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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일 00시 31분 등록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30대 이후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16가지 이야기)
알랜 B. 치넨/이나미 옮김/ 출판사 황금가지


연초에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 그 당시에는 올해에 내가 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하고 그 길로 들어서겠다고 스스로를 다짐시키는 시기였기 때문에 몹시도 불안하던 때였다. 그런 내 의식을 반영했던 것인지 신을 잃어버리고는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꿈을 꾼 것이었다.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신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가 소개한 이야기 속에서 신은 매우 중요한 소재이다. 신은 세상의 힘든 일을 헤쳐나갈 때 꼭 필요한 것이다. 책에서 신발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었을 당시 나는 신은 새 삶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데렐라도 콩쥐도 신을 얻고 새 삶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불안했다.

그리고 한달 전쯤 다른 이야기 속에서 신발의 다른 의미를 찾았다. 그런데 그것도 여전히 제2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불안, 그렇다. 여전히 불안하다. 전환이라는 것을 겪어야 하고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에 이야기에 나오는 황금샘과 생명나무의 상징과 해석이 위안을 준다. 2개의 이미지는 인생은 끊임없이 이전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생성되며, 새로운 것은 이전 것보다는 훨씬 낫다라고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1. 책에서 끌어다쓰기(인용)
서문

11. 중년이란, 언제나 거기에 숨어있기 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합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시기다. - 로저굴드(Roger Gould, 의학박사, Transformations 의 저자)

머리말

15. 옛 이야기들은 너무나 중요한 교훈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 된다.

15. <사람들에게 사실이나 이념들을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영혼과 맞닿을 것이다.> - 제롬 브르너

17. 꿈들은 너무나 각 개인별로 특별하기 때문에 꿈꾼 사람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옛날 이야기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탓이다. 이런 과정에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특이한 요소들은 제거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는 주제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옛날 이야기는 인간의 기본적인 화젯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년의 이야기들은 중년의 근본적인 과제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17. 놀랍게도, 중년의 이야기들은 관습적인 사회적 가치들을 반영하기 않는다. 이는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들은 가부장제이고 여성적인 면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랄 정도로 페미니즘적이다. 중년에 관한 이야기들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자기들의 재능을 이용해서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21-22. (중년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첫 번째 규칙은 옛날 이야기를 해석하려고 들기 이전에 우선 귀를 열고 그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다. (중략) 나의 해석의 두 번째 규칙은 노아의 방주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 이야기 선집에 포함되기 위해선 우선 또 다른 파트너, 즉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2. 매우 상징성이 높은 이미지들은 보통 아주 개성화된 특이성을 보이기 때문에 실은 원형적이지도 범세계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를 볼 때 너무나 유사한 횡문화적 특징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들이 바로 중년의 원형적 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다.
* 조셉 캠벨의 ‘신화의 이미지’에서 장미와 연꽃처럼... 범세계적인 것들에는 우리가 짚어볼만한 상징,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있다.

24. 중년의 이야기들은 깊이를 희생하는 대신 명료함을 획득하게 된다. 어린시절의 과제를 무시함으로써 성숙의 과제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집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중년의 이야기들은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외상들을 단순히 풀어버리기보다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인 <완전한 인간이 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준다.

25. 중년의 이야기들은 실생활의 거울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중년의 이야기들은 매일의 경험들을 향상시킨다.

제1부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1. 젊음의 마법을 상실하는 중년(요정과 구두장이 - 독일)
30. 새로 만들어진 구두들은 처음 것보다 훨씬 더 예뻤습니다.
* 처음보다 나중이 낫다리는 것은 매번 등장하는 이야기다. 왜 그러한가?

31. 그러나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연습을 해도 요정이 만들었던 것과 같이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 수 있었고, 그 부부는 이후에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 이것을 인용으로 해 놓은 것을 보니... 난 참 이야기를 좋아하는 구나(2008.07.21)

36. 인간은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본래의 인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당나귀에서서 빼앗은 18년을 더 살기 때문에 수지 않고 일을 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불 곁에서 웅크리고 앉아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좋을 대로 행동을 한다.
* 『인생의 시간동안에(The Duration of Life)』와 연관된 이야기

37. 마흔이 넘어서야 일종의 충격적인 통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제 그들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8. 요정들이 선물을 받자마자 떠난다는 사실은 의식이 창조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의식이 창조성을 방해한다’라는 입장에서 쓰여진 대목이 여러번 나온다.

39. 창조성은 의식의 판단과 의도를 유보했을 때만 나온다. 특히 유치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은 차옺성에는 꼭 필요한 요소다. 너무 정밀한 조사나 비평이나 명령을 강요하는 것은 요정이 갖는 창조성을 재빨리 도망하게 한다.
*『창조의 행위 The Act of Creation』라는 책을 언급했는데,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고 싶다.

39. 엘리엇 자크는 창조성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불속에서 나온 것처럼 뜨거운 창조적 작업이 있다. 조각이건 소설이건 음악이건 이는 완전히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 이런 창조성은 미친 듯한 영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사라진다. 그 다음에야 두 번째 유형이 전면에 나타난다. 이를 자크는 잘 다듬은 창조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은 불완전한 영감으로 일단 일을 시작하지만 그 생각을 갖고 작업에 임하여 또다시 재작업한다.

