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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7일 10시 5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2006년 8월 정년퇴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
? 엽서(1993년)
? 나무야 나무야 (1996년)
? 더불어 숲 1권 (1998년 6월)
? 더불어 숲 2권 (1998년 7월)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년 8월)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년 4월)
? 신영복의 엽서 (2003년 12월)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년 12월)

「역서」
?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년)
? 사람아 아!사람아(1991년)
? 루쉰전(1992년)
? 중국역대시가선집(1994년)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1. 서론

나와 동양 고전과의 인연

내가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16p

국어사전 290쪽

화두話頭와 ‘오래된 미래’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關係論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원리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 自己增殖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23p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24p

천지현황과 I am a dog

과학적 방법이나 첩경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 구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6p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27p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29p

고전독법의 참여점(Entry point)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善을 추구합니다. 30p

서양 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점이지요.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는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30p

초국적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말하자면 대립면을 상실한 질주입니다. 자기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존재론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패권주의적 세계 전략은 자기 증식 운동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러한 전략은 결국 위기를 심화할 뿐이라는 것이 모순이지요. 이를테면 패권주의적 질주는 자기의 목표를 부단히 허물어버리는 모순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32p

삶을 존중하고 길을 소중히 하고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 대체로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되면,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34p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34p

도 道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 ?과 수 首의 회의문자 회의문자입니다. 착 ?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 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6p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37p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38p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 自然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38p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모순의 조화와 균형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 中庸이 그것입니다. 43p

동양사상의 조화와 균형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유가와 도가의 견제입니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입니다.  43p

노장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는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입니다.  44p 

인본주의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그것의 독선과 허구성을 지적하는 반체제 이데올로기가 바로 도가입니다.  44p


2. 오래된 시詩와 언言

상품미학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으로

거짓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사실이란 진실의 조각 그림입니다.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기록은 무서운 규제 장치입니다.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시경>

군자는 무일 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70p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2p

중국 최고의 정치가 주공

미래는 과거로부터 옵니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76p

농본 사회에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77p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77p

<초사>의 낭만과 자유

낭만주의와 창조적 공간


3. <주역>의 관계론

 

바닷물을 뜨는 그릇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방자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못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은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약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88p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경외 敬畏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 神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89p

점은 ‘선택’과 ‘판단’에 대한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89p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 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90p

경 經과 전 傳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인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92p

효 爻와 괘 卦

<주역> 읽기의 기초 개념

위 位와 응 應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101p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시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1p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01p

자기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2p

죽간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은 사회 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 공간사상이며 사계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107p

지천태 地天泰

“티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

티풀을 뽑듯이 떨기로 가야 길하다는 뜻입니다. 띠풀은 잔디나 고구마처럼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풀입니다. 한 포기를 뽑으려 하면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함께 뽑힙니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창건이든, 회사의 설립이든, 전위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 衆意를 결집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1p

천지비

산지박 山地剝

화수미제 火水未濟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64괘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이 미완성의 괘를 배치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127p

오늘날 만연한 ‘속도’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입니다.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모순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게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129p

‘목표의 올바른을 선 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 美라 합니다. 목표와 함께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라 합니다. 129p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129p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130p

<주역>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란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견솜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132p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춘추전국시대

배움과 벗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142p

학습에 대한 언급은 사회 재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143p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146p

옛것과 새로운 것

그릇이 되지 말아야

베버의 경우 기 器는 한마디로 전문성입니다.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윤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거부가 동양 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입니다.  151p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이지요. 자본가는 어느 한 분야에 스스로 옥죄이기를 철저하게 거부해왔던 것이지요. 151p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습니다. 152p

오느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152p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담론이 바로 2천년 전의 노예계급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152p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6p

바탕이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159p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소위 상품미학의 특징입니다. 오로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상품이고 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상품입니다. 따라서 광고카피가 약속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 소비단계에서 허구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 허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의 부단한 변화로서의 패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결국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상품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된 의식이 자리잡는 것이지요.  159p

공존과 평화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신 信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인 人 + 언 言’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신 信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고 풀이되고 있지만 언 言은 원래 신 神에게 고하는 자기 맹세이므로 신 信이란 신 神에 대한 맹세로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믿음이라는 뜻은 후에 파생되었다고 보지요. 그만큼 신 信의 의미는 엄격한 것입니다. 171p

참된 지 知는 사람을 아는 것

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

이론과 실천의 통일

사 思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리라고 한다면 경험적 사고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구성도 ‘전 田 + 심 心’입니다. 밭의 마음입니다. 밭의 마음이 곧 사 思입니다. 밭이란 노동하는 곳입니다. 실천의 현장입니다.  179p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광고카피의 약속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이러합니다. 속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거죽만을 스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표면만을 상대하면서 살아가지요.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당구공과 당구공과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한 점에서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입니다. 부딪힘입니다.  198p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산과 강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공자의 모습


5. 맹자의 의義

어찌 이 利를 말씀하십니까?

