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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10시 53분 등록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웅진


1. 저자소개

1943년 알제리 출생, 1956년 알제리아 전쟁으로 인해 파리로 이주했다.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에콜 드 민에서 토목 공학을, 시앙스포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국무원심의관으로 일했다. 동시에 파리공과대학, 파리 제9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후 당시의 미테랑 사회당 제일서기인 경제고문으로 일라며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 이론과 사회주의론을 전개하여 일약 프랑스 사회당의 스타적 존재가 되었다.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자 그는 대통령 특별 보좌관이 된다. 그는 언론으로부터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방대한 지적 데이터를 갖춘, 세계 상위 0.0001%에 드는 초특급 지식인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그 앞에는 경제학자, 철학자, 미래학자, 문명비평가 같은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자크 아탈리는 1980년부터 국제 사회의 권력 이동 경로,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리즘의 위협 등 국제 정세에 대한 미래 전망뿐만 아니라, 기후의 이상변동과 금융 거품 현상, 휴대폰과 인터넷 만능 시대 등 사회 전 방위에 걸쳐 미래 사회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해 왔다.

그는 지금까지 문학, 사회과학, 경제학, 미래학 분야에 걸쳐 40여 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펴낸 최초의 미래서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의 승자>(1995, 다섯수레)에서부터 그는 유목민 상품의 급부상과 지식 사회의 도래, 국제 사회의 패권 이동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후로 그가 펴낸 미래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서로는 <21세기 사전><인간적인 길><합리적인 미치광이><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자크 아탈리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정보, 고뇌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미래의 물결>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2007년 4월1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비전 2030 글로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아탈리는 포럼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2030년에도 여전히 10대 주요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그는 미래 기술 측면에서 선두적 입지를 갖고 있고 한국의 뛰어난 잠재력과 인적 자원, 기업의 높은 가치들을 예로 들었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한다.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 다니는 세계'라고 묘사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를 통해 노마드는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노마디즘(nomadism)은 현대로 들어오면서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꾸는 것, 한 자리에 머물며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까지 뜻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일단 이 책, 참 읽기가 어려웠다.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오기 전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이전에 읽은 건 전혀 소용이 없었다. 집중해서 한 자리에서 끝내지 않는 한, 덮어두었다 다시 읽는 건 처음 읽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노마드’란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였던 책. 노마드란 단어는 내 머리 속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 쯤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정착과 떠남, 그것은 라인홀트 매스너의 ‘문명세계에 있으면 탈출의 욕망에 시달리고 황무지에 오면 곧바로 문명세계로 돌아가고픈 욕망에 시달린다’는 말과 함께 언제나 나의 화두였다. 돌아갈 집을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늘 떠나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 그 모순이 나였다. 그러니 ‘노마드’라는 단어는 언제나 어지러운 향기를 달고 내게 달려 들었다.

그러나 그 매력적인 단어 때문에 아탈리 책이 너무 잘 읽히리라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이해도 못하고 리뷰를 해야한다는 것이 괴롭다. 이번 주 락카펠라 공연 때문에 이들과 4일 내내 함께 다녔다. 그간 아탈리의 빨간 책은 항상 내 손에 있었다. 없는 자투리 시간에 한 페이지라고 읽으려고 애썼지만, 다시 앞으로 넘기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눈과 어깨만 피로해졌다.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지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나는 말없이 웃으며 ‘일년 후 내 책으로 보답하겠다’는 동문서답을 했다. 아탈리의 책은 (그 내용보다는) 락카펠라와 떠돌며(?!) 손에서 놓치 못했던 책으로 추억과 함께 오래 기억될 책이다.


2. 가슴에 들어오는 글귀

17. 12세기 서방세계에 ‘아베로에스’로 알려져 있던 유럽 최초의 위대한 철학가이자 스페인의 모슬렘 이븐 루시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지식인 노마드였다. 그는 이론이란 단 몇 줄로 표현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수 있고, 또한 여러 장에 걸쳐 논증될 수 있는 경우에만 흥미를 가질 만하다고 했다.

18. 정주성은 아주 잠깐 인류 역사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인간은 중대한 모험들 속에서 노마디즘으로 역사를 이루어 왔고 다시 여행자로 돌아가고 있다. 농경생활이 주인처럼 군림해왔다고 믿어온 지난 5천년 동안에도 인간의 역사는 유랑 민족들의 다른 민족들에게 가한 전쟁의 연속이었을 따름이다. 이 다른 민족 또한 이전에는 유랑민족으로서 다른 민족의 땅을 빼앗아 주인이 된 것 뿐이다.

