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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4일 05시 05분 등록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제러미 리프킨 글/이희재 옮김/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Jeremy Rifkin 제러미 리프킨 (1945. 1. 26 ∼ )

■ 그는 누구

제러미 리프킨.jpg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 시카고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로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폭넓게 넘나들며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는 흔히 문명비판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주장이 워낙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을 다루며, 현 시대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비판의 편에 서서 강력한 주장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환경 파괴 위험과 테크놀로지의 재앙적 남용을 경고하며 유전자 조작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보다 한층 더 심도 깊은 것은 것이다. 그는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과학적 탐구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을 주장한다. 또한 경제 활동의 개념까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단체나 사람은 제법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프킨의 경우가 그런 단체나 사람들과 차별화가 되는 이유는 그가 활발한 저술가이자 미래학자이며, ‘현대의 이단아’라 불릴 정도로 활발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상당히 급진적인 운동가라는 점 때문이다.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

리프킨은 1945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플라스틱 백 제조업자였고, 어머니는 자선사업으로 맹인들을 위해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터프츠대 법과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이 정도 학력이면 미국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그의 인생을 일순간에 확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후일 리프킨도 회상하기를 아마 베트남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자신도 지금처럼 급진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토로한 바 있다.

그는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서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반전 시위를 이끌 정도로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위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돈을 벌 수 있는 안정적 길을 버리고,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첫 번째 활동으로 미국의 건국 200주년과 관련된 기념 행사들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위하여 1972년 ‘200주년 국민위원회’(People's Bicentennial Commission)를 출범시키게 된다. 그는 이 시위를 통해 미국이 건국 당시의 혁명 이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3년에 『미국식 혁명을 이루는 법』이란 평론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200주년 캠페인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급진적으로 재구성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대대적인 군중혁명을 어떻게 이룩하느냐 하는 데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미국혁명은 우리의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인권은 풍요라는 가치보다 상위에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 이익은 공동의 이익과 동일시 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과 환경을 착취하기보다는 이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손을 떠나서 근로자와 소비자의 품 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5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포드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0주년 개시 행사에 4만 명의 시위 군중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원래 목표했던 ‘대중 혁명 운동’까지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리프킨은 ‘200주년’이란 이슈가 사그라들자 ‘국민기업위원회’(People's Business Commission)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함과 동시에 기존 경제 시스템의 민주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의미있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법 큰 성과를 거둬 리프킨은 이때부터 일부 언론으로부터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에 가장 재능있는 인물 중 한명”이라는 평을 얻게 된다.

리프킨의 운동 방식

리프킨은 1977년에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운다. 그는 처음에는 주로 노동 문제를 이슈로 삼아 활동했지만, 곧 그 범위를 환경문제로까지 넓혀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위를 함에 있어 항상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대는 플래카드로 무장하고, 구호를 외쳐대며 심포지엄의 토론자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들은 과학자와 정부 관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생물의 유전자 조작이 갖는 도덕적, 윤리적 함축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 사건은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을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물공학의 반대자 중 한사람으로 만들어준 첫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리프킨은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곡물에서의 유전자 변형, 특허, 생물학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생물공학적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법률소송, 불매운동, 게릴라식 시위, 20권에 이르는 저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문투고 등, 그는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탁월한 저술가로서의 리프킨

그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나 탁월한 그의 저술능력이다. 그는 자신이 벌이는 운동과 관련하여 책을 저술하는 것이 그의 운동의 사회적 파급력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을 그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추측컨대 그동안 경제동향연구재단의 주요 업무는 그의 책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업무를 주도하는 것도 그요, 책을 저술하는 것도 그이다. 아무리 연구원들을 동원해 자료 조사를 시켰다고 해도 자신이 핵심을 꿰고 있지 못하다면 이런 책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20여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었던 저력이 단지 그런 자료만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실천적 관심과, 열성, 그리고 인류의 문명을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그의 혜안이 없었더라면그 어떤 책도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저술한 책의 목록을 보면 그의 관심사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변화 무쌍한 사회 변화와 함께 현장에서 그가 마주친 현대 사회 이슈들이 그만큼 다양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양 극단을 치닫는 평가

리프킨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나뉜다. 리프킨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리프킨이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만을 받았을 뿐 과학에 대해선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물고 늘어지면서 리프킨을 선동가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치열한 반대운동 덕분에 미국 식품업계로부터 ‘식품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미생물학자로부터는 ‘생물학 근본주의자’란 별명까지 얻었으며, <타임>지로부터는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정확히 누가 맞다고 판정내리기는 쉽지 않은 문제로 보여진다. 또한 리프킨의 모든 주장에 대해서도 다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다 끝날 수도 있었던 난제들을 리프킨이 대중화시켜 살아 있는 공공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유전공학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일부 전문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중요한 과학기술의 결정에 이해 당사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과학기술의 주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조직해낸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는 매우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많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많지 않다.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하며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투신하는 열렬한 행동주의자는 드물다. 모든 세대에는 양심의 진화에 보탬이 되는 한 줌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책이 진짜 힘을 갖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자꾸 나와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은 이 시대의 정신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그의 약력

