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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12시 02분 등록
미래의 물결/ 자크 아탈리/ 양영란 옮김/ 위즈덤하우스


1. 저자에 대하여

자크 아탈리의 약력을 살펴보는 순간 저자에 대한 조사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화려한 경력과 익히 들어본 그의 저서들은 그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이자 저술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난 ‘미래의 물결’의 제일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두 구절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2050년의 세계가 어떠한 모습일지 결정되며, 2100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준비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가 좋은 세상에 살지, 아니면 우리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지옥 같은 세상에 허우적거리게 될지 정해진다. 그러므로 후손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가 어디에서 오며 미래를 맞이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예측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6]

“나는 내가 여기에 기술한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실제로는 그 같은 미래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게끔 도와주리라고 믿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거대한 무질서 너머로, 인생 여행을 떠나는 모든 여행자들을 화기애애하게 맞아 주는 지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 사건들은 내가 상상한 사건들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고,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묵묵히 겪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것이다.

문필가는 훌륭한 글은 남겼을 것이고, 미술가들은 걸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375]


<< 출판사 저자 소개 >>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수재'로 불리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 프랑스 최고 정책의 입안과 결정에 깊숙이 관여한 고위 경제 관료였으며 동시에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 겸 유명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아탈리는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에콜 드 민에서 토목공학을, 시앙스포에서 정기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까지 에콜 폴리테크닉과 파리 9대학, 소르본 대학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1974년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1981년 사회당 정부의 집권 이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아소시에'(Attali & Associes) 대표 겸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으로 창설된 플래닛 뱅크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 로는 <소리: 음악의 정치경제학 Bruits, conomie politique de la musique)>(1977) 음악의 역사와 음악만이 갖는 미학적 힘을 사회과학적 해석과 정치적 욕망으로 풀어헤친 미학과 음악이론의 걸작, <지혜에 이르는 길-미로 Chemins de sagesse-Trait du labyrinthe>(1996) 베네치아의 골목길에서 인터넷까지 인류 문명이 남긴 모든 미로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추적한 경이로운 인문서, <축약 보고Ⅰ,Ⅱ,Ⅲ Verbatim Ⅰ,II,III>(1993~1996) 미테랑 전 대통령 특별 보좌관으로서 재직하면서 경험한 당시 국제 정치 상황에 대한 비망록이자 회고록, <영생 La Vie ternelle>(1989)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욕망을 그린 소설, <카니발의 질서-의학의 정치경제학 La Nouvelle conomie fran aise)>(1978)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서문 : 예측 가능한 미래의 역사

지금 바로 이 순간, 2050년의 세계가 어떠한 모습일지 결정되며, 2100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준비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가 좋은 세상에 살지, 아니면 우리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지옥 같은 세상에 허우적거리게 될지 정해진다. 그러므로 후손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가 어디에서 오며 미래를 맞이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예측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6]

상황은 간명하다. 시장의 힘이 전 지구를 휘어잡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개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돈이 최근 역사에 가장 커다란 굴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돈이 역사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거부하며 지배한다. 이 같은 흐름의 종착역에 이르게 될 때, 돈은 국가를 포함하여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와해시킬 것이며 심지어 미국까지도 조금씩 파괴할 것이다.

시장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으로 등극하여, 포착 불가능하고 전 지구적이며, 상업적 부와 새로운 소외현상들, 극도의 부와 극도의 빈곤을 만들어낼 ‘하이퍼 제국 hyper empire’을 형성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자연은 체계적으로 초토화된다. 모든 것, 심지어 군대와 경찰, 사법체계조차도 민영화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 존재는 대량생산 가능한 소비재인 보철장치들에 에워싸여 인위적 가공물을 자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의 창조성을 잃어버린 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류가 이전 시대의 소외현상들로부터 채 벗어나기도 전에 미래 앞에서 주저앉거나 세계화의 흐름을 폭력으로 끊어 버린다면, 우리는 퇴행적 야만과 파괴적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무기들이 동원된 가운데 국가나 종교단체, 테러집단, 해적들이 서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나는 이때의 양상을 ‘하이퍼 분쟁 hyper conflict'이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이 하이퍼 분쟁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화가 완전히 거부당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선에서 절제되고, 시장이 비교적 순탄하게 유지되며, 민주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활성화될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하나의 제국에 의해 통치되는 일이 멈춘다면, 그때는 자유와 책임, 존엄성, 극기, 타인 존중 등의 새로운 무한성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하이퍼 민주주의 hyper democracy'라고 이름붙이고자 하는 국면이다.

하이퍼 민주주의가 도래하면 전 지구적 규모의 민주정부와 일체의 국지적․지역적 제도가 정착하게 된다. 개개인은 새롭게 찾아올 과학기술의 경이로운 잠재력에 의해 재창출되는 일자리를 통해서 무상 혜택과 풍요로움을 향해 나아가게 되고, 상업적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며, 방종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보다 잘 보전된 환경을 물려주고, 세상의 모든 지혜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는 동시에 창조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8]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제국들의 영화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미제국美帝國의 지배 역시 2035년이 지나가기 전에 끝나게 될 것이다. 이후로는 미래의 세 가지 물결이 하나씩 차례로 몰아닥칠 것이다. ‘하이퍼 제국’,과 ‘하이퍼 분쟁’, ‘하이퍼 민주주의’가 바로 그 세 물결이다. 순리적으로 볼 때, 앞의 두 흐름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세 번째 흐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필연적으로 이 세 가지 흐름은 서로 얽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도 이 세 물결은 서로 엮여 있다. 하지만 나는 2060년경 인류의 우월한 조직 양식이자 역사의 궁극적 원동력인 하이퍼 민주주의가 결국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자유가 승리하리라는 뜻이다.[8]

모든 문제는 인구 폭발에서 시작할 것이다. 특별한 재앙이 없다면 2050년에 지구의 인구는 95억 명에 이를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 비해서 30억 명이 늘어난 숫자다. 선진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100세에 접근할 것이다. 출생률은 아마도 극도로 낮은 수치에 맴돌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늙어 갈 것이다.[12]

역사는, 아주 오랜 기간을 두고 관찰해 보면 일정한 하나의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단히 큰 여파를 일으키며 장기간 이어진 소용돌이조차도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세기를 거듭하면서 인류는 개인의 자유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최우선에 놓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는 권리를 지닌 개인, 즉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만큼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개인의 출현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13]

원칙적으로 시장과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사실상 시장과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권력은 점진적으로 기동성 있는 신흥 엘리트 계급, 즉 자본과 지식을 움켜쥔 이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불평들의 골이 파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수천 년을 이어 온 역사가 앞으로 반세기가량 더 지속된다면 시장과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정복하지 못한 영역까지도 모두 통합하게 될 것이다.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고 생활수준은 향상될 것이며 독재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회는 불안정해질 것이고 물과 에너지는 귀해질 것이며 기후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불평등과 좌절의 골이 깊어지고 갈등이 증폭되며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2035년 무렵이 되면, 길고 긴 전쟁과 심각한 환경위기를 맞아 곤경에 처한 미국은 시장(특히 금융시장)의 세계화와 기업(특히 보험회사)의 막강한 권력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금융과 정치적인 면에서 기진맥진한 미국은 앞선 역사상의 제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경영하는 일에서 손을 뗄 것이고, 세계는 잠정적으로나마 열 개 남짓한 지역 중심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다중심적 체제’로 개편될 것이다. 그 후 2050년 태생적으로 국경이라는 개념과는 무관한 시장이, 시장과는 달리 한정된 영토에 국한되는 제도인 민주주의에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후로 국가는 점점 약해질 것이다.[15, 16]

2060년 무렵이 되면, 아니 어쩌면 그보다 좀 더 일찍(각종 폭탄 세례로 인류가 그 이전에 멸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미국 제국이나 하이퍼 제국, 하이퍼 분쟁, 이 모든 현실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경․윤리․경제․문화․정치적으로 매우 긴박한 상황에 처한 제국에서는 보편적이고 박애의 정신을 지닌 새로운 힘이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보편적이고 박애의 정신을 지닌 새로운 힘은 지금도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힘은 감시와 자기도취, 규범으로 꽉 짜인 사회에 저항할 것이다. 이 새로운 힘은 점진적으로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을 것이며,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균형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균형을 하이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18]

요약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앞에서 말한 내용들은 상당히 희화적이며 단정적인 동시에 임의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들이 가장 개연성 있는 미래의 모습이며, 그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미래상을 보여 주는 데 있지 않다. 나는 미래가,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멋진 잠재적 가능성들이 충분히 발휘되어야한다. 이를 돕기 위해서 이 책을 쓴다.[19]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미래에 관한 모든 예언이란 것이 무엇보다도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듯이 이 책 또한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다.[20]

아주 긴 이야기

미래를 위한 교훈 : 습득한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은 진보의 필요조건이다.[30]
미래를 위한 교훈 : 성스러움은 금기를 정당화시킨다.[35]
미래를 위한 교훈 : 언어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시장은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37]
미래를 위한 교훈 : 유목민과 정착민의 대결을 통해 인류는 힘과 자유를 얻는다.[39]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

여기서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며, 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취를 간직할 것이다. 요컨대, 아시아에서는 인간을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하는 반면, 서구는 인간에게 자신이 가진 욕망을 자유롭게 실현하라고 부추긴다. 한쪽은 세계를 일종의 환상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세계만이 유일한 행동의 장이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한쪽은 영혼의 윤회를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한다.[52]

미래를 위한 교훈 :
1. 초강대 세력이 경쟁자의 공격을 받으면 제삼자가 어부지리를 얻는다.
2. 승자는 일반적으로 패자의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3.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다. 비록 부의 대부분이 동쪽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54]

국경에서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은 이집트의 반란 세력을 무지막지하게 진압했으며, 예루살렘의 랍비였던 예수(기원후 30년)를 비롯하여 반대파를 모두 숙청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른 유대인들이 계속 항거하자 급기야 예루살렘 전체를 파괴했으며(70년), 이에 따라 다시 한 번 유대인은 대학살의 비운을 맞는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트교 탄생의 배경이다.[56]

