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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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북스넛
I.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 1943 - )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그 유명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의 창시자이다.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꾼 역작 <마음의 틀>을 통해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제기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는, 다중지능 이론 발표 이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교육 체계를 가드너 식으로 바꾸었으며, 그의 이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소와 단체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가장 영향력 잇는 창조성 개발의 대가
현재 하버드 대학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인 가드너는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인간개발에 관한 야심찬 연구기관이다. 가드너는 25년이 넘게 이 연구소를 이끌어오면서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창조성의 조건을 제시하는 책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주창해 온 다중지능 이론에 근거하여,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들여다보며 그들이 창조적인 대가가 될 수 있었던 원인과 조건을 날카롭게 분석해낸 역작이다. 현대의 거장들이 초점을 맞추어 창조성의 조건이 가장 방대하고 심오하게 분석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그동안의 연구의 최종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책으로는 <마음의 틀>, <20세기를 움직인 11인의 휴먼 파워>, <다중지능 이론>,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등 18권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구성적 주제
1) 아동과 대가의 관계
개인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완의 대가인 아동의 세계와 자기 세계에 확신이 있는 성인 대가의 영역 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2)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모든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현재 통용되는 상징체계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상징체계를 고안한다. 이 책에서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성격을 쇄신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3)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흔히 창조적인 인물들은 홀로 고립되어 작업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기간 내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 연구에서 나는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행하는 역할과,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할 것이다. 39p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성격과 동기부여의 관점
버클리 성격 연구소(Berkeley Institute of Personality Assessment)가 수행한 이 방면의 대표적인 연구에 따르면,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65p
아인슈타인의 사례 연구에서 재능 있는 아이가 골몰하는 질문 유형과,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훈련 및 사고 과정의 특성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사례연구에서는 재능이 풍부한 어린 신동과 원숙한 대가의 관련성에 주목할 것이다.75p
나는 그들이 해당 분야의 상(像)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해당 분야의 문제점이나 불확실성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해당 분야에 결여된 부분을 지적하고 가능성있는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81p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3p
칙센트 미하이 칙센트가 “창조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관습적인 물음을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좀 더 참신한 질문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 것은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식의 창조성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세 가지 요소(결절점)를 지적한다.
(1)재능 있는 개인, (2) 그 개인이 활약하는 특정 분야나 학문 영역, (3) 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場), (이 세 요소들은 대략 1장에서 소개한 세 가지 핵심요소와 대응되며, 바로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네 가지 분석 수준에서 각기 두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관점과 대응된다.) 칙센트미하이의 설득력 잇는 설명에 따르면, 창조성은 어느 한 요소나 한 쌍의 요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성은 이 세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볼 때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88p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頌歌)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도가 되는 촉매 역할을 했다. 108p
나의 용어로 말하면,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personal)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학업을 마쳤을 때는 마치 세상이 그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야흐로 현대의 문이 열리는 시대에 문명 세계의 중심지에 살면서 영향력 있는 스승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프로이트에게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무한했으리라 보인다. 111-112p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어떻게 불쾌한 기억이 의식의 배후로 억압되었다가 다시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이 치료법은 말(言語)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 (associative correction)하는 것이다. 119p
때로 프로이트는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1913년에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궁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127p
프로이트 혁명의 주요 개념
어떤 지적 혁명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하나만 집어내는 일은 위험하다. 이 위험은 특히 프로이트의 혁명적 사고와 같은 경우에서 두드러지는 법인데,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프로이트의 이론 체계에 힘과 매력을 부여한 것은 여러 맹아적인 관념들이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129p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 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129p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30p
신경증
샤르코의 임상교실에서 돌아온 후에 프로이트는 다양한 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편집증)을 연구하고 그 기제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분류에 능한 편이었던 그는 유기적인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어느 때는 전환 히스테리(conversion hysteria)는 정서(affect)의 변형 기제로, 강박증은 정서의 전위(displacement)로, 맬랑콜리는 정서의 교환(exchange)으로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들을 구별했다. 그 다음에는 신경증을 두 개의 주요 종류(억압과 불안)로 나누거나 다섯 개의 범주로 구별했고, 나아가서는 ‘실제의’ 신경증과 ‘심리적’ 신경증으로 분류하기까지 했다.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131p
그는 당시의 전문 용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던 이론을 사유하고 있었다. 자기 생각의 요점을 부적절하거나 시대에 뒤진 용어로 번역하는 데서 생기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이트는 자신만의 언어와 도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자기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135p
대체로 꿈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에서 자극을 받는데, 꿈 꾼 당사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꿈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의 ‘외현적 내용(manifest content)'을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잠재적 내용(latent content)'을 밝혀내야 한다. 꿈의 잠재 내용을 해독하려면 꿈 상징에 관한 완전한 어휘 목록이 필요한데, 물론 배경 지식 없이는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휘들이다. 꿈을 형성하는 방어 기제로는 응축(condensation)과 전위, 다양한 종류의 방어막(screen)이 있는데, 꿈의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방어 기제를 끈기 있게 해소해야 한다. 138p
