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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김상철 김정수 옮김
● 저자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새로운 안경’을 선사하겠다고 말한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자신감 넘치는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 책의 독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현재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면 놀라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마디. “일단 코드를 알게되면 어떤 사물도 예전처럼 보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자신감만큼이나 그의 책 ‘컬처코드’는 독특하다. ‘놀라운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워도 그의 의도대로 ‘새로운 안경’을 하나 갖게 된 기분이 든다.
저자는 숨겨져 있던 코드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 코드를 발견한 시기는 1970년대 초라고 한다. 파리에서 심리분석가로 활동하던 저자는 자폐아들을 치료하면서 특정 단어나 기억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폐아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탓에 효과적으로 학습을 할 수 없다’는 이론을 만든다. 여기서 이론의 핵심인 ‘각인’이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연구를 계속했다. 제네바대학교에서 특별 강연을 마친 뒤, 이 이론에 흥미를 느낀 네슬레로부터 프로젝트를 제안 받는다. 네슬레의 프로젝트는 전통차만 마시는 일본에 인스턴트커피를 판매하는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의 이론은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마케팅과 연결되는 실마리를 찾는다.
저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학, 심리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받았다. 정신분석학자이면서 문화인류학자이고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구루로 불린다. 순수학문과 실용부문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그는 학문적 연구결과를 경영이라는 부분에 적절히 적용하고 있다. 세상과 심리의 이면을 뚫어보는 통찰력을 책 ‘컬처코드’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현재 아키타이프 디스커버리 월드와이드(Archetype Discoveries Worldwide)의 회장으로서 세계 유명 기업들을 위해 '컬처코드'를 활용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포춘 100대 기업’ 중 50개 이상의 기업이 그에게 컨설팅을 받았다고 한다. ‘7 Secrets of Marketing in a Multi-Cultural World’ ‘Creative Communication’ 등의 저서가 있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 시작하는 글
컬처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자동차와 음식관계, 나라 등-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다. [18]
경험과 그에 따르는 감정이 결합되면 각인이 이루어지는데, 각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적용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인 콘라드 로렌츠였다. 일단 하나의 각인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우리의 사고 과정을 강하게 규정하고 미래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각인은 저마다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각각의 각인들이 결합되어 우리를 ‘정의(define)’한다. [19]
코드를 찾아내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 즉 “우리가 현대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코드를 이해하면 놀랍고 새로운 도구가 생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동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안경’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안경을 쓰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며 우리가 항상 의심해왔던 것이 사실임을 입증해준다. 즉 전세계 인류는 공통적인 인간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코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26]
나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 책의 독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현재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면 놀라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자유는 인간관계, 소유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바꿔놓을 것이며, 각자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생활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28]
1, 문화적 무의식의 발견
미국인은 자동차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이런 질문을 하면 여러 가지 답변을 듣게 된다. 그 중에는 최고의 안전성과 뛰어난 연비, 핸들링, 그리고 선회력 따위가 있다. 나는 이런 답은 하나도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컬처 코드의 첫 번째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사람들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행동은 일부러 속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할 때 감정이나 본능보다 지성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먼저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깊이 생각하고 검토해서 답변을 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해도 진실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진실이 아니다. [31]