실제로 그 어떤 힘도, 종교적인 힘이건 세속적인 힘이건 자유를 구속하는 데 성공한 예는 없다.[57]

미래를 위한 교훈 : 종교적 교리가 제아무리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개인적인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는 못한다.[57]

‘거점’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각각의 ‘거점’은 지출 과다로 파산 지경에 이르면 경쟁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경쟁자는 ‘거점’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이 계속되는 동안 창조적인 계급, 새로운 자유, 새로운 잉여 수입원, 에너지나 정보통신과 관련한 신기술, 오래 지속되어 온 서비스를 대량생산 가능한 산업제품으로 대체하는 등의, 다른 종류의 문화와 다른 종류의 성장 동력을 창조해낸 제3자일 경우가 많다.[69]

현재까지 상업적 체제하에서 아홉 개의 형태가 차례로 이어져 내려왔다. 뒤에서 보겠지만, 그 형태는 ‘거점’을 이루는 도시의 이름(브루게, 베네치아, 앤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따라 명명되거나, 대량소비제품으로 변해 간 서비스(식품, 의복, 금융, 운송수단, 가전제품, 통신 장비, 오락 장비)에 따라, 혹은 상품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술(선미재船尾材의 키, 쾌속범선, 인쇄술, 경리, 보급품 수송함,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 동력 장치, 마이크로프로세서), 지배적인 화폐(그로스, 뒤카, 굴덴, 제노비노, 플로린, 리브르, 스털링, 달러)에 따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지난 7세기 동안의 경제, 기술, 문화, 정치, 군사, 역사는 세력을 잡은 자들이 ‘거점’이 되기 위해, ‘거점’으로 남기 위해, 혹은 ‘주변지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아예 상업적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채택한 전략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역사의 흐름은 과거에 유효했던 법칙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지배하게 될 법칙까지도 드러낸다.[70]

미래를 위한 교훈 : 다른 모든 ‘거점’ 역시 베네치아처럼 자신의 결점을 뛰어넘음으로써 정상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75]

미래를 위한 교훈 : 타지의 엘리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조건이다.[83]
미래를 위한 교훈 :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금융과 보험은 상업적 실세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84]
미래를 위한 교훈 : 권력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하리라고 믿는 새로운 통신기술이 실상은 그와 반대로 기존 권력을 분산시키는 막강한 적이다.[86]

이렇듯 세상이 바뀌는 방식은 언제나 같다. 상업적 공간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그에 따라 산업화의 장도 넓어지고, 이렇게 금융과 기술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에 따라 새로운 부류의 창조적 계급, 즉 자유로우면서도 통제적인 집단이 광대한 농지와 해양 산업지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현대적인 항구도시에서 해군력과 상선들을 지휘해서 권력을 잡게 된다. 이들은 금융가, 선박 제조업자, 상인, 혁신가, 모험가들을 도시로 끌어들인다. 이 도식에 따르면, 서서히 봉급생활자들의 권익이 향상되며 강제 노동은 사라진다. 또한 천연자원과 시장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관리된다.[93]

미래를 위한 교훈 : 그 어떤 제국도, 겉보기와는 달리,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99]

이로써 어느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전복시키려 하는 동안 시장은 제3자에게 권력을 넘겨준다는 이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갈등이 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후계자 문제를 대번에 해결해 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104]

미래를 위한 교훈 :
1. 부족함은 새로운 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희귀함은 야심 많은 자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다. 2. 누가 신기술을 발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적․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105]

미래를 위한 교훈 : 권위적인 국가는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민주주의를 만든다.[110]
미래를 위한 교훈 : 앞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지배력 있는 금융가의 파산은 ‘거점’의 몰락을 기정사실화한다.[112]

미래를 위한 교훈 : 모든 전쟁의 승리는 전쟁을 하지 않은 자 혹은 적어도 자기의 영토에서는 전쟁을 치르지 않은 자에게 돌아간다.[119]
미래를 위한 교훈 : 하나의 혁신적인 생각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그 생각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해도, 최소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121]

미래를 위한 교훈 : 첨단기술의 발전과 성생활의 개방은 상업적 체제 내부에서 작용하는 역학 관계를 구조화한다.[126]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쿄가 언젠가는 ‘거점’ 자리를 획득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무렵 일본은 충분한 자금력과 계획경제체제, 부족함에 대한 공포, 신기술, 산업 역량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은행체계를 개혁하고,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는 경제 거품 현상을 제어하며, 자국 화폐의 대대적인 재평가를 막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며, 공공부문과 ‘화이트칼라’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특히 일본은 전 세계의 엘리트들을 일본 영토로 끌어들이지 못했으며,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개인주의를 진작시키지도 못했고, 결정적으로 승전국 미국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도 못했다.[129]

다시 한 번 말하건대, ‘거점’은 예외 없이 서비스(아홉 번째 거점의 경우, 금융과 행정업무)를 산업화함으로써 세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미래 학자들의 예언과는 달리, 미래에는 서비스 위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 산업화 도시, 즉 서비스 위주의 도시와는 오히려 정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들, 다시 말해서 서비스를 산업화하는 도시들이 등장하는 것이다.[132]

미래를 위한 교훈 : 이제까지 이룩한 수많은 발명을 다른 연구를 위해 공공 기금을 지원받은 학자들이 부수적으로 얻어낸 결과물이다.[137]

경제적으로 상당한 통합을 이룬 유럽은 이러한 통합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경쟁력이 감소하고, 역동성이 둔화하며, 인구는 노화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 같은 우려를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142]

이미 아홉 번째 형태의 종말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앞선 형태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다.
우선 상업적 체제는 자신의 내부에 무수히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팽창 지향적이고 과도하며, 무제한적이고 통제 불능인 미국 금융체제는 이미 산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성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체들은 벌어들인 돈을 다시금 자사에 투자하기보다 금융부문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올리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자동차나 가전제품, TV, 전화 등은 이제 더 이상 세계 최고의 품질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없다.[146, 147]

한편, 미국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점점 커져 간다..... 2006년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이 8달러로 정해져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섯 명의 어린이 중 한 명은 극빈층에 속한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빈부격차는 점점 극단화되는 추세다. 195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12억명)이 하루 1달러로 생활하는 절대적 빈곤층이었으나, 2006년에 들어와서는 인류의 절반이 하루 2달러(새롭게 정한 극빈층 기준)미만으로 생활하며, 13억명을 1달러도 못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반면에 캘리포니아 주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전 인류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한 달 봉급보다 4배나 많다.[148]

세계 농업은 지지부진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인구는 점점 빨리 증가하고, 따라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늘어 간다... 2006년 현재, 8억5천만 명이 영양실조로 고생하고 있으며,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늘어난 수치다. 한편, 문맹자는 10억 명에 달하며, 6세에서 11세까지의 어린이 중에서 1억5천만 명 이상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149]

아프리카의 현실은 이보다 더 비참하다. 1인당 소득은 1987년에서 2006년 사이에 4분의 1이 감소했다.[150]

그뿐 아니다. 폭력의 발생률도 전혀 저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드러내 놓고 전쟁을 선언한 적은 없으나 냉전 형식으로 진행된 동서 간의 분쟁은 남북 간의 격차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내란은 발칸 반도에서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도처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151]

상업적 체제의 아홉 번째 형태는 슬슬 자취를 감추고 열 번째 형태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그 과정에서 지정학적․경제적․기술적․문화적 동요를 겪게 될 것이고, 새로운 ‘거점’이 형성될 것이며, 그러면 자연스럽게 패배자들이 양산될 것이다.[153]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

미국은 이라크에서 큰 변고를 당하지 않고 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는 중동 평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세계적으로 출산율은, 하강할 때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다시 수수께끼처럼 상승하게 될 것인가? 앞으로 20년 후, 아니 50년 후에는 석유가 정말 고갈될 것인가? 인류는 석유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부자 나라에서 빈곤과 불평등이 새로운 폭력을 낳을 것인가?
아랍 국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민주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게 될 것인가? 파키스탄이나 이집트가 이슬람을 국교로 신봉하게 될 것인가? 전 세계 석유의 대부분이 이동하는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이 해적들에 의해서 가로막힐 것인가?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서방세계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서방 국가는 테러리즘에 굴복하게 될 것인가? 테러리즘은 독재적인 경찰국가의 출현을 부추길 것인가? 신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종교는 좀 더 관용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암, 에이즈, 비만 등의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조류독감을 비롯한 동물전염병이 언젠가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새로운 종교 또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출현할 것인가?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 극심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언젠가 폭동을 일으킬 것인가? 달러 대비 중국 화폐의 가치는 폭등할 것인가? 유럽 통합 추진은 다시 재재할 것인가? 유전자 변형 기술이나 나노테크놀로지는 인류에게 재앙인가 기회인가? 기후가 너무도 나빠져서 지구상에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는 날이 올 것인가? 기독교 지역과 이슬람 지역 간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새로운 형태의 성관계 혹은 연애관계가 확산되어 윤리관이 동요될 것인가?[156,157]

이 모든 질문들이란 너무도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미래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은 세계의 진화라는 장기적인 명제를 놓고 볼때, 아주 일시적인 영향력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158]

앞에서도 보았듯이 기나긴 인류의 역사는 몇 가지 아주 단순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이 출현한 이래로 모든 진화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요컨대 세기를 거듭할수록 정치적 자유가 일반화 되며, 욕망이 상업화한다는 사실이다. 세기를 거듭할수록 농부들은 도시로 이주한다. 세기를 거듭할수록 시장 민주주의의 총집합체는 하나의 임시 ‘거점’을 중심으로 하여 점점 더 거대해지는 하나의 시장으로 모여든다. 상업 세계의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거점’이 되기를 원하는 도시 또는 지역은 당대에서 가장 거대한 통신망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거대한 농업․제조업 배후지를 확보해야 한다. ‘거점’은 새로운 창조적 계급이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실권 있는 은행기관을 설립할 수 있어야 하며, 신기술을 이용하여 당대에 가장 복잡하고 성가시다고 여겨지는 서비스를 대량생산 가능한 상품으로 제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거점’은 또한 정치․사회․문화․군사적인 면에서 적대적인 소수자들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통신망과 원자재들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정세를 보면, 상업적 체제의 아홉 번째 ‘거점’인 로스앤젤레스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거점’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는, 과거에 존재했던 상업적 형태에서와 같은 이유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선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며, 창조적 계급은 더 이상 하나의 ‘거점’에 충실하지 않고,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진보는 더디다. 따라서 ‘거점’의 산업은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며, 투기자본이 점점 극성을 부린다.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분노의 목소리는 높아 가고, 빚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 간다. 특히 ‘거점’은 스스로 ‘거점’으로 남아 있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158, 159]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이렇게 11개 나라가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들 ‘일레븐’보다 한 단계 밑에서 매우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다른 스무 개 나라들은 아직도 미흡한 제도적 장치 때문에 곤란을 겪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터키,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모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이보다 좀 더 규모가 작은 나라들은 별도의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164]

