제의 진실은 오늘의 진실이 아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전문 분야의 적절한 대우를 늘 요구한다. 내가 나아졌을 때 그 가격을 올린다.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정직한 거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지는 않는다. 내 유전자 속에는 장사꾼의 유전인가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341]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시간을 마음대로 배정할 수 있고,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 전에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댈 쓰여졌다. 그러나 이제 내 편이 되었다. 나는 전보다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처럼 기분이 좋은 일은 없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348]그날 잠에서 깨어나자 아름다움 충동이 거부할 수 없이 나를 덮쳤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물결처럼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창조는 바로 그 물결처럼 내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의 하루, 나의 역사, 이것이 바로 그 물결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349]당장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을 재편했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시간표를 만들고 시간표대로 사는 것을 숨막혀 하는 사람이다. 내 방법은 삶의 모든 전선에 퍼져 있는 실핏줄 같은 시간을 불러모아 커다란 주류를 가진 시간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 냈다.

[352]1994년 1월 첫발이 어떻게 밝았는지 이제는 기억할 수 없다. 그 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다. 아마 비장한 각오, 마흔이 된 체증, 알 수 없는 숫자의 압력에 눌려 침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355]’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내게는 팔아야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고 적어도 두 시간은 쓴다. 나는 정신적 여행자이다. 타임머신 없이 과거로 가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짐도 싸지 않은 채 르네상스의 피렌체로 가고, 고대 중국의 한 왕국의 밀실에 숨어 들기도 한다.

[358]나는 피폐한 시선을 미워한다. 우리의 세대가 끝난 것처럼 조로한 시선을 미워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끝을 예견하는 참담한 현실주의를 증오한다.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III. 내가 저자라면

진솔한 이야기의 힘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담백한 저자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저자가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라고 책 제목에서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저자의 범상치 않았던 면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는 범상치 않다. 그러나 그 범상치 않음이 여느 독자들의 평범함과 같은 맥락에서 왔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독자들이 보기에 저자는 ‘딱 나만큼 실패하고 딱 나만큼 좌절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평범한 독자인 ‘나’를 울리는 것이다. 이 울림은 작지만 진동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 속성이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키운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불을 안아 든 사람들은 변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자신을 깨우게 되게 마련인 것이다.

자기를 바꾸지 않는 자기 개발

수 많은 자기 개발서들이 자신을 바꾸라고 종용한다. 평범한 자신은 모든 악의 근원이며, 그 동안 자신을 방치해 두고 있었던 것은 비난 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을 바꾸기 보다는 자신을 잘 들여다 보라고 말한다. 자신을 잘 들여다 보아서 쓸만한 것들을 잘 찾아 보라고 한다. 그 동안 방치해 두었던 자신을 잘 들여다 보면 꽤 쓸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부추긴다.

이런 저자의 속삭임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그 긍정적인 자아 인식 속에 더 많은 힘이 있다. 그는 부정적인 자아를 끌어내어 비판을 하는 데 더 이상에너지를 쓰지 못하게 한다. 대신 긍정적인 나를 더 많이 펼쳐 보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숨은 보석이 있다고 부추긴다. 그리고 거기에 진정한 자기 개발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 말고 다른 이를 바꾼 예가 더 많이 필요함

나는 저자가 저자 내세운 방법으로 저자 말고 다른 이들을 바꾼 예시를 더 많이 들어 보고 싶었다. 저자 말고 어떤 다른 이들이 또 자신의 꿈을 끌어내었는지 그리고 그 끌어내어 얼마나 실현을 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었다. 그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아쉬움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지원을 했을 것이다. 평범한 나는 내 안에서 또 어떤 비범한 나는 꺼내어 쓸 수 있을까? 그것이 올해 나의 화두다.

IP *.128.98.93

프로필 이미지
현정
2008.07.22 09:22:22 *.128.98.93
한 가지 잊어 먹은 게 불현듯 생각나서..

사부님, 이 책 쓰실 때보다 눈빛이 무척이나 강해지신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신지?
게다가 본인이 설명하셨던 것에 비해 '기' 가 더 세진 신 것 같은데 그것은 또 무슨 비결이신지?

저두 나이가 점점 들어 사부님 연세가 되어 가면 점점 더 유연해지고(무내 되고..)점점 더 기가 세지고 픈데,..

비법 좀 전수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8.07.23 09:53:20 *.160.33.149

나이가 들면 눈빛이 조용히 뒤로 갈무리되는 것이 좋다.

너는 젊으니 기가 세고 눈빛이 번쩍이고 매와 같이 사납고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거칠면 좋다. 그러면 훌륭한 인재로 만들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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