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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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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09시 46분 등록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민음사

 

 

1. 저자 소개


이 시집을 쓰기까지 나의 인생은

 

추억에 잠겼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바닷소리 때문에. 70이 다 된 나는 지금 발파라이소 근처의 해변, 이슬라네그라에서 한가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해변을 채찍질하던 폭풍이 마침내 한풀 꺾였다내가 창문으로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바다가 수천 개의 물거품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직도 바다는 가공할 만한 폭풍의 여파로 술렁대고 있다. 옛일을 되살리는 작업은 마치 내 귀에 들리는 저 파도 소리가 쉬지 않고 내 안으로 밀려들어와 때로는 자장가처럼 나를 재우기도 하고 때로는 난데없는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 같다.

 

내 유년시절을 얘기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남반구의 비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지구력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마치 케이프혼이라는 하늘에서 개척지라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는 칠레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뜨고 마침내 시에도 눈을 떴다. 내가 살던 칠레 남부 도시 테무코는 새로 개척한 도시였다. 테무코는 칠레 남부를 칠레로 편입하기 위한 전진기지였다. 이런 편입과정은 피로 물든 긴 역사를 의미했다. 300년 동안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항하던 이 땅의 <아라우카>족은 결국 추운 지방으로 밀려 났다. 아라우카 족의 용기, 혁혁한 전과, 아름다운 삶은 알론소 에르시야의 서사시 <아라카우나>에 주옥같이 시구로만 남아 있다.

 

나는 1904년 7월 12 태어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 오래 전부터 결핵을 앓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은 일찍이 고향 파랄(칠레 중부 도시)을 떠나 탈카우아노 항구의 조선소에서 일하다 나중에는 테무코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했다. 아버지는 자갈 기차 기관차였다. 이런 자갈 기차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철인이 아니면 그일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곧 재혼하셨다. 새어머니는 온화하고 부지런한 분이었다. 상냥하고 유머감각도 있었다. 그녀는 유년기 나의 수호천사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귀가하면 당시 그 지역 여자들이 모두 그러하듯조용한 그림자로 보냈다.

 

당시 개척지 아이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종종 교실을 몰래 빠져나가 하얀 자갈 위로 흐르는 카우틴 강 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학교 지하실 음습한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촛불을 켜놓고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다. 물과 나무 냄새를 풍기는 내 친구들의 얼굴은 거무스름한 아라우카의 색깔을 띠고 있었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타는 불볕더위로 지글거리는 처녀림에 둘러싸인 산골 테무코를 떠나, 바다가 있는 아버지 동료 철도원의 집을 빌려 휴가를 보내곤 했다. 줄지어 늘어선 기와지붕이 그곳 임페리얼 마을의 전부였다. 우리가 묵는 집에서는 멀리서 아득하게 으르렁거리는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파도는 밤마다 내 몸 안으로 밀려왔다. 집 안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정원 한 가운데는 퇴락한 정자가 있었다. 나라는 하찮은 존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적막한 정원을 찾지 않았다. 이 정원에서 내 시심은 담쟁이덩굴과 함께 무성하게 자랐다. 테무코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신기하기 이를데 없는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성장했고, 책을 읽었고, 사랑에 빠졌고, 자연 속에 흡수되었다. 또한 글을 썼다. 이렇게 두 곳, 울창한 삼림과 끝없는 해변을 계절 따라 오가며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에 영혼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나는 서서히 시인이 되어갔다.

 

내가 처음으로 시를 쓴 것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다. 다시 말해 내가 아는 유일한 어머니, 어린 시절 항상 나를 포근하게 감싸준 천사 같은 새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다. 첫 작품이 어떤지 도무지 판단이 안 서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건성으로 받아들고 읽더니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 이거 어디서 베꼈니?’

처음으로 나는 무책임한 비평의 쓴 맛을 보았다.

 

어쨌거나 나는 고독한 항해사처럼 책이라는 강줄기를 따라 좌충우돌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의 독서열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 시절 나는 타조처럼 가리지 않고 뭐든 집어삼켰다. 그 무렵 키 큰 여자가 테무코에 나타났다. 그녀는 (1945년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여류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었다. 그는 칠레의 최남단 마가야네스 지방에서 이곳 여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교장선생님이었다. 나는 내성적이라 그녀를 자주 찾아가지 못했지만 그녀는 내가 갈 때 마다 러시아 소설을 빌려주었다. 세계문학에서 러시아 소설만큼 뛰어난 작품도 없다고 생각한 그녀 덕분에 나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홉 작품을 애독했다. 나는 지금도 이 작가들을 좋아한다.

 

중등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산티아고 데 칠레'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칼날처럼 비쩍 마른 나는 1921 3월 시인의 필수품인 검은 양복에 양철 트렁크를 손에 들고 야간 열차 삼등칸에 올라 탔다. 기차는 하루 밤과 하루 낮을 꼬박 달려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당시 나의 머릿 속에는 온통 책과 꿈, 그리고 벌 떼처럼 윙윙거리는 시들로 가득했다. 산티아고 마루리 거리 513번지 자취집은 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저녁이면 나는 매일 발코니에 앉아 저물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초록과 심홍색을 두른 하늘과, 노을에 금방이라도 타 버릴 듯한 교외 지붕의 '비통한 광경' 하염없이바라보았다.