세계는 아시아가 지배할 것이다. 세계 무역의 3분의 2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만 지나면, 아시아의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다.[165]

중국은 2025년 13억5천만 인구와 더불어 세계 제2의 경제 세력으로 자리를 굳힐 것이다. 현재의 리듬대로라면, 중국의 GNP는 2015년에 일본의 GNP, 2040년에 미국의 GNP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165]

중국은 시급하게 하부구조를 제대로 설치해야 하고, 화폐의 안정성을 공고히 해야 하며, 부패와 싸워야 하고, 도시로 향하는 수억 명의 농부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하며, 교육체제를 향상시켜야 하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간부급 인재들을 길러내야 하며, 비대해진 공공 부문을 개혁해야 하고, 사유 재산권과 지적 재산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법률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유일당이 집권하는 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일들이 태반이다.[166]

중국이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사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범지구적 트렌드가 될 국가 해제 움직임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167]

인도는 2025년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14억명) 나라가 될 것이며, 경제력 면에서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제3위로 올라설 것이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이후 중국의 성장률을 앞지르겠지만, 1인당 총생산은 인구 증가로 말미암아 중국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민주주의 역시 넘어야 할 큰 산이 많다. 우선 도시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며, 대체 에너지원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하고, 도로와 공항을 건설하고 공공 재정을 투명하고 건전하게 일신해야 하며, 지역 간, 사회계층 간 불평등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이 같은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나라가 분열되는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참고로 인도는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야 비로소 통일된 나라로 구실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67, 168]

한편 일본은 지속적으로 노화할 것이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세계 최강 대열에 속할 수 있는 막강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부가 계속 감소될 것이다. 외국인을 1천만 명쯤 받아들이거나 국내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일본의 인구는 계속 감소할 것이다(일본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핵무기, 한국의 공업제품, 중국의 투자 등으로 점점 더 극심하게 ‘포위’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콤플렉스를 떨쳐 버리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자기방어적․보호주의적 전략에 입각해 핵무기를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첨단무기를 확보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일본은 경제적으로 크나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168]

‘일레븐’에 속하는 나라들 중에서는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총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미국식 모델 대신 한국식 모델을 모방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이 이 같은 성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재앙 시나리오를 슬기롭게 피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두 개의 재앙 시나리오란 첫째, 북한의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로 말미암아 예상보다 통일이 앞당겨짐으로써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할 경우다. 둘째, 십중팔구 북한 체제가 부오기에 앞서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통한 무력 전쟁을 도발할 경우로서, 이 경우 반세기 동안 이룩한 경제 발전의 신화는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169]

2025년 무렵,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두 개의 세력이 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우선 멕시코는 인구 1억3천만 명이 될 것이고, GDP는 프랑스를 앞지를 것이다.... 2025년이면 인구가 2억1천만 명까지 늘어나게 될 브라질은 미국,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제4위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브라질은 농업과 식품산업 분야의 절대적인 ‘거인’으로 군림할 것이다.[171]

2025년에도 아프리카 대륙의 1인당 총생산은 전 세계 평균 총생산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며,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은 빈곤 한계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만으로 살아갈 것이다.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어린이만도 4천1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1인당 총생산은 러시아를 능가할 것이다), 이집트, 보츠와나 그리고 어쩌면 가나 정도만이 현재의 가난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분열될 경우 아프리카는 무정부 상태를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173]

시간의 상품화
현역에서 은퇴하는 연령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으며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위험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70세까지 연장될 수도 있다. 최고 연장자들은 후견인이나 지식의 전수자 또는 교육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175]

새로운 유형의 소유권이 발명될 것이다. 이 소유권은 어느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정해진 품질과 정해진 넓이의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소유에서 이용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정보의 비물질화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자료의 소유에서 자료의 이용으로의 전환이 용이해지며, 이로써 문화, 교육, 정보로의 접근성이 훨씬 높아진다. 따라서 지적 재산권은 점점 더 보장받기 어려워질 것이다.[178]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민간 보험회사를 선택할 것이며, 따라서 민간 보험회사들은 사회보장을 해 주는 국가보다 점점 더 큰 위력을 갖게 될 것이다.[178]

두 가지 종류의 산업이 상품화된 시간을 지배적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다. 바로 보험산업과 오락산업이다. 이 두 가지 산업은 지금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험에 들 것이다.... 보험회사(그리고 금융시장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기관들)는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해 주며, 앞으로는 매출액으로 보나 순이익으로 보나 단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179]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성을 덜기 위하여 각 개인은 여유를 갖고 여가를 즐기고 싶어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와 거리를 둠으로써 현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질 것이다. 오락산업(관광, 영화, TV, 음악, 스포츠, 공연예술, 게임, 콘도미니엄)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하여간 이 산업이 생산해내는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할애하는 시간 면에서 볼 때, 단연 지구에서 가장 번창한 산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179]

모든 기업, 모든 국가들은 앞으로 보호와 오락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재편성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세계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하여.[180]

콘텐츠 소유자들(출판인, 음악인, 영화인, 작가, 기자, 교수, 배우, 프로그래머, 제품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은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힘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로열티와 광고 수입을 지불해 주는 특정 디지털 구조물을 통해 대가를 지급받게 될 것이다.
2030년이 되기 전에 종이로 된 대부분의 미디어, 특히 일간 신문들은 가상공간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 미디어들은 미국의 마이스페이스, 한국의 오마이뉴스, 프랑스의 아고라복스처럼 점점 더 실시간적이고 점점 더 공동체적인 맞춤형 소식들을 커뮤니티에게 공급하게 될 것이다. 전문기자들과 더불어 일반 시민들이 뉴스와 오락물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182]

전통적인 언론매체, 라디오, TV와 ‘뉴 미디어’사이의 구분이 점점 더 모호해지면서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다. 기존의 미디어는 생존을 위해서 무료 미디어, 참여적 미디어, 고도로 전문화된 미디어를 지향하는 이 같은 대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83]

2030년이 되기 전에, 기존의 모든 매체와 모든 유통구조를 혼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들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화와 조각, 영화와 문학 등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해지며 경계 또한 불투명해질 것이다.[184]

놀이와 게임은 창작하고 상상하며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교육하고 감시하며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공동체 소속감을 고양시키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3차원 감상의 보편화)[184]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가사용 로봇이 마침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일반화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15년까지 각 가정마다 가사를 전담할 수 있는 로봇을 한 대씩 갖춘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184]

노화하는 세계
요즘의 추세가 내내 지속된다면,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2025년에는 90세 이상으로 늘어나며, 그 후 곧 100세까지도 도달할 것이다. 아울러 자유의 확대, 특히 여성들의 자유 신장과 더불어 출생률은 계속 저하할 것이며, 이는 적지 않은 나라에서 세대교체가 불가능해짐을 의미한다.(중략)
2025년이 되면, 미국에만 해도 85세 이상의 노인이 1천만 명을 넘게 될 것이다. 1900년에는 4퍼센트에 불과하던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이 33퍼센트로 늘어나는 것이다. 한편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일본은 45퍼센트, 중국은 22퍼센트로 증가할 것이다.[186]

노인들이 정치적으로 다수 집단을 형성하게 되므로, 물가 안정이나 다음 세대로의 비용 전가 등, 현재를 중시하는 정책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품과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 지출(보험 포함)이 현저하게 증가할 것이다.[186]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직자들을 부양해야 하는 몫이 점점 더 과중될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한 명의 근로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경비의 4분의 1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2050년 무렵이 되면 2분의 1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현직 근로자가 부양해야 할 퇴직 근로자의 비율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거나 출생률을 높이고, 이도 저도 불가능하다면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인들의 유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나라들은 머지않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반면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은 인구 구성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2025년 무렵, 유럽연합의 총인구 중에서 아프리카 출신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0퍼센트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있기까지는 엄청난 규모의 인구 이동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미국은 지구상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이러한 움직임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구의 대이동은 도시의 엄청난 팽창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확실하다.[188]

내일이면 모두가 도시인
도시로의 이동은 어제오늘 비롯된 현상이 아니다.
2007년에 이미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도시에서 생활하게 된다. 2015년에는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도시가 오늘날의 16개보다 훨씬 많은 24개로 늘어날 텐데.... 2025년이 되면, 지구상에는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도시가 30개가 될 것이며, 2천만 명이 넘는 도시권도 7개나 될 것이다.[189]

20년 후, 히스패닉계 출신과 아프리카계 출신의 인구가 미국의 대다수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들 히스패닉과 아프리카 출신 엘리트들과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엘리트들이 미국의 힘을 한층 강화시켜 줄 것이다.[193]

한편 수천만 명의 퇴직자들은 기후가 온화하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을 찾아 일시적으로 혹은 결정적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며, 아프리카 북부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지역이 될 것이다.[195]

결국 지금으로부터 25년 후에는 해마다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든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될 것이다. 10억 명가량의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 혹은 자기 부모가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195]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희귀성
언젠가 모든 자원이 희귀해지고 고갈될 것이 확실하다지만, 그래도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완전한 고갈 상태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196]

에너지 문제는 천연자원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재의 리듬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지금 보유하고 있는 매장량으로는 석탄 230년, 천연가스 70년, 석유는 50년 정도를 버틸 수 있다.[197]