우리는 자기 성찰을 할 때에도 대개 잠재의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행동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이 강력한 힘과 상호 작용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논리적으로 보임직한, 혹은 질문자가 기대함직한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답변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조정하는 무의식적인 힘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와 시장조사가 자주 판단을 그르치게 하거나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다. 또한 크라이슬러의 경영진이 지프 랭글러에 대해 그릇된 답변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여론조사나 시장조사는 사람들의 진심이 아닌 ‘말’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32]
나는 미국인이 자동차에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동차에서 무엇인가 독특한 것을 원했다. 자유를 원했고, 관능적인 경험을 원했다. 이러한 각인 발견 작업을 통해 탄생한 자동차가 피티 크루저이다. [34]
사람들의 일차적인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크라이슬러는 효율적이지만 따분한 세단형 자동차를 또 하나 생산했을 테고, 대중은 외면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크라이슬러는 사람들의 ‘진심’을 알아냄으로써 단순한 자동차가 아닌 하나의 ‘현상(phenomenon)’을 만들어낸 것이다. [36]
행동의 배후에 있는 참된 의미를 찾아내는 열쇠는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혈족관계를 연구하면서 자신은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관계, 즉 ‘사람들 사이의 공간’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조카가 없으면 삼촌도 없고, 남편이 없으면 아내도 없으며, 자녀가 없으면 어머니도 없다. 혈족관계는 구조다.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려면 행동 자체의 내용보다는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41]
이 다섯 가지 원칙은 우리에게 제3의 무의식이 작용함을 알려준다.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각자를 자신이 속한 문화에 의존하게 하는 이 제3의 무의식은 바로 ‘문화적 무의식’이다. 이러한 문화적 무의식은 또한 모든 문화에는 독자적인 정신적 경향이 있음을, 즉 프랑스인에게는 프랑스의 정신이 미국인에게는 미국의 정신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정신적 경향에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49]
2, 사랑과 유혹, 섹스에 대한 코드
반항기를 벗어나지 못한 미국은 미국으로 오는 이주민들을 맞이할 때 반항기에 집착하고 그것을 강화한다. 이주민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이다. 미국이로 온 것은 대단한 반항행위다. 미국의 혁명가들처럼 이들은 왕을 살해함으로써 ‘사명을 완수하는’ 대신 옛 문화를 버린다. 따라서 이들은 여전히 반항아로 남아 있으며, 새로운 청년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미국 문화 전체를 청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안경을 통해 미국 문화를 보면 미국이 전 세계에 코카콜라를 비롯해 나이키 신발, 패스트푸드, 블루진, 시끄럽고 폭력적인 영화 등 젊은이들을 위한 상품 판매에서 성공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54]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 인물들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음으로 영원한 젊은이이며, 열광적이고, 삶의 기복이 심하며, 한때는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순간에 완전히 버림을 받고, 항상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원하는 ‘영원한 젊은이’이다. [57]
그러나 청년기적 경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순수성의 상실일 것이다. 모든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상이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찬란하지 않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보통 새로운 성숙으로 이어지고 현실에 대처하는 새로운 수단을 얻게 해 준다. [63]
실제로 섹스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폭력(violence)이다. 이는 청년기적 문화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예다. 미국인은 섹스를 불안해하기 때문에 섹스를 쾌락의 정반대, 즉 고통과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미국 문화는 섹스보다 폭력을 훨씬 더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확실하다. 식탁에서 섹스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례하게 여기지만 전쟁이나 범죄 또는 최근에 나온 액션 영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한다. [81]
3, 아름다움과 비만에 대한 코드
여성의류회사인 빅토리아 시크릿이 크게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들에게 쉽게 줄타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덕분에 여자들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은밀한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성적이면서도 섹시하게 치장할 수 있게 되었다. 란제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도발적일 수 있게 해주는 안전한 의류다. 이 회사 이름은 그 자체로서 긴장을 암시하고 있다. ‘빅토리아’는 빅토리아시대의 엄격함과 억압을, ‘시크릿’은 비밀의 방 또는 성적 매력과 아름다움에 관한 금지된 표현을 암시한다. [89]
여자가 만자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각인시킬 수 있다면, 여자가 남자의 눈에 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면 그녀는 남자를 더 훌륭한 인물로 만들 수 있다. 그녀는 남자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남자를 발정한 동물에서 더욱 고상한 존재로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아름다움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남자의 구원(men's salvation)’이다. [94]
비만이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이처럼 비만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걸까? 비만은 문제가 아니고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비만이 문제라기보다 해결책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식은 성적인 학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방어기제다. 내가 면담했던 소녀가 비만이 된 까닭은 그렇게 돼야만 구역질나는 그 남자가 자신을 희롱하는 짓을 그만두게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대 어머니가 체중을 줄이도록 강요하자 소녀의 무의식은 다른 해결책을 찾아냈고 그것이 바로 피부병이었다. [100]
