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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3일 18시 09분 등록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대원문화출판사


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의 오랜 인연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1997년 봄이다. 그보다 한 해 앞서 1996년 봄에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는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게 된 동료로부터 문화 계간지 『Review』라는 알게 되었고, 그 계간지에 구독하는 중에 1997년 비평이 실리면서 이 만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리뷰를 누가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만화책을 보기 전에 먼저 그림과 설명을 보아버린 셈인데, 그 비평이 만화의 주요 컷을 같이 실어주었다. 이것을 읽으면서 ‘와~’ 했었다. 단행본으로 나왔을 것 같아 문의하였다. 그러나 바로 구할 수는 없었다. 1994년부터 『Twenty Seven』이란 성인만화 월간지에 연재되었다고 소개되었는데, 계간지에 소개될 당시는 출판된지 시일이 지나서 이미 재고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출판사로 반품을 한 상태였다. 서점의 도움으로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서 남은 것을 구해보는 방법으로 손에 쥐게 되었다.

야근을 마치고 피곤한 놈을 이끌고 책이 도착한다는 오후까지 서점에서 기다려 책을 쥐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모습은 미친 사람이었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눈물, 콧물 다 짜며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깊이 파고 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의 삶의 내 삶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났다. 책 속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다. 1997년. 그 해에는 내게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취직을 해서 막 사회란 것을 알아가는 ‘초짜 직장인’이었고, 가족들의 문제로 ‘청소년, 청년’에서 ‘어른’이 되는 풍랑을 겪고 있었다. 옆에서 건드려 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절망하고, 폭발할 감정을 지닌 시기였다.
그런 내 상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을 것이다. 읽고나서 직장 동료에게도 빌려주었는데, 그 동료도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서로가 주인공 ‘견자’를 따서 그걸 하겠다고 우겼다.

만화를 보는 동안 잠시 독자를 다른 세계에 살게 한다. 그러나 그 세계는 지금과 너무나 닮아있다. 돌아보는 현실은 만화 속 주인공이 겪는 것과 같다. ‘Twenty Seven'이란 말처럼 읽는 시기가 그 나이이기 때문이었을까, 작가가 쳐든 그물망에 제대로 걸렸다.

그림 속에서는 시간이 멈춰버리고, 공간은 멈춘 시간에 따라서 주인공의 의식이 머무는 그곳이 곳 여기가 되었고, 때로는 그 안에서 영원히 흐르고 있었다. 한국적인 정서의 표현이라고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환쟁이가 눈 쌓인 금강산을 여인으로 보고 ‘그만 울어’라고 달래는 부분이 [Review]에 소개 되었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박흥용의 이 만화를 본 후로 바닷가에서 섬들이 여인의 모습으로 보였다. 우리나라 남쪽의 산들은 부드럽고 둥글다. 남쪽의 섬들의 모양도 그렇다. 둥근 모습이 여인의 어깨같고 허리선 같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심리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상징을 썼다. 머리 위를 떠다니는 기왓장. 그 표현은 너무나 독특했다. 또 그는 바람을 그리는 사람으로 [Review]에 소개되었던 것 같다. 칼싸움을 하는 들판에 바람이 불고, 그것을 지켜보는 정적은 그 장면하나를 사진으로 담아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었다. 박흥용의
그림 속에서는 풀이 춤을 춘다. 그런데 그 속에 시간이 멈추어 있다.

얼마전에 이 책을 다시 보면서, 그림을 배우는 사람으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리뷰를 하고 싶어졌다. 상황에 맞게 구성한 이야기, 다양한 만화그림 모두 흡수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림을 공부한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그림으로 리뷰하고 싶었다.

그림을 베껴 그리다가 배우게 된다고 한다. 유연한 선,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선정한 구도, 몇 개의 컷에서 형태를 변환해가며 의식을 전환해 가는 것 모두 배우고 싶다. 내게 오랫동안 깊은 영향을 준 만화가에 대한 경의의 표하고 싶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후배 영화인이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영화인의 대사나 장면을 넣거나, 혹은 장면을 넣거나 같은 스타일로 만들거나 해서 재능이나 업적에 대한 어떤 것을 기린다고 한다. 내게 심리적인 면에서 영향을 많이 준 이 만화에 대해서 그렇게 하고 싶긴 한데, 만화라는 것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이, ‘독특한 전개에 푹 빠졌어요.’ ‘상징에 놀랐어요.’라고만 하기에는 멋진 이야기와 전개(구성)과 그림이 너무도 많다. 마음만이 앞서서 특정장면을 따라 그려보는 것이지 작품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두렵다. 경의를 표한다면서 좋은 것에 내가 흠집을 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용의 이해 또한 그러하다. 10년동안을 두고 보아온 만화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아 내 삶과 연결되어서 섞여 있을 것이다.

만화 속의 사람들의 심리와 내 심리가 뒤죽박죽 될 것을 예상한다. 만화작가 박흥용은 만화 속에서 화자를 통해서 계속 질문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답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점이 내게 깊이 파고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만화의 이야기이고, 그림을 그리면서 겪는 것인지, 내 과거의 이야기인지를 구분하고 싶지 않다. 박흥용이 만화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을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혹은 우화를 들려주는 스승마냥 가르침을 주거나 하는 것으로 전체를 전개해 나갔듯이.

Ⅱ. 저자소개
박흥용

만화가. 1959년 3월 21일 충북 영동 출생이다(어느 곳에는 1959년생, 다른 곳에는 1961년생 등 2가지로 나오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만화 『내 파란 세이버』에서 영동지역을 중심으로한 충북일대의 60, 70년대의 삶이 나오는데 시골풍경이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호두나무 왼쪽길로』에서도 충청북도 어느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화를 보면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때가 많았다. 작가 박흥용에 대해서 잘 모르니 이런 의심도 해본다. 만화 속에서 충청북도 영동을 지역 소재로 삼은게 몇 개 있다는 것, 주인공은 모두 가난하거나 뭔가 막혀있어 뭔가를 찾아 헤맨다는 것, 주인공인 소년은 시골의 가난한 집에 할머니와 같이 살고, 아버지란 존재는 없거나 비중이 작고, 대신 소년을 이끌어주는 멘토와 같은 어른이 계시다는 것. 이들은 박흥용과 닮았거나 혹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쓰고 있을 것이라고.

1981년 『돌개바람』으로 데뷔했다.
1982년 『어린 왕자의 노래』로 「이서방 문고 만화현상공모」에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 8월 『무인도』
1986년 『백지』로 「만화광장 신인만화현상공모」에 당선.
1987년 『하늘』, 『늙은 군인의 노래』, 『튀어오른 공』
1988년 일본에서 단편모음집 『백지』출간
1993년 단편 모음집 『나무위에 사는 나무』출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파격적인 연출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그림으로 표현한 철학적인 메시지 등 독창성과 예술성에 있어 탁월함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단과 독자의 전폭적인 찬사를 받았다. 1996년에는 문화관광부 주최 ‘대한민국 만화문화대상 저작상’을 수상하엿고, 2005년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었으며 2007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프랑스 최대 출판사 ‘꺄스테르만(Casterman)'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바 있다.
1999년에 『내 파란 세이버』 문화관광부 주최 ‘제 1회 오늘의 우리 만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만화가 박흥용은 매 작품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치고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현재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이야기로 보는 이에게 감동을 전하는 ‘작가주의 만화’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 청년사 만화작품선 시리즈로 ‘박흥용’이란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의 초기 단편작품이 18편 담겨있다. (여기에 담긴 작품 : 새신 / 잃어버린 향 / 달 뜰 때까지 / 서울, 달빛의 연가 / 삼양동행 / 자전거 // 2등 인간 / 연출서곡 / 계단의 그것처럼 // 하늘 / 겨울비 / 관 / 파편 / 늙은 군인의 노래 // 백지 / 나무 위에 사는 나무 / 아버지와 딸 / 돼지의 날개)

최근의 작품들로는 『호두나무 왼쪽길로』,『경복궁 학교』,『그의 나라』『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가 있다.

박흥용과의 인터뷰 글을 이곳에 옮긴다.
그가 후배 만화가에게 주는 말 속에서 만화가는 어떻게 수련하나를 보면서, 만화가지망생뿐만이 아니라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후배들에게도 전할 메시지를 얻는다.