<< 자연재해, 사막화, 자연재해 문제 등을 실감나게 기술 >>

결론적으로, 동물의 종류는 지구의 역사상 이미 두 번이나(우선 2억5천만 년 전에 한 번, 두 번째는 공룡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포유류가 등장할 무렵인 6천5백만 년 전) 그래 왔듯이, 90퍼센트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생물체 종류의 절반 이상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멸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때 인간이 생존할 가능성도 확실하지는 않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신기술의 출현으로 인해 이 같은 희귀성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술은 다른 무엇보다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오물처리를 원활히 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도시와 교통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206]

지지부진한 기술

유일한 희귀재로서의 시간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쓰더라도 사람들은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읽을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방문할 수도 배울 수도 없음을, 그렇게 할 시간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7년마다 지식의 양은 두 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2030년이 되면 72일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209]

우리는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일한 희귀재임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도 시간을 생산할 수 없으며, 아무도 자기가 가진 시간을 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시간을 축적할 수 없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내재적인 기능, 즉 태어나고 잠을 자고 학습하며 몸을 관리하고 사랑을 나누며 모든 일을 결정하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임으로서 ‘선험적으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 시간이라는 장애물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210, 211]

아홉 번째 형태의 상업적 체제의 몰락
지금으로부터 2030년까지 해를 거듭하면서 아홉 번째 거점 역시, 여덟 개의 다른 거점이 그랬듯이, 위에서 말한 여러 난관, 즉 ‘거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문제들과 대면하게 될 것이며,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이 문제들로 인하여 아홉 번째 형태는 서서히 쇠락하여 마침내 사라지게 될 것이다.[213]

미국 도처에서, 상업적 체제 속에서 봉급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점점 깊어질 것이다. 시장민주주의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중산층은 자신들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신분적으로 상승하면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불안정한 생활의 굴레 속으로 다시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중산층에서 도중하차한 중간 관리자,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자,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무원, 버림받은 가정, 빚더미에 올라앉은 주택 소유자, 실망한 소비자, 분조하는 사용자, 좌절하는 소수민족, 종교로부터 위로받지 못하는 신자들은 대거 자신들의 바닥 모를 고독감, 참을 수 없는 불의,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 공동체의 와해 등을 통렬하게 힐책할 것이다.[215]

캘리포니아는 2030년 무렵이 되면 더 이상 창조적 계급을 품 안에 끌어안지 못할 것이고, 주요 산업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중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상업적 체제의 아홉 번째 형태는 이렇게 해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218]

열 번재 형태의 상업적 체제는 가능한가?
미국은 더 이상 군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거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 내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위험상황을 초래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세계를 경영하려는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계는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미국의 세력권을 벗어나버렸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체념이나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미국은 지배적인 제국이나 상업적 체제의 ‘거점’이 되기를 거부할 것이다.[223]

하지만 일본의 수도 도쿄는 이미 1980년에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2030년에도 전 세계가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 확대는 일본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쿄는 재능 있는 외국인들을 끌어 모으는 데에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간 과거 역사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과 제대로 화해를 하지 않는 한 일본은 주변지대 및 배후지의 정치적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거점’이 도맡아야 할 전 지구적 ‘헌병’으로서의 역할은 더더구나 기대할 수 없다.[227]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유토피아(이 문제는 미래의 제3의 물결을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겠다)가 실현되기까지는 로스앤젤레스의 후계자가 될 도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다시 말해서 뒤에서 언급하게 될 미래의 3가지 물결이 솟아오를 때까지는, 아마도 상업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거점’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힘을 지닐 것이며, 자료를 교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줄어들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창조적 계급이 굳이 같은 장소에 모여 살아야 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은 수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상업의 형태는 이제 ‘거점’ 없이도 별 탈 없이 운영될 것이다.[229, 230]

미래의 첫 번째 물결 : 하이퍼 제국

2025년에서 2035년 사이에 아홉 번째 형태가 사라지면서 하나의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몇 개의 상대적인 권력자들에 의해 조정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는 다른 세계, 요컨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어받은 세계, 즉 민주주의를 배제한 시장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50년 무렵, 시장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체제가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한 시장을 중심으로 통합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국가란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내가 하이퍼 제국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이퍼 제국은 우선 공공 서비스를 파괴하고, 뒤이어 민주주의와 정부조직, 국가의 구분을 차례로 파괴할 것이다.[233]

하이퍼 제국은 부분적으로 미국식 가치를 고수할 것이다. 이 하이퍼 제국이 추구하는 소비재는,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대부분 유목민적 상품의 연장선상에 놓일 것이다. 문화(혼합형)나 생활방식(불안정), 가치관(개인주의), 이상향(자기도취적) 등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미래의 세 가지 국면은 이런 식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극도로 격렬한 일련의 전쟁이 시작되어 하이퍼 분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어서 하이퍼 제국과 하이퍼 분쟁으로 인한 실패에 당면하여 새로운 가치가 부상하게 되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에 다시금 균형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 지구적 하이퍼 민주주의하고 할 수 있다.[234]

시장민주주의의 확산_다중심적 세계
뒤늦게 시장민주주의의 권역에 들어선 나라들은 앞선 다른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와 분리된 헌법과 의회, 정당, 사법제도, 인권을 존중하는 경찰, 정보 제원諸員의 다원화를 쟁취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235]

이들 미래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과거의 민주주의 치제에서도 그랬듯이, GNP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공공 예산과, 건강 악화와 노화로 인해 발생할 위험 부담을 공동으로 짊어지는 공적․사적 보험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236]

세계는 대륙마다 여러 개의 중심 세력이 형성되는 다중심적 세계로 재편될 것이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중국, 인도, 이집트, 러시아, 유럽연합 등이 중심 세력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중심적 체제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시장이란 본질적으로 정복을 지향한다. 따라서 영역을 한정 짓거나 남과 공유하고 정전停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시장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시장은 국가 간의 평화조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국가에 의해 운영되기를 거부한다. 시장은 머지않아 모든 공공 영역까지도 자기 영역으로 만듦으로써 정부(다중심적 체제의 중심에 있는 국가라도 예외일 수 없다)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며, 이렇게 되면 국가주권이라는 개념도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할 뿐이다.[237]

현재로서는 대부분 공공기관에 의해서 제공되는 교육과 의료, 국가주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된 공공 서비스 등이 더 이상 완전히 공공 영역에 속하지는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 인해 의사, 교수, 이들의 뒤를 이어 판사, 군인들이 민간 부문의 봉급생활자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노화와 대규모 도시화 작업, 점점 증가하는 치안에 대한 불안, 생태 환경적 고려, 평생교육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 면에서 점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과거에 이미 다른 서비스들이 그랬듯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상품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도 벌써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시장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주도권을 놓고 지정학적인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 전투는 결국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 요컨대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승리로 귀착될 것이다.[238]

2040년 무렵이 되면 사회 다방면에 걸쳐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시장민주주의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경비는 대폭 줄어들고, 산업체는 수익성을 회복할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점진적으로 약해지다가 거의 사라질 것이며, 다중심적인 체제는 서서히 붕괴될 것이다.[241]

교육, 의료,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서비스는 이렇듯 대량생산 가능한 상품들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대체될 것이다.[241]

이 모든 서비스들이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서비스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변화로 말미암아 개인과 집단이 정체성이나 인생관, 국가주권, 지식, 권력, 문화, 지정학 등과 맺고 있던 관계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 동안 우리가 당면하게 될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242]

시장의 법칙이 민주주의의 법칙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하면, 교육, 의료, 치안 같은 공공 서비스는 민간 기업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법체제와 국가주권 관련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민간 업체와의 경쟁체제에 돌입한다.[242]

각종 연금이나 보조금, 행정업무 또한 민간 서비스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243]

보험회사들은 고객들에게 보험금(질병, 실업, 사망, 도난, 화재, 치안과 관련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가)을 납입하도록 요구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할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기준을 고객들이 잘 준수하고 있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보험회사는 점차 전 지구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이나 기준(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가?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가?)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보험회사는 흡연자, 음주 애호가, 비만 환자, 고용 불가능한 자,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 자, 공격 성향이 강한 자, 신중하지 못한 자, 실수를 많이 하는 자, 주의력이 부족한 자, 낭비벽이 있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244]

노화와 도시 팽창,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재앙, 테러행위 등으로 인해 위험 요소가 증가하게 되면, 보험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커질 것이며, 그와 반대로 의무적 원천 징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할 것이다.[245]

보험회사들이 경제적인 면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각각의 당사자들이 규범을 준수하는 지 여부를 제3자가 감시하도록 하는 데 합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감시’, 이 말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하이퍼 감시가 출현할 것이다. 신기술의 발달로 상품의 전 유통과정, 각 개인의 이동 경로 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이는 조금 더 먼 미래에는 군사적으로 지극히 중요하게 응용될 것이다. 모든 공공장소에는 포획자나 소형 카메라가 배치되고, 이는 점점 사무실이나 휴식 장소 등의 사적인 공간까지 확대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유목민적 상품까지 장착되어 각 개인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 인식 기술(지문, 홍채, 손이나 얼굴의 개별적 차이를 이용하는 형태)의 발달로 여행자, 노동자, 소비자들을 감시하는 일이 강화될 것이다. 수없이 많은 분석 기계들이 개발되어 육체와 정신의 건강 상태, 상품의 상태를 감시하게 될 것이다.[245, 246]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는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묵계처럼 인식되어 왔던 조심성이나 비밀 엄수, 프라이버시 등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비밀이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호기심 역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며, 이와 더불어 선정적인 기사들을 주로 다루던 언론매체들도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유명 인사’들마저도 종적을 감출 것이 자명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2050년 무렵이 되면, 시장은 원격 감시를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는 원격 감시가 아닌 자가 감시에 필요한 상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자기 자신이 규범에 맞춰 생활하는지를 스스로 감시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자가 감시기가 출현하게 된다는 말이다.[247]

3세대 자가 치료기는 인간의 몸을 치료하게 될 것이다. 이 기구는 규칙적으로 약품을 투여할 것이다. 가령, 암 세포를 찾아내서 파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마이크로캡슐을 혈액 속에 투여할 수도 있으며, 뇌를 비롯하여 신체 각 부분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약품을 투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250]