ㆍ본명 Jeremy Rifkin

ㆍ1945년 콜로라도주 덴버 출생

ㆍ1967년 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학위 취득

ㆍ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 취득

ㆍ1977년∼현재 'Foundation of Economic Trends(경제동향재단)'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이사장으로 있음

ㆍ1993년∼현재 'Beyond Beef Coalition'을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음

ㆍ1994년∼현재 와튼 스쿨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 중

■ 그의 저서

ㆍEntropy (1980) 『엔트로피』

ㆍThe End of Work (1995) 『노동의 종말』

ㆍThe Biotech Century (1998) 『바이오테크 시대』

ㆍThe Age of Access(2000) 『소유의 종말』

ㆍThe Hydrogen Economy(2002) 『수소 혁명』

ㆍThe European Dream (2004) 『유러피안 드림』 等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9P)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10P)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며 상담자이다.(10P)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서 굴러간다.(10P)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11P)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11P)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12P)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는 21세기 경제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12P)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12P)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 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13P)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다.(13P)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14P)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15P)

문화 생산이 경제 활동의 지배적 형태로 뿌리내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사람의 정신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문화적 자원과 체험에 가급적 많이 접속하는 것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16P)

공간과 재료의 상품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여정은 인간의 경험과 생활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끝난다.(17-18P)

문화적 시간은 기울고 인류는 영리적 고리를 통해서만 문명을 지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탈근대 사회의 위기이다.(19P)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21P)

〈프로테우스〉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도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22P)

요즘 아이들은 네트워크와 연결성의 세계에서 자라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경쟁보다는 협조가 중시되고 시스템에 입각한 사고와 합의의 구축이 강조된다.(23P)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다.(24P)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에테르 속에 떠 있는 그 공간은 대지를 덮은 제2의 지표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24P)

사람들은 접속이란 말을 들으면 가능성과 기회로 가득 찬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구멍을 연상한다. 접속은 전진과 개인의 자아 실현을 약속하는 입장권이 되었고 몇 세대 전의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26P)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앞으로 올 시대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위는 모든 것을 모든 것에 연결시키는 것〉,〈크건 작건 모든 물질이 다양한 차원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미래가 올 것이다〉

-《와이어드Wired》의 편집 고문 케빈 켈리-(32P)

갈수록 짧아지는 혁신과 신제품의 등장 주기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기본 출발점이다. 이 과정에는 인정사정이 없다.(34P)

〈한 제품의 정보 집약도가 크면 클수록 그 제품을 갈아치우기가 쉽고 그럴 필요성 또한 커진다〉

-캘리포니아 대학 마케팅 교수 라시 글레이저-(34P)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시장에 먼저 제품을 내놓는 기업만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여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경쟁자들보다 몇 달을 앞서느냐 뒤지느냐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토플러-(37P)

〈구체제가 클럽이었다면 신체제는 네트워크〉 -타임 워너 월터 잭슨-(39P)

동맹 관계가 끝없이 변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네트워크로부터 탈락한다는 것은 곧 낙오를 의미한다.(46P)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47P)

3 무게없는 경제

『돈의 죽음』을 쓴 월터 조엘 커츠먼은 탈물질화된 새로운 돈의 형태는 〈전화선을 통해서, 광섬유 고속도로를 통해서, 위성을 통해서, 전파 중계소를 통해서 전송되는 … 연산의 기본 단위, 곧 0과 1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57P)

〈이 차가운 잿빛 그림자는 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감촉이 없다. 무게나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이제 돈은 이미지다.〉

- 월터 조엘 커츠먼 -(57P)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경영 컨설턴트 스탠 데이비스, 언스트 앤드 영 부설 경영 혁신 센터 크리스토퍼 마이어 소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리는 자본을 소유하거나 심지어는 통제하는 것이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이라는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64P)

〈사용하되 소유하지는 말라〉(64P)

구식 공장, 노후한 설비, 고루한 경영 시스템과 업무 추진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기업이 망하는 첩경이다.(71P)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 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중략)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73P)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제 활동의 공유라고 할 수 있다.(77P)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원형의 세계다. 개념의 세계, 픽션의 세계다.(84P)

아이디어가 좌우하는 접속과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다.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확장하여 보편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 활동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84P)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84P)

공기처럼 가벼운 지적 재산은 새로운 황금이 된다. 정신이 물질 위로 솟아오른다. 가벼운 제품, 소형화, 부동산의 비중 감소, 저스트인타임 재고관리, 리스, 아웃소싱, 이 모든 것은 물질성에 역점을 두었던 세계관이 쇠락하고 있다는 증거다.(85P)

아이디어를 지배하는 것은 공간이나 물리적 자본을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85P)

4 지적 재산의 독점

5 서비스 세상

〈모름지기 사물의 진가는 지닐 때보다는 쓸 때 발휘되는 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114P)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 경은 재산을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사물에 대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개인으로부터 침해받지 않고 배타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전제적 지배 수단〉이라고 정의했다.(115-116P)

우리가 사회적 맥락에서 서로 관계를 설정하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116P)

재산은 고정 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통용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기호와 변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유동적 개념이 된다.(116P)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은 인간의 노동을 격상시켰고 인간의 가장 숭고한 업적은 물질의 획득이라고 주장했다.(120P)

