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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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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4일 11시 06분 등록
1. 저자 소개

오늘 주문한 책이 왔다. 먼저 마르틴 발저의 책 <불안의 꽃>,
“그가 지금 분명 일생의 그 어떤 때보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십 년 전보다 삶에서 더 멀어진 것은 결코 아니오. 조금도 아니오. 삶이란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끝내 충분히 가지지는 못하는 어떤 것이오...” 이 문장이 내가 이 책을 사도록 유혹했었다. 이 소설은 주저함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노년 에로틱의 절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8월 숙제표를 보고 찾아낸 아탈리의 책, <합리적인 미치광이>. 열정과 이성을 동시에 가진 인간을 그린 제목의 출처를 암시하는 구절이 눈에 띈다.,

“열정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이성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따라와 위험을 예고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래 맞아. 내가 미쳤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열정이 그에게 소리친다. ‘그러면 난, 나는 죽으란 말이냐고!’”
(알프레드 드 뮈세, <어떤 세기적인 아이의 고백> 중에서)

이 모순되는 두가지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가 그리는 형제애 유토피아. 그에게 형제애는 자연 상태가 아니라 문명이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다. 행복을 증대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복을 증대시킨다는 것, 곧 타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그곳이 형제애 유토피아다. 이 두 모순되는 말이 양립가능하기만 하다면 시장 자유주의의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희망을 피력한다.

그리고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 <소유의 종말>.
단숨에 읽힌다. 이 책의 원제목은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이다. 그런데 번역은 '소유의 종말'로 되어 있다. 아래 영어 제목이 조그맣게 인쇄되어 있지만 그것을 주목할 사람은 별로 없다. '번역은 반역'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소유의 시대가 가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로 보면 같은 말이겠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소유의 종말'은 과거지향적이다. 반면에 '접속의 시대'는 미래지향적이다. 관심의 초점이 미래에 있다. 이미 번역된 그의 책 <노동의 종말>과 <육식의 종말>과 함께 종말 시리즈로 이 책을 선전하려는 출판사의 마케팅 의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접속의 시대>가 홍보에 나쁘기만 한 제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은 6년의 시간에 걸쳐 집필되었다고 한다. 350권의 책과 1천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그러나 의문이 생긴다. 6년 동안 이 책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1년에 적어도 60여권의 책을 읽고 170편의 논문을 읽고, 8,300개의 색인을 만들었어야 하는 숫자다. 그러나 그는 그 사이에 그 책에만 매달린 것도 아니다. 이 책 못지 않게 파워풀하고 선동적인 저서 두 권 <노동의 종말>과 <바이오테크시대>를 발표했고 사회운동가로, 국가정책 자문위원으로, 세계유수 기업인과 고위 경영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자로 동시에 바쁜 일상을 살아냈다..

나름의 수수께끼의 비밀은 그의 연구소가 아닐까. 리프킨은 현재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1977년에 세웠다. 그가 처음에 주로 다룬 이슈는 노동문제였지만 그는 차츰 유전자 조작에 대해서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자신이 벌이는 운동과 관련하여 책을 저술하는 것이 그의 운동의 사회적 파급력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을 그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추측컨대 그동안 경제동향연구재단의 주요 업무는 그의 책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업무를 주도하는 것도 그요, 책을 저술하는 것도 그이다. 아무리 연구원들을 동원해 자료 조사를 시켰다고 해도 자신이 핵심을 꿰고 있지 못하다면 이런 책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20여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었던 저력이 단지 그런 자료만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실천적 관심과, 열성, 그리고 인류의 문명을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그의 혜안이 없었더라면그 어떤 책도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저술한 책의 목록을 보면 그의 관심사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변화 무쌍한 사회 변화와 함께 현장에서 그가 마주친 현대 사회 이슈들이 그만큼 다양했기 때문이리라.

그를 추종하는 자나 비판하는 자나 공통으로 인정하는 것은 대중 운동가로서의 그의 탁월한 역량이다. 종말 시리즈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을 일으킨 그의 책들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인류 문명에 초래할 위기들을 풍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실감나게 제시하고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그의 책이 살아있는 것은 그가 경제학자나 미래학자로서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 분명한 목표 지향을 가지고 책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향성은 적을 부른다.