좀 더 먼 미래에는 신경과학의 발달로, 오로지 정신 활동만으로 외부에 위치한 데이터 뱅크에서 원하는 정보와 지식을 찾아볼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정보와 지식을 기억 속에 저장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뇌에 직접 생체공학적 보철장치를 연결함으로써 저장된 지식을 연결시키고, 정신적으로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학습하며, 공상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현재에도 이미 운동 피질에 장치된 저자 조직을 통해서 정신적 이미지를 컴퓨터에 전달함으로써 커서를 실제로 화면 위에서 이동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사지가 마비된 환자도 단지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1분에 15자를 쓸 수 있으며, 이렇게 작성한 글을 이메일을 통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 텔레파시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된 것이다. 미래에는 이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 즉 정신과 정신이 직접 소통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을 이용하면 학습효과도 높일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뿐만 아니라 이 방식은 새로운 예술적 감동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250, 251]

국가의 해체
기업들도 기업활동에 적용되는 세법이나 권리 또는 의무가 자기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기업의 의사 결정 본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법인이나 창조적 계급에 부과하던 세금을 대폭 내림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고, 이는 국가 재정 수입의 점진적인 감소로 이어진다. 활력을 잃은 데다가 자가 감시기들의 출현으로 수세에 몰린 국가는 교육, 의료, 치안, 국가주권에 관한 대부분의 서비스를 시장에 내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국가는 우선 임금이 싼 나라로 공공 서비스 부문을 이전하고, 다음 단계로 이를 민영화하는 방식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금은 내려가겠지만, 최소 임금 보장이나 최저생계비 지원 등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장치들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불안정성이 일반화되는 것이다.[253]

2050년 무렵이면(어쩌면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국가는, 1천 년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를 포함하여 모두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시장 민주주의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은 자신들이 완전히 결별했다고 믿어 온 세계, 노동자 계급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면서 완전히 탈출했다고 믿었던 그 불안정성의 나락으로 다시금 떨어지게 될 것이다....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그 어느 정당도 교육이나 의료, 치안, 보험 등이 점진적으로 민영화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으며, 이러한 서비스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대세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정당들은 결코 하이퍼 제국의 도래를 막을 수가 없다. 우파는 민영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오히려 하이퍼 제국의 도래를 앞당길 것이며, 좌파 역시 중산층에게 상품화된 시간이나 개인적인 소비를 최대한 평등하게 부여함으로써 우파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여론은, 현재 유럽 대륙에 남아 있는 왕실의 사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하는 일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시민들의 창의력과 사회적 동화, 이동성을 인정하고 이를 장려한 국가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하이퍼 제국의 도래와 더불어 우리는, 과거 상업적 체제가 태동할 무렵처럼, 도시국가로의 회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254, 256]

확실하게 상품화된 시간
자본주의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다. 자본주의는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생각은 가차 없이 파괴해 버린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국가와 무관하고 ‘거점’의 의무로부터도 벗어난 거대한 시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하이퍼 제국은 완전히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몸담고 사는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소외시키는 속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는 시장이 생겨나면서부터 추구해 온 것, 즉 삶의 매 순간을 상업적 가치를 지닌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교류하며 소비하는 기회로 보는 관점을 완성시킨다.[258]

하이퍼 제국의 시민들에게는 이들을 구속하는 아무런 사회적 계약이 없다. 유비쿼터스적 유목 환경 속에서 인간은 세계를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전체, 보험회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행동에 부과한 규범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도 좋은 공간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개개인은 타인을 자신의 행복을 얻는 데 필요한 도구, 자신이 즐거움이나 돈 혹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얻기 위해 이용해도 좋은 수단으로만 간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과 싸워야 한다면, 어째서 남과 나누어 가져야 한단 말인가? 서로가 서로의 경쟁 상대인데 어째서 하나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도 남의 행복이 자신에게도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남의 행복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는 생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260]

어린 나이 때부터 고독이 시작될 것이다. 생물학적 부모이건 양부모이건, 좌우지간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녀들을 키우면서 오래도록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노인들은 수명이 늘어난 만큼 과거의 노인들에 비해서 점점 더 오랫동안 고독과 씨름해야 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한 명도 없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독을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과 한 지붕에서 살거나 재산, 혜택을 공유하거나, 혹은 함께 전투를 치르거나, 놀이를 즐기려고 할 것이다.... 이들을 자가 감시기와 치료 약물을 고독의 대체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260, 261]

오락산업 또한 감시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이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는 약간의 무료 서비스는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미끼로 활용될 것이다. 자가 감시기는 공포감을 조장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정보, 게임, 오락 등으로 포장되어 제시될 것이다. 과거에 그다지도 큰 위력을 떨쳤던 정치는 별로 인기 없는 배우로 전락한 정치가들이 벌이는 맥빠진 볼거리의 뼈대 정도로만 명맥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262]

유목 기업
앞으로 약 50년 후, 또는 그보다 앞서서 보험회사들은 주요 기업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 마련한 규범을 각 국가에 강요할 수 있게 되며, 사설 용병들이 국가의 군대를 대체하고, 기업이 만들어낸 화폐가 각국의 주요 화폐를 대체하게 되면, 하이퍼 제국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267]

세계의 시장화, 즉 세계화가 빚어낸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영리 법인들(관계 위주의 기업들)이 출현해서 국가가 수행하지 못하는 몇몇 기능들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268]

하이퍼 제국의 세력자, 하이퍼 유목민
하이퍼 유목민들은 수천만 명의 남자와 여자들로서, 이들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자신의 고용주이며 피고용인이다. 이들은 이 ‘극단’에서 저 ‘서커스단’으로 옮겨 다니면서 가차 없이 경쟁을 벌인다. 피고용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고용주도 아닌 이들은 때로는 몇 가지 직업을 동시에 유지하면서 자기들의 삶을 마치 주식투자하듯이 운영해 나간다.
이들은 매우 선별적인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적 계급, 즉 하이퍼 계급을 형성하며, 이들이 하이퍼 제국을 움직인다. 이들은 다중심적인 세계의 모든 중심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본과 창작품, 자신들이 만들어낸 소프트웨어와 특허권, 자신들의 기술과 재주, 자신들이 창조해낸 예술품들과 수입을 권리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269]

침울한 성격에 약간 편집증적이며, 과대망상과 자기도취적 기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하이퍼 유목민들은 가장 최신의 자가 감시기와 전자기적․화학적 마약을 제공하는 자가 치료기를 얻고자 애를 쓸 것이다.... 이들에게 학습이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며, 호기심은 절대적 요구 사항, 대중들의 심리 조작은 익숙한 습관이 될 것이다.... 하이퍼 유목민들은 불안정하고 무관심하며 이기적이고 임시적인 범지구적 사회 속에서 최고의 것과 최악의 것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후원자가 될 것이다.... 이들 하이퍼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부부는 더 이상 생활의 토대가 되는 단위가 아니다. 이들은 완벽하게 투명한 가운데,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의 형태를 빌려 여러 명의 파트너를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난히 뻔뻔스럽고 신랄한 일부 하이퍼 유목민들은 해적 경제를 운영하며 이들 기업의 책임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미래의 두 번째 물결의 주역들이 될 것이다.
반면, 이와는 반대로 범지구적인 위기의식을 첨예하게 느끼는 자들도 생겨날 것이며, 이들은 일단 재산을 모으게 되면, 인도주의적 활동에 투신하기도 할 것이다.... 이들은 관계 위주의 기업들을 이끌어 가거나, 범지구적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미래의 세 번째 물결의 주역이 될 것이다.[270, 272]

하이퍼 제국의 희생자들_하위 유목민
하이퍼 제국은 시장을 세계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거 빈민층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빈곤층은 여전히 인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점점 더 커 간다. 내가 ‘하위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빈곤선보다 더 아래, 즉 현재 화폐 가치로 볼 때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계층을 가리킨다.
이들 하위 유목민 층은 2006년 현재 25억 명에서 2035년 35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277]

하이퍼 제국의 판관
지구상에서 제일가는 구경거리라고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축구(FIFA)는 앞으로 하이퍼 제국이 어떤 식으로 조정되어 갈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축구 분야에 있어서는 유목민적으로, 범지구적으로 일할 권리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말할 수 있다.[282]

이러한 조정기구들이 범죄 경제를 이끄는 자들의 손에 넘어갈 경우, 이는 하이퍼 제국이 미래의 두 번째 물결 속에서 해적들에 의해서 붕괴되는 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기구들이 전 지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로 성장한다면, 미래의 세 번째 물결이 몰려와 범지구적 민주주의 정부가 태어나는 순간을 앞당기는 데 일조할 것이다.[283]

자유를 위하여, 자유에 종말을 고하다
하이퍼 제국은 2050년 무렵 극도의 불균형과 엄청난 모순 속에서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284]

하이퍼 제국은 번식과 성행위를 아예 갈라놓게 될 것이다. 성행위는 쾌락을 위한 행위며, 번식은 기계들이 대신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병든 신체기관을 고칠 수 있게 되면, 인간은 이를 재생산하기를 원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고장 난 신체를 아예 새로 만들어낸 기관으로 대체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태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줄기세포만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윤리적 거부감 없이도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며, 이는 차츰 치료용 복제로 이어지고, 결국 번식을 위한 복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인간도 인공 자궁에서, 원하는 사양을 갖춘 맞춤형 가공물로 제작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도 상품이 된다는 말이다.[286]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이렇듯 기계로 변하기 전에, 하이퍼 제국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인간은 이처럼 끔찍한 전망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벌써 인간은 이런 사회가 올까 봐 계속 저항하고 있다. 하이퍼 제국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이퍼 제국은 해안에서 난파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이 같은 악몽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돈에서 기인한 폭력이 지나가고 나면 무기로 인한 폭력이 찾아올 것이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287, 288]

