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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일 06시 18분 등록
 

조선의 프로페셔널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

안대회 지음/휴머니스트


1. 저자에 대하여

안대회


저자는 한문학을 하였다. 그는 최근에 세상에 빛을 쬐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한문학 속에서 발굴하여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의 프로페셔널]은 그 중의 일부의 인물들을 엮은 것이다.


그가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는 자신의 현재의 활동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칼럼의 제목은 ‘안대회의 조선의 비주류 인생’이다.


저자는 몇 년전부터 주류 인생에서 비주류 인생으로 관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발돋움한 10명의 인물을 조명해 <조선의 프로페셔널>을 내게 되었다.


19세기 전반기에 조수삼이란 시인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71명의 특정한 인물의 궤적을 시로 읊고 그들의 인생을 주석처럼 산문으로 쓴 형식의 책 《추재기이》가 저자의 흥미를 끌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의 그늘진 응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음지에서 살아갈망정 인간으로서 가치를 발산하여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남다른 시선으로 새롭게 인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인생을 색다른 시선으로 해석하였다.


저자는 기록물 속에서 귀족사회 뿐 아니라 전 하층민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일부나마 복원하고 있다. 보수적인 기록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기록들이 사회의 하층을 구성하는 갑남을녀의 삶에까지 관심을 표시한 덕분에 저자는 문헌들 속에서 옛 문화가 상층의 귀족적 문화만은 아니었음을, 하층에도 흥미롭고 귀중한 문화가 존재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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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박사이며,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담백한 글 솜씨로 옛글과 옛사람의 삶을 구수하게 풀어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탄탄한 실증적 자료 수집과 해석, 그리고 연구에 10여 년 이상을 몰입해온 한문학자이다. 지금은 수백 년을 넘나드는 감성의 고리와 사유의 흔적을 찾아 고전 속을 종횡무진 횡단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 《조선후기 시화사》, 《7일간의 한자여행》 등이, 옮긴 책으로 《산수간에 집을 짓고》 《한서열전》, 《궁핍한 날의 벗》, 《북학의》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지은이의 말 : 영혼이 깃든 200년 전의 프로페셔널 이야기


[4] ‘진정한’ 전문가란 한 분야에 흠뻑 빠져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룬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람을 이끌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텐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 전문가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에는 반대한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5] 프로를 갈망하지 않는 시대의 프로들은 열정과 진정성에서 오히려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 이 책에 소개된 ‘조선의’ 상황이 프로를 갈망하지 않은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가 소개한 인물들은 정말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5] 이백 년 전 한국 사회에서 그런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프로들을 발굴하여 조명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옛 문헌들을 좌충우돌 뒤져서, 오랜 세월 숨겨져 있던 고귀한 인간과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이 세상으로 불러내고자 합니다. 잘만 된다면, 그 동안 몰라서 망각하고 있던 옛 전문가들을 통해 역사와 문화, 인물과 사회의 새로운 원형과 상을 창조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집필 의도


[6] 사실은 그 시대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대개 정치, 교육, 경제와 같은 거시적 문제에 쏠려 있었으므로 그때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 성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크게 주목받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분야에서 자기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이 우리가 추측하기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리와 다른 짓 하는 놈!”이란 비난의 소리이기 일수였지요. 그 동안의 역사도 이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아온 것은 아닐까요?


[9] 자기가 선택한 한 가지에 몰두함으로써 최고의 기술과 능력을 발휘하려 했던 것이지요. 천재적 능력이나 가문의 배경에 안주하지 않고 아무 조건 없이, 자기가 좋아해서 선택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벽(癖)과 치(癡)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벽과 치만으로 이들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니아 또는 폐인(廢人) 역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전단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마니아의 세계에서 한 단계 비약하여 그 분야 최고가 되기를 꿈꾸었고 결국은 성취했습니다.

--> 저자의 어투가 앞에 사람을 두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조근조근하고 있는 듯한 어투이다.


[10] 치열함과 열정은 간혹 자신의 몸을 갉아먹습니다. 자신의 혼을 넣어 프로가 되기 위한 길은 자신의 영혼과 몸을 불태워버리기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처세의 달인들은 앞서나가는 사람 거꾸러뜨리기를 잘합니다. 현실의 냉혹함은 좌절과 시련을 안기고 프로들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몸부림이 때로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3] 지금은 프로정신이 금전으로 바로 계산되지만, 당시에는 금전보다 역사와의 승부였습니다. 그들은 목숨과도 바꿀 만한 매력적인 자기 분야를 개척하여 최고가 되기 위해서 조건 없이 한가지 일에 도전한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불어넣어 자기 삶을 완성한 아름다운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케케묵은 문헌의 검은 글자들 사이에서 그들을 불러 깨우는 작업이 내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01. 천하 모든 땅을 내발로 밝으리라 - 여행가 정란


[29] 제 둥지만 돌아보는 새와 같이

떠나려다가 망설이며 빙빙 도는 사람들

그대는 절세의 용맹함 지녀서

단칼에 세상에 묶은 그물을 끊어버렸네.