자료의 출처 :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
1997년 '코믹테크' 2호에 실린 인터뷰를 편집하여 올린 글입니다. http://cafe.naver.com/bscomi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80486

만화를 그리기 위한 복잡한 지도는 만들지 말 것!!
너무 상세하고 복잡한 안내책을 가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단순하면 단순할 수록 좋습니다. 한 꼬마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옆동네로 찾아가는데 동네 약도만 있으면 됐지 세계지도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만화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의 단계를 나름대로 설정하고 그 단계를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밟아 나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자기가 생각하기에 뎃생력이 떨어진다면 뎃생을 위한 훈련을 첫단계로 정하고 그 외의 다른 무엇도 생각지 말고 뎃생에만 매달리라는 겁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어느정도 첫단계의 계획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다음 단계의 계획을 세우고 또 그 계획에 매달려 정진하고.... 그런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가며 자신의 계획과 목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만이 프로만화가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너무 광범위한 계획과 이상은 발전은 커녕 오히려 만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 우리나라 만화계의 원로이신 김용환 선생님을 만나뵙고 좋은 만화를 그리는 방법을 여쭈었더니 '계속 그려!'란 한마디만 하시더라구요. 비록 단 한마디만을 하셨지만 그 한 마디 안에 만화를 그리는 모든 방법이 들어있는 거에요.많이 보고, 많이 쓰고, 많이 그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중략)

그림에 관한 훈련은 따로 왕도가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연필을 깎고 수없이 많은 잉크병을 비워야 하는 것이죠.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인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많은 사물들이 있지만 인체만큼 묘사가 어려운 피사체는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인물을 그리려면 계속되는 인체묘사의 연습을 해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려야 할 대상의 문제입니다.

평생 옆에서 모델을 해 줄 사람이 없는 한 나름대로 인체에 대한 자료들을 구비해야 합니다.저 같은 경우에 제일 좋은자료는 사진입니다. 여자를 그리기 위해서는 여러 여성잡지에 나와있는 모델들의 사진을 자료로 하고 남자의 경우엔 스포츠 잡지나 신문등 여러 매체를 이용합니다. 그 자료들을 토대로 계속 그려야 합니다.

먼저 운동감이 없는 모델들의 사진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을 해서 어느 정도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난 후 그 다음에 스포츠지의 인물들을 그려야 합니다. 처음부터 인체구조 즉, 근육이나 골격의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감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죠.

사람들 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몇 백, 몇 천장의 사진을 끈기있게 2년 정도 모사하다 보면 인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게되는 틀이 잡힙니다. 어쨌든 이러한 작업을 '마네킨 작업' 이라고 하는데 그 마네킨 작업으로 인해 왠만한 동작이나 인물의 운동감표현에 자신이 붙으면 이제는 그리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그 훈련의 가장 좋은 방법은 크로키입니다.이미 인물을 그리는 것에 이력이 나있는 상태이므로 움직이는 인물을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손에 스피드가 붙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크로키를 통해 순간포착, 어떤상황에서든 원하는 포즈를 포착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이 크로키는 감각을 잃지않기 위해서라도 펜을 꺾는 그 순간까지 계속 해야만 합니다.자, 이제 인물에 대한 표현능력이 상당 수준 향상되었으므로 그 능력을 베이스로 만화적인 약화작업을 합니다.

캐릭터 창출의 단계에 다다른 것이죠. 이미 근육, 골격, 표정, 나아가서 의상까지 사람의 외형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임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만화적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입니다. 즉 여러 단계를 각고의 노력으로 거쳐 기본적인 토양이 마련된 결과인 것입니다.

밀알을 심고 밀을 수확해서 밀을 빻습니다. 빻아서 만들어진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든 상태가 바로 기본적인 토양이 마련되어진 것이죠. 이제 각고의 노력의 결과로 그 반죽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 겁니다.


Ⅲ. 인용
일러두기
============================================
만화를 옮겨적다보니,
- 누구의 말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고
- 속으로 한 말인지,
-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인지
- 의성어· 의태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
일러둔다.
그러나, 책에서는 속으로 한 말과 누구에겐가 한 말들은 구분이 모호하여 느낌대로 구분했다. 만화에는 ‘말풍선’이란 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한 말이나, 속으로 생각하는 말은 그 속에 쓰여있는데, 이 만화는 그 경계를 쉬이 넘나들면서 전개해 간다.

예시)
견자 : < 내 나이 열여덟.
굳을 견(堅)에 기둥 주(柱).
견주라는 짱짱한 이름을 갖고 잇지만
사람들은 개 견(犬)과
아들 자(子)자로 바꿔서
자를 개자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따위로 불리고 있는
사람자식이다. >

[6-7]견자 : “칵 퇫!
내내 잊고 있다가도 옆구리 책 끼고 다니는 니놈들만 보면 뿔다구가 솟은 대문처럼 솟는단 말야.

어디 한번 지껄여들 보시지.
정부가 둘셋으로 찢어졌대는 둥 임금님은 그중 누구편이라는 둥
빨리 씨불대보란 말야. “

< 지나던 개새기가 코웃음 칠 정치라도 글방놈들 입방아엔 허락할 수 없다. 이~

시끄러운 정부덕에 난장판 된 정치얘기.
아무나 내키면 한마디 하는거지 뭐.
뭐가 뒤틀려서 트집이냐? 냐? 냐? >

황정학 : “어이~애국자 양반”
* 이렇게 견자와 황정학은 첫대면을 한다.
==================================================================
견자 :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한 사람의 이름
“ ” : 속의 글은 입 밖으로 소리내어 한 말이다.
< > : 속의 글은 소리를 내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대화하는 상대가 없이 혼자하는 말이다.
“” ‘ ’ : 말 속에 다시 이 부호가 겹쳐지며 나온다면, 어느 누군가의 말을 다시 따온 말이다.
* 표시 뒤의 문구는 책의 주석이거나, 나의 감상 혹은 나의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6]
견자 : < 내 나이 열여덟.
굳을 견(堅)에 기둥 주(柱).
견주라는 짱짱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은 개 견(犬)과
아들 자(子)자로 바꿔서
자를 개자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따위로 불리고 있는
사람자식이다. >

[6-7] 견자 : “칵 퇫!
내내 잊고 있다가도 옆구리 책 끼고 다니는 니놈들만 보면 뿔다구가 솟은 대문처럼 솟는단 말야.

어디 한번 지껄여들 보시지.
정부가 둘셋으로 찢어졌대는 둥 임금님은 그중 누구편이라는 둥
빨리 씨불대보란 말야. “

< 지나던 개새기가 코웃음 칠 정치라도 글방놈들 입방아엔 허락할 수 없다. 이~

‘시끄러운 정부덕에 난장판 된 정치얘기.
아무나 내키면 한마디 하는거지 뭐.
뭐가 뒤틀려서 트집이냐? 냐? 냐?’>

황정학 : “어이~애국자 양반”
* 이렇게 견자와 황정학은 첫대면을 한다. 첫 장면으로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칼라로 그린 것을 흑백 만화책으로 인쇄한 것이 그림 속에 보인다. 배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전체 구도가 너무나 좋다. 내 짐작으로는 만화가는 이 첫 번째 컷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첫컷이란 첫인상이지 않은가. 막 연재를 시작하는 첫 번째 만남. 내가 만화가라면 이 부분을 아주 많이 신경썼을 것이다.
그림이야기 - 이 장면을 그리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성들여서 꼼꼼하게 그렸다면 2~3시간은 더 썼어야 할 것이다. 만화가가 첫 장면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을 거라는 짐작처럼 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실력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펜촉, 잉크가 얼마나 진한지 얼마나 번지는 지도 모르는 상황, 어떤 펜으로 선을 그려야 할지 몰라 무작정 뛰어든 상황이었다.
앞쪽에 크게 나온 사람보다 뒤쪽에 작게 나온 사람이 그리기가 어려웠다. 나는 작게 보이는 것은 얼버므리는 그리는 습관이 있다. 이 만화책에는 작은 사람에게도 표정이 있다. 박흥용은 원근법 상에 뒤쪽에서 작게 보이는 사람도 가는 펜을 사용해서 크기만 작을뿐이지 체격이나 얼굴 특징에서 알 수 있게 꼼꼼하게 그렸다. Z-펜촉(가늘고 긴 선을 그늘 때 주로 사용하는 가장 가는 펜)을 이용하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했다.