프로이트는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sympathetic listener)'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139p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내부의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발견했다. 이 감정은 아주 어린 유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아들은 어머니에게는 강한 애정과 사랑과 욕망을 느끼는 반면 아버지에게는 질투와 두려움, 심지어 증오심까지 품는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 전화한다. 처음 이런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꼈을 때, 프로이트는 광범위한 문학적 소양과 다른 환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감정이 인간의 정서를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중세 헴릿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 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140p
프로이트의 재능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典據)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45p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145p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논의 패턴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일 터인데,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 “나는 공간상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지독하게 부족한 편이라서, 기하학이나 거기서 유래한 학문을 연구하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145p
처음의 반응
프로이트 스스로 걸작이라고 여긴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그의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가? 얼핏 보기에 그처럼 폭넓은 시야를 가진 저서라면, 프로이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주된 대상 독자인 심리학자들의 장(場, field)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몇몇 공감 어린 서평도 받긴 했으나, 가령 다윈의 『종의 기원』과는 달리 학자들이나 대중들은 이 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48p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명예롭지만 고통스러웠던 고립’에 관해 심정을 토로한 후에 이렇게 썼다.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프로이트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이 조그만 모임에서 융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으며, 1910년 새로 탄생한 국제정신분석학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만만찮은 두 사람의 성격이 부딪칠 때가 되면, 그것은 분명 후회할 결정이었다. 155p
나는 창조적인 인물에 관해 연구하면서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즉,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161p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결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들어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 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5p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영원한 아이
아마도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가장 잘 드러낸 물음일 터인데, 열여섯 살에 그는 사람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조금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주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할 때,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지닌 물건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했다. 그러니까, 물건이 주머니에서 빠지면 바닥에 떨어질지, 아니면 공중에 그대로 떠 있을지가 문제였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168p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관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169-170p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0p
물리학자 라비아(I. I. Rabi)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71p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서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악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그는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 동료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는 빛의 본성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네”라고 말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194p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195p
그는 특히 이론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자연 현상을 가장 일반적인 물리학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95p
글이든 말이든 언어의 세계는 나의 사고 기제에서 별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각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니이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 관습적인 어휘나 다른 기호들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과 결합 작용의 틀이 충분히 잡히고 그것을 자유 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이차적인 단계로서 애써 찾아야 했던 것이다. 196p
분명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프로이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포부가 크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담한 용기를 지녔고 기꺼이 홀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논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199p
"빛의 속도로 광선을 쫓아가는 관찰자가 볼 때에도, 모든 사건이 지구에 대해 정지 상태에 있는 관찰자가 볼 때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내게 직관적으로 자명하게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첫 번째 관찰자가 자신이 빠른 등속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05p
물리학의 표준 절차는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후에, 이로부터 원리와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정반대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에서 기본적인 물리 법칙, 가령 광속 일정의 원리를 우선 제기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현상을 추측하고 그 기본 원리를 다른 법칙과 연결시켰다. 208p
제 대답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농담 한 마디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제 이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애기지요. 222p
아인슈타인은, 우선 그가 젊은 시절에 숙고했던 문제가 당시의 물리학에 적합했다는 점에서, 둘째 그가 공간적, 시각적 상상력에 재능이 있다는 점이 그의 과학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20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과 세계관은 노리-수학 지능이 공간적 재능보다 더 중요한 양자 역학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233p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reflective wisdom)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236p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관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의존해서 이런 존재의 오점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237p
그러나 깊은 수준에서는 유년기와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이고 어른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프로이트가 몰두했던 주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종류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동의 삶을 지배하는 것인긴 하다. 즉, 꿈이나 농담, 성적 놀이와 같은 다양한 현상뿐 아니라 전위와 응축, 대체와 같은 심리 과정이 그렇다는 애기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 개시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7p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데이비드 펠드먼이 설명하듯이,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251p
비상한 재능을 타고 난 신동이라도 장애를 만나게 마련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 소리에 대해 아이들 방어해 주면, (현실적 상상만으로든)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252p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함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259p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61p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 걸 한데 모으는(all-put-together)' 스타일의 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structure)' 형의 예술가이다. 모차르트가 전자의 전형이라면, 베토벤은 후자의 전형이다. 신동 피카소는 첫 번째 유형을 대표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예술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아폴리네르는 주장한다. 279p
