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이은미
  • 조회 수 299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8년 8월 4일 11시 51분 등록
1. 저자소개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왔다.

194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터프츠대 플레처법과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을 설립,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 세계 지도층 인사와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보화시대의 부작용을 지적한 '노동의 종말(2005)', 급속도로 증가하는 육식 문화, 특히 쇠고기에 집중되는 음식 문화와 이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를 다룬 '육식의 종말(2002)',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사회·경제·윤리적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바이오테크 시대(1999)'등이 있다.

리프킨은 흔히 문명비판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주장이 워낙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환경 파괴 위험과 테크놀로지의 재앙적 남용을 경고하며 유전자 조작에 반대한다. 단지 그것 뿐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적 탐구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 활동의 개념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 이미 있었던 것 아니냐고? 그렇다. 그러나 리프킨의 경우엔 그가 활발한 저술가인 동시에 몸을 아끼지 않는 운동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국내에 가장 먼저 번역돼 소개된 리프킨의 책은 『엔트로피』다. 『도서신문』(98년 1월 5일자) 최성일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저서 『엔트로피』는 80년대 중반 독서계에 붐을 이뤘는데, 정음사(1983), 범우사(1983), 안산미디어(1984), 원음사(1987) 등의 출판사들이 번역본을 냈고 정음사의 것은 1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정음사판은 동아출판사(1992)로 이어져 97년까지도 교양과학 분야의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96년 『노동의 종말』(민음사)과 『생명권 정치학』(대화출판사)이 나왔고, 99년에 『바이오테크 시대』(민음사)가 선을 보였다.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
리프킨은 1945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플라스틱 백 제조업자였고 어머니는 자선사업으로 맹인들을 위해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리프킨은 한국 유학생이 MBA 하겠다고 많이 몰려가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터프스대 법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정도 학력이면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전공도 돈 벌기에 아주 좋은 전공이다. 그런데 리프킨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후일 리프킨도 그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자기가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리프킨은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대충 참여한 게 아니다. 그는 반전 시위를 주동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운동 경험으로 인생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돈 버는 길을 버리고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결성한 조직은 1971년에 만든 ‘새로운 아메리카 운동’(New American Movement)이었으며, 이 조직은 다음 해에 ‘200주년 국민위원회’(People's Bicentennial Commission)를 출범시켰다.

리프킨은 미국의 건국 200주년과 관련된 기념 행사들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미국의 영광이나 뻐기려드는 정부의 기념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건국 당시의 혁명 이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기념 정신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3년에 『미국식 혁명을 이루는 법』이란 평론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은 200주년 캠페인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급진적으로 재구성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대대적인 군중혁명을 어떻게 이룩하느냐 하는 데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미국혁명은 우리의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인권은 풍요라는 가치보다 상위에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 이익은 공동의 이익과 동일시 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과 환경을 착취하기보다는 이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손을 떠나서 근로자와 소비자의 품 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5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포드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0주년 개시 행사에 4만 명의 시위 군중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원래 목표했던 ‘대중혁명운동’까지 일으키진 못했다(사실 그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렇다고 주저앉을 리프킨이 아니다. 리프킨은 ‘200주년’이라고 하는 이슈가 사그라들자 ‘국민기업위원회’(People's Business Commission)를 조직했다. 이건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기존 경제 시스템의 민주적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법 성과를 거둬 리프킨은 일부 평자들로부터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에 가장 재능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얻었다.

리프킨의 운동 방식
리프킨은 77년에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웠다. 그가 처음에 주로 다룬 이슈는 노동 문제였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시위대를 이끈 인물은 제레미 리프킨이었다. 시위대는 플래카드로 무장하고, 구호를 외쳐대며 심포지엄의 토론자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들은 과학자와 정부 관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생물의 유전자 조작이 갖는 도덕적, 윤리적 함축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시위대는 연구자들에게 도대체 누가 그 연구의 자금을 대주고 있는지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공개토론회의 비용 중 일부는 여러 제약회사들이 분담하고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이 앞으로 생물공학이 새로운 우생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물고 늘어지자 시위대에게 공식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이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물공학의 반대자 중 한사람으로서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리프킨은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곡물에서 유전자 특허, 나아가 생물학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생물공학적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한 것이었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법률소송, 불매운동, 게릴라식 시위, 13권에 이르는 저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문투고 등등.

