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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07시 43분 등록

     : 국화와 칼

출판사 : 을유문화사

저자   :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역자   : 김윤식, 오인석

 

I.     저자에 대하여

 

루스 베네딕트 (Ruth Benedict, 1887 ~ 1948)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사회 연구를 위한 뉴스쿨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어 1921 34세의 나이에 콜럼비아 대학에 입학한다. 그녀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 Patterns

of Culture>를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인종 Race : Science and Politics>을 출간

함으로써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전쟁 공보청 해외 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1946년 만년의 역작인 <국화화 칼 Then Chrysanthemum and the Sword>를 출간

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컬럼비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

수로 재직하였다.

 

그녀는 젊은 시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녀였는데, 그러한 외양 뒤에서 그녀의 내면은 항상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녀는 그녀의 수줍음이 그녀의 배경 즉, 보수적인

가문에서 탄생한 것과 20세기 미국 사회로부터의 영향을 받아서 였다고 밝힌다. 한 때 수줍

음이 많던 그녀는 인류학에 헌신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인류학자로

그녀는 정치적,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했었고, 지성의 자유를 열렬하

게 옹호하는 학자였다.

 

위의 간단한 그녀에 대한 설명 뒤에 숨겨진 그녀의 출생과 성장, 결혼과 학문, 그리고 생전에

는 숨겨져 왔던 그녀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아래에 덧붙인다. 덧붙인 글은 인터넷 알라딘 서

점의 루스 베네딕트라는 제목의 마거릿 미드가 쓴 그녀의 평전에 대한 소개글에서 따온 것

이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043419)


*
출생 및 성장
베네딕트는 1887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두 살 무렵에 외과 의사이던 아버지가 급사하는 바람에 뉴욕 주 섀턱 농장(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사와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하면서 힘겹게 두 딸을 키웠다. 그 때문에 베네딕트는 내면적으로 깊은 고뇌를 느끼며 성장했다. 과부 생활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어머니에게 심한 염증을 느꼈고, 발작 비슷한 격심한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어린 베네딕트가 아버지의 관 옆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라고 채근하는 바람에 그런 신경질적인 여자가 되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신체적 장애도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 열병을 앓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성격이 우울해졌는데, 두 살 아래 여동생 마저리는 성격이 밝고 예쁘고 활달한 아이여서 더욱 대조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한 성격을 혐오하여 심적으로 대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눈물 없는 외양을 꾸며야 했기 때문에 더욱 자기 혐오감이 깊어졌다. 베네딕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고 1909년 배서 대학 영문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한때 문필업에 전념할 생각도 있었으나 문화인류학에 입문하면서 시 쓰기는 중단했다.

*
결혼과 학문

베네딕트는 1914년 여름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이 무렵 남편은 뉴욕 시 코넬 의과대학에서 생화학자로 근무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문제를 두고 남편과 갈등을 빚었다. 그녀는 그런 갈등을 해결해줄 촉매제로서 아이의 출생을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1919년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 해에 그녀는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그 수술에 반대하면서 부부 관계는 더욱 틀어지게 되었다.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베네딕트는 더욱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각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32세가 되던 1919년 일반인을 위한 인류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것이 아주 흥미로운 학문임을 알게 되었다. 평소 늘 갖고 있던 질문들, 가령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런 성격의 소유자인가?” “나는 왜 인생에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가?” “나는 왜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문화인류학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학문에 매진했고 이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
루스 베네딕트 전기는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절반쯤 청각장애인이 된 아이, 조울증 기질을 가진 소녀, 결혼에 실패하여 별거한 여자, 성 정체성에 심한 혼란과 갈등을 느낀 여자, 남성 주도의 대학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경쟁해야 하는 여성 학자 등 온갖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세계적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
비록 베네딕트 생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의 성 정체성 또한 독특한 인생의 에피소드이다. 미드가 이 책을 집필했던 1974년 당시만 해도 미국 내에서 동성애는 반드시 숨겨야 할 혐오 사항이었다. 따라서 미드는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깊은 관심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이 책의 행간을 읽어보면 그런 관심사가 배어 나오는데, 가령 미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학 시절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아주 외로운 학생이었으나 기이한 방식으로 다른 외로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외로운 여성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사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21페이지의 사진 캡션은그녀의 아름다움이 시들어가던 1924년 무렵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는 베네딕트가 자신의 성 정체성과 관련하여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26페이지의 사진은그녀의 아름다움이 회복된 1931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데, 이때는 베네딕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미드와의 사랑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
베네딕트는 이런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문화인류학 연구에서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변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런 만큼 그녀의 글에는 자기 지칭성(베네딕트 자신의 문제를 문화의 분석에 원용하는 것)의 경향이 강하다. 전기 뒤에 붙어 있는 6편의 논문도 이런 자기 지칭성의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

