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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5일 10시 08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아르놀트 하우저 Arnold Hause

아르놀트 하우저는 1892년 헝가리의 작은 도시 테메스바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테메스바는 헝가리의 영토였지만, 그의 부모는 독일 이주민이었고, 그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은 독일어는 물론이고 헝가리어, 세르비아어 까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나, 그리 지적인 교양인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그의 가정은 그리 문화적이고 교양이 넘치는 가정은 아니었으며, 훗날 그가 대학에 가고나서야 진정한 학문의 맛을 알게 된다.

부다페스트 대학에 진학해서는 평생의 동료 칼 만하임과 그의 스승 게오르그 루카치를 만나게 된다. 칼 만하임은 우리나라에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우저는 독일어만큼이나 프랑스어도 잘 했다. 그리고 문학사를 전공했지만, 문학사보다는 미술사 특히 조형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그는 부다페스트와 베를린, 빈의 대학에서 문학사와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리고 전후에는 잠깐이었지만, 루카치의 도움을 받아 부다페스트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헝가리의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진 후 바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해야 했다. 이 때의 망명은 그의 기나긴 망명생활의 시작이기다 했다. 이후 그는 무려 50여년 동안이나 유럽의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주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자>를 쓰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그는 망명 생활 동안 베를린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자들 짐멜, 베르너 좀바르트, 막스 베버 등의 사회학적 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고, 파리와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직업 미술작품을 접하여 미술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여 그는 다시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와 사별한다. 아내를 잃어 고통 속에 잠겨있던 그에게 영국에 머물던 칼 만하임은 예술 사회학 선집의 짧은 서문을 부탁한다. 서문을 쓰기 위해 참고 서적을 찾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직접 체계적인 예술 사회학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10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로 탄생하였다. 낮에는 영화사에서 사환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저녁 시간과 주말을 이용한 오랜 작업의 결과였다. 출판도 쉽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1951년 영국에서 책을 출간한다. 이후 1954년에 독일어판이 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 리드 대학의 전임강사직을 얻게 되었고, 50년대 말,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7년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치고, 다시 헝가리로 돌아와 이듬해인 1978년 부다페스트에서 눈을 감는다.

저서로는 1951년 <문학과 예술의 사회학 The Social History of Art>, 1958년 <예술사의 철학 The Philosophy of Art History>, 1965년 <매너리즘 Mannerism: The Crisis of the Renaissance and the Origin of Modern Art>, 1974년 <예술의 사회학 Sociology of Art> 이 있다.

성공한 사람치고, 힘든 세월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아놀드 하우저 그의 인생 또한 그리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무려 50년 동안이나 자신의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유럽을 떠돈 것은 물론이고, 명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탄생시키기 위해 10년 간을 영화사의 사환으로 일하며, 밤과 주말을 이용해 저작을 했다는 사실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영화사에서의 근무 경험이 책의 한 부분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하다. 거장, 어찌보면 그들의 태생도 그들의 삶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평범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았던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제1장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 1830년의 세대

35) 예술작품의 가장 불가사의한 역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또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에, 그리고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제약을 받는 구체적인 감상자층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대중을 안중에 두려고 하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는 데에 있다.

37) 소설의 역사는 중세의 기사들에 관한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51)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의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

63) 발자끄는 모든 자연스러운 생활감정이 자기 계급에 뿌리박고 있는 철두철미 부르즈와적인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르즈와지의 가장 성공적인 변호자로서, 이 계급의 업적에 대한 감탄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66) 졸라는 발자끄 세계관에서 발현된 요소와 잠재적 요소 사이의 대립을 규명하고, 맑스적 해석에 앞질러 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의식적인 확신과 상반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상반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여 정의내린 최초의 인물은 엥겔스이다. 그는 최초로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예술적 창작 사이의 모순을 과학적 탐구의 방식으로 취급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사회학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개발적인 원리의 하나를 공식화 했다. 그래 예술적 진보성과 정치적 보수주의는 완전히 양립할 수 있으며, 현실을 충실하고 올바르게 묘사하는 모든 정직한 예술가는 본래적으로 그 시대에 계몽적, 해방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2. 제2제정기의 문화

99) 혼란되고 자기도취된 젊은 시절의 낭만적 기질이 그를 인간으로서 및 예술가로서 파멸시킬 뻔했다는 깨달음에서 플로베르는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음악이 부당한 자극을 주는 일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1982년의 어떤 편지에 쓴 바 있다.

