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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2일 09시 55분 등록
 

금빛 기쁨의 기억 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일빛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강영희 (1960 ~    )


강영희.jpg

그녀는 대한민국 1% 미만의 수재들이나 갈 수 있다는 서울대 출신이다. 한마디로 똑똑하다는 이야기다. 그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여성들이 거의 선호하지 않는 학과다. 독특하다. 그리고 덧붙여 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양역사와 한국어? 언어를 통한 역사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 후 다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영화학을 전공하였다. 전혀 엉뚱한 경로다. 동양역사, 한국어 그리고 영화. 그렇다면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문화다. 문화야말로 역사와 언어 그리고 영화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 개념의 영역이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그녀는 문화평론가가 되었다. 비록 처음은 연극평론부터 시작하였지만, 종국에는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관심은 문화다. 그것도 서양의 문화가 아닌 동양의 문화, 그 중에서도 콕 집어 한국의 문화, 우리의 문화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문화란 어떤 것일까? 그녀가 생각하는 문화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가 평소 쉽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다. 특히 한국인 고유의 문화란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고, 새로이 정립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역설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월간문화예술에 실렸던 그녀의 글 “공간인식 되찾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정신 되살려 내는 것”을 같이 한번 읽어 보자.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길에 대전에 들른 적이 있다. 역앞 광장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곳의 강렬한 인상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설렁탕에 딸려 나온, 고춧가루를 잔뜩 뿌린 굵다란 깍두기와 어딘가 비슷한, 엄청나게 큰 빨간 글씨의 초(超)대형 간판들이었다. 그렇게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쓰인 간판은 그때껏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느낌으로 남은 빨간 초대형 간판의 기억은, 팔십년대 초반 새로 개발되어 북적이는 강남의 먹자골목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이번에는 낯익은 불쾌함으로 되살아났다. 돌아보니 ‘군화발 장단과 새마을 노래의 곡조에 맞춰’ 조국 근대화에 몰두하던 칠십년대의 내면풍경이, ‘칼라티비의 영상과 디스코 장단에 맞춰’ 선진조국을 구가하던 팔십년대의 내면풍경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휑하니 넓혀진 동네 길가에 새로 들어선 가게들에 내걸린 예의 빨간 대형간판과 맞닥뜨린 나는,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불쾌감 대신 수치심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역전의 뜨내기 음식점이나 흥청거리는 신흥 번화가의 먹자골목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의 전통적인 주택가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그것은 다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는, 우리들 마음 속의 굳은살로 자리잡은 것일런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여유로운 자기중심 되찾기 위한열쇠


누군가 반문할런지 모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뭘 그러느냐고.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바로 그 먹고 살아야겠다는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 없어도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뒤집으면 결국 ‘자신에 대한 반성’이 되기도 할텐데 말이다.

인간의 삶은 시간이라는 길다란 좌표와 공간이라는 넓다란 좌표가 4차원적으로 겹쳐지면서 굴러간다. 시간의 화살 위에 올라탄 인간이 잡담 제하고 일직선적 목표의식에 몰두한 채 앞만 보고 나간다면, 공간의 치마폭에 싸인 인간은 반성적 성찰의 시선으로 이모저모 주변을 둘러본다. 앞의 것이 개체적인 경쟁을 지향한다면, 뒤의 것은 공동체적인 상생(相生)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생명 에너지란 것을 가정한다면 그것은 언제부턴가 시간 좌표쪽에 지나치게 강박된 반면 공간 좌표쪽에는 반대로 그만큼 무감각해졌다. 앞서 말한 바,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놀랄 만큼 결여되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빨간 초대형 간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이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한 삶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상 시간에 대한 인식보다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따지고보면 시간이란 추상적인 것이며 설사 시간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거머쥔다 해도 그것은 연속해서 변태(變態)를 거듭하는 거푸집의 자취로만 남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넘쳐나는 생생한 실체로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은 바로 공간이라는 언덕에 기대서 전개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얼핏 평범해 뵈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자신의 문화(文化), 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여유로운 자기중심을 되찾기 위한 열쇠가 되리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는 전통적인 공간인식


서구열강의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시작된 19세기 이래, 서양의 근대(近代)를 따라잡기 위한 안간힘으로 시작된 시간 편향은 갖가지 조급증과 강박관념을 낳으며 우리를 불행한 자기부정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하면 된다’, ‘속전속결’, ‘남부럽지 않게’ ‘새벽종이 울렸네’와 같은 말들에 등떠밀리면서 저들(서구)의 피안(彼岸)을 넘겨다보는 시간축의 경쟁에 비끌어매인 결과,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 뿌리내린 풍요로운 공간감각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거세해버리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것은 뭘까.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기실은 주변의 집과 거리뿐 아니라 초목이나 산천과 같은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는 전통적인 공간인식이다. 그것은 김정희의 ‘대동여지도’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옛지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산천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자연을 산맥(山脈), 수맥(水脈)처럼 유기체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인간을 동종의 기(氣)를 주고받는 호혜적인 관계로 여기는 생각이다.


진정한 문화의 영혼이 깃드는 곳 필요


개인이 차지한 공간을 주변과 단절된 고립된 영역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개인을 기계적으로 분리가능한 원자와 같은 무엇으로 파악하는 서구적인 공간인식이란, 본질적으로 사회, 자연과 같은 주변의 공간을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본래적인 공간인식을 서구의 그것으로 바꿔치기 당한 것은 엄밀하게 말해 또다른 무엇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의 공간인식을 싹둑 잘라내버린 형국이랄 수 있다. 따라서 잃어버린 우리의 공간인식을 되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느새 빈칸이 되어버린 공간인식의 부재 자체를 치유하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공간인식 상실은 언젠가부터 우리로 하여금 오래된 유적이나 오래된 집, 오래된 가구와 가재도구를 거추장스러워 하면서 주변에서 몰아내도록 부추겼다. 이같은 것들이야말로 공간과 시간이 만나서 이룩하는 진정한 문화(文化)의 영혼이 깃드는 곳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공간인식을 되찾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의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이 곳, 문화의 영혼을 박제해버린 문명(文明)의 상징인 건조한 시멘트의 숲을 벗어나야 한다. ‘빨리빨리’라고 쓰인 완장을 찬 시간(時間)이란 독재자에게 볼모로 잡힌 우리의 자화상이 어른거리는 곳, 새빨간 초대형 이정표들이 끔찍한 악몽속의 한 장면처럼 삐죽하게 고개를 내미는 그런 곳에서 말이다.