19. 특히 상업적 세계화의 가속화가 예고되고 있는데, 이는 노마디즘의 특별한 변종으로서 전 세계의 광대한 무질서, 거대한 대중운동, 국경 없는 테러리즘의 악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래의 큰 분쟁들은 문명간의 갈등이 아니라 마지막 정착된 제국인 미국과 세 개의 노마드 제국들 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미래의 큰 분쟁들은 문명간의 갈등이 아니라 마지막 정착민 제국인 미국과 세 개의 노마드 제국들 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 노마드 제국들은 영토를 벗어나서 미국과 경합을 벌이며 서로 싸우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한다. 그 세 개의 노마드 제국이란 시장, 이슬람, 민주주의를 말한다. 예견되는 혼란과 또 생겨날 지도 모를 전체주의들을 피하기 위해서 인류는 한편으론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 정착민으로 사는 동시에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마드로 살아가는 데 성공해야 할 것이다.

25. 노마드들은…사냥, 언어, 농경, 목축, 신발, 옷, 연장, 제식, 예술, 그림, 조각, 음악, 계산, 바퀴, 글씨, 법, 시장, 세라믹, 야금술, 승마, 배의 키, 항해, 신,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미래의 정착민이 발명하도록 남겨놓은 것이라고는 국가, 세금, 감옥, 저축, 총, 대포 화약 등이었는데 맨 먼저 그런 발명이 이루어진 곳은 로마였다.

31. 여러 나라와 국제 기구들의 터무니 없는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원시부족민들은 자신들이 그 어떤 위협도 그 어떤 반진보적 집단 또는 발전의 장애물도 되지 않으며 그와는 반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문화와 지혜의 전달자들이며 그들의 문제는 내일 다른 인류의 문제가 될 것이고 그들을 수호하는 것이 생명을 수호하는 것임을 깨닫게 만들기 시작했다.

32. 모든 노마드들이 꼭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반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모두 결국 노마드가 되고야 만다.

33. 대부분의 기업들은 제한된 시간에 각자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역량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연극단 형식으로 조직된다. 좀 드물긴 하지만 어떤 기업들은 서커스단 형식으로 조직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매혹적인 요소들을 그러모은다.

40. 이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 오는 동안 방랑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종족들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이동과 양립할 수 있는 수렵과 채취 기술만이 진보했으며,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화와 제례의식만이 존속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렇듯 신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필수불가결한 방랑으로 생겨났으며, 노마디즘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형성하였다.

52.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늘에서 번개가 쳐 숲을 불태우는 것과 폭풍이 몰아치는 밤을 보아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 이상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을 길들이는 법을 터득했다. 이것은 주요한 혁신이며 분명 전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

60.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그 긴 자연 선택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늘이 살아남게 된 것은 가장 뛰어난 노마드들이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자연에 의존해 사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이어 정주성이라는 것을 발명해 낸다.

65. 유라시아에서는 여전히 기후변화가 사냥 도구에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수렵인들은 속도, 정확성, 던지기 거리를 동시에 향상시키면서 처음으로 팔의 힘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도구 두 가지를 만들어냈다. 투창기와 활은..사실상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전복시킨 도구들이라 할 수 있다.

71. 정착한 이들조차도 자신들은 어쩌면 다시 떠나야만 할 것이며,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활, 환생, 영혼의 윤회, 돌아올 기약과 함께 떠나는 새로운 여행들...이러한 생각은 농부의 계절적 순환의 경험 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88. 원시시대 인간들은 비폭력이 영원성을 되찾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폭력의 폐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폭력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인간이나 동물로 된 희생물에 폭력을 응집시켰고 집단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 희생물을 죽였다.

92. 원시시대에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하였다…뭔가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것을 묘사할 때 그들은 ‘그 물건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갔다’라고 표현했다. 그들에게는 ‘주다’, ‘받다’, ‘그래야만 한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없었다.

93. 인도에서는 암소를 주게 된 암소 주인은 그 암소와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내도록 돼 있는데, 이는 그 암소에게 결별의 이유를 설명해주기 위해서이다.

97. 그리스어로는 ‘네메시스’, 라틴어로는 ‘탈리오’, 아랍어로는 ‘타르’라고 하는 ‘복수’는 죽음을 가져다 주는 첫 번째 노마드적 오브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온갖 데로 퍼져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마드적 발명품인 유일신주의가 복수를 종식시키자고 제안할 때까지.