수만의 베게 위에서 코를 골며

한창 부귀를 꿈꾸는 사람들

그대 등반한단 말을 듣고선

되레 흉보네. “무리와 다른 짓 하는 놈!”


--> 우리나라에선 ‘무리와 다른 짓 하는 놈’이란 말은 아주 큰 욕이었나보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도 생각의 바탕에 깔려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감수하며 하는 것이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곳곳에서 ‘무리와 다른 짓 하는’ 이들의 힘겨움과 그들의 용기를 드러냈다.


[32] 살아있는 사람에게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정신이요, 사물과 접하는 것은 눈(眼)일세. 그 정신이 막히면 속이 답답하고, 세상 구경하는 것이 협소하면 시야가 좁아지지. 정신과 세상 구경, 둘 다 협소하면 사람의 기운이 크게 펼쳐지지 못하는 법이네. 늙은이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사는 자들을 보면, 겨우 진흙구덩이의 지렁이나 새우젓 속의 등에에 불과하다네. ........ 허황한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궁리하느니 안목을 크게 넓히는 것이 낫네. 해동의 나라가 비록 좁기는 하지만, 내가 힘을 다해 본다면 내 정신을 확트게 하여 넓힐 수 있네.


[44] 정란은 자신의 여행 체험을 후세에 전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서첩을 엮으면서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불후첩》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는 이 화첩을 당대의 명사인 채제공, 성애중 등에 보이고 글을 받았다. 정란을 보고 체제공은, “당신이란 사람 자체가 썩어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다”라며 그림이나 찬사가 필요없다고 말했다.

--> 이 책을 읽을 때는 몰랐던 것인데, 나중에 정리하다가 이 저자는 옛 문헌들에서 조상들이 살았던 방식, 그들의 정신, 그들의 교류 등을 읽어내고 알아내는 일에 대단히 흥미를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 책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한 위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자. 그것은 아주 작은 구절일 수 있다. 단지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라는 구절일 수도 있을 텐데...그것은 저자의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57]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굳세게 자립하여 품은 뜻을 실천해야 할 뿐, 이 칠척(七尺)의 몸을 과거시험 답안지나 금전출납부 속에 매몰시켜서야 되겠는가? 정리사가 삼한 땅의 아름답다는 산수를 전부 유람하고 드디어 바다를 건너 탐라에 들어가 한라산을 유람한다고 한다.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비웃는다. 속된 뿌리가 골수에까지 파고든 사람은 비웃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백 면 뒤에 비웃는 사람의 이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니면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 이용휴<정일사의 산행도에 부치다>, 《혜환잡저》


02. 승부의 외나무다리를 걸으며 오른 반상의 제왕 : 바둑기사 정운창


[63] 조선 제일의 국수가 무영의 신진 기사에게 무참하게 진다는 내용이 특히 야담에 자주 등장한다. 예상치 못한 역전 드라마가 제공하는 충격성과 흥미성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리라. 극적인 승부의 세계를 묘사한 글에는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바둑계의 실상과 국수의 계보가 숨겨져 있다.


[65] 최고가 아닌 바둑기사는 야담에까지 등장하진 않는다. 최고만이 야담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야담에 등장하는 국수의 행동은 신화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반면, 저명한 사대부들이 쓴 국수의 전기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다룬다.

--> 이점에 동의한다. 최고만이 야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69] 정생은 처음에는 사촌 형인 아무개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5,6년 동안 문밖으로 발이 나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날마다 자고 먹는 것을 잊기 일쑤였다. 사촌 형은 늘, “이보게 아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세상을 휘어잡기에 넉넉하다네”라고 만류했으나, 정생은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76] 재능을 지닌 선비가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이 그래 이런 정도란 말인가? 내 차마 걸음을 되돌릴 수 없구나! 내가 떠나온 고향 땅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얼추 수천 리다. 고갯길의 험준함과 나그네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기예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자웅을 겨뤄서 잠깐 사이의 상쾌한 기분을 맛보자는 것뿐이다. 허나 끝끝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갈 모양이니 어찌 기구하지 않은가?


[87]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리한 자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패배한 자에게 모욕과 창피가 가해져 무대 뒤로 사라지는 건 고금의 차이가 없다. 승부는 단순히 명예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의 차별까지 낳는다. 대중들은 새로운 강자를 존경하고 경제적 대우를 하고, 패비한 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김종귀는 그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만회하기 위하여 저같은 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들 사이에 양보와 타협이 존재하는 매커니늠에는 의리만이 아니라 생활(生活)도 존재한다.


[90] “형세를 강하게 가져가면 남들이 즐거워하지 않고 형세를 낯주자니 내가 참지 못하겠다.”

* 김덕령의 일화


[96] 정운창은 “시골 사람으로 일찍부터 바둑 돌줄을 알아 밥을 먹지요.”라고 답해, 그들의 생계가 바둑 솜씨에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03. 화가, 최북| 내 붓끝에서 모든 것이 태어난다


[101] 조선 후기에 인간의 개성과 자의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단이다. 그림 자체가 전문적 수련과 집중이 필요한 예술일 뿐더러, 화가들이 특히 민감한 감각과 자유정신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이 말에 물음표를 붙여 두었다. 공감하지 못한 채 정말 그러한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101] 최북은 흥미로운 인생을 산 화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파격적인 기행(奇行)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오히려 그림이 평가절하된 느낌이다.