출처 : http://www.arko.or.kr/zine/artspaper99_11/index9911.htm (월간문화예술)



결국 우리가 최근 활용하고 있는 시간관리의 개념은 ‘빨리빨리’를 조장하는 서구의 것으로써 우리의 유전자와는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 이형적 성질의 것이라는 말이다. 직선적이며, 한면만을 강조하는 서구의 사상개념으로는 공간적이며, 자연과의 상생,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의 고유 사상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문화는 서구의 직선적 사고와 한국의 공간적 사고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으로써, 그것이야말로 바로 참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잊고 살던 우리의 주변 공간들인 오래된 유적, 오래된 집, 가구, 가재도구와 같은 것들을 되찾음으로써 공간인식을 회복하는 것만이 결국 우리 문화의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 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그녀는 모신문사의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마흔이 되고서야 나를 키운 8할이 내가 태어나 살았던 서울 북촌 기와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그녀가 이처럼 문화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고, 자신 안에 내재된 ‘내 안의 한국인’을 찾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관에서 우연하게 찾아왔다. 그녀는 그 계기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선비정신의 세례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제가 푸른 기 도는 순백자나 탈속(脫俗)의 해학이 넘치는 ‘골코름한’ 철화백자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영혼이 말갛게 씻기는 상쾌함을 맛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개인사를 하나하나씩 양파 껍질 벗기듯이 찾아 들어갔고 결국 기억의 한편에 고이 숨어숨어 있던 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태어난 ‘서울 북촌의 조선식 기와집’과 ‘외할머니’의 존재였다. 이 발견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이 서구의 사상으로 인한 한국 고유 문화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음을 인식하고, 이 큰 병이자 장애물로부터 벗어나고자 서양사상부터 시작하여 동양 풍수, 음양오행 등 많은 연구를 해 오고 있다. 그리고 2004년 발간한 저작, <금빛 기쁨의 기억>은 그러한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자, 병치료를 위한 진단치료서이기도 하다.


저자 강영희는 이 책 <금빛 기쁨의 기억>을 쓰기 전에 1994년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란 문화평론집을, 1998년에는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만났다>를 발간하였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세계인의 자화상이 세계시민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밖으로 내딛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한국인의 자화상은 한국인의 동상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서서 안으로 옥말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다른 자화상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지난 세기의 세계사이며, 구체적으로는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이 동양의 수많은 나라들을 식민지와 반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다. 이에 따라 한국은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깃발 아래 ‘동양 속의 서양’을 자처한 일본에 의해 식민지를 강요당했고, 한국인은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쪽에서는 척사(斥邪)와 쇄국(鎖國)에서 민족주의(民族主義)와 주체사상(主體思想)에 이르는 구호가, 다른 한쪽에는 개화(開化)에서 세계화(世界化)에 이르는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는 자기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자화상과 자기를 바꾸려는 자화상이 공존하게 되었다.(15-16P)


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리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는 것. 이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인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의 귀환을 의미한다.(17P)


진실을 말하면 겸재는 동북아시아의 문화권 전체를 시야 속에 확보한 세계인인 동시에 진경산수의 아름다움을 시야의 중심에 놓은 한국인이었고, 겸재의 진경산수는 ‘밖으로 향한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결과 탄생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18P)


강서대묘 사신도의 솟구치는 생기,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정겨운 봉안, 고려 수월관음의 휘황한 신비, 겸재 진경산수의 칼칼한 금수강산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인에 대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승리가 아니라 그같은 구별과 경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 안아 한국을 피워올림으로써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였다.(19P)


백남준은 예술의 성격을 ‘남을 흉내내는 것’과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컨대 예술은 아이덴티티를 구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것이 예술의 큰 기능입니다. 남의 유행에 동의하는 것과 아이덴티티는 상반된 개념이지요. 예술은 결국 모순입니다. (김홍희, 「백남준 vs 김홍희」,『백남준과 그의 예술』) (20P)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일찍 서구문물에 개명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한 고전인이었던 것이다.(김용옥, 「도올이 백남준을 만난 이야기」,『석화도론』) (22P)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을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강서대묘의 사신도, 이응노가 즐겨 그린 풍죽(風竹)을 떠올려 보라. 오늘의 창조와 관련된 예술가인 이상, 그의 마음 속에 세계인과 한국인의 두 얼굴이 공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것들은 결코 제로섬 게임과 같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며, 분열적인 모순이 아니라 통합적인 모순이다. 창조의 빛이란 세계인 윤이상과 한국인 윤이상이, 세계인 이응노와 한국인 이응노가 부싯돌의 스파크와도 같이 절묘하게 부딪쳐서 피워올리는 한 줄기 섬광이다. 마애불과 쇠라의 그림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박수근의 그림도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은 아닐까. 이것들은 세계인에 대한 한국인의 승리도 아니고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승리도 아니며, 그같은 제로섬 게임을 벗어나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의 열매다.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兩者擇一)이 아니라 회통(會通)이다.(23-25P)


이제는 새로운 개안(開眼)이 필요하다. 한국인과 세계인, 토속성과 세계성이 창조의 마음을 징검다리 삼아 경계를 허물고 손잡는다면, 그것들은 서로 다른 둘이고 모순이되 상생적인 둘이며 창조적인 모순이 될 것이다.(26P)


세계인 백남준이 전통적인 인간의 감정과 소양을 지닌 순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이다. 세계인 백남준의 예술이 한국인의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전통을 기억의 형태로 몸 속 가득히 저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세계인이자 ‘지구촌 민주주의 건달’인 그가, 동시에 거뜬히 순한국인이자 전통적 인간일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27P)


러셀은 『철학의 문제들』에서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28P)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비극은 인간이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시간의 엔트로피 법칙 또는 불가역성은 덧없음이라는 인생의 쓰디쓴 진리를 탄생시킨 우주의 원죄다. 이같은 시간의 불가역성에 항거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뛰어넘는다. 기억의 다른 이름이 추억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기억은 인간을 자신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가두어놓는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28P)


기억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되짚어 지난 순간을 되살려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식의 밑바닥에 저장된 심상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 호출당할 경우 기억의 형태로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억 속의 심상’에 의지하여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는 세월의 무상함에 대항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인간에게 정체성의 후광을 부여하며 주체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인문적인 가치의 본령이다. 역사가 그렇고 문학 역시 그러하며, 이것을 업으로 짊어진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가 아닌가. 기억의 두레박으로 무의식의 우물에서 의식의 샘물을 길어올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지난 세기의 예술정신ㅇ르 대표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작품의 핵심어인 기억이, 산업혁명에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의 심장인 욕망과 이에 따른 죄의식을 오히려 빛나는 자의식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29P)


백남준에게 있어 과거의 전통이란 저승이요, 현재의 유행이란 이승에 비유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사진에서처럼 한덩어리로 느껴지는 순한국인 백남준과 세계인 백남준이란,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한꺼번에 던져 넣어져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변화된 합금과 같은 것일는지 모른다.(30P)


한자로 쓰여지기도 하고 한글로 쓰여지기도 한 지명(地名)에 의해 불려온 ‘기억 속의 심상’은 근대라는 미혹과 몸을 섞기 전의 처녀성과도 같이 싱그러우면서도 수줍은 느낌으로 되살아난다.(31P)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을 토대로 한 것이며, 새롭게 창조되는 오늘의 심상의 전생(前生)이다.(31P)