100. 사실 정착민의 주장처럼 그들의 역사가 오래됐다손 치더라도 정착민 체제는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왔던 노마드 민족을 쫓아내러 온 또 다른 노마드 민족들에서 유래했다.

103. 기원전 2000년쯤에 인간이 말 위에 올라탔다. 히말라야, 파미르, 힌두쿠시 고원 가장자리 지역의 인간들이 처음으로 말을 탔다. 같은 시대에 중앙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목축민들이 당나귀를 사육하면서 당나귀와 말의 교배를 시도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노새이다. 말의 사육은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105. 말, 바퀴, 야금술이 합쳐서 중앙아시아의 노마드들은 말을 수레에 연결하고, 말에 올라탈 수 있었으며, 땅에 있는 병사는 그 누구도 다루지 못할 무기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은 성벽을 무너뜨려서 초기 도시들에 축적되어 있는 재화를 정복하게 해줄 역동적인 힘과 지배 권력이 되었다

111. 이 해상 상인들은 교역을 위해서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고 쓸 줄 알아야 했다. 그 언어들을 잘 해석하기 위해 기원전 1500년에 새로운 문자 체계인 알파벳이 고안되어 그때까지 사용되던 무수한 기호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 주요한 발명 역시 노마드적 필요에 따라 탄생했다.

115.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보다 뒤떨어진 존재이거나 우월한 존재이다. 자기 혼자만으로 충족하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살 줄 모르는 인간은 결코 국가에 속해 있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괴물이거나 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117. 정착민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고, 노마드의 시간은 이야기의 시간이다.

121. 헤브루인은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역사를 쓴 최초의 인간집단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책은 종교적 성격을 띤 최초의 노마드적 물건중 하나로서 우선 노마디즘과 정주성의 힘든 공존에 관한 심오한 사색이다.

122. 성경은 당시 정착민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선은 노마드적이고 악은 정착민적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진정한 야만인은 자신들의 땅에 대해 질투하는 농민들이며, 그저 통과해 갈 뿐인 목축인들 만이 문명인이라는 것을 성경은 증명해 보인다.

124. 예수에게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선택된 민족이란 없었다. 모든 인간이 다 그 선택된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느 한 민족만의 것도 아니었다. 약속의 땅은 부활이며 천국이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부귀로 인해 거추장스러워지지 않아야 하고, 비폭력적이고 너그러운 노마드로서 세상을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유태인들이 가난을 치욕으로 여긴 반면, 예수는 부를 참을 수 없어 했다. 노마디즘은 이런 점에서 영원의 세계로 확실히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생활방식이다.

205. 우리는 역사를 쓴다. 하지만 언제나 정착민의 시각에서 국가의 도구라는 이름으로 써 왔다. 역사는 노마디즘을 이해한 적이 결코 없었다. - 질 들뢰즈아 가타리 <천개의 고원>

209. 중앙 아시아와 중국의 부족들은 끊임없이 서로 물어뜯거나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값어치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동쪽 노마드들에서 서쪽 노마드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들은 노마디즘의 새로운 모습인 상업적 노마디즘을 발전시켜가게 되는데 그것이 자본주의이다.

243. 이동할 수 없는 지식인들은 독서를 통해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책 읽는 것을 들으면서 가상으로 여행을 했다(특히 여자들은 십자군 전쟁에는 나갈 수 있었으나 여행은 금지돼 있었다). 그들이 읽은 것은 여행기나 초기 소설들이었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여행과 이상화된 사랑이야기이다.

246. 배가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선미재(船尾材)가 북유럽에서 발명되자 유럽 선주들의 해상권은 흔들리게 되었고 세계의 교역은 북유럽 상인들이 지배하게 되었다..거의 5만년 전부터 노마디즘의 특권적 공간이었던 바다는 페니키아인에 이어 그리스인이 이미 실행한 바 있는 항구 노마디즘을 재 창조해낸 유럽인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렸다. 바로 여기서 르네상스가 탄생했다.

265. 17세기 중반부터 상인들은 상품을 팔기 위한 공간, 즉 안전한 상로가 더욱 필요해졌다…..최초의 세계화가 예고되고 최초의 세계적인 상인 노마디즘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오게 될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최초의 세계화로 인한 상품, 상인, 사상의 유통은 더 용이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세계화가 유발시킨 가난한 자들의 이동에는 전과 똑같이 적대적이었다.

288. 디드로는 백과사전에서 ‘노마디즘’에 대해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새로운 방목지를 찾아 끊임없이 거처를 바꾸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붙이는 명칭’이라고 정의하면서, ‘그래서 이 단어는 특별한 한 종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종족의 생활 형태를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철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좀스런 관료들의 통제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이상적 세계에 대하여 숙고하기 시작했다.

