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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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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07시 30분 등록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 오인석, 을유문화사

 

 

1. 저자 소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18871948)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베네딕트는 두 살 때 열병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홀로 된 어머니는 베네딕트와 동생을 돌볼 수 있는 시골의 친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시골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란 베네딕트는 열병을 앓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어버렸다. 거기에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딸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그 영향으로 베네딕트는 심한 조울증을 앓았다. 조울증은 긴 시간 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

1905년 베네딕트는 미국의 명문 여자대학인 배서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녀의 필명은 앤 싱글턴이었다. 그녀는 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인생에 두려움을 느끼는가하는 의문에 시달렸고, 삶은 어두웠다. 1913년 스탠리 베네딕트라는 젊은 생화학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삶의 변화가 있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번민의 삶이 이어졌다. ‘열정적인 이상과 일치하는 생활방식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느끼던 때에 우연한 기회에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었다. 이 일로 진로를 바꾼 그녀는 1921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프란츠 보아스 교수를 만나 본격적으로 인류학이란 학문에 빠져들었다. 

보아스는 인류학의 고전 <인종, 언어, 문화 Race, Language, and Culture, 1940>의 저자이자, 1942년 사망할 때까지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와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녀의 절대적인 스승이었다. 그는 미국 인류학의 시조(始祖)라고 일컬어진다. 독일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물리학과 지리학을 공부하였지만 1883-1884년 북극해의 배핀섬 원정에 참가하여 에스키모를 조사한 뒤에는 인류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얼마 후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되어 인류학을 강의하였고,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관한 집약적 현지 조사를 통해 많은 업적을 올렸다. 그는 역사주의적인 입장을 중시하면서 문화를 통합적 전체로 고찰하였다. 문화영역 ·주변영역 ·부족유형 등의 개념을 창시하고 뒷날 기능주의적 연구를 위한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기존 인류학의 주류를 이루던 고고학적인 형질인류학의 진화론적 도식을 타파하고 특수 문화 조사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항상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에 민감했던 베네딕트는 초기, 스승의 영향을 받아 미국 인디언의 여러 부족을 주로 연구했다.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의 인류학과 교수가 되었다. 난청에다 동성애자였던 그녀는 함께 연구했던 후배이자 동료인 15살 연하의 마가렛 미드와 남다른 우정을 나누었다. 둘다 보아스 교수의 제자였으며 인류학에 많은 공헌을 했다.

 

1934년에는 남태평양의 미개한 세 개의 부족을 직접 면담하고 관찰하여 <문화의 패턴>이라는 인류학의 명저를 출간했다. 당시 문화라는 말은 인류학을 연구하는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불리는 전문 용어였다. <문화의 패턴>에서 베네딕트는문화란 관습과 가치들이 지배적인 성격의 유형에 따라 역사적으로 선택된 결과이며그것들은 선진국, 후진국과는 상관없이 인류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신들의 고유 생활에 따라 발전시켜온 것이라 주장하며 상대적 문화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녀는 <생활의 패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도 사람처럼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사고와 행위의 유형이다. 각 문화는 특징적인 목적을 가지며, 그 문화에서 이질적인 행위들도 점차 일관성이 있는 형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행위의 유형은 그 사회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주요 동기들을 이해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그녀의 학문적 입장은 인류학과 심리학을 결합하여, 인간의 사상, 행동을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는 '문화 양식론'으로 대표된다.

 

그녀의 주요 저서로는 상기한 <문화의 패턴> 외에도 <주니족 신화>(1935),<인종: 과학과 정치>(1940),<타이의 문화와 행동>(1943) 등이 있다. 1946년 만년의 역작인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은 그녀에게 전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일본을 연구할 때 그녀는 자신이 아웃사이더로서 차별 받은 경험을 되살려 편견을 배제하는 문제를 특히 의식했다. 그녀는 생전에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국화와 칼>은 미 국무부의 요청을 받아 미국에 사는 일본인 면담과 방대한 자료 조사만으로 씌어졌다. 그럼에도 7세기에서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계층적 위계질서 의식, 하지()와 명예 관념, 기리(義理), 닌죠(仁情), () 개념 등을 명확하게 분석해낸 이 책은 차후 일본 문화 분석에서 기본적인 준거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뛰어난 일본 연구서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하여

 

이 저서의 저자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서는 그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문화의 틀(구조)을 탐구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매우 전문적이다. 여기서 전문적이라 함은 단순한 일본 기행이나 견문기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의 학문적 노작이라는 뜻이다. 대체로 부분적 체험은 전체를 망쳐놓기 쉬운 법이다.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에 대한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때 어떤 질서와 충동을 일으키는가의 고찰은 제3장 메이지 유신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 6월 미국무성의 위촉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 학문의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더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한다. 이 저서가 허다한 기행문이나 그에 준하는 허다한 저널리스틱한 일본 인상기와 구별되는 까닭도 여기 있으리라." (역자 서문에서 발췌)

 

 

2. 마음에 들어온 글귀

 

 

역자 서문

4.
이 저서는국화이라는 두 가지 상징의 극단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는 그 부제가 표시하듯 일본 문호의 틀의 탐구인 것이다. 그것은 문화 인류학이라는,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학문의 방법론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매우 전문적인 것이다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平均的日本人:average Japanese)의 행동과 사고(思考)의 틀(:Pattern)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하지(:수치 부끄러움)’에의 인식에 놓인 문화다.

