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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6일 05시 53분 등록

I.       저자 소개

 

아르놀트 하우저 (1892 ~ 1978)

 

그가 자세히 적어 놓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것들이 워낙에 고급스러워서 나는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매우 부유하고 명망이 높은 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부유하고 명망이 높아 문화를 지적 유희로 향유하면 자란 그런 부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1892년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던 헝가리의 작은 도시 테메스마에서 태어난 그는 유태인이었다. 헝가리 영토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의 부모님은 독일에서 온 이주민이라서 그는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리 문화적인 교양이 있는 분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부다페스트, 베를린, 빈 대학을 옮겨다니며 문학사와 미술사를 공부 했다. 시대적인 영향으로 나치를 피해 그는 떠돌이 망명 생활을 했다고 전해 지는데 스승 루카치의 도움으로 잠깐 동안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대학의 교수를 하기도 했지만 거의 전생애에 걸쳐 주로 독일, , 런던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망명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헝가리에 살 수 없지만 헝가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는 부인의 희망 때문에 독일을 떠나 빈으로 이주를 한 적이 있었는데 독일에서 출판사 일과 서적 판매업을 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영화사의 사환 같은 일을 했었다고 한다. 비록 이 때 생계를 위한 직업이었지만 영화사 사환을 하면서 새로운 예술의 탄생 즉 영화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빈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을 한 그는 아내와 사별을 했다고 한다. 런던에 거주를 하는 동안(1940 ~1950) 다시 영화사 사환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직장 일이 끝난 저녁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10여 년에 걸쳐 영화 미학과 예술 사회학에 관한 저서 작업을 계속한다. 그 때 그의 동료인 칼 만하임으로부터 예술사회학에 관한 100여 쪽에 달하는 짧은 서문을 청탁 받는 그는 마땅히 참고할만한 도서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집필을 결심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47세였다고 한다.

 

1951년 우여곡절 끝에 그의 책이 런던에서 처음으로 출판이 되었고 이로 인해 세상에 뒤늦게 알려지게 되어 미국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교환 교수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77년 오랜 망명 생활을 접고 헝가리로 돌아와서 1979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주요 저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51>

예술사의 철학  <1958>

예술의 사회학 <1974>

 

II.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3우리는 과거의 문학 작품 현대의 작품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으로 읽는다. 오로지 심미적으로만, 간접적이고 이해상관이 없는 상태에서, 즉 그것이 허구이고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다는 것을 완전하게 의식하면서 읽는다. 이것은 일반 독자로서는 결코 갖추기 힘든 관점과 능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설령 역사적 흥미와 심미적 관심을 가진 독자라 하더라도 자기의 시대와 자신의 생활 감정 및 생활 복표와 아무런 직접적 관련을 갖지 않는 과거의 작품과,자신의 생활감정 자체에서 우러나왔으며 바로 오늘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해답을 추구하는 오늘의 작품 사이의 헤아릴 길 없이 차이를 느낀다.

 

14스땅달과 발자끄의 소설은 우리 자신의 생활, 즉 우리 자신으 인생문제, 과거의 세대들은 알지 못했던 도덕적 어려움과 갈등을 다룬 최초이 책들이다.

 

17 18세기까지는 작가란 단지 자기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하인과 관리들이 그들의 물질적 재산을 관리하듯이 작가들은 독자의 정신적 재산을 관리앴다. 그들은 당대에 통용되던 일반적 도덕 원리와 취미 표준을 받아들이고 이를 확인했을 뿐 그런 것들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개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분명히 규정되고 한정된 독자층을 위해서 작품을 썼으며, 구태여 새로운 독자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실의 독자와 이상적 독자 (혹은 잠재적 독) 사이에는 아무런 긴장도 생기지 않았다. 작가는 상이한 주관적 가능성들 가운데 자신의 길을 선책향 한다는 어려움도 알지 못했고 여러 다른 사회계층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도덕적 문제와도 무관했다.