긴장은 늘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비만에 대해 뼈대가 크다거나 신진대사가 느리기 때문이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또한 ‘아랫배 군살’이라거나 참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따위의 구실을 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중과 씨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관계와-사랑하는 사람, 스스로의 역할, 생존 경쟁 등과-씨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비만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도피(checking out)’다. [105]
이러한 코드를 감안하면 미국 문화에 그토록 과체중이 많은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된다. 미국인은 무모한 스트레스를 자청하는 데 선수다. 초능력을 발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회사의 승진 사다리를 올라가야 하며, 할리퀸 연애소설에 나옴직한 멋진 관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끔찍한 몫이다. 실제로 이러한 욕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힘든 과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도피한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기보다 비만을 탓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106]
4, 건강과 웃음에 대한 코드
인간에게는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나 ‘올바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파충류 뇌다. 파충류 뇌는 대뇌피질, 대뇌변연계와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한다. 본능, 논리, 감정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는 것은 본능이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인간관계, 구매 결정, 심지어 지도자 선택의 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문화 역시 생존의 차원에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문화는 우리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데 필요한 일종의 생존수단이다. [114]
미국인에게 건강과 행복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 사명은 다국적기업을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지역정치에 참여하는 것, 혹은 산에 오르거나 가족을 위해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간에 거기에는 모두 ‘행동’이 따른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건강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건강과 행복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활동(MOVEMENT')이다. 이 코드가 제공하는 새 안경을 쓰고 보면 미국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정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인은 왜 자유로운 시간을 비워두지 못할까? 은퇴자들은 왜 다시 일을 시작할까? 왜 늙어서 운전면허가 취소되거나 휠체어에 앉게 되면 그토록 낙담할까? 그것에 대한 답은 건강에 대한 코드에 숨겨져 있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고 사회인으로서 여러 가지 자잘한 의무들도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골프, 뜨개질, 독서 등과 같은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끼고 더불어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매우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 은퇴를 한 뒤에 느끼는 상실감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121]
미국인에게 젊음은 인생의 한 단계가 아니라 가장할 수 있는 어떤 것, 실제 나이를 감출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젊음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가면(MASK)'이다. [134]
프랑스의 팬터마임 배우인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는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매우 재미있는 코미디를 공연한다. 공연을 시작한 지 1분쯤 지나 그가 가면을 벗으려 해도 가면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가면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웃음은 그의 얼굴에 계속 붙어 있다. 마침내 그는 털썩 주저앉아 자포자기하지만 인조 웃음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젊음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 가면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성형수술, 보톡스, 모발 이식 등은 우리에게 빛나는 젊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 대가가 비쌀 뿐더러 여러 가지 고통과 불안도 따른다. 젊은이를 위한 자동차와 젊은 의상은 우리와 실제로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흥미롭고 멋지지만, 단지 젊음에 대한 환상을 갖기 위해서 그것들을 이용한다면 사기꾼이 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코드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나는 정말 가면을 쓴 채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가? 가면을 벗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성숙을 받아들이고 탐구하기보다 계속해서 젊음에 매달림으로써 무엇인가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답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가면을 씀으로써 우리는 거울에 비친 새로운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이다. [138]
5. 가정과 저녁식사에 대한 코드