 

5.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부분적 체험은 전체적인 방법론을 망쳐 놓기 쉬운 것이다.

1장 연구 과제 - 일본

10.
일본인은 미국이 여태껏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중에서 가장 낯선 적이었다. 대국을 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이처럼 현격히 이질적인 행동과 사상의 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수 없는 필연성에 직면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문호가 개방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씌어진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바 없을 정도의 기괴하기니 짝이 없는그러나 또한(but also)'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11.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菊花)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쓸 경우, 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武士)에게 최고의 예의를 돌린다는 사실을 기술한 또 다른 책에 의해 그것을 보충하는 그러한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는가 하면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또한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르게 될 때는 범죄의 유혹에 지고 만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

13-14.
우리는 일본인의 사상·감정의 습관과, 그러한 습관에 잠긴 문화의 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행동이나 의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행동할 때의 전제(前提)를 잠깐 옆에 제쳐놓고, 될 수 있는 한, 어떤 주어진 상황 아래서 일본인이 취하는 행동은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정하는 안이한 결론으로 비약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

14.
전쟁 중에는, 적을 나쁘다고 철저하게 깎아내리는 일은 용이하지만,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가를 적 자신의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문제는 일본인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에 있었지, 만일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있지 않았다.

 

14. 나는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로 바라보아야 했다.

16.
일본인도 실로 놀랄 만큼 기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많은 동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기록해두려고 하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일본에 관해 쓰는 일본인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를, 그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흔하며 보이지 않게 때문에 빠뜨려 버린다. 미국인이 미국에 관해 쓸 경우도 마찬가지다.


21.
어떤 문명국에도 인간의 행동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것이 인류학자의 전제다또한 나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고립된 어떠한 행동도 서로 어떤 체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23.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25.
마음이 강한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함이 없이도 미국이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이 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

26.
문화의 비교 연구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활 양식을 세계에서 유일한 해결법으로 믿고 그것의 방어에만 급급해하는 한 도저히 번영될 수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생활 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자가 자신의 문화를 보다 깊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즐겁고도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

28.
타국을 이해하려 할 때는, 그 나라 사람들의 습관이나 가정에 관한 질적 연구를 조직적으로 행한 연후에야 비로소 여론 조사를 유효하게 이용할 수가 있게 된다.

 

30. 나는 일본인과 처음 작업을 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어구나 관념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불교적인 것도,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2장 전쟁중의 일본인

32.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일본은 계층제도(階層制度: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3.
일본은 정신력은 반드시 물질력을 이긴다고 부르짖었다이 전쟁은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에 대한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에 대한 신앙과의 싸움이다
.

39. “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
.”
->
해군 대신의 의회 연설 속에 인용한 1870년대의 위대한 무사 사이고 다카모리의 유훈


41.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방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42.
그들이 시종 입에 올린 문구는, “세계의 눈이 우리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인은 충분히 일본 정신을 발휘해야 했다그들에게 그런 행동이 세계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였다
.

44.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천황에 대한 모욕적인 말이나 공공연한 공격만큼 일본인을 노엽게 하고 그들의 전의를 선동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인본에서 산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일본인의 천황 숭배는 나치스 당의 성쇠를 점치는 척도이며 파시즘적인 계획의 모든 악과 결부된 하일 히틀러(Heil Hitler) 숭배와는 함께 논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

45.
천황은 모든 사람에게 전부였다.

 

46. 천황은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50.
천황의 최고 지상의 지위는 거의 근년(메이지 유신과 함께)에 형성된 것임에도 천황이 신성불가침의 지휘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인의 어떤 성격 때문일까?...반물질주의적 편향에서부터 천황에 대한 태도에 이르는, 전쟁 중의 일본인의 행동에 관한 이러한 모든 중요한 문제는, 전선에서뿐만 아니라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관련된 문제였다
.

49.
일본인의 병력 소모의 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이르게 한 것은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 일본인에게 있어 명예란, 즉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죽음 자체가 정신의 승리다)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된다
.

57.
일본인의 행동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take one’s proper station)

59.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 가족, 종교, 경제생활 등과 같은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 있다.

 

60. 일본인의 국내 문제를 계층제도의 견지에서 바라보아 왔지만, 국제관계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아왔다.

64.
계층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일본은 근래 두드러지게서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46년 당시를 두드러지게 서구화되었다고 표현한다면 최근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온 일본이나 한국의 문화 지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귀족사회이다.

 

65. 같은 두 사람 사이에도 처지가 변하면 그것에 알맞은 존경이 요구된다.

 

66.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 생활의 근간인 것이다.

70.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대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된다. 일본인은 극단적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이런 일이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들의물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

74.
일본은 일본 역사 전체 기간을 통해 현저한 계급카스트적 사회였다.

 

76. 세계사에서 주권 국가에 의한 계획적인 문명수입이 일본 만큼 훌륭하게 수행된 예는 찾기어렵다.

 

80. 상인 계급은 천민 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이 사실은, 미국인에겐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봉건 사회에 있어서는 매우 실정에 맞는 일이었다. 상인 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가 쇠퇴한다.

81.
안정된 봉건 제도에 알맞은 무사와 농민 두 계급을 고정된 형식으로 동결했다. 히데요시는 농민으로부터 무기를 압수하였고, 사무라이게만 칼을 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사무라이는 더 이상 농민이나 공인이나 상인을 겸할 수 없게 된 것이다그는 생산자가 될 수 없도록 법률로 금지되었다.