훗날 칸바일러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선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피카소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동료 화가들 누구도 그를 뒤따르지 않았으니, 당시 그가 느낀 정싡거 고독이란 참으로 공포스러울 정도였겠지요.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287p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 피카소는 열정에 넘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났으며, 스스로 신동임을 알고 있었다. 음악에는 아무 흥미가 없어서 오로지 그림에 살고 그림으로 호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8p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에 브라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 피카소와 나는 당시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리들한테는 참으로 즐거웠던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서로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290p
"우리가 입체주의를 창시했을 때는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293p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309p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 313p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322p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334p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음악 신동은 아니었다. 실상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회화나 연극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였다. 339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340p
자신의 말대로라면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어서 학급에서 평균 혹은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340p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젊은이 특유의 기백과 미숙함이 드러난 스트라빈스키의 곡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 앞으로 해나갈 공부 방향에 관해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자신의 작곡 과정을 함께 논의하자는 관대한 제안을 하는 바람에 젊은 이고르를 놀라게 했다. 341p
스트라빈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견지했고 엄격한 훈련방식을 선호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요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42p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나의 제자이긴 해도, 결국 누구의 추종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음악 재능이 너무나 탁월하고 독창적인 까닭이다.“ 342p
비평가들에 따르면,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은 별볼일 없는 태작에 불과하다.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343p
전기작가 앙드레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빈스키가 무대 연출에서 차지한 비중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런 참여를 통해 그는 이 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354p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55p
스트라빈스키는 늘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만들었으므로 피아노 연주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작곡할 때 가장 힘들었으리라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359p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대체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착수할 무렵부터 곡의 전모를 분명하게 구상해놓는 편이었다. 피아노 반주를 통해 일찍부터 기본 선율과 리듬을 정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감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적 구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음악적 효과 및 표현 효과를 내려면 악기 파트와 단편적인 악절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그에 가장 알맞은 악기 및 기악 앙상블로 실험해 보고, 또 고전 음악이나 민요의 단편적인 악절을 차용하여 멜로디를 구성했다. 378p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379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오랜 전통에 속하는 장인(匠人)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내가 가진 기질과 재능이라면 차라리 소(小) 바흐로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가끔 교회와 신을 위해 곡을 쓰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삶 말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만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고 견뎌냈다. 타락한 면이 없지 않은 출판업자나 음악 축제, 음반사, 홍보업계의 오랜 인습(물론 나 역시도 그런 인습에 빠져 있었지만)을 극복해낸 것이다. 387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가 적절하게 활용한다.” 388p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신적인 영감을 느낀, 보스톤 거리에서 겪은 ‘결정화 경험’을 통해 그는 시로써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소외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한 시대의 사려분 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라고 쓴 대로 ’무인지경의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10p
다른 이들에게 대단한 업적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420p
엘리엇은 자신의 위치를 예리하게 분석할 줄도 알았다. 옛 철학 스승은 우즈(J. H. Wood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지요....... 저는 과작(寡作)인지라 많이 써서 유력한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런던에서는 작은 책자 분량의 시 한 편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한편 한 편마다 완벽성을 기해야 하고, 그래서 각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관건일 테지요. 미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고향보다는 여기서 훨씬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424p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0p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되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44p
『황무지』의 저자로서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에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오랫동안 살아남을지 아니면 금방 잊혀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기엔 스텝 지방의 리듬이 자동차 경적과 기계 소음, 기어와 맞물리고 금속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 지하철의 굉음 등 현대 생활에 미만한 거친 소리로 변형되고, 다시 이 절망적인 소음이 음악으로 변환된 것 같다. 449p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p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로 온 여자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인 자립적인 상징 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Lynn Carafola)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517p
그레이엄 무용단의 일원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우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창조적 도약에 관한 10년 규칙에 적합하다.) “엄정하고 힘든 테크닉, 그러니까 무용 동작의 과학에 따라 신체를 단련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학생은 매일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521p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523p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소년 간디는 몸집이 왜소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체육을 싫어했다. 특별히 훌륭한 학생도 아니어서 학교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쾌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44p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p
전기작가 루이스 피셔(Louis Fischer)는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도 많고 허둥대는 변호사로 1891년에 런던을 떠났던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고 말한다. 549p
간디와 같은 정치가와 사상의 혁신자들, 특히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이는 혁신자들의 경우는, 각자의 신조가 명확히 드러나고 그 원칙적인 실행 방침이 결정(結晶)화되는 지점을 많이 지적할 수 있다. 563p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563p
간디의 전기 작가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공상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간디 역시 명상적인 천품(天品)과, 활동성 그러니까 열정적으로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을 결합했다.” 573p
에릭슨은 이 점을 좀더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어떤 천재들은 도대체 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진화론적이고 실존적인 저주를 스스로 짊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왜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신적 위대성을 그런 사람에게 기꺼이 부여하려고 하는 것일까?” 575p
추종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부 규범
* 마음속에 분노를 품지 말고 상대의 분노를 그대로 감내할 것. 상대의 공격을 앙갚음하지 말 것.