리프킨의 탁월한 선동술
그렇다. 리프킨의 운동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우선 탁월한 저술가다. 그의 저서는 이미 16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서 읽히고 있다. 게다가 그는 탁월한 연설가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솜씨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5년간 10여 개 국 300개 이상의 대학에서 강연했다고 한다. 그는 TV 출연도 활발하게 한다. 그뿐인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시위를 주동하기도 한다.

리프킨이 벌이는 시위는 주도면밀하다. ‘We Shall Not Be Cloned’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과거 민권운동의 주제가라 할 ‘We Shall Not Be Moved’를 흉내낸 것이다. 시위를 하면서 내건 깃발의 구호도 대단히 선동적이다. Don't Tread on My Genes! 내 유전자를 건드리지마!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선동 없는 운동을 하라는 건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선동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머리로야 다 공감하더라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동은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필요악일 수도 있다. 상아탑의 세계에만 머무르는 과학자들이 리프킨의 선동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리프킨이 83년 『알제니(Algeny)』라고 하는 책을 내자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과학잡지인 『디스커버』 85년 1월호에 서평을 기고했다. 굴드는 그 서평에서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리프킨의 기본 정신엔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리프킨의 운동을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 책은) 반(反) 지성적 프로퍼갠더를 교묘하게 구성하여 마치 학술적 저술이나 되는 것 같이 행세하고 있는 허울좋은 가식(假飾)일 뿐이다. 중요한 사상가에 의한 지적 저술이라고 판촉되는 책 중에서 이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를 나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만일에 리프킨의 주장이 서로 상반된 생각을 대비해 검토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좌파 대 우파의 대립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반지성적 형태의 낭만주의와 지식인 인류에 봉사하는 것을 존중하는 지성적 입장과의 대립일 뿐이다. 내용이나 표현에 있어서 『알제니』는 지저분한 반(反)과학적 쓰레기에 속한다. 지적 사색을 통해 비판하기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어떤 것을 배척하자고 주장하는 운동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리프킨의 탁월한 연대 전술
그러나 그런 비판에 기죽을 리프킨이 아니다. 리프킨은 ‘연대’를 시도했다. 그는 생물공학에 대항하는 운동에 대한 동조자로서 환경운동단체, 동물보호단체, 평화단체, 여성건강단체, 생명권 옹호단체 등을 끌어 들였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와도 손을 잡았다. 그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기독교계의 거물급 지도자 60명의 서명을 얻어냈다. 그 지도자들 가운데엔 극우적 성향으로도 유명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운동의 지도자인 제리 팔웰 목사도 포함돼 있다. 어떤 기준으로 보건 리프킨은 좌파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일에 있어선 좌파와 극우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리프킨의 전술이 돋보인다.

리프킨은 또한 자신의 운동을 위해 법률 소송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소송은 뉴스 가치가 매우 높다. 글과 말로 아무리 떠들어도 꿈쩍도 않던 언론매체들도 소송이 벌어지면 그건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건 소송에서의 승패가 아니라 언론이 소송 자체를 뉴스로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리프킨은 소송에서도 여러 건 승소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는 꿩 먹고 알 먹는 전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리프킨의 운동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건 리프킨이 선진적으로(?) 사용한 운동 방법이 다른 환경운동 단체들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른 환경주의자들도 리프킨이 애용해온 국가환경정책법과 멸종위기종자보호법 등을 자신들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양 극단을 치닫는 평가
리프킨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나뉜다. 리프킨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리프킨이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만을 받았을 뿐 과학에 대해선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물고 늘어지면서 리프킨을 선동가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리프킨에 대한 다양한 평들을 살펴보자.

