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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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저자에 대하여
만남
자기계발이나 심리학 관련 서적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죽음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빅터 플랭클 박사이다. 물론 그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그곳에서 살아나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에겐 결국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근원적인 자유가 있음을 깨닫고 수용소에서 이 자유를 맘껏 누린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희망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서 빅터 플랭클이 떠올랐다. 저자는 감옥에서 20년을 보낸 사람이다. 그것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니, 그리고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와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있다니. 내가 보기엔 빅터 플랭클 못지 않은 격한 인생을 산 사람 같았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감옥 안에서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상황이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감옥에서는 세 권이상의 책을 갖고 있을 수가 없어, 더 오래도록 읽기 위해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 책 '강의'는 저자의 그런 뼛 속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책이다.
약력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2006년 8월 정년퇴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
엽서(1993년)
나무야 나무야 (1996년)
더불어 숲 1권 (1998년 6월)
더불어 숲 2권 (1998년 7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년 8월)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년 4월)
신영복의 엽서 (2003년 12월)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년 12월)
역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년)
사람아 아!사람아(1991년)
루쉰전(1992년)
중국역대시가선집(1994년)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6)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장. 서론
18) 나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감옥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고 시작되었으며 또 교도소의 현실적 제약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23)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25)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25) 고전 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고전으로부터 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28)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32)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소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3)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34)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에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36) 서양에서는 철학을 Philoh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智에 대한 애愛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37)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43)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 삼재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와 장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입니다.
43) 동양적 구성 원리에는 과학과 종교 간에 나타나는 그러한 모순이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동양 사상의 내부에 모순 구조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2장. 오래된 시와 언
52)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53)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62)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5) 시는 읽는 시간도 적게 들고 시집은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시를 많이 읽기 바랍니다.
75) 노르웨이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편을 통해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3장. '주역'의 관계론
87)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88) '주역'은 동양적 사고의 보편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1)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 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02)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의 사상입니다.
103)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106) '주역'의 독법은 철저하리만큼 관계론적입니다.
107) '주역'은 변화에 관한 사상이고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130)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의 현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주역'에는 사물의 변화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구도가 있으며 그것이 사물과 사건과 사태에 대한 일종의 범주적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137) '논어'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공자어록입니다. '노자'에는 노자라는 인간이 오이지 않지만 '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도처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이 '노자'와 '논어'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9)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 실체에 의한 구분일 수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150)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61)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입니다.
172)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잠재력과 인간성이 바로 인간관계의 소산인 것은 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175)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182)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7) 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7)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법이지요.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노력 때문입니다.
188)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192) 양극단은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위선 또는 위악인 경우에만 상정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192)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감옥을 하나의 마을로 치지면 그 마을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기준이 물론 문제이긴 합니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느 곳에나 다수로서의 민중은 존재하는 법이며 다수는 항상 선량하다는 사실입니다.
5장. 맹자의 의
212)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이 맹자에 의해서 의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3)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 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253)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254)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5) 진정한 부국강병이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분의 자생력을 길러내고 꽃피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264)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식물의 경우도 잡초가 가장 자유로운 식물이라는 것이지요.
284)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305) 노자의 철학은 귀본 철학입니다. 본은 도이며 자연입니다.
7장. 장자의 소요
310)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331)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를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332) 내가 기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철저하게 주관적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338) 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혀와 색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과 성일 뿐이다.
345) 9만 리 장공을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장주와 나비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352) "지혜란 무엇인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를 여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큰 도적은 궤를 훔칠 때 통째로 둘러메고 가거나 주머니째 들고 가면서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세속의 지혜란 이처럼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이다."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373) 묵자는 혼란의 궁극적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378) 열 명, 백 명을 살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을 살인하는 전쟁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르고 그것을 칭송하고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묵자는 이것을 개탄합니다.
383) '묵자'의 '비공'편은 전쟁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허위허식을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현재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386)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388) 비단 실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388)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붙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391)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구조를 어떻게 짜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392) 우리의 사유는 사실판단의 기초 위에서 가치판단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실판단의 기초가 되는 지각과 경험이 없으면 그 주장이 망상에 빠지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가치판단이 없는 지각과 경험만으로는 사실을 일컬을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393) 묵자 사상의 근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404)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와 주관파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412) 선성과 선단을 하늘로부터 이끌어낼 수 없는 순자로서는 당연히 능참이라는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며, 교육이라는 외적 기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13)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420) 순자 사상은 실제로 유가의 예치 사상으로부터 법가의 법치 사상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421)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425)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게서 훨씬 더 깊이 있는 인간주의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중략)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주의가 감상적으로 피력되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0장. 법가와 천하 통일
433)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43) 범죄 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합니다.
11장. 강의를 마치며
507) 동양고전의 독법에 있어서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III. 내가 저자라면
동양고전의 종합선물세트
인터넷 강의가 널리 이용되고 있는 지금, 책으로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들을 모아 세트로 들려주는 강의를 들었다. 정말 말로만 듣던 동양고전들을 빠른 시간에 한 번 훑고 지나갈 수 있었다. 특히나 각 고전들이 그 시대상황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그것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옛날 이야기 만을 하지 않았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지금의 우리 삶 속으로 가져오려고 애썼다. 그가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처럼 옛날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면 이 강의는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강의였을 것이다.
종합선물세트의 단점은 다양하기는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런 식으로 볼 수는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안 읽으면 될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 책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보면 될 뿐이다.
성선설과 성악설
이 책이 동양고전의 소개 및 그것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면,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그것이 제대로 통한 듯하다. 기존에 그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말 그대로 막연한 지식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 대한 나의 생각 뿐 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대단히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안 것은 큰 수확이었다. 맹자의 성선설은 무조건 인간은 본래 타고나기를 착한 존재로 타고났으나 살면서 악에 물든 것이다. 그리고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은 본래 악하게 타고났으나 살면서 착해지는 것이다. 여지껏 이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자의 성악설이 인간의 인성에 대해 논하는 인성론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정말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존재와 관계
저자는 서양과 동양의 구성원리를 존재론과 관계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동양의 고전을 이해함에 있어서 '관계'라는 키워드는 대단히 중요하게 보여진다. 저자는 끊임없이 고전을 읽는 이유를 현대 우리의 삶을 비추어보기 위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양의 관계론적 관점은 현대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거리를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고, 세계는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갈수록 의식이 성장하여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의 세계는 이 두가지 관점으로 함께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균형과 통합
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저자의 해석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과거 학창시절 나이든 교수님의 강의에서 느껴지는 세대차이 정도로 생각했었다. 저자는 고전 속에서 현대적 의미를 찾고자 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동서양,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동양과 정신 쪽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현대 21세기의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균형과 통합이다. 고전이 단지 옛날 이야기로만 취급되지 않으려면 더욱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