39. 젊은이들의 특징인 <발작적인 창조적 불꽃>은 계속되는 습관으로 진화해서 성숙하고 기댈만한 기술로 변하는 것이다. 만약 젊은이들의 창조성을 99퍼센트의 영감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창조성은 99퍼센트의 땀이다. 마법의 요정은 바로 부지런한 구두장이가 되는 것이다.

중년기에 잃은 젊음의 이상들(마술 주머니 - 한국)

42.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 곯아떨어져 나뭇짐을 지킬 수 없었던 시간에만 나뭇짐의 반을 훔쳐가는 것입니다.
5일째 되는 날이 되자 남편은 소리쳤습니다. 「이제 이것으로 충분해」그래서 그날 밤 그는 나뭇단에 몸을 숨긴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도둑을 잡겠다고 별렀습니다.

46. 젊은이들의 신성한 야망 뒤에는 완전한 사회, 완전한 게임, 완전한 사랑 등 완벽성에 관한 이미지가 숨어 있다. 순수함과 야망에 가득 찬 젊은이들은 완벽함이 가능할 것이라는 짐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과 부딪치면서 그런 꿈들은 결국 깨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왜 중년의 이야기에서 마법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작은 인간의 잘못들과 피할수 없는 인간의 약점들이 완벽성에 대한 신성한 꿈을 깨버린다.

47. “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포기한다.” - 도날드 샌드너(Donald Sandner), 융 분석학자

47.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잠에서 깨면서 자신의 상황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 나이 마흔인데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내 자취를 남겨놓은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젊음의 마법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어부와 언어 - 웨일즈)

53. 젊음이란 마법을 지워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54. 요정들은 구두장이 부부가 그들에게 선물을 주는 순간 그들을 떠난다. 부부는 선물을 받는 쪽에서 주는 쪽으로 스스로 전환시켰을 때 마법을 잃는다. 이는 청년 시기가 지나고 성숙한 중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55. <나는 젊음을 지배하길 원하지만, 그런 동시에 성숙되기도 해야 한다.>
책임있는 베풂의 미덕은 개인적인 만족을 대치하는 것이다. 배풂의 미덕이란 각자의 작업에 대한 헌신의 형태를 띠게 된다. 프로이드는 사람과 일은 성인들의 생활에 기초적인 것이며 일에 대한 헌신은 마치 사랑처럼 스스로의 생성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창조적인 일을 추구하기 위해 개인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과학자들 역시 지식의 탐구를 위해 오랜 시간동안 일한다. 사업가들조차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55. 바다에서 나온 아름다운 인어는 무의식에서 나온 창조적인 통찰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 영감들은 마치 인어처럼 사람을 흥분시키고 황홀하게 한다.
이런 창조적 순간이 지난 후에는 새로운 과제가 떠오르게 된다. 고상한 영감과 비전을 보다 구체적인 성과물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야기는 어부와 인어가 결혼하여 가족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이런 과정을 상징화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창조적인 영감을 현실로 변형시키는 과정과 유사하다. 작가는 자신들의 직관을 소설로 형상화하여야만 하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 검증해야만 한다. 즉 오랜 노동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59. 세계를 포용하는 동시에 마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돌아볼 때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생을 연기하고 피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비밀스런 방법은 많다. <현실주의>를 지니기 위해서 지불해야할 것들은 결코 만만치가 않아 때로는 트리스탄과 폴처럼 자신의 생명 그 자체를 대가로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 요즘 같이 읽고 있는 『아트스트웨이』의 책의 견해와 대치되는 부분이 많다. 중년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드러나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도록 한다.

61. 마법의 상실은 슬픈 게 아니라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뿐이고 이를 거절 할 때는 비극을 초해하게 된다. 상실이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


제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중년 남녀의 성역할 바꾸기(고집쟁이 남편과 아내 - 페르시아)
61. “그래 당신이 맞아. 이제 내가 송아지를 돌보지. 그렇지만 아예 이 집을 떠나 송아지를 갖고 나가버릴 거야. 나는 더 이상 당신 같은 고집쟁이 바보와는 살 수가 없어!”

74. <인생의 아침에 활짝 피었던 모든 이상과 가치관들이 인생의 정오쯤에는 바꾸게 되는 것이다.> - 칼 융

75. 모르코의 민담들은 중년의 성역할 바꾸기에 대해 극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남자는 백 개의 악마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소녀들은 백 개의 천사와 함께 태어난다. 해가 갈수록 남자와 여자는 서로 악마와 천사를 교환한다. 따라서 만약 백년을 산다면 남자는 백 개의 천사를 갖게 도는 것이고 여자는 백 개의 악마를 갖게 되는 것이다!

76. 소년과 소녀들을 보통 어머니들에게 강한 애착관계를 갖고 있는데 소년들이 남성적인 정체성을 보다 명료하게 가지려면 이런 어머니와의 애착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어미와의 관계는 깨기가 매우 힘들다. 어머니가 의존성과 친밀성에 대한 모든 필요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 소년들은 보통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그들은 어머니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존성과 친밀성의 영역을 거부한다.
* 내가 그런 셈이군. 이런이런...