그의 반대자들은 리프킨이 문제를 지나치게 극단화시키기 때문에 토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비난한다. 또한 코넬 대학의 영양생화학 교수인 데일 바우만씨는 동식물에 대한 호르몬의 사용이 사람들이 이용하는 음식물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리프킨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리프킨이나 그의 재단이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리프킨이 제시하는 정보가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의 정보를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식으로 잘못된 해석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들이 그를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우유생산자연맹은 제레미 리프킨을 ‘식품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그가 소에게 재조합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은 젖소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게 해준다. 미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볼티모어는 리프킨을 ‘생물학적 근본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타임』지는 그를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받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전 국장이었고 지금은 보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헨리 I. 밀러는 ‘그런 작자에 대해서는 어떤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해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미국의 정부 관계자나 관련 기업의 업무 담당자들은 리프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가 되었다. –김동광씨의 평-

아쉬운 점은 그의 분석이 지나치게 수박 겉핥기식이며 대안 제시가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단 한 권의 저서를 통하여 구획화, 자동차, 음식, 육체, 생명공학, 프라이버시, 핵전쟁, 다국적기업, 민족 국가 등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려하다 보니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과 통합적 조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개별 주제에 대해 2차 자료를 요약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배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여러 책에서 읽었던 것을 복습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근대’에 대한 비판에 대한 강한 의지로 인하여 ‘중세’ 공동체가 가졌던 억압성과 차별성이 가려지며 그것이 이상화되는 위험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전통적 친자연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생태론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또한 비서구사회의 경험을 그의 이론적 조망 속에 포함하지 못함으로써 중세-근대-탈근대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리프킨 자신이 비판, 극복하고자 했던 서구적 근대의 단선적 진보사관의 테두리에 갇혀버리게 되는 모순점도 보인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공리적이고 분절적인 기능주의, 자연과 분리된 인간중심주의의 포로가 된 기존 정치학의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며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 생태계 파괴와 수평지향적인 공동체의 궤멸을 막아내려는 대안적 정치학의 기본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그것은 생명과 생태계를 핵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인식 체계가 자연과학적 생태주의나 인문학적 생태론에만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의 기본 가정과 관념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왜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권혁범교수의 평-

본질적으로 리프킨은 자연을 신격화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우리는 사악한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한다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을 유입하는 것은 생명을 회복 불가능하게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공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사칭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연에 혜택을 준다는 관념은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20세기 말의 도시민들에게나 통용되는 낭만적인 환상이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단 2년간 유럽 인구의 1/4을 사망케 한 흑사병을 전파시켰고 지금은 에이즈라는 현대 전염병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 문명은 기아, 질병, 홍수, 그리고 가뭄으로 가득찬 변덕스런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리프킨은 순전히 비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생물공학에 반대하는 그의 열정은 현재의 과학은 이른바 “감성적 과학,” 즉 소외된 인간이 “우리 환경과 참여적 관계”를 갖게 되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그의 광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 미래의 과학적 발견과 기술 진보는 새로운 위험을 야기하고 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을 대하려면 이런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또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인간능력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낙관론자들은 리프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리프킨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능인 지적 탐구를 포기하고 그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 인간형인 미지의 우주에 조용히 안주하는 겁많은 인간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로널드 베일리의 평-

리프킨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다 끝날 수도 있는 어려운 이야기를 리프킨이 대중화시켜 살아 있는 공공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하고 리프킨으로부터 무언가 배워야 한다. 김동광씨의 결론도 다르지 않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프킨의 활동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유전공학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일부 전문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중요한 과학기술의 결정에 이해 당사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특히 리프킨이 과학기술의 주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조직해낸 과정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최대이슈가 되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그의 인터뷰가 있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석학 리프킨에 들어본 쇠고기·GMO 개방
"인류는 건강을 놓고 룰렛 게임(Roulette Game)을 하고 있다. 한국이 무턱대고 GMO와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면, 결국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육식의 종말'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석학인 제레미 리프킨(63) 미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이사장은 4일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들은 GMO나 미국 쇠고기를 받아들이기 전에 미래에 어떤 음식을 원하는지에 대한 신중하고 합리적인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압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미국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한국 국민, 정부, 시민단체가 과학자들과 함께 폭넓은 토론을 하기를 권한다