존 로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마땅할 기회가 노동 안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재산이라는 것도 개인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120P)

상속은 소유를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소유의 교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켰다. 상속이 일반화되면서 소유는 계급을 가르고 유지하는 데 요긴한 역할을 하는 권력의 한 형태가 되었다.(121P)

양도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121-122P)

일괄 처리 공정이 처음 도입된 1880년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대량 생산된 상품은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했다. 물질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곧 사업이었고 소빚재가 수많은 소비자의 지위와 행복을 정의하던 시대에는, 소유권이 모든 것 위에 군림했다.(123P)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물건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보유하는 데 있다는 인식이 비공산권 세계 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였다.(123P)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물품의 가치는 물품을 구성하는 재료나 물품을 담는 통이 아니라 물품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얼마나 접속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128P)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128-129P)

〈나한테 물건을 팔겠다면서 유지비는 고스란히 나더러 부담하라는 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136P)

독창성, 기민성, 순발력만으로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기술의 원가가 제로로 곤두박질치는 경제에서 가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어야만 살아 남는다. 머지 않아 이런 급락은 거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똥값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라는 것은 처음 개발한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만 창출될 수 있다. -〈기술의 역설〉《비즈니스 위크》(142P)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씬 중요하다. 장소와 물건을 상품화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중략)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점점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143P)

6 인간 관계의 상품화

현대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삶의 다양한 국면을 상업 관계망 안으로 강제 편입시켰다는 점이다.(144P)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서 살아 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된다.(145P)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의 상품화다.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변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고객의 관심을 묶어 둔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45P)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페퍼스와 로저스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한 종류의 제품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고객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제품을 평생에 걸쳐서 최대한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146P)

MIT 슬론 경영 대학원 협동 과학 센터의 마이클 슈레이지는 <우리는 기술이 정보를 관리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관계의 매개물이라는 쪽으로 과감한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알베르 브레상은 R-기술은 새로운 기술을 묘사하는 적절한 용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처리되는 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상품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브레상은 <지금까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장하는 공학적 차원에서 정보 기술에 접근했지만 이제는 어디까지나 인간 관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49P)

기업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에이전트(대리인)>가 되었다.(150P)

에이전트의 기능은 마케팅이다. 고객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 방안을 찾는 것이 에이전트의 역할이다.(150P)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마케팅이 중심에 오며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 상업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152P)

스톱 워치와 조립 라인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과학적 수단을 제공했다면, 사이버스페이스의 피드백 고리와 바코드는 소비자를 관리하는 과학적 수단을 제공한다.(153P)

에이전트(대리인)는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소비자 한사람 한사람을 글로벌 시장과 바깥 세상에 연결시키는 공급과 분배의 다양한 통로를 관리한다.(155P)

생산 관점에서 마케팅 관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강조한 현대 경영 기법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썼다.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사회가 부를 낳는 자원을 기업에 위임한 것은 고객에게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 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 마케팅은 제품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특이한 사업 기능이다……. 모든 사업을 최종 결과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마케팅에 대한 관심과 소명이 모든 사업 부문으로 확산되어야 한다.’(158P)

「마케팅 근시 Marketing Myopia」라는 중요한 논문에서 하버드 경영 대학원 명예교수 시오도어 레빗은 고객의 관점에서 사업계획을 세워야지 생산자의 관점에서 사업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기업의 목표는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사로 잡는 것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모든 최신 마케팅?경영 이론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불연속적 매출의 확대라는 협소한 목표에 연연하는 것보다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에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158-159P)

R-기술은 개인의 생활 경험을 모조리 흡수하기 위해 손을 뻗친다. 이 새로운 시장 도구의 힘은 개인 생활을 조직하고 사회적 담론을 재구축하는 전방위적 환경을 조성하는 능력이다.(161P)

백로드(전세계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곳에서 자전거와 트래킹을 즐기는 고급 관광 상품을 개발한 여행사)는 <공동체에 가치를 얹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공동체를 창출한다>(164P)

이 새로운 세계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관계망, 취향의 공동체에 상업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다. 소속된다는 것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뜻이다.(165P)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168P)

7 삶으로서의 접속

매킨지에 따르면, 결국 <CID에 거주한다는 것은 회사의 일부가 되어 회사의 규칙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기업적 가치관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를 CID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182P)

지리와 공간적 동일성에 늘 바탕을 두고 있었던 인간의 귀소 본능은 단기적 시간 경험으로 생활 공간을 받아 들이는 새로운 의식에 밀려나고 있다.(188P)

시간의 단위가 대체 가능한 화폐로 바뀌는 추세는 자원의 희소성보다는 시간에, 소유보다는 접속에 중점을 두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의미한다.(191P)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된다>는 옛말도 있다. 소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따라서 소유에 수반되는 집착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192P)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묶어둠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투사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헤겔의 세계관에서 일은 노동 행위가 아니라 창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일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세계로부터 징발한 것이며 일을 한 사람의 인격 안으로 세계를 통합한 것이다. 헤겔은 이렇게 주장한다.