 

22 르네쌍스 이래 점차 드러나는 근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경향은 이제 어떤 전통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는 그 뚜렷하고 비타협적인 명료성 속에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비인격화의 경향, 즉 경제 기업의 전 메커니즘에서 개인의 환경에 대해서 고려하는 모든 직접적, 인간적 영향을 배체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은 자체의 이해와 목적을 추구하고 자체의 논리법칙에 따라가는 하나의 자율적 유기체가 되면,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는 폭군이 된다. 사업에의 완전한 몰두, 경쟁 속에서 회사를 번영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기업가의 자기 희생, 그의 절대적이며 무자비한 성고에의 노력은 무시무시한 편집광적 성격을 띠게 된다.

 

23원래는 사람이 만든 체게가 이제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로부터 독립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변한다.

 

23 모든 재산이나 지위, 모든 영향력은 날마다 새로이 획득하고 정복하고 약탈하지 않으면 안되며, 모든 것은 임시적이고 영구히 믿을 수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리하여 회의와 비관주의가 세상을 풍미하게 되고 목조르는 듯한 생활의 불안감이 생겨난다. 그것은 발자끄의 세계에 가득 차 있으며 자본주의 시대의 문학의 지배적 특징으로 남아있다.

 

32 부르지와지는 예술에서 감동이 아니라 즐거움을 기대하며, 문학자에게서 예언서가 아니라 위안물을 찾는다. 앵그르의 뒤를 이어 정확하나 지루하고 아카데믹한 화가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뽕싸르 디에도 신용할 수는 있으나 중요하지 않는 각본 공급자들이 뒤따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만족과 안식이며, 비정치적인 순수한예술을 보는 입장에도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33.시민 계급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예술의 이상적 본성과 정치를 초월하는 예술가의 높은 서열을 강조한다. 그들은 예술가를 황금 새장에 가둔 것이다. 꾸쟁은 칸트 철학의 자율성의 이념으로 되돌아가 예술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있다는 이론을 재흥시키는 데, 이경우 자본주의의 승리와 더불어 이룩된 전문화의 경향은 그의 시도를 뒷받침해 주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구호는 사실 한편으로는 산업주의와 보조를 같이하며 진행된 분업화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 기계화된 생활에 먹혀 들어갈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예술의 방파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예술의 합리화, 탈 마술화, 협소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생활의 일반적인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독자성과 자발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36 자연주의는 동일한 자연이 개념에 확고하게 근거를 둔 단일하고 명백한 예술관이 아니라, 수시로 변모하면서 그때마다 일정한 목적과 구체적 과제를 지향하는, 그때그떄 특별한 현상에 초점을 두는 인생해석이다.

 

37 소설의 역사는 중세 기사들에 관한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것이 근대 소설과 별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 누가적 구조, 모험과 에피소드가 중첩되어 얽히고 설키는 서술방법은 삐까레스크 소설이나 르네쌍스와 바로끄의 영웅, 목가 이야기에서 뿐 아니라 19세기의 모험소설과 프루스트나 조이스의 삶과 체험이 흐름의 서술에서도 지속되는 한 전통의 기원을 이룬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전체에 걸쳐서 일반적 추세였던 누가적 형식이 드러낸 것이며, 개별적인 극적 갈등에서 그 진면목이 나타난다기 보다 단계적인 여행의 성질을 지닌 하나의 비극적 현상으로 인생을 파악하는 기독교적 개념이 표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세기 시의 음송 및 새로운 소재에 대한 중세 독자층의 소박한 열망과 관련되어 있다

 