▶당신은 일관되게 GMO와 쇠고기 소비를 반대해 왔다.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종교배의 문제다. 인류는 지금까지 동종교배의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유전자조작을 통해 어떤 유전자도 다른 유전자와 쉽게 섞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1990년대 과학자들은 토마토와 물고기의 유전자를 조합했다. 추운 대서양에 살고 있는 물고기로부터 추위에 견디는 유전자를 빼내 토마토에 주입하면 냉해에 잘 견디는 토마토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로 유전자 확산 문제다. GMO유전자가 확산되면 생태계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이건 마치 담배 논쟁과 비슷하다. 옛날에 사람들은 "왜 내가 담배를 피우면 안 되냐."며 담배필 권리를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간접흡연으로도 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흡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특히 아이들은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광우병에 대한 견해도 궁금하다.
-광우병에 대해 얘기하자면,1990년대 초부터 나는 미국 농림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해왔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골육분을 먹이는 것이 잠재적인 광우병의 위험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부 입장은 광우병이 보고된 사례가 없으니 위험이 없고,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당신은 쇠고기를 먹나.

-1977년부터 얼굴이 있고, 걷거나 나는 모든 동물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때때로 먹어야 할 경우가 있으면 아주 적은 양의 해산물을 먹기는 한다.

▶광우병이 두려워서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인가?

-(웃으며)그렇지는 않다.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육식은 나와 같은 종류를 먹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건강과 전체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음식은 생존뿐 아니라 문화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상징한다.

유럽 사람들이 GM 식품을 싫어하는 이유는 치즈나 와인 등 음식의 지역색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미국은 패스트푸드 문화를 갖고 있지만 이와 달리 한국은 아직도 음식이 문화 정체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음식의 문화적 차원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안전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유럽처럼 경계적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화학물질이든 음식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는 도입을 보류하는 보수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가 생기면 그제서야 그 문제에 대처했다. 그러면 안 된다. 이미 일어난 문제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고 행동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불행하게도 미국보다 유럽이 더 좋은 모델이다.
<강진만, 서울신문 참고>

2. 마음 속에 들어 온 글귀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 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 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11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12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 그때 팔아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소유는 모든 것이 획획 바뀌는 풍토에 젖응하기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이다. 13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15

우리는 오락과 놀이를 사들이고 예의 범절과 호의를 사들이고 이 둘 사이의 모든 것을 사들인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정확히 측정된다. 우리의 삶은 점점 상품화되고 공리와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18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신뢰할만하고 이런 믿을만한 환경 속에서 상업과 교역은 발생한다. 그런데 상업영역이 문화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21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27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만인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 그것이 인터넷이다. 30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길어야 18개월밖에 못 버틴다.> 경쟁에서 앞서나가려면 자신을 상대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36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닥다리가 되는 기술이나 제품을 구태여 왜 소유하겠는가?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는 임차 형태로 상품이나 서비스에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 구입해서 소유하는 것보다. 점점 매력있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38

문화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47

전자상거래는, 가장 열렬한 전자 상거래 예찬론자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53

새로운 네트워크 속에서는 돈도 물질성을 잃어버린다. ..돈의 탈물질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돈의 죽음>을 쓴 월터 조엘 커츠먼에 따르면 2주일마다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연간 총 생산액게 해당하는 돈이 뉴욕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닌다>…커츠먼은 이 새로운 돈을 그림자에 비유한다. < 이 차가운 잿빛 그림자는 볼수는 있어도 만질수는 없다. 감촉이 없다. 무게나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돈은 이미지다. >56-57

기업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새로운 사고 방식은 < 의심스러우면 밖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기업의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잇어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나 업무가 아니라면 외부 하청업저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69

아웃소싱을 통해 장기적 소유에서 단기적 접속으로 과감히 방향을 전환하는 기업은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갈 수 있다. …새로운 상행위의 전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나이키이다. 나이키는 이제 가상회사가 되어버렸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이키는 내세울만한 공장도, 기게도, 설비도, 부동산도 없다. 72-73