103) 플로베르는 작가생활 초기에 "인생에서 참되고 좋은 유일한 것, 그것은 예술"이라고 말했고, 말기에는 당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작품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103) 플로베르가 종국에 도달한 심미주의는 반사회적이고 삶을 적대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행위를 대표하게 된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이요 부정인 것이다. "삶이란 너무나 추악해서 그것을 피함으로써만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아고 플로베르는 신음한다.

107) 19세기의 문학에서 소설이 갖는 독보적 위치는 무엇보다도, 삶이 어쩔 수 없이 기계화되고 천박해져간다는 느낌과 하나의 파괴적인 힘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관념이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게 되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15) 근대 프랑스 연극사의 결정적 전환점은 스크리브에 의하여 대변된다. 그는 완정복고기의 금전중심적 부르즈와 이데올로기에 처음으로 연극적인 표현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한 부르즈와지의 투쟁무기로 사용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자기의 음모극에서 창조했다.

118) 작가들은 한편으로 그 시대의 양속과 폐풍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거나 아니면 차라리 지배계급의 관점을 받아들이며, 다른 한편 이러한 관념과 별도로 재미를 꾸며내는 어떤 재능을, 무대라는 수단에 의해서 흥미를 일으키고 긴장을 조성하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

131) 올바르게 지적된 것처럼 개인적 체험과 개인적 발견에서 출발하여 자기 나름의 어떤 매너리즘으로 끝나는 보통 예술가들의 전형적인 코스와 반대로, 그는 당대의 지배적 인습들을 아무런 내적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고 점차 자기의 길을 찾아 독창성에 이른다.

3. 영국과 러시아의 사회소설

138) 러스킨은 칼라일의 직접 후계자이다. 그는 칼라일에게서 산업중의와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논지를 인계받고, 영혼과 신이 사라져버린 근대문명에 대한 칼라일의 탄식을 되풀이하며, 중세와 기독교적 서구의 공동체 문화에 대한 열광을 나누어 가졌다.

158) 빅토리아 시대의 독서층은 이미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는 두 개의 써클로 나누어졌으며, 디킨즈는 상류계급의 독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받지 못한 마구잡이 대중들의 작가로 통했다.

160)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죠지 엘리어트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정신적 및 도덕적 본성에 관한 것이며, 거대한 운명적 투쟁의 무대는 인간의 영혼, 내면세계, 도덕의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심리소설인 것이다.

161) 죠지 엘리어트처럼 당대의 지적 생활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던 작가의 작품에서만 사색적 인간들의 운명, 그들이 지닌 문제와 모순, 그들의 비극과 패배가 소설 '마들마치'에 구현된 직접성과 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174) 러시아 소설의 놀라운 점은 그 연천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 소설의 높은 경지에까지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로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아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생기있는 문학형식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175) 근대 심리학은 영혼의 분열상을-어떤 구체적인 내적 갈등으로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부조화를-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띠고네도 이미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림을 맛보고, 꼬르네유의 주인공들은 거의 그 문제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주인공의 우유부단을 희곡의 주제로까지 삼는다.

187) 심리관찰이 날카롭기로 말한다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연주의 소설의 가장 발달된 형태를 대표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그리는 것이 자연주의라고 할 때 꿈처럼 과장된 상황과 환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을 즐겨 쓰는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이 그의 문학적 위치를 그야말고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는 "나를 심리학자라고들 말하지만 그건 틀린 밀이다. 나는 더욱 높은 차원의 리얼리스트 일 뿐이다. 즉 나는 인간 영혼의 심층을 속속들이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4. 인상주의

199)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유동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두 경향을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양식의 변화가 점진적이었던 것은 그 시대의 경제적 발전이 연속적이었고 사회적 권력관계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에 부합되는 현상이다.

201) 현대의 기술은 유례없이 생활감정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니와, 인상주의에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동적인 감정인 것이다.

201) 기술의 진보와 관련하여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로 발전해가는 일로서, 이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207) 19세기 후반에는 회화가 주도적 예술이 된다. 문학분야에서는 아직 자연주의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시기에 회화에서는 인상주의가 하나의 독립된 양식으로 발전한다.

208) 인상주의는 단지 그 시대의 모든 예술장르를 지배한 하나의 시대양식일 뿐 아니라 보편타당한 '유럽적' 양식으로서도 최후의 것-취미의 전반적 합의에 근거를 둔 마자막 예술경향이다. 인상주의가 해체된 이래 여러 다른 예술장르들 또는 여러 다른 국가와 문화들을 양식상으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215) 문학의 역사는 회사의 역사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인상주의는 원래 윤곽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연상인데, 자연주의라는 복합적 현상 전체에서 인상주의의 발단을 식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후기의 발전형태는 상징주의의 여러 현상들과 완전히 뒤엉켜 있다.