 

이 낮선 도시에서 잔혹한 수줍음에 시달리던 나는 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나는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썼다. 그런 시는 1923년 첫 시집 <황혼 일기>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 중간에마두리란 소제목이 붙은 장이 있다. 마두리는 장려한 노을이 찾아들던 그 허름한 골목을 그린 시이다. 나는 이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얼마 값이 나가지 않는 가구를 팔고, 아버지가 물려준 시계를 전당포에 맡겨야 했다. 첫 책을 들고 출판사를 나서던 날, 나는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뛸 듯이 기뻤다. 어떤 장인도 시인처럼 자신이 빚은 첫 창조물에서 꿈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도취나 환희를 경험하지는 못하리라.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빳빳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황홀의 순간을 맞았다. 첫 시집 가운데 한 편의 시는 책을 박차고 나와 홀로 제 길을 갔다. 그 시는 바로작별이라는 시다. 나는 지금도 가는 곳마다 그 시를 낭송해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수년 후 스페인에서 가르시아 로르카를 만났을 때 그도바람난 여자라는 시로 나와 똑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시인들 가운데 단 한 편의 시만이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 독자들의 애착은 시인을 특정 순간에서 못 빠져나오게 만든다.

 

<황혼 일기>가 옛일이 되어가고 있을 때 나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테무코에 있을 때인데 자정을 훨씬 넘은 시간에 귀가했다. 침대에 들기 전 창문을 열었다. 하늘을 보고 나는 넋을 잃었다.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별에 도취되었다. 마치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시를 써내려갔다. 이 시를 계기로 나는 소박한 표현과 내 고유의 조화로운 내면 세계를 추구하며 연애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스무살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이다.

 

이 시집은 목가적이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고뇌에 찬 청년 시절의 나의 정열과 칠레 남부의 거친 자연이 혼합되어 있다. 번뜩이는 우수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기쁨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시집을 무척 아낀다. 이 시집을 쓰는데 도움이 된 강과 강어귀가 있다. 바로 임페리얼 강이다. 이 시집은 산티아고의 로맨스이다. 학생들이 다니는 거리, 대학, 인동덩쿨의 향기가 묻어있다.

 

산티아고 부분은 에차우렌 거리와 에스파냐 거리 사이에서, 즉 낡은 사범대 건물 안에서 썼지만 풍경은 남부 지방의 물과 나무를 가져다 썼다. ‘절망의 노래에 등장하는 부두는 카라우에와 바호 임페리얼의 낡은 부두로, 그곳에서 나는 강물에 침식된 통나무와 부러진 널빤지를 볼 수 있었다. 강어귀에 예나 지금이나 갈매기의 날개짓을 느낄 수 있다.  

 

절망의 노래는 어느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좁고 긴 구명보트에서 <장크리스토프>를 읽고 난 후에 썼다.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시리게 푸른 색이었다. 뭍으로 올라온 구명보트에 앉아 나는 이 시를 썼다. 그 시절 만큼 심오하고 고양된 기분을 느낀 적은 내 생애에 없다. 저 위에는 침범할 수 없는 푸른 하늘이 있었고, 손에는 <장크리스토프>와 방금 쓴 시가 들려있었다. 내 곁에는 시로 나타난 모든 것들이, 이를테면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불멸의 가시나무처럼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이 우울하고 열정적인 시집에 등장하는 두 세 명의 여자 이름을 편의상 마리솔과 마리솜브라라고 해두자. 마리솔은 무수한 별과 테무코의 젖은 하늘처럼 검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시골처녀이다. 명랑하고 생기넘치는 모습은 산 위로 떠 오른 반달이나 항구의 물결과 함께 시집 전편에 걸쳐 나타난다. 마리솜브라는 산티아고 학생이다. 또한 회색 베레모이고 부드러운 눈길이며, 학창 시절의 연애 편력에 스며든 인동덩굴 향기이자, 도회지 은밀한 곳에서 열정적인 해후를 나눈 뒤 찾아드는 육체적 평화다.

 

당시 칠레는 변하고 있었다. 칠레 민중운동이 들끓어 올랐고, 학생과 작가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나는 매주 <클라리다드>에 기고했다. 우리 학생들은 민중의 권익을 옹호했다. 간혹 공백은 있었지만, 그 시절부터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이제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삶의 몫이 되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았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2. 20편의 시 전문

(내가 느낀 네루다 시의 펄덕임을 직접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한 여자의 육체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 맡길 때 너는 세계와 같다.

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왔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기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벗은 몸, 이끼의, 갈망하는 단단한 밀크의 육체!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치골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우아함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내 끝없는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

그리고 피로가 따르며 가없는 아픔이 흐른다.

 


빛이 너를 휘감는다

 

빛이 너를 그 죽음의 불길로 휘감는다.

멍한 채 창백한 애도자는, 너를 휘감아 도는

황혼의 오래된 나선을 배경으로

그렇게 서 있다.

 

말없이, 내 친구여,

이 사자의 시간의 외로움 속에

그리고 파멸한 날의 순수한 상속자인

불의 활기로 가득 차서 혼자 있다.

 

과일 송이 하나 태양에서 네 검은 옷에 떨어진다.

밤의 크나큰 뿌리들이

문득 네 영혼으로부터 자라나고,

네 속의 감춰진 것들이 다시 나타나

네가 새로 낳은 침울하고 창백한

사람들이 영양을 섭취한다.

 

, 검은빛과 금빛 번갈아 가며 움직이는 순환의

장엄하고 비옥하고 자력있는 노예여:

일어나라, 이끌라 그리고 생명력이 너무 많아

 

그 꽃들이 시들고

슬픔으로 가득 차는 창조를 성취하라.