전통이란 결코 이러한 손에서 손으로의 손쉽게 넘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피로써 피를 씻는 악전고투를 치러 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고심참담 쇄신분골하여 죽음으로써 피로써 생명으로써 얻으려 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요, 주고 싶다 하여 간단히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선가(禪家) 수업행사에 잘 쓰는 단비(斷碑) 봉갈(?喝) 기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그 표전법(表詮法)이 전혀 이 피에서 피로의 생명으로서의 획득을 상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영원히 지금에서 늘 새롭게 파악된 것이다.(고유섭, 「조선 미술 문화의 몇낱 성격」) (32P)


살아 있는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되살아난 것이다.(32P)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취향을 즐겁게 뛰놀도록 하는 ‘기억 속의 심상’이 ‘생의 지주’와도 같이 우리 안에 늘어서 있어야 한다. 취향의 뜨락인 ‘기억 속의 심상’의 상실이야말로 전통의 단절에서 창조의 불능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감옥이다.(32P)


미륵반가상이 한국인 고유의 사상이 바탕이 된 원형적인 미의 심상이라면, 「진진묘」는 장욱진이라는 개인의 내면을 통하여 재창조된 개성적인 미의 심상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관계라고 할까.(36P)


기차가 있는 풍경


백남준이 전통적인 인간의 감정과 소양을 지닌 순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뛰어넘는다. 기억은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상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형성한다.(38P)


‘기차가 있는 풍경’이란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속에서 근대화를 향해 강박적으로 내몰리는 조선사람의 조급함을 상징하는 기호다.(41P)


조급함의 한국적인 양상은 중국의 혁명이나 일본의 팽창처럼 현실에서 자신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더한층 강렬하게 끊어오른, 관념적인 조급함이다. 비등점에 가깝도록 뜨거워진 관념적인 조급함의 열기야말로, ‘기차가 있는 풍경’의 안쪽에 자리잡은 지난 세기 한국인의 내면 풍경이다.(43P)


침략과 수탈의 핵심 수단으로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에 건설된 철도는 식민지의 백성을 불행으로 몰아간 원흉이었다. 조선의 철도는 식민지배의 효율을 높이기 이한 사회 간접자본이었고, 철도의 부설은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과 수탈의 과정이었다.(44P)


경부, 경의철도는 한국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된, 아니 일본이 한국인의 생명과 생활 그 자체를 희생으로 삼아 만들어 낸 휴먼 코스트(human cost)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정재정,『일제침략과 한국철도』) (44P)


존재의 속도를 앞지르는 기차의 속도에 따라 생겨난 조급함의 열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억의 되새김질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근대 한국인의 불행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보다 앞서고자 하는 조급함의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가끔씩 시간의 흐름에서 되돌아설 때만 확보되는 기억 속의 심상을 상실한 근대 한국인은, 마침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리는 비극에 직면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 한국인의 기억상실이다.

근대 한국인이 집단적인 기억상실에 빠진 징후는 그들이 오랜 세월 손때 묻히고 눈도장 직어온 낯익은 취향과 결별한 데서 찾아진다.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찰나(刹那)인 동시에,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깃들이는 영겁(永劫)이다. 따라서 기억상실에 빠진 자들의 취향이란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와도 같이 무의미하고 심지어는 추하기까지 하다.(48P)


구더기가 들어 있는 된장찌개에는 하숙집 노파로 대표되는 전근대인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 얹혀 있고 운치 있는 맛이 있는 샌드위치에는 신여성으로 대표되는 근대인에 대한 호의의 감정이 실려 있다. … 몰락하는 전근대인의 취향을 대변하는 소품이 된장찌개라면,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면모로 거듭나는 근대인의 취향을 대변하는 소품은 샌드위치다.(49P)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다.(49P)


특수한 생활조건과 관련된 조건의 산물인 이 미적 성향은 동일한 조건의 산물인 모든 사람들은 함께 묶어주는 반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는 구분시켜 준다. 왜냐하면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삐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50P)


취향이란 저마다의 몸 속에 자리잡은 나름의 척도인 까닭에, 낯익은 취향 속에 들어 있는 자신의 척도를 향해 침을 뱉고 낯선 취향 속에 들어 있는 타인의 척도를 향해 미소짓는 것은 결국 저다움에 대한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 취향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라는 영혼이 깃드는 육체와 같은 것이며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통합되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이룩한다. … 자신의 취향 위에 타인의 취향을 겹쳐 놓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조적 모순이다.(50P)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피카소에 의해 간택된 아프리카의 민예는 아프리카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카소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점,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민예가 그것의 발견자인 일본인의 놀라운 직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57P)


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는 하위사회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내세워 그들의 미와 상상력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자기소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같은 근대 속의 야만을 동양주의 또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불렀다.(60P)


한국 예술에는 어린아이에게 어울리는 ‘이행(易行)의 도’와 타력의 성불이, 일본 예술에는 어른에게 걸맞는 ‘난행(難行)의 도’와 자력의 성불이 있다는 것, 따라서 한국 예술과 일본 예술이 하나로 합쳐지는 ‘미래의 동양문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타력의 미와 일본의 자력의 미의식이 만나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말한 일본인 야나기가 미의식의 위계질서를 토대로 해서 그려낸, 한일문화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이다.(68P)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일본의 국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동참하는 ‘세계인’이기를 거부하고 ‘일본인’이기만을 고집한, 이를테면 동북아시아 세계의 왕따(?)를 자처한 일본의 독자적(獨自的)인 사상이다.(76P)


결국 야나기가 사랑한 것은 한국인의 미의식에 따라 창조된 한국 도자기가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에 따라 향유된 또 하나의 한국 도자기였다.(80P)


타고난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일본적인 삶이란 결국 신이 마련한 길(神道)에 순종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구하는 삶인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애니메이션(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등장하는정령적인 자연의 세계는 국학적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끝없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정령적인 자연은 신의 작위(作爲)를 상징하며, 그 속에서 유영하듯이 살아가는 동심의 인간은 인간의 무작위(無作爲)를 상징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신의 세계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는 인간의 이야기다. 그곳의 음식에 허락없이 손을 대었다가 돼지로 변하는 치히로의 부모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지키지 않고 상급의 위계질서에 천방지축 끼여드는 불순종(不順從)으로 인하여 벌을 받으며, 그곳의 위계질서를 지혜롭게 살펴서 적절한 일을 맡는데 성공한 치히로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지키는 순종(順從)으로 인하여 은총을 받는다.