* 왜 주인공 견자를 이런 얼굴로 그렸을까? 작가 박흥용은 인물 하나하나를 그 사람 특징이 들어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면에서 보여지는 그 사람은 무대에선 배우처럼 인물이 가진 캐릭터 이외의 다른 특징이 드러나면 안된다. 그런데 견자는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그런데... 입술. 스토리 상에 입술 이야기가 조금 나오긴 하지만 그건 만화적 위트인 것 같고, ..... 대체 왜 이런 입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을까 생각해봤다(물론 다른 캐릭터 황정학도 특이한 인물이긴 하다). 그림을 따라 그려보니 내가 그린 견자는 만화책의 견자보다 입술이 훨씬 얇았다. 나는 분명 그의 아랫입술이 아주 두껍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펜으로 그려야 할 때는 보이는 것보다 작게 그려버린다. 보통의 의식에서는 늘 보던 것을 쫒는다. 그런데 저자 박흥용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얼굴 특징을 부여해 버린 것이다. 분명 그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견자가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아주 작게 나온 장면에서도 그의 입술 때문에 그를 곧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라니..... 저가 박흥용이 이런 의도로 주인공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만은 사실이다.


[9]견자 : < 우리 아부진 나이 오십이 되도록 공부해서 생원 진사시에 겨우 합격하고 할 일을 찾지 못해 어슬렁거리는 촌부다.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해서 오십줄의 무료를 기방을 찾아 달래다가 어느 젊은 기생을 통해 나를 낳았는데(난 생모를 본 적이 없다. 날 낳고 산고로 죽었단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버진 이미 부인과 결혼한 자식과 대이을 손자까지 두고 있었다니.
어쨌든 난 그따위로 태어난 개자식(犬子者)이다. >
“개자식 상팔자라고 난 과거급제 압박없이 살아가는 자유인이다.”

[10] 견자 : “아직 닭벼슬도 모르는 새파란 것들이 마치 벼슬을 따놓기라도 한 것처럼 “견자야, 견자야. 서당개 삼년이믄 풍월이라는데 넌 풍월이나 읊고 우린 정치를 읊자야.” 하고 조롱한달 말요. 아부진 글방 다닌 맛 나겠심까?”
아버지 : “야 이눔아, 아무리 그렇기로 벌건 대낮에 술타령 행패냐.”
견자 : “그럼 아부지 생각해서 대낮은 피할게요.”
아버지 : “ 쥑일 놈. 에이그 다 내 탓이다. 밭을 보고 씨뿌렸어야지. 밭을 보고.... 끌끌.”
견자 : “아부지 너무 자학하지 마시오. 장수에 지장 있응께.”

[24-26] 견자 : "이 칼 날카로운게 쓸만해 보이는데 다리 말고 이 가슴팍이나 목에다가 콱 곶아줘."
“내가 뼈 꺾였다구 근성마저 꺽일 놈 같아? 고문 못 이겨 허위자백 한 것 같냐구? 천만에. 사는 게 도무지 싫어. 아버지 딛고 서면 사람 같은데 어머니를 딛고 서면 개야. 니깟 게 이 절뚝발이 인생을 이해나 하니? 일부러 죽고 싶어서 거짓부렁 했단 말야. “그래 난 살인범이다. 너희끼리 벼슬해 처먹고 잘 살아라 이 더러운 놈들아.”
황정학 : “오메 무슨 피가 흰색이다냐?”
견자 : “!”
황정학 : “맞아! 이 피가 검붉게 보이는 사람은 열등의식 때문에 눈이 멀어서 소경이 된 사람이야. 이 피가 나처럼 하얗게 보이는 사람은 제대로 눈을 뜬 사람이라구.”
견자 : “무슨 미친 소리야. 붉은 걸 희다하니....”
황정학 : “미친 소리 아냐. 난 눈을 떴다니까. 사기치는 게 아니라구 저 구름을 벗어난 달도 보고 있잖아.”
견자 : “!”
<구, 구름을 벗어난 !>
황정학 : “소 뒷발에 쥐잡은 줄 알겠지만 아니올시다. 내 눈은 예삿눈이 아닐세.”

황정학 : “세상 모든 사람이 천시하는 장님이래도 자네처럼 죽네사네 꼴값 떨진 않아.”
견자 : < 칼면에 번뜩 튀는 달의 파편.
가만가만
이 양반이 무엇을 벤거야.
아아......
내 자존심을 잘랐구나. >

[27] 황정학 : “밤엔 달이 있고, 컴컴한 방안엔 등잔이 있고, 이 맹인에겐 지팡이가 있다. 너에겐 뭐가 있니?”
견자 : “? 훤히 보이는 눈이 있는데 또 뭐가 필요해?”
황정학 : “그 훤한 눈엔 이 피가 무슨 색깔로 보이누? 빨간색? 흰색?”
견자 : “몰라서 물어?”
황정학 : “하핫, 캄캄한 곳에선 흰 것도 붉은 것도 소용없다. 니가 바로 그 꼴이다.”
견자 : “?”
황정학 : “나는 이 지팡이를 의지한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누??
견자 : “뭐야? 내가 장님이란 뜻이야?”
황정학 : “그럼 너는 니 앞날이 훤히 보이니?”
견자 : “.......”
* 나중에 황정학씨와 견자의 대화에서 자꾸 어둠과 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세상이 바둑돌의 흰돌과 검은돌처럼 나뉘어 있다 하여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그 돌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눈을 뜨지 않고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흰돌과 검은돌이 구분이라고.

[31] 견자 : “훌쩍. 팽”
황정학 : “왜?”
견자 : “우리 아부지 돌아선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네요. 히잉-”
황정학 : “허, 이별이 약이래더니 부자간에 없던 정이 났네 그려.....”
견자 : “지금 떠나는 이 길이 영영 이별 같단 말요. 칠십노년의 건강은 건강도 아니라는 데 언제 어떻게 되실지....”
황정학 : “어따 그놈 개망나니 주정꾼 주제에 효자됐네 효자됐어. 이놈아, 나그네 짐은 가벼워야 한다. 부모형제 떠나왔으면 마음도 떠나와야지.”



[40] 황정학 : < 나는 뼈대있는 가문의 적자라도 장님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너보다 못한 처지로 자랐어. 쯧쯧 그 뼈대있는 가문이 뭔지.... 내 출생이 집밖에 알려지면, 가문 위신 떨어지고 저주 불러 들인다고 젖을 떼자마자 항아리 속에 갇혀 키워졌는데.... 손님이 낮은 낮에는 항아리 속에서, 조용하고 한적한 밤엔 뒤꼍 손바닥만한 마당에 나와서 아홉해를 그렇게 컸다. 항아리에 기저귀차고 들어가면 밥먹고 똥싸고 그 안에서 다 해결해야 했어. 우습게도 장님이 밤을 기다렸다. 그것도 컴컴한 항아리 안에서 말야. >
어린 장님(황정학) : “따악, 따악, 따악 소리야! 나는 눈이 멀어 이 안에 있는데 넌 무엇 땜에 항아리 안에 갇혔니?”
* 항아리 속에 갇힌 소리. 자신이 항아리 안에 있으니, 소리도 그렇게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슬프다.

[41] 어린 장님(황정학) : “어머니 보인다는 것이 무엇이오, 내가 보기만 하면 저 항아리에 다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거요?”
어머니 : “곧 날이 샌다. 사람들 눈에 뜨기 전에 들어가야지.”
* “어머니 보인다는 것이 무엇이오, 내가 보기만 하면 저 항아리에 다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거요?” 황정학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거다.

[42] 견자 : “싸부! 나를 제자로 써주세요.”
황정학 : “어허 - 바지 벗겨진다.”

[44] 가희 : “제 이름은 더할 가에 기쁠 희, 가희라고 합니다.”
스승 황정학 : “왜 그렇게 뻣뻣해 있어. 술 처음 먹어봐?”
가희 : “이 고을 삼사십리 안팎을 다 뒤져 저희 집을 안 찾은 남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별난 남자가 하나 있었지요. 저는 그 분이 남자가 아니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대하니,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남자 중의 남자로다하고 놀랄 뿐입니다.”
스승 황정학 : “허헛! 개 같은 세상이래도 네 놈 알아주는 곳이 있긴 있구나.”
* 가희 - 이름 예쁘다. 이름만으도 얼마나 예쁜지 보인다. 코리아 닷컴에 여자 주인공 이름은 ‘환희’다. 남자 인생에 환한 한줄기 빛처럼 아름다운 여자다.

[46] 가희 : (노래)‘바람(風)이 불면
처마 끝의 풍경도 소리를 내는 데
도련님의 풍(風)채가 이녁을 뒤흔드니
어찌 가락이 없을소냐.
고루하고 못한 사내들에게 진력이 난 이녁을 아시오.
이제 남자라면 금성탕지(金城湯池)랍니다.
허나 도련님의 가슴에선 기왓장처럼 풀어질 듯 하오니
그 늠름함에 저를 허락하소서.’
* 기왓장이 한 장 풀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한꺼번에 풀어져 내린다.