79. 나는 여러 가지 책략들을 교묘하게 써가면서 이 책이 나오게 되더라도 내 사적인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피했다. 내가 택한 책략 중 하나는 특히 많은 남성 저자들이 그런 것처럼 여러 가지 임상 예들을 시치미 뚝떼고 나열하는 것이었다. 환자들, 동료, 이웃들, 친구들 이야기인데 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말만 실컷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예들은 사실상 자전적인 것이다.

79. 그녀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찾은 것이며 반면에 그녀의 남편은 수동적으로 그 고통을 다 참아냈다. 이야기는 여기서 현실을 반영한다. 중년이 되면 보통 주부들이 남편을 리드하면서 그 간에 익숙해졌던 습관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깨버린다. 그녀의 변화는 남편까지도 더욱 성숙하도록 강요한다.

80. 여성들은 만약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울 때 가까운 이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82.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선한 젊은 영웅과 악당을 확연하게 구분해 준다. 젊은 남자와 여자들은 사실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파악하고 문제가 생기면 남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대상들은 대개 부모나 선생님 혹은 직장 상사가 된다. 이는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자신의 잘못과 어려움들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동화는 이런 과정을 반영한다. 이런 투사는 실은 매우 적합하고 적절한 행동이다. 만약 젊은이들이 타인에게 ‘투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세상에 나가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면서 젊은 이들은 세상에 반항할 수가 있고 용감하게 인생에 뛰어드는 것이다.

. 중년기의 여성 해방(왕이 된 부인 - 중국의 위구르 문화권의 이야기)

99.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더 자주 공격당하고 강탈당하고 어떤 면에서 희생자가 되는 상황을 자주 꾼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남성들이다.

102. 이 이야기에서는 악당을 죽이는 일은 필요한 일이었으며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중년의 이야기에서 이런 사실들이 강조된다. 여성은 도망치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102. 젊은 시절의 여성들은 자신감을 억압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는 무시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배운다. 이것은 여성의 발을 묶는 것과 심리적으로 동리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낀다.

102. 다른 사람을 해지치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여성들이 학대받는 관계에 있을 때 여성들을 덫에 걸리게 만드는 성격이 된다.


106. 부인이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힘과 영과의 극치에 대해 배운다. 은유적으로 그녀는 날아오른 것이다. 그러나 비상이란 대개는 고귀한 힘과 영광으로서의 남자들과 관련이 된다. 여성들이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또 감히 날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여성들이 주장할 때 바뀌게 된다.

109. 케이트는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점 때문에 야단을 맞곤 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게이트에게 강요한 여성적인 이타주의의 고정 관념이다. 결과적으로 케이트는 영적으로 시들하게 되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동면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110. 남자가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을 때만이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발견해 내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다.

111. 여성들은 사회적 압력 때문에 당당하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도록 교육받아 왔다. 아니무스는 당당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피리 부는 왕비 - 러시아 민담)

120. 왕비는 소년처럼 분장을 한다. 이 점은 거의 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왕비는 소년처럼 되었다. 심리적으로 여성들은 중년에 이르면 다시 젊은이처럼 된다. 엄격하고 보다 여성적인 편견을 지니기 이전의 시기인 것이다. 대개 소녀들은 마치 소년들처럼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모험심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안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소녀들은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자신들의 그런 남성적인 면을 억압하라고 강요받게 된다. 반면에 소년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격려 받는다. 소녀들은 생존하기 위해 진정한 자신들을 감추고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심리적으로는 동면기에 들어간다. 중녀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여서들은 다시 눈을 뜬다. 그들은 성역할의 금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자신들의 정체성, 에너지, 적극성, 그리고 생명력을 다시 선언한다.

121. 남성성과 여성성의 융통성 있는 개념들, 즉 양성성이란 성공적인 노화와 관련이 된다.

121. 여성들이 개인적인 흥미나 직업을 추구하게 되면 페경이란 하나의 해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이들이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폐경>이란 단지 좁은 의미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만 자신을 얽어매는 여성들에게만 우울할 뿐이다. 대부분의 비서구 여성들은 폐경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폐경이 지닌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금기에서 자유롭다.

122. 여성들이 중년이 되어 자기 확신을 선언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취의 문제일 뿐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128. 남편들은 종종 부인들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남자들은 오로지 공공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만을 보지 그 뒤에 숨어있는 개인을 알지 못한다. 이는 남자들이 개인간의 상호 작용과 관계를 습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중년에 바라보는 죽음(죽음을 피할 수 없는 왕 - 중국)

135. 중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136. 「전하, 화내시게 할 의도는 없었나이다. 그러나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영원히 산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모든 영웅들은 여전히 우리와 더불어 살게 될 것입니다. ......」
왕은 이 무례한 신하를 노려보았고 모든 신하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은 아주 오랫동안 웃었습니다.

