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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31일 21시 21분 등록

■ Ⅰ. 저자에 대하여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Perdinand. Drucker)

1)

지난 60년간 30여권을 출간하였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2003년 최고 영향력 있는 경영학자로 선정했다. 마르크스가 사람들을 굶주리고 헐벗은 채로 투쟁하게 만들었다면 피터드러커는 경영원리 확산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더 잘 살수 있게 했다.

피터드러커는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을 ‘관찰자’라고 표현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진 관찰자이다.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학문연구(정치학, 사회학, 철학, 경영학)를 책, 칼럼, 강연, 컨설팅 .. 등을 통해 타인과 공유하였다.


“사람은 호기심을 잃어버렸을 때 늙는다.”

“인간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새로운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20세기의 키워드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이라면 21세기 키워드는 지식을 창출하는 ‘개인’이며 그 중에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2) 그가 사는 곳은 그 사람을 말해주려면....


피터드러커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서 20세기의 유럽과 미국을 이해할 수 있다. 변화의 한 복판에서 그것들을 관찰하고 겪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의 관찰자적인 시각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 빈의 어릴시절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Perdinand. Drucker)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다.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 재무성 장관을 지낸 고위 공직자였고, 모친 캐롤라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의학을 공부한 여성으로서, 프로이트의 제자였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고전 및 예술을 포함하여 전인적 교육을 받았으며, 부친의 친구였던 조지프 슘페터, 폰 미제스, 프리드리 하이데크 등과 교류하였다. 15세에 ‘파나마운하가 세계무역에 미치는 영향’이란 그의 생애 최초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 독일에서의 경험, 그리고 독일 탈출

주세프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가 80세에 작곡한 오페라 팔스타드(Falstaff)의 감동한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이 그리고 그 나이에, 왜 또 오페라를 힘들게 작곡하는가, 그것도 엄청나게 벅찬 주제의 작곡을 하는가?”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 했지만, 곡이 끝날 때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 나는 한번 더 도전해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런던생활

나치의 등장을 보면서 국가사회주의(전체주의)의 문제점과 종말예상를 하고, 나치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자신과 나치를 분리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 박사학위 취득하였고, 첫 번째 저서 Friedrich Julius Stahl, Konservative Staatslehre und Gechichtliche Entwicklung 발간하였다.


- 런던의 머천트 뱅크에서의 교훈

“나는 자네가 보험회사의 증권분석사로서는 일을 썩 잘한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네가 증권분석업무를 계속 하길 바랐다면 우리는 자네가 있던 자리에 있도록 했겠지. 자네는 지금 머천트뱅크 파트너들의 수석비서인데도 증권 분석업무를 계속하고 있잖아.  ‘지금’ 자네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다시 말해 자네의 ‘새로운’ 직무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를 생각해 보게나.”


= 미국의 동부와 뉴욕

피터 드러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는 대공황시기였다. 그는 이 시기에 미국인들이 유대인의 문제와 흑인 인권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보게 된다. 미국 정착 후 유럽에 방문할 때, 유명 월간지 회사에 찾아가 특파원을 자청하여 계약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당시 미국은 많은 단과대학과 전문대학이 설립되었고, 유럽에서 공부한 많은 강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원(遠)거리 오가며 강의를 한다. 1939년 뉴욕 교외 브롱크스빌의 사라로렌스 여자대학에서 경제학과 통계학을 강의, 1942년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서 정치이론?미국정치?미국사?경제사?철학?종교 등을 강의하였다.


= 교육과 저술

-뉴욕대학(1950-1971) : 1950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Graduate School of Business, New York University) 최초의 경영학 교수가 된다.

“당시 경영학 교수란 타이틀을 지닌 것이나 매니지먼트란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이나 모두 세계 최초였다.”

뉴욕대학에 재직시절 ‘새로운 사회’, ‘경영의 실제’, ‘내일의 이정표’, ‘단절의 시대’,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등 경영에 관한 개론 또는 개념에 관한 저서를 저술하였다.


= 도쿄와 서울

세계2차대전 후 피폐해진 일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본의 경우 1959년 이후 매년 드러커 교수를 초빙하였다. 1933년 10월 25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일본어 판 출판기념 강연에서 “과거 일본은 일억 인구가 다 함께 먹고 잘자, 그리고 미국을 따라잡자는 2개의 등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강국이 된 일본은 지금 등대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드러커가 지적한 바대로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지고 깊은 불황에 빠졌다.

드러커의 저술 중에는 일본 미술에 대한 비평서도 존재하는 데, 그는 매년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 미술품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이후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의 성과에 대해 높은 평가하고 있다.

“...... 한국은 내가 30년 이상이나 주장했던, 즉 지식이 현대사회와 현대경제의 혁심자원이라는 나의 주된 명제에 부합되는 최고 모범 국가입니다.”



■Ⅱ. 책 속에서 끌어오기(인용)

역사 서문


[6] 이 책은 드러커가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커 자신을 비추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8]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과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통해서만 그 인간에 대해 더욱 입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 나는 이것을 전적으로 동의해.


개정판을 내며

[11] 이 세상에는 약 3만 5,000종의 파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파리만 존재한다. 그들에게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이다.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두 발로 걷는 인간들보다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11]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니면 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


[14] 물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도 ‘큰 것이 최고다’라는 말만큼이나 숨이 막히게 만드는 독선이다. 게다가 똑같이 멍청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신의 창조물 속에서 다양성을 봐야 한다.


[165]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는 인간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 Other Lives and My Times’이라는 말에 나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구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


[16] “그 책을 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서로 비슷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 나는 장편 대하 소설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에는 비슷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만 그럴까? 인간 유전자는 다른 영장류인 침팬지나 원숭이와는 유전자가 겨우 2%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엄청 달리 보인다. 인간들은 얼마나 조금씩 다르길래 각기 다른 개체가 될까?


# 프롤로그.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21]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전요원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 무대에서 쇼를 하는 사람(배우)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의 쇼를 보고 감동을 받는 사람(관객)도 아닌, 대체 구경꾼이란 뭔가. 가끔 연극에 몰두하지 못한 채 연극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배우, 관객)을 보는 것을 보는 재미나다. 연출자는 그 대목에서 눈물을 쏟게 하려고 그 장면을 짰을 테지만... 그래서 몇몇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훔치겠지만... 옆 사람이 왜 울까를 생각하는 그 순간은 묘하게 재미나다. 연극이 아닌 인생에서 구경군의 심정이 그러할까?


[26] 나는 웅덩이를 좋아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웅덩이에서 풍성풍덩하는 소리보다 더 좋은 음향을 별로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그런 웅덩이를 풍덩거리면서 밟고 건넌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그런 식으로 건너지 않았다. 당시 나는 군중들에 의해 원치 않는 방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웅덩이를 돌아서 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즉 거대한 인간집단의 압력이자 집단운동의 물리적 위협이 나를 압도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웅덩이의 한쪽 끝에서 맞은편 끝까지 철퍼덕 거리면서 건너가야했다. 나는 웅덩이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 뒤를 따르던 덩치 큰 의과대학생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깃발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나는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심한 고독감을 느낀 나는 그들과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 이 사건은 피터 드러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31] “ .... 적어도 우리가 옆방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 피터, 내가 너를 비난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크란츠에 대해서는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 역시나 구경꾼다운 결말이다.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1)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랑

[37] “얘들아,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거라. 무슨 일이 벌러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손녀들 가운데 하나가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기분이 상해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 전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

* 할머니 말씀대로 그런 일은 자신에게 닥치기 전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41] “내가 그들을 찾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그러겠어?”


[45]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조금도 안 했지, 할아버지는 저녁식사 때는 늘 집에 돌아왔단다, 나는 그저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했지만, 남자에게는 위장이 성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


[51] 거기서 손님을 맞는 태도가 불량한 여종원이 할머니의 눈에 띄었다. 그녀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자 할머니는 우산 손잡이를 그녀의 팔에 걸고 약간은 상냥하게 말했다. “아가씨는 교양있고 지적인 여자처럼 보이는군. 당신은 아마 직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르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거야, 그렇지? 그러니 저 밖으로 나가.” 할머니는 우선으로 그녀를 문쪽으로 세게 밀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들어와서 손님에게 적절한 예의를 보여봐.” 그러자 여종업원은 온순하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와 정중하게 대했다. 우리는 몹시도 놀라고 당황했다.

“하지만 할머니, 우리는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거잖아요.”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저 아가씨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잖니.”

* 할머니 정말 대단하시다. 삶 전체에 애정이 넘치신다.


[61] 나 역시 다른 가족만큼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이때 처음으로 나는 가문의 푼수라는 할머니의 명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할머니가 단지 어리석기만 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여러날을 줄을 서서 허비하지 않고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경선을 통과했다. 그녀는 식료품상이 결국 물건값을 낮추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드름쟁이가 만자 표시를 벗어버리게까지 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할머니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라틴 경구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도 바보와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 바보 이반?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고슴도치 컨셉이었는지 진짜 바보 이야기인지. 악마도 결국은 바보 이반을 이기는 못했지.