가정은 미국 문화에서 대단히 강력한 원형이다. 가장 성스럽고 독특한 의식의 하나인 추수감사절 만찬은 전적으로 귀향과 관련이 있다. 만찬은 대개 어머니의 집에서 이루어지며, 어머니가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어도, 그리고 자손이 그 집에 산 적이 없었어도 그곳은 가정을 상징한다. 추수감사절 만찬을 위해 함께 모일 때 우리는 가정과 다시 연결되고, 인생에서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확인한다. 군대가 전선으로 떠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애초부터 격려의 목적은 “우리 군인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가장 끈질기고 강력한 이미지는 군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다. 사실(최근의 이라크 전쟁으로 강화되었지만)우리의 감정으로는, 전쟁 중에 어떤 성과를 달성했든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전쟁에서 진정으로 승리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국의 국민적 오락인 야구에서도 나타난다. 이 미국적인 스포츠에 세 개의 루와 하나의 본루(home plate)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인에게 가정은 강력한 보편적 이미지이며, 야구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야구에서 점수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144]
미국인들이 가정에 이토록 중요한 의미를 두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이 나라에 와서 새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세웠다. 그들이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집도, 도로도, 가정도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든, 돈 때문이든, 아니면 식량 때문이든, 그들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에 이어 물밀 듯이 들어온 이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얻기 위해 기존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익숙한 생활을 모두 버리고 미국으로 왔다. 이런 과정에서 가정은 그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이 이루어낸 문화 전체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47]
가정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접두사 ‘재(RE-)'이다. 가정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접두사 '재(re-)'로 시작되는 단어를 떠올린다. 귀가(return,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소녀의 경우처럼), 재회(reunite, 대학을 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청년처럼), 재결합(reconnect, 일주일 동안있었던 일을 서로 나누는 가족처럼,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과 대화를 나누는 여인처럼), 재확인(reconfirm, 야구시합 때 가족들이 관중석에 와 있는지 확인하는 소년처럼), 새롭게 하다(renew, 가족과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동얀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여인처럼)와 같은 단어들이 그런 예다. 이런 단어들은 가정의 의미에 관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가정은 어떤 일을 되풀이할 수 있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외부 세계와 달리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장소다. 가정은 어떤 일을 반복하면 의미가 더해지는 장소다. 이것이 미국 문화에서 귀향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고, 군대나 위험에 처한 우주비행사들을 귀환시키는 일을 생각할 때 그토록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그들이 가장 소중한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다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151]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직장에 나갔다가도 저녁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 진정으로 가정에 되돌아온 느낌을 갖게 된다. 저녁식사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필연적인 순환(ESSENTIAL CIRCLE)'이다. 이러한 순환의 개념은 미국 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가정에서는 식탁 한가운데에 음식이 담긴 큰 접시들을 차려 놓는 것이 관습이다(식탁은 직사각형이지만 원형의 느낌을 준다). 상차림이 끝나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식구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접시들을 죽 돌린다. 또한 저녁식사는 하루의 순환을 마무리하는 행사다.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집을 나선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전투를 벌인다. 그러다가 다시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가족에게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의 순환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164]
6. 직업과 돈에 대한 코드
내 유럽 친구들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만큼 충분한 돈을 번 뒤에도 계속 열심히 일하는 나를 보고 대부분 당혹스러워한다. 그들은 내가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일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유럽인들은 보통 해마다 6주간의 휴가를 보낸다. 미국에서는 2주가 일반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휴가 때 일을 가져가기도 하고, 경력을 쌓는 동안에는 휴가 없이 몇 년을 지내기도 한다. 이는 미국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때부터 있어온 노동에 대한 미국인의 접근 방식이다. 미국의 조상들이 이 대륙으로 건너와 처음 광대한 미개척지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차나 한잔 해야지.”가 아니라 “일을 시작해야지.”였다. 그들은 ‘신세계“를 창조해내야 했고, 신세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을을 건설하고 서부를 개척해야 했으며 대담한 정치적 실험의 기초를 다져야 했다. 그때는 실제로 한가할 겨를이 없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조차 늘 자신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들은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 일한다. [171]
각인 발견 작업의 참가자들은 첫번째 시간에 이야 기한 내용을 세번째 시간에 전부 뒤집어버렸다. 미국인들에게 직업이란 단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일에는 훨씬 강력한 차원, 즉 삶을 규정하는 차원이 있었다. 직업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정체성(WHO YOU ARE)이다.
코드라는 새 안경을 쓰면 “직업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사람이 직업을 통해 하는 일이 곧 그 사람임을 굳게 믿고 있다.