* 체포에 저항하지 말고, 타인의 재산을 보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산의 압류에도 저항하지 말 것.
*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로서 사티아그라하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심각한 의견 불일치 사안이 생기면 사이아그라하 운동 집단에서 물러날 것.
“6미터 높이의 밧줄 위해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하는 줄타기 곡예사는 밧줄에 정신을 집중해햐 한다. 아주 작은 실수가....... 그에rps 죽음을 의미한다........ 사티아그라하의 실천자는 이보다 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580p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 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천명의 남녀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581p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5p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취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전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00p
간주곡 3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마트 간디
몸을 위주로 한 삶은 작업실이나 실험실에 기반한 다른 창조자들의 삶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 현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관객과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단식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텝을 잘 못 밟아 작품을 그르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그럴싸하게 보이지 못한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실존의 순간 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611p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비록 부모와 친밀한 사이일 수는 있어도 감정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오히려 유모나 보모 혹은 다소 먼 친척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622p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집안에서 종교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라도 도덕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E.C.는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로 자라나는데, 덕분에 스스로 가책을 받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한 때는 종교를 거부했다가도 훗날 다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 623p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623p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4p
나는 두 가지 요인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항적인 태도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재능과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634p
인생패턴 : 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 이다. 637p
창조적인 인물들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서로 구분되는 활동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1) 특정한 문제풀이(주로 과학 문제 풀이)
2) 일반적인 이론 체계 수립.
3) 작품 창조
4) 양식화된 공연
5) 대의를 위한 실천(실행) 643-644p
어쩌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646p
친밀한 관계에 대해 좀더 말해 둘 내용이 있다.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661p
옮긴이의 말
창조성은 단순한 재기(才氣)나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도한 입시교육이나 취업경쟁이라는 상황 탓인지 창조성을 그런 재주 정도로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p
III. 내가 저자라면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고 발현되는가?
우리 사회는 창조적 인물을 길러낼 만한 역량이 있는가?
나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책의 표지에 쓰여진 내용이다.
이책은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동시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7명의 천재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갖은 창조성에 대해 알아보려한 책이다.
저자는 아동과 대가의 관계,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등 3가지의 구성적 주제를 기본으로 접근한다고 1장에서 밝혔다. 그리고 2장 창조성의 연구방법에서 ‘창조성에 대한 나의 접근법’으로 1. 구성적 주제, 2. 구성적 틀, 3. 경험적 조사문제, 4. 새로 발견한 주제 에 대해 상세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장 지그문트 프로이트, 4장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5장 파블로 피카소, 6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7장 T. S 엘리엇, 8장 마사 그레이엄, 9장 마하트마 간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자료에서는 1장과 2장의 일목요연한 연구 방식이 녹아 들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창조성이란 주재를 다루기에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물의 자서전적 서술은 저자가 다루려고 한 주재에 대해 오히려 초점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10장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에서 이러한 우려를 다소 씻기는 했지만 본문에 대한 저자의 전개방식에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1장과 2장에서 나누어 놓은 패턴을 본문에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장에서 했던 창조성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본문에 적절하게 활용하면 책에 역동성이 부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또한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벗어나지 못한 제2부 현재의 창조적 거장들은 글의 구성 자체가 그리 창조적이지 못하다. 거장들의 창조성을 들어내는데 너무 많은 내용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 부분 또한 1-2장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의 패턴에 집중해서 예로서의 설명이 보다 더 적절해 보인다. 그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읽어나가는데 부담을 주지 않았으리라 보여 진다. 연구를 위한 논문의 형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부부에 대한 치밀함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책의 구성에서 10장을 먼저 읽어보라는 귀뜸이 필요해 보였다.
거장들의 삶을 읽어가는 동안 많은 독자들이 지루해 하지 않았을까하는 우려를 해봤다. 자신과 교감이 가능한 인물도 있지만 처음 접해보는 거장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그들의 삶을 읽어가는 것은 그리 만만한 책읽기는 아니리라 보여 진다. 나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읽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더더욱 이부분이 아쉽다. 10장을 먼저 읽었으면 책 읽는 초점이 분명했을 것 같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창조성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분야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열정과 기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제목만으로도 흥분을 감추기 어렵게 하고 있다. 나에게도 천재적인 기질이 있을까? 하는 독자가 없진 않을 것이다.
천재들이 가졌던 기질은 그리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옮긴이의 말처럼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그것이었다.