[46-48] 가희 : “오기는 쥐를 잡고 대장부는 일색을 잡는다는 데....... 그대는 누구시오?”
......
견자 : “이, 이러지마.”
가희 : “아니오 아니오, 도련님의 오기가 나를 사로잡으니 나는 일색이 아니라 쥐인가 봅니다. 마주 대해 안아보고 싶지만 너무도 황송해서 등만 잠깐 품어보고요.... ”

[56-57] 스승 : “네놈이 결심한 게 있어 평생 여자를 멀리 하겠다고? 심지 굳은 것처럼 잘난 체 하더니 그 각오 다 어디갔냐? 큭큭, 기생 가희의 치맛바람은 기왓장도 날린다더니 그 말 허풍은 아닌가 보다. 흐흐..... 이놈아! 새겨들어라. 기생 가희랑 내가 짜긴 했지만 가희가 널 무너뜨린게 아니다.
달걀을 부화시키면 병아리는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껍질을 깨고 나온다. 달걀처럼 네 속에 숨어있는 남자를 부화시키려고 기생 중에 기생이라는 가희에게 너를 품게 했다. 흐흐 왜냐?
바로 본능을 이해시키려고 그랬지 본능과 맞선 인간의 노력은 참으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



* 기왓장이 둥둥 떠서 견자를 따라다니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박흥용은 견자가 가희와의 밤이 계속 머리 속에 떠오른다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나는 이런 그의 표현에 놀랐다. 나보고 그리라고 했다면 머릿 속 생각을 다른 컷을 이용해서 전환형식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전까지 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물건에 상징을 부여한다. 기왓장이 가희와의 그거라면 견자가 집어 던지는 ‘복福’자가 새겨진 비녀는 그의 의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그려낸다.
* 그림 이야기 - 펜촉을 2가지를 이용했는데, 처음에 스쿨펜을 사용해서 그렸다. 인물들의 얼굴을 자세히 묘사하지 못했다. 스쿨펜이 아닌 Z-펜으로 시도를 했다면 좀더 자세히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려 시도했을 텐데. 돌다리의 빗금부분은 Z-펜을 사용 했다.

[63] 스승 : “(이몽학은) 생명은 하늘의 것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상대의 갓을 갈기갈기 쪼개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싸움을 끝내는데 갓을 쓰지 않은 자에겐 칼을 뽑지 않는다.”
견자 : “왜요?”
스승 : “저 사람도 너처럼 서자출생이다. 갓 쓴 양반을 곱게 볼 리 있겠냐? 이몽학을 모르면 전라도나 충청도 사람이 아니다 할 정도로 호남, 호서에서 알아주는 칼잽이다.”
견자 : “..... 넉자 길이 무쇠칼을 한 손에 쥐고 이리 뚜고 저린 나는 것이 이름처럼 학 같아요.”

[70] 견자 : “제자는 못되더라도 여기 있는 동안 허드렛일을 도와드릴게요.”
놋각쟁이 박씨 : “허- 만석꾼의 아들이 개과천선했네. 상것들도 마다하는 방짜일을 가리지 않으니.”
견자 : < 이젠 제법 나그네 흉내(?)를 낼 수 있다.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


[71] 견자 : < 스승 황정학 씨는 멀쩡한 사람도 진맥을 짚어 환자로 만든다. 강권해서 침을 몇 대 꽂은 후 “음, 자넨 내가 생명의 은인인 줄 알게”하면 끼니와 잠자리가 저절로 해결되는데. >
“싸부. 윤리적인 측면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기 바라옵나이다. 소인의 청을 통촉하여 주옵소서.”
스승 : “건강한 사람 더 건강하게 해준다는데 무슨 팔푼이 같은 소리야.”



[76] 견자 : “......”
스승 : “그 방짜를 보고 느낀 걸 얘기해 봐”
“이건 아자씨가 만든 거잖아요.”
“......”
“마구 집어 던져도 자기처럼 깨질 염려 없구. 또 심심할 때 꽹과리처럼 치고 놀 수도 있구요..... 다른 그릇들에 비해 여러모로 월등합니다. 싸부!”
“그 방짜에서 너를 찾아!”
“?”
“그 그릇에서 널 발견하지 못하면 지금 넌 이 방짜 공상에서 헛지랄하고 있는 거야.
여기 아니래도 우리 먹고 잘 데는 쌔고 쌨다.
너를 일부러 이리 데리고 온 이유가 있지.
왜 이 방짜공장에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지... 그 숙제를 풀어봐라.”
“...... ”
* 그림 이야기 - 저자 박흥용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보니 지면으로 나온 만화와 인터넷으로 읽는 만화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종이에 인쇄된 만화를 추천하고 있었다. 특히 만화를 그리겠다고 배우는 사람은 종이 만화를 보도록 적극 권했다. 인터넷으로 보는 만화는 가는 펜선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펜선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만화에서는 인물의 근육을 ‘톤’을 사용해서 표현했다. (만화가들은 톤을 붙이고 필요없는 부분은 긁어서 떼어낸다고 알고 있다.) 그늘진 부분에 톤을 붙이고 빛을 받은 부분만을 밝게 해서 몸을 입체감있게 표현했는데, 나는 톤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연필로 엷게 그늘을 만든후에 조금은 뭉뚱한 지우게로 지워냈다. 눈으로 볼때는 엷게 근육이 드러나는데, 스캔해서 보니 중간톤인 연필자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박흥용이 만화작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컴퓨터로 보는 것 말고 종이로 자세한 부분까지 보라고 한 말을 실감했다.


[81-85]“탱~”

기생나이 삼십이면 환갑이라며
들창 달빛에 손을 꼽던 가희.
새벽에 고름도 채여미지 낳고
조심조심 가야금 꼬집으며
눈물을 삼키더니 어느새 이곳까지.
이 방짜 속가까지 따라 왔을까.
서럽게 목을 푼다.

견자 : <다, 당신은 ..... 누구십니까? 가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자 : <가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내가 한 말씀 드리리다......

놋은 놋으로
퉁은 퉁으로라지만
놋이나 퉁이나
살아 있다면
다 먹어야 할 거예요.
정승 부인도 끼니를
놓치면 배가 고픈데
우리네 늙은 기생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있는 게
원래의 죄,
꼴에 자식까지 낳았으니
더한 죄.
그래서 죄인 중에 기생은
기생(寄生)이라고
자학하며 밥을 먹습니다.
* 언어의 유희가 가끔 나온다. 같은 발음, 그러나 다른 뜻. 기생, 견자,...... 만화적인 위트라고 하기도 하던데, 박흥용은 이런 유희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한꺼번에 전달하기도 한다.

견자 : “어, 엄.....!”

스승 : “왜 그러고 있어?”
견자 : “........ ”

견자 : “가희인 줄 알았는데 생모(生母) 같아요.”
스승 : “뭐가?”
견자 : “....... 이 방짜가요.”
스승 : “이제야 그 방짜에서 너를 찾았구나.”
견자 : " ......"

견자 : <장님이 최고의 칼잡이가 됐다.
씨도 모르는 노비 작부의 새끼가 최고의 방짜쟁이가 됐다.
왜? >

스승 : "네놈한테 기대가 간다. 심안이 열릴 듯하니 말이야.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좀 알긋냐?“
견자 : <지독한 열등이 지독한 열성을 만든다. ....... 정말 나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97-98] 놋갓장이 박씨 : “어따 그눔, 젊긴 젊네. 하나 지치는 기색이 없으니... 나도 젊었을 땐 팔팔했었네.
팔팔하다 못해 이 놋갓장이 괄시하는 양반네들에겐 꼭 복수를 했다이 흐흐.“
견자 : “?”
놋갓장이 박씨 : “그 집 놋요강을 녹여서 밥그릇을 만들고 밥그릇 녹여 놋요강을 만들어 줬드랬지.
흐흐 하룻 저녁 사이에 말야. 힘 좋았지. 그때는.....
그리고는 망치로 모루를 두드리며 꺽꺽 울어댔어. 불에 들어갔다 나오면 요강도 밥그릇 되는데 사람은 그럴 수 없나. 양반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을까?
놋조각을 치는지 가슴을 치는지 그렇게 허다한 날을 보내다가 장날이 돼서 장맛을 준비를 허구선,
그때도 오늘처럼 이렇게 장호원에 나왔겠지.
놋점마다 방짜란 방짜는 죄다 모였는데,
그런데 말야, 그런데 말야.....