그는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치열한 반대운동을 벌여 식품업계로부터 ‘식품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미생물학자로부터는 ‘생물학 근본주의자’란 별명을 얻었다. <타임>지로부터는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극소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던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화시켜 공공이슈로 만든다. 또한 유전 공학 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일부 전문가의 일부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중요한 과학기술 결정에 이해당사자를 비롯하여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다. 특히 그가 과학기술의 주제를 사회쟁점으로 부각시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조직해내는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시대에는 매우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많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많지 않다.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하며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투신하는 열렬한 행동주의자는 드물다. 모든 세대에는 양심의 진화에 보탬이 되는 한 줌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책이 진짜 힘을 갖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자꾸 나와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은 이 시대의 사표다.

그의 대표 저작들

<엔트로피>,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책이다.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 개념이다. 기술이 환경 및 제반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환경과 경제가 일정하게 통합된 구조임을 역설하여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논쟁작이 되었다. 이후 리프킨은 광범한 현실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에 매진한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그는 노동의 미래에 대해 진단하면서 정보화 물결로 소수 엘리트를 제외하고 인간의 노동이 서서히 제거되어 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소유의 종말> 통해서는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산업시대와 비견될 만큼 중요한 '유전자의 시대'가 어떻게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게 될지를 전망하는 <바이오테크 시대>와,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인간의 육식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육식의 종말>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지구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날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구상에서 축산 단지들을 해체시키고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우리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한다. <수소 혁명>에서는 2040년이면 완전히 고갈될 석유 에너지 대신 수소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주하고 있다.

그의 천재성은 그의 책이 가지는 탁월한 공감 능력에 드러난다. 누구든 그의 책을 읽으면 그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그의 운동에 연대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우리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가는 이라면 그의 책을 자연스럽게 집어들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2.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들

11.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

11-12. 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 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13.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 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14. 사유재산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했고, 또한 인간을 재는 잣대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사회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 모른다.

15.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17. 문화 생산은 더 많은 인간의 활동을 상업 부문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핵심적 사명으로 삼아온 자본주의 생활 방식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제품 생산에서 기본 서비스의 제공으로, 다시 인간관계의 상품화로, 마지막으로 문화적 체험에 대한 접속권의 판매로 경제적 우선 순위가 달라져 온 것에서 우리는 모든 관계를 경제적 관계로 만들려는 상업 영역의 집요한 의지를 목격한다.

19.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 남겠느냐> 하는 것이다.

21.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접속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상품화된 문화체험에 점점 무게가 실리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할 수 있다.

37.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 앨빈 토플러

39. 구체제가 클럽이었다면 신체제는 네트워크 - 타임 워너의 월터 잭슨

45. 할리우드는 수직으로 통합된 고전적 거대 기업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네트워크 경제로 변신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지식 집약 산업이 할라우드와 똑같은 납작한 원자 상태로 해체될 것이다. 할리우드는 그저 가장 빨리 거기에 안착했을 뿐이다. – 조엘 커트킨, <왜 모든 기업은 쇼 비즈니스기업처럼 되나>, 잡지 <주식회사 Inc.>

47.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55.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한때 사유 재산 체제의 구심점이었고 건강한 자본주의 체제의 지표로 오랫동안 인식되었던 업무용 부동산이, 접속의 시대에는 적어도 일부 산업에서는 번영의 잣대가 될 수 없고 많은 경우 수익 창출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58. 돈은 순수한 정보의 형태로 광속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전자비트로 변해가면서 빠르게 물질성ㅇ르벗어던지고 있다. …앞으로 25년이면 딱딱한 경화는 경제활동의 성격과 형태가 물질성에 기반을 두었던 흘러간 옛날의 추억거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돈의 탈물질화가 이루어지면서 저축은 감소하고 개인 부채는 증가한다.