*
성 정체성, 그리고 여성으로 산다는 것

베네딕트가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은 소외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파격적 성 정체성이라는 자기 인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녀는 1930년대 초반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방황과 고뇌의 세월을 청산하고 <문화의 패턴>을 썼다. 이 책에 붙어 있는 논문집의 첫 번째 글인 '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통합형태'은 문화의 패턴 이론을 정립하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한 글이다. 이 글과 두 번째 논문인 '주술'에는 이런 주장이 나온다.

문화는 판타지, 공포구성물(fear-constructs), 열등감 등에 바탕을 두고서도 얼마든지 조화롭게 또 견고하게 구축될 수 있고, 또 위선과 허세에 탐닉할 수도 있다. 진실을 대면하고 위선을 회피하려는 드라이브를 가진 개인이, 나름대로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문화 내에서 범법자로 지목될 수도 있다. 잘 정의된 문화적 통합형태는 정직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통합형태
').
현대 사회는 성과 관련된 까다로운 문제와 관련하여 주술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계시종교와 전통적 도덕이 용인한 것 이외에 다른 바람직한 섹스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술
').

비록 이 책이 집필된 1974년에는 베네딕트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지 않아, 위에 인용한 문장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 주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
일본문화의 극기 훈련>이라는 논문은 <국화와 칼>의 한 챕터를 가져온 것이다. 이 논문은 극기에 도달하는 선불교의 정신과 수행을 기술하고 있다. 선불교는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베네딕트에게 하나의 해결안을 제시했다. 베네딕트는 퓨리터니즘과 감성의 부흥이라는 모순적 경향을 가진, 복음주의적 침례교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어릴 적 신앙을 버렸고, 그 이후 꾸준히 대안을 찾아왔는데 선불교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선불교는지금 여기라는 현재성, 개인의 자아, 내세와 신비주의의 거부, 선정(禪定)과 명상, 공안(公案)이라는 화두, 무술의 정진 등을 통해 개인의 극기를 유도하고 또 행위자와 관찰자라는 분열된 자아의 치유와 화해를 강조한다. 이런 선불교의 훈련을 통해 통합된 자아를 성취한 개인은 그 어떤 긴장이나 구속, 수치심과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가르침은 인생의 의미와 관련하여 깊은 고민과 갈등을 되풀이 해온 베네딕트에게 분명 하나의 빛이 되었다.


 

I.     내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20]일본인에 관한 우리 속설에도 무엇이든 우리와 정반대의 짓을 한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차이의 확신이 위험한 것은, 연구자가 이들 차이는 지극히 환상적인 것이므로 그러한 민족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순히 말함으로써 주저앉아 버릴 때이다. 그러나 인류학자는 어떤 기괴한 행동이라도 끝내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자기 경험에 의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23]20
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 인의, 러시아를 러시아 인의 나라답게 하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식을 결핍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난 경우라고 우리는 전혀 화해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24]마음이 강인한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함이 없이도 미국이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이 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25]문화의 비교 연구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활 양식을 세계에서 유일한 해결법으로 믿고 그것의 방어에만 급급해하는 한 도저히 번영될 수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생활 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의 문화를 보다 깊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즐겁고도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29]일본은 그 근본적인 가정을 탐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나라였다. 분명히 나는, 번에 서양인의 가정은 일본인의 인생관과는 어딘지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음을 전제한 바 있었으나, 일본인에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에 관해 다소 이해를 얻을 수 있다면, 흔히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의 행동의 많은 모순이 아닌 것으로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29]내가 일본인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이 사용하는 어구나 관념들이 처음엔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마침내는 그것들은 중요한 함축을 가지고 있으며, 또 오랜 세월에 걸친 감정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과 악덕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며, 또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35]그들 말에 의하면, 정신은 전부이며 영구 불멸한 것이다. 물질적인 사물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들은 이차적일 뿐 영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라디오는 자주 물적 자원에는 한도가 있다. 물질적인 사물은 천년도 가지 못하는 것은 명료한 일이다.”하고 외쳤다. 그리고 이 정신에 대한 신뢰는 전쟁의 과정 속에서 문자 그대로 해석되었다.