실직한 사람들은 왜 자주 우울증에 빠질까? 청구서를 지불할 방법이 없어서일까? 그것도 하나의 분명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할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자신의 존재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다. [175]
미국인이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직업과 정체성을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지위가 높아지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가 ‘활동’이고, 이것이 직업적인 건강에까지 연장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들은 30년 동안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준다면 만족한다. 계속 일하지 않으면 자신을 ‘판에 박힌 생활을 하거나’, ‘아무런 목표도 없는’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조립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거나 누군가 시키는 보잘것없는 일들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178]
미국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없다. 미국의 부 가운데 대부분은 원래 그 부를 이룬 사람의 소유로 되어 있다. 미국문화는 ‘자수성가한’사람들로 가득하며 부와 관련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출발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모두가 가난뱅이로 출발한 셈이다. 미국인의 조상들은 무일푼으로 미국에 와서 자녀들을 위해 좀더 나은 생활을 일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떤 사람은 비상한 방법으로 금방 성공했지만, 어떤 사람은 다음 세대를 위해 상황을 조금 개선하는 정도로 그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무(無)에서 일구어냈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183]
미국 문화에는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귀족 칭호가 없다. 그런 칭호가 없다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각인 발견 작업의 참가자들은 세번째 시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것이 바로 돈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돈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증거(PROOF)’다.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미국인들조차 돈에 관한 미국인의 태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만, 막상 돈에 대한 코드를 알게 되면 미국인에게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미국인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며 참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돈에 의지한다. 그들은 아무리 큰 업적을 쌓아도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받았던 공로훈장이나 남작 작위를 받을 수 없다. 미국인에게 영예는 상대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야만 자신의 업적을 입증할 수 있다. 돈은 성공의 척도다. 사람들은 급료를 적게 받는 것은 곧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돈은 채점표다. 누군가가 여러분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더 나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게 되면 그 일도 그 일을 한 사람도 인정을 받게 된다. [186]
프랑스의 우아한 만찬회에서 오고가는 대화 주제는 대개 섹스다. 프랑스인들은 손님을 접대하면서 성교의 체위와 상대가 여럿인 성생활, 여성의 다양한 속옷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돈을 주제로 삼는 것은 천박하게 여기며, 누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또는 어떤 물건을 얼마에 샀는지 따위는 묻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미국에서는 저녁식사 시간에 섹스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질겁하지만, 돈 이야기라면 밤새도록 해도 괜찮다. 이렇듯 코드가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다. 미국인은 훌륭함과 금전적인 성공은 연관성이 없으며, 속임수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결국 정신적인 면과 재정적인 면에서 모두 응분의 대가를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것이 바로 자선과 기부에 관한 미국인들의 태도다. 세상을 떠날 때는 맨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늘나라에는 재산이나 돈을 지니고 갈 수 없으므로 미국인들은 (곧 세상을 떠날 사람이 아니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돈을 기부하곤 한다. 여러 가지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191]
7. 음식과 술에 대한 코드