미래의 두 번째 물결 : 하이퍼 분쟁

하이퍼 제국의 예견된 실패, 다양한 신무기 개발, 활동 주역들의 다변화 등은 하이퍼 제국 내에서 전반적인 갈등, 범지구적인 분쟁, 즉 하이퍼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이제까지 인류가 겪었던 그 어떤 지역 간 분쟁이나 세계대전보다 훨씬 파괴적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291]

지역적 야심
제국이 생성되었다가 멸망하는 방식에 매혹된 중국은 다시금 전략적인 면에서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싶은 욕망을 불태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만을 정복한 다음, 동아시아 전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은 일본과 미국을 동아시아로부터 멀어지게 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한국 또한 무장을 강화할 것이며, 그러는 와중에 북한의 독재정권은 근근이 명맥을 이어 갈 것이다.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한 새로운 방어체제를 확고히 할 것이다. 일본 또한 한국의 위험을 막고 중국의 세력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할 것이다.[291, 292]

이 같은 지역적 야심이 서로 충돌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이치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경제․정치적 개입에 반기를 들 것이며, 아랍 지역은 이스라엘 제거를 소망하며, 페르시아인들은 아랍권역을 흔들어서 자기들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가 하면, 러시아는 유럽 일부 지역을 다시금 지배하고자 하는 동시에 이슬람과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일본, 미국, 중국, 이렇게 세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벌일 것이다.[294]

이처럼 지역적 야심은 우선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며, 마찰이 커질 경우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두 세력, 즉 해적무리와 용병까지 가세할 수도 있을 것이다.[295]

해적과 용병
마피아 조직, 갱단, 테러리스트 부대(나는 이들을 가리켜 해적이라고 부른다).... 국가가 해체되면서 약화되기 시작하면, 개인의 권리와 이를 수호하는 경찰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 될 것이다. 반면 사회생활과 개인의 사생활에서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이들 해적들은 경제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 될 것이다.[295]

이러한 위협이나 공격에 대비해서 각국은,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군인과 경찰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원자는 점점 더 줄어들어 인력난이 발생할 것이고, 시장민주주의의 여론은 자기들의 군대에서 사상자가 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벌써 미국 군대의 5퍼센트는 아직 미국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이민자들로 채워져 있다. 2002년 7월 4일, 군대에서 복무하는 외국인들의 귀화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법령을 제정한 이후, 그 수치는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298]

헤적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용병을 생각할 수 있다. 과거 군인 출신들을 고용하는 용병 기업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이들은 군대나 경찰의 협력업체처럼 활용될 것이다.[299]

종교인이 아닌 세속인들의 분노
미국과 상업적 체제에 반대하는 ‘비판적 연합’ 세력이 형성될 것인 즉, 미국과 상업적 체제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 혹은 미국과 상업적 체제에 동조했으나 자기에게 실제로 돌아오는 이익이 없어서 실망한 사람들이 그 주축을 형성할 것이다. 이들은 미국과 서방세계, 세계화, 시장민주주의, 곧 다가올 하이퍼 제국 등을 모두 싸잡아 비판할 것이다. 온갖 부류의 세계화 반대 세력이 집결할 테지만, 이들은 자기네가 비판을 가하는 체제를 대신할만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301]

종교인들의 분노
상업적 체제는, 그리스-히브리적 이상에 따르면, 진보와 개인주의의 완성을 이루었음을 뜻하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신자들에게는 최악의 적수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상업적 체제는 인간의 자유를 신의 지시보다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교회들은 점점 더 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305, 306]

이슬람교도의 증가는 인구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이슬람교도의 수는 2020년경 18억 명가량 될 것인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이슬람교도의 수가 기독교도의 수를 추월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슬람 교세의 확장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출생률이 감소되면서 둔화될 것이다. 현재 이슬람 지역은 세계에서 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한다.[311]

지금까지 불교나 유교 혹은 힌두교의 이름으로 종교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은 현재 이슬람의 세력이 지배적인 모든 아시아 국가, 즉 파키스탄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완전히 세력을 장악하고자 할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은 종교적 극단주의자 집단들이 모여 있는 곳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316]

그 외, 한국의 통일교나 중국의 파룬궁, 미국의 사이언톨로지교처럼 다양한 문맥에서 생성된 많은 사이비 종교들도 하이퍼 제국의 생성과 더불어 생겨난 영적靈的․윤리적 공백을 틈타 세력을 불리려고 시도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현재 이미 파룬궁(파룬궁의 지도자 리홍즈는 80개의 세계를 구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회원의 수가 공산당원 수보다 많다. 이들 사이비 종교의 일부는 무장도 마다하지 않고 가장 저질스러운 조직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316]

하이퍼 분쟁의 무기
지금으로부터 30년 이내에 도합 15개국 이상이 공개적으로 핵무기 및 핵무기 발사용 미사일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화학 무기, 생물 무기, 세균 무기, 전자 무기, 나노테크놀로지 무기 등 각종 무기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무기들의 대부분은 소규모 국가나 국가 부재 지구, 용병파견업체, 해적, 게릴라, 마피아, 테러리스트, 온갖 밀무역자들의 수중에도 들어갈 것이다. 가령, 아주 가까운 장래에 400달러만 내면 응축기와 구리 코일, 화약을 가지고 전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319, 321]

공격적인 자세를 고수하면 아무런 이득도 없음을 설득하라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항상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1936년 10월 나치 정부가 루르를 재무장할 때, 핼리팩스와 블룸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전쟁이 발발했다.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했을 때, 케네디 형제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으며 그 덕분에 평화는 유지되었다. 1980년대 초 프랑수아 미태랑은 미국 미사일을 유럽에 설치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이로써 소련의 군사 도발 위협을 잠재우는 데 일조했다.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을 확실한 사실은 시장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공격 무기를 이용해서 노골적으로 세계를 파괴하겠다는 자신들의 목표를 천명하는 집단들의 존재를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328]

세계는 점점 더 핵무기 사용으로 인한 초토화의 공포, 초소형 전쟁의 공포, 네트워크를 통한 전쟁이나 자기 파괴적인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하이퍼 분쟁에 앞서 희소성으로 인한 분쟁, 국경 분쟁, 영향력 확대 분쟁, 해적과 정착민 사이의 분쟁, 이렇게 네 가지 부류의 분쟁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331]

희소성으로 인한 분쟁_ 석유와 물

영향력 확대 분쟁
과거에도 그랬지만, 일부 국가들은 자기들의 체면과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민심을 국내 문제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또는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웃 나라에 전쟁을 도발하기도 할 것이다.[337]

해적과 정착민 사이의 분쟁
해적의 습격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며, 특히 전 세계 석유 교역량의 절반가량이 이동하는 요지인 말라카 해협과 점점 더 많은 마약 거래선이 활동하는 카리브 해역은 이들 해적들의 주요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지중해 또한 해적들의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339]

2000년 케냐에서의 폭탄 테러,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의 테러 행위, 그 뒤를 이어 터진 카사블랑카, 마드리드, 런던에서의 테러 등... 언젠가 아마도 지극히 단순한 해적, 아무런 종교적 동기도 없이 단지 비참하게 하는 데 진력이 난 해적들이 유럽 도심을 공격하는 날이 올 것이다.[340]

다중심적인 세계의 주인, 하이퍼 제국의 최강자들이 방어적 군사동맹기구를 세계경찰기구로 전환시킴으로써 이 같은 행위에 제동을 걸고자 시도할 것이다. 동맹기구로부터 돈을 받는 용병들이 해적들의 본거지를 소탕할 것이며, 마피아 등의 조직들에게 점령당한 도심에서 길거리 전투도 불사할 것이다.[340]

하이퍼 분쟁
지금까지 거론한 이야기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인간의 비극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류가 이렇듯 자기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기 전에, 하이퍼 제국의 실패와 하이퍼 분쟁의 위협을 감지한 인류는 민주주의 세력들로 하여금 해적들을 물리치고 자살 충동을 억제하라는 이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343]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 정의롭고 평온하고 구성원들이 합심하며 형제애를 발휘하는 세계를 창조하려고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이 같은 세력은 벌써 활동 중이다.
로마 제국 멸망 때도 그랬듯이, 너무 오랫동안 실책을 방치한 탓에 찬란하게 피어날 수도 있었을 과거의 폐허 위에,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 유쾌하게 남들과 뒤섞이고자 하는 욕망, 기존 관념을 어기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이 다시금 태어날 것이다. 핏기 없이 쇠약해진 국가와 물려줄 상속자도 없는 하이퍼 제국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문명이 새로운 가치를 자양분 삼아 속속 자라날 것이다.
시장의 막강한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범지구적인 민주주의가 비로소 정착하게 될 것이다. 범지구적 민주주의는 하이퍼 분쟁보다 훨씬 시급한 다른 전쟁들, 이를테면 인간의 광기와 이상 기후, 불치병, 소외, 인간 착취, 빈곤 등을 상대로 하는 전쟁들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343, 344]

미래의 세 번째 물결 : 하이퍼 민주주의

인류는 시장도, 과학이나 전쟁도, 그 어떤 무지함과 악의도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만방에 알려야 한다.
현재의 주변 상황을 보면, 모든 정황이 점차 인간을 상품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불의가 확산되고 생활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으며 폭력이 증가하는 등이 그러한 변화를 알리는 징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변 상황은 조만간 우리 앞에 매우 우울한 전쟁의 전초전이 발생할 거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전개되고 있다.[347]

인류를 악마의 질곡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두 번째 물결이 인류를 종말로 끌고 가기 전에 세 번째 물결이 밀려와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미래를 제때에 맞이할 수 있으려면 예전에 몽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먼 곳, 현재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미국 제국을 넘어, 위협적인 다중심적 체제를 넘어, 더 나아가서 하이퍼 제국과 그 사이에 끊임없이 벌어지게 될 무수히 많은 분쟁까지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348]

벌써 적지 않은 세력들이 물밑에서 하이퍼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고 있다. 앞으로 몇 십 년 후, 이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게 만드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348]