*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조화로운 인간을 원하고, 또 그림이전에 그 사람을 먼저 평가하기도 하니까.

[102] 개명(改名)과 개호(改號)는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인생관이 그 안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단의 돌림자를 거부하고 북으로 개명한 것부터 특별하다.  하지만 자호인 칠칠(七七)과 호생관(毫生館)에 비하면 오히려 이름은 평범하다.


*[103] 18세기 이후 자의식 강한 지식인들은 자호(字號)를 아주 독특하게 만들어쓰는 행태를 보였다. 쉽게 의미가 드러나고 지나치게 교훈적이며 식상하기까지 한 이름짓기를 거부하고, 아주 독특하여 쉽게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괴상한 이름을 즐겨 지었다.


[105] 칠칠은 당나라의 유명한 신선인 은천상의 호다. 그는 아주 유명하여 ≪태평광기(太平廣記)≫ ‘신선’ 항목에 ≪속전선≫에 그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은천상은 스스로를 칠칠(七七)이라 하고 다녀 세상 사람들이 그를 칠칠이라 불렀다. 그는 날마다 술에 취해 “경각 사이에 술을 빚고, 제철 아닌 꽃을 피우지.”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나중에 그는 가을에도 진달래꽃을 피워다.

최북은 은칠칠의 호를 빌려 중의적으로 사용했다. 이용휴는 최북의 금강산 그림에 붙인 글에서 “은칠칠은 때도 아닌데 꽃을 피우고, 최칠칠은 흑이 아닌데도 산을 일으켰다. 모두 경각 사이에 한 일이니 기이하도다.”라고 써, 최칠칠을 은칠칠과 연결하였다. 틀림없이 최북은 칠칠이란 이름에서 현실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꽃을 피우는 신비한 능력을 연상했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간이라는 암시로 읽을 수 있는 명명이다. 이는 최북의 그림이 현실의 충실한 모사보다 사의(寫意)에 기울고, 주체 또한 속된 세상을 벗어나 자연에 접근하는 것과 연결된다.

--> ‘칠칠’과 ‘호생관’에서 엿보는 화가 최북의 자의식

내 이름은 뭘로 지을까? 남우(南羽), 이순(耳順)

그런데 왜 남우라고 생각했지? 지금은 그 의미를 잊었다. 따뜻한 남쪽? 남우, 나무, 부르기 쉬운 이름이라고? 책을 보니 누군가의 이름이다.

거물 현(玄)자가 좋아졌다. 그윽하고 깊은 멋, 심오하고 드넓은 멋, 그리고 막막하고 고요한 멋... 단순히 ‘검다’가 아니라 ‘심오하다, 그윽하다’라는 그 말에서 우주가 연상된다. 하늘은 그 빛이 검다. 하늘천,따지,거물현,누를황. 우주는 그 검은 빛 속에 무엇을 담고 있나?


[106] 중생은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 있는데, 나는 보살은 호생(毫生, 붓에서 태어남)이라고 생각한다. 이유인즉, 화가가 손가락 끝에서 빛을 내어 붓을 잡을 때 보살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이런저런 뜻이 몸을 만들어내고, 내가 말한 건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남우(男羽)가 내 집에서 아라한 대사를 그렸다. 내가 그래서 그에게 호생관이란 인장을 주었다.

* 동기창의 글에서 ‘호생(毫生)’이라는 의미


[107-109] 화가의 붓끝에서 위대한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호생관이라는 이름이 드러내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면 최북이 호를 호생관으로 바꾼 건 자긍심의 소산이다.

.... 

칠칠이 붓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의중을 담고 있듯이, 호생관에도 화가의 붓끝에서 보살과 같은 위대한 존재를 탄생시킨다는 자긍심이 담겨 있다.


[124] 그림은 내 뜻에 맞으면 그만입니다. 세상에는 그림을 아는 자가 드뭅니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백 세대 뒤의 사람이 이 그림을 보면 그 사람됨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저는 뒷날 저를 알아주는 지음(知音)을 기다리렵니다.


[136] 최북의 말년은 비참했고, 그의 죽음 역시 참담했다. 그가 죽은 뒤에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다. 누가 무어라 하든 그는 온몸으로 개성과 자유를 발산한 예술가였다. 그의 행동은 이해받지 못했으나 그의 예술은 시대가 흐를수록 한결 빛이 난다.

* 나는 이런 서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의 인생보다는 그의 작품으로 이해해야한다. 물론 그 사람의 생애를 이해하면 그의 작품이 잘 이해되겠지. 그런데, 하려고 하는 것은 예술가의 삶이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으니까. 그의 삶에 대한 누구 누구의 자료는 이렇게 전한다. 그의 일화는 어떠하다가 주를 이룬다.  나는 이 책이 예술가를 다룸에 있어 적당한 방법을 선택하지 못했다고 본다. 여러사람을 모두 같은 방법으로 묘사를 한다. 소설이나 시를 쓴 사람을 이렇게 소개했다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몇점 보지 않은 채 그의 서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최북의 그림이 별로 전하지 않아서 작품으로 사람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야기한 책처럼 흥미가 없다.