[64-65] 여성의 지위나 남녀간의 관계가 적절한지 아닌지의 문제는 할머니의 사고범위 밖이었다. 그것은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남성 중심이고 여성은 그런 세상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준비라고 해봐야 그저 외출을 할 때는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는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중략) 하지만 할머니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모든 단점을 참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눈길을 주는 바보같은 여자들과 벌이는 멍청한 짓거리나 여자가 옆에 앉지 않으면 절대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됐다. (중략) 게다가 규칙을 만드는 쪽은 남자였고,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런 규칙들을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70] “상상해 봐, 정말 할머니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까. 칠순이 넘은 노파가 젊은 남자의 차에 타고 있다고 해서 그의 명예가 손상된다니!”

나 역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자 이런 생각이 갑자기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칠순 노파가 살아 있다면 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겠지. 하지만 낯선 노파가 그의 차 안에서 죽었다면 그 운전사는 그것을 어떻게 해명해야 했을 것인가?


2) 헤메와 게니아 :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73] 나는 그들에게서 개연성을 가진 동시에 생생한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의 사소한 약점을 묘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과 개성은 너무 막연하고 양면성이 강해서 심지어 복합적이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이 끊임없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짜증나게 하고 때로는 괴롭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실체를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내가 붙잡는 것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 줄을 칠 때는 왜 쳤을까? 지금은 왜 이 글에 밑줄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헤메와 게니아의 특징에 매료되었겠지.

[76] “그 친구를 쫒아버려, 게니아. 멍청한 여자처럼 굴지 말라고!” 그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넌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했고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빈을 떠나 외국에서 삶을 개척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바로 빈을 떠났을 때도 역시 자랑스러웠지. 지금 네가 빈을 떠나겠다는 것도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이곳은 과거 속에 있고 이미 끝난 도시니까.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게니아에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라.” 그러더니 나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집으로 가서 짐을 싸. 런던으로 가는 기차는 내일 정오에 출발한다. 너는 그 기차를 타야 해.” 그는 거칠게 나를 문 밖으로 끌어내더니 계단 밑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외쳤다. “직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는 직장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네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자리도 많아. 나중에 직장을 잡거든 엽서나 한 장 보내다오. 우리를 완전히 잊지는 말란 말이야.”


[96]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헤메)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 나는 헤메의 이야기를 읽을 때 무척이나 흥분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나와 많이 닮아서였다. 내게는 문제의 핵심을 보는 면은 없지만, 어쩌면 너무 단순하게 여러 가지 것을 고려하지 않는 면이 불쾌한 상황을 대면해 버리고 조금은 꺼끄러운 말이라도 직설적으로 하는 점에서 내 성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래서, 이번 장을 다 읽고나서 나는 당황했다. 거기에는 반전이 숨어있었으니까. 너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보였는데, 효율적이고 좋아 보인 그 모습들이 ‘죽은자’의 삶이라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106] 사람들은 게니아가 자신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을 타고났다고들 한다.


[111] “도대체 게니아가 무슨 말로 아버지를 설득했죠?”

“너도 게니아가 내게 설득 같은 것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잖니.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서 가르치라고 통보했을 뿐이야. (중략) 머리는 짧게 깎아서 머슴애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스코틀랜드 트위드로 만든 스웨터를 입고 내 앞에 섰지. 인사나 소개말 따위는 일체 생략하고 나보고 월요일과 수요일에 수업을 할 건지 아니면 화요일과 목요일에 할 건지 선택하라고 하더군. 나는 더듬거리면서 월요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게니아가 이러더군. ‘좋아, 화요일과 목요일 6시 30분부터 9시까지. 그리고 저녁을 제공하겠소.’”

그게 바로 게니아였다. 나도 그녀의 활동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119]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 내가 그렇지 뭐.


[125] 우리는 ‘자연스러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시나리오와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생방송 프로그램이 대본에 따라 스튜디오 안에서 녹화로 진행되는 방송보다 두 배 이상 세심한 사전검토와 준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익히 배워왔다.


[137] 마지막으로 살롱의 ‘스타’가 남는다. 하지만 그들이 유명인사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최고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알고 있는 사실을 게니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유명해서 대담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기에 출현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140] 내가 공연을 끝냈을 때 헤메가 특유의 목소리로 뱉어낸 말은  내 생애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된 교훈이 됐다.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 마.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영우에도 통계수치는 의심해 봐야 해. 내가 직접 경험해본 일이야. 난 거의 12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수출현황에 대한 통계를 담당하고 있었어.”


[148] 이 이야기 속에서 배가 난파당해 표류하던 선원이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도시는 대부분 상인이었던 시민들의 탐욕과 자만심, 거만함 때문에 침몰했으며, 시민들은 죽음이라는 안식이 없이 영원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일요일에 교회종이 울리면 그들은 호화로운 교회로 가서 충실하게 예배에 임했지만, 나머지 6일 동안은 완전히 신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평일에는 서로를 속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거래했다. 그들은 구식의 비싼 옷을 걸쳤고 으리으리함과 화려함에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시처럼 그들은 죽은 몸이었다. 살아있는 세계에서 온 선원은 깊은 흥미를 느꼈지만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그들과 똑같은 움직이는 시체로 변하게 될 테고, 결코 대지와 태양, 사랑과 인생, 그리고 진정한 죽음이 있는 세계로 복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열 살 무렵에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여러 해 동안 나는 내가 그 선원이 되는 꿈을 꾸곤 했다. 꿈속에서 나는 이국적인 도시에 매료되면서도 누군가가 내 존재를 눈치채거나 그들과 다른 내 옷차림을 알아보고 몰이꾼이 짐승을 몰듯이 소리를 지르며 쫒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나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들이 쓰고 다니는 챙이 큰 모자와 넓은 보닛 밑을 엿보며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는데 갑자기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내 앞에 정면으로 서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악몽에서 깨어났다.

(중략) 

그리고 나의 마지막 ‘아틀란티스 꿈’은 예전과는 다른 결말을 보여줬다. 꿈은 전의 것과 완전히 똑 같았지만 비몽사몽간의 그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갑자기 모자를 쓴 사람과 보닛을 쓴 사람이 바로 헤메와 게니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헤메와 게니아에 대한 일화들은 나를 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들의 생활 패턴은 내가 부러워하는 면이 많았다. 현재 내가 직장에서 혹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갖는 어려움을 그들은 겪지 않는 것 같아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꿈 얘기로 인해 삶은 단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너무 바쁘게 사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지을 수 있다는 것. 너무 큰 반전이라서 난 충격을 받았다.


[153] ‘전쟁 이전’ 현상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모든 사람을 마비시키는 유독 스모와과 같은 존재로, 모든 사고기능과 상상력의 숨통을 조였다. ‘전쟁 이전’에 대한 집착은 나치당이 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전쟁 이전’이란 의미가 뭐야?


[153]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 ‘전쟁 이전’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들조차도 ‘전쟁 이전’이라는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거의 질식할 정도의 수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193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3) 엘자와 소피 :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160-163] * 미스 엘자의 지도법은 무척 흥미롭다.


[161]“너도 동의하니?” 나는 당연히 동의를 했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하자꾸나.그래야 너하고 내가 네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 자, 여기 네가 쓸 학습장들이 있다. 너는 여기에 학습진도표를 한 달 동안 채워야 한다. 그리고 나는 네게 준 학습장의 진도표와 똑같은 것을 내 책상서랍에 보관하고 있겠다. 보거라. 난 읽기와 철자법1)에 대해 아무런 목표도 정해 놓지 않았지만 네가 원할 때마다 직접 기록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이 남겨놨다. 네가 무엇을 읽었고 무슨 내용이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또는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등을 기록하는 거야.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내용을 적어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매주 네가 작성한 작문2)을 여기에 적어두어라. 일주일에 두 편이란 점을 명심하고,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산수 연습을 위한 부분이다. 여기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단다. 하나는 이미 네가 알고 잇는 내용에 대한 쪽지시험용이란다.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같은 것들 말이다. 다른 부분은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을 연습하는 데 사용해라. 먼저 분수부터 하자꾸나. 매주 월요일에 네가 예상하는 진도를 기록하고 마지막 날에 실제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를 적어라.3)다음에 글씨 연습4)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꾸나. 내 생각에는 매주 네가 쓴 작문 가운데 글씨가 가장 보기 좋고 알아보기 쉬운 문단을 선택해서 그 부분만 한번 더 써보는 거야. 그 정도는 너에게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주 한 번씩 너하고 나하고 함께5) 학습장을 보자꾸나. 물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6) 내게 오너라. 그리고 네 학습장에 그동안의 진도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나중에 네가 원한다면, 내가 보관하고 있는 학습진도표에도 네가 직접 진도를 기록하렴. 그렇게 해준다면 내개는 큰 도움이 될 거다. 이 교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는 데다 나는 학교도 운영해야 하니 꽤나 바쁘지 않겠니?”