62. 미국인은 모아놓은 돈 없이 돈을 버는 족족 써버리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64.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산시설을 재고로 유지하는 자본이 생산시설에 접속할 수 있는 저스트인타임 자본으로 바뀔것이다. ‘사용하되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69. 모든 분야, 모든 업종의 기업이 자신의 핵심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자산을 다투어 과감하게 처분하고 있다. 기업의 일차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꼭 필요한 자산이나 업무가 아니라면 외부하청업자에게 맡기는 아웃소싱이 새롭게 부상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거의 종교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73. 제조업체는 아무것도 안 만들고 소매점은 자기가 파는 물건에 손도 안댄다.

78.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공장 자산은 직원들의 상상력이다’ - 프레드 무디, <뉴욕 타임스>

81.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공장과 원료보다는 아이디어와 재능이 더 중요할 때가 많지만 이것들은 수량화하기가 어려우므로 기업에 대한 판단은 점점 주관화되고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88. 사업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 더 새로운 분야는 이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 방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게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역학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89.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92. 체인점이 물리적 자본을 소유하고 직원을 고용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한다는 사실은, 사업의 핵심을 규정하는 무형 자산이 엄연히 본사의 소유라는 사실 앞에서는 공허하기만 하다.
85. 가벼운 제품, 소형화, 부동산의 비중 감소, 저스트인타임 재고관리, 리스, 아웃소싱, 이 모든 것은 물질성에 역점을 두었던 세계관이 쇠락하고 있다는 증거다….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이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100. 업계에서는 수억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생물이 진화하면서 공동으로 축적해 온 유전가 암호의 상당수가 앞으로 25년 안에 분리되고 규명되어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포장된 뒤 소수의 거대 다국적 생명과학 기업에 의해 장악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114. 모름지기 사물의 진가는 지닐 때보다는 쓸 때 발휘되는 법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127. 서비스는 물질이 아니며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것은 수행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는 실행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보유하고 축적하고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자는 사는 것이고 서비스는 받는 것이다.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과 사람의 접속도 점점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로 바뀐다.

128.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물품의 가치는 물품을 구성하는 재료나 물품을 담는 통이 아니라 물품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얼마나 접속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137. 공급자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고객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식견을 빌려줄 뿐이다.

145.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의 상품화다.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변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고객의 관심을 묶어 둔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53. 마케팅 관점이 득세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이 사업의 본질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은 생산 관점이 득세하던 시절에 노동자를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긴요해졌다.

155. 결국 제품이라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58.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사회가 부를 낳는 자원을 기업에 위임한 것은 고객에게 그것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 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 마케팅은 제품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특이한 사업 기능이다. 모든 사업을 최종 결과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167.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168.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194. 다시금 강조하지만 접속의 시대에는 공간이 시간에게 밀려나며, 기업들이 더 많이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것은 물리적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다.

203.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204.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공동체)의 철자가 비슷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커뮤니티는 공동의 의견과 공동의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있어야 성립한다.

205. 인류학자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나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립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05)

210.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예술은, 이제 광고 회사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 양식>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

212. 살아 있는 체험은 상품 구체화의 최종 단계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체험은 자본 순환에서 최종 상품이 되었다. - 사회학 교수 노먼 덴진

213. 체험 산업의 성장은 산업 혁명이 생산한 물건의 효용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소비자는 '내가 아직 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뭔가?'라고 묻지 않고 '내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 중에서 체험하고 싶은 것이 뭔가?'라고 묻는다. - 미래학자 제임스 오길비

213.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 경영컨설턴트 조셉 파인, 제임스 길모어

262. 접속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건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소유하고 네트워크에 이르는 통행로를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267. 동산과 부동산의 교환을 지배하는 법칙을 이해하는 중요한 변수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면 문지기의 기능은 접속의 역할을 이해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272.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이 폭격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MIT 언어학 교수 켄 헤일

272.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소멸한다. - 웨이드 데이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279. 과학은 객관적 현실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 기술은 객관적 현실의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유 재산은 정복에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308. 인쇄가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관념이 싹트는 것을 도왔던 것처럼 컴퓨터는 관계를 중시하는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북돋운다.