227) 많은 사람들이 들끓는 경쟁무대를 떠나 좀 멸시당하긴 해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맨 뒷줄의 의자'에 남아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세계관 전체는 단 하나의 중심적 문제, 즉 부르즈와 세계에서의 예술가의 위치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삼고 있는데, 이러한 사상가에게 있어서 이런 명확히 무해해 보이는 언급조차도 예술가의 생활방식에 대한 그의 판단과 결부되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233) 1890년 이후 '데까당스'란 말은 암시적인 느낌을 잃어버리고 '상징주의'가 주도적 예술경향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모레아스는 이 말을 도입하여, 시에서 현실을 '관념'으로 대체시키려는 노력이라고 그 개념을 정의했다.

235) 상징주의는 시의 임무가 명확한 형태의 틀에 박을 수 없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238) 현실로부터의 시인의 이러한 소외와 고립에 표현된 귀족적 초연성은 표현의 고의적인 불명료성과 시적 사상의 의도적인 난해성에 의해서 더욱 강조된다.

241) 젊은이들의 자아실현 추구와 낡은 초개인적 형식에 대한 그들의 투쟁은 새로운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현상이지만, 1880년대 영국 문학 및 예술에서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비정치적 개인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242) 예술가의 언사나 사고방식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생활형식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고 공상을 모르며 거짓말 잘하고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극단적인 댄디즘은 인상주의 스타일의 모든 매력적인 요소를 과시하는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항의의 일부를 이룬다.
 
244) “체험의 결실이 아니라 체험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다. … 이 황홀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성공을 의미한다.
 
246) 프랑스 문학에 있어 강력한 직관주의적 흐름이 개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적 경향을 이루는 지성주의는 영국에서도 새로운 문학의 주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247) 사람들은 찰나적이고 거의 포착할 수 없는 느낌의 서정시, 불명확하고 정의할 수 없는 감각적 자극, 연한 색깔과 피로한 음성 등을 노래하는 서정시들을 이리저리 되씹는다. 애매하고 막연한 것, 우리의 감관으로 겨우 잡힐까말까 하는 것들이 시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251) 체호프의 희곡형식은 아마도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연극적이지 않은, 아마도 ‘극적인 고비’라든가 돌발사건이나 긴장이 가장 미미한 역할을 하는 형식일 것이다. 그의 연극처럼 사건이 적고 극적인 갈등이 적은 연극은 없다. 등장인물들은 싸우지도 않고 자신을 방어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정복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들 스스로 몰락하고 서서히 망해가며 아무 사건도 희망도 없는 삶의 일상성 속에 휩쓸려들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인생을 고스란히 내맡기는데, 이 운명은 파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멸을 통해 완성된다.
 
253) 인간이란 그때그때의 경우, 즉 유전, 환경, 교육, 천성, 장소, 계절, 우연 등 여려 영향의 소산으로서 인간의 행위는 어느 한가지 동기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일련의 동기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262) 세기전환기에 있어 세계관의 기본 방향을 규정해주는 심리학은 '폭로의 심리학'이다. 니체와 프로이트(S. Freud)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264) 정신의 자율성이란 하나의 허구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때로는 우리 자신의 적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힘의 노예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266) “지성의 목소리는 희미한 소리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이 귀를 기울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리고 수없이 거듭 거절을 당한 끝에 결국 지성의 소리는 듣는 사람을 찾고야 만다.
 
267) “진리가 어떤 절대의 팔에 매달려 있던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자기 목적으로서의 학문, 무(無)전제의 진리, 이해를 초월한 미, 무아의 도덕 등은 니체 및 그의 동시대인들에게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269) 프루스트에 이르면 시간은 이미 분해와 파괴의 원리가 아니요, 그 속에서 이념과 이상이 가치를 잃고 삶과 정신이 실체를 상실하는 요소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존재, 생명 없는 물체와 기계작용에 반대되는 우리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 본연의 삶에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그렇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삶의 개개의 순간의 총화일 뿐 아니라 이러한 순간들이 모든 새로운 순간을 통해 획득하는 모든 새로운 국면들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생활에 내용을 부여한다. …… 프루스트의 말대로 진정한 낙원이란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제2장 영화의 시대

290) 현대예술은 모두 즐겁고 기분 좋은 것, 모든 순전히 장식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한사코 기피하는 것이다.