290. 프랑스 혁명에서 노마드들의 두려움과 자유를 향한 열정이 충돌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혁명 후에 이전 관료들의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가두어버린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은 무엇보다도 정착민적인 이상이다.

292. 가난한 사람들의 노마디즘에 적대적이고 상인들이나 부자들의 노마디즘에 개방적인 또 다른 정부가 다시금 예고되었다. 혁명은 유럽 전역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상을 수출하여 온 좋은 노마드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면서 봉건제의 마지막 유물을 부숴 버렸다. 이 운 좋은 노마드들은 바로 상인들, 부르조아 들이었다. 두 번째 세계화가 예고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 번째 보다 더 광대한 것이었다.

302. 15세기 북아메리카에서 1천만 명이 넘던 인디언들이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3백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비례로 따지면 이 식민지화는 야만족이라 일컬어지던 종족이 자행한 로마제국 침공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음을 가져왔던 것이다.

314. 영국인 스티븐슨이 자동차를 발명하고, 베세머가 철강산업 기술을 발명하자, 19세기 후반에는 사람과 상품뿐만 아니라 사상과 화폐를 더 빨리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노마디즘은 이제 속도, 자유, 고독이라는 사고와 연결되었다. 두 번째 세계화가 가동된 것이다….자동차 노마디즘으로 인해 산업적 권력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도시들은 변화했으며, 모든 도시인들은 노마드가 되었다. 전쟁의 규칙들도 바뀌었고,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 필요해졌다. 그 새로운 에너지란 산업적 노마디즘의 에너지인 석유이다.

330. 다윈의 주장은 그 시대의 모든 사상가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사상가들은 노마디즘이 마르크스가 후에 말한 것처럼 뛰어넘어야 할 형태로서의 원시사회의 초기국면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라첼이 말한 것처럼 보존해야 할 생명력인지에 대하여 논의했다. 이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다음 세기의 커다란 두 가지 야만성에 대해 영감을 주게 되었다.

355. 오늘날까지 노마드로 남아있는 마지막 노마드 민족들은 후계자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나 삶 그 자체를 위해서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살아왔고 그들만이 알고 있고 그들만이 보호해왔던 지역과 숲의 마지막 지킴이들이기 때문이다.

357. 하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자신들의 예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 자신들이 접하는 동식물들을 보호한다. 그러면서 아직도 전력을 다해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 애쓰고 있다. 자신들은 무엇과 비할 바 없는 풍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형태의 인간 조건을 형성하고 있으며 도시 노마드들도 곧 자신들과 같은 운명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405.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블레즈 파스칼(팡세)

406. 역사란 결코 미래를 위한 교훈은 아니며 많은 범죄가 과거를 되찾기 위한 시도들 속에서 저질러진 것이었다 해도 인류가 걸어온 길들을 해독하고 싶다면 인류가 과거에 쫓아갔던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418. 인류는 이제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 인프라 노마드(비자발적인 노마드, 대물림에 의한 노마드, 직업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예:이주노동자, 정치망명객, 경제관련 추방자, 트럭운전수, 외판원),두 번째 부류: 정착민, 일정한 지역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사는 사람들(예: 농민, 상인, 공무원, 엔지니어, 의사, 교사), 세 번째 부류: 자발적인 노마드(하이퍼 노마드:예: 고위간부, 연구원, 음악가, 통역사, IT종사자)와 유희적 노마드(관광객, 운동선수, 게이머)

422. 이제 정착민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잠자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점점 더 노마드화된다. 그들은 여행하면서 출근하면서 혹은 퇴근하면서 잔다.

460.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이 젊은이들은 노마드식으로 갉아먹는 음식물과 운동 부족 때문에 점점 뚱뚱해진다. 미국에서는 비만 어린이의 수가 20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으며, 비만인 사춘기 청소년의 수는 같은 기간 동안에 세배로 늘어났다.

464. 사실 미제국의 전 지구적 라이벌은 세 가지 범주의 노마드 세력들로 시장, 종교, 민주주의이다. 각각은 제국과 국가들을 깨부수려는 세계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465. 노마드 기업은 그 어떤 국적도 표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익이라는 준거에만 따를 것이다. 그 어떤 국가도 그 기업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한 국가 기구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하이퍼노마드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 될 것이며 국가들의 대체물이 될 것이다.