41 세상과 더불어 그리고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살라는 괴테의 요구는 이후의 부르즈와 문학에 의해서 천박해지고 무조건 세상과 타협하라는 권고로 변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개인의 까다롭지만 평화적인 적응은 무분별한  화해의 아첨정신으로, 공리적 세속주의로 변질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에 괴테가 한몫 끼였다면 그것은 다만 그가 여러 모순들의 평화로운 조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에, 얼마간 경박한 낙관주의가 가동적으로 부르즈와적 유화정책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다는 데에 있을 뿐이다. 스땅달과 발자끄는 괴테보다 팽배한 긴장을 훨씬 더 날카롭게 보았고 더욱 현실감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통찰이 기록된 그들의 사회 소설은 낭만주의의 환멸 소설뿐 아니라 괴테의 교양 소설도 한 반 넘어선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낭만파의 현실모멸과 괴테식의 낭만주의 비판을 모두 극복한 것이다. 사회문제의 해결 가능성에 관해서 일체의 환상을 허락치 않는 냉철한 현실 사회 분석에서 그들의 비관주의가 생겨난다.

 

44 스땅달에게 새로운 사회는 무엇보다도 그 통치형태에 의해서, 권력의 교체와 계급이라는 거싱 갖는 정치적 의미의 변화에 의해서 옛 사회와 구별된다. 자본주의 체제한 그에게 있어 정치적 개조의 결과인 것이다. 그는 시민 계급이 이미 경제적으로 패권을 장악했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발전단계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다.

 

47 (스땅달)그가 동정한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재주있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회의 서자들, 냉혹한 지배계급의 희생자들이다.

 

48 그는 나는 민중을 사랑하고 압제자를 증오한다. 그러나 항상 그 민중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49 스땅달의 정치관은 그의 생활상태와 꼭 마찬가지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 혈통적으로 그는 상층 시민계급에 속하지만, 교육의 결과 이 계급의 적대자가 된다. 그는 나뽈레옹 맡에서 상당한 중책을 맡고 황제의 마지막 원정에 참가하여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으나 결코 열광한 것은 아니다. 횡포한 독재자요 방약무인한 정복자인 나뽈레옹에 대해서 그는 아직 망설임을 가진 것이다.

 

55 낭만주의 이후의 현대적 예술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두 즉흥적인 성격을 띤다. 예쑬적 기량이나 비평적 사고 또는 미리 짜여진 계획보다도 감정, 기분, 영감이 더 생산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생각에 따른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현대의 모든 예술관은 예술작품의 가장 가치있는 요소가 우연한 착상, 번뜩이는 환상, 한마디로 신비스런 영감의 선물이라는 신앙에, 그리고 예술간느 자신의 독창력에 글려가도록 몸을 맡기는 것이 최성이라는 신앙에 근거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예술에서는 디테일의 창작이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렇기 대문에 디테이르이 창작이 일으키는 인상은 예기치 않은 전환과 예상 못한 부차적 모티프의 중요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55 베토벤의 작품부터가 벌써 그의 선배들 것에 비하여 즉흥적이다. 실제 창작 과정에서는 으레 수많은 예비적 스케치들을 거쳐 조심스레 준비된 베토벤의 작곡보다 과거의 대가들, 특히 모짜르트의 작품이 더 안이하고 더 직접 영감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모짜르트가 항상 객관적이며 필연적인 확고한 플랜을 쫓는 것같이 보이는 데 반하여,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모든 주제, 모든 모티프, 모든 음조가 마치 나는 이렇게 느끼니까””나에긴 이렇게 들리니까””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하고 작곡자가 말하고 있는 듯이 울린다. 과거 대가들의 작품이 잘 균형 잡히고 잘 구성된 작곡과 깔끔하고 잘 마무리 된 멜로디임에 비하여, 베토베노가 그후의 작곡가들의 창작은 괴로운 가슴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이며 읊조림인 것이다.

 

78 부르즈와지는 자신만만하고 까다롭고 거만해졌으며 자신의 미천한 출신과 화류계 여성, 여배우, 외국인 등이 전례없이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새로운 사교계이 잡다한 성격을 단지 외양만으로 감출수 있다고 믿는다. 앙씨앵 레짐의 와해는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옛날 상류 사회의 최후의 대표자들은 사라지며, 그로 말미암아 프랑스 문화는 구사회가 최초의 충격을 받았을 때보다 더한층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예술에 있어, 무엇보다도 건축과 실내 장식에 있어 악취미가 이떄처럼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적은 없었다.