83.
도쿠카와 시대의 사무라이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무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점차로 그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고전극이나 다도 같은 평화로운 예능의 전문가가 되어갔다농민은 그가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것, 즉 토지의 영구 경작권을 가졌다.

 

89. 천황이 정치적으로 무력하였고 이른바 대원수의 국사범 같은 존재였을 때에도 일본인의 정의에 따르면 계층제도에 훌륭하게 알맞은 위치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90-91. 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 시대의 일본 계층 제도는 근대 일본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91. 일본인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 그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미리 규정되어 있어서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 세계 속에서 생활하도록 조건지워졌다…93. 그리고 그 지도는 사람이 규칙에 따르는 한 반드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4장 메이지 유신

97.
일본의 근대화 초기의 절규는 손노조이(尊王攘夷), 천황을 복벽하고 이적을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국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는 것과 함께, 또 천황과 쇼군의이중 통치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

 

99. (이처럼 철저하고 급진적인)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정부는 누구였을까. 그것은 특수한 일본의 여러 제도가 이미 봉건 시대부터 육성해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계급의 특수한 연합세력이었다.

 

100.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하였다. 이들은 왕제복고를 계층제의 정점에 두고 쇼군을 제거함으로써 계층적 질서를 단순화시켰다.

103.
허버트 스펜서(영국 철학자, 사회학자)는 계층제에 대해 일본의 전통적 조직이야말로 국민 복지의 비할 바 없는 기초이기 때문에, 이것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소중히 지켜 나가야 한다고 썼다. 윗사람에 대한 전통적 의무, 특히 천황에 대한 전통적 의무는 일본의 큰 장점이다
.

110. ‘
모든 것을 그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

110.
메이지 정치가들은 종교분야에서 정치에 비해 훨씬 기묘한 형식적 제도를 만들어 냈다. 국가는, 특히 국민적 통일과 우월의 상징을 선양시키는 종교는 국가 관할에 속하게 하고 다른 모든 종교는 개인 신앙의 자유에 맡겼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 바로 국가 신토이다.  


114.
메이지 정치가들은 정치에서는 국가의 기능이 미치는 영역을, 종교에서는 국가 신토의 영역을 신중히 구획하였다.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124. 서구인이 조상숭배라 부르는 것은 동양인에게는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체에 대해 인간이 지니고 있는 큰 채무를 인정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124. 더구나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에 있어서의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 그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점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소중히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단순한 사실 자체까지도 모두 세상 덕이기 때문이다.

124. ()는 조상과 동시대인이 함께 포함되는 거대한 채무의 망상조직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데 있다.

 

125. ()의 여러가지 용법 전부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 온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 대하여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 입힌 사람을 온진(恩人)이라 부른다.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할 수 없을 만큼의 타고난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6장 만분의 일의 은혜갚음

143.
온은 부채이기 때문에 갚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은은, 온과 아주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45.
일본인의 의무 및 반대 의무 일람표

1.
() :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 사람이 온을 받는다. 또는 온을 입는다. 즉 온이란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경우의 의무이다.

자기가 누구에게서 온을 받았을 때 자기에게 온을 주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온진(恩人)이 된다
.

2.
온의 반대 의무 : 사람은 온진에게 이들 부채를 갚는다또는 이들의무를 갚는다.’, 즉 이것은 적극적인 갚음이란 견지에서 본 경우의 위무이다
.

A
기무(義務) :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한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이다. ()=천황·법률·일본국에 대한 의무/()=양친 또는 조상에 대한 의무/님무(義務=자기의 일에 대한 임무
)
B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 갚으면 되고, 또한 시간적으로 제한된 부채

세상에 대한 기리 /이름에 대한 기리


153. 일본의 조상숭배는 최근의 조상에 한정되어 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조상의 묘석은 치워버린다그들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 있는 자에게 집중한다.


155. ‘
()를 다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정 내에서 자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의무와 채무의 갚음이며, 연장자가 중요한 책임을 맡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책임 가운데 하나는 아랫사람에게 필요한 희생을 반드시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157.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와 지도자들은 구중 구름 속에 깊숙히 은거하던 천황에게 주를 바쳐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1세기에 걸쳐 도쿠가와 바쿠후와 싸웠다. 메이지 유신은 이 존왕파의 승리였다. 그리하여 1866년은 주를 쇼군으로부터 상징적 천황에게 전환시킨 해이다.   

 

158. 정말 큰 이변이 일어난 것은 정신적 영역이었다. 주는 최고 사제이며 일본의 통일과 무궁함의 상징인 신성한 수장 곧 천황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지불해야하는 의무가 되었다.

162.
일본인은 미국인을 준법 정신이 결여된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미국인은 일본인을 민주주의의 관념이 결여된 굴종적인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는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

163. 일본을 분석하던 미국은 주를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163.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 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이적을 격퇴키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164.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일본인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지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 대신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

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165.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기리(義理)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義務)를 갚아야하는 것처럼 기리를 갚아야한다.

166.
기리는 일본이 중국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167.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 수행이라고 느껴지는 반면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74. 일본인은 가끔나는 기리 때문에 기()를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는 기리의 규칙은 이웃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인은 사람들이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치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 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을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 불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8장 오명(汚名)을 씻는다

179.
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에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183.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 즉 자제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183-184. 어린 새는 먹을 찾아 울지만 사무라이는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속담

187. 모든 종류의 직업상 채무에도 이름에 대한 기리가 수반된다. 특별한 사정에 의하여 누군가가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일본인은 때때로 엄청난 요구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화재가 발생해-화재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지만-모든 교실에 걸려 있는 천황의 사진이 타 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자살한 교장이 많이 있다. 이 사진을 구해내기 위하여 불타는 학교 건물로 뛰어들다 타 죽은 교사들도 많다.