04 조각가, 정철조| 조선의 다빈치


[150] 고려시대 이래로 바람 풍(風) 자 모양의 평범한 벼룻돌을 답습해 오던 조선의 벼루 제작에 정철조는 큰 변화를 일으켰다. 상투적인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국화나 귀뚜라미 같은 문양을 새겨넣어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했다. 벼루는 그저 먹을 가는 기능만을 위한 도구로 내버려두지 않고, 모양과 장식을 바꿈으로써 멋진 예술품으로 살려냈다.


[154] 이용휴는 또 그가 소장한 석치(石癡)의 벼류에 “내 이름이 갈아 없어지지 않은 건 네가 갈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석치가 너를 통해 내 명성을 영원하게 하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연명을 새겨넣었다. 정철조가 제작한 벼루에 열심히 먹을 갈고 글을 씀으로써 문인의 명성을 후세까지 전하게 만들어주니 고맙다는 의미를 담았다.


[175] 선각적 지성인 속에 정철조를 버젓이 한 자리를 점한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유독 정철조만은 씻은 듯이 이름이 사라졌다. 왜일까? 내 판으로는 저서가 없어서다. 첫머리에서 읽은 박제가의 시에 “죽은 뒤에 문장을 남기는 건 우스워 죽겠네.”라고 했는데 그런 호방한 인생관의 결과다.

저서가 있어 이름을 지금까지 혁혁하게 남겼기에 굳이 다시 드러낼 필요가 없는 지성인들과는 다르다.

* 자신이 이룬 것을 책으로 엮어 남기는 것은 다른이에게 전한다는 것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177] 정철조가 언젠가 명릉 참봉으로 있었다. 하는 일이 별로 없는 한가로운 직책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무엇으로 소일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건 어렵지 않네. 나무 그늘 밑으로 가서 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보면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서로 교차하고 있는 것이 보이네. 절로 한없는 의취가 있지.”


05. 무용가, 운심|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최고의 춤꾼


[195-197] * 박제가가 기록한 <검무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생생한 표현이다.


[199] 정적인 동작 위주로 짜인 춤사위 사이에서 이렇듯 역동적인 검무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해보면, 검무가 몇십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춤으로 발돋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례가 없는 역동성이 세상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역동성에 비례해 춤이 끝난 뒤의 정적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 하지만 운심은 무대에 올라서 곧바로 춤을 추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숨죽여 기다리던 관객이 조바심칠 때 비로소 빠른 춤사위를 펼쳐나갔다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을 두고, “세상에서 이른바 운심의 태도라는 게 이런 것이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다. 최대한의 정적감과 기다림 뒤에 펼쳐지는 역동적이고 폭발적인 춤사위는 관중을 흠뻑 매료시켰다. 이를 보면, 운심은 관중이 심리까지 요리할 줄 알았던 무용가라고 할 수 있겠다.


[205] 연암은 기생 부류에서 광문이 누렸을 인기와 권위를 말하려고 썼겠지만, 역으로 당시의 협객, 논다고 품을 재는 풍류남아들이 운심에게로 몰려온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 글을 해석하는 능력? 자신이 연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글을 찾고 그 속에서 그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을 연구한다?


[207] “네 검무가 능히 나로 하여금 초서(草書)의 비결을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


[213]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名妓)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 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이 만족이다.

그녀는 늙었어도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열정과 광기를 지녔다. 성대중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운심의 풍정과 성깔이 저와 같기에 한 시대에 명성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평했다.

.....

검무라는 자기 예술의 성취에 대한 당찬 오기가 아닐까? 다른 이들이 무어라 하든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세속의 질곡과 자기통제 속에 가두어두고 있다가, 술기운과 명승지의 장관 앞에서 우연히 발설한 것이리라.


[214] 금강산 구룡연에 오른 최북은 술에 취해, “천하 명인 최북이는 마땅히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며 투신하려 했다. ....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요, 그들의 풍정과 성깔이 비슷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보면 당시 예술가에게는 빼어난 산천에 예술혼을 묻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06. 책장수, 조신선| 세상의 책은 모두 내 것이니라


[219] 애서벽(愛書癖)을 지난 서음(書淫)에게는 책과 관련된 것을 보면 어느 것이나 눈이 번쩍 뜨인다. 옛글을 읽다가 만나는 숱한 사람들 속에서 책을 사랑한 이들에게 눈이 한번 더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220] “탐독완시(耽讀翫市), 우목낭상(寓目囊箱)”이란 구절은 “독서에 빠져 시장을 돌아다니고, 눈을 한번 거치면 주머니와 상자에 넣어둔 듯 기억한다”는 뜻이다.


[220] 내가 읽은 글로는 청나라 말엽에 서지학의 명저 ≪서림청화≫를 섭덕휘란 학자의 장편시 <환빈이 책을 사는 노래(奐彬買書行)>가 가장 인상깊었다. 환빈은 섭덕휘의 자다. 매우 긴 시인데 앞 대목만 보면 이렇다.