 

86풍경화 조차도 기존 사회의 문화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 된다. 애초부터 현대의 풍경화는 산업도시의 생활에 대한 대림으로서 발생한 것이 사실이지만 낭만파의 풍경화는 아직도 하나의 독립된 세계, 즉 현재의 일상생활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어떤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대상을 그린 것이었다.

 

87 예술사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진보란 상투적 주제의 수를 감소시키는 것이기 보다 그것들을 갱신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극단적인 변화는 외광화의 원칙에서 온다. 하지만 이것도 일시에 실행되는 것이 아니고 시종일관 지켜지는 일도 거의 없으며 대개는 그림이 마치 야외에서 생겨난 것 같은 기분을 살리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기법상의 새 아이디어와 가연과학 간의 연관성은 분명하지만 그밖에 일종의 정치적 혹은 윤리적 내용이 거기 담겨 있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시원하게 열림 곳으로 나가자, 진실의 빛으로 나가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98 무엇보다도 플로베르는 발자끄의 과장되고 부자연스런 효과와 반대로 모든 멜로 드라마적이고 모험소설적인 것의 포기, 심지어는 단지 스릴만을 주는 플롯의 완전한 포기를 대표하며,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즐겨 그리고, 인물 창조에서 모든 극단을 피하고 선, 악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지 않으며, 그리고 모든 주의와 선전과 도덕적 교훈 등 사건 진행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 간섬이나 사실의 직접적 해석을 피하는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103 “삶이란 너무나 추악해서 그것을 피함으로써만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라고 플로베르는 신음한다. 그의 이른바 우리는 인생을 말하기 위해 태어났지 소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실로 끔찍한 메시지요 불행하고 비인간적인 운명에 대한 체념인 것이다.

 

107 플로베르의 말대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큰 재난이 아니라 작은 재난들이다라는,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생애의 가장 거창하고 충격적인 좌절들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야심이 시들면서 함께 시들어간다는 인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서글픈 사실이다.

 

112 문학이 부여받은 임무는 불행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달래고 그들에게 실제 현실을 감추어 지금도 그렇지 못하고 장차도 불가능한 생활에 한 몫 끼일 수 있다는 환각을 던져 주는 데 있다.

 

133 니체가 지적한 대로, 위대한 대가들 중에서 스물 여덟살이나 되어서도 바그너처럼 그렇게 조잡한 음악가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플로베르의 예외를 뺴고는 확실히 어떤 위대한 예쑬가도 그처럼 오랫동안 자기의 소질을 의심한 이느 ㄴ없다. 두 사람은 모두 예술을 그들의 삶에 부과된 고문으로 느꼈고, 예술이 자기와 삶의 향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감정을 가졌으며, 현실과 예술, 인생의 소유와 그 표현사이의 심연이 메워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다 같이 자기 중심주의와 심미주의에 대한 희망 없고 끝이 없는 싸움을 꼐속했던 동일한 낭만파 세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150 디킨즈의 성공은 동시에 새로운 출판 방식의 승리를 뜼하는 것으로서, 그는 작품을 사서 읽고 즐기는 과정 즉 문학적 소비의 민주화에 따른 모든 혜책과 손해를 함께 맛보게 된다. 폭넓은 독자층과의 끊임없는 접촉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 대중적인 스타일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그는 단순히 위대하기도 하고 대중적이기도 하다든가 또는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극소수의 예술가에 속한다.

 

176 이러한 발전의 최종 단계를 이루는 것이 완전히 예측 할 수 없고 비합리적인 도스또예프스끼의 인물들이다. “그대는 밖으로 보이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측명이 이제는 심리학적인 표준 상태가 되며 이제부터는 인간에세 있어서 이상하고 야릇한 면, 악마적이고 불가사의한 면이 그의 심리학적 중요성의 전제 조건으로 통하게 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인물들에 비하면 그전 문학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소간 목가적이고 박진력이 적다는 인상을 준다.