나이키는 개념을 판다. 74

물리적 자본은 외계 원장의 자산 항목으로부터 비용항목으로 이동하고 경상비로 처리될 것이고, 무형 자본은 자산 항목으로 이동할 것이다. 83

인간은 물리적 재산이 누적된 형태로 자연을 변무시켰고, 하느님이 창조했던 가공된 유품을 쌓아둔채 자기만의 오붓한 에덴동산을 돌보면서 각자가 작은 신처럼 살아가기에 이르렀다. 83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데 훨씬 관심이 많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영혼에 양식을 준다. 84

접속을 통해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는 주체들을 상품화하는 것, 이것이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상업활동의 핵심이다. …특허, 저작권, 상표권, 영업기밀, 관계등에 실려 있는 아이디어는 광범위한 사용자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거대 공급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종류의 경제력을 구축하는데 쓰인다. 87

체인산업은 <내 사업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선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고 있지만, 그들이 사는 것은 한시적인 소유권과 접속일 뿐이지 사업체가 아니다. 92-93

체인점이라는 새로운 사업형태는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혼성체라 할 수 있다. 96

앞으로는 자기 몸안에 있는 DNA, 세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믿기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다. 105

앞으로 경제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이 될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115

접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게에 호소한다. 127

물리적 형체 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독특한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이다. 130

<더 많은 제품을 팔려고 아등바등하는것보다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관리하는 쪽에서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제품관련 부문의 매출이 <제품 자체의 매출 증가율보다 2,3배 더 증가하고 있다. 140
새로운 자본주의 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신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점점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143

접속화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 되는 시대이다. 온갖 유형의 상업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서 살아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한다. 145

새로운네트워크 경제에서는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경험을 하는데 필요한 접속의 권리가 상품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며 추구해야할 무형의 자산으로 여겨진다. 152

우리는 접속의시대에는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이 제품을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제품이라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55

가장 큰 자산은 고객에 접속할 수 있는 힌. 최종 사용자와 장기적으로 상업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157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158

21세기의 인간은 하루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경제라는 영역에서 보내게 된다. 이 새로운 세게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관게망, 공동체에 상업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다. 소속된다는 것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뜻이다. 165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게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167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168

많은 사람들이 CID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CID가 제공하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때문이다그러나 상품화된 생활경험을 얻는대신 소유권을 포기해야할 때가 많다. 176

CID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치관, 감수성, 라이프 스타일이 엇비슷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끼여드는 대가로 개인 재산의 권리 일부를 기꺼이 포기한다. CID일원으로 들어가면 단독주택에서는 꿈도 꿀수없는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9

사람들이 굳이 CID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별한 생활을 누릴수 있게 해주는 사람, 서비스, 시설의 네트워크로 편입되고 싶은 욕심,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생활방식을 사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183

시간단위가 대체 가능한 화페로 바뀌는 추세는 자원의 희소성보다는 시간에, 소유보다는 접속에, 중점을 두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의미한다. 191

소유에서 자우로워지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아예 우리가 만들고 쓰는 것에 대한 책임 의식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상호관계의 네트워크에서 교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칼자루를 쥔 기업들의 막강한 네트워크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194

다시금 강조하지만 접속의 시대에는 공간이 시간에 밀려나며, 기업들이 더 많이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것은 물리적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다. 194

에르빈 슈뢰딩거는 인간의 본질을 이렇게 포착했다.
<그러니 어머니 품 같은 대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땅에 드러누워 온 몸을 한번 쭉 뻗어봄이 어떠한가. 그대는 이제 확실한 반석에 올라 서 있다. 대지처럼 단단한 그대를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 대지는 내일이라는 선물을 그대에게 확실히 가져다 주겠지만 새로운 갈망과 고통으로도 그대를 확실히 이끌어갈 것이다> 196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구닥다리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날 불현듯 깨닫는다. 깨달음은 늦게 온다. 201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말대로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인간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203

정치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영역에서 제일로 가치 있는 것은 자기 실현과 고양이다. 20세기 들어와 정치영역과 문화영역의 가치는 경제영역으로 포섭되어 끊임없이 상품화되엇다. 207

처음에는 물과 기름처럼 보였던 소비윤리와 자기실현의 윤리가 20세기 자본주의 시장에서 서서히 공동의 토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은 힘은 문화적 기준을 전달하는 핵심수단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이다. 208