IP *.34.17.28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북스넛
I.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 1943 - )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그 유명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의 창시자이다.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꾼 역작 <마음의 틀>을 통해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제기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는, 다중지능 이론 발표 이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교육 체계를 가드너 식으로 바꾸었으며, 그의 이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소와 단체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가장 영향력 잇는 창조성 개발의 대가
현재 하버드 대학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인 가드너는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인간개발에 관한 야심찬 연구기관이다. 가드너는 25년이 넘게 이 연구소를 이끌어오면서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창조성의 조건을 제시하는 책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주창해 온 다중지능 이론에 근거하여,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들여다보며 그들이 창조적인 대가가 될 수 있었던 원인과 조건을 날카롭게 분석해낸 역작이다. 현대의 거장들이 초점을 맞추어 창조성의 조건이 가장 방대하고 심오하게 분석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그동안의 연구의 최종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책으로는 <마음의 틀>, <20세기를 움직인 11인의 휴먼 파워>, <다중지능 이론>,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등 18권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구성적 주제
1) 아동과 대가의 관계
개인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완의 대가인 아동의 세계와 자기 세계에 확신이 있는 성인 대가의 영역 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2)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모든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현재 통용되는 상징체계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상징체계를 고안한다. 이 책에서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성격을 쇄신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3)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흔히 창조적인 인물들은 홀로 고립되어 작업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기간 내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 연구에서 나는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행하는 역할과,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할 것이다. 39p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성격과 동기부여의 관점
버클리 성격 연구소(Berkeley Institute of Personality Assessment)가 수행한 이 방면의 대표적인 연구에 따르면,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65p
아인슈타인의 사례 연구에서 재능 있는 아이가 골몰하는 질문 유형과,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훈련 및 사고 과정의 특성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사례연구에서는 재능이 풍부한 어린 신동과 원숙한 대가의 관련성에 주목할 것이다.75p
나는 그들이 해당 분야의 상(像)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해당 분야의 문제점이나 불확실성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해당 분야에 결여된 부분을 지적하고 가능성있는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81p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3p
칙센트 미하이 칙센트가 “창조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관습적인 물음을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좀 더 참신한 질문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 것은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식의 창조성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세 가지 요소(결절점)를 지적한다.
(1)재능 있는 개인, (2) 그 개인이 활약하는 특정 분야나 학문 영역, (3) 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場), (이 세 요소들은 대략 1장에서 소개한 세 가지 핵심요소와 대응되며, 바로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네 가지 분석 수준에서 각기 두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관점과 대응된다.) 칙센트미하이의 설득력 잇는 설명에 따르면, 창조성은 어느 한 요소나 한 쌍의 요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성은 이 세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볼 때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88p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頌歌)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도가 되는 촉매 역할을 했다. 108p
나의 용어로 말하면,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personal)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학업을 마쳤을 때는 마치 세상이 그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야흐로 현대의 문이 열리는 시대에 문명 세계의 중심지에 살면서 영향력 있는 스승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프로이트에게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무한했으리라 보인다. 111-112p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어떻게 불쾌한 기억이 의식의 배후로 억압되었다가 다시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이 치료법은 말(言語)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 (associative correction)하는 것이다. 119p
때로 프로이트는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1913년에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궁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127p
프로이트 혁명의 주요 개념
어떤 지적 혁명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하나만 집어내는 일은 위험하다. 이 위험은 특히 프로이트의 혁명적 사고와 같은 경우에서 두드러지는 법인데,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프로이트의 이론 체계에 힘과 매력을 부여한 것은 여러 맹아적인 관념들이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129p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 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129p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30p
신경증
샤르코의 임상교실에서 돌아온 후에 프로이트는 다양한 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편집증)을 연구하고 그 기제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분류에 능한 편이었던 그는 유기적인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어느 때는 전환 히스테리(conversion hysteria)는 정서(affect)의 변형 기제로, 강박증은 정서의 전위(displacement)로, 맬랑콜리는 정서의 교환(exchange)으로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들을 구별했다. 그 다음에는 신경증을 두 개의 주요 종류(억압과 불안)로 나누거나 다섯 개의 범주로 구별했고, 나아가서는 ‘실제의’ 신경증과 ‘심리적’ 신경증으로 분류하기까지 했다.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131p
그는 당시의 전문 용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던 이론을 사유하고 있었다. 자기 생각의 요점을 부적절하거나 시대에 뒤진 용어로 번역하는 데서 생기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이트는 자신만의 언어와 도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자기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135p
대체로 꿈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에서 자극을 받는데, 꿈 꾼 당사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꿈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의 ‘외현적 내용(manifest content)'을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잠재적 내용(latent content)'을 밝혀내야 한다. 꿈의 잠재 내용을 해독하려면 꿈 상징에 관한 완전한 어휘 목록이 필요한데, 물론 배경 지식 없이는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휘들이다. 꿈을 형성하는 방어 기제로는 응축(condensation)과 전위, 다양한 종류의 방어막(screen)이 있는데, 꿈의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방어 기제를 끈기 있게 해소해야 한다. 138p
프로이트는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sympathetic listener)'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139p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내부의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발견했다. 이 감정은 아주 어린 유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아들은 어머니에게는 강한 애정과 사랑과 욕망을 느끼는 반면 아버지에게는 질투와 두려움, 심지어 증오심까지 품는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 전화한다. 처음 이런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꼈을 때, 프로이트는 광범위한 문학적 소양과 다른 환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감정이 인간의 정서를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중세 헴릿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 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140p