 

[40]일본인에게 있어 명예란, 즉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그 둘 중의 하나이지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만일 부상했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는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걸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명예를 잃었다. 그 이전의 생활에서 본다면 그는죽은 자였다

 

[47]미국인은 모든 구조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 대한 모든 원조에 감동한다. 용감한 행위는 만일 그것이 손상된인간을 구한다면, 한층 더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일본인의 용기는 그러한 구조를 배척한다.

 

[44]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서와 계층 제도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우리들이 계층 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 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인의 계층 제도에 대한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관계 및 인간과 국가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어서 가족, 국가, 종교생활 및 경제 생활 등과 같은 그들의 국민적 제도를 기술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일본인은 국내 문제를 계층 제도의 견지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국제 관계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52]그들은 미군 포로가 자기 이름을 본국 정부에 보고하여 자기들의 생존을 가족들에게 알려 달라고 의뢰한일을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 경멸할 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타안 반도에서 미군이 항복한 것도 적어도 일반 병졸에게는 의외였다. 그들은 미군이 일본식으로 최후까지 싸우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미군이 포로가 되는 것에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59]일본은 근래 두드러지게 서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주의적인 사회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접촉할 때는 반드시 서로간의 사회적 간격의 성질과 정도를 암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인은 남을 향해이트(eat:먹어라)’ 든가, 싯다운(sit down"앉아라)이라고 말할 때, 상대방이 친한 사람인가 손아랫사람인가 윗사람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말을 쓴다. 같은 유(you:그대)라도 각기 그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며, 같은 의미의 동사가 여러 종류의 다른 어간을 갖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인에게도 다른 많은 태평양 여러 민족과 같이경어가 있다.

 

[62]사무라이와 다른 세 계급, 즉 농 공 상인과의 사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 세 계급은 서민이었지만, 사무라이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그들의 특권으로서, 또 그 카스트의 표시로서 허리에 찬 칼은 단순하 장식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는 서민에 대해 그것을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도쿠가와 시대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그러했다. 이에야스의 법령이, “사무라이에 대해 무례하게 군다든가, 그들의 상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서민은 즉석에서 참해도 좋다.”라고 규정한 것은 실상은 전부터의 습관에다 법적 효력을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63]따라서 일본이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는 한정된 가족간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 거기에 그들이 형제 및 그 직계 비속 정도를 포함하는 데 머무는 집단 속에서, 세대나 성별, 연령에 따라서 자기에게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뜻한다.

 

[68]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 시대의 일본 계층 제도가 근대 일본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봉건 제도가 법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은 요컨대 겨우 75년 전일 따름이다. 그 뿌리깊은 국민적 습성이 겨우 인간의 일생에 불과한 75년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소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근대 일본의 정치가들도, 다음 장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국가 목적의 근본적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 계층 제도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기 위해 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일본인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도 행동의 끝에서 끝까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규정되고, 모든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 그러한 세계 속에서 생활하도록 조건지워져 있다. 법과 질서가 이러한 세계 속에서 무력에 의해  유지된 200년간, 일본인은 이 면밀히 기획된 계층 제도를 안전과 보증으로 동일시하도록 훈련되었다. 그들은 이미 아는 영역에 머무는 한, 이미 아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 그들의 세계를 신뢰할 수가 있었다. 도적떼들은 제압당했다. 다이묘간이 내전도 방지되었다

 

[73]상인 계급은 천민 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이 사실은, 미국인에겐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봉건 사회에 있어서는 매우 실정에 맞는 일이었다. 상인 계급은 늘 봉건 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가 쇠퇴한다.