139. 생식능력이 있는 개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덜 고통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이 자기 본위의 관심에만 쌓여 있는 한 죽음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자아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이 사적인 관심을 초월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초월한 것에 스스로를 위임하게 된다면 - 예를 들어 아이들이나 사회적 활동 - 죽음은 덜 위협적이게 된다. 개인은 죽어야만 되나 아이들이나 사회적 이상은 계속 살아나간다.

141. 한 개인이 영원히 살 수 없다면 그는(그녀는) 대신 지속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고 상징적 불멸의 형태를 얻는다. 유산의 형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해진다. ..... 때때로 유산의 이면에는 자신의 아이를 통해 계속 살겠다던가 또는 제도를 통해 자신을 영예롭게 하려는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본위의 요소는 덜 중요한 동기이며 생성 능력이 주요한 동기이다. 즉, 다음 세대를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남겨놓고자 하는 소망이다.

142. 그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우선 순위를 정했다.

죽음과 중년의 내면 여행(죽고 싶지 않은 남자 - 일본)

147. 「우리는 죽고 싶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에 지쳐 있어요.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곳에 대해 들었는데 그곳은 죽은 자만이 갈 수 있답니다.」

148. 「집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의 몫에 만족하거라. 신이 너에게 지혜의 책을 내리셨다. 그 충고를 따르도록 해라. 성실히 일해라. 아이들을 잘 길러 미래를 준비시켜라. 그리고 너의 이웃을 도와라. 그러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 그는 그 책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그는 선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고, 드디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을 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죽었습니다.

149. 죽음은 삶을 가치있고 흥미롭게 만든다.

149. 어떤 사람이 요술병에 죽음을 잡아 넣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전세계에 걸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아픈 사람은 끝도 없이 고통스러워했고 노쇠하고 허약한 사람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예수와 베드로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사람에게 죽음을 풀어주도록 했다. 죽음은 갇혀 있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존재였다.
* 모호하고 무엇으론가 규정할 수 없었던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혼돈은 칠규에 의해서 죽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중년(운명의 신 - 달마시아)

164. 오늘날 운명과 숙명에 대한 지각은 별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미신을 믿는 과거의 산물로서 운명과 같은 중년의 이야기를 없애고 싶어할는지도 모른다. 계몽화된 현대 문명들은 개인적 노력과 소질이 중요함을 주장하고 개인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자유로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운명은 이러한 현대적 미신을 거부한다.

165.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에 의해 계획된 것과 같은 운명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연과 행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종종 단순한 불운인 반면, 성공은 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적기적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165. 운명과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168. 성숙함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이것은 종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직관을 향한 변화와 관련된다.

1693. 운명이나 행운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대 그리스풍으로 말하자면 비극적(tragic) 예견에 굴복하는 것이다. 비극은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하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년기의 오이디푸스 갈등(운명을 이기려는 왕 - 인도)

182. 아버지는 대개 아들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지만 또한 질투와 경쟁 관계도 느낀다. 이런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중년에 심해진다. 아버지가 신체적으로 나이가 먹었음을 처음 느끼게 될 때, 아마도 정력과 기민함이 하향 곡선을 그을 때 그의 아들은 신체적 힘의 정점에 달하는지 모른다.

185.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용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187. 그러나 중년의 남녀는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고, 그들은 단지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제한된 통제력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통제하지 못한다 해도 어떤 책임도 없으며 어떤 자책감이나 비난도 없다. 냉정하지만 그 통찰력은 궁극적으로 자유스럽게 해주며 남녀가 과거의 후회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중년은 불운과 실수에 대해 그들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

제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젊음의 추상적 이성 vs. 중년의 실리적 지혜(현명한 대답 - 러시아)

194.「여봐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잘 생겼느냐?」
「예, 페하, 정말 그러하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지구까지는 얼마나 먼지 나에게 말해 보아라.」
「그들이 그곳에서 소리 지를 때 우리가 여기서 그것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얼마나 깊으냐?」
「몇 년 전에, 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그를 땅에 묻었습니다. 그는 결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이 지구의 깊이임에 틀림없습니다. 」
「너를 감옥에 넣겠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어라. 너에게 30마리의 거위를 보낼 것이니 그것에서 각각 깃털을 뽑아야만 한다.」
......
「자, 그럼 나에게 말해 보아라, 선량한 이여, 너는 각각의 거위에서 깃털을 뽑을 수 있었느냐?」
「예, 페하. 그리고 그것은 또한 금빛 킷털이옵니다.」

197. 성숙한 성인은 책에서 배우는 것과 삶에서 배우는 것을 구별하며 후자가 그들에게는 더 실리적이라는 것을 안다.

198. 천국에 관한 군인의 대답은 사람의 운에 관한 운명의 영향력에 관한 것으로, 외부의 힘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에 관한 얘기를 보인다.

200.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

201.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다른 사람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이것은 타인의 복잡한 인격의 유형을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공감과 과학은 관련된 똑같은 추상적 사고를 사용하여 단지 사물과 사고보다는 사람과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202. <나는 단지 나의 본질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에 나의 본질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나는 옳은 것을 안다. 나의 본질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다. 세상에서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나로부터 뒷걸음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203. 전통적으로 남성은 로고스로 시작하여 에로스를 포용하는 반면, 여성은 에로스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그들의 삶에서 로고스와 통합한다. 남녀 모두에게 있어 성숙이란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이성적 유형의 조화를 요구한다.