* 미스 엘자의 지도법

1) 읽기와 철자법 : 이 항목은 피터 드러커가 잘하는 항목이다.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지도를 하지 않았다.

2) 작문 : 이 항목은 피터 드러커가 대단히 잘하는 항목이다. 잠재력이 있는 부분이다.

매주에 2개의 작문을 하도록 했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나도 매주 2개 정도의 결과물을 내는 진도표를 세워야 한다.

3) 진도표 : 스스로 진도를 계획을 실천여부를 체크하게 한다.

4) 글씨연습 : 아주 형편없어서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도 매주 조금씩 연습하도록 배치했다.

5) 함께 :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체크를 한다.

6)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오너라 : 전폭적인 지지


[166] 학년 초에 그녀(미스 엘자)는 앞으로 내가 잘하고 있는 읽기와 철자법으로 나를 칭찬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칭찬에 인색했고, 설사 하더라고 대단히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번에는 좀 괜찮구나.” 또는 “지난번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수의 천사처럼 우리를 사정없이 야단쳤다. 우리가 특별히 잠재력을 가진 분야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나의 경우는 작문이 거기에 해당했다.

그녀는 조금도 ‘아동중심’적이지 않았다.

(중략) 하지만 그녀는 하루 만에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웠고 한 주가 지나면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그들의 장점을 모두 파악했다.


[167]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미스 엘자는 그런 일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숭배했다. 50년 뒤에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신이 미스 엘자와 대단히 많이 닮았을 것이란 생각이(검은 봄바진과 코안경,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 등 그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장이 내게는 별로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의 장점을 발견하는 일에 관한 한 미스 엘자는 신이었으며, 그것은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이야기하는 그 신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170]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남겨두신 양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양복에는 시계를 넣어두는 조끼 주머니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주머니도 없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너희 할아버지는 신사였단다. 그리고 20년 전 신사들은 뒤에 항상 하인들이 따라다녔지. 필요한 물건은 전부 하인이 들고 다녔어. 신사는 자신의 손을 사용하지 않았거든. ”

[179] 어쩌면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밑에서 지도를 받은 일년 동안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그들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감염됐는지도 모른다.

(중략)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때문에 나는 가르치는 일이 똑같은 일이나 반복하고 있는 평범한 교사들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선생들(생계를 위해서 가르치는 선생들)은 우리에게 라틴어 문법이나 그리스 희극작가들, 세계사 등을 가르치려고 애쓰면서 자신은 무시무시한 권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과목 그 자체는 전혀 따분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어떤 과목도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나의 흥미를 끌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 ‘회복할 수 없는 질병’ 이 표현 좋다.


[181]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내 자신을 연마하는 데 게을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183]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내게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는 교훈이다. 그 두 노처녀는 표준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모법을 보였던 것이다.


[184-186] 처음 한 시간은 그(아르투르 슈나벨)의 레슨도 다른 피아노 레슨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슈나벨은 우선 내 친구의 누나에게 한달 전에 있었던 레슨에서 지정해 주었던 작품을 연주하게 했다. 내 기억으로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슈베르트의 소나타였던 것 같다. 그 어린 소녀는 불과 열두 살에 불과했던  내가 듣기에도 상당한 기교를 가지고 두 작품을 연주했다. 슈나벨은 그녀의 기교에 대해 칭찬한 뒤에 한 악절을 다시 반복하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악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그녀가 어떤 부분을 일부러 약간 더 천천히 또는 약간 더 강조해서 연주했는지 알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를 가르쳤던 별로 뛰어나지 않은 피아노 선생에게 그 정도 속도의 차이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항이었다.

슈나벨은 한 달 뒤에 있을 다음 레슨 때 연주할 곡을 지정한 다음, 그 곡을 즉흥연주하게 했다. 이번에도 어린 소녀의 능란한 기교가 확연히 드러났다. 슈나벨은 그녀의 기교적 탁월성을 또다시 칭찬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한달 동안 연습했고 레슨 시간 처음에 연주했던 두 작품으로 화제를 옮겼다. “사랑스런 릴리, 너도 느꼈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그 두 작품을 정말 잘 연주했다. 하지만 너는 네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하지 않더구나. 단지 네 귀에 이렇게 들려야 한다는 식으로 연주했지. 그건 진실한 연주가 아니란다. 그리고 내 귀에 그게 들렸다면 청중들의 귀에도 들릴거야.” 릴리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슈나벨이 다시 말했다. “이젠 내가 슈베르트의 소나타 가운데 안단테를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할 거다. 나는 이 곡을 네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할 수는 없어. 그리고 네가 연주하는 방식대로 연주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곡을 너와 같은 방법으로 듣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듣는 대로 들어보면 너도 차이를 느끼게 될 거야.”

그리고 나서 슈나벨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슈베르트의 안단테를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했다. 그러자 릴리는 ‘갑자기’ 차이를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깨달음의 미소가 피어났다. 내가 미스 소피의 학생들 얼굴에서 봤던 바로 그 미소 말이다. 그 순간 슈나벨은 연주를 멈추고 말했다. “이제는 네가 연주해 봐라.” 그녀는 아까보다는 훨씬 기교를 적게 부리면서 연주했다. 그 연주는 그녀의 나이에 걸맞게 훨씬 더 어린이다웠고 훨씬 더 순박했지만 확신에 차 있는 연주여서 나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 얼굴에도 그녀와 똑같은 미소가 떠올랐던 게 분명하다. 슈나벨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네 귀에도 들리니? 그거 대단하구나. 네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하는 한, 너도 음악을 연주하는 거란다.”

나는 음악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잘 들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언제나 성과를 통해 학습을 해왔으며, 효과가 있거나 성과를 거두는 사람을 찾아 그것을 배우는 것이 내게 알맞은 학습방법이란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없었다. 성공만이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몇 년이 더 걸렀다.


[187]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187-188]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사실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은 언제나 좋은 선생님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 최고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기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인기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선생을 가리켜 “우리는 그분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어도 된다. 학생들은 분명히 좋은 선생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193] ‘선생관찰’을 통해서 처음에 도달했던 결론에 따르면, 선생들은 어떤 유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유일하게 옳은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치는 능력은 재능이고, 좋은 선생은 그 재능을 타고 났다. ........ 가르치는 능력은 일종의 개성이지 기술이나 숙련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에 설쳐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르치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졌기때문에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이끌어가게 한다.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하기 때문에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효과적인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고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 아멘.

으아. 이거 강점혁명에서 본 ‘개인화’에 대한 설명이잖아.


[197] 그의 수업을 듣고 나오는 학생들은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퍼커슨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197-198]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되어 있는 선생이 있는가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선생은 타고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을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이든 그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급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200]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니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은 장애요인이다).

.......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201]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4) 프로이트 :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214] 질병은 개별적 원인과 개별적 징후와 개별적 치료법이 있는 개별적인 것이다. 세균학자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모든 전염이 개별적이라는 점을 입증한 것이었다. 모든 전염병은 특정 세균이 원인이 되고, 벼룩이나 모기 같은 고유한 매개체를 통해 퍼지며, 특정조직에서 특정작용을 한다.

[216] 의학계의 저명한 의사들은 의학이 완전히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증명이 가능한 결과와 통제된 실험을 강조했다.


[225] 프로이트의 시대에 빈에서 존경받는 부모라면 수입 문제를 자녀와 함께 논의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피하는 주제였다. 하지만 돈 문제는 양측 모두에게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현재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런 문제는 경제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든 일어난다.


[227] 빈곤 신경증은 끝내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나 수입이 충분치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걱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는 자신이나 가족, 이웃의 사회적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돈에 대해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27] 프로이트가 맞설 수도 맞서지 않은 불안 신경증을 바로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는 프로이트적 실언의 기제에 따라 이를 억제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왜 자신의 환자들에게서 그 신경증을 인정하지 못하고, 환자의 병력에 그것을 남기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런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어야’ 했다.

*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않은 결과에 대해서 뻔히 눈앞에 보면서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232] 완공된 건물이 공개되지 전의 준비작업 틀을 프로이트만큼 정교하게 해체한 사상가는 없다. 그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과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물음을 논의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오직 무의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방법론에 대한 문제, 결과에 대한 정의와 대조군 실험의 문제, 완전히 신비적인 방법을 비롯해 모든 심리요법의 치료성과가 똑같다는(혹은 비슷하다는) 등을 논의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 및 치료법과 인간의 인성 및 철학이라는 신화를 한데 포함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이중적 특성을 논의하는 순간에 말이다. 그는 이런 질문을 무시함으로써만 통합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233]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 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5) 트라운 트라우네크 :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244] 나는 우리 부모님이 마리아 뮐러에게는 깊은 애정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에게 매혹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트라운 트라우네크 백작에게는 거의 복종에 가까운 존경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막스 트라운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야. 그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람!” 그러자 어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너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어쩌면 아버지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 부모님께서는 대화에서 언급한 사실에 동의하시는 것인가? 그럼 이번 장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기술이구나. 숨은 이유에 대한 기술인가?