189. 우리는 경쟁을 '좋은 일'로 생각하고 크게 의지한다. 심리 테스트는 경쟁이 우리를 자극시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극이 있는 경우는 작업 능력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혼자서 일을 할 때에는, 경쟁자가 있는 경우 만큼의 성적을 올릴 수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테스트 결과는 그 반대의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195. 일본인은 분명히 예의바른 국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은 비방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욕을 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유희 같은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일본인이 왜 아무것도 아닌 말을 그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97. 고의적인 불성실이 아니고서야 죄없는 인간을 조소할 수 없다. 살인자는 타인이 육체를 살해한 자이고, 조소자는 타인의 혼과 마음을 살해한 자이다.- 마키노 요시오 <자서전>에서

198. 비방에 대한 유일한 반응은 복수다. ..복수는 누구에게나 모욕이나 패배를 당했을 경우에는 바람직한 대응으로, 일본의 전통 속에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9.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당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201. 기리가 단순히 충성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배반을 명령하는 덕이라는 점을 간과한다자신이 잘못한 경우에 옳았던 인간에 대해 복수하는 일, 설령 상대가 자기의 주군이더라도 모욕에는 복수한다는 것은 일본문학의 가장 상투적인 주제다.

205. 미국인이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206.
근대에는 자살은 죽음의 선택이다. 사람은 때때로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대신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행한다. 봉건 시대에는 용기와 결단의 최후 표명이었던 자살 행위가 오늘날은 스스로 선택한 자기 파멸이 되었다.

9장 인정의 세계

217.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218. 219.
일본인이 가장 즐기는 소박한 육체적 쾌락은 온욕이다. ..일본인은 목욕하는 동안 나이 보아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218. 미국인은 쾌락을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람이 관능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별로 배울 필요가 없는 이미 알고 있는 유혹을 극복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쾌락을 의무와 마찬가지로 배운다.

222. 어째서 일부 병사라도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까. 놈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줄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잠을 자지 않는 훈련을 하는 일입니다.

224. 정사는 일본인이 즐겨 일고 또 화제에 올리는 테마다.

223.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는 단식은 얼마나 달 단련이 되어있는가를 아는 특별한 감별법이다.

225. 일본인들은 아내에 속한 영역과 성적 향락을 위한 영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한다.

226. 일본인은 미국인처럼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이상을 내걸지 않는다.

227. 중국에서 전통적 관습으로 굳어진 일부다처제는 전혀 일본적인 것이 아니다첩을 둘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상류계급에 한정되어 있으나 대개의 남자는 한 번 쯤은 게이샤나 창부와 즐긴 경험을 가지고 있다. 

229. 동성애 또한 전통적인 인정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성인남자는 소년을 상대로 선택한다.

229.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 데 그 경계선은 우리들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230. 자위는 일본인이 전혀 죄악이라고 느끼지 않는 향락이다술에 취하는 것 또한 용서받을 수 있는 인정의 하나다. 음주는 정상적인 인간이 향유하는 마땅한 쾌락이다.

231.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31.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온화한영혼과거칠은영혼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온화해야 할 경우와거칠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231. 그들의 신들도 마찬가지로 현저하게 선악의 성질을 겸비하고 있다.

233.
일본에서는 인간의 성질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나쁜 반절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따라 알맞은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더럽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용이하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질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234. 악은 인간의 마음에 원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235. 일본인의 견해를 반영하듯 일본의 소설이나 연극은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이 드물다. 미국의 일반 관중들은 해결을 열망하며..극중 인물이 덕행의 보답을 받기를 바란다.

235. 해피 엔드로 끝날 필요는 없다. 주인공의 괴로움은 그들에게 내려진 신의 심판이 아니다. 어떤 불행이 닥쳐도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인 관중에게는 화면에 나타나는 인물이 모두 전력을 다해 은혜를 갚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10장 덕의 딜레마

239.
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기리, 진 닌조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의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240.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라든지 불친절하다든지 하고 비난하는 대신에 일본인은 그 사람이 위반한 법도의 특정 영역을 명시한다. 그들은 지상 명령이나 황금률에 호소하지 않는다.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그 행동이 나타나는 세계와 상대적이다.

240. 우리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그 인품에 맞게 행동한다. 우리들은 충실한지 불충실한지, 협력적인지 고집이 센지 등으로, 양과 염소를 구별한다.

242.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 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243.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을 갈지 않고 있으면 녹이 슬게 된다. 그들이 곧잘 말하는 '자기 자신이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칼과 마찬가지로 녹슬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66.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 및 일본 정신에 의하여 지도상에 그려진 길을 따르는 열의이다.

272.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273.
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인 죄의 자각에 의거하여 선행을 행하는데 비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하여 선행을 한다.

274.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수치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율법을 선행하는 사람이다.