인격은 스스로에게 현실을 부여하려는, 다시 말해서 외부 세계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려는 몸부림이다.(193P)

재산은 개인적 자유를 표현한다. 재산으로 자기를 감쌈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인격성을 시공간 속에서 부풀리고 자기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사람은 세계 안에서 자기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니 소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유의 자부심>이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193P)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재산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194P)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이 심오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197P)

갈등, 수난, 전쟁은 <영토 지상주의>의 어두운 측면이다.(197P)

우리의 생활 공간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바꿈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21세기를 어떤 식으로 살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감수성의 우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198P)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문화 중심의 경제에서 상업 활동의 구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상징, 웹과 피드백 고리, 연결성과 상호성의 세계이며, 경제와 국경이 흐릿해지고 실체를 가진 모든 것이 녹아버리는 그런 세계다.(202P)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말대로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언어, 미술, 음악, 무용,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리 데이어는 말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인간 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인간 문화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문화를 매일매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알고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 자체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203P)

정보 전문가와 공학자는 커뮤니케이션을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인류학자는 의사 소통을 텍스트의 전달을 통한 사회적 의미의 생산으로 이해한다.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의미를 확립하고 공동의 가치를 생산하며 사람을 사회적 관계로 묶는지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구조주의자는 언어, 신화 같은 상징 체계가 공동의 사회적 경험에 의미를 불어넣는 데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표현하고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을 표현한다는 말이 성립한다.(204P)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공동의 경험--는 미디어 시장으로 인정사정 없이 끌려 들어가서 상업적으로 개조된다.(205P)

문화 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사람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든지 배제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206P)

다니엘 벨은 현대 문명을 분명히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세 가지 권역으로 나눈다. 그것은 경제, 정치, 문화이다.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 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정치 영역과 문화 영역의 가치는 경제 영역으로 포섭되어 끊임없이 상품화되었다.(207P)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정교한 수단으로 문화의 가장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208P)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에서 사회 이론을 가르치는 마이크 페더스톤 교수에 따르면, 이 새로운 예술가들--기존의 금욕적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저항해 활동하던 새로운 세대의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순간의 삶, 향락주의, 자기 표현, 육체미, 무종교,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머나먼 곳에 대한 동경, 스타일의 개발과 삶의 미학화를 찬양>한 사람들이었다.(210P)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예술은, 이제 광고 회사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 양식>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210P)

<궁극적으로는 체험의 생산자가 경제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축을 떠맡게 된다>고 앨빈 토플러는 내다본다. 그것이 실현되는 날에는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체험이라는 가장 일시적이면서도 가장 지속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212P)

오길비는 자본주의의 추세를 주시하는 여러 분석가들처럼 산업 경제에서 체험 경제로 넘어가는 이행의 중요성을 서시히 간파하고 있다. 그는 <체험 산업은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모든 내용을 거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213P)

경영 컨설턴트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기업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13P)

과거와 산업 자본주의가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할 목적으로 자연 자원과 노동력을 포획하고 이용했다면, 새로운 문화 자본주의는 문화 생산을 위해 문화 자원을 징발한다.(222P)

몰은 문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상업화된 형태로 모사하여 재현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또한 몰은 일종의 지역 사회라 할 수 있고, 사교, 오락, 놀이의 구심적 역할을 한다.(233P)

문화는 체험의 공유다. 서로 비슷한 가치 아래 사람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문화 상품은 문화를 잘게 토막내어 분할하는 것이고 상업화된 오락물로 개별 판매하는 것이다.(236P)

영화와 함께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는 <소비 문화>로 변모했고 문화 자본주의가 탄생했다.(239P)

닐 개블러에 따르면, 영화는 <온 국민이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관객을 영화라는 상상의 국가 시민으로 변모시켰다. 그 상상의 국가는 조만간 현실의 나라를 대체하고 삼켜버렸다.>(240P)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자문을 요청해 온 기업들에게 <사업의 성패는 고객의 머리에 감동적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집어넣느냐에 좌우된다>고 조언한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신화>, <상상>, <환상> 같은 단어가 먹혀 들어간다.(243P)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243P)

문화 생산은 21세기의 고부가 가치 산업을 선도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문화 생산은 경제 생활의 제1열로 부상하고 정보와 서비스는 제2열로, 제조업은 3열로, 농업은 4열로 내려간다. 이 네 개의 열은 소유 관계에 바탕을 둔 체제를 접속에 바탕을 둔 체제로 꾸준히 탈바꿈시킬 것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통합한 네트워크 관계 안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다.(246P)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인공 환경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상품으로 바뀐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삶을 만들어주고 우리는 그것을 구입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소비자가 되어버린다.(251P)

마케팅은 문화라는 공공재로부터 가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캐낸 다음 예술적 조작을 거쳐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화된 체험으로 변형시키는 수단이다.(252P)

마케팅은 하이퍼 현실을 제조한다. 마케팅의 성패는 현실을 대체하거나 능가하는 인공의 세계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254-255P)

광고는 소비자에게 문화에 대해서 한 수 가르쳐주고 무엇을 사야만 그럴듯한 함의와 체험을 누릴 수 있는지를 일러준다. 따라서 고도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제품의 생산도 아니고 서비스의 수행도 아니고 정보의 교환도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문화 상품의 창조다.(261P)