 

 

, 소나무 숲의 광활함

 

, 소나무 숲의 광활함, 부서지는 파도 소리,

천천히 빛들의 번쩍임, 외로운 종소리,

네 눈 속에 떨어지는 황혼, 장난감 인형이며

-소라인, 그 속에서 지구가 노래하는 너의 눈!

 

네 속에서 강들이 노래하고 내 영혼은 그 속으로 도망친다

네가 바라는 대로, 그리고 너는 욕망을 네가 보낼 데로 보낸다.

내 길을 네 희망의 활에 맞추어

나는 흥분하여 내 화상 떼를 날리리.

 

사방에서 나는 네 안개의 허리를 보고,

네 침묵은 내 애타는 시간을 괴롭힌다;

내 키스는 닻을 내리고, 내 젖은 욕망은

투명한 돌 팔이 있는 네 속에 둥지를 튼다.

 

, 사랑이 울려내는 네 신비한 목소리는

반향하며, 숨 막히는 저녁 속에 어두워진다!

그렇게 깊은 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 들판에서

밀의 귀들이 바람의 입 속에서 울리고 있음을.

 

 

아침은 가득하다

 

한여름

아침은 폭풍우로 가득하다.

 

구름은 작별의 흰 손수건들처럼 흘러가고

바람은 그것들을 손에 쥐고 흔들며 불어간다.

 

바람의 수 없는 심장은

우리의 사랑하는 침묵 위로 고동친다.

 

오케스트라 같고 신성하게, 나무들 사이에 반향한다

싸움과 노래로 가득 찬 언어처럼.

 

급습하여 죽은 나뭇잎들을 쓸어가는 바람

새들의 박동하는 화살들을 빗나가게 한다.

 

그녀를 물보라 없는 파도 속에 흔드는 바람,

무게 없는 물질, 그리고 사위어가는 불.

 

그녀의 키스 떼는 갑작스럽고 잠수하게 하며,

여름 바람의 문으로 습격한다.

 

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내 말들, 때로는

바닷가 갈매기들의 발자국처럼

가늘어지는 말들을.

 

목걸이, 포도처럼 보드라운 너의 손들을

위한 종.

 

그리고 나는 멀리 떨어져서 내 말들을 관찰한다.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기보다 너의 것이다.

그것들은 내 오랜 고통을 담쟁이 넝쿨처럼 기어오른다.

 

그건 또 젖은 담들을 기어오른다.

이 자인한 놀이는 네 책임이다.

그것들은 내 어두운 굴에서 도망친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를 보기 전 그것들은 네가 차지한 고독에 붐볐고

너보다 더 슬픔에 익숙했다.

 

이제 나는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것들이 하기를 바란다

네가 나를 듣기를 내가 바라는 대로 네가 듣도록.

 

고통의 바람이 늘 그렇듯 여전히 그것들에 불어온다.

때로는 꿈의 허리케인이 그것들을 뒤집어엎는다.

너는 내 고통스러운 목소리 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듣는다.

 

오래된 입들의 비탄, 오래된 간청의 피.

나를 사랑해 다오, 친구여.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나를 따라다오.

나를 따라다오, 친구여, 이 고통의 파도 위에서.

 

하지만 내 말들은 네 사랑으로 얼룩졌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나는 그것들로 끝없는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포도처럼 보드라운 네 흰 손들을 위해.

 

 

나는 네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지난가을의 네 모습을 기억한다.

너는 회색 배레요 조용한 가습이었다.

네 눈 속에서 황혼의 불꽃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잎은 네 영혼의 물에 떨어졌다.

 

기어오르는 식물처럼 내 팔을 끼고

이파리들은 느리고 평화로운 네 목소리를 거두었다.

내 갈증이 타고 있는 경외의 모닥불.

감미로운 푸른 히아신스가 내 영혼을 감아붙였다.

 

나는 네 눈이 여행하는 걸 느끼고, 가을은 사방 아득하다:

회색 베레, 새의 목소리, 내 깊은 그리움이

이주하는 집과 같은 가슴

그리고 내 키스는 떨어진다, 잔화처럼 행복하게.

 

배에서 보는 하늘. 언덕에서 바라보는 들판:
너를 생각하면 기억나느니 빛과 연기와 고요한 연못!

네 두 눈 너머, 저 멀리, 저녁은 타오르고 있었다.

마른 가을 잎이 네 영혼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오후들 속으로 몸을 굽히고

 

오후들 속으로 몸을 굽히고 나는

네 대양과 같은 눈을 향해 내 슬픈 그물을 던진다.

 

거기 뜨거운 불 속에서 내 고독은 늘어나고 타오르며,

그 두 팔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린다.

 

나는 등대 가까운 바다처럼 움직이는

너의 방심한 눈을 가로질러 빨간 신호들을 보낸다.

 

너는 어둠만을 지키고, 내 먼 여자여,

네 응시로부터 때때로 공포의 해안이 떠오른다.

 

오후들 속으로 몸을 굽히고 나는

네 대양과 같은 눈에 파도치는 바다에 내 슬픈 그물을 던진다.

 

밤새들은 내가 너를 사랑할 때의 내 영혼처럼

반짝이는 첫 별들을 부리로 쫀다.

 

밤은 어슴푸레한 암말을 타고

땅 위에 푸른 술을 흩뜨리며 달린다.