 

[75]그러면 이토록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정부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것은 특수한 일본의 여러 제도가 이미 봉건 시대부터 육성시켜 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계급과의 특수한 연합이었다. 즉 그들은 다이묘의 어용인(御用人)과 가로(家老)로서 정치적 수완을 닦아, 광산업, 직물업, 판지 제조 등 번의 독점 사업을 경영해 온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무라이의 신분을 사서 사무라이 계급속에 생산 기술의 지식을 보급한 상인들이었다. 이 사무라이와 상인의 동맹이, 메이지 정부의 정책을 작성하고 그 실행을 계획한, 유능하고도 자신에 가득 찬 위정자들을 급속히 무대 앞으로 내세운 것이다.

 

[81]일본인들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도 그 행동이 끝에서 끝까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미리 규정되어 있어,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 그러한 세계 속에서 생활하도록 조건 지워져 왔다. 법과 질서가 그러한 세계 속에서 무력에 의해 유지된 200년간, 일본인은 이 면밀한 기획된 계층 제도를 안전과 보증으로 동일시 하도록 훈련되었다. 그들은 이미 아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 그들의 세계를 신뢰할 수가 있었다.

 

[83]또 한, 카스트 제도를 잘 조종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양가를 삼는 관습이었다. 이 방법으로 사무라이 신분을 사들일수 있었다. 상인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부를 축적하게 되면 그들의 자식을 사무라이 집안에 양자로 보낼 궁리를 했다. 일본에는 아들을 양자로 주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위를 양가로 삼는다. 이것을 데릴사위라고 부른다. 데릴사위는 그 장인의 상속자가 된다. 그는 많은 희생을 지불해야 한다. 그의 이름은 생가의 호적에서 말소되며, 처가의 호적에 기입된다.

 

[97]일본의 정치 형태와 이와 유사한 서구 여러 나라 사례 사이의 참된 차이는 그 형식에 있지 않고 기능적인 점에 있다. 일본인은, 과거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 냈고, 그들의 윤리 체계와 예절 속에 격식화 되어 있는, 낡은 복종의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는 각하들이 그 알맞은 위치에 있어 직분을 다하면 반드시 그의 특권이 존중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것은 그 해당된 정책이 시인되기 떄문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괘씸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국적의 최상층에는 국민의 여론에 대한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따름이다. 국가가 그 권한의 영역을 지방 행정의 범위 내에 침범할 떄에도 또 한 그 지배권은 황송하게 받아들여진다. 갖가지 국내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 같은 불가피한 필요악이 아니다.

 

[98]일본인의 생활 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그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어른에게는 서구 문화 보다도 더 큰 존경 ? 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 ? 을 주지만, 웃어른들도 그 지위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그 알맞은 장송에 둔다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01] ,해군을 창설할 때에도 그들은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그들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낡은 카스트 제도를 제거했는데, 군대에서는 일반 시민 생활에서보다도 더 철저히 제거했다. 군대에서는 일본식의 경어조차 폐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론 옛 습관이 남아 있었다. 또한 군대에서는 가문에 구애 받지 않고 본인의 실력만으로 누구든지 졸병에서 장교의 계급까지 출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철저한 실력주의가 실행된 분야는 달리 없었다.

 

[107] 일본인은 그들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일본의 도덕 체계는 다른 어느 곳에도 기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는 그러한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108]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 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앞서 먼저 그 도적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109] 더구나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에 있어서의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 그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점(起點)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소중히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단순한 사실 자체까지도 모두 세상 덕이기 때문이다.

[110]
동양과 서양의 극단적인 차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떠한 차이를 나타내는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러한 점을 일본에서 이해하려 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전쟁 중 우리가 알게 된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희생이나, 유리들로서는 화를 낼 필요가 없을 듯한 경우에도 일본인들이 곧잘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

[111]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112] 온은 첫째이며 최대의 채무, 천황의 온에 대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도 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116]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127] 온은 부채이기 때문에 갚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은은, 온과 아주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27]
사람의 채무()은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인 것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답 행위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136]효행은 비록 상대가 가난한 비속친족이라도 그 사람에게 베푸는 원조를 존경과 사항으로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가족에게 부양되는 젊은 과부들은 찬밥친척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식은 밥을 먹인다는 의미로서, 그 집안의 누구에게서나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그들 자신의 신상에 관한 어떠한 결정에도 아주 순종해야 되기 때문이다.