책을 사는 것을 첩(妾)을 사는 것과 같아

고운 용모에 마음 절로 기뻐지네.

첩이야 늙을수록 사랑이 식어가지만

책을 낡을수록 향기 더욱 강렬하지.

책과 첩, 어느 것이 더 나을지

쓸데없는 고민이 자꾸 이어지네.

때로는 내 방에 죽치고 있는 첩보다

서가에 가득한 책이 더 낫지.


[224] 조신선은 아마 조선조 서쾌들 가운데 후세에 이름을 당당하게 전한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서점 주인이 아니라, 구매자를 직접 열성적으로 찾아다니며 인간적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225] 조선시대 지식의 공급과 유통을 국가가 관장하였다.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서적인데, 조선왕조는 정책적으로 서점의 설립을 금하거나 억제하였다.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정책인데 그에 따라 서적은 떠돌이 장수인 서쾌가 담당하게 되었다.

[226] 정상기는 서책의 공급과 수요가 엣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원활한 유통을 위해 서사를 설치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정조시대에는 박제가가 북경(北京)의 서점거리인 유리창(琉璃廠)을 방문했을 때 그러한 욕구를 드러낸 적이 있다. 서사 한 군데를 들어간 박제가는 피곤에 지친 주인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매매 문서를 뒤적이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서점에서 활발하게 서책이 팔려나가는 것에 자극을 받은 그는 그 순간 조선을 떠올리며, “우리나라의 서쾌는 책 한 종을 옆에 끼고 사대부 집을 두루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어떤 때는 여러 달 내내 팔지 못하기도 하는데”라며 한숨을 토했다. ≪북학의≫에 전하는 조선 서쾌의 실상이다.

* 이 책을 통해서 서쾌 조신선 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생활상을 본다. 한사람을 기술할 때 그가 살았던 시대를 뚝 떼어놓고 기술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것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의 서술은 묘한 맛이 있다.


[234] 조수삼은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어디를 다니든 조신선은 책을 파는 장수답지 않게 걷지 않고 늘 뛰어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나는 듯이 뛰어다녔다. 조수삼은 그런 그를 ‘뛰어다니는 사람’이라고 곳곳에서 언급하였다. 해가 뜨면 밖으로 나와 “저잣거리로 달려갔고, 골목길로 달려갔고, 서당으로 달려갔고, 관아로 달려갔다”고 묘사했다. 책을 파는 일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객을 가리지 않으며, 한시도 지체않고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서적 외판원의 모습이었다.


[242] “책을 모두 당신이 가지고 있던 거요? 또 책의 내용을 아시오?”

“나는 책이 없소이다. 아무개가 어떠어떠한 책을 몇 년 소장하고 있다가 그 가운데 어떤 책을 나를 통해 몇 권 팔았을 뿐이오. 그 때문에 책의 내용은 모르지만 어떤 책은 누가 지었고, 누가 주석을 달았으며, 몇 질(帙)에 몇 책인지는 충분히 알지요. 그런고로 천하의 책이란 모두 내 책이지요. 책을 아는 천하 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게요. 천하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도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것이요. 천하 사람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나는 날마다 술을 마셔 취하지도 못할 것이오. 이야말로 하늘이 천하의 책을 가지고 내게 명령하여 나로 하여금 천하의 책을 모두 알라고 한 것이지요.”


[243-245] “옛날에는 아무개의 할아버지와 아무개의 아버지가 책을 사들이고 그 자신도 귀한 몸이 되고 높은 벼슬아치가 되었지요. 지금 와서는 그 아들과 손자가 책을 팔아먹고 집이 곤궁해지더군요. 나는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겪었지요. 천하에는 슬기롭고 어리석으며 어질고 못난 사람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모여 수맣은 사람이 쉬지 않고 생겨나더군요. 내가 그저 천하의 책만을 이해랄 뿐일까요? 책을 통해 천하의 인간사도 이해하지요.”

....

전에 없이 장서가가 많이 출현한 시기가 바로 조신선이 활동하던 시대다. 책이 수집되고, 수집된 책이 흩어지는 과정을 인생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


[245] 장서를 대대로 지키는 건 그 집안의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이고, 그 집안의 현재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징표였다. 심지어는 국가조차 그렇지 않은가? 조선의 국운이 기울자 가치있는 책이 대거 일본으로 넘어간 것을 보라. 집안이 망하기 전에 먼저 그 집안의 책이 세상으로 흩어진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정말 가슴 저린 일이 아닐 수 없다.


[245] 상아 찌가 꽂힌 천 권 책이 씻은 듯 사라져서

옛사람의 원업이 너무도 썰렁해졌네.

가산 털어 사기는 담요에 불을 붙이듯 쉬우나

목숨 걸고 구해본들 작은 것 얻기도 어렵지.

세도있는 자야 빈손으로도 얻는 것이 책이요

바보 같은 놈은 푼돈도 아까워하는 게 책이지.

사방에서 하나씩 모은 것이 뜬구름처럼 틑어지니

지난 고생에 넋을 놓고 홀로 난간에 기대섰네.