여럿이 함께하는 즐거움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 테면 민 민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 임금으로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직단도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217p

맹자의 여민동락 與民同樂
“만약 백성들이 그와 함게 죽어 없어지기를 바랄 지경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대와 못, 아름다운 새와 짐승들이 있다고 한들 어찌 혼자서 그것을 즐길 수 있겠는가?”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살에 과녁이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찾는다.” ? 맹자 ? 231p

소를 양으로 바꾸는 까닭

바다를 본 사람을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야 남이 모욕하는 법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서경> 250p


6. 노자의 도와 자연

도 道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진’ 進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歸)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 自然입니다.(중략) 물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 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p

노자가 보이지 않는 노자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 無는 ‘제로’(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무명 無名과 다르지 않습니다.  264p

도 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의 도가 아님을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 법칙성 즉 우주와 자연의 근본적인 운동법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못 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 담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이지요.  269p

인위 人爲는 거짓 거짓(僞)입니다.

뼈를 튼튼히 해야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 무지무욕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나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재생산과 대량 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280p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 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283p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닯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284~285p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289p

진정한 연대란 다름 아닌 ‘노자의 물’입니다. 하방 연대 입니다. 낮은 곳으로 지향하는 연대입니다. 노동, 교육, 농민, 환경, 의료, 시민 등 각 부문 운동이 각자의 존재성을 키우려는 존재론적 의지 대신에 보다 약하고 뒤처진 부문과 연대해 나가는 하방 연대방식이 역량의 진정한 결집 방법이라고 생각하지요.  290p

빔이 쓰임이 됩니다.

 무소유의 예찬은 자칫 사회의 억압 구조를 은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진 장삼 한 벌과 볼펜 두 자루만 남기고 입적하신 노스님의 모습은 무소유에 대한 무언의 설법이다. 욕망의 바다에서 소유의 탑을 쌓고 있는 중생들에게 무소유의 설법은 매우 중요한 각성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소유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스님의 무소유는 사찰 종단의 거대한 소유 구조 위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294p

스스로를 신뢰하도록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진보란 단순화입니다.

노자의 철학은 귀본 歸本의 철학입니다. 본 本은 도 道이며 자연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을 유가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를 왜소하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땅을 볻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305p


7. 장자의 소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 外篇 [추수] 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309p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310p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

높이 나는 새가 먼 곳을 바라봅니다.

장자는 약소국의 가혹한 현실에서 자신의 사상을 키워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자유와 억압의 극한 상황에서 그의 사상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가 생각한 1차적 가치는 ‘생명 生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반 反생명적인, 반자연적인 그리고 반인간적인 모든 구축적(construct)질서를 해체(deconstruct)하려는 것이 장자 사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신의 자유입니다.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320

이것과 저것 저것과 이것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부끄러워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

장자의 논거는 (중략)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 支出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1p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하다.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 ? <天地>

이 구절은 다름 아닌 각성 覺醒입니다. 엄정한 자기 성찰입니다. 천하가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불치병자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자식만이라도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중한 자기 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334~335p


자기의 문화, 자기의 생산물, 자기의 언어, 자기의 신 神을 강요하는 제국 帝國과 패권 覇權의 논리가 반성되지 않는 한 참다운 문명의 발전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335p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쓸모없는 나무와 울지 못하는 거위

빈 배

부국강병이라는 전국시대의 패권 논리가 장자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었는가를 우리는 상상해야 합니다. 도 道란 무엇인가, 패권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인가를 자자는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의 이처럼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고 나아가 최대한의 자유 개념을 천명한 까닭은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패권 경쟁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이러한 근본주의적 비판 정신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에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344p

나비의 꿈

‘나비의 꿈’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하는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345p

모든 존재는 인과 과의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과와 인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배우는 제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또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 서 있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이일 異而一의 관계, 즉 “다르면서도 같은” 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침투(interpenetrate)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나비의 꿈’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7p

혼돈과 일곱 구멍

참다운 지식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득어망전’(得魚忘筌)
고기는 이를 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으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 천망인 것이지요. (……중략……)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7p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묵자의 검은 얼굴

2천만에 복권된 <묵자>

묵자는 겸애 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 交利라는 상생 相生 이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면의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370p

언제나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철저한 규율로써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묵가는 강고한 조직과 엄격한 규율을 가진 집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묵가는 불 속에도 뛰어들고 칼날 위에도 올라설 뿐 아니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발길을 돌리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370p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몸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2p

“거울에 비추지 마라”는 묵자의 금언은 비단 반전의 메시지로만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가 실종된 물신주의적 문화와 의식을 반성하는 귀중한 금언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382p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다.

맹자는 묵가의 고결한 가치인 엄격성과 비타협성 그 자체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겸애라는 이상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이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것임을 비판합니다.  398p

묵가는 중국 사상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99p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하늘은 하늘일 뿐.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 天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천론은 당시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천문학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개인의 사상이란 크게 보아 사회적 성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지요.  408p

성악설의 이해와 오해

순자가 천론에 있어서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수순입니다. 명 命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교 敎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412p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17p

예 禮란 기르는 것이다.