 

[317]”미움받는 며느리가 귀여운 손자를 낳는다는 일본의 속담에도 있듯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사이에는 항상 가 존재한다. 며느리는 겉으로는 한없이 유순하다 그러나 이 순하고 사랑스럽던 사람이 세대가 바뀌는 데 따라, 이전 자기의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가혹하고 말 많은 시어머니가 된다. 그 여인들은 젊은 아내 시적에는 반항심을 나타낼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순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은 만년이 되어 이른바 쌓인 원한을 자신의 며느리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처녀들은 공공연히 맏아들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편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위세를 부리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43] 일본인은 우리 미국인을 준법 정신이 결여된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들은 또 우리의 관점에서 일본인은 민주주의의 관념이 결여된 굴종적인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는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144]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 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이적을 격퇴키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

[145]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일본인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지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 대신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

[147]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기리(義理)처럼 쓰라니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義務)를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이 기리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

[155]
일본인은 가끔나는 기리 때문에 기( :정의)를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는 기리의 규칙은 이웃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인은 사람들이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치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 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을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 불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

[159]
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에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

[166]
기리의 모든 용법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인간과 그가 하는 일이 극단적인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행위 또는 능력에 대한 비판은 자동적으로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
.

[167]이와 같은 신경 과민은 경쟁에 진 경우에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취직할 때 자기 이외의 사람이 채용되었다든가, 또는 당자가 경쟁 시험에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패자는 그런 실패 때문에 창피를 당한다.’이러한 창피는 분발의 강한 자극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경우는 의기 소침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는 자신을 잃고는 우울하게 되든지 화를 내든지 혹은 동시에 두 가지 상태에 빠진다. 그의 노력은 저해 된다. 미국인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경쟁은 우리 자신의 생활 구조 속에서 거둬들이는 정도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효과를 일본에선 거둬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68]이론의 어린이는 경쟁을 장남처럼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청년이나 성인의 경우에는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뚞 떨어 진다. 혼자서 할 때에는 비교적 좋은 진보를 보이고 틀리는 경우도 적도, 속도도 빨랐던 피험자가, 경쟁 상대와 함께 하면 자주 틀리고 속도도 느려진 것이다. 반면 그들은 그들의 진보를 그들 자신의 성적과 비교하여 측정할 때에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타인과 비교 측정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171]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예절을 요구한다.

[172]
일본인은 분명히 예의바른 국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은 비방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욕을 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유희 같은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일본인이 왜 아무것도 아닌 말을 그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176] ‘
아침목욕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흙탕을 씻어 내는 것으로서, 조금이라도 흙탕이 묻어 있는 동안에는 당신은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당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

[179]
일본인 특유의 권태는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국민 공통의 병이다. 그들은 배척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그들 내부로 돌려 스스로를 괴롭힌다. 일본 소설에서 묘사되는 권태는,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 사이의 큰 차이가 주인공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권태의 기초가 되고 있는 러시아 소설에서의, 우리에게 친근한 권태와는 다른 심적 상태이다
.
...
미국의 소설가는 이러한(권태를 다루는) 주제를 취급하는 일이 별로 없다. 미국의 소설가는 작중 인물의 불행을 성격적 결함이나 무자비한 세상의 풍파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원인을 추구하나, 순수한 권태를 묘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181]
미국인이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191]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91]
미국인은 쾌락을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람이 관능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별로 배울 필요가 없는 이미 알고 있는 유혹을 극복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쾌락을 의무와 마찬가지로 배운다
.

[201]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 데 그 경계선은 우리들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

[203]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은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

[203]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온화한영혼과거칠은영혼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온화해야 할 경우와거칠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

[205]
일본에서는 인간의 성질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나쁜 반절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따라 알맞은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더럽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용이하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질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209] 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기리, 진 닌조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의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지여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211]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 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212]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을 갈지 않고 있으면 녹슬게 된다. 그들이 곧잘 말하는 '자기 자신이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칼과 마찬가지로 녹슬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227]
기리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권위를 가지는 덕으로 "저 남자는 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일본에서 가장 심한 비난의 하나이다
.