신이 마련한 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순종을 통해 신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랄까. 순종과 은총의 함수관계 속에서 은총을 대가로 순종을 강요당하는 거세된 존재인 일본적 인간상이 그들의 마음에 달콤한 비애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그렇다면 일본인에게 있어 거세된 순종을 의미하는 무작위(無作爲)의 자연스러움과 달콤한 비애(悲哀)를 의미하는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는 하나인 것이며, 따라서 조선 예술론의 ‘무작위의 미’와 ‘비애의 미’도 하나인 것이다. 신을 정점으로 해서 인간 사회의 위계질서로 이어지는 은총과 순종의 함수관계. 이같은 일본 국학의 핵심을 토대로 하여 피어오르는 미가 ‘무작위의 미’와 ‘비애의 미’인데, 야나기는 이같은 위계질서의 끄트머리에 한국인과 한국 예술을 끌어들이고자한 것이다.(85-86P)


일본문화 특유의 미의 범주에 시부사(しぶさ)라는 것이 있다. 야나기에 따르면, 시부사에서는 ‘조작을 떠난 고요함’ 즉 ‘자연스러움의 정취’를 볼 수 있다고 한다.(87P)


임제 선사는 “겸손함에는 조작이 없다”고 했지만 시부사에서는 조작(Artifice, Artificialness)을 떠난 고요함, 즉 자연스러움의 정취를 볼 수 있다.(야나기 무네요시, 「시부사에 대하여」) (88P)


시부사의 아름다움이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것은 함마디로 함축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본래 시부사의 말 뜻은 감즙의 ‘떫은 맛’에서 감색의 ‘차분함’으로, 다시 차분함의 ‘내면적인 깊이’로 확장된 것이다.(88P)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야나기가 한국 예술의 ‘저 호소하는 듯한 선’에서 읽어낸 말할 수 없는 정과 쓸쓸함의 아름다움과 동경하는 마음의 눈물이 바로 모노노아와레라고 불리는 일본 국학의 정서적 핵심이라는 것이다. 야나기가 말하는 한국 예술의 ‘선의 아름다움’이란 일본인 야나기의 미의식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것이며, 그것의 배후에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 예술에 덮어씌우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자리잡고 있다.

제국의 지식인 야나기는 제국과 식민지의 위계질서에 따라 한 단계 높은 자리에서 식민지의 예술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을 통해 한국 예술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한국 예술의 ‘선의 아름다움’에서 모노노아와레라는 일본의 정서를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후광 앞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안경을 쓰고 있던 일본 청년 야나기의 눈에 비친 환상의 실체였다.(94P)


한국 예술의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자유곡선이 아니라 자연곡선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경우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한옥의 지붕곡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한옥의 지붕곡선은 제비가 물을 차고 올라가듯이 끄트머리로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들려올라간 자연곡선으로서, 끄트머리까지 직선으로 가다가 추녀께에서 갑자기 치솟아오르는 중국집 지붕의 자유곡선이나 시종일관 직선적인 요소에 의해 주도되는 일본집 지붕의 선과 구별된다. 이에 대해 조지훈은 “멋의 형태미는 직선보다는 항상 곡선에 있으나 과도하게 곡절된 형상에는 멋이 없다”고 말하면서 저고리 깃이나 버선코의 선, 한옥의 지붕곡선을 예로 들었다.(96P)


추녀와 추녀를 연결하는 가늘고 긴 곡선부재인 평교대(平交臺)는 곡선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미리 재료를 구해서 양쪽을 받치고 가운데 돌을 달아매 자연스럽게 처지도록 만든다. 결국 지구의 만유인력에 의해 처진 평교대의 곡선이 한옥의 지붕곡선이 되는 것이다.(98P)


한옥의 지붕곡선이 현수곡선으로 만들어진 것은 장마철의 집중호우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빗물을 빨리 배수시키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또한 주변의 산세 특히 뒷산과의 조화를 고려한 미학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함과 동시에 주변의 산세 특히 뒷산과의 조화를 고려한 미학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98P)



고대인들의 미의식은 주제가 정지태에 있지 않고 힘찬 운동 계열에 있다는 것. 자웅이 합체 되고 음양이 하나 되어, 마치 태초에 내딛는 첫발자국과도 같이 고도로 응축된 힘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 이같은 미의식의 특성은 비단 사신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의 지붕곡선이나 의복의 선, 조다기의 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그것들은 근엄하게 팔장을 낀 듯한 정지태에서 벗어나, 살아숨쉬며 꿈틀거리며 심지어는 슬쩍 말까지 걸어오는 듯한 움직임의 기미를 드러낸다.(100P)


일본의 기교(技巧)와 한국의 격(格)


한국인의 미의식 속에서는 야나기의 말맞다나 일본적인 기교에 해당하는 ‘꼼꼼한’ 무엇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분방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흔히 격(格)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빈틈없이 맞추어야 하는 눈앞의 실선 같은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의식되는 머리 속의 점선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한국의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 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106-107P)


멋은 먼저 형식상의 격식을 바탕으로 한다. …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變格), 변격이면서도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초격미(超格美)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변격이합격(變格而合格)’이요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할 수 있다.(107P)


이에 이르러 멋은 이미 도의 경지임을 알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적 가치의 하나인 멋은 특수미로서 도리어 진(眞)의 가치, 미(美)의 가치를 종합하고 넘어서 성(聖)의 가치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미로 들어가 미를 벗어나는 ‘멋’은 미 이상 선이미(善而美), 진이미(眞而美)이면서 또한 그대로 미의 범주인 셈이다.(조지훈 「멋의 연구」) (109P)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의 미를 형(形)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통해 바라본 야나기는 거기에 불가사의한 신비의 분위기를 덧씌워 부정형, 불균제, 불균등 같은 것으로 정리해 낼 수 밖에 없었다.(111P)


조선의 둥근 달항아리는 철없는 아이의 천진함이 아니라 철없는 아이와도 같은 경지에 올라선 대가(大家)의 원숙함에 비유된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적인 수양을 비롯한 피나는 단련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며, 다시 그같은 경지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을 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경지이다.(113P)


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야나기가 한국 예술에서 민예성을 발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 예술을, 형식의 기교로 정신의 격을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자 창작이다. 난쟁이의 잣대로 거인의 키를 잰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한국 예술의 상(象)의 미의식을 일본인의 형(形)의 미의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다.(118P)


자연의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勢)


세(勢)라는 것은 도학을 부정하고 인욕을 긍정하는 일본적 사고의 산물이다.(123P)



3부 한국인의 미의식


아름다움의 취향을 달리 말하면 미의식이 된다. … 아름다움이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창조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성찰이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28P)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어에서 아름다움의 고어인 ‘아?다옴’의 본뜻이 사호(私好) 즉 ‘제 마음에 어울린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취향이 아닌가.(129P)


저다움의 취향이 성찰의 강을 거슬러 창조의 피안으로 올라간다는 것. 이것은 취향이 단지 미(美)와 관련된 것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성찰의 강에서 피어나는 안개에는 미뿐 아니라 진과 선도 한데 섞여 있다. 그리하여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삶의 지혜를 대표하는 미의식은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대표한다.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멋’이라는 이름의 미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130P)


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가치관념이 바로 ‘멋’이다. 멋은 미의식일뿐 아니라 정신미(精神美)를 지향하는 생활의 이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인의 미의식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인의 가치관과 핵심을 탐구하는 일이 된다.(131P)


음양오행과 상(象)의 미의식


한국인의 미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형(形)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은 형과 상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물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생겨나는 것이 사물의 형상이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익숙한 것은 어디까지나 형인 까닭에 무형의 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이, 상이란 형의 기본을 이루는 것일 뿐 아니라 형을 통해 자취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132P)


