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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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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11시 11분 등록

1. 저자소개

시인 장석남씨는 1965년 경기도 덕적에서 출생, 인천에서 성장하였고 제물포고와 서울예술 전문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하였다.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에서 그는, 시인의 삶을 지탱해 주는 맑은 그리고 때로는 고독하고 슬픈 심성의 결을 심리적 상징을 통해 응축된 이미지로 변주해 낸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새와 달, 바람, 별, 꽃등의 사물들은 떠돌고 방황하는 그의 정처없는 마음의 상징에 다름아니다. 그의 마음은 악기와 같아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작고 하찮은 것들이 오히려 그의 마음에 닿아 음표가 되고 소리가 되며, 그래서, 그의 시는 부유한 삶의 노래가 된다.

 

시인은 고백한다.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어야 옳았다. 가끔 휘파람을 불며 녀기저기 배회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참 동안 하곤 한다. 춤이나 음악은 말에서부터 도덕에서부터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가.

한번은 전기기타를 배워보겠다고 사설 강습소를 다녀본 적도 있다. 알지 못할 조갈증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지만.

타오르는 것. 어떤 충만함으로 타오르며 그 속에서 파르라한 자기 존재의 떨림을 감지한다는 것, 그게 시보다는 춤이나 음악 속에서 훨씬 용이하리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나의 삶이 음악같아지기를 매일 꿈꾼다. 음악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문맹자의 가슴속에서까지 음악은 쉽게 웅덩이를 파놓는다.

시는 내가 음악까지, 춤까지, 타오름까지 타고 가야할 아름다운 뗏목이다.

뗏목이 아름답다?그래 그게 인생일테니가.

 

시인은 춤꾼이거나 가수를 꿈꾸고 그 꿈이 타오르기까지를 ‘시’라는 뗏목을 이용한다. 마침내  음악이 되고 춤이되어 시인을 활활 타오르게 할 그의 시속으로 빠져보자.

 

2. 마음을 이끈 시

 

<달의 길>

이정표는 자꾸 내게 어디 가냐구 묻는다

 

달은 붉게 물들며 제 길을 가고

내겐 잃은 길도 잃은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달은 섬섬이처럼 제 빛이 모두 발이다

기울어도 제 빛에 안긴다

 

몸이 아프다 기울면

아픔이 나를 안아주리라

 

 

<나는 뜰을 안고>

꽃 피고 지는 뜰을 안고

시간 뒤에 숨어 나는

뜰의 눈인 꽃과

꽃의 육체인 말 뒤의

향기를 베고 눕기도 하지만

내가 들을 안으면 그러나

안기는 것은 뛰는 심장 하나

피가 너무 따뜻해와 그 춤을, 그 없는 안팎을

견딜 수가 없어 나는 가끔

영혼에도 한줌씩 던져주지만

 

 

<소래라는 곳>

저녁이면 어김없이 하늘이 붉은 얼굴로

뭉클하게 옆구리에서 마져지는 거기

바다가 문병객처럼 올라오고

그 물길로 통통배가

텅텅텅텅 텅 빈 채

족보책 같은 모습으로 주둥이를 갖다댄다

 

잡어떼, 뚫린 그물코, 텅 빈 눈,

갈쿠리손, 거품을 문 게

 

풀꽃들이 박수치는지

해안 초소 위로 별이 떴다

거기에 가면 별이 뜨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별에 눈맞추며 덜컹대는

수입선 협궤열차에 가슴을 다치지 않으려면

별에 들키지 않아야 한다

가슴에 휑한 협궤의 터널이 나지 않으려면

 

<군불을 지피며1>

군불을 지핀다

숨쉬는 집

굴뚝 위로 집의 영혼이 날아간다

家出하여, 적막을 어루만지는 연기들

적막도 연기도 그러나

쉬 집을 떠나지 않는 것

나는 깜빡 내

들숨 소리를 지피기도 한다

 

 

<군불을 지피며3>

부지깽이로 군불을 어루만지고 이을대

불 위를 걸어와 내 얼굴뒤로

한 남루한 옷차림이 지나갔다

불길, 불의 길 위로,

장작을 넣지 않고 있으면 불은 나를

자기 품 가까이 불렀다 그러면 나는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기도 했었다

 

때로 장작에

차가움을 섞어 넣기도 했건만

 

 

<내가 그믐이니>

그믐이었다

사철나무 잎사귀에 맺히는 별빛으로 영혼을 축였다

눈동자에 벼랑이 들어와 서 있기도 했다

인적이 뜸한 길목과 허공들은 나 때문에 배가 불렀을 것이다

붕대를 풀지 못하는 마음이 아마 열반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믐이니 만월이여….먼 곳이여!