* <책 흩어지기(散書)>, ≪박옹시초≫권 1 중에서, 이명오(조선시대 시인)가 쓴 글


[247] 누가 그에게 나이를 물으면 조신선은 웃으며 “잊어버렸소”라고 대답하곤 했다. 어떤 때는 “서른다섯이라오”라고도 했다. 올해 나이를 물은 사람이 다음 해에 다시 “어째서 또 서른다섯을 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요?”라고 힐난하면 조생은 웃으며, “사람은 서른다섯일 때가 좋다고 하길래 그러지요. 나는 서른다섯 살로 내 아니를 마칠까 하여 나이를 더하지 않는다오”라고 했다.


07. 원예가, 유박| 번잡한 세상을 등진 채 ‘꽃나라’를 세운 은사


[260] 화(花)라는 글자는 초(草)에서 나왔고 화(化)에서 나왔다. 천지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사물이 하나가 아니지만 그 기묘한 변환(變幻)의 극단을 달리는 것으로 초목의 조화에 비할 게 없다. 비유하지면 지인이 때때로 기묘한 말을 찬란하게 하는 것 같고, 꽃봉오리가 활짝 피는 사이에 모시 오묘한 무늬가 보일락말락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만약 천지간에 꽃이 없던 상황에서 처음으로 꽃 한송이가 피었다고 하자. 그 꽃을 본 사람들은 이상한 물건, 괴이한 일로 여길 테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거짓이라 여겨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화옹이 부린 장난기는 꽃에서 가장 심하다.

* 18세기 중반의 이봉환(李鳳煥 1710-1770)이 꽃을 감상하는 방법을 두고 한 말이다.


[268] 그 가운데 기이한 것과 예스러운 것을 취하여 스승으로 삼고, 맑은 것과 고결한 것을 취하여 벗을 삼으며, 소담tm러운 것과 호려한 것을 취하여 손님을 삼는다. 이러한 즐거움을 남들에게 양보하고자해도 사람들은 이것을 버린다. 그러니 나홀로 즐겨도 다행히 금하는 이가 없다. 기쁠 때도 화날 때도, 시름겨울 때도 즐거울 때도, 앉아 있을 때도 누워 있을 때도, 언제나 화병의 꽃에 의지하면서 내 몸뚱어리를 잊은 채 늙음이 곧 이를 것도 알지 못하다.

* 이런 심정이었으니 꽃을 가꾸는 한 길로 가겠지.


[273] 이렇게 꽃을 열성적으로 구하는 유박에게 감동하여, 나주에는 뱃사공들이 먼 곳에 가면 자발적으로 특이한 꽃을 구해다 주기까지 했다. 그는 그 지역에서 화훼 전문가로 명성을 누렸다. 그렇게 화원을 꾸미는 과정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난 도움이 있었다.


[280] “매화가 나고 내가 매화다”


[283] 풍설잔재야(風雪山齊夜)에 상대일수매(相對一樹梅)라

웃고 저를 보니 저도 나를 웃는구나

웃어라 매즉농혜 농즉매(매화가 나요, 내가 매화다)인가 하노라


[290] 꽃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평가해 그 높낮이를 가려내고, 다양한 품종의 꽃이 지닌 특징을 파악하는 건 안목과 미학의 깊이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것은 자기 멋대로의 잣대를 적용한 자의적 평가가 아니라, 강희안 이래 내려온 조선 사대부의 미의식을 바탕에 깔고 중국 측 전례까지 섭취한 뒤에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유박은 단순한 원예업자나 화훼 전문가 수준을 넘어, 학술적인 의미에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을 만하다.

* 저자의 이 말에 동의한다. 어느 시대의 미의식은 그 시대의 산물만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로부터 축적해 온 미의식이다.


08. 천민 시인, 이단전| “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 문인


[295]청년은 소맷자락에 넣어온 시집을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천천히 시집을 훑어보고선 좋다 나쁘다 말도 없이 곁에 있던 벽도화(碧桃花) k지 하나를 꺾어 청년에게 주었다. 청년은 깜짝 놀랐다. 의사 표현이 담긴 기발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는데, 벽도화 가지는 어떤 평가를 뜻하는 것일까?


[296-297] *이용휴가 이단전에게 써준 서문은 저자가 기술한 대로 몹시도 특이하다.


[307] 이덕무는 “붓 한 자루 먹 한 개를 가지고 필운대와 삼청동 사이를 오가며 ‘부서진 시 고쳐요!’라고 크게 외치면 한 사발 고기 한 접시 못 얻겠나?”라며 시인의 궁핍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313-314] 바람벽이 고요하니 벌레들이 입을 들이대고

뜰이 비자 학 하나만이 지키고 있다.


바위틈 샘물은 지혜롭게 울고

나무 등걸의 새는 천치인 양 앉자있다.


젓대 소리는 밤을 흔들며 감돌고

등불 그림자는 강을 거두며 돌아간다.


새벽녘 빈 다락에는 외로운 달이 나오고

두 산 사이 흐르는 물에 일만 솔은 시리다.