 

177도스또예프스키의 심리적 통찰이 갖는 깊이와 섬세함은 그가 현대 지성인의 문제성을 체험하는 강도에서 온다. 이에 반해 그의 도덕철학의 순진성을 그의 반합리주의적 탈선 행위와 이성 배반, 그리고 낭만주의와 추상적 이상주의의 유혹을 물리칠 능력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199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유동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두 경향을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양식의 변화가 점진적이었던 것은 그 시대의 경제적 발전이 연속적이었고 사회적 권력관계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에 부합되는 현상이다.

 

201 현대의 기술은 유례없이 생활감정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니와, 인상주의에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동적인 감정인 것이다.

 

201 기술의 진보와 관련하여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로 발전해가는 일로서, 이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207 19세기 후반에는 회화가 주도적 예술이 된다. 문학분야에서는 아직 자연주의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시기에 회화에서는 인상주의가 하나의 독립된 양식으로 발전한다.

 

206 그러나 인상주의적 방법에 채용된 일련의 환원작용이 위에 열거한 몇몇 혁신들로 그친 것으 결코 아니다. 인상주의가 사용한 색채 자체가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근거한 현실상을 변화시키고 일그러뜨린다. 예컨대 우리는 한 장의 종이를, 햇빛 아래 나타나 보이는 갖가지 색깔의 반사에도 불구하고 어느 조명 밑에서든 희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한 대상에서 연상하는 기억된 색채? 그것은 실로 오랜 경험과 습관의 결과인데 ? 직접적 지각에서 얻어진 구체적인 인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상주의는 이론적으로 정립된 색채를 떠나 실제의 감각으로 파고드는데, 그것은 결코 어떤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극히 인위적이요 극도로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이라 할 것이다.

 

215 문학의 역사는 회사의 역사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인상주의는 원래 윤곽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연상인데, 자연주의라는 복합적 현상 전체에서 인상주의의 발단을 식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후기의 발전형태는 상징주의의 여러 현상들과 완전히 뒤엉켜 있다.

 

233 1890년 이후 '데까당스'란 말은 암시적인 느낌을 잃어버리고 '상징주의'가 주도적 예술경향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모레아스는 이 말을 도입하여, 시에서 현실을 '관념'으로 대체시키려는 노력이라고 그 개념을 정의했다.

 

235 상징주의는 시의 임무가 명확한 형태의 틀에 박을 수 없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241 젊은이들의 자아실현 추구와 낡은 초개인적 형식에 대한 그들의 투쟁은 새로운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현상이지만, 1880년대 영국 문학 및 예술에서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비정치적 개인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242 예술가의 언사나 사고방식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생활형식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고 공상을 모르며 거짓말 잘하고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극단적인 댄디즘은 인상주의 스타일의 모든 매력적인 요소를 과시하는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항의의 일부를 이룬다.
 

242 보헤미안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떨어진 예술가라고 한다면, 댄디는 상층계급 쪽으로 탈락해나간 부르즈와 지식인인 셈이다. 댄디의 세심한 멋부림과 사치는 보헤미안의 방탕하고 무질서한 생활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다.


247
사람들은 찰나적이고 거의 포착할 수 없는 느낌의 서정시, 불명확하고 정의할 수 없는 감각적 자극, 연한 색깔과 피로한 음성 등을 노래하는 서정시들을 이리저리 되씹는다. 애매하고 막연한 것, 우리의 감각으로 겨우 잡힐까말까 하는 것들이 시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262
세기전환기에 있어 세계관의 기본 방향을 규정해주는 심리학은 '폭로의 심리학'이다. 니체와 프로이트(S. Freud)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
  
266 “
지성의 목소리는 희미한 소리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이 귀를 기울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리고 수없이 거듭 거절을 당한 끝에 결국 지성의 소리는 듣는 사람을 찾고야 만다.
 