275. 일본인이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각자가 자기 행동에 해단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277. "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감각과 감정을 가진, 어느 다른 유성에서 떨어져 온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모든 동작을 얌전하게 하고, 모든 말투를 예의에 맞도록 하지를 요구하는 나의 일본식 예절이, 이 나라의 환경 속에서 나를 극도로 신경과민과 자의식에 빠지게 하였다." ?미시마의 자서전 <나의 좁은 섬나라>

278.
한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 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단적인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11장 자기 수양

279.
어떤 문화의 자기 훈련은 항상 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282. 무한한 도야의 가능성을 가진 육체를 의지로써 지배해야 한다어떤 훈련을 해서라도 사람은 일본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283. 미국인에게는 자기 희생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285-286.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 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수양)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only so can he enjoy life) "라고 번역되고 있다. 자기 훈련은 "(자제력이 깃드는 곳)-배짱-를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확대한다..

286.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88.
무아(無我)...... 의지와 행동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빈틈도 없을 '때의 체험을 말한다. 방출된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의지와 행동 사이에 말하자면 일종의 절연벽이 가로막는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아', '방해하는 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에 의하여 이 장벽이 제거 되었을 때에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 있고, 전류는 자유로이 흐른다. 행위는 노력 없이 행해지게 된다. 그것은 일점적ㅇ로 변한다. 행위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실현된다.

291.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되는 교의(敎義)이다.

295-296. 12
세기 및 13세기 동란 시대에, 경전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직접 체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이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이, 승원이라는 피난처 속에서 세상의 폭풍을 피해 출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일어겠지만, 설마 그것이 무사 계급이 애호하는 생활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된 것이다.

296.
선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한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에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302. 고안은 '문을 두드리는 벽돌'이라고 불리고 있다. ''은 눈앞에 있는 수단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하고 지레 걱정을 하고, 자기의 행동을 혹은 칭찬하고 혹은 비난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감시의 눈을 번쩍이고 있다고 망상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인간성의 주위에 둘러쳐진 벽에 붙어 있다.

307-308. 미국인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요구하는 강력한 강제력은 죄의식이다일본인은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마음의 바탕에서는 선이다. 만일 충동이 그대로 즉시 행위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 하지의 자기 감시를 배제하려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그의 육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이다.

308. 일본인의 자기 훈련의 철학은 일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개개의 일본인의 생활 체험에서 떼어 내어 고찰하는 한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그들이 '보는 나'로 귀속시키고 있는 이 '하지'의 의식이 얼마나 무겁게 일본인을 억누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지만, 그들의 정신 통어 철학의 참된 의미는 일본의 어린아이 양육법을 설명하지 않는 한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311. 그들이 아이를 원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부모들이 그런 것처럼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아이를 바라는 것은 그 이유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훨씬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본인이 아이를 원하는 것은 단지 정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혈통을 잇는 데 있다.

12장 어린 아이는 배운다

 

309. 일본의 아이는 서구인이 상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름 방식으로 양육되고 있다.

 

310. 일본의 생활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로 되어있다. 그것은 저변이 얕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와 제멋대로 구는 것이 허락된다.

 

311. 일본인이 아이를 원하는 것은 단지 정서적인 만족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혈통을 잇는 데 있다.

 

321. (어린 시절 놀림을 당하는 경험은) 성인이 된 일본인들에게 현저하게 나타나는 조소와 배척에 대한 공포심을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조롱받고 있다는 의식과 함께 일체의 안전한 것, 익숙해져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이들의 무서운 공포의 하나가 된다. 어른이 된 뒤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게 될 경우에도 이 유아기의 공포가 어디엔가 남아 있게 된다.

 

325.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논리는 어른이 된 후에도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 크게 존종되는 논리다.

 

326. 일본의 어린아이가 받는 가장 엄한 벌은 뜸이다.

 

331. 어머니들은 아이들은 안전한 절에서 놀게 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경험 속에는 신을 두려워한다거나 혹은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신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행위를 규제하는 일은 없다. 어린이들은 신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신들은 권위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335.
계집아이의 유년기는 사내아이의 생활에서 배척됨으로써 끝난다. 앞으로 몇 년의 세월 동안 그애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오로지
자중에 자중을 거듭하는 것 말고는 없다
.

339.
괴롭힘을 당한 인간은 괴롭힌 인간에게 복수를 할 때야만 '시원한 기분'을 느낀다
.

340.
여자아이들이 존중해야 할 처세술은 공공연히 자기 주장을 할 특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348.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의 모순은, 일본인의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해서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천국을 과거에 가지고 있다.

351.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혼의 문인 자기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

356.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이냐 ''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 삼아 그 진로는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버린다. 이러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큰 것으로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로 만들며,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 그러한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

358. 자유의 정신이 나의 문을 노크하였다.

 

360.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 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칼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368.
사회는 안쪽 구석을 핀으로 눌러 놓은 삼각형이다. 달리 말하자면 삼각형은 책상 위에 있으며 누구나 볼 수가 있다. 핀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삼각형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 정체를 들어내지 않는 축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382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는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383. 미국이 할 수 없는 것-어느 나라에서도 할 수 없는 것-은 명령으로 민주적 일본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한 방법은 어떤 피지배국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성과 가정을 가지지 않은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활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해설: 죄의 문화와 수치 ? 이광규

 

386-388. 인류학(Anthropology)은 인간의 행동을 관찰한다. 인류학은 행동 과학인 것이다. 대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 식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잣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 뛰어나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는 무용지물이다. 인류학에서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똑 같다. 다만 각기 태어난 장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여러 조건을 가장 합리적, 경제적, 논리적으로 영위하고 있고 그것을 문화라고 한다.