예술가는 현대의 이면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객관성 대신 주관성을 내세웠고 근면성 대신 창조성을 내세웠다. 예술가들은 자유분방함과 희열의 감정을, 단조로운 반복으로부터 해방감을 노래했다. 그들은 대량 생산품이 흘러나오는 대중의 익명성에 잠긴 세계에서 자기 표현과 자기 실현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개인의 욕망에 호소했다.209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211

오늘날 자본주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살 것이 없다>는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말은 바로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살아있는 체험은 상품 구체화의 최종 단계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살아있는 체험은…자본 순환에서 최종 상품이 되었다. > 212

관광업은 문화 체험의 상품화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분야다. 214

관광객(tourist)은 원래 19세기 초반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3년간 유럽을 유람하던 영궁의 젊은 귀족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
관광을 어엿한 사업으로 발전시킨 주역은 토머스쿡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관광 산업의 아버지로 쿡은 관광을 패키지로 만들고 여행을 유료 체험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216

자연적, 역사적 복원, 주제가 있는 도시, 토속적 환경에서 쾌적하게 보내는 휴가는 모두 문화생산을 경제 활동의 중심부로 끌어당기면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글로벌 관광 산업이 가져온 결과이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이른바 돤광공간이 창조되고 있다. 221

앞으로 몇 년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 산업의 성격이 바뀌는 과정에서 관광 산업은 산업 생산과 문화 생산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에 걷잡을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226

쇼핑몰은 온갖 종류의 살아 있는 체험을 접촉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227

몰은 새로운 영역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활동을 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저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어떤 문화영역이든 쇼핑몰의 벽 안에서, 통로를 따라서 조명이 환하게 켜진 안뜰과 아치 밑에서 재현된다. 몰은 문화의 다양한 부분을 상업화된 형태로 모사하여 재현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228

<20세기말,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업은 더 이상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오락이다. 236

그림은 굴종, 억압, 결핍과 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 공명정대, 여가 세련됨과 함께 온다. 238

나이키는 운동화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화를 신으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이미지를 판다…새로운 마케팅 시대에는 ,이미지가 제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강조한다. 254

마케팅 전문가는 정서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 문화의 숲을 누비고 다닌다. 심지어는 문화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빌려온 파격적인 이미지로 상품을 판매한다. 255

기업은 단순히 돈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 고객의 생활에 끼여들어서 고객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258

라이프 스타일 행사의 목표는 기업이 문화의 적극적인 후원자이며 주역이라는 인식을 지역 사회와 소비자 단체에 심어 주어 우호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쌓아가는데 있다. 259

광고는 개인이 스스로 떠올이는 삶의 줄거리를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좀 더 원대한 줄거리로 끊임없이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 216

문지기는 우리네 삶과 시간의 중개인, 조정인 역할을 한다. 문지기는 무엇을 사회과정안으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막을지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신의 삶과 주변 세계를 정의하는 방식은 크게 보면 이런 문지기가 내린 결정의 산물인 것이다. 266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변화 무쌍한 인간,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성찰적이기 보다는 찰나적, 노동자가 아니라 경기자, 근면 보다는 창조적, 임시직에 익숙하고 순간적인 삶을 추구하고 심리적이고 이미지로 생각하고 감정적이다. 274-275

이 변화 무쌍한 남녀를 끌어 당기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스타일과 패션이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도모한다. 276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불변의 법칙에 바탕을 둔 현실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창조적 행위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을 모든 고비에 드러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 284

현실은 우리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소통을 통해 지어내는 것이다. 285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절정감과 카타르시스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윗자리에 있다. 287

새로운 시대는 모호하고 다양하며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며 어수선하고 너그럽다.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이다. 288

물질생활의 내부화는 의식의 내면화를 수반한다. 인간이 처음 으로 자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도 부르주아 시대로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자기확신, 자기애, 자기연민, 자기긍정, 자중 인격, 에고, 양심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 담론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자화상과 전기는 인기있는 문화형식이 되었다. 294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역사 의식은 솨락하고 심리치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훨씬 비중있게 생각했다.
<역사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살아가지만 <치료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위해 살아가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300