누구의 솜씨였을까...
놋그릇 하나가 노르스름한 것이 은은한 때깔을 내는데,
망치자국은 투박해도 그 손끝은 잘디 잘아서 오히려 섬세하다 못해 가슴을 아리게 하더라구....
그 은근한 품위가 내 혼을 쏙 빼놓더라 이거야.

작부새끼로 세상을 사느냐
놋갓장이로 세상을 사느냐 양단간의 길을 가르치는 그 그릇이 밥그릇 녹여 요강 만들고 요강 녹여 밥그릇 만들던
이 혈기 팔팔한 피라미를 꾸짖고 있더라 이말이야. ”
* 견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박씨 아저씨의 이 이야기는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화두다. 견자가 심각해지는 것처럼 나도 읽으면서 심각해졌다. 저자는 견자에게 이야기하는 식으로 해서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니까.

* 다른 장면을 그려서 2개의 것을 보여준다. 소리로는 싸움이 격렬함을 나타내고, 실제로 그려진 기생의 찌뿌린 얼굴은 걱정이 가득한...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101] 기생 : “그분을 만난 곳도 기방이고 그 분이 다시 찾아오마 한 곳도 그 곳이라 피치 못해 이런 몰골로 그 자릴 지키고 있습니다.”
견자 : <피치못한 사정이 그녀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찌푸려도 깨끗한 이마.
그 이마 한번 만져보면 안될까요?
빌어먹을. 입술은 왜 저리 빨개? >
기생 : “제 처신 탓인지 기방에선 저를 대쪽이라 부릅니다. 훗날 은혜 갚을 인연이 만들어질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견자 : < 바람이 분다. 그 바람 눈을 시리게 해서 눈물이 난다. 이상하다. 다들 멀쩡한데 왜 내 눈에만 눈물이 날까.
-아 나도 저런 여자 얻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바람은 어디서 불어 어디로 가는 걸까.
풀렁, 도포자락 들추고는 조용하다. >
나도 웃는 모습이 이쁜 남자 얻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바람은 어디서 불어 어디로 가는 걸까.
휘리릭, 곱슬머리 흩어버리고는 잠잠하다.

* 박흥용의 다른 만화책 『호두나무 왼쪽길로』에 다방 아가씨가 ‘어떤 여자를 원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주인공은 ‘한 남자의 여자’라고 답을 한다. 남자를 가리지 않는 기방의 법도를 무시하고 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버린 ‘대쪽’이나, ‘백지’, ‘노는개’. 이러한 답변은 남자의 답변인지, 한국남성의 답변인지, 작가 박흥용의 답변인지는 모르겠다. 한국남자의 답변이라고 해서 ‘한국적인 의식’이라고 해도 좋을까.

[112] 스승 : <이놈아.
내가 널 거둔 이유가 뭔 줄 아느냐?
흐흐.
니놈 가슴에 서린 오기를 봤기 때문이다.
그 오기가 보통 오기냐.
칼이 옆에 있어도 끝까지 막대기 잡고 버티는 니놈 아니야.
오기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놈.
그 오기가 절뚝발이 같은 니놈 지탱케하는 지팡이라는 걸 내 벌써 알고 있었다. >
* 지인이 내게 ‘오기’나 ‘질투’라는 말을 담아서 내 특징을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정작 본인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을까. 이미 그 기운에 휩싸여 버렸는데.


[114] 견자 : “주리 고문 당하고 나서 녹(祿) 먹는 놈들에게 은근히 뿔다구 났었는데 이번에 두들겨 패면서 통쾌했어요.”
스승 : “쯧쯧. 속 없는 놈아! 새겨 들어라. 같은 지팡이라도 니놈거랑 내거랑은 틀려. 절뚝발이 같은 니놈은 버티고 서튼데 사용하지만 나는 길을 찾는 것으로 사용한단 말이다. 길을 찾은 것으로 알아들어? 길을 찾는다고 했다.”
스승 : “봐라. 같은 땅이라도 밭에서 얻어내는 열매만으로 만족하는 농부는 그 땅을 재산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때에 따른 비를 바라며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걸 깨닫는 농부는 하늘 아래 땅이라는 겸손을 배우니 그 땅이 도량이 아니고 뭐냐. 땅을 도량으로 삼는 것처럼 내 지팡이를 깨닫지 못하면 이 길이 헛된 거야. 내 지팡이를 이해하려면 절뚝발이가 되지 말고 장님이 돼야 한다.”

[115] 스승 : “닭이 알을 낳듯 우리 어머닌 항아리를 낳았다. 젖을 떼자마자 날 항아리에 넣어 키웠다 이말이야. 그 항아리가 나에게 뭘 가르쳤는지 아니?
넌 봉사다.
넌 맹인이다.
넌 소경이다.
넌 장님이다....

병아리 껍질 개듯 항아리를 깼지.
깨진 조각에 긁혀 피를 흘리면서 깼어.
깨고 또 깨면 세상이 훤히 보일까마는.

어린 귀에도 항아리 깨지는 소리는 자극적이고 통쾌했던 모양이야.
아홉 살이 되던 해
몇 개째 항아린지 마지막으로 깨뜨렸는데
나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어.
전율!

“나는 눈을 뜨고 말거야!”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
내 나이 아홉 살에 알 듯도 했다.
그날따라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컸었는데 천둥소리 같았고 땅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구.....

어디서 그런 것이 솟아났을까....
아홉 살 꼬맹이를 의지할 곳 업는 이 험한 세상으로 던져버린 힘 말야. 그 힘.....
그 힘이 내 손에 막대기를 쥐게 했다.

장님 손은 무쇠라도 녹인다. 내 손에 닳아 없어진 지팡이가 벌써 몇이더냐.”
* 어린 황정학이 되니 서럽다. 정학의 어머니가 되니 자식이 안쓰럽다.
나이든 황정학이 되니 어머니가 몹시 안쓰럽다.

* 전율!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힘.

[118] 견자 : < 첫째날.
장님이 돼야 한다. 장님... 난 누구를 위해 피를 흘렸나? 그녀?

둘째 날. 그녀는 가희와 무엇이 다른가? 가희랑 했던 거를 그녀랑 한다면? 했다 치자. 그 다음엔? 또 하지. 하구 하구 또 하구 히히.....

섯째 날. 자꾸 하다가 애를 배면? 애? 서자인 내가 애를 낳는다구? ........

넷째 날. 니미, 어떤 새끼가 내 옆구리를 찔렀어? 그 손모가지 작신 부러뜨릴테다. 왜 이리 더디 낫는거야?

다섯째날. 장님이 돼야 한다 장님. 드르렁 쿨.
여섯째날. 꿀꿀. 꿀꿀? 먹고 자니까. 꿀.

일곱째 날......
여덟째 날.....
아홉째 날.....
...... 꿈을 꿨지.
사대부집 적자로 태어난 내가 장가를 가더라. 반듯한 이마에 빨간 입술의 여염집 처녀가 시집을 오더라. 둘이 애를 낳았어. 낳았는데 장님인 거 있지.
그 애가 하는말.
“니 옆구리 다 나았다”
그 애를 자세히 보니
스승 황정학 씨야 젠장......

서른번째 날.
같잖은 상처가 한달이라니.......
얼마나 많이 찔리고 베여야 스승님처럼 될 수 있을까? >

[121] 견자 : “스승님이 보는 그것을 저는 못 본다 이거 아닙니까?”
스승 : “그럼 처음부터 질문을 다시 해라. “스승님은 보이니까 잘 아시겠네요. 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어.”
견자 : “스승님은 보시니까 잘 아시겠네요. 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승 : “좋아. 질문 맘에 들었어.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견자 : “무엇을 알아요?”
스승 : “내가 장님이라는 걸.”
견자 : “나참. 뭐가 뭔 말인지. 저도 스승님이 장님이라는 거 알아요.”
스승 : “니놈이 장님인 줄은 모르잖느냐.”
견자 : “......”
스승 : “......”
견자 : “그럼 내가 장님이란 걸 인정하면 나도 보는 거로군요.”
스승 : “아니!”
견자 : “(퉁명스럽게) 왜요. 스승님이랑 똑같은 처지가 되는데.”
스승 : “똑같긴 뭐가 똑같니? 나는 지팡이가 뭔지 알지만 너는 지팡이가 무엇인지 모르잖아.”