293) 다디이즘 그리고 그런 면에서 다다이즘과 완전히 일치하는 초현실주의는 표현의 직접성을 위한 투쟁이다. 즉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293) 프랑스의 비평가 장 뽈랑은 언어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작가들을 뚜렷한 두 부류로 구별했다. 그는 낭만주의지, 상징주의자, 초현실주의자 등 범속하고 인습적인 형식과 상투구를 언어로부터 완전히 제거하고 언어의 함정을 피하여 순수하고 신선하고 시원적인 영감에 호소하는 언어파괴자들을 '테러리스트'들이라 부른다.

302) 연극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영화와 닮은 장르이다. 특히 시간적 형식과 공간적 형식을 종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일부는 시간적일 따름이다. 대개는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이 나란히 병존할 뿐이지 영화에서처럼 양자가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 영화와 다른 예술 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는 공간이 시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시간은 또 어느정도 공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304)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는 플롯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그것을 연속적 사건의 진행 도중에, 그러니까 연극적 현재에 직접 끌어넣는 것을 희곡의 수법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최근에와서야 비로소 허용하게 되었는데, 아마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거나 현대소설에서도 익히 보는 새로운 시간관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310) 만성병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는 듯한 오늘날 영화의 정신적 위기는 무엇보다도 영화가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아니, 작가들이 영화로 길을 찾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타당한 말일 것이다.

315) 어떤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형식과 내용의 적절한 결합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이 젊은 동안에는 그 내용과 표현 형식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단순하다. 즉 주제에서 형식으로 직통하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형식들은 소재에서 독립하게 되며 점점 공허해져서 특별한 교양을 쌓은 소수의 계층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320) 전 세계의 영화감독들은 국적과 세계관의 차이에 구애됨이 없이 러시아 영화의 기성 형식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술에서 어떤 내용이 어떤 형식을 이루는 순간 형식은 그것이 생겨난 세계관의 배경을 떠나서 채택될 수 있고 순전히 하나의 기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입증해주었다.

III. 내가 저자라면

오랜만에 만난 강적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리 봐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책들이 있다. 변경연의 과제 도서 중에서도 몇 권이 있었다. 그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저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이런 책을 쓴 것일까? 사부님은 이 책을 왜 읽으라고 하셨을까? 이런 책 하나 읽기가 이렇게 힘이 들다니, 내가 여태 헛 산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든다. 이 책은 이런 생각들이 저자에 집중되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야말로 예술과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가 쓴 책의 일부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헉헉대는 내가 있다는 것이 날 작아지게 만든다. 내가 저자라면 이런 책을 쓰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멋지다. 사실 접해본 것은 거의 없지만, 살아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작품들이 사회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예술사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달에 앞서 읽은 <컬처코드>와 <국화와 칼>이 인간의 행위를 개인의 관점이 아닌 문화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해석했듯이, 이 책은 예술작품들이 갖는 의미를 단지 그 작품 자체나 그 작가에 대한 해석을 넘어서 예술사적, 사회사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있는 것이다. 인간 개인이 어쩔 수 없이 문화라는 것에 영향을 받듯이, 예술작품 또한 사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해보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대한 추천평들이 이 책의 가치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의 추천평은 앞서 말한 내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사회는 무엇인가.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가, 사회적으로 생각하는가. 사회가 전체라면 인간은 개체이다. 예술은 누가 낳는가. 전체인가, 개체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한 옳은 답을 얻고 싶다. 이 궁금증을 이 저서만큼 명쾌히 풀어주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인 황지우 시인의 평 역시 많은 공감이 간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예술사학의 도도한 지평에 '사회사로서의 예술사'라는 새로운 축을 그어넣음으로써 정신사가 갖는 주관주의적 한계와 양식사의 어쩔 수 없는 형식주의적 공허함을 동시에 뛰어넘는, 예술사의 새로운 단층들을 드러나게 하였다. 그 층위들에서, 한 예술작품의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을 감싸고 있는 사회, 경제적 요인들의 반짝거리는 화석무늬를 밝혀낸 것이다."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저마다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관점 또는 시각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엄밀히 같은 세상을 산다고 할 수 없다. 그들에겐 서로 다른 세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낸다. 이 책 역시, 예술을 예술사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이 아닌, 사회사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즉,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도 이제는 인사평가를 할 때, 단지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방식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상사에 의해, 부하직원에 의해, 동료들에 의해 평가된다. 이곳 저곳에서 바라보아 진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때로는 앞, 뒤로, 때로는 좌, 우로, 때로는 위, 아래로, 때로는 안에서, 밖에서, 이리저리 바라 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꽤 괜찮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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