접속 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건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소유하고 네트워크에 이르는 통행로를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262P)

야후의 제프 말렛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전세계의 거대 미디어 기업이 모든 사이버스페이스로 들어가는 길목의 문지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전자 상거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264P)

마누엘 카스텔스는 말한다. <네트워크 안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무한히 열리지만 네트워크 밖에서는 점차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몰린다.>(264P)

사이버스페이스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는 우리네 삶과 시간의 중개인, 조정인 역할을 한다. 문지기는 무엇을 사회 과정 안으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막을 지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신의 삶과 주변 세계를 정의하는 방식은 크게 보면 이런 문지기가 내린 결정의 산물인 것이다.>(266P)

10 탈근대

21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산업 시대를 살았던 부모세대와 완전 다른, 접속의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세대의 젊은 남녀들은 이제 막 소유 세계의 바깥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변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들의 세계는 점점 가상의 행사와 순간적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것은 네트워크와 문지기와 연결의 세계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들은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가 말한 대로 탈근대 세계를 처음으로 살아가는 세대다.(276P)

인간이 가진 능력으로 이 세계를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굳건한 신념 때문이었다. 과학은 객관적 현실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 기술은 객관적 현실의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유 재산은 정복에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279P)

베이컨의 과학 방법론, 그리고 훗날 계몽주의자들이 자연에 대해 품었던 생각의 대부분은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베이컨의 세계에서 모든 활동은 주변에 널린 객체를 소유하고 착취하기 위해 주체들이 생사를 걸고 벌이는 투쟁으로 귀착된다. 결국은 주체의 의지만이 남는다. 주체의 의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것을 먹이고 살찌우는 객체로서 존재할 뿐이다. <사물>의 배타적 소유와 통제에 바탕을 둔 사유 재산 체제는 우주를 능동적 주체 아니면 수동적 객체로 양분하는 세계관 속에서 힘을 얻는다.(280-281P)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자연의 비밀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베이컨이 주장한 과학 방법론의 핵심 전제--는, 한마디로 있을 수 없다.(281P)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초연하기는 커녕 경기자로서 참여자로서 자신이 조작하고 입김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281P)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 대상에 연루시킨다면 독립성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282P)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283P)

오늘날의 카오스 이론, 카타스트로프 이론, 복잡성 이론, 무산 구조(霧散構造)는 모두 자연계의 우발성, 불확정성, 배태성(胚胎性), 다양성에 초점을 두는 과학의 새로운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근대 과학이 궁극적 진리와 근본적 입자를 찾았다면, 새로운 과학은 돌발적 가능성과 패턴 발생의 원리를 찾으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불변의 법칙에 바탕을 둔 현실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창조적 행위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을 모든 고비에서 드러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284P)

탈근대자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의 구성물이다. 기호학자들은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내는 이야기,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 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세계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우발적이다. 진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시나리오로 엮여 있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창조된 세계, 합의되고 공유되는 의미와 은유로 결속된 세계다. 언어, 의미, 은유는 시간 속에서 달라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달라진다. 현실은 우리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소통을 통해 지어내는 것이다.(285P)

과학적 탐구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이 노출시킨 자연이다. 물리학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진 언어로 자연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설명하고 묘사하고 현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이 된다. 햄릿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은 <말, 말, 말>이다.(285-286P)

이제 학자를 움직이는 힘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 탐구이다. 의미를 캐는 열쇠는 언어가 쥐고 있다. 우리가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버그퀴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탈근대 세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생활 영역의 으뜸가는 현실이 되었다>.(286P)

근대가 목적을 추구했다면 탈근대는 유희를 추구한다.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아무튼 질서라는 것은 무조건 답답한 것, 숨막히는 것이라고 요즘 사람들은 생각한다. 반면에 창조적 무질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권장하는 쪽에 가깝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질서는 자발성이다.(286P)

현실을 이러저리 건너뛰면서 촌각을 다투는 현대 문화의 빠른 속도는 개인과 집단이 가진 시간의 지평을 현재라는 짧은 시간으로 축소시켰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중요한 것은 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사회 생활에서도 절정감과 카타르시스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윗자리에 놓인다. 지금은 <쾌락 원칙>이 군림한다.(287P)

탈근대 사회과학자도 인간의 행동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근대의 노력은 계급론, 인종주의, 식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탈근대 사회학은 다원주의와 이중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구나 열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 체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타당성을 모두 갖는 수많은 문화적 실험이 있을 뿐이다.(289P)

탈근대는 부드럽고 가볍고 느낌과 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시대다. 그것은 거꾸로 된 세계이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사유가 지배하는 의식은 의심받고 성적 욕망, 몽상, 환영에 이끌리는 무의식이 전면에 나서서 사실상의 현실이,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이퍼 현실이 된다. 지하 세계에 갇혀 있던 환상은 찬양을 받으면서 표면으로 떠오른다.(289P)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화면이, 인터페이스가……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허구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모든 기계는 화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역시도 화면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어울림은 화면과 화면의 어울림이 되었다……. 우리는 도처에서 이미 현실의 '미학적' 환각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292P)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이성이 자연의 비밀을 풀 수 있으며 인식 가능한 객관적 현실의 진리를 체계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실주의자였다. 그들은 서서히 신학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계급이었다. 천국의 구원보다는 지상의 낙원을 추구한 계급이었다. 그들은 유물론이라는 복음을 사방에 전하고 사유 재산의 미덕을 찬양했다.(293P)