[130] 행인 : "네 이놈 뭣하는 짓이냐!"
소년 견자 : “신발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버선을 적시네요. 그래서 책장을 찢어 빗물을 덮어 징검다리를 만드는 중이네요.”
행인 : “이놈, 니놈이 실성을 했구나 어찌 그 나이에 책의 용도를 모르냐?”
견자 : “우리 훈장님이 책 속에 길이 있댔어요. 책으로 길을 내는 중인데 뭐가 어때서요?”

[131] (가희 노래) : 하늘 땅 생긴 후에
우리 인생 탄생하니.
강유로 분간하여
양과 음이 나뉘는데.
건삼연이 남자되고
곤삼연이 여자되니...
건과 곤은 조화라.
건과 곤은 연애라.
양과 음이 인생이라.
* 팔괘 중에 건괘(☰)는 남자를 상징하고 곤(☷)은 여자를 상징함.

소년 견자 : “가... 가희!”

가희 : “그대에게 남자를 가르쳤으니 나도 그대가 걷는 길목에 장승(이정표) 쯤은 되겠지....”

놋갓장이 박씨 : “바둑 앞에 서면 노비도 양반도 다 잊는다.
그저 꼭 만들고 싶은 방짜 하나만 머리 속 가득한데 바둑이 머리 속의 방짜 모양으로 완성되어가면 나도 그렇게 새로 태어나는 것 같더니.
소년 견자 : “.....”
놋갓장이 박씨 : “평생 만들어온 방짠데 만들 때마다 이렇게 가슴 셀레고 새로울까.
봐라. 이 노비 새끼 책으로 못낸 길 방짜로 냈다."
<그래 . 네 길은 무엇으로 낸다니?>
소년 견자 : “.......”
청년 견자 : “! ......”
* 연출이라는 것.
책을 찢어 놓고, 그 책장위를 걷는 견자, 그 뒤를 따르는 여자 가희. 가희가 딛고 선 것은 기왓장. 가희의 버선발은 다시 놋각장이 박씨 아저씨의 발로 변하고 어느새 박씨 아저씨가 견자에게 말을 건다.
앞서서 나온 사건들이 한 페이지에 모두 녹아져 있다. 몇 컷의 장면으로부터 작가 박흥용이 앞서 보여줬던 이야기를 순식간에 떠올린다.




* 그림에 대한 이야기 - 박흥용은 이 만화에서 다양한 시점(눈높이)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각 권마다 20개의 그림을 뽑아내면서 보니 눈높이가 다양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것은 마치 풍경화를 보는 듯한 구도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동네 풍경과 사람이 어울어진 구도가많았고, 또 풍속화에서 잘 나타나는 언덕에 올라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그려진 구도가 많았다. 특이한 구도도 있었는데 방안에 들어앉은 인물들을 천장에서 들여다 본 구도가 있었는데 만화 칸에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었다. 사람들과 칼싸움 하는 장면은 칼싸움 하는 사람이 보는 눈으로 한 컷, 그 옆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의 시각으로 한 컷, 집중해야할 사물에 따라서 시선이 움직이는 대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점점 시선이 움직이게 그려진 것 등 매우 다양했다.
따라 그릴 그림을 선정하면서, 첫 번째로는 기법이 전체적으로 분위가 좋아서 꼭 따라 그려보고 싶은 것, 두 번째로는 스토리상 들어가야 할 장면, 세 번째는 리뷰에서 인물 소개에 써먹을 인물 특징이 나타난 장면, 네 번째로는 인물의 동작을 그려보고 싶은 것으로 뽑았다. 그러다 보니 따라 그려야 할 양이 많았다. 시점의 다양성도 이렇게 선정하면서 알게 되었고, 그림에 사용된 기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음을 알았다.


[136] 황정학 : “보를 막아서 물길을 돌려놨는데도 물이 넘치니까 소용없네. 빈 방아 쿵쿵대니....”

[136] (비소리) ‘솨아아아아’
(물방아 소리) ‘쿵 ....’
견자 : 좁은 공간 뛰고 날아도 부딪히는 일 없으니,
지금 누가 장.님.인가?>
(물방아 소리) ‘쿵 ....’
견자 : <어느새
비 그치고
봇물은 여전하다

공이소리
밤하늘을 쳐
먹빛 구름 쪼개더니

맑은 바람
밝은 달
방앗대 물받이에 띄웠다간
쿵하고 쏟아낸다.


오히려 눈을 뜬 이,
칼끝으로
달빛을 가르키며
-보라,
구름을 벗어난
저 달을-한다.>

[156] 견자 : <그 장례행렬이 궁금해서 장날이나 주막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렸지만 이를 수상히 보고 용장을 휘두르는 보부상과 한바탕 싸움만 했다.
‘보부상을 건드리느니 새끼 밴 암콤을 건드리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한 달 동안 끈질지게 쫒아오는 보부상들과 일곱 차례나 싸웠는데
그 일곱 번째 싸움에....
보부상 : “서로 쓸데없이 으러렁거리지 말고 오해 있으면 풀어 봅시다. 헉헉.
견자 : “헉. 헉.”
스승 : “이제 와서 주둥이로 해결하자? 장정 다섯이서 장님과 댕기머리가 힘에 부친다 이뜻이냐? 빠른 소식통이라고 자랑하는 너희들이 이 황가를 몰라보는 걸 보니 요즘엔 소경도 보부상되는 갑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꼬리 감추고 속히 길을 터라.”
(중략)
스승 : “이놈아 저들에게 니가 누군지 알려라.”
견자 : <“견. 자.” 그래 이 일곱 번째 싸움에서 나는 나를 견자라고 소개했다.>
* 한견주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견자’라고 명명했다.

[171] 견자 : “나, 난 당신을 찌른 일이 없습니다.”
이장각 : “이 쳐죽일 놈 봐라. 이놈아! 애꿎은 상여에 칼 박아 넣은 게 네놈이잖아.”
견자 : <이장각, 다리가 길어서 장각(長脚)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는 큰 도둑이다. 관아마다 이장각을 잡으려고 발칵 뒤집혔는데 아마 숨어다니기 위해 장례행렬로 위장했었나보다. 큰일이다. 스승님은 이럴 때 뭐하시나....




스승 : “어떤 서러베가 내 새끼에게 공갈협박을 한다냐, 이 심야에!”
이장각 : “!”
* ‘내 새끼’라는 말에 묘한 감정이 인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도 ‘내 핏줄, 내 새끼’라는 말로 자신의 선수에 대해 애정을 표현했다. 여자 주인공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의 가운에 새겨진 그 글의 의미를 알았지만, 그녀의 경기를 지켜보던 영국시민들은 그녀를 응원했다. 그것은 ‘내 핏줄, 내 새끼’라는 말이니까. 내 친구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우리말로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고 번역했다.

사부님께서 어느 날 밤 같이 술을 드시다가, 오랜 시간을 같이 한 제자에게 ‘새끼’라는 말을 하셨다. “‘새끼’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그 말에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애정이 담긴다.


[187] 이장각 : “난 이미 너에게 반했다. 맘이 나랑 같거든 언제든 찾아오너라.”
스승 : “내 새끼 도적 만들 생각없다.”
이장각 : “......”
스승 : “내가 너만 했을 때 임꺽정이란 큰 도적이 일어났는데 많은 백성이 그를 아꼈다. 정치가 어지럽고 나라가 시끄러우면 백성은 나라편이 아니라 도적편이 된다. 저렇게 관군의 경계망을 잘 피해다닌다는 건 백성들이 이장각이를 잘 감싸주고 있다는 뜻 아니겠냐? 민심을 잃은 정부는 꼭 화를 당하고 만다.”
견자 : “.....” <세상일에 초연하시던 스승님이 처음으로 암울한 정치얘기를 했다. 새벽 동이 터오는데.....>



[189] 백지 : “마당에 벌렁 누운 채 흘리던 눈물을 봤어요. 왜 우셨나요?”
견자 : “스승님이 우시니까.”
백지 : “황처사님도 우셨어요? 왜 우셨을까요.”
견자 : “몸부림치며 싸우는 내 모습에서 당신의 옛모습을 봤기 때문이지.”
백지 : “.......”
견자 : “나를 보고 우시는 스승님의 눈물로 내 삶을 가늠해 봤더니, 나도 저절로 눈물이 나는 거 있지......”
백지 : “......”
* 그러게. 스승님이 우시니까 나도 눈물이 절로 나는 거 있지.
* 변경연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많이 들락거린다. 밝은 이야기, 처한 현실에 힘들어 하는 울음소리..... 듣기에 힘겨울 때가 가끔 있다. 같이 우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스승님께서는 힘겨우실 것 같다. 그 많은 이야기가 가슴을 때리니까, 본인은 괜찮다 하시지만, 보이지 않게 속으로 우실 것 같다.