2. 악마의 도전에 대한 중년의 방어(솔로몬의 충고 - 이탈리아)
207.「새 길을 가려고 옛길을 버리지 마시오」 「다른 사람의 일에 끼여들지 마시오」「그 다음날까지 분노를 참으시오」

210. 심리적으로 젊은 남녀는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뿐 결코 그들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악, 즉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한 악을 산뜻하게 회피한다.

214.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219. 악은 평범하고 진부하기까지 하다.

중년의 유머와 기지(밀고자 - 일본)

222.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데 큰 힘이 된다.

228. 유머는 성숙의 징표이다. ....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대처 능력 중 가장 고귀하고 성숙한 방식이라고 말한바 있다. ..... 한 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인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도 늘어난다.

230. 남성과 여성들이 어떤 권위를 지닌 자리에 일단 오르게 되면 그들은 지식도 풍부하고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위의 기대를 받게 된다. 이는 그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가장으로서, 사장으로서, 기관장으로서 중년에 이른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통찰을 마치 갖고 있는 거서처럼 꾸며야 할 때가 많다. 또한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자신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234. 거리 감각의 중요성은 특히 자신을 비난하는 농담에 있어서 명확히 나타난다. 오직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상황을 볼 때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완전히 상관하지 않을 때는 무관심과 냉정한 객관성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유머가 나오지는 않는다.

234. 아이러니란 두 관점을 동시에 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235. 그들 자신의 도덕적인 원칙을 따르긴 하지만 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들은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같은 자세는 한 사람의 깊은 확신을 통해 본다면 지혜의 전통적인 척도이다.

중년의 고통과 치유(돌무덤 - 모로코)

243. 치료란 힘이나 영광의 수단이 아니라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치유란 영웅주의를 극복하다. 이유는 간단한다. 아주 잘 움직여주던 젊은 육체는 중년이 되면서 신음하고 절름거리게 된다. 젊은 육체일 때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던 과식과 과로도 이제는 녹녹지가 않다.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 시간이 점점 더 걸리고 원하지 않는 체내 지방은 점점 축적된다.

245. 젊은이들을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낫지 않은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245. 보다 깊이 들어가면 고통은 자기 성찰과 자기 변형의 과정을 통해 치유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자기 반성과 재생이라는 치유의 과정은 사실 정화의 경험이다.

재생과 지하 세계(뼈 맞추는 사람 - 일본)

264. 악마적인 것에 대한 관용은 각 개인이 악마로 나타나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원시적 생명력을 발견해 내는 것을 도와준다. 악마로부터 도망치거나 거부하는 것은 원시적인 치유력과의 조우를 알려주는 전주곡이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관습적인 선악에 대한 관념을 버린다는 행위는 니체의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팽창시키는 동시에 독약을 먹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도덕을 뛰어넘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생의 샘(황금나무 - 인도의 유대인 전설)

270. 이상하게도 노인은 자기가 만든 물건을 절대로 내다 팔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완성된 물건들을 모두 녹여 버리고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왕비는 왜 그런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그는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273. 왕은 노인이 준 구두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구두를 신고 이를 악물고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물 속에서 발을 데지 않았습니다. 또 물 속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왕은 꼭대기로 가서 꿈속의 그 나무 밑에 섰습니다. 왕은 놀라움의 눈으로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황금의 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황금의 물이 녹아 내리면서 가지를 만들었고 방울이 떨어지면서 이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양은 끊임없이 변했습니다만 항상 나무의 모양을 한 채로 남았습니다. ..... 녹아내리는 황금들은 그를 다치게도 하지 않았고 그는 다시 손을 뻗어 단단한 황금가지를 잡았습니다.

274. 「이 황금가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었는데!」

274. 「나는 내 꿈에 나타난 나무에 다가가 황금가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기쁘지가 않군요. 왜냐하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황비가 그 말을 듣고 그의 남편의 눈에 담긴 슬픔을 본 순간 그녀는 앞으로 나서서 베일을 벗었습니다.

283. 부적과 황금의 나무는 현실과 꿈, 또는 사실과 공상사이에 존재하는 구별을 깨고 있다. 그래서 황금의 나무는 지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이는 바로 생명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생명이란 지혜나 지식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285. 생명의 나무로서 이는 생명력과 베풂을 상징한다. 이런 두 주제는 중년에느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다. 한 사람의 믿음이나 역할 그리고 행동들은 얼마나 인간 생활을 풍부하게 했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

287. 남성성과 여성성의 개념이란 단지 일시적인 구조물들이다. 그들은 어떤 시점에 이르러 특별한 목표를 지니고 있고 또 상황이 바뀌면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형은 플라톤의 영원한 이상들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삶의 구조물들처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목표를 재수정한다.

288.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있을 때만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가 있다. 이런 기본적인 이중성이 우리가 복잡한 윤리적 구별을 해내는 데 도움을 준다.