지난 세대의 사람은 자신을 <양식 있는 인간>으로, <매력 있는 인간>으로 여겼다. 거기에는 생산 중심의 가치관, 소비 중심의 가치관이 각각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문화라는 장터를 이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하면서 각본과 무대 사이를 경쾌하게 옮겨다니는 <창조적 공연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297P)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20세기 가속화되는 도시 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간형에 대하여 성찰하면서 삶 자체의 <본질이 불안정해졌다>고 말한다. 인간 활동의 속도가 워낙 빨라지다 보니 고정된 형태가 자리 잡기 어려워졌다. <우리는 발밑에 놓여 있는 무정형화된 삶의 심연을 응시한다>고 지멜은 말한다.(298P)

헌터 대학의 마이클 우드와 텍사스 대학의 루이스 주커 두 사회학자는 『탈근대 자아의 전개』라는 책에서 <누적된 노력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자아가 부단한 과정 속에서 각성되고 발견되고 실현되는 현재 지향의 자아>로 변모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299P)

소유라는 비유가 퇴색한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역사 의식의 붕괴와 심리 치료의 부상이다.(299P)

드라마의 종착점은 세속의 유토피아라고 믿었다. 자본가에게 역사의 종말은 지구의 광대한 황무지를 완전히 점유하여 사람들 손에 재산을 배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역사의 종말은 사유 재산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물질 자원과 자본을 집단이 소유하는 사회를 세우는 것을 의미했다.(299P)

<역사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만 <치료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위해 살아가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300P)

래시는 <우리는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감각, 과거의 세대와 미래의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식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 시간 감각의 소멸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예전에는 자기 이해 하면 부를 합리적으로 획득하고 누적하려는 노력을 의미했지만 이제 그것은 쾌락과 영혼에 대한 관심을 뜻할 뿐이다.>라고 말한다.(301P)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 놓은데 기여한 요인의 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 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301P)

인쇄는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현상을 조직하며 이 과정에서 직선적, 순차적, 인과적 사유 방식을 장려한다.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다>는 것은 논리적 연쇄에 따라서 하나의 관념을 또 하나의 관념으로 발전시키는 직선적 연결고리를 연상시킨다.(303P)

하이퍼텍스트는 인쇄 문화의 중요한 특성 하나를 잠식한다. 그것은 바로 책에 씌어진 생각이나 단어는 개별 저자의 소유라는 발상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종래의 저자 개념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매체 자체가 배타성과 독립성보다는 포괄성과 연결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몫인지 나누기가 어렵다. 모든 종류의 자료가 한 사람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광범위한 시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형성되는 무한히 열린 과정 안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배타적 소유권을 누구에게 부여해야 할지 곤혹스러울 수 있다.(306P)

새로운 자아는 섬처럼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는 자아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사이버 스페이이스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자아는 대수롭지 않다……. 섬처럼 혼자 설 수 있는 자아는 없다. 모든 자아는 관계의 낱줄과 씨줄 안에서 존재한다……. 늙었건 젊었건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가난하건 사람은 언제나 특정한 통신 회로의 '접속점'에 위치한다>고 말한다.(307P)

인쇄가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관념이 싹트는 것을 도왔던 것처럼 컴퓨터는 관계를 중시하는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북돋운다.(308P)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309P)

우리는 더 이상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복수 네트워크들의 단말기>로서 존재한다.(312P)

MIT의 셰리 터클 교수에 따르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상 공동체의 다양한 집단 안에서 온라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사람은 수십만, 아니 벌써 수백만에 이른다. 가상 공간에서 만들어진 여러 개의 나는 현실 속의 통일된 자아 관념을 허물어뜨린다>.(312P)

인간은 끝없는 변신의 과정을 밟는다. 자꾸만 존재의 상태를 바꾸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 다른 누군가가 된다. 문화 행사가 벌어지는 자리, 교제의 장, 사업 환경에서 인간은 의혹을 접고 기꺼이 하나의 역할을 맡는다.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 <persona>는 원래 가면을 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317P)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사이버스페이스 혁명을 선전하는 4대 전도사라 할 수 있는 에스더 다이슨, 조지 길더, 조지 키워스, 앨빈 토플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통신 시장의 특징이 '규모의 경제'와 '자연적 독점'이었다면 기술의 진보는 이것을 전형적인 경쟁 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부의 임무는 이런 변환을 적극 후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와 새로운 기술이 자꾸만 나타나 과거의 자연적 독점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332P)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 《타임》운 사이버스페이스 특집호에서 이런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들려준다. 전자 네트워크 세계에 접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될 것이라고 《타임》은 내다보고 있다.(343P)

개인과 기업의 통신은 점차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매체를 통해야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346P)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348P)

사유 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350P)