316. 문화 상품과 체험을 파는 데 골몰하는 경제에서 개개의 영혼이 복수의 인격으로 파편화된다는 것은 문화 시장의 수가 앞으로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할 따름이다. 사람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체험의 양이 곧 문화 상품의 시장 규모를 의미한다면 개개인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351. 상호 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 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이다. 소유 개념은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359. 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 정책을 운용하면서 문화라는 제3부문은 당연시한다. 사회 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363.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373. 지리적 맥락을 박탈당한 문화 표현은 총체적 체험의 그림자일 뿐이다. 물론 그림자도 엄연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즐거움도 줄 수 있지만 원래의 무용이 전달하려고 했던 대지와의 깊은 일체감은 맛볼 길이 없다.


380. 생물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21세기의 중요한 두 사회운동이다.

383.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 간디

384.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385. 일이 인간 생활을 지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산업 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즐거운 일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일은 기본적으로 단순 반복 업무라서 따분하고 지루하다. 둘째, 놀이는 자발적이다. 놀기 싫은데 억지로 놀라고 할 수는 없다....나머지 사람들에게 일은 생존의 문제다.

386.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7.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일상의 시간이 유보된다. 놀이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389.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 -프리드리히 실러

390.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두려워하여 자유를 쓰고 싶어하는데......그래서 하는 것이 놀이다. - 사르트르

392.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육식의 종말이 육식의 문제를, 노동의 종말이 노동의 문제를 진단하듯이, 소유의 종말은 소유를 핵심 이슈로 진단하는 책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접속(acess)이라는 키워드로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아주 쿨한 책이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여 명쾌한 개념으로 요약해내는 리프킨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매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책이다. 주로 현상을 다루는 보통의 미래학자들과는 달리 리프킨은 개별 현상들과 함께 그 현상들을 관통하는 거시적 흐름을 읽는다. 네비게이션 버드뷰(bird view)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구글 맵으로 어떤 한 곳을 쭉 끌어 당겨 자세히 보는 것 같기도 한 요술 같은 책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은 처음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의 징후들을 막연히 느끼고는 있지만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시적으로 볼 만한 안목은 부족한 나 같은 사람에게 리프킨의 저서는 특히 유용하다.

보부아르의 <노년>처럼 감성이 너무 지나쳐 인용문들을 좀 가지치기하면 좋을 걸 하는 책이 있는 반면, 이 책처럼 적제 적소에 빛나는 인용문으로 다리를 놓으며 자기 논리를 전개해가는 책도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재능과 성격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나니 책의 스타일에서도 사람의 성격을 읽게 된다. 이런 책은 애초부터 디테일한 것까지 정확히 그려놓고 시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책이다. 내게는 없는 재능이라 이처럼 논리정연하고 거시적인 안목의 책을 보면 자연히 감탄하게 된다. ‘내 평생에 이런 책 하나 쓸 수 있을까’ 하는 비원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정보화 사회라고 규정하지만 리프킨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산업시대를 인쇄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만큼 협소한 정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정보화 시대가 아니라 접속의 시대다. 정보는 인터넷이라는 부분적 세계를 전체 세계로 확대 적용한 개념이지만 접속은 인터넷은 물론 자동차, 주택, 전자제품, 공장, 체인점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포괄적 조류이다. 접속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이다. 접속의 반대는 소유이다. 사람들은 항구적으로 소유하기 보다 일시적으로 접속하기를 원한다. 왜?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화의 양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에 의하면 18개월마다 컴퓨터 칩의 처리 속도가 두 배가 되고, 칩 생산 원가는 멈추거나 떨어진다고 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밖에 없는 세상에서, 무겁게 소유하고 축적하는 방식은 점점 설 땅이 없어진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아웃 소싱'(out sourcing)이 많아질 것이다. 아웃 소싱은 접속의 시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왜? 기업이 사명에만 충실할 수 있고,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설비비와 같은 고정비가 필요 없기 때문이고 변화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접속 시대의 징후는 사용하되 소유하지 말라는 주장과 함께, 줄어드는 부동산, 돈의 탈 물질화, 저축의 감소, 무형 자산, JIT(저스트인타임) 재고관리, 리스 등을 들 수 있다.