 

 

흰 벌

 

흰 벌, 너는 꿀에 취해, 내 영혼 속에서 붕붕거린다,

그리고 너의 비상은 느린 연기의 나선형으로 휘감아 돈다.

 

나는 희망 없는 사람, 메아리 없는 말,

모든 걸 잃었고 또 모든 걸 얻은 사람.

 

최후의 밧줄, 네 끽끽거리는 소리 속에 내 마지막 희망.

내 황무지에 너는 마지막 남은 장미.

 

, 말없는 너!

 

네 깊은 눈이 감기게 놔두렴. 거기서 밤이 푸드덕거린다.

, 너의 몸, 발가벗은, 놀란 조상.

 

너는 밤이 두드리는 깊은 눈을 갖고 있다.

꽃들의 서늘한 팔과 장미의 무릎.

 

너의 가슴은 흰 달팽이 같다.

졸린 나비 한 마리 너의 배 위에서 잠자려고 왔다.

 

, 말 없는 너!

 

네가 부재하는 고독이 여기 있다.

비가 내린다. 바닷바람은 헤매는 갈매기들을 사냥한다.

 

물은 젖은 거리를 맨발로 걸어간다.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아픈 듯 투덜거린다.

 

흰 벌아, 네가 가버린 뒤에도 너는 내 영혼 속에서 붕붕거린다

너는 조만간 되살아난다, 날씬하고 말없이/

 

, 말 없는 너!

 

 

소나무에 취해

 

소나무와 오랜 키스에 취해,

여름처럼 나는 장미들의 쾌속 항해를 조종한다,

야윈 날의 죽음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내 순전한 해양성 광기에 붙박인 채.

 

창백한 채 내 굶주린 물에 매질하며,

나는 발가벗은 분위기의 시큼한 냄새 속으로 순항한다,

여전히 어둡고 괴로운 목소리로 그리고

버려진 작은 가지의 슬픈 술로 꾸미고.

 

열정으로 굳어, 나는 내 하나의 파도 위로 오른다,

동시에 달답고 태양다우며 타오르고 차가운 거기,

서늘한 히프처럼 희고 달콤한

행운의 섬들의 협곡에서 진정시키며.

 

축축한 밤 속에서 내 키스의 옷은 떨린다

미칠 만큼 전류로 충전되어

꿈과, 나를 몸에 익히는 열광하는

장마들로 영웅적으로 나뉘어.

 

바깥 파도의 한가운데서, 그걸 거슬러

네 평행하는 몸은 내 품에 든다

내 영혼에 한 없이 달라붙는 물고기처럼,

빠르고 또 느리게, 하늘 아래 에너지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다

 

우리는 황혼조차 잃어버렸다.

푸른 밤이 세계 위에 내리는

이 저녁 손을 잡고 있는 우리를 본 사람이 없다.

 

나는 내 창에서 보았다

먼 산 꼭대기 석양의 잔치를.

 

때로는 태양 한 조각이

내 손가락 사이의 동전처럼 타는 것 같았다.

 

나는 너를 기억했다 너도 알고 있는

슬픔으로 단단해진 내 영혼으로.

 

그때 너는 어디 있었지?

거기서 너는 누구였지?

무슨 말을 했고?

왜 온 사랑은 내가 슬프고

네가 멀리 있다고 느낄 때 갑자기 내게 오는 거지?

 

항상 황혼 녘에 일을 시작하는 책은 떨어졌고

내 망토는 상처 입은 개처럼 내 발에 떨어졌다.

 

언제나, 언제나 너는 저녁 속으로 멀어진다

어스름이 조상들을 지우는 그 쪽으로.

 

 

거의 하늘을 떠나

 

거의 하늘을 떠나, 달의 반이

두 산 사이에 정박해 있다.

회전하는, 유랑하는 밤, 두 눈을 파내는 것.

얼마나 많은 별들이 웅덩이에서 박살 났는지 보자.

 

그건 내 두 눈 사이로 애도의 횡단을 하고는, 도망친다.

푸름 금속의 용철로, 잠잠해진 결투의 밤들,

내 심장은 미친 바퀴처럼 회전한다.

멀리서 온, 멀리서 데려온 아가씨,

때때로 너의 눈짓은 하늘 아래서 번뜩인다.

우르릉거리며 몰아치는 격렬한 회오리 바람,

너는 쉼 없이 내 가슴 위를 가로지른다.

무덤에서 부는 바람이 네 졸린 뿌리를 앗아 가고, 파괴하고, 흩뜨린다.

 

그녀 저 쪽 편에 있는 큰 나무들, 뿌리가 뽑혔다.

그러나, 너 밝은 아가씨, 연기의 질문, 옥수수수염.

너는 바람이 반짝이는 나뭇잎들로 만들고 있었던 것.

밤의 산 뒤로 큰불 난 백합,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너는 모든 것으로 만들어졌다.

 

내 가슴을 베어 조각내는 갈망,

다른 길을 가야 할 시간이다, 그녀가 웃지 않는 길.

종들과 고통의 흙탕 소용돌이를 묻어버리는 폭풍아,

왜 지금 그녀를 건드리니, 왜 그녀를 슬프게 하니.

,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가는 것,

고통도 죽음도 없이, 겨울이 이슬을 통해

그 눈을 뜨고 기다리고 있는 거기로.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내 심장을 위해서는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네 자유를 위해서는 내 날개면 되고.

네 영혼 위에서 잠들이 있던 것이

내 입에서 나와 하늘고 솟아오를 것이다.