프로이트의 재능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典據)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45p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145p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논의 패턴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일 터인데,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 “나는 공간상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지독하게 부족한 편이라서, 기하학이나 거기서 유래한 학문을 연구하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145p
처음의 반응
프로이트 스스로 걸작이라고 여긴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그의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가? 얼핏 보기에 그처럼 폭넓은 시야를 가진 저서라면, 프로이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주된 대상 독자인 심리학자들의 장(場, field)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몇몇 공감 어린 서평도 받긴 했으나, 가령 다윈의 『종의 기원』과는 달리 학자들이나 대중들은 이 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48p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명예롭지만 고통스러웠던 고립’에 관해 심정을 토로한 후에 이렇게 썼다.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프로이트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이 조그만 모임에서 융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으며, 1910년 새로 탄생한 국제정신분석학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만만찮은 두 사람의 성격이 부딪칠 때가 되면, 그것은 분명 후회할 결정이었다. 155p
나는 창조적인 인물에 관해 연구하면서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즉,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161p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결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들어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 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5p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영원한 아이
아마도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가장 잘 드러낸 물음일 터인데, 열여섯 살에 그는 사람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조금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주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할 때,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지닌 물건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했다. 그러니까, 물건이 주머니에서 빠지면 바닥에 떨어질지, 아니면 공중에 그대로 떠 있을지가 문제였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168p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관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169-170p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0p
물리학자 라비아(I. I. Rabi)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71p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서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악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그는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 동료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는 빛의 본성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네”라고 말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194p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195p
그는 특히 이론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자연 현상을 가장 일반적인 물리학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95p
글이든 말이든 언어의 세계는 나의 사고 기제에서 별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각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니이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 관습적인 어휘나 다른 기호들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과 결합 작용의 틀이 충분히 잡히고 그것을 자유 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이차적인 단계로서 애써 찾아야 했던 것이다. 196p
분명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프로이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포부가 크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담한 용기를 지녔고 기꺼이 홀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논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199p
"빛의 속도로 광선을 쫓아가는 관찰자가 볼 때에도, 모든 사건이 지구에 대해 정지 상태에 있는 관찰자가 볼 때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내게 직관적으로 자명하게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첫 번째 관찰자가 자신이 빠른 등속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05p
물리학의 표준 절차는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후에, 이로부터 원리와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정반대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에서 기본적인 물리 법칙, 가령 광속 일정의 원리를 우선 제기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현상을 추측하고 그 기본 원리를 다른 법칙과 연결시켰다. 208p
제 대답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농담 한 마디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제 이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애기지요. 222p
아인슈타인은, 우선 그가 젊은 시절에 숙고했던 문제가 당시의 물리학에 적합했다는 점에서, 둘째 그가 공간적, 시각적 상상력에 재능이 있다는 점이 그의 과학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20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과 세계관은 노리-수학 지능이 공간적 재능보다 더 중요한 양자 역학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233p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reflective wisdom)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236p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관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의존해서 이런 존재의 오점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237p
그러나 깊은 수준에서는 유년기와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이고 어른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프로이트가 몰두했던 주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종류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동의 삶을 지배하는 것인긴 하다. 즉, 꿈이나 농담, 성적 놀이와 같은 다양한 현상뿐 아니라 전위와 응축, 대체와 같은 심리 과정이 그렇다는 애기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 개시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7p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데이비드 펠드먼이 설명하듯이,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251p
비상한 재능을 타고 난 신동이라도 장애를 만나게 마련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 소리에 대해 아이들 방어해 주면, (현실적 상상만으로든)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252p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함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259p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61p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 걸 한데 모으는(all-put-together)' 스타일의 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structure)' 형의 예술가이다. 모차르트가 전자의 전형이라면, 베토벤은 후자의 전형이다. 신동 피카소는 첫 번째 유형을 대표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예술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아폴리네르는 주장한다. 279p