물질의 희소성을 극복한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자기 실현과 자기 변신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 사회에서는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야말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유의 가치가 된다. 새로운 시대에 소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하는 역학 관계의 체제에 참여하는 권리로 성격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토론토대학의 크리스토퍼 맥퍼슨 교수는 결론짓는다.(353P)

네트워크 세계에서 자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반면,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354P)

새로운 시대의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일 것이다.(356P)

제3부분의 조직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떠맡는다. 이들은 제도적으로 자행되는 권력 남용에 도전하고 사회적 불만을 표출시키는 피뢰침이다. 제3부문의 종교, 상담 조직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고 닦는 곳이다. 문화가 풍성하게 유지되는 놀이의 장이다.(361P)

문화는 인간 문명이 원활하게 기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또다른 가치의 산실이 된다. 리프턴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친밀함과 예의 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노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362P)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364P)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 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364P)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장과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다.(365P)

토착음악을 현대 음악과 결합하여 만든 <퓨전 음악> 또는 <하이브리드 음악>은 현지에서는 문화 자본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한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고유 음악은 어떤 인간 집단이 처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대변하고 정신적 열망이나 정치적 갈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인다.(366P)

전통 음악의 원래 역할이 지역 문화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재생산하고 유지, 전승하는 데 있는 반면, 상업 음악은 순전한 오락물이어서 일시적 유행과 변덕에 놀아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토착 음악과 전통 음악이 상실되고 그 문화적 배경이 평가 절하된다면 지역 문화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369P)

새로운 상업 네트워크는 새로운 문화 네트워크와, 새로운 가상 체험은 새로운 실생활 체험과, 새로운 상업적 오락은 새로운 문화적 의식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372P)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372P)

시민 교육은 학생이 살아가는 동네와 지역 사회에서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374P)

현실의 시공간에서 남들과 살을 맞대고 어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배움의 일부분이다.(375P)

시민교육 옹호론자들은 문화를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길 수 있도록 학생의 자기 정체성을 심화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문화가 문명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가를 학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376P)

접속의 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하는 정치가 내재 가치와 효용 가치가 갈등을 빚는 새로운 사회 구도에 흡수된다. 내재 가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문화적 정체성을 뜻한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절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문화 자원, 의식(儀式), 활동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다.(379P)

문화는 자연을 이루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한결같은 외경과 헌신에서 탄생했다. 문화는 대체로 생명을 긍정한다. 문화는 자연에 우리가 진 빚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이끈다. 이런 생명의 긍정이 바로 내재 가치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화는 모든 현상이 효용성으로 환원되고 편의와 징발이 행동의 표준으로 수용되는 상업 영역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380P)

많은 시민 사회 조직의 정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383P)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384P)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삶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놀이를 통해 표현한다.> 언어, 신화, 의식, 민속, 철학, 무용, 음악, 연극, 법, 심지어는 전쟁의 규칙까지도, 인간 사회의 모든 중요한 활동은 놀이에서 탄생한다. 사회 생활은 <한 없는 게임>이라고 호이징가는 말한다.(385P)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는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 또한 일과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결국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386P)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 형식이다. 1795년에 쓴 『인간의 미적교육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라고 썼다. 문화 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389P)

놀이도 희열도 결국은 경험의 공유이다. 숲을 혼자 거닐 때 느끼는 잔잔한 희열도 나를 둘러싼 생명과 혼연 일체가 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다.

따라서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사람은 문화 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두려워하여 자유를 쓰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하는 것이 놀이다>라고 말했다.(390P)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390P)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92P)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의도

미래의 키워드를 ‘접속’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현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와 문제 그리고 우리에게 직면한 과제를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못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리프킨은 이 책을 쓰는데 무려 6년이 걸렸으며, 총 350권의 책과 1천여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카드와 약 2천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방대한 자료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책을 써야만 했을까?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썼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저자는 소유대신 접속하는 대상이 물질에 그치지 않고 사람으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상품의 탈 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와 같은 특징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상업화 시키고 이 상업화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갖게 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는 인간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문화영역과 상업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며, 풍요로운 문화의 다양성을 지속시키고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다름아닌 인간성 회복을 통한 문명의 유지에 있다 하겠다.

접속의 시대란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체험이라는 가장 일시적이면서도 가장 지속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 생활과 사회생활이 점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 이것이 접속의 시대를 표현하는 문장들이다.

‘소유’란 개인이 모든 것의 점유권을 갖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를 대표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접속’은 영구적인 사용이 아니라 일시적인 사용을 의미한다. 일시적인 사용을 위하여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개인이 점유권을 갖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접속’은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접속은 그러한 행위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자본주의를 새롭게 바꾼다고 말하고 있다. 즉 현시대의 문명이 바뀌는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문명이 바뀌는 것은 인류의 미래상이 바뀐다는 말과 같다. 저자는 ‘다가올 시대에서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접속이 지배하는 것은 인터넷만이 아니라, 컴퓨터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자동차, 주택, 가전제품, 공장, 체인점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은 물론이고 사람의 경험과 삶 자체를 상업화 시키는 것 까지도 포함된다. 기업은 공장을 소유하지 않는다. 브랜드만 갖고 있는 기업은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개념을 판다. 바야흐로 개념이 곧 재산이고, 아이디어, 문화가 생산의 중추를 이루는 시대다.