[236]
의도가 좋았다는 이유로 실패의 이유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거수 일투족이 여러 가지 결과를 수반하는 것으로, 사람은 그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



[237]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

[240]
그들이 보는 바로는, 바로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그들은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타인이 자기의 행동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정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안심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

[241] "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감각과 감정르 가진, 어느 다른 유성엣 떨어져 온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모든 동작을 얌전하게 하고, 모든 말투를 예의에 맞도록 하지를 요구하는 나의 일본식 예절이, 이 나라의 환경 속에서 나를 극도로 신경과민과 자의식에 빠지게 했다
."

[242]
한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 질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단적인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

[243] 어떤 문화의 자기 훈련은 항상 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지 쉽다.

[248]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 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수양)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수 있다(only so can he enjoy life) "라고 번역되고 있다. 자기 훈련은 "(자제력이 깃드는 곳)-배짱-를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확대한다
.

[249]
훈련의 처음 무렵에 사람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느낌은 이내 사라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나중에 훈련이 즐거움이 되거나 혹은 훈련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 새로운 요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이와 같은 수요(修養)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는 아니다
.

[249]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

[251]
무아(無我)...... 의지와 행동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빈틈도 없을 '때의 체험을 말한다. 방출된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의지와 행동 사이에 말하자면 일종의 절연벽이 가로막는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아', '방해하는 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에 의하여 이 장벽이 제거 되었을 때에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 있고, 전류는 자유로이 흐른다. 행위는 노력 없이 행해지게 된다. 그것은 일점으로 변한다. 행위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실현된다
.

[253]
일본인은 예로부터 항상 사후 생활의 공상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들의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나 사자(死者)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

[253]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되는 교의(敎義)이다
.

[257] 12
세기 및 13세기 동란 시대에, 경전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직접 체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이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이, 승원이라는 피난처 속에서 세상의 폭풍을 피해 출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일어겠지만, 설마 그것이 무사 계급이 애호하는 생활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ㄹ게 된 것이다
.

[258]
선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한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에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에 추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

[262]
만일 심안이 열리기만 하면, 목전에 있는 손쉬운 수단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 그것도 자기 이외의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말이다
.

[266]
죽은자는 이제는 온()을 갚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

[267]
미국인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요구하는 강력한 강제력은 죄의식이다
.
....
일본인은 인간의 마음의 밑바닥에 있어서는 선이다. 만일 추동이 그대로 즉시 행위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 인간은 쉽게 선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숙달'의 수행을 쌓아, '하지'의 자기 감시를 지배하려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제6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 상극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이다
.

[274] 어머니는 자신이 누구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갓난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앞으로 숙이게 하여 갓난아이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갓난아이는 항상 한 사람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276]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꾸짖을 때 쓰는 '위험해'라는 말과 '안 돼'라는 말 속에는 이과 같은 감정이 들어 있다. 세번째로 늘 쓰여지는 훈계의 말은 '더럽다'는 말이다
.

[278]
이러한 경험(공갈로 아이를 집에서 내보는 것처럼 놀려대는 것)은 성인이 된 일본인에게 현저하게 나타나는, 조소와 배척에 대한 공초심을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 어른이 된 뒤에도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게 될 경우에도 이 유아기의 공포가 어디엔가 남아 있게 된다
.

[281]
아이는 보통 새로운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진정으로 흥분하며 기뻐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흥분가 기쁨은 식어 버린다
.

[286] "
아이들은 부끄러움(하지)을 모르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때문에 저처럼 행복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잇는다
.
이것은 어린아이와 어른 간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왜냐하면 어른에게 "저 녀석은 부끄럼을 모른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완전히 파렴치한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

[283]
이것들은 모두 보호를 베풀어 집안의 안전을 비켜준다. 마을에서는 그 동네 절이 마찬가지로 안전한 장소이다. 그곳은 자비심 많은 신들이 앉아서 수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은 안전한 절에서 놀게 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경험 속에는 신을 두려워한다거나 혹은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신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행위를 규제하는 일은 없다. 어린이들은 신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신들은 권위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294]
괴롭힘을 당한 인간은 괴롭힌 인간에게 복수를 할 때야만 '시원한 기분'을 느낀다.