내 가슴과 사타구니에 손목 쓱 집어넣어다오

이마가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내가 섰던 자리엔 가랑잎만 한 장 달빛을 먹고 있을 것이다

물소리가 조바심으로 가슴을 데리러 오면

참으로 난해한 만월이 가슴에 빛났다.

 

 

<무 꽃>

혼자 한 번 갈길도 길일까

무꽃이 피었습닙다 하고 몰래 숨어 가는 길

혼자 한 번 가는 길 남들 다 자리잡고

피었다가 간 언덕 아래 깃발도 없이

깃대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당도하는 늦은 봄의

저 혼자 오는 가슴을

우우----화염병처럼

무밭에 피웠습니다

앞뒷길 모두 풀과 나무의 푸른 바리게이트로 막힌

곳에서 성스런 늦은 봄을 위하여

숨가쁜 며칠을 살고 혼자 가는 길

아무도 걷지 않는 길

도 길일까

나의 노란 고름들이

늦봄을 이끌고 어디 어디로 간다

 

 

<마음이 중얼 중얼 떠올라>

마음이 중얼중얼 떠올라 얼굴을 뭉갤 때

밖으로 나가는 길

다 비워놓고

흙 파먹고 살리라고

공책 밖에서 공책 안으로 일기를 써넣었네

 

온몸을 더도는 피 속에 낙테한

집 한 채 띄우고 나를 깡그리 배반하는 내 말들

술에 풀어 띄우고 둥근

길 위로 노저어 떠돌 때

봄은 자기가 봄인 줄도 모르고 와

비바람으로 내 온몸을 떠도네

 

아 종일 녹두밭에 파랑새 날아드는

숨차고 지루한 도 하루를 해질녘의

안에서 밖으로 보겠네

 

 

<밥을 먹으며>

밥을 먹을 때

밥 냄새 끝까지 달아나 있다

밥의 기억 모두 낙엽진 앙상한

마을, 내려와 넓은 숨을 쉬는 하늘가에서

이름 버리고

빈 그릇을 달그락 거리기도 한다

어느 미래에 나는 배고프지도 않은 기억밑으로

수저를 던질 것인가

내 영혼의 싱싱한 지느러미 속에

차고 단단한 잔별들이 뜰 때

나는 조용히 수저를 놓고 그들과 함께

몸 비틀며 반짝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기억도 끝나는 곳을 病처럼

다녀오곤 한다

 

 

<나에게 온통 젖어버리는>

썰물에서 눈을 만났다

눈을 만나 어깨가 다 젖었다

눈에 어깨를 잃고, 마음은 썰물을 따라가고

 

바람이 불었다

눈보라 나를 싸안고 썰물 위로 걸었다

비명을 참으며 몸 뒤채는 파도들

 

곁에

오래 있기 아팠으나

……오래도록

나를 데리러 오는 길을 없다

 

나에게 온통 젖어버리는 눈보라

 

 

<감자를 먹는 노인>

1

삼자를 먹는 노인을 본다

빈 접시처럼 열린 눈 속에

길게 걸어들어가는 사막

시내 거리에서 차들이 바람에 날렸다

 

2

감자를 먹는 노인 속에

감자를 먹지 않는 노인

죽음이 허전하지 않도록

흔들리는 팔과 다리에도 감자를 먹이고

감자를 먹지 않는 노인

빈 접시처럼 열린 눈 속에

낯설게 떴던 달이 진다

 

감자를 먹던 노인을 데리고

달이 지는구나

 

 

<그리운 시냇가>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음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저녁의 우울>