[252] 나는 그분에게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형벌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라는 것이 삼촌의 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범죄의 형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에 대한 명쾌한 내용의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253]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흄, 벤담은 물론 로스코 파운드, 에를리히, 우리 한스 삼촌에 이르는 최근의 인물들까지 포함돼 있는데, 그들은 형별에 대한 복수나 사회보호, 정화의식, 사회복귀, 억지수단 등 서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들은 모두 무엇을 형벌로 삼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형벌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벌의 내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문화나 문명, 법조문에 상관없이 사형과 사지절단, 추방, 구금, 벌금 등 형벌이 전부 똑같았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떤 문화나 문명이든 반드시 형벌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254] 만약 수십가지 설명들이 모두 전적으로 다르지만 자명한 사실을 전제로 해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뒤에 기초적인 논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합리화이고 결국 요점을 벗어나게 마련이다. 


[254] 명백하게 형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하나의 사실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만연된 현실이었다. 진정 설명이 필요한 것은 범죄의 존재였고,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분야였다.


[257] “우리 가운데 마르크스를 읽거나 경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지. 우리가 진정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평화였어.”

* 트라운 트라우네크가 한 말


[263] “그럼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우리가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실패한 거예요?”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야. 사회주의가 실패했지. 우리가 의지했던 유럽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진심으로 전쟁에 반대했어. 비록 그들 가운데 누구도 1911년 빈 회의에서 결의한 총파업을 감행할 용기가 없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들이 총파업을 시도했더라도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거야.”

* 과연 그런가?


[265] “하지만 오늘날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다 그렇지. 예의바른 친구들이라 특별히 유익한 일도 못하고 남에게 심하게 해가 되는 일도 못해. 하지만 이제 유럽 어딘가에서 사회주의가 정권을 잡게 되면, 그건 우리가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독재정치가 되거나 고위 성직자와 관료들이 지배하는 정부가  될 거야. 꿈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거지.”


[265]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했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버렸어. 내가 영국에서 예수교 재단의 공립학교에 다닐 때  마흔여덟 명이 같이 졸업했지. 그 가운데 열여덟 명은 아직 살아 있지만, 나머지는 플랑드르의 무덤에 누워있어.”


[268] 사회주의는 1914년 8월의 총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사회주의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동지들 간의 상잔인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의 끝이 아니었다. 신학은 신앙보다 더 질겼다. 그것은 또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의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으로서 사회주의의 종말이었다. 비록 영원히 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세대 전체에 관한 한 말이다.

그 이후로 사회주의적 이상과 권력의 실체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결국은 권력이 승이를 거두었고, 사회주의 약속과 민족주의 열정 사이의 투쟁에서 언제나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 어렵다. 신학과 신앙으로 비유한 이말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권력이란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권력이 하는 일, 순기능역기능을 알지 못하는 나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어렵다. 역사에 대해서 사람들간의 힘겨룸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00주의’라는 것과 그것들이 반영되는 것들, 그것을 신봉하는 집단, .... 이건 이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280] 나는 20대 초반에 커다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됐는데, 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 앞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주변에 30대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플랑드르나 베르됭, 러시아, 이손초의 장교 무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일생동안 불구로 생활했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육체적으로 불구였지만, 대부분은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았다.

* 트라운 트라우네크의 이야기는, 고사성어 새옹지마, 아들이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서 아버지가 웃으며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했던 그 이야기의 뒷이야기인가?


2부 명멸(明滅)하는 시대의 사람들

6) 폴라니 가 :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286] 그들이 정말로 대단한 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아버지를 위시해서 1960년대의 카를과 동생 미카엘에 이르기까지 가족 모두가 한 가지 목적에 헌신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은,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주의의 집단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 대체 어떤 이유로?


[306] 그는 노예무역이 오랫동안 알려져 왔던 것처럼 자유를 사랑하고 화목하게 사는 흑인 종족사회에 사악한 외부인이 우격다짐으로 강요한 일이 아님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흑인 왕과 추장들이 노예상인을 불러들여 노예투매를 조직하고 지휘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일부는 자기 부족이나 왕국 외부의 경쟁자나 적을 파멸시키거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고, 또 다른 일부는 자기 부족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총 같은 물건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호혜와 재분배를 기초로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뉴질랜드 여행 전에 본 몇 권의 책에서 그곳의 원주민들이 외부에서 들여온 총으로 인해 부족간의 전쟁이 격렬해지고 많은 사람이 죽고 팔려갔다는 대목을 읽었다.

전쟁, 권력, 이런 것은 어느 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어느 시대나 같은 아유를 갖고 있는 듯 하다. 모양만 다를 뿐 같은 이유로 형벌과 범죄의 문제를 다루었던 것처럼.


[309] 그들은 정말로 특별한 가족이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내가 아는 가장 특이하며 가장 뛰어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목표했던 것이 아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그들은 중요하다기 보다는 흥미로운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 100년 전인 홉스와 로크 이후, 아니면 프랑스 혁명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줄곧 서양인의 관심을 끌어왔던 절대적인 하나의 시민종교에 대한 탐구, 완전한 또는 좋은 사회에 대한 탐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실패가 나타내기 때문이다.

당시 카를은 미온적인 타협이라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만한,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산업인의 미래》에 녹아 있는 내 의도였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시장의 혼란과 불화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유를 지키게 될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대한도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갈등,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 불일치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더 큰 선(善)에는 관심을 덜 갖고, 적은 악(惡)에는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 그 자체가 부수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쇠퇴해가는 사회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종국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처럼, 시회의 조직도 그럴 수 있음을 의미한다.


7) 크레머 :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324] 크레머 자신은 본인의 정치적인 신념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얻어낸 힌트와 주워들을 말, 그리고 그가 옛 황제에게 항상 생일축전을 보낸다고 했던 것등을 종합해서 이야기를 맞추어야했다. 그러나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자 그는 내게 자신의 야망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자신은 인생에 딱 두 가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고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크레머, 네가 직접 참모본부장이나 외무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크레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혀 없어. 나는 내가 사색가이지 행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연설을 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야.”

...... “그건 내 일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야. 하지만 난 절대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거야. 절대로.” 프리츠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자기 목표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어냈다.


[331] 우리는 독일인들이 친구 사이에 흔히 쓰는 너(Du)는 말할 것도 없고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 적도 없었다. 그저 ‘드러커’와 ‘크레머’로 불렀고, 서로를 지칭할 때는 ‘자네(Sie)’라고 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가 추구하는 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도 금세 알게 됐다. 크레머와 나는 둘 다 아직 어렸는데도 그런 질문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용해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정치적 이단자로서의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 크레머는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내 관심사는 그의 관심사와 같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나 자신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로를 존경했고 서로 싫어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의 관계는 순전히 지적인 것에 제한돼 있었다. 서로에게 “기분이 어때?”라고 물었던 기억이 없다. 우리의 질문은 언제나 “어떻게 생각해?”였다.


[337] 그 옛날 크레머와 나눈 긴 대화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인물이 지내는 패러독스를 인식하게 됐다. 위대한 인물이 없으면 비전도 리더십도 우수함과 업적의 기준도 없다. .... 그러나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 는 개인적인 성취 이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상태를 남긴다.

나와 똑같이 젊고 탐구과정에 있는 크레머와의 길고 두서없는 토론에서 내가 이런 사실을 터득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공적인 일에서, 특히 조직에서(정부나 대학, 기업체 등) 위대한 사람이 지니는 패러독스를 해결하려는 평생의 관심사를 얻게 됐다.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39]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정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8)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348] 나는 망설이다가 이곳에 남는 일이 생기기 않게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베르톨트를 만난 다음날 나는 나치가 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하고, 나 또한 나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할 책을 쓰기 시작했다.

...... 만나본 일은 없었지만 모어 출판사의 직원들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책이 나온 후 내 의도대로 그 책을 이해한 나치는 곧 그 책의 출판을 금지하고는 공개적으로 불살라버렸다. 물론 그 책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나 또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은 내 입장을 분명히 해주었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던 것이다.


[363]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이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363-364] 주기도문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약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신에게 청하는 것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364]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괴물일까, 어린양일까? 그리고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셰퍼의 자기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되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지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하는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 아인슈타인 이었던가? 핵폭탄이 만들어진 것을... 핵폭탄의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을 연구한 것을 잘못한 일이라고 고백한 과학자가.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연구가 사람을 죽이는 폭약무기로 전시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노벨 평화상을 만들었고.


9) 브레일스포드 :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387-388] 어둠의 세력에 대항할 다른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었겠는가? 그의 양심은 다시 권력에 대한 신봉에 저항하는 독립적인 반대자가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정치현실에 대한 감각은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그는 악을 용서하거나 눈을 감아버렸다.

프레일스포드의 마음과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완벽하게 간파한 공산주의자들은 브레일스포드를 능란하면서도 신중하게 조정했다.