음식의 맛과 감촉, 풍미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 한 명이라면, 쾌락보다는 단지 필요하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우는 행위를 이야기한 사람은 스무 명이나 되었다. 이러한 답변들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난 메시지는 몸은 기계이며 음식의 기능은 그 기계를 계속 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음식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연료(FUEL)”다. 미국인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배가 찼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의식적으로 음식j먹는 것을 연료 공급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218]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인은 연료의 품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건강에 관한 많은 경고가 있지만 미국인은 패스트푸드를 즐긴다. 에릭 슐로서(Eric Schlosser)는 자신의 저서인 <패스트푸드의 제국Fast Food Nation>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인들은 지금 고등교육이나 개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또는 새 자동차보다 패스트푸드에 더 많은 돈을 쓴다. 그리고 영화와 책, 잡지, 신문, 비디오, 음반 등을 전부 합친 것보다 패스트푸드에 쓰는 돈이 더 많다. 1970년대에 미국인들이 패스트푸드에 소비한 돈은 약 6억 달러였고, 작년에는 100억 달러가 넘었다.” [219]
어릴 때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고 “술은 몸에 나쁘다.”는 사실밖에는 배운 것이 별로 없는 미국인들은 결국 반항기에 술을 각인하게 된다. 그들은 술을 마실 기회가 생기면(보통 미성년일 때가 많은데, 자신이 어떤 금기를 깨고 있다는 기분에 들뜨게 된다). 술이 주는 쾌감이나 신비로움, 음식 맛을 돋우는 역할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취하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만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술의 맛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취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뿐이다. 게다가 부모가 술 마시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술에 취하는 것은 곧 반항을 의미하기도 한다. [224]
이러한 이야기들을 분석한 결과 술은 삶을 변모시키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함께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에게 술은 참혹한 기분이 들게 하고, 죽을 것 같게 만들고, 곧 몸에 변화가 오게 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하고, 근심을 잊게 하고, 용기를 되찾게 해주는 멋진 약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술은 연료 이상이며, 매우강력하고 즉각적이며 극단적인 무엇이다. 술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권총(GUN)이다. [228]
앞에서 우리는 광고업자들이 성적인 환상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 제품 판매에 성공하는지를 살펴본 바 있다. 그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미국이 폭력적인 환상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섹스를 파는 주류광고의 확산은 제품과 섹스, 폭력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완성시켰다. 성적인 이미지는 무의식적인 폭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술에 대한 코드에 부합하는 제품 광고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폭력적인 메시지를 심기도 한다. [230]
8. 쇼핑과 사치품에 대한 코드
쇼핑은 즐겁고 신나는 모험이며,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훨씬 넘어서 여러 가지 점에서 교훈적이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쇼핑은 정서적이고 보람 있는, 꼭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쇼핑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세상과의 재결합(RECONNECTING WITH LIFE)’이다. 이것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는 명분 위에 있는 진정한 메시지다. 그렇다. 사람들은 물건이 필요해서 쇼핑을 하지만, 쇼핑은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경험이다. 가정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쇼핑은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텔레비전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사 ㅡ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유행 등ㅡ를 배우는 방법이다. 쇼핑하러 가면 온 세상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코드는 미국 문화의 청년기적 요소와 관련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밖에 나가 놀고’ 싶어 한다. 집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세상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인생에 관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쇼핑에 대한 코드는 신화적인 국력을 이룩한 미국 문화 초기 시절의 이미지에도 나타난다. 서부개척 시절에 여성들은 농가에서 집안 살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들은 식품 등을 사러 읍으로 나가야만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쇼핑은 세상과 재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이다. [238]
여러 가지 점에서 이 코드는 돈에 대한 코드의 연장이다. 군대 계급장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어깨에 다는 일종의 증거물이다. 두 코드가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유는 사치품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이라는 ‘증거’를 얻으면 이를 과시하기 위해 사치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급장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로 그것은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많은 돈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훌륭함이 인정받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무의식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성공하며, 그 성공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은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다. [248]