269
프루스트에 이르면 시간은 이미 분해와 파괴의 원리가 아니요, 그 속에서 이념과 이상이 가치를 잃고 삶과 정신이 실체를 상실하는 요소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존재, 생명 없는 물체와 기계작용에 반대되는 우리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 본연의 삶에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그렇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삶의 개개의 순간의 총화일 뿐 아니라 이러한 순간들이 모든 새로운 순간을 통해 획득하는 모든 새로운 국면들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 ‘잃어버린시간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생활에 내용을 부여한다.

 

286 본격적인 경제 위기는 1929년 미국 경제의 파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이 경제 공황은 전시 및 전쟁 직후 경기에 종지부를 찍고, 생산과 분배에 관한 국제적인 계획이 없음으로 인해서 비롯된 결과를 뚜렷이 드러낸 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은 도처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게 되었고 자유 경제와 자유주의 사회의 실패에 관하여, 그리고 닥쳐올 파국과 혁명의 위험에 관하여 말하게 되었다.

 

289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에 와서 처음으로 현실의 환영을 추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포기하고 자연대상의 고의적인 왜곡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표현하려고 한다. 입체파, 구성주의, 미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 주의 등은 하나같이 자연을 따르고 현실을 긍정하는 인상주의로부터 단연코 돌아선 것이다.

 

289 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은 이미 자연의 재현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이 예술이 자연과 갖는 관계는 일종의 폭력적인 것이다. 굳이 더 덧붙이자면 현실과 나란히 공존하고 있으나 현실을 대체할 의사는 없는 그러한 대상들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마술적 자연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브라크, 샤갈, 루오, 피카소, 앙리 루소, 쌀바도르 달이 들의 작품들을 대할 때 그것들은 모두 각양각색이지만 우리는 항상 어떤 또 다른 세계, 초현실의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거기에는 일상적 현실의 특징이 아무리 많아도 이러한 현실을 넘어서, 이러한 현실과 양립하지 않는 어떤 존재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290 그러나 현대 예술은 다른 관점에서 보아도 반인상주의적이다. 현대예술은 인상파의 부드러운 화음과 아름다운 색조를 거부하는, 근본적으로 보기 싫은예술이다. 회화에서는 회화적가치를 부인하고, 시에서는 정서의 조화와 아름답고 일관성있게 구성된 이미지를 배격하며, 음악에서는 멜로디와 음조를 파괴한다. 현대 예술은 모든 즐겁고 기분 좋은 것, 모든 순전히 장식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한사코 기피하는 것이다.

 

290 인상파 작곡가인 드뷔시가 이미 독일의 감상적 낭만주의에 비해 차가운 음색과 순수한 화음구조에 치중하고 있지만, 이러한 반 낭만적인 경향은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 20세기 작곡가에 이르러서는 감성적인 19세기 음악과 철저히 절연하여 감정 표현의 전면적인 억제로까지 발전한다.

 

290 인상주의도 현대의 심미주의 문화가 처한 위기를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이 문화의 그로테스크한 면, 허위에 찬 면을 처음으로 강조한 것은 인상파 이후의 예술이다. 모든 감각적, 쾌락주의적 감전에 대한 투쟁이 여기서 연유하며 피카소, 카프카, 조이스 등의 작품에서 암담하고 우울하고 고통에 참 면도 여기서 온다. 종래 예술의 감각주의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가상적 세계를 해체하려는 욕망이 절대적이어서 기존 예술의 기호체계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랭보처럼 그들 자신의 독특한 예술 언어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가 하면 쇤베르크는 12음계법을 발명했으며, 피카소가 그림 하나를 그릴 때마다 번번이 회화의 기법을 새로 발견하려는 듯이 그린다는 발은 그의 창작 태도를 올바르게 지적한 것이다.