 

네 속에 나날의 환상.

너는 찻잔 모양 오목한 꽃에 이슬처럼 온다.

너는 너의 부재로 지평선을 허문다.

영원히 파도처럼 날고 있고.

 

너는 소나무처럼 그리고 돛대처럼

바람 속에서 노래했다고 나는 말했다.

그것들처럼 너는 훤칠하고 말이 없으며

그리고, 갑자기, 항해처럼 슬프다.

 

너는 오래된 길처럼 사물을 너에게 모은다.

너는 메아리와 향수 어린 목소리로 붐빈다.

나는 잠을 깼고, 네 영혼 속에서 잠자던

새들이 달아나 이주했다.

 

 

나는 표하는 데 열중했다

 

나는 네 몸의 도해에 불의 십자를

표하는 데 열중했다.

내 입은 가로질러 갔다: 숨으려고 하는 거미.

네 속, 네 뒤, 쭈뼛거리며, 갈증에 타서.

 

저녁 바닷가에서 네게 말해주는 이야기들,

슬프고 부드러운 인형 이야기, 그래서 네가 슬프지 않도록.

백조, 나무, 뭔지 멀리 있고 행복한 것.

포도의 계절, 무르익고 열매 맺는 계절.

 

나는 내가 너를 사랑한 항구에서 산 사람.

꿈과 침묵이 교차하는 고독.

바다와 슬픔 사이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 두 곤돌라 사공 사이에서, 소리 없이, 섬망 상태에서.

 

입술과 목소리 사이에서 뭔가 죽어간다.

새의 날개를 갖고 있는 무엇, 고통과 망각의 어떤 것.

내 장난감 인형, 얼마 남지 않은 채 떨고 있다.

그렇더라도, 뭔가 이 덧없는 말들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뭔가 노래하고, 뭔가 내 게걸스러운 입으로 기어오른다.

, 모든 기쁨의 말들로 너를 기릴 수 있기 위하여.

 

노래하고, 불타고, 달아나라, 광인의 손아귀에 있는 종루처럼.

내 슬픈 정감이여, 무엇이 갑자기 너를 덮쳤는가?

내가 두렵고도 차가운 절정에 이르면

내 심장은 밤의 꽃처럼 닫힌다.

 

 

매일 너는 논다

 

매일 너는 우주의 빛과 더불어 논다.

미묘한 방문자, 너는 꽃으로 그리고 물로 도착한다.

너는 내가 매일 두 손 사이에 과일 다발인 양

단단히 쥐는 이 흰머리 이상의 존재다.

 

내가 너를 사랑한 뒤 너는 이름이 없다.

너를 노란 화환들 속에 흩뿌리게 해다오.

누가 네 이름을 남쪽 별들 속에 연기의 글자로 쓰지?

, 네가 있기 전의 너로 너를 기억하게 해다오.

 

갑자기 바람이 내 닫힌 창에 윙윙거리고 덜컹거린다.

하늘은 그림자 같은 물고기로 채워진 그물이다.

여기서는 모든 바람이 조만간 놓여난다, 모든 바람이.

바가 그녀의 옷을 벗긴다.

 

새들이 날아 도망친다

바람. 바람.

나는 오직 인간의 힘에 맞서 싸운다.

폭풍은 검은 잎들을 선회시키고

어젯밤 하늘에 붙잡아 맸던 배들을 모두 풀어놓는다.

너는 여기 있다. , 너는 도망가지 않는다.

너는 내 마지막 부르짖음에 답할 것이다.

놀란 듯이 내게 달라붙는다.

그렇더라도, 또한 이상한 그림자가 네 눈으로 지나간다.

 

지금, 지금 또, 귀여운 이여, 너는 내게 인동덜굴을 가져오고

네 가슴에서조차도 냄새가 난다.

슬픈 바람이 나비들을 학살하는 동안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 행복이 네 입의 자두를 깨문다.

 

나에게 익숙해지려고 하면서 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 야만의, 고독한 영혼, 그들을 모두 달아나게 하는 내 이름.

실로 여러 번 우리는 샛별이 우리 눈에 입 맞추며 타오르는 걸 보았고,

우리 머리 위에서 그 회색빛이, 돌아가는 선풍기에 풀리는 걸 보았다.

 

너를 때리며 내 말들이 네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오랫동안 나는 네 몸의 햇볕에 탄 진주층을 사랑했다.

나는 네가 우주의 임자라고까지 생각했다.

 

나는 산에서 행복한 꽃들을 따다 네게 주리, 초롱꽃,

게암, 그리고 키스의 야생 바구니들을.

나는 바란다

샘물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

 

 

나는 네가 조용하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조용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네가 없는 것 같고

그리고 너는 머리서 나를 듣고 내 목소리는 너에게 닿지 않는다.

마치 네 두 눈이 날아가 버린 것 같고

키스가 네 입을 봉한 것처럼.

 

만물이 내 영혼으로 가득 찬 듯

너는 사물로부터 나타난다, 내 영혼으로 가득 차서.

너는 내 영혼 같고, 꿈의 나비 같으며

그리고 너는 멜랑콜리라는 말 같다.

 

나는 네가 조용하기를 바란다, 네가 멀리 있는 듯이.

네가 슬퍼하는 것 같다, 비둘기처럼 구구거리는 나비.

그리고 너는 멀리서 나를 듣는다, 내 목소리는 너에게 닿지 않고:

네 침묵 속에서 나도 조용해지리.