*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이상하게도 악(어둠의 세력)은 타인의 갈등을 잘 눈치챈단 말이야. 갈등하는 순간에 새들은 콩을 주어 먹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이용되지. 남이 뱃속에 들어간 사람은 힘이 없을 껄. 서서히 삭아지지.


[390]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가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복귀시키는 일 역시 자신이 힘이라는 것을 브레일스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그는 양심을 환경에 맞추었다.

* 저런 그래서 그는 몰락하기 시작했구나.


[396-397] 찰스 디킨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하고 어두운 소설인 《어두운 시절》(1854)의 주인공이자 반대자인 스티븐 블랙폴은 자신의 양심이 권력과 야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받고 추방당해 파멸에 이른다. 그의 죽음조차도 실패였다. 그가 죽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단지 사상자였을 뿐이다.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 자신의 색을 읽으면, 색이 바래면...... 그러면 빛이 없어진다는 걸까. 빛이 아닌 것을 더 이상 주목하지 않지.


10) 프리트베르크 : 19세기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411] “그게 얼마간이든 매출과 이익을 함께 올리겠다고 약속하는 경영진은 사기꾼이거나 멍청한 인간들이야. 대개는 둘 다이기 십상이지.”

* 흑자도산


[412] 한번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떤 회사의 과반수 지배권을 확보해 그 회사를 개편하자는 제안서를 공들여 만들어서 갖고 들어갔다. “재미있군. 루이스를 불러다가 그 제안서를 읽혀보게.”

프리트베르크의 말에 내가 항의했다. “하지만 사장님, 루이스는 부기부서에서도 가장 어린 직원 아닙니까? 그리고 며칠 전에 보셨다시피 좀 멍청해요.”

“바로 그거야.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

* 그래. 나 멍청해. 그러니 제발 좀 정책 제안서가 나왔으면 좋겠어. 뭔가를 하기 전에 무슨 말들이 그리 길고 어려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 어른들은 늘 말씀하신다. 인생, 사랑, 삶, 일 이런 것들은 복잡한 게 아니라 단순한 거라고. 이것들이 복잡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 이게 그렇게 복잡하다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했겠냐구. 이게 그렇게 복잡하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겠냐구. 히히히. 이렇게 말하는 내가 우습다.


[414] “그 말은 그 네덜란드 회사는 정말로 우리에게 지불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전 법정에서 그걸 입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프리트베르크는 전화기를 들고 교환원에게 암스테르담을 연결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어렵게 협상했던 네덜란드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 젊은 직원이 아직 몇 가지를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기꺼이 양보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만, 귀사에서는 우리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 없으며, 따라서 합의하신 1만 5,000파운드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나는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드러커, 자네는 다른 누군가의 평판을 방어해주는 변호사가 아니데. 자넨 은행가이고 자네가 얻거나 잃은 평판은 모두 자네 자신의 거야.”


[417] 프리트베르크는 그 버릇을 버리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고, 그때마다 항상 그러마하고 약속했다. 하지만 며칠 고치는 듯하다가 번번이 다시 매매전표를 16조각으로 찢어서버리는 버릇이 도졌다. ....... 물론 무의식중에 하는 일이었다. 그런 습관은 회사의 회계 시스템과 혼선을 일으켰다. 내게 해결하라고 했던 네덜란드 회사와의 터무니없는 분쟁도 그 습관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일단 상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효과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하급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해결방안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프리트베르크의 휴지통을 비우지 말고 다음날 아침에 내가 점검할 때까지 놔두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3일도 안 돼 회계상의 혼선이 없어졌다.

프리트베르크는 마치 자신의 첫아이가 첫걸음을 떼어놓은 것처럼 나를 대견해했다.

*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놀랐다. 모든 것을 상사에 맞춰야 하는 것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의사결정방식과 행동방식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만 서로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업무는 상사가 일을 더 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란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422] 어디를 가든 기회를 탐지하는 헨리 아저씨를 볼 때마다 나는 가로등마다 킁킁거리고 다니는 자그마한 갈색 테리어를 떠올렸다.


[424] 놀랍게도 그는 항상 스타킹 사이즈나 배색이 잘못된 우산의 가격을 인하는 대신 판촉물을 이용했다는 얘기 등의 잡다한 일화들 속에서 갑자가 일반적인 원칙을 끌어냈다. 우산에 관한 길고 긴 이야기를 그는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 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야.” 또는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단지 상인이 게으른 거지. 고객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다고 말해서는 안돼. 고객을 ‘재교육’시키려고 해서도 안 돼. 그건 상인이 할 일이 아니거든. 상인이 할 일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지. 만일 고객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같다면, 밖으로 나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점과 상품들을 살펴보는 거야. 그러면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단지 그들의 현실이 상인의  현실과 다를 뿐인 거야.”

*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


[425] 헨리 아저씨는 일찍부터 고객의 불만을 처리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채택했다. 고객이 불만사항을 갖고 나타나면 불만 접수창구에 있는 직원은 ‘고객 불만 담당 부사장’을 부르며 야단법석을 떨고, 그러면 불만 접수창구 가까이에 있는 서른다섯 살 이상의 남자직원이 부름에 응한다. 그 ‘고객 불만 담당 부사장’은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몹시 놀란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고는  “우리 베른하임 백화점의 손님이 그런 대접을 받으시다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직원을 당장 불러와요”하고 호통을 친다. 그러면 불만 접수창구 가까이 서 있던 문제의 판매직원이 불려나오고, ‘고객 불만 담당 부사장’은 그 직원을 나무라는 듯이 가리키며 “당신은 해고야”라고 소리친다. 물론 그때쯤이면 고객은 직원을 용서하게 된다.

헨리 아저씨는 계속해서 말했다. “판매직원이 울기 시작하면 집행유예를 해주는 거지. 점포 안에서 여자를 울게 놔두면 평판이 나빠지거든.” 고객이 진정돼서 가고 나면 문제의 판매직원은 약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한 항상 연극을 해준 직원에게 보상을 하지.” 헨리 아저씨는 말했다. 그런 다음 그 불만사항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고객의 불만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해.”

[428] 메뚜기처럼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예를 들면 스타킹에서 단추로, 또는 한 실험에서 다른 실험으로) 옮겨 다니기만 할 뿐 일반화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과학자들 상이에도 상인만큼이나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예술가나 좋은 과학자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인의 마음은 헨리 아저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식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화에 이르데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431]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벼렸다. 검증되지 않은 수량화에 의존하고, 경험보다는 가정에 근거한 논쟁을 하고, 대칭적이고 형식적인 모델을 만들고, 구체성을 지닌 견고한 현실을 다뤄보지도 않은 채 관념에서 관념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지금 서양에서 체계적인 분석과 사고가 막 시작됐을 때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즉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 파이드로스와의 대화를 담은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가 죽는 날 아침에 나눈 대화를 담은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두 개의 대화편은 우리에게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아니라 잡답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고 가르친다.


[435] “드러커씨, 당신도 나이가 들면 사람은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일을 고수한다는 걸 알게 될 거요. 난 내가 어떤 여성에게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 타입을 고수할만큼 나이가 들었고. 물론 내 선택은 성공했지요.”


[443-444] “맞아요. 이 채권은 지금 팔리는 가격보다 최소한 6배의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난 관심이 없소.”

“어째서죠?”

우리의 질문에 파르붐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이 그 채권을 사려는 이유는 단 하나, 확실한 이익을 얻기 위해 서죠. 난 내가 회사를 위해 기여하고 뭔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소. 머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오래전에 버렸지요.”

(중략)

피터 드러커 : “그만한 돈을 받고 제(피터 드러커)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파르붐 : “아마 할 일은 없을 거요. 다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당신이 있어주길 바라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자기만을 위해 일해주길(그보다는 일하지 않길)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448-449] 새뮤얼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 현대인의 귀에는 아주 의아하게 들릴 말이지만 그 ‘영감님’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절대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는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다. 구시대의 종교적 도덕주의자인 그가 돈을 버는 일, 즉 수익이 생기는 일을 좋지 않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슨 박사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가 되는 일을 가장 적게 한다는 말이었다. 수익사업을 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을 지배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또한 축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상징에 만족하고 현실을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그러나 .....


11) 로베르트와 파르크하슨 : 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친 영향


[462] “파르크하슨은 일에 포함되고, 이제 그 일은 블라드미르가 맡아야 하오.”

절망에 빠진 두 젊은 남자는 노인네를 설득해 달라고 마샤에게 도움을 청했다. ...(중략) 

마샤는 사무실에 와서 프리트베르크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제안에 대해 들었다. “정말 빈틈이 없으시군요, 에르네스트 아저씨.” 프리트베르크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마샤뿐이었다. “아저씨는 항상 모든 것을 고려하시네요. 이제 블라디미르에 대해서 상의할 사람이 생기게 됐군요.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줄, 남자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말이에요.”

그러자 리하르트 모르셀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블라드에게 가까이 오는 여자들을 아주 싫어했잖아요?”