민주주의의 충격
잠재적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하이퍼 제국이나 하이퍼 분쟁의 도래를 막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선한 의도만으로 견고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데 송공한 선례가 없다.
반면, 몇 가지 재앙을 예고함으로써 아직도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대로는 이 세계가 유지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체로 그 재앙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동,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 비만 증가, 마약 복용자의 증가, 일상생활에서의 폭력의 증가, 극단으로 치닫는 테러 행위, 부자들이 자신들만의 철옹성 쌓기, 점점 더 조악해지는 볼거리들, 보험회사의 독재, 상품의 범람으로 활용 가능한 시간의 축소, 물과 석유의 부족, 도시 범죄 급증, 점점 더 자주 일어나는 금융 위기, 부자 나라의 해안으로 자꾸만 밀려드는 이민자들의 물결, 환대에서 냉대로 변해 가는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 점점 더 살인적으로 진화해 가는 신기술, 점점 더 광폭해지는 전쟁, 부자들의 도덕적 해이, 자가 감시와 복제가 불러 일으키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기증.....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들 어딘가에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경각심을 일깨울 것이다.
재앙은, 언제나 그렇듯이 변화를 불러오는 가장 효과적인 변호인이 될 것이다.[[349, 350]

하이퍼 민주주의의 전위_트랜스 휴먼과 관계 위주의 기업
역사는 오직 모험심 많고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힘쓰며,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을 앞세울 때에만(이 일은 대체로 이들을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 방향을 튼다.(중략)
미래에 이 창조적 계급 가운데 미래의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개인들이 나타나, 자신의 행복이 결국 타인의 행복에 달려 있으며 인간은 단결하여 평화를 사랑해야만 지속해서 생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상업화된 창의적 계급에 속하지 않으며, 해적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나는 ‘트랜스 휴먼’이라고 부른다.

이타적이고 미래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며, 자신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의 운명과 그 후손들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트랜스 휴먼들은 하이퍼 유목민들의 이기주의나 해적을 무찌르겠다는 단순한 욕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며, 다만 세계의 용익권用益權을 가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트랜스 휴먼들은 정착민들의 덕목(민첩함, 친절, 장기적인 안목)과 유목민들의 덕목(끈기, 기억력, 직관력)을 두루 갖추고 있을 것이다.[353]

오늘날의 트랜스휴먼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멜리나 게이츠(빌 게이츠의 부인)와 테레사 수녀를 꼽을 수 있다. 또한 억만장자들 중에서 자신들 재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한 사람들을 트랜스휴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외에 사회를 혁신한 사람, 학자, 디자이너,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서 타인도 하나의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을 트랜스휴먼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희소성이 지배하는 세계, 즉 시장에서 타인은 언제나 경쟁 상대(희귀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적수,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도 공유할 수 없는 맞수,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훼방꾼)였다. 하지만 트래랜스휴먼에게 타인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게 해 주는 존재다.[354, 355]

트랜스휴먼들에 의해서 타인과의 경쟁을 종용하는 시장경제와 병행해서, 서로가 지닌 재능을 무료로 교환하거나 대중을 위한 공공 서비스 등이 무료로 제공되는 이타적인 경제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내가 관계의 경제라고 부르는 이 같은 형태의 경제는 희소성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가령 지식은 나누어 준다고 해서 그 지식을 주는 사람의 지식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355]

정당과 노동조합을 대표적인 관계 위주의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적십자, 국경없는 의사회, 케어, 그리피스, 세계야생동물보호협회(WWF)를 비롯하여 저개발국가를 돕기 위해 시작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뒤를 잇는다.... 관계 위주의 기업들은 벌써 자본주의의 주변에서, 브루게나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봉건주의 주변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머지않아 영토적인 제한 없이 민간 차원에서 의료, 생태, 사회, 비정부단체, 외교교섭조정 매개자, 아마추어 스포츠 동호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무런 보수가 오가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협력해 오던 모든 종류의 기관들이 여기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땅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에 나선 사람들에 의해 설립될 것이다.[356, 357]

이처럼 매우 특이한 부류의 기업들 덕분에 우리는 이제 국제 공동체(아직 세계 정부라는 말을 사용할 단계는 아니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자연보호(아직 자연에 대해서 공동의 재산이라는 말을 사용할 단계는 아니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세계 민주주의, 나의 용어로 표현하면 하이퍼 민주주의가 벌써 걸음마를 시작했음을 의미한다.[357]

국경은 점차 소멸될 것이다. 개개인은 저마다 동시에 여러 단체나 지역의 시민이며, 이웃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복합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국가는 평화스러운 이웃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360]

<< 범지구적 의회, 범지구 정부, 범지구적 중앙은행 등에 관한 설명 >>

하이퍼 민주주의 세계에서 시장의 지위
시장과 민주주의는 차츰 범지구적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이퍼 민주주의의 각종 기구들이 시장의 효율적인 운영을 조장할 것이며, 세계적 차원에서 대형 도시 인프라나 에너지, 디지털기반설비 확충 공사를 벌임으로써 생산설비의 불완전 고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와 조정 과정을 거친 시장은 더 이상 민주주의라는 성소를 감히 침범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장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들을 개발하고, 도시 인프라를 창조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해 방지 상품, 비만 방지 상품 개발 등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364, 365]

하이퍼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주역들이 얻게 되는 결과_보편적 지능을 포함하는 공동의 재산
하이퍼 민주주의가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인류 공동의 재산은 거대함이나 부, 행복이 아니라 삶을 가능하게 하며 삶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모든 요소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후, 공기, 자유, 민주주의, 문화, 언어, 지식, 등의 모든 요소가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불려 마땅하다.[367]

인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 집단 또는 한 국가를 구성하는 개별적 지능의 합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적․보편적 지능을 창조한다.... 보편적 지능은 잘 알아볼 수 없는 대신 무상으로 주어진다.[368]

하이퍼 민주주의가 낳은 개별적 결과_‘좋은 시간’을 비롯한 본질적인 재산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재산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시간’일 것이다. 좋은 시간이란 각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시간을 말한다. 각자는 좋은 시간을 누리는 동안 자기가 원하는 성공 모델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지닌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재능에는 아직까지 남들은 물론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숨은 재능도 포함된다. ‘좋은 시간을 갖다’는 곧 자유롭게 사는 것과 젊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상업적 체제하에서처럼 서둘러서 ‘이익을 내다’를 의미하지 않는다.[371]

나는 내가 여기에 기술한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실제로는 그 같은 미래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게끔 도와주리라고 믿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거대한 무질서 너머로, 인생 여행을 떠나는 모든 여행자들을 화기애애하게 맞아 주는 지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 사건들은 내가 상상한 사건들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고,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묵묵히 겪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것이다.
문필가는 훌륭한 글은 남겼을 것이고, 미술가들은 걸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한국의 가까운 미래

한국은 단 한 번도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세력, 즉 상업적 체제의 ‘거점’으로 부상할 기회를 잡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된 데는 최소한 세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에 한국은 제조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윤, 이동성, 기술혁신, 운송기술 등보다 농업과 식품산업, 지대地代와 그 지대에 밀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관료들의 이익을 우선시 해 왔다.
둘째, 한국은 오랫동안 해양산업을 소홀히 했다.
셋째, 한국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력으로 ‘창조적 계급’을 키우거나 외부로부터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한국은 이 같은 ‘창조적 계급’ 대신,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애쓰는 이론가나 관리계급, 다시 말해서 개개의 문제를 종합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달인들을 키워냈을 뿐이다.[378, 379]

한국은 이미 물류와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을 천명했으며, ‘동북아시아의 관문’이 되겠다는 전망도 피력했다.... 하지만 금융 허브로서의 야심을 구현시키기란 사실상 이보다 훨씬 요원해 보인다. 서울은 우선 도쿄,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기존의 금융 중심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금융 거래의 투명성, 부패 방지, 족벌 경영체제 등을 타파하기 위해 보다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381]

함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공동체 의식은 한국이 지니니 대단한 강점 중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이 같은 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382]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에 가서야 복지예산으로 GDP의 15.2 퍼센트를 쓰는 수준, 즉 2001년 미국 복지예산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2001년의 일본 복지예산인 GDP 17.5 퍼센트 수준에 도달하려면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1.09명)과 더불어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로 말미암아 조만간 사회 비용 지출의 증가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인하여, 지금까지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장남과 함께 살던 노인들의 퇴직연금(?)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382]

인구 저하를 막기 위해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혁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첫째, 가족정책의 개혁이다. 출산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
둘째, 교육정책이 개혁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지나친 경쟁과 지나친 비용을 유발함으로써 출산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또한 GDP의 3 퍼센트를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교육 개혁은 수업의 양을 줄이면서 노동시장의 현실과 세계 표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이민정책의 개혁이다. 한국은 외국의 재능 있는 인재들에게 국경을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할 것이다.[383, 384]

한국, 중국, 일본 3국을 보다 밀접하게 묶으려는 시도는, 아시아에서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는 시작되기 어렵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과거 역사나 영토 문제로 인한 현안을 한국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쟁 국가를 정치적․경제적으로 가깝게 만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한국은 이 같은 새로운 경제적․지정학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미래에 중심적인 국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385]

옮긴이의 말

왕이나 왕조의 생성과 소멸에 초점을 맞춘 교과서식 역사가 아니라 상거래와 시장의 생성과 발전, 쇠락을 따라가는 역사가 그에게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같은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한다.[387]

이 점만은 분명하다.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 아닌 남도 자유로워야 함을 인정하는 이타적이고 형제애적인 사회, 창의적 계급이 지닌 우수한 재능과 예술적 업적이 고무되고 존중되며 공유되는 미래의 사회를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388]



3. 내가 저자라면

책을 다 읽고 나니 ‘지구의 미래’에 관한 한권의 장편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우리의 미래가 저자가 기술한 것처럼 진전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희망적인 지구의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암울한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 어두운 미래를 임의적으로 그리지만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전에 읽었던 『소유의 종말』, 『부의 미래』 등 미래학 관련 서적보다 훨씬 임의적 기술방식을 취한 것 같은 데, 객관성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밝히는 다음 구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미래상을 보여 주는 데 있지 않다. 나는 미래가,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멋진 잠재적 가능성들이 충분히 발휘되어야한다. 이를 돕기 위해서 이 책을 쓴다.”[19]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아졌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 사례와 다양한 소설적 가정을 흡수하고 즐기기에 바빠서 책의 구성이나 저자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부족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읽혀져 내려가는 것을 보니 전체적인 책의 구성, 저자의 기술 방법이 미래 관련 서적을 기술하는 방법으로 배울점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지금 바로 이 순간, 2050년의 세계가 어떠한 모습일지 결정되며, 2100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준비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가 좋은 세상에 살지, 아니면 우리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지옥 같은 세상에 허우적거리게 될지 정해진다. 그러므로 후손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가 어디에서 오며 미래를 맞이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예측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6]