나무는 먹줄을 받아 바르게 됩니다.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 人道와 인심 人心입니다. 천도 天道와 천심 天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의 도일 뿐입니다. 순자의 이론에는 또한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그는 성인 聖人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자는 자기의 내부에 있는 것을 공경할 뿐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425p

예와 악이 함께하는 까닭


10. 법가와 천하 통일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는 어리석음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해갑니다. 법가의 사관을 미래사관 未來史觀 또는 변화사관 變化史觀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432p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변화를 인정하고 ,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의 仁義의 정치는 변화된 현실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인의의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고삐없이 사나운 말을 몰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법가의 인식입니다.  433p

옥중에서 사약을 받은 한비자

강한 나라 약한 나라

임금의 두 자루 칼

한비자의 사상은 그것이 군주 철학이란 점에서 비판되기도 하지만, 한비자의 군주 철학은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447p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일곱 가지 징표

탁과 발, 책과 현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다섯 가지 부류

교사 巧詐는 졸성 拙誠보다 못한 법

법가를 위한 변명

법가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법가는 전국시대의 군주 철학이라는 주장입니다. 애민 愛民 사상이 아니라 군주의 권력을 중심에 두는 충군 忠君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비민주적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459p

우리가 법가 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상에 비하여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 법가의 특징입니다.  461p

이러한 법치주의의 가장 발전된 형태가 관료제입니다.  461p

천하통일과 이사

이사와 한비자의 인생을 일별하면서 갖게 되는 감회는 역사란 참으로 장대한 드라마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입니다. 한비자는 스스로 권모술수의 희생자가 되어 비운의 생을 끝마칩니다. 마찬가지로 이사 역시 기원전 208년 7월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게 됩니다.  466p


11. 강의를 마치며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 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475p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계의 구조를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연기 緣起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공간적이고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동태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연기를 상생 相生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연 緣하여(pratitya) 일어나는(samutpada)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연기 緣起를 보는 것이 바로 법 法을 보는 것이라 합니다. 나무 두 개를 마찰하면 연기 煙氣가 일어납니다. 이 경우 연기는 나무에 의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가 사라지면 연기도 사라집니다. 연기는 나무와 상의상존 相依常存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연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실체론적 존재가 아니며 관계론적 생성입니다. 478p

도전과 응전

<대학> 독법

<중용>독법

주자가 <중용>을 통하여 제기하려고 하는 가장 절실한 주제는 바로 도 도의 큰 근원이란 하늘에서 명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인간적 도리의 구체적 덕목은 예악형정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지요.  498p

이학 理學에 대한 심학 心學의 비판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 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 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는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사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 입장과 실천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504p

고전 독법에서 문명 독법으로

가슴에 두 손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heart)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사상을 결정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고 해왔던 것이지요.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 關係論의 장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장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가슴이기 때문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논리보다는 관계를 우위에 두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가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508p

유종원(773~819)의 산문 한편 ? 곽탁타(나무 심는 사람)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 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것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른 식목자는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515p


3. 내가 저자라면


어디서부터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지 난감하다. 조그만 눈썰매에 의지한 채, 거대한 남국대륙을 탐사하는 느낌이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눈 덮힌 광야 앞에서 망연자실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궤적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순자, 법가와 같은 불세출의 사상가들을 통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걸까?

저자는 핵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目)을 제시하고 있다. 서구 근대철학에 기반한 존재론적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관계론적 눈으로 세상을 바라고 말이다. 이는 인간과 자연을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기롤 걸어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이전에 가지 않은 길이며, 새로운 깨달음이다.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 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475p

주체와 객체라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대립적 시각은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이미 중국철학, 인디언의 범신론, 불교사상, 이슬람 신비주의와 같은 철학적 전통은 이미 ‘관계’의 철학에 대해 설파했다. 장자의 ‘나비의 꿈’은 일장춘몽의 무상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다름이 결국 하나라는 깨달음의 표현이다. 조화와 균형 속에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모든 존재는 인과 과의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과와 인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이일 異而一의 관계, 즉 “다르면서도 같은” 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침투(interpenetrate)하는 것이지요.” 347p


저자는 단순히 관계론에 대한 철학을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철학을 근간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행복, 해방, 자유에 대해 끊임없는 꿈을 꾸고 있다. 예를들어 존재론에 의거한 자본주의는 인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자본은 그 자체로 끊임없는 자기 증식 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존재론이 바로 자기 증식 운동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론은 위기를 낳고, 그 위기는 새로운 위기로 해결해야만 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론의 철학은 자본주의의 소명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더 빠른 속도와 더 높은 효율성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탐욕, 더 많은 쓰레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원리’가 아니다. 저자는 도로의 개념과 길의 개념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모순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게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129p

저자는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통해, 인류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너와 나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나 자신이 너라면, 우리들은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신영복 선생은 수십 년간의 억울한 감옥생활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있다. 그에게 수많은 동양 경전에 대해 해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경전의 해석을 통한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희망의 횃불을 들고 외롭지만 함께 길을 떠나자고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월간 우리 교육 인터뷰 중에서)

* 추신 : 훌륭한 저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리뷰를 올립니다. 부끄럽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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