387. 중동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젖을 이년간 먹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어머니가 임신을 하면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필요했다.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산 후 이년 동안 성관계를 갖지 않아야 했고 남자들은 그 사이 새 여자를 맞아들였다.

388.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합리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 뛰어나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는 무용지물이다.

387-388.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 첫 번째가 근친금혼을 한다는 것이다./두 번째는 언어 사용이다/세 번째 특징은 불의 발견이다.

389-391. 문화 인류학의 몇 가지 학파


진화주의 : 고대 사회에서 인류가 미개 전기, 중기, 후기, 그리고 야만 전기, 중기, 후기, 그 다음에 문명이라는 일곱 단계를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인간이 불, 활 항아리, , 문자, 등 무엇인가를 발견함으로써 경제 구조가 변했고 그에 따라서 사회 구조와 의식구조가 변했다고 보고 있다.(L .H. Morgan, 1818-1881)

전파주의 :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어떠한 특수한 조건, 환경에서 발생해서 마치 물결처럼 펴져 나가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태동하여 번져나갔듯이 유교를 비롯한 불교 등도 이러한 방식으로 펴져 나갔다고 본다
.

기능주의 : 시간개념에서가 아니라 한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와 문물은 다 나름대로의 기능을 한다는 견해, 우리 식의 잣대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으로 이해하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프리카의 춤은 그런 의식이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기능을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B. K. Malinowski, 1884-1942)

상징주의 :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별적인 것이 초점을 맞춘다. 인간 행동에는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이 있으므로 인간을
의미를 창조하는 동물이라고 본다. 즉 상징주의는 인간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Ruth Benedict, 1887-1948)

396.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400. 서양 사람들에게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양심이다. 양심이 절대 진리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은 '' ''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행동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이목이다.

401.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일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일본의 종합적인 면을 파악하는 데는 불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서양인의 한계일 것이다.

402. 근대 사회와 봉건 사회의 차이점은 봉건 사회 하에서는 주어진 신분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즉 생득 지위였지만 근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출신 배경이 어떠하든 노력 여하에 따라 지위를 성취할 수 있는, 즉 성취지위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생득 지위가 우세하고 그 대표적인 예가 재벌들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사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니 다양한 출판사에서 이 책을 번역, 출판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산 책은 을유문화사가 출판한 것으로 74년 첫 판 1쇄를 찍은 이래 지금(9월 현재)까지 34년 동안 총 4 85쇄를 찍었다. 이는 이 책이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임을 증명한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책이 아직도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아직도 일본 문화의 원형을 파악하는데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1세대 전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르다. 잡지나 영화, 미디어를 통해 보는 일본 젊은이들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어른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들은 그다지 온, 기리, 기무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서양의 문화에 무척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인들의 사고 기저에 깔린 행동 양식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과 흡사한 점이 많다. 아무리 사회가 급변한다 해도 사람들의 정신 속에 깊숙이 깔린 고유의 습성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 책이 일본에 대해 연구한 많은 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책 중의 하나로 애독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기 전에 부록에 실린 광규 교수의 해설을 먼저 읽기 바란다. 이 책이 씌어진 배경을 이야기 하기 위해 그는 인류학의 정의와, 인류학의 학문적 발전 과정을 잘 개관하고 있다. 더구나 몇 가지 주제에 대해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일본, 한국, 중국을 비교하는 점도 흥미롭다. 더구나 그가 놓치지 않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 그들의 메이지 유신과 우리의 유신의 차이, 그건 곧 국적 문화와 국적 불명의 문화의 차이라는 점에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막바지, 일본에 대한 미국의 대공격이 막 시작된 초여름, 루스 베니딕트는 미 국무성으로부터 일본, 일본인에 대한 인류학자로서의 보고서를 올릴 것을 지시받았다. 미국은 그동안 몇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국가를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서양의 국가라면 통상 있는 전시 관례란 것도 없었고, 아군의 한 목숨을 지키기보다 적군의 한 목숨을 앗는 것을 중요시하는 등 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대와 싸우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은 낯선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그들의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루스 베네딕트는 1944 6,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연구를 시작, 1946 '일본 문화의 유형'이란 부제를 단 책 <국화와 칼>을 출간하게 되었다.

어느 한 나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그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방법이었지만, 베네딕트가 일본을 연구하던 당시는 아직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일본에 직접 가서 그들을 연구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베네딕트는 그 대신 학술적인 일본 관련 서적과 번역된 일본서와 일본 영화, 그리고 미국에 귀화한 일본인과 일본에서 살았던 미국인의 인터뷰에 의존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그녀는 7세기부터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정치, 종교, 문화, 생활을 다양하게 추적했다.