“메리언 파르크하슨은 달라요. 그녀는 직업여성인걸요.”

마샤가 가고 나자 블라디미르는 구석에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끙끙거렸다. 그리고 프리트베르크는 로베르트에게 말했다. “이제 메리언 파르크하슨이 블라디미르의 애인이 되도록 놓아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지 알겠소?”

“하지만 프리트베르크 씨, 전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녀는 제 애인이에요.”

“그렇지 않네. 그녀는 회사의 코르티잔이야.”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파르크하슨이 죽었다. 블라디미르는 채 3주가 지나지도 않아 공동경영자가 됐다.

* 이 이야기를 3번째 읽었을 때 이해가 되었다.


3부 순수의 절정기

12) 헨리 루스 :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 왕국의 제왕


[471] 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편집자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편집자는 인정사정없는 지독한 독재자다. 그는 모든 기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474]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 이런 젠장. 허허허.


[474] 나는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타임>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은인 또는 구세주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헨리 루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그 자리로 인해 나는 파멸하거나 적어도 제 구실을 못하게 됐을 것이다.

루스는 <타임>, <라이프>, <포춘>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고용했다. 그러나 일단 직원이 되고 나면 대부분이 일생 동안, 심지어는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그들을 망쳐버린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런 것을 비틸 만한 꿋꿋함과 성숙함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당시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477] 그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상세하게 계획을 세우고 나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타임사에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그 자식을 잃을 뻔했다. 그것은 바로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옛 친구를 쫓아내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지 못해서 생긴 문제였다.


[484] 그 기자가 쓴 현란한 문장 몇 개를 내가 다시 썼을 때, 그 문장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기자가 루스에게 불만을 말하자 루스는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 내가 바꾼 부분을 일부 되돌려놓게 했다. 그때 루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그것이 왜곡이 아닌 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어요. 그 기사는 그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지 당신이나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기자가 루스가 자기 기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라도 알아차렸는지 의심스럽다. 마지막 작업이 다 끝나고 나서 루스가 말했다. “뒤끝이 개운하질 않군요. 아주 잘 쓰인 글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 카아, 루스 참 대단한 사람이군.


[486] (루스는) 기자와 편집자가 자기 몫을 제대로 하면, 그것이 자신의 취향에 맞든 맞지 않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491-492] 그 무렵에 나는 어떤 종류의 출판물이든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재무예측이 아니라 편집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출판물의 편집방향이 타당한가? 그렇다면 그 계획입안자들이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 다음에야 비로소 재무적인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당신은 편집방향이 타당하지 않으면 재무적인 수치는 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아이디어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없어요. 당신이 판단을 좀 해주시오.”


[493] 지식인은 이제 더 이상 여러 분야의 아무추어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식의 영역과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전문가다.


[497] 기술적으로 전자 그래픽에 필요한 요소는 컬러 이미지 기술을 포함해 모두 존재한다. 전자 그래픽을 방해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같은 어려운 문제를 비롯한 법적?정치적 문제들이다.


[503] “완벽한 <타임> 기사란 표의문자와 같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알파벳을 죽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으로 설계된 표의문자의 구성과, 하나의 상징으로 의미와 문법을 모두 전달하는 표의문자의 능력에 관해 말한 것이다.


[504] 루스는 무성영화처럼 카메라가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는 잡지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도미에보다는 세실 B. 데밀이 <라이프>의 멘토라고 할 수 있다. 루스는 무성영화의 등장으로 미국인 모두가 삽화가가 보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카메라가 보는 방식대로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 내 화실일기에 이 아이디어를 도입하면 어떨까?

* 그림을 삽화가가 보는 방식이 아니라 카메라가 보는 방식으로 본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이미 많은 그림들이 화가가 보는 방식이 아니라 카메라가 보는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13) 풀러와 맥루안 :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예언자


[506] 풀러와 맥루안은 외향적이 모든 면에서 무척 다르지만, 기술의 시인이며 전도사라는 점에서 이 둘은 매우 흡사하다. 풀러는 전쟁 시기에도 기하학적인 곡선 하나로 세계 경계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측하였으며, 맥루안은 기술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으로 보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텔레비전의 출현을 예고했다. 지금은 이들이 테크놀로지 시대의 선각자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엉뚱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508] “의도적으로 비유기적 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앨프레스 러셀 월리스


[513] 만일 종이 위에 그린 그래프들이 경제발전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래프 그리는 것을 방해하면 경제발전이 지체될 수 있다는 버키의 자부심을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버키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진지했다. 늘 심각하고 언제나 자신이 내뱉는 말 그래도 의미하는 그에게 농담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514] 그는 현실적이기 위해 자신의 이상한 디자인을 자동차와 집, 지도 등 일상적은 모든 물체에 적용했다. 그리ㅣ고 차체 위에서 들어가거나 밑에서 올라가야 하는 삼륜자동차를 타면 연료를 절약할 수 있고 공기역학궤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데 사람들이 왜 타려고 하지 않는지를 이해라지 못했다. 평면 위에 반구 형태로 짓는 다이맥시언 주택은 최대의 바닥면적과 최대의 최소의 표면적을 결합시켰으며, 그래서 난방과 냉방이 가장 적게 필요한 구조다. 그리고 이론적 최대치에 근사한 구조적 견고성과 안정성을 구조물의 지지가 필요 없는 최소한의 경량구조와 결합시키고 있다. 버키는 벽이란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가구를 넣어야 하는 기하학적으로 불완전한 직사각형의 집을 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 실제로 이 디자인은 하나하나가 모두 뛰어나게 ‘현실적’이었다. 단, 새롭고 다르게 사용할 때만 그랬다.

* 나는 왜 사람들이 자동차에 앉아서 운전해야 하는지 의아해했지. 앉아 있는 것은 피곤하잖아. 하하하. 앉아서 운전하는 자동차는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계속 가만히 앉아서 운전하면 몸이 찌푸둥하고.... 그래서 서서 운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발상을 직원들에게 얘기했더니 나보고 엉뚱하다고 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편한 것이 누워있는 것이다라는 간단한 답을 해 주었다.

이렇게 이상적인 것, 이론적으로 딱 들어맞는 그 한 가지 목적에 충실한 것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 기술자들 중에는 꽤 많은가봐.


[518] “결국 당신은 인쇄가 대학의 교수과정과 대학의 역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아닙니다. 단순히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인쇄는 그 둘 다를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인쇄는 앞으로 무엇이 지식으로 간주될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520] 기술은 생산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정의했다.


[523] 분명히 텔레비전은(‘미디어’ 전부는) 정보의 전달방식뿐 아니라 전달되는 정보의 종류까지 바꾸었다. 또한 미디어는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비롯해서,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며 자신에게서 무엇을 찾는지까지 변화시켰다. 그러나 맥루안의 구체적인 예측 가운데는 적중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어도 인쇄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바보상자’가 거실을 침범하기 전보다 더 많은 책과 잡지가 출간되고 있다. 이는 ‘이야기하기’가 ‘쓰기’가 되고 ‘쓰기’가 ‘인쇄’가 됐다고 해서 희곡과 시가 사라지지 않은 것과 같다. 미래에는 텔레비전 수상기나 전화에 달린 전자 프린터가  ‘인쇄된 말’을 전단할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전자기기는 미래의 ‘인쇄매체’가 될 것이다. 제록스 복사기는 모든 사람을 구텐베르크로 만들 것이다.


[524] 엔지지어들이 정의하는 것처럼, 5권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책 《기술의 역사》(1954년부터 1958년 사이에 영국의 위대한 학자 찰스 싱어가 편찬했다)가 정의한 것처럼, 1958년에 창설된 기술사학회의 정의처럼 기술은 도구와 기계, 그리고 그 생산품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술은 단지 ‘우주의 힘’이나 ‘인간의 확장’ 도 아니다. 싱어의 기술사가 정의한 것처럼 ‘어떤 것을 만들거나 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는가 또는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기술은 계획적, 인위적, 비유기적 진화를 다루며, 그런 진화를 통해 인간은 특별하고 독특한 인간활동인 노동을 수행한다. 인간이 뭔가를 행하고 만드는 방식, 즉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사는 방식,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방식,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인간의 생활과 역사에만 존재하는 사회적 결합이다.


[526] 버키 풀러와 미셜 맥루안은 내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례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풀러나 맥루안 같은 사람은 ‘사명’을 수행한다. 어떤 일이 달성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사명감을 갖고 한 가지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해낸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도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헌신했다. 맥루안은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해서 마침내 비전이 그를 붙잡았다. 그 역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


14) 앨프레드 슬론 :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557] 트레이스타드를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개개인’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이라고 하세요.” 노동조합에서 제정한 약정에 의거해서 새로운 고용인은 90일 동안 견습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그 기간 동안 특별한 이유로 인해 해고당하지 않는다면 90일 이후에 바로 정규직으로 고용됐다.