2권
[10] 견자 : <나는 목이 쉬어 잠잠했고..... 백지는 우리 여행길에 끼워주길 말없이 기다린다..... 망할, 울고 있잖아? 여자의 눈물은..... 개떡같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남자의 각오를 엉킨 살타래처럼 엉망이 되게 하니.....>
* 진짜 개떡같다. 남자를 침묵하게 하는 여자의 눈물 진짜 개떡같다.
그리고 사랑하는데 떠난다고 하는 남자의 말도 개떡 같다. 젠장.


[13] 견자 : <- 백지, 당신에 대해 아무런 방책이 없는 나는 미칠 것만 같다.->

[19] 스승 : “자- 받아라. 곪은 곳을 때던 침술용 칼이다. 저 재너머에서 기다리마. 거듭 얘기하지만 백지랑 같이 올 생각은 아예 마라. 백지를 죽이고 따르든가 아니면 날 버리고 백지를 택하든가 둘 중 하나다.”지금 이렇게
견자 : “......”
스승 : “지금 이렇게 해결하지 않으면 그 백지란 년이 엄청난 무게로 니 인생을 짓누를 거다. 가능한한 목을 찔러라.”
견자 : <곪은 곳을 째던 칼인데, 꼼을 곳을 째던 칼인데... 곪은 곳!
가만가만...
잘 달래볼까. 백지는 내 말을 알아들을 만큼 똑똑하잖아. 그래. 백지잖아 백지. 모든 문사가 아껴 찾았댔지.
저- 황정학씨, 알고보니 더러운 인간일세. 나보고 백지를 죽이라니. 백지가 저를 사랑했던 여자처럼 무지렁이인 줄 아나 봐. 맞아 스승을 사랑했던 그녀는 앞뒤가 꽉 막힌 답답한 여자였을 거야. 백지는 내 말을 알아듣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마음. 스승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견자 이놈은 욕도 하네. 큭

견자 : “! 으아아아아”
스승 : “이미 둘씩이나 죽인 놈이 계집 하나 죽여 놓고 이 모양이냐.”
견자 : 부들부들 <나라 치안이 엉망이라 한 여자의 주검 따위엔 신경쓸 틈이 없다는 것을 이 눈먼 양반은 이미 계산한 거야. 야비한 인간 같으니.....>
스승 : “대동계 잔류들이 이지역 사방에 깔렸다. 우리가 대동계와 한패인 줄 아는 관군 한 놈이 내 방에 뛰어들었길래 입을 틀어 막고 손발을 묶어서 백지랑 바꿔 놓았다.”
견자 : “내, 내가 찌른 게.....”
스승 : “그래, 백지가 아니라 관군이다.”
견자 : “그럼 백지는 지금 어디 갔어요!”
스승 : “사랑을 칼로 보답하는 짐승 같은 놈에게 무엇을 바라겠냐? 뒤곁에 숨어서 칼 들고 방에 들어간 너를 지켜보다가 네 손에 찔려 피범벅된 관군이 방을 뛰쳐 나와 마당에 뒹구는 걸 보고... 아무말없이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관군을 찔렀지만 그것이 자기를 찌른 거라는 걸 뻔히 아는데... 또 다시 너를 따라 나서겠냐? 너한테 백지 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로써 확인했으니 나는 기쁘다 헛헛.”
견자 : “......”
스승 : “이놈아 지금 너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 못했냐?”
견자 : “?”
스승 : “너는 연인을 죽였어. 눈을 뜨는 데 장애가 되면 그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죽일 만큼 넌 미친거야. 봐라 장님에게 눈을 뜨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눈을 뜨고 싶은 게 장님이라구. 범을 잡으려면 범굴로 들어가야 하고 장님의 지팡이를 깨달으려면 장님부터 돼야겠지. 네가 오늘에야 장님이 되었으니 이제보다 시작이다.”
견자 : <장....님.. - 절뚝발이가 장님이 되었다. - 백지를 제물로 바쳐 얻은 열매. 정말이지 사랑도 몰라보는 장님이 되었구나.>
* 미쳤구나.
몇 년전에 서울에서 모이는 모임에 가기 위해 군산에 사는 친구집에서 새벽에 급히 나오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보험에 연락하고, 아버지께 연락하고, 차를 페차시키고, 그리고는 모임에 조금 늦을 거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대전에 들러서 짐을 챙겨서 모임에 갔을 때, 모임의 운영자가 날 소개할 때, 그때 알았다. 보통 그런 일을 겪으면 그냥 모임에 빠진다는 걸. 그때 내가 미쳤었구나. 오직 모임에 참석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으니까 그 어떤 것도 핑계가 안되었다. 그때 몇 년간 미쳤었다.


[31-34] 죽은 자와 죽인 자의.....
만남,
그리고
침묵(沈黙).
살아있어도 죽은 여인 앞에서 느끼는 삶의 무게....
그 무게에 눌려 겨우겨우 숨을 쉬는 나, 이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슬...프...다.(어쩌면 그녀 입가의 엷은 냉소가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리고,
깨달은 것 하나.
- 가장 큰 소리는 침묵이다.-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소리, 침묵
내가 그녀에게 들어야 할 소리를 이 침묵을 통해 다 들었다.
* 백지와 함께 울고 있었을 때, 그 당시 나는 한 남자에게 이런 침묵을 들려주었을거야. 잡고 싶은데 잡지 말라는 말을 자꾸 들었으니까. 침묵 말고는 뭐라 할 말이 있겠어.

[35] 속이 빈 대롱에
구멍이 뚫리니
소리로다 소리로다.

자 양반 왜 그러시나. 하필 원한가(怨恨歌)를.....

어화 애달할사
속 빈 대롱,
텅빈 내 속을 닮았구나.
님 잃고 사랑 잃은
텅 빈 내속 닮았구나.

품을 님을 못품으니
원이로다, 한이로다.
원한에 깔끝 돋혀
이리저리 찔러대니
송송 뚫린 피리구멍
찢기워진 내 속이다.
* 원한가. 이런 노래가 있던가. 시적인 표현이다. 꼭 영화의 한 장면같다. 그 순간에 스승 황정학의 피리라니, 그리고 백지의 춤사위.

백지처럼 못나게(?) 굴던 때가 있었다. 1998년부터 2000년, 그때는 그리도 안타깝더니...


[48] 스승 : “뭔 걱정있냐? 말이 없게....”
견자 : “그 싸움판에 백지를 두고 나왔는데 뭐가 좋아 히히덕거려요.”
스승 : “미친놈이 꼴값한다. 짐이 된다고 지 손으로 죽일 땐 언제고... ”
견자 : “내가 죽이고 싶어 죽였어요? 자기가 죽이래서 죽였지.”
스승 : “가!”
견자 : “뭐요?”
스승 : “백지한테 가란말야 임마.”
견자 : “삐졌어요.?”
스승 : “그래 임마!”
견자 : “스승님은 스승님을 사랑하는 여자를 정말 죽였어요?”
스승 : “......”

스승 : “내가 죽인 셈이지. 여자에게 내 가는 길에 짐만 될 뿐이라고 고백했더니 며칠 뒤 강물에 시체로 떠올랐다. 임산부만 아니었다면 시체가 퉁퉁 불어서 못알아 볼 뻔 했어.”
견자 : “......”

[51]스승 : “내가 칼을 빼라고 말하기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지팡이다.”

[52] 견자 : “왜 돈을 들여요? 안성에 가면 최고의 장인이 만든 칼이 기다리는데.”
스승 : “내 눈에 흙 들어가지 전에는 그 칼 어림없다.”
견자 : <이미 감긴 눈에 흙은 왠 흙?> “스승님이 죽긴 왜 죽어요. 내 눈 뜨기 전엔 어림없어요.”
스승 : “이용가치 때문에 하는 말이냐? 장수하라고 예를 차린 말이냐? 이놈아 낼 모레면 환갑이다. 이 생명이 청춘만 하겠냐?”
견자 : “......”
* 사부님 건강하십시오. 사부님!
사부님께서 오래도록 더 늙지 않으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86] (하루) 환쟁이 : “뭔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뭐 좀 드셔야지.”
(이틀) 환쟁이 : “쯧쯧, 음식 모양 보고 먹수? 아하하, 여자도 얼굴 가리면 품을 년 별루 없지.”
(사흘) 환쟁이 : “음식이든 여자든 고프면 먹는 거유. 알았수?”
견자 : <웃기는 놈. 네놈 꼬라지로는 여자를 가릴 수 없겠지. 하지만 여자는 네놈을 가릴 거다. 오늘이 나흘째지?>
(닷새) <닷새마다 서는 장. 무슨 일일까? 약속한 장날이 훨씬 지났는데....>
잡화상 : “이 총각 꽤 지겹네. 내가 만물잡화상이래도 장님은 안 팔아. 맞아. 이젠 찾는 대상을 벙어리로 바꿔요. 벌써 두달이나 우리를 지겹게 했잖수.”