한국인의 국민 상식인 음양오행사상의 기초가 바로 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음양오행사상을 관통하는 상이란 언제든지 곁에 놓아두고 사용해온 일상의 척도였다. 음양오행사상은 크게 형이상의 측면과 형이하의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형이상의 측면이란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철학으로 전개된 우주의 생성론이며, 형이하의 측면이란 음양가(陰陽家)에 의해 발전된 만물의 변화론이다. 음양오행사상은 이처럼 우주의 생성론과 만물의 변화론이 결합하여 인식과 실천의 체계를 이룬 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형 너머의 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주 만물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134P)


음양오행이란 우주와 만물의 성질에서 상(象)을 취한 다음 음양(陰陽)의 개념을 붙이고 다시 오행(五行)의 개념으로 세분화한 것이다.(136P)


‘눈에 보이는’ 형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이 때문에 흔히 멋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성격을 지닌다. … 흥미로운 사실은, 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부터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나간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양오행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특히 상이란 형상에서부터 심상에까지 걸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에는 미의 문제뿐 아니라 진과 선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가치관 전반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139P)


아졸미(雅拙美) 또는 고졸미(古拙美)


입술이 약간 휘어져 삐뚜름 능청거리는 그릇이 멋있는 것으로 대접받는 것은 한국 문화의 묘미(妙味)다. ‘뜯어 보문 잘 못 생겨서 잘 생긴 것도 있어라우’라는 도공의 말이 여기에 들어맞는다. ‘잘 못 생긴 것’은 형(形)이요 ‘잘 생긴 것’은 상(象)이다.(145P)


비로소 우리는 일그러진 달항아리와 휘어진 대들보를 통해, ‘형의 어눌함’의 후광에 해당하는 ‘상의 세련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상의 세련됨’을 머금은 ‘형의 어눌함’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를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고졸이나 아졸, 무관심성이나 비균제성의 본질이다. ‘그 만듦새는 극히 소박하여 전체적으로의 조화와 균제의 미를 찾았을지언정, 부분부분 뜯어보면 차라리 거칠다 할만큼 잔손질이 가지 않은 것이 한층 우리의 주위를 끈다(김용준).’ 그러나 볼수록 여운이 남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초라한 육신에 깃들인 품격있는 정신이 느껴지는 것.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것은 평균치를 넘어서는 우아함을 갖춘 상은 어느 정도 형의 졸함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기의 셔터를 누를 때 하나의 장면에 대해 정확하게 초점이 맞는 거리는 하나뿐인 까닭에 원경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근경의 초점이 흐려지는 사실에도 비유된다. 이것은 도인의 격조를 지닌 선비의 글씨가 어린아이 같은 치졸한 맛을 풍기는 이치와도 같다. 상의 아름다움은 형의 어눌함을 수반하며, 높은 경지의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성격을 지닌 형상을 가리켜 아졸(雅拙)하거나 고졸(古拙)하다고 하는데, 한국문화는 이렇게 상의 세련됨과 형의 어눌함이 어우러진 아졸함이나 고졸함의 형상으로 넘쳐난다.(146P)


그러나 이 원숙성은 원숙하여 도리어 아졸미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오하고 보니 대오하기 전과 같더라는 소식이다. 늙으면 도리어 아이와 같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멋은 원숙을 발판으로 하면서도 그 원숙에서 오는 능란함의 무난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원숙은 초규격의 바탕이지만 초규격이 곧 원숙은 아닌 것이다.(조지훈, 「멋의 연구」) (146-147P)


차분한 고즈넉함에 숨겨진 순부신 화사함. 그 화사함이 무한대로 확대되다가 다시금 차분한 고즈넉함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잦아드는 것.(149P)


이같은 비균제성이나 비대칭성이란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 결과 생겨난 무의식(無意識)의 산물이 아니라 형의 어눌함을 수반하는 상의 미의식(美意識)의 산물이다. 이것은 신과도 같은 상위 존재인 자연이 자신에게 순응하는 하위 존재인 인간을 자동인형처럼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된 천지인(天地人)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천지를 품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천지인의 조화를 이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다.(151P)



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상(象)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生氣)의 느낌이다. 유기체의 생기야말로 육체라는 형 너머에서 정신이라는 상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다. 한 점의 도자기나 한 구의 조각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생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의 배후에 상의 미의식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마음의 눈을 크게 뜬 상태에서 원경의 미학으로 그것을 바라보라. 거기서 문득 유정한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면, 그때 당신은 상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153P)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것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화가이자 화론가인 사혁이 동진의 고개지 이래 태동하기 시작한 원시적인 화론들을 집대성하여 내놓은 동북아 최초의 체계적인 화론인 육법(六法)의 첫째 항목이다.(153P)


한국인이 이처럼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되는 생기의 느낌을 생활 속에서 물질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 또다시 확인해온 감각적인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맛을 대표하는 발효맛이다. 본래 음식과 결부되어 있던 물질에너지인 맛은, 어느 순간 그로부터 떨어져나가 정신에너지로 승화됨으로써 미감 또는 미의식을 파생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미각이 고도화되고 특히 그것이 자연의 리듬에 공명하여 세기와 절기의 리드미컬한 흐름을 탄 미묘한 것일 경우, 그 미감은 훨씬 명징하고 수준높은 것이 된다). 이 같은 사실은 ‘맛’이라는 단어에서 미감을 의미하는 ‘멋’이라는 단어가 파생된 사실을 통해서도 짐작된다.(155-156P)


멋이란 말의 어원이 맛에 있다는 것은 이미 통설이 되어 있다. … 멋이란 말은 애초에는 맛이란 말뜻을 좀 다른 어감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발음적인 왜형(歪形)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차츰 특이한 관념형태로 바뀌어 원의(原義)와는 별반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그 음상, 그 어감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관념이 생김으로써 멋이란 말이 맛에서 파생했고. … 또 하나 멋이란 말이 맛에서 발생된 계기는 우리 민족어가 지닌 바 미의식은 미각적 표현으로써 그 바탕을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훈, 「멋의 연구」) (156P)


영어의 taste라는 단어도 ‘맛, 풍미, 미각’이라는 일차적인 의미로부터 ‘감상력, 감식력, 심미안, 안목’이라는 이차적인 의미가 파생된 것이며, 일본어의 시부사(しぶさ)라는 단어 역시 ‘떫은 맛’이라는 의미로부터 일본인의 고유한 미의식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다.(156P)


흥미로운 것은 발효음식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며, 발효맛은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생기 있는 맛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을 추구하는, 상의 미의식과 통한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맛인 발효맛으로부터 한국인의 미의식의 물질적 측면인 미감이 유추된다.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맛인 발효맛을 연상시키는 미감이 그것이다.(157P)


우리는 먼저 발효맛의 취향과 화해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되살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상실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에서 벗어나, ‘기억 속의 심상’과 알뜰하게 손잡은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호사스런 취미와 구별되는 까다로운 취향이 옹골지게 자리잡아갈 때에만, 한국인의 미의식 역시 생기발랄하며 웅숭깊은 것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163P)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봄이 되면 대지로부터 상생의 기운을 받아 성장하던 나무가 가을이 되면 상극의 원리에 따라 성장의 기세를 억제당하면서 열매를 맺는 이치와도 같이, 상극의 원리 역시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필수적이다.(164P)