9. 미국 대통령에 대한 코드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은 ‘최고의 연예인’이라는 의식이 있다. 대통령의 일차적 임무는 국민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며, 계속 생산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원형에 깊이 공감하는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연예인이다. [283]
10. 미국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
그렇다면 미국인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인은 스스로를 ‘새롭다(new)'고 생각한다. 물론 청년기에 속한 미국인은 새로울 것이다. 미국에는 숲과 대협곡을 빼면 오래된 것이 없다. 미국인은 늘 무엇인가를 건설하고 갱신하며, 보존하는 것보다는 부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미국의 지명도 이를 반영한다. 뉴욕에서 차를 타고 뉴잉글랜드로 가면, 거기서 뉴헤이번과 뉴런던, 뉴턴을 지나 뉴햄프셔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남쪽으로 가면 뉴호프와 뉴베리, 뉴윙턴을 거쳐 뉴올리언스에 이른다. [286]
미국에 대한 미국인의 문화 코드는 ‘꿈(DREAM)’이다. 꿈은 맨 처음부터 미국 문화를 움직여온 동력이었다. 신세계를 발견한 탐험가들의 꿈, 서부를 개발한 개척자들의 꿈, 새로운 연합 국가를 상상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꿈,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기업가들의 꿈, 희망의 땅을 찾아온 이주민들의 꿈, 달에 안착한 새로운 탐험가들의 꿈 등 미국 헌법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꿈의 표현이다. 미국은 할리우드와 디즈니랜드, 인터넷을 만들어 미국인들의 꿈을 전세계에 전파했다. 미국은 꿈의 산물이고 꿈의 창조자다. [291]
● 내가 저자라면
서점에 가서 책이 잔뜩 쌓여 있는 진열대 앞에 선다. 눈을 감고 책을 집어 든다. 책을 펼쳐본다. 이번엔 다른 책을 집어 든다. 다시 펼쳐본다. 이 과정을 몇 번 하고나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게 한 가지 있다. 종이의 질이 무척 좋다는 것이다. 미색의 깔끔한 색상에 만져보면 매끈하고 부드럽다. 컬러 그림이 중간 중간 게재되는 책은 물론 그 이상의 지질(紙質)을 자랑한다. 외국서적 코너로 자리를 옮겨 보자. 많은 책의 지질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색깔은 재생지 비슷한 옅은 회색에 가깝고 만져보면 표면이 거칠다. 특징적인 것은 무척 가볍다는 것. 책이라는 같은 상품을 만드는데 한국에서 만드는 책들은 깔끔하고 매끈한 종이로 만들고 외국에서는 칙칙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종이로 만든다. 이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선호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 소비자들은 책을 고를 때 종이가 하얀 것을 좋아한다. 종이가 매끈하고 촉감이 좋을수록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디자인 문제도 무시하기 힘들다. 디자인은 책의 내용에 따라 많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초점은 세련됨이다. 하얀 종이, 매끈하고 촉감이 좋은 종이, 디자인의 문제 등은 하나의 귀착점을 갖는다. ‘고급스러움’ 이다.
고급스러움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정서 덕분 한국의 책은 하얗고 매끈하고 무거워진다. 출판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급지는 일본 출판시장의 영향이라고 한다. 고급 백상지를 선호하는 일본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하얗고 매끄럽고 촉감이 좋은 종이에는 돌가루가 들어간다. 어떤 돌가루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종이의 질의 크게 달라진다. 사전이나 성경책처럼 얇으면서도 뒷면이 잘 비치지 않는 종이를 만들려면 ‘이산화티탄’이라는 값이 비싼 돌가루를 넣는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프린터용 종이에는 ‘활석’이라는 돌가루를 넣어 울퉁불퉁한 종이의 표면을 평평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책을 만들때 쓰는 종이는 ‘미색모조’를 사용한다. 백상지라고도 불리는 모조지는 제지가공라인에서 종이의 수분만을 제거하고 건조한 후 종이에 코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생산되는 종이를 말한다. 화학펄프에서 만들어지는데, 화학펄프는 원목을 가공한 것이다. 기계펄프에서 만들어지는 ‘이라이트紙’도 있는데 기계펄프는 나무의 부스러기들을 활용해서 만든다. 모조지보다는 덜 환경파괴적이다. 재생펄프를 사용하는 ‘그린라이트紙’도 있다. 덜 환경파괴적이고 가벼운 종이가 있음에도 한국시장에서의 책 만들기는 아직도 그쪽을 선택하는데 머뭇거린다. 고급지와 무거운 책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선호도 때문이라는 게 출판업자들의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돌가루를 섞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책의 컬처코드는 무엇일까. 똑같은 내용의 책이라도 재생지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세련되지 않게 하면 판매가 줄어드는 시장의 반응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가전제품이나 패션아이템처럼 디자인이나 기능이 별 의미가 없는 책의 선택에 있어서도 겉모양이 중요한 요인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얼까. 책에 대한 한국인의 컬처코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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