[175] 견자 : <이몽학, 이몽학! 그래 내가 이몽학을 질투하고 있구나.>
[194] 견자 : <이몽학을 생각하자니 속이 뒤집어진다. 저만 만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을 없었을텐데...... 홧김에 관졸 두 놈만 죽였잖아..... 관졸 두놈!>
* 질투. 나 질투 많다. 질투로 속이 뒤집어진다고... 이해한다. 나도 그런 때 많다.
질투로 정신이 없을 때는 너무 좁게 봐서 그런 것 같다. 조금 지나고 나면 보이는데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니까.


[99] 견자 : “나도 데려가 줘요.”
환쟁이 : “예?”
견자 : “언젠가 지나는 소리로 금강산쪽으로 가겠다는 스승님 말씀이 생각나서.”
환쟁이 : “쯧쯧. 그 황정학씨가 밉지도 않습니까?”
견자 : “난 장님입니다.”
환쟁이 : “장님?”
견자 : “스승 황정학씨는 내게 있어 지팡이 같은 분이고요.”
환쟁이 : “......”
견자 : "!"
환쟁이 : “왜, 왜 그러십니까?”
견자 : “지팡이를 잃은 장님이니 허둥댈 수 밖에요.”
환쟁이 : “......”
견자 :<스승님 말이 맞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칼을 뽑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곡두에 시달릴 줄 알고 염려해서 미리 주의한 말이었잖아. 빌어먹을, 오늘은 왜 이리 증세가 심하지.>

[104] 환쟁이 : “아하하아- 이건 누가 그린 그림인가. 그림 좋고.”

[111] 환쟁이 : “가지가 앙상한 나무들이 산채를 뒤덮고 그 위를 하얀 눈이 또 덮어버리면... 아 저것봐. 괴이침통(怪異沈痛)한 백골(白骨)이 돼서 흐느끼잖아. 망할, 그만 울어. 내가 왔잖아.”
이 만화의 독특함을 얘기했던 대목으로 비평가가 꼽은 장면이다. ‘한국적인 정서의 표현’이라고 하던데... 설경을 보고, 여인으로 대하는 것. 혹은 ‘정한(情恨)’이 담긴 말(?).

[113] 환쟁이 : “이 눈덮인 금강산을 백골(개골)로도 보는데 내가 하얀 살결의 알몸뚱아리 여자로 봤다고 죄될 건 없잖아요. 아하하하....”
이 환쟁이 덕분에, 아니 박흥용 덕분에 바다에 섬들이 여자로 보이게 되었다. 둥글둥글한 섬들이 물 속에서 몸의 일부만을 드러낸 여인같이 보이는데... 그 외의 다른 시각이 자리잡질 못하고 있다. 고운 여인으로 보는 것은 좋은데.... 다른 쪽으로 못 보잖아. 빌어먹을.

[113] 환쟁이 : “토우인은 죽은 사람을 흉내낼 수 있지만 산 사람은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지. 도화서 놈들은 다 토우인 같다니까! 내가 근엄하게 굳어 있는 임금님의 얼굴보다 오히려 여인의 알몸에서 생명력을 느낀다고 말했더니 임금님을 모욕했다나 반역을 했다나. 아하하하......”
* 토우인 : 임금님이나 귀족들의 무덤에 함께 매장하는 인형

Ⅳ. 내가 저자라면

1.
만화가 너무 좋아서 따라 그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욕심껏 한 권당 20컷 정도씩을 베껴 그려서 내용과 그림이 같이 가는 리뷰를 생각했었다.

권당 20컷 안밖의 컷에 딱지를 붙여두고는 앞에서 부터 그려나가다가 내 예상과는 달리 한 컷을 그리는 데 한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을 알았다. 그중에 몇 컷은 5~6시간 정도를 들여야 할 것도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다음주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주는 다른 주보다는 1,2일이 모자란다. 속도가 붙기전에는 1시간에 1장 정도이니 계획대로 한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잠을 줄여도 다 되지 않을 상황에, 급한 마음에 동동구르는 내게 구원같은 친구의 한마디, ‘빨리 그려야할 이유가 있어?’.

형태만을 따라하다가 그것 만으로는 베껴그리면서 배우고 싶다는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아름다움을 삿삿히 찾아내는 감상도 할 수 없었다. 어려운 시도를 모두 제외해 버리고 나니 만화가가 그림 속에 넣어둔 분위기까지 옮겨내지 못했다.

저자 조사를 하는 동안 그림쟁이들의 말을 찾아보니, 배경을 빨리 그리기 위해, 복잡한 것을 어찌 그리나 하다가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포토샵의 멋진 툴을 이용하는 것보다 결국은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그린다.’라는게 제일 빨리 그리는 법이라고들 했다.

아름다운 장면들을 시간에 쫒기다가 놓치기는 싫다.

그리고 싶은 장면으로 선정한 것 중에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있다. 풀밭에서의 결투 씬인데, 풀이 바람에 춤을 추듯 드러눕는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 왜구와의 전투씬이다. 금강산을 그린 환쟁이의 시각으로 산을 여체(女體)를 그려보고 싶다.

2. 수많은 인물
연극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극단을 찾아갔는데, 연극하기에는 내가 외모가 맞지 않다고 했다. 배우로서는 키가 조금 작은 편이고, 그리고 몸이 조금 뚱뚱하다고 말했다. 무대에 선 배우는 그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그가 연기하는 사람이어야 해서 혹시나 키가 작으면, 극중 인물이 키가 작은 사람인가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했다. 자신은 실제로 안경을 쓰더라도 극중 인물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연기 중에는 안경을 벗어야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연극배우처럼 지면상에 나오는 인물의 모든 면은 작가가 특별히 하나씩 셋팅해서 만들어 넣은 것이야 한다.

작가 박흥용은 많은 인물들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작가를 검색하면 ‘작가주의’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데, 작가는 그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그에 가장 적절한 시대를 고르고 거기에 꼭 맡는 인물을 만들어낸다.

견자, 황정학, 이몽학, 놋각쟁이 박씨 아저씨, 백지, 대쪽, 이장각, 포도부장 출신 장춘화, 안봉석 참모, 기생 가희, 정탐꾼, 환쟁이, 오위부장 막내손녀, 오위부장.... 이 인물들이 살아있다. 평범한 사람들인데 자신의 특징을 갖고 있다.
아름다워야 할 인물은 아름답고, 투박할 사람은 투박하다. 그 '꼴'을 보면 '성격'이 보일 만큼 모두에게 다른 얼굴과 말투와 성격을 부여했다.

황정학과 이몽학은 조선시대에 실제 인물이다. 황정학은 실제로 침술로 유명했고, 이몽학은 극중의 스토리대로 왜란 중에 반란을 일으켰다. 영화 <왕의 남자>가 조선왕조실록에 '광대들을 불러다 놀았다'라는 그 한구절에서 소재를 잡아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재미나게 보았던 의녀 <대장금>의 이야기도 한줄정도의 사실 기록에서 출발해서 그 커다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한다. 인물을 만들어내고 스토리를 짠다는 게 만화나 영화나, 드라마나 모두 같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내가 쓰는 말투는 똑같다. 어느 책을 읽으나 거기에 나오는 단어나 문구를 리뷰에 사용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물을 만들어 낸다면 모두 몽달귀신, 몇년전 유행어로 말하면 졸라맨의 얼굴이 될 것이다. 얼굴도 말투도 성격도.

저자 조사 중에 읽은 인터뷰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국어사전을 옆에 아무데나 펴서 틈틈히 읽으라'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 중에 대학교수와 국민학교만 나온 사람이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행동, 어휘, 말투에서도 설명하지 않고도 그러한 사실들이 드러나야 한다고.

만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만을 보더라도 저자가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 짐작이 간다.

....
....

리뷰를 다 쓰지 못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음주에 올린다는 약속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일주일간 여행을 합니다.

인용도 2권의 중간까지 밖에 못했고,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여행전에 더 정리하겠지만, 완성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응원하시며, 기대하셨던 분들에게는 너무나 죄송합니다.
IP *.247.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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