[295]
일본인은 혼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밤이 되어 아이의 이불은 마음에 맞는 연장자의 이불에 잇대어 펴는 수가 있다. '누구누구와 내가 사이가 좋다'라는 증거로 두 사람의 잠자리를 붙이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302]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의 모순은, 일본인의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해서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 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천국을 과거에 가지고 있다.

[302]
예닐곱 살이 지나서부터 차츰 주의 깊은 행동과 '부끄러움을 아는' 책임이 부과되는데, 그것은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배척된다는 가장 강력한 강제성이 따르는 것이다
.

[304]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혼의 문인 자기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

[309]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이냐 ''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 삼아 그 진로는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버린다. 이러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큰 것으로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로 만들며,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 그러한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

[312]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 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거소가 같아, 사람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
중략]칼은 공격이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

[319]
사회는 안쪽 구석을 핀으로 눌러 놓은 삼각형이다. 달리 말하자면 삼각형은 책상 위에 있으며 누구나 볼 수가 있다. 핀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삼각형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 정체를 들어내지 않는 축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

[331]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는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III.   내가 저자라면

 

저자의 일본인 심리 구조의 이해에 대해서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저자의 일본인 심리 구조에 대한 이해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대신 문헌, 서양인들의 경험, 영화 등을 토대로 연구함으로써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심리 구조의 파악이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다. 내가 일본인은 아니지만 가까운 문화권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들여다 보면 저서에 서술된 저자의 일본인 심리 구조의 파악이 거의 정확에 가까워서 매우 놀랄만한 수준이다.

 

여기서 내가 더욱 놀라게 되는 부분은 그들의 심리 구조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1943년의 저서니, 벌써 60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알고 있는 현대의 일본인들의 행동이나 그와 연관된 심리 구조가 이 책에서 밝혀진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오랫 동안 그리고 깊이 그들에게 작용을 하는지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화라는 것은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쩌면, 경제나 정치나 시대를 떠나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더 깊이 생각을 해 볼 문제다.

 

읽기 어려운 논문체의 문체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단점은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하는 논문체 문장에 있다.

논문체 문장의 발전은 학문의 발전과 연계성을 위해서 계발이 되었던 것일 것이다. 정해진 규격

에 의해 여러 가지 인용문들의 출처를 밝히고 일정한 규격의 문체를 이용하는 것은 학문의 성장

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서 이용된 일종의 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만들려는

경향 때문에 글 전체가 딱딱하게 되고 이로 인해 글을 읽기가 너무 힘들어 질 때가 있다.

따라서, 고백컨데, 한 주 간의 책읽기가 과히 쉽지가 않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자의 논

리를 따라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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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8.12.01 17:19:33 *.165.140.205


우주님~ 저 불가사리 입니당~ 방가방가~^^

을유출판사 국화와 칼 번역이 좀 거칠지 않던가요? 전 김윤식 교수라는 브랜드에 끌려서 읽다가 결국엔 다른 출판사 책 2권을 더샀고, 그것도 안되서 그냥 원서로 이해 안가는 부분을 읽었어요.. 결국, 이해 안가는 부분은 해결이 안되더라고요! 특히 <일본인의 생활패턴>부분이 말이죵~ 사실 이런 책은 일주일만에 읽으라고 하기엔 좀 막하는 느낌의 책이죠.

프로필 이미지
우주정복
2008.12.01 18:06:42 *.152.239.217

방가방가 불가사리님..요즘 사이트에 출동을 자주 하시는 군요...

불가사리님은 어려운 중에서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 보셨군요.
저는 게을러서 그냥 계속 읽고 땡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이해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급기야는 연구원 도중 읽은 책 중 최고로 이해가 안 가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사실 이 책의 명성 때문에 대학교 시절부터 읽으려 했으나..몇 번을 읽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요번에는 어쩔수 없이 읽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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