...... “우리가 사람을 뽑을 때는 90일 동안만 일을 시키려고 뽑은 게 아니라네. 우리는 앞으로 30년 동안 일을 시키려고 그들을 고용한 것일세. 앞으로 30년이란 기간 동안 그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 연장과 직장동료들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이 될 걸세.”


[560] 그들 가운데 직무와 관련해서 지켜야 할 긴 수칙들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글을 가르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배우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그래서 그는 직접 수십 대의 폭격조준기를 만들어봤다. 방법을 체득하고 나서는 전체 제작과정을 비디오카메라에 하나하나 담았다. 그는 필름을 프로젝터에 끼우고 화면이 돌아가는 동안 다른 프로젝터에서 작업공정도가 나오도록 설치했다. 이때 작업공정도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사람에게 이미 작업한 내용은 붉은 빛으로, 그 다음에 들어가야 할 작업은 초록불빛으로, 그리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내용은 노란불빛으로 구분해 보여주었다. 오늘날 이 방법은 수많은 조립공정에 사용되는 표준절차가 됐지만, 이것을 처음으로 고안해 낸 사람이 바로 트레이스타트였다. 그 후 몇 주 안에 아무 기술도 없고 글도 읽을 줄 몰랐던 사람들이 고도의 숙련 기계공들이 이전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을 잘했을 분만 아니라 더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 혁신이란 이런 게 아닐까?


[568] “조합에게 가치가 있는 것들은 분명히 어렵게 획득한 이득일 겁니다. 경영진에서 제안하는 것이 조합과 그 구성원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으려는 조합은 하나도 없죠.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그들에게 심어줬어요. 내가 비록 미국자동차노동조합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 강력한 반대의사를 보인 후에나 그들에게 양보할 생각이에요. 그래야 그것이 그들에게 가치기 있을 테니까요. 만약 GM이 노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시기가 곧 올 겁니다.”


[577] 앨프래드 슬론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실패하면, 트레이스타트 씨, 당신은 캐딜락에서 직업을 잃게 되겠죠. 캐딜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GM이 있는 한, 내가 이끌고 가는 한, 자기 책임을 다하고, 솔선수범하며, 용기와 상상력이 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은 캐딜락의 미래를 걱정하세요. 하지만 GM에서의 당신의 미래는 내가 걱정하겠소.”


[578] “당신의 연구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 들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드러커 씨, 나는 그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동료 이사들이 모두 내 의견을 무시했어요.  따라서 당신의 역량 안에서 최상의 결가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내가 도울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세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은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다 얻도록 하세요. 나는 당신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연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최고이사들이 모이는 많은 회의에도 참석해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나나고, 이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군요. 물론 나는 우리가 의논하는 어떤 기밀사항도 밖으로 누설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당신이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일을 풀어가는 방법이지 결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드러커 씨,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조사하고 우리에게 어떤 것을 제안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한 가지만 말해 두겠어요. GM에는 35명의 부회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으면 타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세요. 누가 옳은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나를 포함한 경영진 가운데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이 당시의 제안이나 결론을 마음에 들어할지 아닐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틀리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바로 알려주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약속한 대로 내 연구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끝까지 지원해 주고 내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582] “당신은 내가 모든 사람들을 정확히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오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은 뿐인데, 그것은 결론을 천천히 내린다는 의미예요.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지 않으면 뒤늦게 후회하게 되죠. 우리가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잘 판단해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절대로 자기의 후계자를 직접 임명하지 마라, 그건 결국 자신의 복사판이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예부터 내려오는 첫 번째 규칙입니다.”


[587] 무엇보다 슬론은 다양성을 조성하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내게 말했다. “어쩌면 브래들리를 내 후계자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 잘 된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내가 잘하는 일을 훨씬 더 잘했기 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했을지도 몰라요. 윌슨은 우리와는 다른 일에 뛰어났고, 바로 그런 점이 회사에 필요해요.” 그리고 내가 언젠가 그에게 GM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최고이사들 사이에어 볼 수 있는 다양성이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게 바로 GM의 진정한 힘이죠.”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슬론은 스스로를 다른 이사들로부터 고립시켰다. “만약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 친구가 있다면 나는 그를 편애하게 되겠죠. 나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거예요.”


[595] 슬론은 결정을 내릴 때 사람 수를 세거나 투표를 통해서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해를 통해서 결정을 내렸다.


[596] “만약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면,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당연하죠. 그 정의 시간도 할애할 수 없는 사항이라면 우리는 당장 때려치울 겁니다. 우리는 아주 적은 수의 결정을 내립니다. 드러커 씨, 누구도 수많은 결정을, 그것도 옳게 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결정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600-601] 슬론은 자신의 책(《제너럴모터스와 함께한 나의 삶》)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책의 제목이 잘못 붙여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제너럴모터스’가 돼야만 했다. 그책에서는 슬론이 아니라 GM이 영웅이니까. ......... 슬론은 그 어떤 것보다 사람에 대한 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그의 책에는 그들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다. 그가 취하던 신중한 결과과정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지 않다.


[602] 전문가란 자신의 관심사와 사생활을 공적인 업무와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슬론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개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적으로 주의해야 할 대상이 됐다. 언젠가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외과의사가 맹장을 제거할 때는 그가 맹장수술에 능해서라거나 수술 자체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오. 그가 맹장을 제거하는 이유는 환자를 진단한 결과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슬론의 책은 바로 진단에 대한 책이다.


[606] 책임없는 권위는 부조리한 것이고, 반대로 권위 없는 책임도 마찬가지다. 이 두가지 경우 모두 독재의 길로 갈 가능성이 있다.


15) 그밖의 사람들 : 대공황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621-622] 대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방식은 자연재해를 극복할 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듯이, 공동체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마치 자연재해를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 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이랬다. “당신도 봤지? 내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어.”


[626] 하나의 ‘자연재해’는 반복되지 않으며, 신의 뜻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리고 중단되었던 정상적인 삶은 비상사태가 해소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복귀한다.


[639] “원래 이 세상에 신만이 존재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나는 합중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말의 뜻이 뭐야?


[643] 백인 농부들은 은행에서 돈을 융자받을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일하지 않을 때도 먹여 살려야 할 필요가 없는 기계를 도입했다. 1897년부터는 이미 트랙터나 채면기로 목화를 수확했던 것이다. 흑인 소작농을 밀어낸 것은 바로 풍요의 경제학이었다.

기술도 중고차의 형태로 흑인 소작농을 밀어내는 데 기여했다. 모카데이 존슨은 내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흑인 노예들이 해당될 것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흑인은 이미 해방됐죠. 단지 백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입니다. 미국 흑인들은 백인들이 흑인이 운전하는 차에 치어도 백인이 운전하는 차에 치었을 때처럼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유인이 되는 겁니다.” 기동성과 권력을 제공하는 자동차는 흑인 소작농들을 감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운전사의 자리에 집어넣음으로써 그 힘을 느끼게 했다.


[647] 메리앤 앤더신과 그녀의 목소리, 즉 그것이 지닌 아름답고 전적으로 영적인 힘은 현협함을 넘고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내 백성을 보내세요.”라고 노래했을 때 바로 그 목소리가 미국 백인의 ‘흑인’문제는 결국 흑인의 권리보다는 백인의 양심과 훨씬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장본인의 목소리 말이다.


[679] 언제나 생존이 비전을 무력화 시켰다. 현실은 미국을 단독으로 ‘지구상의 마지막 희망’이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들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679] 며칠 뒤에 대령은 그 비밀문서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도 우리의 포스터를 보더니 낄낄거리며 웃고는 물었다. “이런 보석같은 글을 어디서 찾았습니까?” “지난번 당신이 우리에게 주고 간 보고서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장 저걸 떼세요. 그리고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발겨야 합니다. 그건 일급비밀이라고요.”


■ Ⅲ.내가 저자라면

1) 관찰자

관찰자를 관찰하는 것은 어떨까?

피터 드러커는 자신이 관찰자였다고 자서전의 앞쪽에 기술했다. 그가 관찰자였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울 수 있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폴라니가에 대한 서술에서는 폴라니가의 실패를 지적하는 드러커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어느 것에도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잠시 비난을 했다. 그러다가 그의 적정거리 유지가 사람들이나 사회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았기 때문에는 장점이 되었다. 사람의 다양성 속에서 사람과 사회, 언론, 국가, 역사, 기업(경영)의 개념들을 정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드러커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기업의 어떤 활동보다는 전문경영인을 연구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피터드러커의 시각으로 프로이트나 미국의 외교 고문 크레머를 연구해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드러커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드러커도 흥미로운 인간이다.


2) 잘 읽히는 글, 그리고 건너뜀

p.402-403 프리트베르크에 대한 묘사는 아주 자세하고 재미있다. 피터드러커의 외모 묘사를 읽다보면 그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의 성격이 보이는 듯 하다.


p.432 

[432] 일요일에 나는 굉장히 특이한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났다. 사람처럼 옷을 입은 거대한 까마귀를 만난 건지, 아니면 거대한 까마귀처럼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만난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 나는 내심 그가 두 번 다시 깍깍거리지 않기를 바랐다.


p. 433 “얼마면 이 집을 제게 팔고 즉시 비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웬 미친놈을 다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운전사까지 딸린 의리의리한 롤스로이스를 타고 온 미친놈이었다.