훗날 칸바일러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선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피카소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동료 화가들 누구도 그를 뒤따르지 않았으니, 당시 그가 느낀 정싡거 고독이란 참으로 공포스러울 정도였겠지요.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287p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 피카소는 열정에 넘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났으며, 스스로 신동임을 알고 있었다. 음악에는 아무 흥미가 없어서 오로지 그림에 살고 그림으로 호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8p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에 브라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 피카소와 나는 당시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리들한테는 참으로 즐거웠던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서로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290p
"우리가 입체주의를 창시했을 때는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293p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309p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 313p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322p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334p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음악 신동은 아니었다. 실상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회화나 연극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였다. 339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340p
자신의 말대로라면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어서 학급에서 평균 혹은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340p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젊은이 특유의 기백과 미숙함이 드러난 스트라빈스키의 곡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 앞으로 해나갈 공부 방향에 관해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자신의 작곡 과정을 함께 논의하자는 관대한 제안을 하는 바람에 젊은 이고르를 놀라게 했다. 341p
스트라빈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견지했고 엄격한 훈련방식을 선호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요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42p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나의 제자이긴 해도, 결국 누구의 추종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음악 재능이 너무나 탁월하고 독창적인 까닭이다.“ 342p
비평가들에 따르면,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은 별볼일 없는 태작에 불과하다.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343p
전기작가 앙드레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빈스키가 무대 연출에서 차지한 비중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런 참여를 통해 그는 이 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354p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55p
스트라빈스키는 늘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만들었으므로 피아노 연주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작곡할 때 가장 힘들었으리라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359p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대체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착수할 무렵부터 곡의 전모를 분명하게 구상해놓는 편이었다. 피아노 반주를 통해 일찍부터 기본 선율과 리듬을 정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감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적 구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음악적 효과 및 표현 효과를 내려면 악기 파트와 단편적인 악절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그에 가장 알맞은 악기 및 기악 앙상블로 실험해 보고, 또 고전 음악이나 민요의 단편적인 악절을 차용하여 멜로디를 구성했다. 378p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379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오랜 전통에 속하는 장인(匠人)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내가 가진 기질과 재능이라면 차라리 소(小) 바흐로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가끔 교회와 신을 위해 곡을 쓰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삶 말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만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고 견뎌냈다. 타락한 면이 없지 않은 출판업자나 음악 축제, 음반사, 홍보업계의 오랜 인습(물론 나 역시도 그런 인습에 빠져 있었지만)을 극복해낸 것이다. 387p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가 적절하게 활용한다.” 388p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신적인 영감을 느낀, 보스톤 거리에서 겪은 ‘결정화 경험’을 통해 그는 시로써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소외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한 시대의 사려분 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라고 쓴 대로 ’무인지경의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10p
다른 이들에게 대단한 업적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420p
엘리엇은 자신의 위치를 예리하게 분석할 줄도 알았다. 옛 철학 스승은 우즈(J. H. Wood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지요....... 저는 과작(寡作)인지라 많이 써서 유력한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런던에서는 작은 책자 분량의 시 한 편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한편 한 편마다 완벽성을 기해야 하고, 그래서 각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관건일 테지요. 미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고향보다는 여기서 훨씬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424p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0p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되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44p
『황무지』의 저자로서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에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오랫동안 살아남을지 아니면 금방 잊혀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기엔 스텝 지방의 리듬이 자동차 경적과 기계 소음, 기어와 맞물리고 금속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 지하철의 굉음 등 현대 생활에 미만한 거친 소리로 변형되고, 다시 이 절망적인 소음이 음악으로 변환된 것 같다. 449p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p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로 온 여자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인 자립적인 상징 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Lynn Carafola)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517p
그레이엄 무용단의 일원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우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창조적 도약에 관한 10년 규칙에 적합하다.) “엄정하고 힘든 테크닉, 그러니까 무용 동작의 과학에 따라 신체를 단련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학생은 매일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521p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523p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소년 간디는 몸집이 왜소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체육을 싫어했다. 특별히 훌륭한 학생도 아니어서 학교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쾌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44p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p
전기작가 루이스 피셔(Louis Fischer)는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도 많고 허둥대는 변호사로 1891년에 런던을 떠났던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고 말한다. 549p
간디와 같은 정치가와 사상의 혁신자들, 특히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이는 혁신자들의 경우는, 각자의 신조가 명확히 드러나고 그 원칙적인 실행 방침이 결정(結晶)화되는 지점을 많이 지적할 수 있다. 563p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563p
간디의 전기 작가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공상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간디 역시 명상적인 천품(天品)과, 활동성 그러니까 열정적으로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을 결합했다.” 573p
에릭슨은 이 점을 좀더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어떤 천재들은 도대체 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진화론적이고 실존적인 저주를 스스로 짊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왜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신적 위대성을 그런 사람에게 기꺼이 부여하려고 하는 것일까?” 575p
추종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부 규범
* 마음속에 분노를 품지 말고 상대의 분노를 그대로 감내할 것. 상대의 공격을 앙갚음하지 말 것.