또한 접속의 시대는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간의 공동체적 경험은 상업적으로 개조되고 ‘문화적 상업주의’가 삶을 이끌게 된다. 문화적 자원이 돈을 주고 사야하는 오락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자기 몸 안에 있는 세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믿기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은 단순한 예측 이상의 당혹감을 불러온다.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 영역을 집어삼켜 상업적 오락물, 체험, 유료 공연, 금전 관계의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라고 리프킨은 경고하고 있다. 암울한 미래가 바로 접속의 시대인 것이다.

다소의 아쉬움

접속의 시대는 이미 어느 정도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안으로 침투해 올 것은 자명한 사실로 보여진다. 그렇기에 저자의 말은 절대 흘려들을 수 없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지나치게 과장된 점이 있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공동체가 공유해 온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에서 자꾸만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면서 접속권도 자연히 사회적 영역에서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제 접속권은 전통, 통행권, 가족과 친족의 유대, 민족, 종교, 성 같은 자연적 기준이 아니라 상업 광장에서 통용되는 경제력에 따라서 부여된다."(206P)

물론 일부분 이 의견에 동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의견에 동의 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몸 담았던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고, 고수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범주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그 안에서 확장된 세계를 갖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앞의 인용문은 지나친 감이 있다. 저자의 이 글들이 준거성을 갖추려면 시간이 흘러 그 안에서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이런 정도로 삭막한 미래는 많은 사람이 바라지 않을 것이고, 다소 극단적으로 흘러간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한 대로 사람들이 굳이 CID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별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서비스, 시설의 네트워크로 편입되고 싶다는 욕심,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생활 방식을 사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CID는 재산 투자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생활 경험의 상품화가 주는 매력을 내세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CID는 과도기적 주거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세계와 두 가지 생활 방식, 다시 말해서 소유와 재산 관계에 우위를 두는 낡은 방식과 상품화된 관계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중간 기착지의 역할을 CID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182P)

저자가 중간 기착지라고 말하고 있는 주거형식은 여러 분야에서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저자의 주장대로 그렇게 핑크 빛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패턴화된 정형화의 주거 형태에서 보다 자유로운 문화적 공간을 원하게 되었으며, 불합리한 점의 부작용으로 그 지속성은 길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예를 들어 보자면, 예술인 마을이나, 청학동등이 그 예이고, 직업이 비슷한 사람끼리 지은 별장 동호회 등에서도 그런예를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살펴 보자면, 주거 형태 자체가 상품화로 전락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공동체의 주민들 또한 상품화 되는 경향이 있는 약점이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문제점과 그 해법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화면이, 인터페이스가……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허구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모든 기계는 화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역시도 화면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어울림은 화면과 화면의 어울림이 되었다……. 우리는 도처에서 이미 현실의 '미학적' 환각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292P)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인터넷 환경과 그 이용율, 사이버 게임의 열기, 게임을 통한 현실 회피 증상의 심화, 게임방의 무분별한 확산, 그리고 핸드폰의 멀티미디어화. 핸드폰 중독증. 사이버스페이스로의 접속 불안증, 확인 조급증 등 수많은 부작용들이 이미 나타나 있는 상태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과 사이버 세계와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현실 부적응자가 많아지고, 이중 인격자가 양산되며, 현실 상에서 정상적인 인간관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기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없어지고 점차 사이버 공간에서의 ID만으로 사람이 재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성이 중요시 되고 책임감이 없어도 되는 그런 자유분방한 사회만을 원하는 신인류 네티즌만의 세상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상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이, 이 사회가 인간으로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인류의 탄생이래 선사시대, 원시시대, 전근대,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사람 그대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은 인간성이다. 인간으로의 성질을 잃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괴물이자 동물일 뿐이다.

시대가 사이버스페이스, 전자 네트워크, 접속의 시대로 들어서고, IT에 있어 무한한 혁명과도 같은 발전을 통해 우리 삶의 주변이 되는 모든 것이 변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그 자체, 인간 본성이 지배하는 휴머니티는 아직도 우리 삶의 근간으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에 하나 이것마저 무너진다면 이 사회는 인간이 지배하고, 삶을 영위하는 곳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 아닌 인간들이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유사인간의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이라는, 인간을 위한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라는 명제를 잊어 버리고 인간성을 상실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결코 원치않는 그러한 접속의 시대, 암흑의 시대, 유사 인간의 시대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접속의 시대를 맞아 더욱 인간성 회복을 위한 휴머니티즘의 발전과 순수한 휴먼 네트워크의 구성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뇌 신경을 연결해 줌으로써 소통이 가능케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뉴우런이다. 그 뉴우런이 모여 연결되는 곳이 바로 시냅스이다. 인간관계는 시냅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본 단위이다. 인간 관계의 역할 수행여부에 따라 인류 문명도 발전하고 쇠퇴하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92P)

인간성 회복을 통한 휴먼 네트워크의 활성화. 접속의 시대가 시대 흐름에 따라 더욱 발전되고 심화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명제를 결코 잊으면 안될 것이다. 기본을 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 하이퍼 시대에도 진리처럼 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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