478. 아주 큰 혼란이 예고되는 시기에는 그 누구도 군대의 운명에 대해 예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종류의 노마드들이 지배 제국과 그 문화와 군대, 정치에 맞설 것이다. 동시에 정착민들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는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판단되는 전체주의들을 강요하기 위해서 그 지배 제국과 투쟁할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군사적인 온갖 종류의 갈들이 돈, 신앙, 자유 등의 노마드적 가치와 세력을 정착민적인 가치나 세력과 맞서게 할 것이다

483. 하이퍼 노마드들은 더욱 자발적으로 시장이나 민주주의 편에 서게 되고 인프라 노마드들은 민주주의나 신앙을 지지하게 된다. 정착민들은 신앙이나 민주주의 또는 지역적 전체주의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진영이다.

491. 굉장한 인구이동이 북쪽 국가들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네트워크 간의 이런 상호침투는 점진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을 만들어낼 것이다…(이제) 더 이상 넘어갈 국경은 없을 것이다…이런 세계가 감옥으로 변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정착민인 동시에 노마드로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트랜스 휴먼’, 그것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496 - 497 여행하면서 움직이지 않기. ?트랜스 휴먼의 아름다운 정의(사실이라기 보다 아탈리의 희망사항으로 보이는)가 돋보인다.


3. 내가 저자라면


대조는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흑과 백을 나눠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을 보다 빠르고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어둠으로 밝음을 이해할 수 있고, 악으로 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흑과 백은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닌 하나의 두 모습인 경우가 많다. 빈과 부, 미와 추, 실패와 성공, 승리와 패배, 사랑과 미움처럼 흑과 백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전혀 다른 두 개의 사실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두 가지 얼굴이기가 쉬운 것이다.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여행과 정착, 노마드와 정착민을 흑백으로 놓고 이야기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쩌면 호모 노마드에 대한 찬양으로 읽힐 수도 있을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다. 근래 들어,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관점에서의 역사 서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노마드의 역사는 정착민의 시각에서 미개나 야만으로 이해되어 왔다. 중국의 고대 정착 국가들은 번번히 북방 노마드에 의해 전복되었고 로마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는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노마드의 삶의 양식은 미개와 야만을 넘어 정착민의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탈리는 정착민의 사관을 뛰어넘어 600만 년에 이르는 인류사를 노마드적 관점에서 새로 썼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래의 예견까지. 600만 년에 이르는 인류사에서 인류가 정착해 살았던 것은 전체의 0.1퍼센트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5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남아프리카의 어느 나무에서 뛰어내려온 것을 시작으로, 60억 세계 인구 중 10억이 출장, 관광, 이민 등을 이유로 이동하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마디즘은 인간 진보의 주요 동인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노마드로 역사를 이해하는 그의 관점이 어쩌면 또 다른 이분법의 위험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모든 것을 노마드라는 관점으로 끌어오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왜곡이 일어난다. 그가 이주노동자, 노숙자, 정치망명가, 지사 근무자, 심지어 출장 중인 간부와, 관광객까지 노마드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노마드라는 약의 특효를 의심하게 된다.

아탈리의 노마드적 패러다임에 대한 찬양은 때로는 좀 지나치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현대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것을 거의 모두 노마드가 제공하고…불,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품목을 고안한 건 노마드이며 정착민이 발명해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유목과 정주는 대조되어야 할 개념도, 분리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같이 있어왔고, 역사는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해왔다. 아탈리는 유목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주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이런 어설픈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레미 리프킨이 접속이라는 단어 하나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거침없이 분해한 것처럼, 노마드라는 키워드로 세계사를 압축해내는 아탈리의 역량 앞에서는 입을 다물 수 없다. 국경을 뛰어넘은 초국적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문호 개방, 이동, 이주민의 수용은 최우선적으로 국가가 받아들여야 할 시책이 된 지금, 그의 주장대로 인류는 목하 진정한 세계화의 기회를 다시 한 번 맞고 있다. 세계를 수없이 바꾸어놓았던 정주와 노마드의 순환이 이제 다시 한 번 커다란 변화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아탈리의 예견처럼 세계 정부와 트랜스휴먼적인(정착민이면서 동시에 노마드인) 민주주의가 요구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곧 국경은 무의미해질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디지털을 통한 가상적인 유목, 즉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을 현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로 주목하게 만든다

서문에서 아탈리가 특별히 지면을 할애해 언급했듯이 새로운 기술의 제품들을 노마드화하는 방식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은 우리의 정체성 안에 존재하는 노마드적 원천을 잘 이용하여 새롭게 도래하는 변화의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특히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 호모 노마드는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창조적 인간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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