* 체포에 저항하지 말고, 타인의 재산을 보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산의 압류에도 저항하지 말 것.
*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로서 사티아그라하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심각한 의견 불일치 사안이 생기면 사이아그라하 운동 집단에서 물러날 것.
“6미터 높이의 밧줄 위해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하는 줄타기 곡예사는 밧줄에 정신을 집중해햐 한다. 아주 작은 실수가....... 그에rps 죽음을 의미한다........ 사티아그라하의 실천자는 이보다 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580p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 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천명의 남녀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581p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5p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취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전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00p
간주곡 3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마트 간디
몸을 위주로 한 삶은 작업실이나 실험실에 기반한 다른 창조자들의 삶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 현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관객과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단식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텝을 잘 못 밟아 작품을 그르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그럴싸하게 보이지 못한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실존의 순간 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611p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비록 부모와 친밀한 사이일 수는 있어도 감정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오히려 유모나 보모 혹은 다소 먼 친척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622p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집안에서 종교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라도 도덕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E.C.는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로 자라나는데, 덕분에 스스로 가책을 받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한 때는 종교를 거부했다가도 훗날 다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 623p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623p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4p
나는 두 가지 요인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항적인 태도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재능과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634p
인생패턴 : 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 이다. 637p
창조적인 인물들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서로 구분되는 활동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1) 특정한 문제풀이(주로 과학 문제 풀이)
2) 일반적인 이론 체계 수립.
3) 작품 창조
4) 양식화된 공연
5) 대의를 위한 실천(실행) 643-644p
어쩌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646p
친밀한 관계에 대해 좀더 말해 둘 내용이 있다.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661p
옮긴이의 말
창조성은 단순한 재기(才氣)나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도한 입시교육이나 취업경쟁이라는 상황 탓인지 창조성을 그런 재주 정도로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p
III. 내가 저자라면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고 발현되는가?
우리 사회는 창조적 인물을 길러낼 만한 역량이 있는가?
나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책의 표지에 쓰여진 내용이다.
이책은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동시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7명의 천재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갖은 창조성에 대해 알아보려한 책이다.
저자는 아동과 대가의 관계,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등 3가지의 구성적 주제를 기본으로 접근한다고 1장에서 밝혔다. 그리고 2장 창조성의 연구방법에서 ‘창조성에 대한 나의 접근법’으로 1. 구성적 주제, 2. 구성적 틀, 3. 경험적 조사문제, 4. 새로 발견한 주제 에 대해 상세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장 지그문트 프로이트, 4장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5장 파블로 피카소, 6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7장 T. S 엘리엇, 8장 마사 그레이엄, 9장 마하트마 간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자료에서는 1장과 2장의 일목요연한 연구 방식이 녹아 들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창조성이란 주재를 다루기에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물의 자서전적 서술은 저자가 다루려고 한 주재에 대해 오히려 초점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10장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에서 이러한 우려를 다소 씻기는 했지만 본문에 대한 저자의 전개방식에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1장과 2장에서 나누어 놓은 패턴을 본문에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장에서 했던 창조성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본문에 적절하게 활용하면 책에 역동성이 부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또한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벗어나지 못한 제2부 현재의 창조적 거장들은 글의 구성 자체가 그리 창조적이지 못하다. 거장들의 창조성을 들어내는데 너무 많은 내용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 부분 또한 1-2장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의 패턴에 집중해서 예로서의 설명이 보다 더 적절해 보인다. 그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읽어나가는데 부담을 주지 않았으리라 보여 진다. 연구를 위한 논문의 형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부부에 대한 치밀함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책의 구성에서 10장을 먼저 읽어보라는 귀뜸이 필요해 보였다.
거장들의 삶을 읽어가는 동안 많은 독자들이 지루해 하지 않았을까하는 우려를 해봤다. 자신과 교감이 가능한 인물도 있지만 처음 접해보는 거장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그들의 삶을 읽어가는 것은 그리 만만한 책읽기는 아니리라 보여 진다. 나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읽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더더욱 이부분이 아쉽다. 10장을 먼저 읽었으면 책 읽는 초점이 분명했을 것 같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창조성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분야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열정과 기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제목만으로도 흥분을 감추기 어렵게 하고 있다. 나에게도 천재적인 기질이 있을까? 하는 독자가 없진 않을 것이다.
천재들이 가졌던 기질은 그리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옮긴이의 말처럼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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