 

내가 네 침묵으로 말하게 해다오

램프처럼 밝고 반지처럼 단순한 그걸로.

너는 고요와 성좌가 있는 밤 같다.

너의 침묵은 별의 그것이다, 그렇게 멀고 단순한.

 

나는 네가 조용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네가 부재하는 듯하고,

마치 네가 죽은 듯이 멀고 슬픔에 가득 차 있는 듯하리.

그제서는 한마디 말, 한 번의 웃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그게 그렇지 않다는 행복.

 

 

해 질 녘 내 하늘에서

( 이 작품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원정> 서른 번째 작품의 한풀이다)

 

 

해질 녘 내 하늘에서 너는 구름과 같고

네 모양과 색깔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너는 내 것, 나의 것이다, 달콤한 입술을 가진 여자여

그리고 너의 삶 속에 내 끝없는 꿈은 살고 있다.

 

내 영혼의 램프는 네 발을 물들이고

내 신 와인은 네 입술에서 더 달콤해진다,

, 저녁 노래를 수확하는 사람이여

얼마나 고독한 꿈이 네가 내 것이라고 믿겠는가!

 

너는 내 것, 나의 것이다, 라고 나는 저녁 바람에게

소리치고, 그 저녁 바람은 내 홀로 된 목소리 쪽으로 분다.

내 눈 깊은 곳의 여자 사냥꾼이야, 너의 약탈품이

네 밤의 시선을 물인 양 증류한다.

 

너는 내 음악의 그물 속에 들여졌다, 내 사랑이여,

그리고 내 음악의 그물은 하늘처럼 넓다.

내 영혼은 네 슬퍼하는 눈의 기슭에서 태어났다.

네 슬퍼하는 눈에서 꿈의 땅은 시작한다.

 

 

생각하고 뒤엉키는 그림자들

 

깊은 고독 속에 생각하고 뒤엉키는 그림자들.

너도 멀리 있다, , 그 누구보다도 멀리.

생각하는, 해방되는 새들, 용해되는 이미지들,

파묻히는 램프들.

 

안개의 종루는, 저 꼭대기, 얼마나 먼가!

숨 막하는 슬픔, 빻아지는 희미한 희망,

말 없는 제분소 주인,

밤은 얼굴을 아래로 하고 네 위에 떨어진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너의 현전(現前)은 낯설다, 내게는 무슨 물건처럼 낯설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네 앞에서 내 삶의 넓은 지역을 탐험한다고.

누구의 면전이든, 내 거친 삶.

바다를 향해 외치는 소리, 바위들 사이에서,

물보라 속에, 자유로운 질주, 미쳐서.

슬픈 광란, 외침, 바다의 고독.

정신 없이, 격렬하게, 하늘을 향해 몸을 쭉 뻗고.

 

, 여자여, 너는 거기서 무엇이었는가, 무슨 광선, 그 거대한

선풍기의 어떤 날개? 너는 지금의 너와 다름 없었다.

숲 속에 불! 푸른 교차로들에서 탄다.

탄다, 탄다, 불길이 오른다, 빛에 싸인 나무들의 불꽃.

 

그건 무너져 내린다, 탁탁 튀며. . .

그리고 내 영혼은 춤춘다, 불의 소용돌이에 그슬려.

누가 부르나? 무슨 침묵이 메아리와 함께 사나?

노스탤지어의 시간, 행복의 시간, 고독의 시간,

모두에게서 떨어진 나만의 시간!

바람이 노래하며 지나는 사냥 호른.

내 몸에 묶여 우는 정염.

 

모든 뿌리들을 흔들라,

모든 파도들을 공격하라!

내 영혼은 헤맨다, 행복하게, 슬프게, 끝없게.

 

깊은 고독 속에 생각하고 파묻히는 등불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여기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여기서 나는 너를 사랑하다.

검은 소나무 숲에서 바람은 스스로 풀린다.

달은 유랑하는 물 위의 인처럼 빛난다.

날들은 하나같이 쫓고 쫓긴다.

 

눈은 춤추는 모양으로 날린다.

은색 갈매기는 서쪽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때때로 달팽이. 높은, 높은 별들.

 

, 배의 검은 횡단.

홀로.

때로 나는 일찍 일어나고 내 영혼조차 젖는다.

멀리서 바다는 울리고 되울린다.

여기는 항구.

여기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여기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수평선은 헛되이 너를 숨긴다.

나는 이 차가운 사물 가운데서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이따금 내 키스는 저 무거운 배들에게 간다

닿을 데 없는 데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것들.

 

저녁이 계류해 있는 부두는 슬프다.

내 삶은 피곤하고 목적도 없이 굶주린다.

나는 내가 갖지 않은 걸 사랑하다. 너는 너무 멀리 있다.

내 혐오는 지루한 황혼 녘과 씨름한다.

그러나 밤은 오고 나에게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달은 그 꿈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제일 큰 별들이 너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할 때, 바람 속의 소나무 숲은

그들의 전신 잎들로 네 이름을 오래하고 싶어 한다.

 

 

나긋나긋한 황갈색 여자

 

나긋나긋한 황갈색 여자, 과일을 만들고

곡식들을 살찌게 하며 해조류를 구불거리게 하는 태양이

네 몸을 기쁨으로 채웠다, 그리고 네 빛나는 눈을

또 물의 웃음을 갖고 있는 네 입을.

 

검은 갈망의 태양은 네 검은 머리카락

가닥들에 감기며 땋아진다, 네가 팔을 뻗을 때.