여의도 분식짐에서 저녁을 먹고 강변을 걸었다

강은 내게 오래 된 저녁과 속이 터진 어둠을 보여주며

세상을 내려갔다

천둥오리도 몇마리 산문처럼 물 위에 떴다

날곤날곤 했다 그러면 강은 끼루루룩 울었다

내가 너덧개의 발걸음으로 강을 걷는 것은

보고싶은 자가 내가 닿을 수 없는 멀리에 있는

사사로운 까닭이지만, 새가 나는데 강이 우는 것은

울며 갑작스레 내 발치에서 철썩이는 것은 이 저녁을

어찌하겠다는 뜻일까

 

 

<꽃 본지 오래인 듯>

가을 꽃을 봅니다

몇 포기 바람과 함께하는 살림

바람과 나누는 말들에

귀기울여

굳은 혀를 풀고요

그 철늦은 흔들림에 소리 나는

아이 울음 듣고요

우리가 스무 살이 넘도록 배우지 못한

우리를 맞는 갖은 설움

그런 것들을 손바닥 비비다 보면요

얘야 가자 길이 멀다

西山이 내려와 어깨를 밉니다

그때 우리는 당나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타박타박 길도 없이

가는 곳이 길이거니

꽃 본 지 오래인 듯 떠납니다

가을은 가구요

 

 

 

3. 내가 저자라면…

바람들이 모여 쌀겨처럼 웃다 가고 햇빛들이 어룽어룽 몸을 말리다 떠나고 허기진 사랑과

여러 갈피 파본인 꿈이 매일 밤 곁에 누웠다 돌아가는 혈흔 뜬 세월 누설하는 모란모란꽃모란모란모란모란꽃 ! ! ! ! 꽃 모란모란 ! ! ! ! ! ! ! ! ! ! ! 모란꽃모 란 ! ! ! ! ! ! 모란모란꽃 ! ! ! ! ! 란 모란이 피어 봄은 명치가 아픕니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모란의 누설- 명치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나의 명치가 저며오기 시작한다. 나의 한 봄날은 지상의 온갖 꽃들이 생동하며 누설하고 싶어할 때, 발랄하고도 슬펐으며 아름다웠으며 대지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채 누설하지 목하고 안에 꼭꼭 갇아두었던 그것이 내 명치끝에 무겁게 내려 앉아 아프다.

 

그대의 콧날 위로 햇살이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한없이 평 온하며 자유롭다. 바람들이 쌀겨처럼 웃다가고 햇빛들이 어룽어룽 그대와 내 공간에 머물며 몸을 말리다 떠난다. 우리들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초대된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옛 노트에서 시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옹색하다. 그 바깥까지 길게 만들 줄 알았던 투명한 개울이나 품안에 있던 많은 빛, 긴 시간을 견디어 앵두가 익을 무렵까지 내려온 시인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을 옹색하게 감추며 지내던 지난날을 옛 노트에서 발견한다. 그는 후회했을까? 마음속에 품고만 있어도, 마치 꽃이 피어나기 전 봉우리속에 향기를 간직한 모습이 애틋하듯 그는 그리움의 기억만으로도 마음속에 보루 하나 지니고 사는 것처럼 다사롭 지 않았을까.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이라는 말로 깊은 사랑을 대신한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그리운 시냇가. 탈무드에서 이런 말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이에게 가장 큰 축복의 말을 해주고 싶은데 그 사람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면, 자녀에 대한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의 말이 될 것이다, 자녀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준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두 사람만의 사랑이 물로 만나 함께 흐르고 불로 만나 함께 타올라 돌멩이 같은 아이 낳으면 그 사랑이 더욱 무르익으리라. 두 사람이 일군 가정이라는 하나의 우주는 마을을 환히 적실만큼의 빛이 된다.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고 그 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젖은 눈」 - 뻐꾸기 소리

 

장석남 시인은 다작은 아니지만, 단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핏줄 선 내 팔뚝 을 눅눅하게 젖어들게 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슬픈 것을 슬프다고,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 을 알게 한다. 이 시인은 세상 어딘가에서 늘 고운 숨결로 사랑을, 꼭 그 빛깔만큼의 사랑을 쉬지 않고 흐르게 할 것이며 별에게 꽃들에게 바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추억들을 심어두고 스스로의 우주를 가꾸며 마음의 연 못을 파는 일이 생生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 생生 하나 하나가 모여 시인을 타오르게 하리라.

오늘도 붉게 타오르는 단풍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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