[318] 조물주는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해동 한 모퉁이에 나를 낳았을까?

심성은 바보와 멍청이를 겸했고,

행색은 말라깽이에 홀쭉이.

사귀는 이는 모두가 양반이지만

지키는 분수는 남의 집 종놈.

천축(天竺)에 혹여라도 가게 된다면

무슨 인연인지 부처께 물어보리라.


[321] “예절이란 게 우리 같은 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가? 이것은 잠방이 속에 사는 이와 같은 것일 뿐이야! ”


[322] 그야말로 자유롭게 세상을 휘저으며 살고자 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326] “부귀란 수레바퀴가 두르는 것과 같아. 나는 패하지 않는 부귀를 본 적이 없어. 해진 옷 한 벌에 막걸리 한 잔이면 나는 족해. 죽으면 바로 그 자리에 묻어줘. 허나 이 삶 앞에 있는 숲과 물, 바람과 달은 어쩌면 좋아!”


[329] 이단전, 그는 “그래 나는 종놈이다!” 며 세상을 조롱했다. 노비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문화에 참여하려 했던 한 종의 처절한 삶이, 군더더기 없는 맑고 고고한 심상의 시로 남았다.


09. 음악가, 김성기| 나는 학을 내려앉게 한 현악기의 거장


[346] 완벽한 전환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떠한 세속적 속박에도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기를 원한 건 아닐까? 남을 즐겁게 하기위한 음악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한 자오(慈娛)의 음악을 바란 건 아닐까? 그는 본래 낭유(浪遊)를 즐겼다고 한다. 호를 낭옹(浪翁)으로 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낭이란 곧 만랑(漫浪)으로,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사람을 일컫는다.


[347] 대중을 위한 연주를 그만 두었을 때 그는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367] 이 장례에는 오직 제자 둘만이 술과 악기를 들고 참석했다. 어떻게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이나 실은 몹시 엄숙하면서도 비장하다. 술을 따르고 통곡을 하고,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배운 음악을 연주하여 저승으로 가는 스승을 보낸다.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스승과 제자만이 교감하는 장례이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하늘과 땅, 새와 짐승 그리고 바람은 함께 슬퍼했다. 조선시대의 음악인들은 스승의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추모하곤 했다. 진정으로 위해단 예술은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0. 과학기술자, 최천약|자명종 발명에 삶을 던진 천재 기술자


[371] 바늘을 수입한 조선사회


[372] 기술자를 천시한 결과는 국가의 위기를 불렀다.


[405] 인재는 다른 시대에서 빌려올 수 없다.


[405] 대체로 기술자는 시간이 흐르면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최천약을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그가 만든 많은 왕실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고, 그가 만든 자, 그가 새긴 비석 등이 문화재로 남아 있다. 그런 유물 속에 기술자의 이름을 새겨놓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사료를 통해서 그것을 만든 기술자의 이름을 복원할 수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같은 기수의 연구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그의 리뷰를 읽었다. 눈물이 났다. 리뷰 속에는 ‘자신의 길을 간 사람들’의 힘겨움이 들어있었다. 나는 왜 그게 내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했는지 묻지 않았다.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묻지 않았다. 바로 그점이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아프게 읽은 이유이고, 책을 밋밋하게 읽은 이유가 될 것이다.


‘리뷰에는 감동한다. 그러나 책에는 감동하지 않는다 ’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그 모순은 내게서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0명이 조선의 ‘프로페셔날’의 삶과 업적을 기술하고 있다. 삶에는 그들의 열정과 그 열정이 댓가를 치러야 했던 역경이 포함된다. 10명 중에 많은 이들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한 업적 모음집이 아니고, 찬양집이 아니다. 평가절하된 ‘전문가’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눈으로 한번 그들을 돌아본다. 그것은 바로 평가절하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인의 눈으로 한번 더 돌아본다. 그들을 이해했던 사람들의 눈이다. 이 두 번째의 시선이 이 책의 시선이다. 안타깝고, 어쩌면 허망하기도 한 시선.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재미가 없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못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보기와 보여주기’에서 머물 것이다. 설사 그것이 이해를 동반하는 애정을 가진 시선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이 책의 서술은 밋밋하다.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맛이 덜하다. 좀 못되게 말한다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읽는 도중 조선의 프로페셔날과 자신을 계속 분리하게 만든다.


1) 전체적으로 드는 생각

안타깝게도 나는 이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이들에 행적에 대해 기록해 놓은 수필집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들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한 그 시절의 유명인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조선의 프로페셔널 ‘아무개’에게 어떤 사건이 있었다라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책을 덮었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 서술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아주 묘한 구석이 있다. 책이 한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그것에 대해서 구절을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한 문장씩 저자와 같이 번역을 해나가는 것과 같다. 어느 구절에서는 인용한 구절의 의미를 다시 풀어서 해석해 주기도 한다. 전형적인 연구서의 방식이다.