상극 역시 만물의 생성변화에 필요악인 까닭에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상극관계를 애당초 부정하고 회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상극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채로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165P)


발효원리의 핵심은 부패균을 죽이는 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발효균을 살리는 상생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삭힌다라는 말은 시간 속에서 성숙해가면서 저절로 맛이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화식 용어와 발효식의 용어가 합쳐지는 교차점이기도 하다. 김치를 숙성시키는 것을 익힌다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에서 익히는 것은 폭력적 방법에 의해서 자연을 바꿔놓는 것이지만, 김치 같은 발효식의 익힘은 효모균을 이용한 상생의 방법에 의한 변용(變容)이다. (이어령, 「김치 맛과 한국 문화」)


발효를 ‘썩지 않으며, 처음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은 은근한 곰삭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이것이다. 그러니까 발효의 원리란 자연의 이치에 따른 상극의 과정인 부패를 인간의 지혜에 따른 상생의 과정인 발효로 변용시키는 것이다.(167P)


비보의 원리난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 비보의 원리란 이처럼 상극적인 것을 향해 대립과 투쟁을 전개하는 대신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완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169P)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는 말이 있다.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이 없는 것은 없다. 일부러 결함을 취하여 그를 고치고자 함이 도선풍수의 근본이다.(최창조, 「땅의 눈물 땅의 희망」) (171P)


해학과 신명


멋은 형상이나 가락이나 마음에 있어서 한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에로 이미 가고 넘어 가는 과정에 나타난다. 가동적인 정지태(靜止態), 멈추려는 움직임이 연속되는 가동적인 경향상태가 멋의 형태미의 본질이다.(조지훈, 「멋의 연구」) (175P)


가동적인 정지태. 박수근의 『기름장수』, 김기창의 『아악』처럼, 움직이고 있으되 멈춰 있으며, 멈춰 있으되 움직이고 있는 것. 그런데 바로 그 멈춰있음 때문에 움직임 이상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은 웃고 있으되 울고 있으며, 그 울음 때문에 웃음 이상의 웃음을 머금헤 하는 한국인의 미소와도 통한다. 이같은 멈춤의 그늘, 울음의 그늘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몸으로 부딪혀온 ‘상극적인 것’의 살아 있는 과거이며, 이같은 그늘을 슬며시 드리운 웃음 이상의 웃음, 움직임 이상의 움직임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 마음으로 삭혀온 ‘상생적인 것’의 살아있는 미래다.(176P)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생기,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자화상으로 하여금 눈물과 한을 넘어 웃음과 흥으로 휘몰아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와 관련해서 박래경은 ‘살아 있는 유기적 생명체가 역시 생명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자연 속에서 노닐면서 자신의 생명유지와 생명확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갈등을 타넘은 결과 어떤 즐거움과 유희성이 동바노디는 것’이라고 말했다.(박래경, 「한국 해학의 현대적 변용」) (177P)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단계이며,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178P)


한국 사람은 자기 몫의 한을 ‘삭이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적어도 한을 ‘삭이면서’ 살아가는 것을 윤리적 덕목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국인은 한을 삭이면서 인간으로 성숙해가고, 그 한을 즐기면서 멋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한은 한국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투사되고 표상됨으로써 멋, 슬기를 생성하여온 것이다.(천이두, 『한의 구조 연구』) (179P)


고지도와 명당론


옛 사람들은 땅에 음양과 오행의 이치가 있고, 그 이치에 따라 땅이 살아 있다고 보아, 그 생명체적 요소를 강조해서 그렸다. 그래서 방위에 따라 오행의 색깔을 다르게 칠하고, 산과 강은 뼈와 혈관으로 이햐하여 그 맥을 강조하여 그렸다. 우리가 옛 지도를 볼 때 땅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는 것은, 땅이 생명체로서 살아서 약동하여 그 기운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한영우? 안휘준?배우서,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190P)


땅에 인간적 의미를 주어, 이용과 소유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터로 환원시키는 것이 풍수사상이다.(193P)


결국 풍수사상이란 한국인의 의식 뒤편에서 후광처럼 빛을 발함으로써, 의식의 수면 위를 떠다니는 공간 심상들로 하여금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을 넘어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도록 만드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194P)


한국인의 공간 취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명당이란 본래부터 그곳에 존재한 자연적인 풍경 위에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식에 따라 생겨난 인문적인 풍경을 겹쳐놓은 것이다.(196P)


백의와 색동



한국인은 흰옷을 즐겨 입었으며 흰색을 좋아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경우의 흰색은 색이 없는 무색이 아니라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라는 것이다. 소색이란 무엇인가. 바탕 소자(素)에 색 색자(色), 옥양목이나 비단, 광목의 색처럼 재질에 따라 다양한 늬앙스의 색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바탕색이다. 이처럼 자연의 바탕색을 의미하는 소색은 당연히 옷감의 색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닥나무 껍질로 만든 희색의 종이처럼, 염색 따위의 가공을 하지 않고 바탕색을 살려서 만드는 일상용품들 속에 살아 숨쉰다. 소색은 자연스럽게 어느 문화에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특히 한국인의 일상에서 눈에 띄게 등장하는, 한국문화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206P)


한국인이 애호한 백색은 백자의 투명함에서 접할 수 있는 백색이나 세모시 백색 도포에서 보이는 백색과 같이 격(格) 있고 깊이 있는 색이다.(207P)


여백은 빈공간으로 나타나지만, 동양화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양화에 있어서 공간은 문자 그대로 빈 것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그들은 그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빈틈없이 그려 넣는다. 그러나 동양화에 있어서 공간은 그 안에 모든 것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비가시적인 풍요로움으로부터 실체인 모든 것이 나오기도 하고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기도 한다. … 여백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는 그 어떤 심오한 상태인 것이다.(210P)


흔히 백의민족으로 표사오디는 한국인의 흰색 취향이란, 주변의 다른 색들을 지우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변의 색들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풍성하게 싸안는 것이다.(210P)


백의민족의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겼다. 따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느새 친근한 벗인양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는 백의민족의 표상을 향해 ‘백의민족이여 안녕, 그동안 겪어내야 했던 뼈아픈 이십 세기여 안녕, 이십 세기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이데올로기여 안녕, 역사의 갈피 속으로 영원히 안녕!’이라는 단호한 고별사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223P)


잃어버린 기억의 회복은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문화와 예술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한 판의 반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 속의 빗장을 열어젖혀야 한다.(227P)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미는 무엇보다 취향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미에 대한 취향도 다르다. 그리하여 개성 있는 미의 취향을 자유롭게 꽃피우는 백화제방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미의 절정이다. 수많은 풀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이 격조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그것이 빛깔과 향기를 달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취향은 정신의 여백에서 자라난다. 동양화의 여백이란 하릴없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부분을 비워내어 전체를 넘치게 하는 역동적인 기운생동의 근원이다. 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을 꾸며낼 수 있다.(231-232P)