291. 내가 예측하기에 대부분에게 생명의 나무는 단 하나의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보다는 생명력과 재생의 여러 원천인 가족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정 등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292. 「황금나무」는 이 책의 모든 해석에 대한 은유를 제공해 준다.
이야기들에 관한 언급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녹고 다시 형성되는 나무와 가지 이상의 것이 아니다. ... 이야기들은 스스로 변하고 발전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이야기들은 또한 미래가 되면 녹아 없어지고 재생될 것이다. 이야기는 상상력이란 시원적 샘물과 인간 영혼의 창조성이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부터 솟아났다. 그리고 이는 중년을 병들게 하는 전복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통찰과 재생 그리고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중년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 중년의 길

293.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난다.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두 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94. 이야기에서 젊은 주인공들은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으며 정직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만 한다. 이런 덕성들의 목록들은 정확히 그 이야기가 등장하는 문화권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관습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이들을 어린 아이에게 심어주는 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섬세한 아이러니와 만나게 된다. 비록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기존의 사회에 반대하는 데에 그들의 에너지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295.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승리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 마지막 목표는 결국 사회 속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297.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행운을 찾기 위해 그들의 가족이 주는 안락함과 한계를 떠나는 것처럼 중년들은 개성화를 위해 사회의 금기나 확신을 버린다.
* 개성화라는 면에서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회의 금기나 확신을 버리는 것에는 동의한다.

297. 중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극이 악한 사람들뿐 아니라 덕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과 죽음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대부분의 남녀 모두를 가장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 희생자일 뿐 아니라 악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고 악함이 남들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배우는 일이다.

301.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나는 오래된 관습들을 버려야 했고 그에 따른 의문이 내가 지녔던 원칙들을 다시 키워나갔다. 내가 이야기들을 써내려 갔지만 동시에 이야기들이 나를 만들어갔다.

301. 아이러니지만 나는 중년의 이야기에 관한 연구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지적인 작업이었지만 나중에는 가슴과 영혼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302. 중년의 오랜 허덕임은 자신들의 영혼 속에 깊이 숨어있는 시원적 원척과 대면할 때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2. 역지사지(내가 저자라면)

#1. 융심리학과 전례 동화의 활용
조셉 캠벨을 생각나게 하는 예들이 많이 나온다. 저자 알랜 B. 치넨과 조셉 캠밸의 공통점은 융심리학이다. 그리고 평생을 한 분야에 학문 연구에 매진한 점이 공통이다. 저자의 해석은 심리학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융심리학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에서는 캠벨과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다른(때로는 상반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혼란스럽다. 이야기는 하나인데 그것을 적용하는 곳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른 적용에서 캠벨의 『신화 이미지』에서 언급하는 피라밋의 속에서 빛나는 눈이 연상된다. 그런데 그 빛나는 눈이 아니라, 적용면이 다른 점을 떠올라서 피라밋의 한쪽 면을 보는 사람이란 생각이 맴을 돈다.

융심리학에 대해서 모르는 나는 어느 부분으로 이 중년의 이야기에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처럼 중년도 아니고, 전체를 보는 눈도 가지지 못했는데, 우선은 내가 볼 수 있는 한 면이라도 들여다 본다면, 나는 창작의 관점에서 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 의식의 원형이 들어 있다. 세상에 모든 이야기들은 완전히 독특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것을 읽는 이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일종의 상징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러한 상징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창작에 활용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도상학을 공부해서 그림을 읽어내는 것처럼 융심리학과 상징들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게 되면 ‘이야기를 읽는 법’ 쯤으로 될 수도 있겠다.

#2. 36세의 지금의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런 중년의 이야기를 쓰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안 쓸 것이다. 중년이 되면 그때는 모르겠다. 하여간 36살의 지금, 중년이 되기를 거부하는 지금은 중년의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중년이 아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연령대인 만큼 쓰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쓰다보면 중년에 대해 알게되고 더 깊이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심리적 장벽으로 나는 저자가 아닌 독자가 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저자는 중년의 이야기를 엮으면서 자시의 이야기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중년이 되면서 겪는 변화를 이 책을 쓰는 동안 경험하고 있으니까.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는 중년의 이야기에 100% 공감을 할 수 없다. 아니, 그것은 80% 정도도 아니었다. 이것은 작년 이맘때의 상황이다. 나는 중년의 이야기에 몹시 언짢았다. 한마디로 하면 으르렁거렸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직은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거부해 오던 것들에 대해, 전후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것에 대한 감정은 순화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중년과 늘상 비교하는 젊은이, 그 젊은이에 나는 속해 있었다.

35세, ‘완숙한 가장 빛나는 청춘’. 35세에 대한 찬사는 저자 알랜 B 치넨이 한 말이 아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이미지’에 몇 번이고 언급된 나이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이다. 하루에 비교한다면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고 밝은 한낮이다.

일찍 결혼한 사람은 35세가 중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동창 중에 하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교회 친구의 결혼식장에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23세나 24세쯤 되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결혼이 많이 늦어지고 있지만 이전 세대들이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갔다면 나는 지금 중년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내 어머니께서도 35세라는 나이는 자신이 이미 아이들 낳는 것을 마친 나이라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는 나에게 나이를 인식시켜 주셨다. 어머니께서는 21살부터 아이 넷을 낳으셨으니 35세이면 육아문제(교육문제를 포함하여)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나이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중년이 아닌 내 앞 세대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중년이야기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서 하는 동안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들은 누구의 통제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냥 그럴 수 있었다.