미래는 '개념'을 파는 시대이다. 나이키는 공장시설도 판매망도 없다. 본사는 디자인과 개념만을 가지고, 공장에 생산을 의뢰하고, 매장에 판매를 의뢰하고, 광고회사에 광고를 의뢰한다. 몇 사람이 본사에 앉아서 개념만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미래는 개념이 곧 재산이다. 맥도널드는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고 있다.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매장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아이디어, 개념, 문화가 곧 생산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접속의 시대는 기업들이 많은 제품을 고객에게 파는 것을 포기하고 개별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일,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 놀이를 상품화한다. 이렇게 문화 생산은 더 많은 인간의 활동을 상업 부문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핵심적 사명으로 삼아온 자본주의 생활 방식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문화는 상업 영역보다 먼저 나타났다.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문화 영역과 상업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접속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상품화된 문화체험에 점점 무게가 실리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 남겠느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접속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파헤치는 저자의 명석함 때문에 낱낱이 해부된 자본주의 사회를 투명하게 들여다 본 기분이다. 그 기분은 끔찍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를 보고 ‘공감은 끌어내지만 실천을 끌어내진 못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그것이 그가(미국이) 당면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명확한 대안보다는 현상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나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더 크다. 다가올 문제들에 대한 대안은 함께 찾아가야 한다.

아직 접속의 시대로 완전히 이행한 것도 아니고, 모든 나라가 다 접속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진단하는 현상들은 미국을 비롯해 이미 통신 기술의 진보가 궤도에 오르고 탈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에 국한된다. 그러나 사실 그런 진보를 이룬 나라들이 세계 경제를 움직여간다는데 이 책의 함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스스로 밝힌대로 접속 관계의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미완의 숙제다.


정신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 생활과 사회생활이 점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를 이렇게 평가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현상의 뒷면을 보면 오히려 사람들이 점차 웰빙과 정신 세계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사람들만 살펴봐도 그렇다. 놀라운 것은 내가 초청하는 많은 예술가들, 혹은 내가 외국에서 만나는 많은 지식인들이 식생활과 정신 세계의 문제에 있어 동양을 주목하고 있고, 실제적으로 동양의 종교와 불교, 요가, 채식 등을 자신들의 삶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이 한 때의 유행인지는 모르지만, 접속의 시대에 문화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지속되리라 본다.

사부님께서는 리프킨이 최고의 작가지만 동양에 대해서는 아직 깊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자연과의 일체감, 공동체 의식은 이미 동양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이었다’는 것. 그것은 미래의 제안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였다는 것이다. 서양 문명의 위기와 구원이 우리가 서구화하기 위해 쉽게 버리려고 하는 것들 속에 수없이 산재해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 또 하나의 숙제이리라.

소유는 종말을 고했나

이 책에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과연 소유는 종말을 고했는가' 하는 점이다. 소유관계는 소유하는 사람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 접속 관계는 연결되는 사람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을 구별한다. 이 두 관계는 결국 포함과 배제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소유관계가 사람이 보유한 재산의 가치라는 양적 조건과 사람이 앞세워 타인의 노동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힘과 통제력이라는 질적 조건으로 측정된다면 접속 관계는 그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네트워크 수라고 하는 양적 조건과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질적 조건으로 측정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소유'를 포기하고 '접속'을 선택하게 하는지에 대해선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기대수익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개인과 기업의 선택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 수단을 찾는 것이다. 수익을 발생시키면 자산으로, 비용을 발생시키면 부채로 간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부동산을 매각하고 리스를 선택하는 것은 부채를 자산으로 전환해서 수익률을 극대화 하려는 기업의 필연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얻어진 수익은 결국 접속을 위한 인프라의'소유'로 이어지는데, 이처럼 기업에게 '접속'은 대상만 달라진 또 다른 '소유'는 아닐런지.


아이들의 언어 이해하기

이 책에서 접속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특징들이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를 달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분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그애들이 사이버스페이스에 노출된 시간은 우리세대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많다. 친구와의 소통도 온라인 메신저를 통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버 세계는 이제 그들에게 가상 현실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리프킨이 우려하는 소통의 문제와는 달리 나에게는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당면해 있다. 나와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많이 다르다. 아이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애들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을 부모인 나 먼저 익혀야 한다.