 

직접 일본 땅을 밟아본 적은 없어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어느 일본 관련 서적보다 객관적인 설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이 책은 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필독서가 되었다. 이 책은 U. S. News & World Report 로부터 최우량 서적이자 일본인 성격을 사려 깊게 연구한 역작이라는 평을 들었고, 뉴욕 타임즈로부터는 독특하고 중요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며, 단순성의 광채를 더하는 힘을 과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단 한 차례의 방문도 없이 이루어진 이 일본 연구는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엄밀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휴식하는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읽다가 책을 물에 빠뜨렸다. 본능적으로 0.1초도 안되는 사이에 책을 건져 올리긴 했으나 이미 물은 책 속에 사정없이 번진 후였다. 책을 들자 빨간 물이 흡사 피처럼 뚝뚝 떨어졌다. 내가 읽던 을유문화사 번역본은 가부끼 복장을 한 배우의 그림이 실린 책 표지와 안 표지 두 장이 빨간색 종이로 되어 있다. 빨간 물은 거기에서 번져서 떨어진 것이었다. 아직 책을 다 읽기도 전이었지만 ‘국화와 칼’이라는 책 제목에서 이미 ‘칼’이란 단어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그 빨간 물이 마치 할복한 일본 무사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처럼 느껴졌다. 물론 상상력의 비약이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직접 경험보다는) 영화나 책을 통해 내게 각인된 일본의 이미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이면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 갈 수 있다. 차를 끌고 부산에 가는 것보다 더 빠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깝다고 일본이 우리에게 가까운 나라는 아니다. 심리적 거리감은 무척이나 멀다. 이 책을 읽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양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지만 실제 일본 사람의 특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무사, 천황, 쏘니나 도요타와 같은 몇 단어로 한정할 수 있는 지극히 일부분일런지 모른다.

같은 동양권 내에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면도 보이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인 ''이나 '기리', '기무[義務]'와 같은 개념은 우리가 느끼기에 상당히 이질적이다. 누군가로부터 담배 한 개피를 얻어 피는 것을 큰 신세를 지는 것으로 생각하여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나, 자신에게 모욕을 준 상대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마는 것, 그저 입학 시험에 낙방한 정도라 해도 의미 있는 자살을 훌륭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그들의 문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

 

내가 체험한 일본

 

나는 개인적으로 베네딕트가 자신의 연구를 개괄적으로 안내하는 서문에서 인류학의 연구 대상과 인류학의 장점, 인류학자의 연구 기술과 덕목, 시선 등을 장황하리만큼 자세히 설명하는 것에 아주 매료되었다. 서문을 3번쯤 읽었다. 읽을 때마다 줄 치는 부분이 늘어났다. 나중에 보니 줄 안 친 부분이 별로 없었다. 문장은 곱씹을수록 맛이 났다. 그녀는 인류학이 얼마나 멋진 학문인지 조근조근 속삭인다.

 

내가 인류학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때 전공필수로 인류학 개론과 사회심리학을 들으면서였다. 그 때 이 책의 저자 베네딕트와 마가렛 미드, 레비 스트로스 같은 학자들을 만났고 문화 상대주의란 개념을 처음 접했다. 상대주의라는 단어는 내 눈의 비늘을 한 커플 벗기고, 지구에 흩어져있는 다양한 인종들의 다름을 보도록 이끌어준 매력적인 렌즈였다. 그것은 굳이 다른 종족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와 사회, 개인과 개인의 다름에도 상대주의는 마법을 가져다주는 단어였다.

 

베네딕트가 제공하는 매력적인 렌즈를 끼고 읽게 된 이 책은,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일본에 대해 처음으로 가까이 다가간 경험이 되었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나는 애국심이 별로 없는 인간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도 분쟁이나 교과서 왜곡 사건 등으로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매스콤을 떠들썩하게 만들 때조차 나는 신문을 들쳐보지 않는 사람이다. 흑인 후보 오바마가 선전하던 미국 대통령 선거날에도 TV를 보지 않은 사람은 나뿐일런지 모른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매스콤이 보도하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한 개인의 미시사다. 독도분쟁이 아니라 정신대 할머니의 왜곡된 삶 그 자체이며, 오바마 당선이 한반도와 미국의 정치적 역학에 미칠 영향이 아니라 흑인으로 성공지향적인 미국의 정치판에 뛰어든 오바마 개인의 분투와 눈물의 역사이다. 그런 나이니 일본이 알고 싶어 그 쪽 책을 찾아 읽지 않았을 건 분명하다. 이 책은 그래서 내게 특별하다.

 

나는 공연기획을 하면서 일본의 몇 개 공연 기획사 에이전트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우리가 주로 협력한 일은 아시아 투어를 예정하는 해외 아티스트를 공동으로 초청하여 비용을 절감하거나, 일본과 한국 아티스트 교환 프로그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나는 일본인들과 일하면서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감정과는 상관없이 일본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매우 정직하고 투명했으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날 때까지 일을 단계별로 세분하여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교환 프로그램의 경우 나는 사전에 일본을 방문한 일이 없지만(e-메일이나 전화로 일 처리가 얼마든지 가능했기에, 그리고 그들이 주는 정보는 너무나 정확하고 빈틈이 없었기에) 그들은 일부러 한국을 방문해 나와 만났고 교환하는 아티스트들의 리허설에도 참여하고 행사장을 직접 확인하고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갔다. 어느 점에서 그들은 너무 치밀해서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치밀한 준비 덕분에 만의 하나라도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느긋한 우리의 작업 스타일을 답답해했고 못미더워했다. 어디 우리가 미리 다 준비해놓고 일하는 사람들인가. 우리의 임박형 업무 스타일은 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일본은 공연장 계약이나 정부 예산 지원이 대부분 2년 전에 확정되지만 우리는 1년 미만에서 6개월, 혹은 행사 1-2달 전에 확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뭔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행사 당일에 보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착오없이 돌아가는 한국의 현장성에 그들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이런 작업 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와 관련된 구절을 이 책에서 찾아냈다. 그러나 그 문장은 현상의 설명이지 원인의 규명은 아니었다. 이 책의 아쉬운 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41)

 

 

연구자의 객관성

 

한국은 일본에 대해 넘기 어려운 감정적인 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 감정이 아니라 역사를 거쳐 대물림되어온 민족 감정이다. 이런 감정적 골은 일본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나 학습을 방해한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일본을 이해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연구자가 책을 서술함에 있어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그러하듯 연구 대상에 대해 기존 정보나 감정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설령 아무런 편견이 없다 해도 특정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해 연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연구자의 견해가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왜곡되지 않은 시선을 유지하려는 연구자의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 베네딕트가 이 책을 쓸 때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다. 베네딕트는 말한다.