책속에서 중년이 받이들이는 악에 대처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처럼, 그냥 옆에 흘러가게 두던가 나와 한 공간에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게 두면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악’이라고 이름붙인,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너무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평범한’ 이란 악의 수식에서 동의하면서 내 스스로를 중년의 도입부에 이르렀구나 한다.

#3. 인상적인 예를 들다(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의 실제 사례들)

매우 인상적인 예가 있다. p.48에 인턴생활을 할 때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병원에 일찍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출근길에 응급환자를 태우고 달리는 앰블런스를 보고는 자신은 아주 천천히 병원에 가버린 예를 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평소다 ‘의사는 이렇다’ ‘이런 것을 추구한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과 자신의 실제 행동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이런 암시에 대한 내 최초의 반응은 솔직히 고백하건데, 일종의 공포와도 같았다. 내 개인적 경험들을 드러내라고? 그것도 사람들 앞에 공공연히? 게다가 나의 작업을 지극히 여성적인 문제들인 사적인 일화와 감정들로 가득 차게 만들라고? 그런 것들은 거의 여성작가들이나 다루는 것이 아니었던가?(솔직히 이런 것들은 아주 조잡하고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진실을 말하는 무의식의 소리였다.) 나는 감상적인 글쓰기를 매우 혐오했었고 보다 전통적이고도 안전하게 남성적인 목소리로 객관적인 사실들이나 영원 불멸의 진지들 또는 고집쟁이 남편의 깊은 사색들같이 장엄(?)하고 권위적인 것들을 훨씬 더 좋아했다.(p.78 )

나는 여러 가지 책략들을 교묘하게 써가면서 이 책이 나오게 되더라도 내 사적인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피했다. 내가 택한 책략 중 하나는 특히 많은 남성 저자들이 그런 것처럼 여러 가지 임상 예들을 시치미 뚝떼고 나열하는 것이었다. 환자들, 동료, 이웃들, 친구들 이야기인데 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말만 실컷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예들은 사실상 자전적인 것이다.(p.79)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을 삶을 변화시킨 어떤 것일 때, 우리는 깊이 책에 빠져든다. 저자의 이야기는 세계의 전설 속에, 혹은 동화 속에만 있는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와 관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사례를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의 중년을 다룬 이야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어쩌면 그의 고백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스토리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나와 거기에서 우리가 미쳐 알아채지 못했던 공통적인 상징들을 끄집어 내어서 설명하는 것으로만 책을 구성하였다면 무척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옛날 이야기일 뿐이고, 그것은 너무나 멀리, 외국의 사례이고 또 나와는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4. 옛날 이야기
할머니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살아.’ 그때는 이 말이 이야기를 읽어가 들을 때는 논밭에 나가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 앞에 닥친 일거리를 해내야 하는 실제의 삶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으로, 이상적인 삶으로, 상상의 삶으로 이동해 간다. 모든 인생을 다 겪을 수는 없고, 모든 것을 실제로 다 경험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보완해주는 이야기가 좋다. 나 자신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 의식에서는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라는 말로 어른들은 이야기를 멀리 두려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좋다. 이제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중년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단 말인가.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는 16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16개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좋아는 내게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이야기 하나 하나에 설명이 있긴 한데, 우리는 이야기를 그렇게 듣지 않는다. 설명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더 원한다. 이야기는 우선 이야기 자체로 전달되어야 한다. 거기에서의 상징이나 교훈은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교훈적인 이야기, 어떤 명사의 말, 명언들, 그런 것들은 몇 번을 들어도 잘 잊는다. 스토리는 남는데, 거기에서 스토리 빼고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해당하는 말만을 전하면 그것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우선 매력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로 듣는 이를 사로잡고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이런 요소들이 드물다고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세계 각국에 있는 중년의 이야기 모음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후에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그 후에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5. 이분법적이고 매우 공격적이다
'케이트는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점 때문에 야단을 맞곤 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게이트에게 강요한 여성적인 이타주의의 고정 관념이다. 결과적으로 케이트는 영적으로 시들하게 되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동면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p.109)

중년의 여성이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런 언급은 매우 당연한 것이고, 여성으로서 늘 바래오던 것이고, 주장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면에서는 맞장구를 치면서 읽고 있지만 왠지 기분이 언짢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지어서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거슬리고, 여성의 변화에 대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회가, 남성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본다면 논란의 꺼리이기 때문에 불편하다.

저자는 중년의 여성의 변화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는 거슬린다. 누가 자리를 내어주어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자기 것이라서 갖는 것인데도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하는 반발심이 이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저자가 일부러 성구분을 하지 않았고 사실대로의 현상을 나타내었다 하더라도 둘을 매번 확실하게 구분해 버리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물론 여성이 겪는 중년으로의 변화와 남성이 겪는 것은 다르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성 안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의 강조가 지금의 젊은 여성이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압박의 강도만큼 크게 와 닿는다.