본문에 소개된 장 보드리야르, 프레더릭 제임슨 같은 탈근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TV는 더 이상 가상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이들에게는 현실이다. 우리 셋째는 집에 머무는 시간의 대부분을 MTV의 뮤직 비디오를 보며 보낸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에 의하면 MTV는 모든 경계를 허물고 준거점 없이 모은 문화적 파편들의 짜집기라고 정의한다. 철저히 마케팅 기제에 의해 움직이는 MTV는 시공간에 별개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고유한 특성과 독립성을 상실시키고 아이들에게 해악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 미디어 이론은 오래 전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런 걸 알면서도 아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어떤 때는 무력해 보인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나를 생각해본다. 아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한 웬만한 과도함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다. 과도함과 부족의 경험에서 늘 나는 무언가를 배웠다. 내가 너무 낙관주의자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애가 TV를 언제고 끼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갇혀 지내는 시간도 한 때일 뿐이고, 내년이면 고3이라는 환경이 그것마저 제한할 것이다. TV를 보는 것보다는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도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 모른다. 열심히 듣고 따라 하는 노래에서 그애는 이 시대의 언어를 체득하는 중이고 그것은 나중에 그 애가 사업을 하거나 직업을 가졌을 때 그 또래와의 소통에 관해 더 현실감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주목할 이슈: 세계문화의 동질화(252-173)


경제적 부가 가치의 순환고리에서 문화 생산이 가장 각광받는 분야로 떠오르면서 마케팅은 협소한 상업영역의 울타리를 훨씬 넘어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마케팅은 문화적 규준, 관습, 활동을 상품 형태로 번역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술이다. 마케팅 전문가는 예술과 의사소통 전략을 구사하여 상품, 서비스, 체험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의 구매 행위에 문화적 의미를 불어넣는다. 이제 문화마저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공히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엘리트 그룹이 바로 문화의 중개자라 불리는 새로운 계급이다. 접속을 통한 체험이 재산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새로운 문화 중개자는 개인과 문화 체험 사이에서 문지기(gatekeeper) 노릇을 한다. 이들은 문화적 유행을 남보다 한 발 앞서 예측하여 재빨리 상품으로 만들어닐 수 있게 주도한다.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문화중개자들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전통문화는 이런 상술에 의해 침식당하고 심한 경우 소멸의 길을 걸을 수도 있으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의 몇 안되는 정보, 오락, 통신 회사들이 전세계의 미디어 시장을 지배할 때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심각한 질문이 표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이런 우려는 충분히 정당성을 갖는다. (2001년 현재) 미국영화가 유럽 영화시장의 70%, 남미 영화 시장의 83%를 장악하고 있다. 문화 상품의 세계 무역 규모가 지난 10년간 10배로 늘어나면서 지구 문화의 동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동질화는 진행되었다. 전세계의 많은 언어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있으며 그 빈자리에 영어가 새로운 문화 상품의 표준어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 세계 6천 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은 21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영어를 쓴다. 이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전세계 문화의 상거래를 주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1세기 안에 영어는 더 빠르게 세계 구석구석으로 파고들 것이다.

MIT의 언어학 교수 켄 헤일은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이 하루 아침에 폭격을당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한 문화가 공유하는 의미, 표현, 가치관, 이해를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문화특집으로 다룬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웨이드 데이비스는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세상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류가 쌓아온 지적 성취와 살아있는 문화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언어가 급속히 소멸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산업시대는 자연 자원과 노동력에 대한 식민주의와 그 이후 신식민주의 지배를 놓고 지정학적 투쟁이 활발히 벌어졌다면 새로운 시대는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접속의 문제, 상업적 형태로 문화적 상품을 담은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둘러싼 지정학적 쟁탈전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시대라는 리프킨의 주장을 우리는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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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8.06 06:36:21 *.160.33.149

'내가 저자라면' 좋다. 얻은게 많아 보인다.

인용은 부실하다. 옮겨 적는 것을 귀찮아 하지 마라. 리프킨의 설득력은 단어와 경구에도 있지만 '감동적 스토리'에 있기도 하다. 이야기와 사례를 잘 기억해 두어라. 그러면 모호함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있다. 특히 사변적 취향이 많은 사람에게는 구체적 이야기가 곧 명료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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