취향은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인문적인 지혜의 산물이다. 취향은 인간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룩한 인문적인 가치의 토대이다. 따라서 그것은 ‘제멋대로의 것’이 되기보다는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될 가능성이 많다. 출발점에서는 ‘제멋대로의 것’으로 작용하던 취향도 반환점을 돌고나서부터는 시나브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취향이 지닌 성찰의 가능성이다.(232P)


상생 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다. … 상생 지향이 만들어낸 탈속의 경지는 참으로 아름답다. 거기에는 순수하게 증류된 아름다움. 한치의 가감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한국인이 이같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일상에서 경험한 것은 불국토사상이나 미륵신앙, 풍수사상에서 드러나는 한국문화의 현세적 유토피아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239-240P)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超越)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蒲月)의 몸짓이 되어야 한다.(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 (261P)


문화 창조란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미지(未知)의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나가는 자들의 것임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문화란 창조적인 것이며, 그같은 창조의 빛은 세계성이라는 ‘큰 나’ 안에서 토속성이라는 ‘작은 나’들이 부싯돌과도 같이 부딪힐 때, 그 부딪힘의 성광 속에서 피어난다.(262P)


만물은 이와 같은 상극이라는 계기의 모순과 대립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대립을 위한 모순이나 모순을 위한 대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과 통일을 위한 모순대립인 것이다.(263P)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신명이나 해학 같은 미적 범주를 통해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로 승화시키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다시 한번 이같은 상생적인 조화 위에 상극적인 부조화를(사회 개혁의 관점에서) 겹쳐놓은 예술운동이었다. 따라서 부조화에서 조화로, 다시 부조화로 꿈틀거리며 전진하는 그것은 변혁의 전망으로 가득찬 살아 있는 움직임이엇다.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에서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한발을 내딛는 것이었다고 할까.(265P)


기쁨,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것.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 이것이 바로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로 승화시킴으로써 얻어지는 한국적인 감성의 본질이다.(268P)


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김정희는 진경시대 직후에 ‘낡은 것’으로 뒤쳐진 진경문화의 조선 색을 ‘새로운 것’으로 등장한 청나라의 사상과 북학사상을 빌어 돌파하고자 했다. 달리 말하면 ‘남의 유행’을 참고로 해서 ‘토속적인 자기’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이랄까. 아니면 ‘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것이랄까. 이것이 바로 김정희의 창작방법론으로 거론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올바른 해석이다.(271P)


추사 김정희가 이루어낸 추사체의 졸박 청고함이란 우물 가운데 개구리와도 같은 조선적인 것도 아니고, 한나라 예서체 그대로의 중국적인 것도 아니며, 양자를 회통시켜 새롭게 창조해낸 개성적인 것으로서의 졸박청고함이었다. 김정희는 ‘연경의 기억’을 통해 조선식을 추사식으로 재구성했고, 다시 이것이 새로운 조선식이 되어 일세를 풍미했다.(275P)


법고창신. 옛것(古)을 따름으로써 새것(新)을 창조하는 것. 이것은 ‘기억 속의 심상’을 ‘오늘의 심상’으로 탈바꿈시켜내는 것이다.(277P)


회통적인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유월의 햇살 아래 붉은 악마로 서 있었던 우리 모두가 눈부시게 깨달았듯이,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유색은 전통주의자에게로’라고 쓰인 플랭카드와 ‘현대의 난장은 세계주의자에게로’라고 쓰인 플랭카드를 번갈아 들어올리며 양자를 단호하게 구분짓는 명쾌한 단색조의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순일(純一)함이란 볼모의 것이요 난장(亂場)만이 다산의 터전이라는 것. 전통의 고유색과 현대의 난장은 불이(不二)의 묘경(妙境)으로 회통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퇴행적인 저다움을 딛고서 도달해야 할 진정한 저다움인 동시에, 조선식의 순종적 예술실천을 추사식의 잡종적 예술실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진정한 견인차인 것이다.(279-280P)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무엇보다도 궁궐의 청홍문을 배경으로 한 표지 디자인이 특이하다. 푸른 색 대문에 굳게 잠긴 문과 쉽게 열리지 않을 듯해 보이는 자물쇠. 작가는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잃어버린 기억의 회복은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문화와 예술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한 판의 반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 속의 빗장을 열어젖혀야 한다.”(227P)


자자 강영희는 먼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회복해야만 함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심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옛것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여 변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다움, 한국인 본연의 미의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급선무는 우리 스스로를 막고 있는 마음의 빗장 즉, 서구화, 근대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타의적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빗장을 열어제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모든 것을 표지의 배경사진인 굳게 닫힌 대문과 자물쇠로 함축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즉 사진의 청홍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우리다움, 한국적 미의식을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일차적 관문인 것이라는 것이며, 그 관문을 넘어서야만이 우리 본래 고유의 잃어버린 미의식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그는 누구인가. 그가 누구길래 저자는 책 속에서 무려 1부라는 많은 분량을 배분하여 논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한국의 예술에 어떠한 역할을 했길래 못마땅하여 그가 써 놓은 책들의 조목조목을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그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188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일본의 대표적인 민예연구가이자 미술평론가였다. 동경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종교철학을 연구하여 유럽 유학까지 마쳤지만, 미술에 더욱 관심이 많아 그 이후에는 예술방면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의 일제 식민시기에 한국 도자기를 보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어 한국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그 한국의 미의식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많은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는 한국예술품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축을 위해 상징적 건물인 광화문의 철거가 논의되었을 때 일본 신문에 철거를 반대하는 논문을 싣는 등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통해 결국 철거를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의 예술품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직접 한국에 “조선민족미술관”이란 미술관을 건립한다. 그는 그 후에도 한국의 공예등의 수집에 열성을 기울이고, 이를 모아 한국과 일본에 전시하게 된다.


그는 1961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많은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그가 죽기 전인 1960년 1월에 ‘아사히신문사‘에서 제정한 “조일상(朝日賞)”을 수상하였으며, 그가 죽고 나서 20여년이 흐른 후 한국정부에서도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84년 9월에 한국정부가 “보관문화훈장”을 하사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야나기가 자신의 책을 통해 언급한 한국의 미의식이라는 것이 식민사관으로 무장된 일본인의 편협된 관점으로 해석한 옹졸하며 치졸하기까지 한 변형된 미의식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또한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의 책에서 해당문장을 인용하여 조목조목 따져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격분하기도 하며, 때로는 냉정하게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백한 건 잘못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 잘못을 조선이 어려운 시기에 조금의 따스한 시선을 주었다고 해서 야나기란 일본 예술가, 아니 민예가를 칭송하고 떠받들어 그의 말이 무조건 다 옳은 말이며 잘한 행동이라고 보는 관점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


“우리는 그의 글 속에 들어 있는 경애의 태도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폄하의 태도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제국 일본의 근대적인 우월감을 배경으로 해서 조선 예술을 ‘잡기적인 민예’로 깍아 내린 폄하의 태도는 물론이요, 조선 예술을 일본 국학의 타고난 자연스러움을 실현한 ‘예술적인 명물’로 높여 올린 경애의 태도 모두 조선 예술의 참얼굴과는 무관하다.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깍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124P)


그렇다면 무엇이 옳을까. 저자의 글을 잃다보면 흥분하게 되어 있다. 피가 끓는다. 한국의 예술을 말아먹은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로 생각된다. 그는 한국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철천지 웬수다. 정말 나쁜 놈이다. 책을 읽던 중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쓴 내용이 있다.