중년의 이야기를 젊은이의 사고 방식과도 계속 비교하는 점도 못 마땅하다. A를 정의할 때는 A가 아닌 것을 언급함으로서 A를 드러내는 것처럼 중년을 언급하기 위해서 젊은이는 어떠한데, 중년은 어떻다라고 경계를 만들고 분리를 해낸다. 젊은이와 중년은 분명히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중년은 큰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몇 번이고 책을 통해서 봤다. 그렇지만, 그런 서술이 못 마땅하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6. 하나의 사슬로 엮어둔 커다란 이야기
저자 알랜 B.치넨이 골라낸 16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큰 흐름을 따라서 이어진다. 중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겪는 일, 그리고 그들이 겪게 되는 혼란, 받아들임, 그 이후의 삶이 시간의 순서로 엮어지고 궁극적으로 중년이 겪게 되는 것을 서술했다.

각장의 끝에는 그 장에 해당되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의미를 설명하고서 다음 장에서는 무엇을 다룰지를 언급하는 단락이 있다. 저자가 깔아 놓은 레일을 따라서 그 역을 방문해서 저자가 설명하는 말을 듣고, 다음 장소로 또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같다. 전체적은 구성은 기차가 궤도를 벗어나지 않듯 틀에 꽉 짜여진 길을 가는 것이다. 흥미를 유발하여 다음 장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꼭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보완해야 하는 것인가, 각 장이 하나로서 존재하게 하면 안 될까?

#7. 숫자 5 : 매우 서양적인 해석
숫자 5에 대해서 저자는 중년의 숫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많다’라는 의미와 ‘통합’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저자는 5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는 ‘5’에 ‘중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가 의문이다. 1,2가 아이, 어린시절을 의미하고 3,4가 젊은이를 의미하고 5가 중년을 의미한다는 것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좀 다르지 않은가, 동양에서도 5라는 숫자를 매우 좋아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음양5행설’이라던가 ‘3강5륜’, ‘오우가(五友哥)’라던가 방향과 성질을 나타내는 ‘5방색’하는 식으로 다룬다. 그것은 물론 저자가 언급한 대로 전체를 의미하며 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4가지가 대립의 요소라면, 다섯 번째 요소는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으로 중앙이며, 4가지를 모두 감쌀 수 있는 요소이다. 그렇지만, 이 5번째 요소라는 게 꼭 5번째 요소가 아니라 첫 번째 요소로서 먼저 언급되기도 한다.

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브르스 윌리스 밀라 요요비치가 나온 영화 ‘제5원소’에서도 5라는 숫자는 특별한 상징이었다. 4까지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었고 5번째 요소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이런 숫자에 중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좀 억지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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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01 10:08:35 *.36.210.11
다시 읽었구나. 할 말이 많은 것을 보니 중년의 삶과 인생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그래, 그대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구나. 삼십 대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가 한다. 나는 반은 황홀했고 반은 어둡게 지냈다만 그래도 좋았다. 그 시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테지... . 많이 쓰고 많이 느끼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괴롭고 많이 자유롭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진실하고 많이 도전하고 많이 통과하렴. 절대 아쉽지 않게. '이 보다 더 잘살아낼 수는 없다'라고 실컷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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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01 16:43:33 *.179.68.77
분석력이 뛰어나네~
읽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새로움이 새록새록 한데~ 땡큐!
그리고 정화야~ 너, 중년이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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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8.01 18:09:00 *.247.80.52
읽어도 뭔말인지 ...모르겠어(사실은 대충은 알겠어.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고.)
그런데... 결혼 아직 안하고 애도 안 낳는데 나보고 중년이라고 하면 무지 억울하잖아. 그딴게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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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02 20:52:08 *.179.68.77
그런가?
아직 '당나귀'의 삶은 아닌가?
정화는 아직 절망과 냉소주의에 쉽게 빠져드는 것 같지도 않고......낭만적인 이상을 꿈꾸는 소녀라 중년은 아닌가?
그래도 '밥'이라는 주제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측면에서는 중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ㅋㅋㅋ 젊은이들은 과도한 믿음이 문제고, 중년은 너무 낮은 믿음 때문에 함정에 빠진다는 저자의 글이 아직도 맴돈다.
그래도 미래를 과도하게 꿈꾸는 것에 내 패를 걸고 싶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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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8.04 19:13:35 *.247.80.52
(내가 위에도 뭐라고 썼는지.. 벌써 까먹었고, 잘 모르겠음)

중년... 그건 잘 모르지.
그냥 나는 내 나이로 살고 싶은데.. 내 나이에는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주위에서는 그것을 내게 일러주지. 그런데, 그건 내 노력으로 만 되는 것은 아니더라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자각하고 구별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게 중년인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노력해서 뭔가가 이루어지길 바래고 있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간격이 너무 멀어. 저자는 '하면된다'라고 믿고 따르는 것 또한 신흥종교와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거는 젊은이의 특징이고... 그런데 그런 종교 버리면 뭔 힘으로 살아가나.

이전에 재미있던 것들이 지금은 별로 재미가 없어졌어. 그게 바로 중년의 시작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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