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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9일 22시 57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
박경리

* 출생-사망: 1926년 10월 28 (경상남도 통영) - 2008년 5월 5

*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 수상: 1997년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

* 경력: 1999 4월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 1997 4월 호암재단 이사 /
        1996
11월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위원회 위원

* 작품: 대표작 토지, 가을에 온 여인, 영원으로 가는 나귀, 나비와 엉겅퀴, 생명의 아픔, 성녀와 마녀, 은하수,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만리장성의 나라, 토지, 나의 문학 이야기, 우리들의 시간, 표류도, 파시,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시장과 전장등 다수

 


어렸을 적부터 나에겐 이름 석자만으로 무척이나 친근한 작가.

어릴 적 책장 한 켠에 줄줄이 꽂혀 있던 세로쓰기로 출판 된 낡아빠진 토지전집의 작가로서 말이다. 나의 어머니는 박경리 토지의 골수팬이셨다. 나에게도 항상 읽기를 권했으나 매번 1권에서 실패하곤 아직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 5 5일 저 세상으로 소풍을 떠났다.

지난 여름 서울로 나들이 오신 부모님과 원주 박경리 토지 박물관을 들르기도 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서울에 올라 오실 때마다 서울 또는 근교의 갈 곳들을 한, 두 개씩 정해서 방문하시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의 강력한 제안으로 원주 토지 박물관을 방문했던 것이다. 함께 휴가를 내고 달려간 그곳은 마침 비가 온 뒤로 방문객이 뜸해 더 없이 고요했다.

 

그녀가 살았던 단정하지만 왠지 쓸쓸해 뵈던 2층의 하얀 양옥집, 그 주변의 텃밭들, 집 현관 옆에 놓여있던, 손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던 작은 연못가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를 토지라는 작품을 통해 알았지만 토지 박물관을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녀의 생애에 더욱 마음이 가게 된다.

 

그녀는 여고 졸업 직후 결혼했으나 6.25때 납북된 남편과 이별하게 되고 남겨진 딸과 평생을 미망인으로서 홀로 살아왔다.  

 

그녀는 서울을 떠난 뒤 작고하기 전까지 원주에 정착해 살았는데 외부와의 접촉도 거의 차단한 채 오로지 글과 텃밭 가꾸기를 하며 살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그녀는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소식을 접하곤 했던 신문에서, 수필집에서 그녀의 밭일 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었던 게 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특히 그녀 스스로도 ‘고추농사는 이제 내가 박사’라고 할 만큼, ‘박경리표 고추’는 유명했다고 한다.

 

언젠가 한 작가는 박경리의 ‘농부’와 다를 바 없는 거친 손을 보고 글만 써서 하얀 자기 손이 부끄러웠노라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에게 글과 농사 짓기는 생계 수단을 넘어서 그녀를 이 세상과 묶어 놓는 마음 기댈 하나의 통로였을 것이다.

 

작가 김훈은 「1975 2 15의 박경리」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날은 사위인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서 출감하던 날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다. ()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저물어가는

교도소 정문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이가 칭얼댈 때마다 그 여인네는 몸을 흔들어서 아이를 얼렸다. ()

그 여인네가 아기를 업은 포대기는 매우 낡아 있었다. ()

아무도 그 여인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

그때 그 여자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기보다 더 무명(無名)해 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낡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그녀는 바로 작가 박경리다.

누군가의 묘사를 통해서, 또 그녀의 시들을 통해서 느껴지는 대로 한 평생을 인정받는 대작가로서의 삶보다 평범한 그 누군가의 삶과 같은 소박함을 가졌던 그녀의 삶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 그녀, 마침내 너무 일찍 헤어졌던 남편 곁으로 떠났으니,

그녀의 바램 대로 그 남편이 일 잘하는 사내였으면 좋겠고, 그런 남편 곁에서 농사짓기를 하며 소박하고 행복한 제 2의 삶을 맞았으면 한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밑 찔러서 피내고

감기들면

바쁜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면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 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집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여행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질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 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일 잘하는 사내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밤이 깊은데 잠이 안 올 때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방 수술 후

뜨개질은 접어 버렸고

옷 짓는 일도 이제는

눈이 어두워

재봉틀 덮개를 씌운 지가 오래다

따라서 내가 입은 의복은

신선도를 잃게 되었는데

십 년, 십오 년 전에 지어 입은 옷들이라

하기는 의복 속에 들어갈 육신인들

아니 낡았다 어찌 말하리

책도 확대경 없이는 못 읽고

이렇게 되고 보니

내 육신 속의 능동성은

외친다 자꾸 외친다

일을 달라고

세상의 게으름뱅이들

놀고먹는 족속들

생각하라

육신이 녹슬고 마음이 녹슬고

폐물이 되어 간다는 것을

생명은 오로지 능동성의 활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일은 보배다

 

밤은 깊어가고

밤소리가 귀에 쟁쟁 울린다.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이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III.
내가 저자라면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는 시집은 저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은 모든 기운을 쏟아내며 완성한 39편의 시를 모아낸 책이다.

원래는 시 60편이 목표였다고 하는데 그 것을 모두 미처 채우지는 못한 채 저자는 떠났다.

그녀의 딸 영주씨는 이 시들은 고치시지도 않고 물 흐르듯 써 내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시집 속 이야기는 저자 본인의 평소 생활과 그녀의 습성,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 사회에 던지고 싶은 말등 다양한 이야기의 시들로 가득 차 있는데 마치 한편의 수필 같다.

 

일반적인 시들이 갖는 비유,은유등이 거의 없는 스토리 위주의 시이므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시 줄 곳곳에서 묻어나는 노작가의 생활에서 묻어나는 외로움 혹은 쓸쓸함에 자주 가슴이 먹먹해 져 읽던 책을 가만히 쥐고만 있을 때도 많았다.

 

그녀는1.

달빛이 스며드는 차갑고도 기나긴 밤에는

시에서 묘사하듯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그녀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이 그녀를 견디게 냈다.

 

그녀는 2.

잠 오지 않는 밤, 바느질을 취미로 밤을 수놓았고, 또 그 한땀 한땀의 바느질들이 모여 아름다운 글들이 되었다.

 

그녀는 3.

여행을 싫어한다. 어딘가를 가야 하는 전날이면 무척이나 안절부절 불안하고 어지럽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고 한다. 그녀는 혼자만의 방식으로 세계,우주를 넘어서 자신의 내면으로까지 시간,공간의 경계 없는 여행을 즐겼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떠돈 여행기,기록들이 바로 그녀의 글들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녀는 4.

다음 번 세상에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하였다. 대작가의 다음 번 인생에 대한 소망이 무척이나 소박하고 진실되다. 한편 그녀의 외롭고 고단했을 한 평생 삶이 떠올라 가슴 아파 오기도 한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 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中-

 

그녀의 이 시 구절을 읽고 나니 내 삶을 다시 음미하게 된다.

아직은 청춘인 이때, 노작가가 건네는 이야기를 거울 삼아 나는 내 젊음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맘껏 느낄 것이며 진실되게 살 것이다.

IP *.70.18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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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20:32:26 *.163.65.232
몸도 무거울텐데 리뷰까지...
지혜 파이팅.
몸관리 잘하고 애기 관리도 잘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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