너는 작은 시냇물과 놀듯이 태양과 놀고

그건 네 눈에 두 개의 검은 연못을 남긴다.

 

나긋나긋한 황갈색 여자, 나를 네게로 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나를 더 멀리 실어간다, 마치 네가 정오인 양.

너는 버르이 광기 어린 젊음이고

파도의 취기이며 이삭꽃의 힘이다.

 

그럼에도 내 음울한 가슴은 너를 찾고

네 기쁨에 찬 몸을 사랑한다, 네 가냘프고 흐르는 목소리도.

검은 나비, 달고 결정적인-마치

밀밭과 태양, 양귀비와 물처럼.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들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별들 총총하고

별들은 푸르고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때로는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연거푸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에 잠겨.

 

광막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잡아 놓지 못한 게 뭐 어떠랴

밤은 별들 총총하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내 눈길은 그녀를 가까이 끌어 오려는 듯이 그녀를 찾는다.

내 가슴은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의 우리, 이제는 똑같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다른 사람 거, 그녀는 다른 사람 게 되겠지, 내가 키스하기 전의

그녀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 빛나는 몸, 그 무한한 두 눈.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

 

이윽고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으므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비록 이게 그녀가 나한테 주는 마지막 고통 일지라도

그리고 이게 그녀를 위해 쓰는 내 마지막 시일지라도.

 

 

절망의 노래

 

너에 대한 기억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밤으로부터 나타난다.

강은 그 그치지 않는 슬픔을 바다와 섞는다.

 

새벽의 부두처럼 버려졌다.

이별의 시간이다, , 버려진 자!

 

차가운 꽃부리들이 내 머리 위에 비 오듯 쏟아진다.

, 파편 구덩이, 난파한 것의 사나운 동굴.

 

네 속에 전쟁과 싸움은 축적되었다.

너로부터 노래하는 새의 날개는 솟아올랐다.

 

너는 모든 걸 삼켰다, 먼 거리처럼.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그건 공격과 키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반짝인 마법의 시간이었다.

 

조타수의 두려움, 눈먼 잠수부의 격렬함,

사랑의 광포한 취기,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안개의 어린 시절 내 영혼은 날개를 달았고 상처받았다.

길 잃은 발견자,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너는 슬픔을 띠 둘렀고, 욕망에 매달렸으며,

슬픔에 비틀거렸다,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나는 어두운 그림자의 벽을 열어젖혔고,

욕망과 행동을 넘어서, 계속 걸었다.

 

, , 내 이 살, 내가 사랑했고 잃어버린 여자,

축축한 시간에 나는 너를 부르고, 너를 향한 내 노랫소리를

높인다.

 

항아리처럼 너는 무한한 다정함을 저장했고

또 무한한 망각이 너를 항아리처럼 깨뜨렸다.

 

섬들의 검은 고독이 있었고,

그리고, 사랑의 여자여, 네 말은 나를 끌어들였다.

 

갈증과 굶주림이 있었고, 나는 과일이었다.

슬픔과 폐허가 있었고, 너는 기적이었다?

 

, 여자여, 나는 네가 이렇게 내 영혼의 흙 속에

네 팔의 십자가형 속에 나를 담았는지 모른다.

 

, 물어뜯긴 입, 키스한 사지,

, 굶주린 이빨, , 얽힌 몸.

 

, 우리가 녹아 들고 절망한

희망과 힘의 미친 결합.

 

그리고 그 다정함, 물처럼 밀가루처럼 가벼운

그리고 말이 좀처럼 입술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게 내 운명이었고 그 속에서 내 갈망은 항해했으며,

그리고 그 속에 내 갈망은 떨어졌다,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 파편구덩이, 모든 게 네 속에 떨어졌다,

어떤 슬픔을 네가 표현하지 않았으며, 어떤 슬픔 속에 네가 빠지지

않았으랴!

 

놀에서 놀로 너는 여전히 불렀고 노래했다.

뱃머리에서 선원처럼 서서.

 

너는 여전히 노래 속에 꽃피고 현재에 틈입했다.

, 파편구덩이, 열린 쓰라린 우물.

 

창백한 눈먼 잠수부, 불행한 투석꾼,

길 잃은 발견자,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밤이 모든 시간표를

묶어버리는 힘든 낙담의 시간.

 

철썩이는 바다 띠가 해변을 둘러싼다.

 

차거운 별들 떠오르고, 검은 새들 이동한다.

 

새벽 부두처럼 버려졌다.


떠는 그림자만이 내 손 속에서 몸부림친다.

 


, 그 무엇보다도 먼, , 그 무엇보다도 먼.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 버려진 자!

 

 

 


3.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내용에 내가 굳이 쓸 것은 없다. 다만 시인의 시심을 훔쳐오고 싶은 마음으로, 내 안의 시심을 일깨우고 싶은 마음으로, 열정적인 사랑과 고뇌, 이런 다양한 무늬의 인간 감정 속으로 푹 침잠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시를 읽었다. 허공에 이는 바람 한 점, 떨어지는 꽃 잎 하나, 하늘의 별, 황혼, 나무 이파리 하나의 정교한 움직임까지 예민하게 포착하는 그의 시어들은 너무나 싱싱하고 살아있어, 젖은 실크에 떨어진 잉크처럼 나의 마음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언어에 대해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나는 말(언어)을 사랑하고 집착하고 추적하고 물어뜯고 용해시킨다. 나는 말을 꿀꺽 삼키고 분쇄하고 치장하고 해방시킨다. 그토록 말을 사랑한다. 시인의 모든 것은 말에 달려있다.’