 

293다다는 하나의 전시 현상으로서 전쟁으로 달음질친 문화에 대한 항의였다. 즉 일종의 패배주의였던 것이다. 다다운동 전체의 의의는 기존의 모든 형식과 상투구의 유혹에 저항했다는 데 있다.

 

294 왜냐하면 문학에서 테러의 철저한 실천은 침묵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 이것은 곧 지적 자살행위이며, 초현실주의자들은 오로지 부단한 자기기만을 통해서만 이러한 자살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초현실주의의 이론처럼 경직되고 편협한 인습은 없으며 또한 철두철미한 초현실주의자의 예술처럼 맥빠지고 단조로운 예술은 없다.

 

294 그러나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들은 형식과 합리적 구성을 갖춘 어떤 것, 객관적이고 외면적인 어떤 것이 도대체 인간을 표현할 수 있는자를 의심할 뿐더러 인간을 표현한다는 일 자체의 가치를 의심한다. “인간이 자기의 자취를 남긴다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다이즘은 이렇게 심미주의적 문화의 허무주의 대신에 예술의 가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상황의 가치를 의심하는 새로운 허무주의를 내놓았다. 그들의 선언문에서도 말했듯이, “영원의 척도로 재볼 때 모은 인간행위는 쓸데 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295 한편으로 입체파와 구성파가 극단적인 형식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형식파괴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들 경향이 이처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타난 것은 실로 처음있는 일이다. 사태가 더욱 특이한 것은 이 대립되는 두 양식이 갖가지 재미있는 혼합형과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경쟁하는 두 경향이라기 보다 일종의 의식분열의 인상을 준다. 여러가지 다른 경향의 스타일을 한 몸에 지닌 삐카소는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 이기도 하다. 빠까소를 단순히 하나의 절충주이자요 모방화의 대가라고 부른다거나, 자신이 깨뜨리고 있는 예술적 규범을 얼마나 잘 체득하고 있는가를 과시하려는 일염으로 이것저것 해본다고 말한다거나 또는 스뜨라빈스끼와 비교하여 스뜨라빈스끼 역시 자시느이 모델을 한 번은 바흐 다으메는 뻬르꼴레지 또 다음에는 차이꼬프스끼 하는 식으로 항상 바꾸어 현대음악에 써먹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써 사태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97다다이즘은 문화형식의 불모성에 절망하여 예숭의 파괴와 혼돈으로의 복귀를, 즉 가장 극단적인 의미에서의 낭만적 루쏘 주의를 부르짖었던 것인데,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으 방법에 자동기술법을 보완함으로써 이미 혼돈으로부터, 무의식과 비합리의 세계로부터, 꿈과 영혼의 통제 안된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진리, 새로운 예쑬이 아노리라는 믿음을 표명한 셈이다. 초현실주의자들도 다다이스트나 마차가지로 예술 그 자체는 부정하고 단지 이성을 초월한 어떤 인식행위의 도구로서 예술을 인정할 뿐이다. 즉 그들은 무의식 속으로 그리고 이성 이전의 혼돈속으로 몰입에서 예술의 구원을 찾으며, ‘자유연상이라는 정신분석학의 방법, 즉 아무런 합리적, 도덕적, 심미적 통제도 없는 사고의 자동적 전개 및 재생의 방법을 빌려오는 것이다.