전시 중에 적국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가를 적 자신의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p14)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글귀다. 바로 그것이 국무성의 위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학문적 객관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게 학문적 객관성이란 연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군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책 서문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라파이유가 <컬처 코드>의 맨 앞에 인용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20세기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아직 각 나라의 특성을 막연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은 물론, 미국을 미국인의 나라답게,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나라답게,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지식의 결핍으로 모든 나라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습관이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발견할 기회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어떤 행동 방침은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p23)”

 

 

이 책의 장점

 

인류학의 생명은 연구자가 직접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베데딕트는 전시상황이라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때까지 인류학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간접 자료들을 통해 일본문화에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영화, 소설, 잡지 뿐 아니라 (베네딕트를 계기로 인류학의 연구대상은 대중문화, 신문, 영화, 잡지에까지 확대되었다) 일본인들이 쓴 방대한 문헌과 그곳에 살았던 외국인들의 기록, 일본 포로들과의 인터뷰,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 이민자들의 대면조사까지 다양한 소스들이 존재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문자가 없는 부족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여러 편익들을 베네딕트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일본을 연구하는 모든 세대의 필수문헌이 된 것은 한 훌륭한 문화인류학자의 훈련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관용

 

국방부의 의뢰로 시작한 이 저작에 저자의 굽지 않은 시선과 주장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자기 문화를 자기가 볼 때는 호흡하는 공기처럼 흔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이 타인의 눈으로 볼 때는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수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연구하는 대상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국무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한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자기 연구의 객관성을 획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부러운 것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미국이란 나라의 학문에 대한 관용이다. 미 국무부는 일본을 이해할 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녀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연구방법을 이용하도록 배려하였다.

 

국화와 칼 메타포

 

이 책의 제목 '국화' ''은 일본인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두 단어다. 그것은 서양인인 베네딕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but also’의 문화였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중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이 동시에(but also)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국민이기도 하다는 것, 모순으로 보이는 이런 현상은 일본 문화를 엮는 씨줄과 날줄 같은 것이다. 옳고 그름을 경계한 분명한 서구인의 행동과는 달리 일본 문화에서는 저 마다의 상황, 저마다의 행동 방침 자체가 나름의 옳음, 선이 되는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칼도 국화와 함께 그림의 일부이다. 일본인은 싸움을 최고로 좋아하면서 동시에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뛰어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예민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동시에 반항적이다. 이런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본인의 사상, 감정의 습관과, 그 습관에 배어있는 문화적 틀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는 ‘일본 문화의 틀’이다.

 

그런데 이 책 뒤에서 베네딕트는 문화적 과도기에 처한 일본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국화와 칼의 의미를 다시 조명한다. 그것은 자기 행위에 책임을 다하는 일본인에 대한 비유다.

 

아쉬움

 

인류학자는 아시아와 태평양의 여러 문화를 알고 있다. 일본 사회제도나 생활 습관 가운데 이들 문화와 밀접한 유사점들이 있다... 내가 발견한 유사점이나 차이점은 일본인의 생활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많은 특성을 공유한 여러 민족 간에 발견되는 차이를 연구하는 것 만큼 인류학자에게 유익한 것은 없다.”(19)

 

이런 관점에서라면 일본과 하나의 문화권으로 분류될 수 있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서가 되는 한국 문화에 대해 그녀는 이 책에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국만을 단서로 삼고 있다.

 

이 책 부록에서 이광규 교수는 미국 대학들에 있는 동양학 연구소의 실태를 밝힌다.(401) 중국과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만 있을 뿐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나 학생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은 문화 고아나 나름 없다고 그는 개탄한다.

문화의 중요성과 힘에 대해 우리 정부와 문화계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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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08.12.18 10:49:05 *.75.127.146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 의견이있어 태그를 담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거나 더군다나 반대라는 것은 아니지요. 일본은 우리와 분명 다릅니다.그러나 저는 다른 것보다 같은 것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옵니다. 말하자면 다른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이책은 1940년대에 쓰여진 것이고 저는 1970년 초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일본사람밑에서 공부하고 일본말을 못써먹어서 애가타던 선생님밑에서 공부를 했습지요. 그러면서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본이 큰 선생입니다. 그전에 오랜세월동안 소위 문화의 목마름을 달랜것은 일본이 중국이 아니라 조선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일본의 문화의 몸통은 조선을 통한 중국문명이나 목아지는 서양한테 받아서 모양세를 그리 바꾸어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책이 쓰여진 년대와 제가 알고있는 일본과 우리의 모습과 제가 가지고 있는 안경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도 이책이 쓰여진 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1950년대의 저의 유년시절 우리의 시골의 모습은 아마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상상이 안될 정도로 일본 문화의 원류를 느낄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에서 변질된 부분을 요모 조모 더 따지고 나서 얘기해야 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네요. 그래서 다른 것이라고 해봐야 의미가 분명해지지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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