인쇄혁명은 성찰을 조성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책이란 것은 조용히 혼자서 읽는 것이 제격이었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관념이 싹텄다. 어울러 자기를 반성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기와 세계를 치료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사고 방식으로 발전했다.304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사이버페이스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 자아는 대수롭지 않다. ..섬처럼 혼자서 설 수 있는 자아는 없다. 모든 자아는 관계의 날줄과씨줄 안에서 존재한다. …늙었건 젊었건 여자건 남자건 부자건 가난하건 사람은 언제나 특정한 통신 회로의 ‘접속점’에 위치한다. 307

인간은 끝없는 변신의 과정을 밟는다. 자꾸만 존재의 상태를 바꾸어 지금과는 다른 무엇인가, 다른 누군가가 된다.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persona)는 원래 가면을 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잇다. 317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은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을 가진 평생 시장이라고 할 수 잇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개인 재산의 유일한 자취는 공연의 배경을 제공하는 소도구뿐일지도 모른다. 322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글로벌 미디어가 막 시작되었을 때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 무역은 이제 국기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신 시스템을 좇아간다>고 말했다. 331

부유층은 자기들끼리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사업과 교제의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쌓아갈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소외된채 점점 고달파지는 세상에서 점점 가난하게 살아갈 위험성에 직면해 있다.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 343

접속의시대에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348

상품화된 관게에서는 당사자들간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돈을 교환하는 것 이상의 갚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쌍방이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관게를 맺으면서 쌍방이 함께 겪는 체험은 피상적이고 정략적이며 일시적이다. 357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364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만 캐내면 고갈되게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시장을 위해 황금달걀을 척척 낳아주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365

식품과 요리는 현재 문화와 상업의 대결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프랑스 농민연합의 파트리스 비디외는 < 식생활의 자주성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문화와 상업이 생태학적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벙치적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371

문화가 단순히 시장의 원료로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문화에서 흘러나와서 인간성을 창조하는 인간과 인간이 공유하는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고 개인적 오락과 치유의 형식으로 체험을 상품화하는 초라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를 격하시키는 발상이다. 373

교육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무화가 문명 사회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학셍에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 376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절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문화자원, 의식, 활동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다. 379

문화는 자연을 이루는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한결 같은 외경성과 헌신에서 탄생했다. 문화는 대체로 생명을 긍정한다. 문화는 자연에 우리가 진 빚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이끈다. 이런 생명의 긍정이 내재 가치의 핵심이다. 380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381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시민 사회 조직운동의 성격이다.
간디는 <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싳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노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383

놀이는 문화를 창조한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384

프리드리히 실러는 < 사람은 가장 아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라고 썼다. 문화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우리는 남과 어울리고 싶어서 놀이를 한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깊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집단적 신뢰가 깔려있기 대문이다.389

접속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것이다. 392





3. 내가 저자라면…
미래의 키워드를 ‘접속’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와 우리에게 직면한 과제를 풀어내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리프킨은 이 책을 쓰는데 6년이 걸렸으며, 350권의 책과 1천여편의 논문, 5만정의 색인카드와 약 2천 가지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목했는데, 그의 통찰력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우선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책에서 정보화와 더불어,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핀다. 그것은 현실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아동하는 거대한 조류이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경제적 패러다임의 특징은 소유물의 생산과 상업적교환애서 서비스의 관계로 탈바꿈하고 있다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상품의 가치는 물리적 형체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서비스를 중시하고 고객은 이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권을 구입한다. 리프킨은 이러한 예로서 아웃소싱, 리스,등과 같은 실증적인 예들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깊숙히 침투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자동차나 값비싼 소비재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단기적인 접속만을 원할 뿐이다. 다시말해 ‘무거운 소비’ 보다는 ‘가벼운 접속’만을 원할 뿐이다.

이 책의 원제목이 ‘접속의 시대’ 이다 그럼에도 ‘소유의 종말’로 해석된 것은 출판계의 마케팅적인 영향때문이었으리라.
저자는 소유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의 형태가 ‘접속’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단지 소비 패턴의 변화일 뿐이다.