어떤 행적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 나와 있고, 그들이 무엇이라고 했다라는 기록의 형식을 취하는 데, 이러한 방법은 참고한 문헌을 잘 살릴지는 모르겠으나 전달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 흥미와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감동이전에 설명이라니, 잠시 그냥 느끼게 하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조선의 프로페셔널의 삶을 이런 삶이 있었다라고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숨쉬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의 프로페셔널의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2) 부분에 대하여
p.97 바둑기사 정운창에 대하여

 정운창의 이야기를 읽은 소감은 마치 검객(협객)의 이야기를 읽은 듯하다. 그의 삶을 통해 당시의 바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엿본다. 그 사람을 탐구함에 있어서 그가 속한 시대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일화는 시대상을 너무나 잘 드러낸다. 18세기 언제쯤일까? 조선 후기라는 말에서 18세기 후반이라면 신분질서가 점차 무너질 것이고,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생각해본다.


p.116 화가 최북에 대하여.

 최북의 행적은 기인(奇人) 혹은 광적(狂的)인, 혹은 부적응자(不適應子)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최북에게 ‘창조적’이란 말을 슬며시 붙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이런 나의 시각은 조선후기에 최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과 동일할 것이다. 그런 속에서 최북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힘겨웠을 것이다. 그의 기이한 행적은 양(陽)의 피드백을 받듯이 점점 더 증폭해갔을 것이고, 그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년은 좋지 않았다 하는데, 그의 힘겨운 삶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로 족하지 않을까.


p.199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은 매력적이지 않다.


3) 이 책의 또 다른 저자, 이용휴

이 책에는 ‘이용휴’라는 인물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극중의 인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용휴는 ~라고 했다.’라는 식이다. 그 말투로 짐작해 본다.  이용휴라는 사람이 쓴 책을 바탕으로 거기에 등장한 인물들을 더 많이 조사하여 이 책이 쓰여진 게 아닐까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저자가 조선의 비주류 인생들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책 <추재기의>의 저자와 이용휴와의 친밀한 교류 가능성이다.(저기까지는 조사를 하지 못하였다.)

다음의 대목을 보자. 이용휴는 글에서 자신이 서술하고자 하는 그 사람 자체가 되었다. 


[277] 이용휴가 지은 시에는 꽃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박의 멋이 잘 드러나 있다.


다시 신기한 구경거리를 갖추고자

먼 곳에서 종려나무를 사왔다네.

시내를 걷다 동산을 건너올 때

작은 수레를 굳이 탈 건가?

낮은 가지가 때로 갓을 치고

떨어진 꽃술이 소매에 들어붙네.

이것이 아니면 즐겁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숲을 거니네.

집에서 진지 차렸다고 고해도

“천천히 하지” 답하면 그뿐.

꽃부리 먹고 열매를 먹는 그대는

어엿한 태곳적 성인일세.

“조물주는 청복(淸福)을 아끼건만

어째서 내게만 듬뿍 주셨을까?”

꽃 아래서 때때로 술잔을 들며

스스로 축하도 하고 칭찬도 하네.

동전 구린내와 고기 비린내는

온갖 꽃내음이 씻어주네.


p.296 이단전에 이용휴에게 내밀었던 시집의 제목은 《하사고(霞思稿)》였다. ‘노을의 그리움’이라는 제목 부터가 특이하다. 이용휴는 이 시인을 위해 서문을 써주었다. 


이용휴의 글이 책 중에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이용휴의 글에서의 시선은 그가 기술하는 상황이나 인물과 매우 밀착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의 소지를 준다.

4) 매우 인상적인 인물들을 선정하다

이 책에 실린 10명의 인물들은 이 책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조선의 비주류 인생들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을 잘 드러내주는 인물 선정이다. ‘전문가’라는 공통점으로 엮었다. 그 외에도 이들의 삶은 ‘특이하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적은 매우 인상적이다. ‘조선의 프로페셔널’의 공통점으로 오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라 할만한 사람들이 이룬 성과와 더불어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그의 행적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한 사건이 있어야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겠지만 말이다.


인물을 부각시키는 힘에 대하여 아쉬움이 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기술자는 기술로 말했으면 한다. 화가 최북 편이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는데, 삽입된 그림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또한 음악가, 무용가도 음악과 무용이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전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라는 설명을 문헌으로만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5) 구성과 소제목 그리고 결합

10명을 같은 패턴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을 배치하고 각 장의 중간에는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일화들로 구성하고 뒷 부분에서는 그의 생의 마감을 다루고 있다. 한 장 내에서는 기술하고자 하는 전문가의 인생의 선후 사건의 순서를 정확히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짧은 일대기을 보여준다. 지면의 대부분은 그가 주로 활동한 것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인상적인 소제목들로 구성한 각 절은 응집력이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의 일화들을, 특성들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책을 리뷰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심리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내게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왜 그랬을까? 내게서 여기에 나온 사람들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까? 조선의 프로페셔날의 열정을 내게서 보고 싶었기 때문일까?

 

내가 거부한 부분은 그들의 힘겨운 삶이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책읽기와 리뷰의 거부는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내 내면에서는 충돌하고 있는 내 가치관들 때문에 힘겨웠다. 변화를 맞고 있다. 난 그 변화를 겪고 안정적이 되었을 때는 아마도 '조선의 프로페셔날'과 같이 나의 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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