 

299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 피아노위의 단나귀 시체,또는 장롱 처럼 열리는 여자의 나체 등 한마디로 말해서 비동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거싱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이런 형식들은 물론 모두 매우 역설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립자화된 세계에 저 나름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총체성에 대한 거의 광적인 정열이 예술을 사로잡은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관련지어질 수 있고, 모든 것이 그 자체 외에 다른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으며, 모든 것이 전체의 어떤 법칙을 자기 속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격하, 이른바 예술의 비인간화는 그와 같은 느낌과 결부되어 있다. 모든 것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세계, 도는 모든 거싱 동등한 의의를 지닌 세계에서 인간은 탁월한 존재자로서의 지위를 잃고 심리학은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301 소설 줄거리의 포기, 주인공 인물의 제거, 심리소설의 와해,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에서의 몽따주 수법 및 시간,공간을 혼합한 형식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시간 개념의 기본 요소는 동시성이며 그 본질은 시간적 요소의 공간화인데, 이러한 시간 개념은 제일 나리 어린 예술이요 베르그쏭의 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장르인 영화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영화의 수법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특징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한느 것이어서 현대예술의 시간 범주가 영화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며, 현대예술에서 영화가 비록 질적으로 가장 풍부한 장르는 못 되더라도 스타일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06 오늘의 인간에게는 모든 시사적인 적, 동시대적인 것, 현시덤에 함께 얽혀있는 것들이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에 차 있는 까닭에 동시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의 눈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중세의 정신세계가 내세 지향 기분으로 가득 찼었고 18 세기 계몽운동기의 지적 풍토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었던 것처럼,현대의 정신 세계는 직점적 현재성과 동시성의 느낌에 젖어 있다. 현대인은 갖가지 사물 및 사건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상호 작용에서 현대도시의 거대함과 현대 기술문명의 기적을, 그리고 그 사상세계의 복잡성과 그 심리의 애매성을 체험하고 있다. ‘동시적인 것의 매력 ? 한편으로는 같은 사람이 같은 시작에 상이하고 상호 무관하고 모순된 것을 수없이 많이 체험하는자 하면 한편으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체험하고있다는 사실의 발견, 그리고 지구상에 서로 격리된 여러 곳에서 같은 일이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있다는 사실의 발견, 이러한 매혹적 발견과 그에 따른 세계주의를 현대의 기술문명은 현대인에게 의식시켜 주었는데 이러한 세계 주의야말로 새로운 시간 개념의 근원이며 현대예술의 삶을 경련적으로 그리는 원인일 것이다.

 

310 만성병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듯한 오늘날 영화의 정신적 위기는 무엇보다도 영화가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단. 아니, 작가들이 영화로 길을 찾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욱 타당한 말일 것이다.

 

314 하지만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예술제작에서 대중의 영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테네나 중세에는 대중이 거기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술발달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드링 수요자로 등장하여 예술을 즐기는 대가를 돈으로 치르게 된 후에야 그들이 돈을 내는 조건 자체가 예술사상 하나의 결정적 요소가 된 것이다.

317 ‘모든 사람은 자기 행운의 창조자다’ ? 이것이 중간계급의 가장 중대한 신조이며, 입신 출세가 그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원망적 환상의 기본 주제를 이루고 있다.

 

317 활동 사진이 영화 예술로 발달하는 데는 두 가지 없적이 그 기초를 이루었다. 하는 미국이 영화감독 그리피스의 공로라고 하는 클로즈업의 발명이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쇼트 커팅이라 하여 러시아인들이 발견한 새로운 화면삽입 수법이다.

 

III.    내가 저자라면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서구 문화의 중심지인 유럽에서 문학과 예술이 어떤 사회적인 배경하에서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 매우 자세히 기술해 준 책이다. 저자는 매우 차분하고 꼼꼼한 자세로 어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 당시의 사회상과 맞물려 독자나 대중들은 어떻게 그 작품을 받아 들였으며 그 작품이 또 다시 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낱낱이 밝혀준다.

 

그러나, 이 책이 어느 정도 잘 쓰였는지를 판단하려면 독자가 어느 정도 문학이나 예술의 역사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참으로 읽기가 힘든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미술계의 인상주의영화에 대한 부분은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을 덮으며 드는 아쉬움은 저자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것이 더 많다.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나 작품들이 없으니 그것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나 사회사적인 의미 부여도 도대체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의 생성 과정 그리고 그것들이 시대와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에 대해서 알아 보려면 반드시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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