리프킨은 소유대신 접속하는 대상이 물질에 그치지 않고 사랑으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상품의 탈 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와 같은 특징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상업화 시키고 이 상업화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갖게 되는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문화영역과 상업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고, 풍요로운 문화의 다양성을 지속시키고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충고이다. 즉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 느낌과 약간의 아쉬움>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도서에 매우 취약한 나로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였다.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이었지만 저자는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저자는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예시들을 충분히 들어주므로 설득력을 더했고, 시대의 흐름에따른 전개는 이해를 한층 도왔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잇고, 나아가 미래를 가늠케하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맥을 잃지 않도록 했다.
역자 이희재의 표현대로 리프킨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높은 조망대 위에서 인간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의 전체상을 제시하는데 있어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다.

반면 ‘서문’이나’에필로그’등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저자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내용을 좀더 친절히 말해 주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메시지의 힘을 실었더라면 독자는 여행자에게 한 장의 지도 혹은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쉬운 점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챕터 전에 약간의 소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키워드는 ‘접속(Access)이다. 즉 미래의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는 네트워크, 경험, 창조 문화, 이미지, 놀이 등을 ‘접속’이라는 용어로 통합시켰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들만큼이나 다양한 부제들은 오히려 ‘접속’이라는 키워드를 놓치게 한다. 좀 더 통일성 있는 부제들을 찾아 내었더라면, 독자가 중간 중간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라도 다시 한번 주제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무식한 식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개인, 사회, 사업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실예들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따라서 학생부터 직장인들에게 필독을 권하는 바이다.
IP *.161.251.172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8.08.05 21:42:25 *.160.33.149

저자 소개에 대한 다양한 소스가 마음에 든다.

반면 인용은 context 가 보존된 인용이 아니어서 해석이 모호해 지기 쉽다. 나중에 인용할 때,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경귀에 그치지 않고 설득력있는 문장이 되고 내용이 그 자체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도록 인용문의 단락에 유의하거라.
프로필 이미지
은미
2008.08.07 13:39:24 *.161.251.172
인용문의 작업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것 같습닙다.
저의 워드 속도가 빠르지 못한편이어서 시간에 쫓기다 보면 상당부분
요약하거나 건너띄게 됩니다.

사부님 말씀 잘 알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좀더 신경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72 49.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_에너 퀸들러 지음 한젤리타 2013.04.30 2987
1571 (카를 융) 주역을 사랑한 영혼의 안내자 file 보따리아 2017.11.12 2987
1570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18] 香山 신종윤 2007.04.22 2989
1569 문명이야기 2 - 윌 듀란트 [5] 세린 2012.07.23 2989
1568 [리뷰012] 한국사신론, 이기백 [3] 香山 신종윤 2007.06.14 2990
1567 #25 니체 - 즐거운 지식 file [1] [1] 샐리올리브 2012.10.22 2992
1566 마키아벨리, 군주론(살짝 수정) 박소정 2006.06.15 2993
1565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 [1] 예원 2009.06.21 2994
1564 바디샵의 영적인 비즈니스(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書元 이승호 2009.09.19 2994
1563 [리뷰] 나를 가슴뛰게 하는 에너지, 강점 [1] 최우성 2011.01.09 2994
1562 부동산투자는 과학이다-24 [2] 도명수 2006.10.05 2995
1561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1] 효인 2009.10.19 2995
1560 [리뷰] 행복의 정복 최우성 2011.01.17 2995
1559 10년 후 한국... 하지웅 2005.04.24 2996
1558 [11] <파블로 네루다>- 인용문 [2] 수희향 2009.06.16 2996
1557 17. 칼융 자서전_발췌하고 코멘트 맑은 김인건 2010.06.28 2996
1556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세번 읽기) 루미 2011.12.31 2996
1555 2. 변신이야기_오비디우스 file [7] 권윤정 2012.04.21 2996
1554 #46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_이수정 알로하 2018.03.05 2996
1553 Working -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 [1] 종종 2015.03.23 2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