역사는, 아주 오랜 기간을 두고 관찰해 보면 일정한 하나의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단히 큰 여파를 일으키며 장기간 이어진 소용돌이조차도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세기를 거듭하면서 인류는 개인의 자유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최우선에 놓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는 권리를 지닌 개인, 즉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만큼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개인의 출현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13]

이 책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미래상을 보여 주는 데 있지 않다. 나는 미래가,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멋진 잠재적 가능성들이 충분히 발휘되어야한다. 이를 돕기 위해서 이 책을 쓴다.[19]

미래를 위한 교훈 : 하나의 혁신적인 생각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그 생각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해도, 최소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121]

한편, 미국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점점 커져 간다..... 2006년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이 8달러로 정해져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섯 명의 어린이 중 한 명은 극빈층에 속한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빈부격차는 점점 극단화되는 추세다. 195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12억명)이 하루 1달러로 생활하는 절대적 빈곤층이었으나, 2006년에 들어와서는 인류의 절반이 하루 2달러(새롭게 정한 극빈층 기준)미만으로 생활하며, 13억명을 1달러도 못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반면에 캘리포니아 주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전 인류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한 달 봉급보다 4배나 많다.[148]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이렇게 11개 나라가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들 ‘일레븐’보다 한 단계 밑에서 매우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다른 스무 개 나라들은 아직도 미흡한 제도적 장치 때문에 곤란을 겪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터키,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모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이보다 좀 더 규모가 작은 나라들은 별도의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164]


‘일레븐’에 속하는 나라들 중에서는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총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미국식 모델 대신 한국식 모델을 모방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169]

현역에서 은퇴하는 연령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으며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위험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70세까지 연장될 수도 있다. 최고 연장자들은 후견인이나 지식의 전수자 또는 교육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175]

모든 기업, 모든 국가들은 앞으로 보호와 오락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재편성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세계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하여.[180]

요즘의 추세가 내내 지속된다면,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2025년에는 90세 이상으로 늘어나며, 그 후 곧 100세까지도 도달할 것이다. 아울러 자유의 확대, 특히 여성들의 자유 신장과 더불어 출생률은 계속 저하할 것이며, 이는 적지 않은 나라에서 세대교체가 불가능해짐을 의미한다.(중략)
2025년이 되면, 미국에만 해도 85세 이상의 노인이 1천만 명을 넘게 될 것이다. 1900년에는 4퍼센트에 불과하던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이 33퍼센트로 늘어나는 것이다. 한편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일본은 45퍼센트, 중국은 22퍼센트로 증가할 것이다.[186]

노인들이 정치적으로 다수 집단을 형성하게 되므로, 물가 안정이나 다음 세대로의 비용 전가 등, 현재를 중시하는 정책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품과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 지출(보험 포함)이 현저하게 증가할 것이다.[186]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직자들을 부양해야 하는 몫이 점점 더 과중될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한 명의 근로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경비의 4분의 1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2050년 무렵이 되면 2분의 1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현직 근로자가 부양해야 할 퇴직 근로자의 비율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거나 출생률을 높이고, 이도 저도 불가능하다면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인들의 유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나라들은 머지않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반면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은 인구 구성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2025년 무렵, 유럽연합의 총인구 중에서 아프리카 출신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0퍼센트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있기까지는 엄청난 규모의 인구 이동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미국은 지구상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이러한 움직임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구의 대이동은 도시의 엄청난 팽창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확실하다.[188]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쓰더라도 사람들은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읽을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방문할 수도 배울 수도 없음을, 그렇게 할 시간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7년마다 지식의 양은 두 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2030년이 되면 72일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209]

2050년 무렵, 시장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체제가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한 시장을 중심으로 통합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국가란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내가 하이퍼 제국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이퍼 제국은 우선 공공 서비스를 파괴하고, 뒤이어 민주주의와 정부조직, 국가의 구분을 차례로 파괴할 것이다.[233]

이 모든 서비스들이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서비스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변화로 말미암아 개인과 집단이 정체성이나 인생관, 국가주권, 지식, 권력, 문화, 지정학 등과 맺고 있던 관계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 동안 우리가 당면하게 될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242]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는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묵계처럼 인식되어 왔던 조심성이나 비밀 엄수, 프라이버시 등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비밀이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호기심 역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며, 이와 더불어 선정적인 기사들을 주로 다루던 언론매체들도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유명 인사’들마저도 종적을 감출 것이 자명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2050년 무렵이 되면, 시장은 원격 감시를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는 원격 감시가 아닌 자가 감시에 필요한 상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자기 자신이 규범에 맞춰 생활하는지를 스스로 감시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자가 감시기가 출현하게 된다는 말이다.[247]

세계는 점점 더 핵무기 사용으로 인한 초토화의 공포, 초소형 전쟁의 공포, 네트워크를 통한 전쟁이나 자기 파괴적인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하이퍼 분쟁에 앞서 희소성으로 인한 분쟁, 국경 분쟁, 영향력 확대 분쟁, 해적과 정착민 사이의 분쟁, 이렇게 네 가지 부류의 분쟁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331]

지금까지 거론한 이야기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인간의 비극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류가 이렇듯 자기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기 전에, 하이퍼 제국의 실패와 하이퍼 분쟁의 위협을 감지한 인류는 민주주의 세력들로 하여금 해적들을 물리치고 자살 충동을 억제하라는 이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343]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 정의롭고 평온하고 구성원들이 합심하며 형제애를 발휘하는 세계를 창조하려고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이 같은 세력은 벌써 활동 중이다.
로마 제국 멸망 때도 그랬듯이, 너무 오랫동안 실책을 방치한 탓에 찬란하게 피어날 수도 있었을 과거의 폐허 위에,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 유쾌하게 남들과 뒤섞이고자 하는 욕망, 기존 관념을 어기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이 다시금 태어날 것이다. 핏기 없이 쇠약해진 국가와 물려줄 상속자도 없는 하이퍼 제국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문명이 새로운 가치를 자양분 삼아 속속 자라날 것이다.
시장의 막강한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범지구적인 민주주의가 비로소 정착하게 될 것이다. 범지구적 민주주의는 하이퍼 분쟁보다 훨씬 시급한 다른 전쟁들, 이를테면 인간의 광기와 이상 기후, 불치병, 소외, 인간 착취, 빈곤 등을 상대로 하는 전쟁들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343, 344]

잠재적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하이퍼 제국이나 하이퍼 분쟁의 도래를 막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선한 의도만으로 견고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데 송공한 선례가 없다.
반면, 몇 가지 재앙을 예고함으로써 아직도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대로는 이 세계가 유지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체로 그 재앙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동,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 비만 증가, 마약 복용자의 증가, 일상생활에서의 폭력의 증가, 극단으로 치닫는 테러 행위, 부자들이 자신들만의 철옹성 쌓기, 점점 더 조악해지는 볼거리들, 보험회사의 독재, 상품의 범람으로 활용 가능한 시간의 축소, 물과 석유의 부족, 도시 범죄 급증, 점점 더 자주 일어나는 금융 위기, 부자 나라의 해안으로 자꾸만 밀려드는 이민자들의 물결, 환대에서 냉대로 변해 가는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 점점 더 살인적으로 진화해 가는 신기술, 점점 더 광폭해지는 전쟁, 부자들의 도덕적 해이, 자가 감시와 복제가 불러 일으키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기증.....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들 어딘가에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경각심을 일깨울 것이다.
재앙은, 언제나 그렇듯이 변화를 불러오는 가장 효과적인 변호인이 될 것이다.[[349, 350]

이타적이고 미래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며, 자신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의 운명과 그 후손들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트랜스 휴먼들은 하이퍼 유목민들의 이기주의나 해적을 무찌르겠다는 단순한 욕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며, 다만 세계의 용익권用益權을 가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트랜스 휴먼들은 정착민들의 덕목(민첩함, 친절, 장기적인 안목)과 유목민들의 덕목(끈기, 기억력, 직관력)을 두루 갖추고 있을 것이다.[353]

하이퍼 민주주의가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인류 공동의 재산은 거대함이나 부, 행복이 아니라 삶을 가능하게 하며 삶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모든 요소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후, 공기, 자유, 민주주의, 문화, 언어, 지식, 등의 모든 요소가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불려 마땅하다.[367]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재산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시간’일 것이다. 좋은 시간이란 각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시간을 말한다. 각자는 좋은 시간을 누리는 동안 자기가 원하는 성공 모델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지닌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재능에는 아직까지 남들은 물론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숨은 재능도 포함된다. ‘좋은 시간을 갖다’는 곧 자유롭게 사는 것과 젊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상업적 체제하에서처럼 서둘러서 ‘이익을 내다’를 의미하지 않는다.[371]

나는 내가 여기에 기술한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실제로는 그 같은 미래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게끔 도와주리라고 믿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거대한 무질서 너머로, 인생 여행을 떠나는 모든 여행자들을 화기애애하게 맞아 주는 지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 사건들은 내가 상상한 사건들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고,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묵묵히 겪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것이다.
문필가는 훌륭한 글은 남겼을 것이고, 미술가들은 걸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함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공동체 의식은 한국이 지니니 대단한 강점 중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이 같은 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382]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에 가서야 복지예산으로 GDP의 15.2 퍼센트를 쓰는 수준, 즉 2001년 미국 복지예산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2001년의 일본 복지예산인 GDP 17.5 퍼센트 수준에 도달하려면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1.09명)과 더불어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로 말미암아 조만간 사회 비용 지출의 증가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인하여, 지금까지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장남과 함께 살던 노인들의 퇴직연금(?)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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