백화점을 경영하는 사람에 대해서 묘사했을 때는 항상 냄새를 맡고 다니는 강아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크레머에 대한 묘사도 외부 묘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의 인물묘사는 재미있다. 외모의 묘사는 외모로만 그치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의 외모 묘사는 성격묘사로 이어진다. 그의 복색에서 그의 행동에서 그 사람의 성격까지 꿰둟는다. 어떤 한 사람의 외모나 현재의 지위 하는 일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 인생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 자서전은 소설을 읽는 듯 하기도 하다. 2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옴니버스 소설. 읽는 재미 또한 큰데 개념을 설명하는 책이 아닌 점이 가장 큰 특징이겠지만, 사람에 대한 서술과 사건에 대한 서술이 읽는 맛을 더한다. 식상한 표현들은 거의 없다.

3) 내가 만일 이런 식의 자서전을 쓴다면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할 때, 나는 10대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했었다. 현재의 내 성격, 그리고 지금의 행동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처럼 자신이 생애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자서전도 무척 흥미가 있을 것이다.


내 생애의 사람들을 자서전에 넣는다면

‘나는 이들로부터 이러이러한 영향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아래의 사람들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 부모님,

외할머니, 친할머니 : 즐거움과 후회

내 생애의 선생님들 : 초등학교시절의 선생님, 미술 선생님, 그리고 .....

미순이 : 홍역, 밝은 나날들, 설레임을 준 사람

매력적인 사람들 : ‘이성이란....’

송명석 : 네트웍마케팅과 사람

김성일 : 더불어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

정선이 : 울타리는 넘는 사람,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목록을 만들고 보니 참 개인적이란 생각이 든다. 자서전이 개인적이 아니길 바라는 것도 모순이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는 특별히 기록할 만한 외부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Ⅳ. 책 내용에서 흥미 있었던 부분과 요약

1)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랑

왜 이런 부제목을 붙였을까? 피터드러커의 할머니는 분명 유쾌한 분이시고 애정이 넘치는 분이시다. 할머니는 인간에 대한 애정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하고 계신다. 이성이란 눈으로 보자면 할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던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할머니의 일화 속에는 부제로 붙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랑’이 넘친다.

- 할머니의 교통사고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신 것을 떠올릴 때의 피터 드러커.

-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속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던 것

-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예의를 가르친 것


2) 헤메와 게니아 :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경영의 귀감?  경영의 귀감이라는 면을 읽은 도중 많이 놓쳤다. 뒷부분의 반전때문인데, 이들 부부에 많은 흥미를 느꼈고, 이들 부부가 보여준 행동이 내게도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어떤 면은 따라해 보고자 했다. 피터 드러커는 이들 부부의 행동을 묘사하고 그들이 사용했던 방식을 자신이 업무를 처리했을 때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매우 흥미롭고, 공격적이며 또한 효율적이다. 마지막의 ‘사라진 섬 아틀란티스’에 도달한 선원이 되는 꿈 이야기에서 그만 경영의 귀감이란 혼란스러워졌다.

- 헤메가 작별인사를 하는 피터 드러커를 문밖으로 밀어버린 것

-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섬 꿈 이야기의 결말


3) 엘자와 소피: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에 대해서 기술하는 장에 밑줄을 엄청나게 그었다.


가장 밑줄을 많이 그은 부분이다. 교육, 선생님이란 것에 흥미가 많으니까.

미스 엘자의 교육방법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학습하는 방법을 일러줌으로써 스스로 해나갈 수 있게 기틀을 잡아주는 엘자의 방식을 현재의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스 엘자가 초등학생에게 가르쳤듯이 이 방법은 누구나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엘자의 교육방법

- 피아노 레슨장면


4) 프로이트 :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프로이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장에서는 피터드러커가 말하는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프로이트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밑줄을 그었다. 프로이트적인 방법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터드러커의 눈으로 보았다. 내 시각으로는 보지 못했다.

- 프로이드가 끝까지 언급을 회피한 것


5) 트라운 트라우테크 :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리뷰를 쓰기 위해 밑줄을 그어둔 부분만을 다시 읽다가 문득 나는 놀랐다.

앞부분에 형벌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에서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왜 형벌의 문제를 들먹였을까? 그리고

만약 수십가지 설명들이 모두 전적으로 다르지만 자명한 사실을 전제로 해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뒤에 기초적인 논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합리화이고 결국 요점을 벗어나게 마련이다.’[254]

왜 이런 연결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 00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 드러커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이러하다’라는 것에 익숙한 나는 문학을 읽는 것처럼 행간을 읽어야 하는데 나는 좀 더 심한 비약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의심하기도 한다.

내가 밑줄 친 것들을 꿰어서 형벌의 문제와 사회주의의 몰락과 그의 고백을 연결하려는 의도에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려도 될까? 형벌이 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주의나 민족주의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이런 비약을 하고 보니 ‘00주의’라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아, 나는 책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 전쟁은 희망을 앗아간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


6) 폴라니가 :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이들 가족의 모습은 많은 사회운동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행동, 그리고 실패, 이들의 실패에 대한 피터드러커의 해석. 사회에 대한 해석을 본다. 피터 드러커가 기술한 가족들에게도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자꾸 피터 드러커가 자신을 ‘구경꾼’이라고 표현한 것을 다시 떠올린다. ‘피터 드러커는 그는 역시 구경꾼이다.’ 추종하지도, 동조하지도 않으며, 그리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구경꾼이다.

- 사회를 위해 힘쓰는 폴라니가 사람들, 과연 이상적인 사회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7) 크레머 :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크레머 개인에 대한 흥미에서 시작하여 정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일관성이 있다는 것과 현실을 외면한 채 무슨 이론이나 ‘00이즘’을 중시하는 것,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피터 드러커의 눈으로 실패사례를 본 것 같다.

- 정치에서 일관성이 있다는 것

-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이 할일을 젊어서 규정한 것


8)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나약함과 오만에 대해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지적한 21세기의 가장 큰 죄는 ‘무관심’ 혹은 ‘무책임’이라는 말로 대변될 죄에 대해서도. 환경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장이다.

- 악의 거대함, 나약한 인간의 휘둘림

- 악에 대처하는 법


9) 브레일스포드 :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반대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람, 양심을 권력에 타협시키지 않아서 중요한 사람은 자신이 거부하던 것들을 받아 들일 때 그 색을 잃고 중요성도 사라진다.

- 끝을 미리 생각한다 : 퇴색


10) 프리트베르크 : 19세기의 탁월한 개인 금융업자

수석비서로서 해야할 일을 찾아서 해결한 일화는 직장에서의 자신의 태도와 주도성에 대해서 짚어보는 개기를 주었다. 모든 노동자 지식근로자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전문가가 될 수 있다.

- 머리가 좋다는 이유 만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윈-윈’의 투자를 하고 싶다.


11) 로베르트와 파르크 하슨 : 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치는 영향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사업가와 여성의 관계’를 짐작 할 수 있었다. 피터 드러커는 어떤 면에서는 친절하지 않다. 그는 알고서 말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하다니...... 알고 싶은 데 이해는 되지 않고 엉뚱한 결론만을 낸다.

- 사업가와 사업가의 특성을 잘알고 있는 여성의 존재, 사업 외적인 것을 사업에서 다루는 것


12) 헨리 루스 : <타임>,<포춘>, <라이프> 잡지왕국의 제왕

헨리 루스의 경영이 중국적인 경영방식이라고 지적하며, 헨리 루스가 중국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기술했을 때 컬쳐코드를 떠올렸다. 이 장의 부제로 붙인‘00왕국의 제왕’이란 표현이 걸맞다.


13) 풀러와 맥루안 :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예언자

풀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과학자로서.

- 풀러의 외로움, 풀러의 비전

- 맥루안: 인쇄와 지식의 관계를 밝히다


14) 앨프레드 슬론 :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전문경영자’, 피터 드러커의 책의 많은 부분에 전문경영자가 등장한다. 앨프레드 슬론이 전문경영자는 이러이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지켰던 원칙들, 그것들을 피터 드러커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피터드러커의 다른 책들에는 나올 것이다. 사람(경영자)에서 출발해서 행위(경영)을 연구했을까?


15) 그 밖의 사람들 :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 대공항을 자연재해 극복하듯이 극복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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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붙들고 있었다. 재미있고, 생각할 꺼리가 많다. 정리를 하기 벅찬 내용들이 많다.
엉성한 정리지만 정리를 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아 기록해 둔다.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고, 이 책에 등장한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연구원의 수련과정에 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책이 맛뵈기가 된다. 입맛을 계속 다시게 만드는 맛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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