 

이 시는 아직 그의 시가 민중과의 소통의 통로가 되기 이전, 그러니까 그가 민중 시인이 되기 이전에 쓰여진 것들이다. 사범대 진학을 위해 산티아고로 상경한 이 수줍고 낭만적인 청년은 아버지의 철도원 망토를 두르고 보헤미안처럼 살았다. 그 시절 그는 하루에 두 편씩의 시를 썼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19살이 되던 1923, 자비로 출간한 처녀작 <황혼 일기>로 칠레 문학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듬해 연애시 모음인 이 시집으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청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만 욕망의 혼돈 속에서 고뇌하고 기뻐하는 젊은 한 청년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군데 군데 만나는 신선한 시어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청초한 아침 이슬 같고, 막 뛰는 망둥이 같고, 흐르는 물 속의 조약돌 같은 그의 언어들은 단지 살아 있을 뿐 만 아니라 20살의 청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놀라운 사유를 보여준다. 나는 이런 시구들에 밑 줄을 쳤다.

 

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고 들어가,
밤은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벗은 몸, 이끼의, 갈망하는 단단한 밀크의 육체!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치골의 장미들
!
내 키스는 닻을 내리고 내 젖은 욕망은 투명한 돌 팔이 있는 네 속에 둥지를 튼다.
내 깊은 그리움이 이주하는 집과 같은 가슴, 내 키스는 떨어진다, 殘火처럼 행복하게.
축축한 밤 속에서 내 키스의 옷은 떨린다.
때로는 태양 한 조각이 내 손가락 사이의 동전처럼 타는 것 같았다
.
왜 온() 사랑은 내가 슬프고 멀리 있다고 느낄 때 갑자기 내게 오는 거지
.
너는 모든 것으로 만들어졌다
.
내 심장을 위해서는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너는 오래된 길처럼 사물을 너에게 모은다.
내 심장은 밤의 꽃처럼 닫힌다.
나는 바란다 샘물이 벚나무와 하는 것을 너와 함께 하기를.
만물이 내 영혼으로 가득찬 듯, 너는 사물로부터 나타난다
.
내 몸에 묶여우는 정염(情炎).
이따금 내 키스는 저 무거운 배들에게 간다
,
닿을 데 없는 데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것들.
제일 큰 별들이 너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긋나긋한 황갈색 여자, 나를 네게로 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
모든 게 더 멀리 실어간다, 마치 네가 정오인 것처럼.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 때의 우리, 이제는 똑같지 않다.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
.
강은 그치지 않는 슬픔을 바다와 섞는다.
새벽의 부두처럼 버려졌다.
조타수의 두려움, 사랑의 광포한 취기,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
오 물어뜯긴 입, , 키스한 사지,
, 굶주린 이빨, , 얽힌 몸.
, 우리가 녹아들고 절망한, 희망과 힘의 미친 결합
.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밤이 모든 시간표를 묶어버리는 힘든 낙담의 시간.


 

시인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순간 순간을 그가 얼마나 생생한 시 언어로 삶에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다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식장에서최상의 시인이란 우리가 일용할 빵을 마련해주는 사람이며, 우리 곁 바로 가까이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인이 빵을 굽는 사람이면 시는 그가 굽는 빵()이다. 시인이 날마다 빵을 굽지 않는 건 하루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자신이 만드는 빵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족석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시인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빵을 직접 구웠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들의 신선한 빵의 재료들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는 빵을 남의 손에 의지하고, 또 이제는 그 빵 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나는 시가 곁에 있는 것도 잊었고, 시가 주는 위로도 잊었던 것일까. 네루다의 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어느새 이토록 쓸쓸한 나이 앞에 선 나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내 젊은 날과 그 회환이 은빛 물고기처럼 뛰어오르는 그의 시를 타고 둥둥 떠다녔다. 마땅히 먹어야 할 빵을 먹지 못하고 영혼의 배를 주리며 살았던 빈곤한 시대의 자화상이 바로 나였다.

어쩔 수 없이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우리는 가장 드라이하게 보냈다. 그땐 열려진 감수성대로 세상을 호흡하는 일 마저도 너무 나이브하고 부르주아적인 일로 치부되었다. 가슴의 열정을 한 길로만 뺏어가던 그 시절의 이데올로기는 참으로 먼지나는 것이었다. 혁명의 대의는 있으나 개인의 길은 용납되지 않던 그 시절, 나는 내 마음이 지시하는 다른 길을 선택하지도, 어떻게 선택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20대를 가장 푸르게 장식해줄 사랑이니, 감성이니, 예술이니, 낭만이니 하는 단어들은 그 때 다 어디로 도망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규정될 수 없는 나였는데..


나는 이번 주 신동엽의 시와 네루다의 시를 두고 고민했다. 그러나 내 감성이 네루다 쪽으로 나를 돌려 세웠다. 진지한 시대의 고민도 필요하지만, 나는 지금 영혼의 뚝을 열어 싱싱하게 살아있는 푸른 바닷물을 넘치도록 채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 나는 살고 싶다. 가장 싱싱하고 푸르게. 나이는 나의 장애가 되지 못한다. 더 자유롭고 더 나다와지는 일이 아니라면 사는 게 무에 그리 의미가 있으리네루다가, 어린 20살의 청년이 삶의 전장으로 나의 고삐를 고투 세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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