차칸양 왈, “가만 보니 야나기란 자식, 나쁘다 못해 교활한 놈이구만. 뒤에서 까는 것도 아니고 면전에서 갖은 비꼼을 다 보여주면서 깔껀 다 까는, 고단수 악질이구만. 근데, 왜왜왜, 훈장을 줬지? 그가 비꼬는 걸 모르고 표면적으로만 해석을 해서? 그리고 한국의 예술가들은 설마 지금도 그에 대해 칭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훈장 반환 운동은 안 벌이는가? 왜 그러고 있는거지? 응응응?"


이 책이 출간된 후 한국 예술계에서는 한국의 미의식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인물에 대해 다시한번 조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그는 과연 저자 강영희가 말하는 것처럼 대단히 나쁜놈인가. 식민사관을 이용하여 한국 문화를 내리 깔아버린 교묘한 고단수의 일본악질인가.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겉만 본채 그에게 훈장을 줬다는 말인가.


먼저 무엇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야나기 무네요시가 광화문 철거반대 운동을 벌일 때 일본 신문에 올렸다는 사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오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웅대하여라,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너의 왕국의 강력한 섭정대원군(攝政大院君)이 불굴의 의지로써 왕궁을 지키고자 남쪽으로 명당자리에 너의 주춧돌을 굳게 다졌다. 여기에 조선이 있노라 자랑하듯이 으리으리한 여러 건축들이 전면 좌우에 이어지고, 광대한 수도의 대로를 직선으로 하여 한성을 지키는 숭례문과 멀리 호응하고, 북은 백악으로 둘리고 남은 남산에 맞서 황문(皇門)은 그 위엄 있는 위치를 태연히 차지하였다.” <‘사라지려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중에서>


이어서 야나기가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하면서 했던 건립사를 한번 훑어보자.


“내가 이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민족의 고유한 아름다움마저 마침내 과거의 것으로 묻혀버릴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미술관을 도쿄에서가 아니고 경성에 세우고자 한다. 특히 민족이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조선의 작품은 영원히 조선 사람들 속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것은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것들을 조선 가옥에 넣어두기 위해서나 수집의 편의를 위해서도 경성은 선택된 땅이라 생각된다. 북한산은 수도를 지킴과 동시에 그 예술을 영원히 자기 밑에 두고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야나기는 그 시대에 한국의 편을 들게 되면서 일본에서도 다소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광화문 철거반대 운동을 한 이후로는 한동안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는 등 일본 내에서도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하니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계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공예수집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가수였던 아내의 공연 수익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가 개인적인 사리사욕이나 단지 일본문화 고양만을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한국문화의 수준을 폄하하거나 낮추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어떤 주장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한국문예협동조합연합회 전무이사인 문옥배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야나기의 사상을 옹호하고 있다. 즉 한부분만을 보고 그를 한국미를 곡해하는데 앞장선 일본인의 시각으로만 보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비애란 신의 마음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신은 위로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신의 마음은 슬퍼하는 자에게 이끌리는 것이다. 슬픔이 어찌하여 미를 낳는가. 또한 슬픔의 의미가 어찌하여 그렇게도 사람을 매혹시키는가. 그것은 신이 생각하고 있는 슬픔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힘이 있는 자는 자연에 산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는 신에게 산다. 예술의 미가 비애의 미를 통해 선명해지는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신의 무한한 따뜻함으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저 셸리의 유명한 시구(詩句)가 진실이라면 그것은 미의 극치인 것이다. ‘가장 슬픈 생각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詩歌)다’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든가.”


그는 이렇게 ‘비애의 미’가 미(美)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임을 주장하면서 당시 조선의 미가 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과 공예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극치를 애써 강조하고자 이런 표현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을 놓고 과다한 이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서 억지 논리를 펴는 등의 오해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우리의 예술을 폄하하여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없는 순수한 그의 애정의 표현을 애써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오직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우리 공예에 대한 열성과 애정만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야나기에 대한 옹호론에 대해 좀 더 길게 언급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간에 야나기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의 저서에 언급된 내용들은 옯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미에 대한 시각자체가 편협된 것도 사실이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자유로이 한국의 예술품을 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도자기나 공예품에서 매력을 발견하고 그 미를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결론은 이렇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다. <컬처 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본 것처럼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 낸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는 것이며, 일본인에게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는 것이다. 야나기 그가 아무리 한국을 수십번 왕래하며 보고 느끼고 하였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가 한국인만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문화 관점상의 차이다. 문화가 사람을 만든다. 거기에 더해 역사가 그 사람의 배경을 형성한다. 한국인은 한국인일 뿐이고, 일본인은 일본인일 뿐이다.


더 이상 야나기 무네요시란 사람자체에 대해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이 시대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 세상 사람도 아니다. 명백히 그의 관점은 잘못되었다. 그의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 오해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더 이상 사람에 대해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지 저자 강영희의 말처럼 이제는, 기억상실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한국미를 찾아 발전시켜 세계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할 일이라 하겠다.


화려한 수식, 다양한 단어, 풍부한 감성


전체적인 문장을 보면 문화평론가 답게 화려하며, 풍부하고,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마치 예술사의 문학적 표현이라고나 할까.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럽기까지 비춰지는 문체의 향연이다. 그만큼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에는 다소의 장벽도 느껴진다. 즉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느껴지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도록 만들어 주는 좋은 책이다.


또한 책을 읽으며 사부님의 향기를 느꼈다. 한권의 낯선 책에서 낯익은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 ^^; 글을 풀어가는 과정, 글의 문체가 일면 구본형표 글과 유사한 점이 보였다. 화려한 수식, 다양한 단어, 풍부한 감성 그러면서도 폐부를 정확히 찌르는 논조. 이것은 사부님의 책 속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형식들이다.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장이 좀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들의 내용이해를 함에 있어서 다소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장이 조금 길다는 것만 뺀다면 그리고 내용의 반복 경향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전체적 글들이 매우 훌륭히 보인다.


재미있는 옥의 티


종사하는 분야가 그렇다 보니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옥에 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저자는 책에서 세계의 발효음식을 언급하며 불가리아에서는 야쿠르트가 유명한 발효음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흐흐. 눈에 확 띠지 않는가. 야쿠르트는 요구르트(Yogurt)의 오기다. 똑똑한 문화 평론가도 용어를 잘못 쓰는 것을 보면 역시나 대단한 야쿠르트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여기서 참고로 야쿠르트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자. 상식은 많이 알아도 비만에 걸리지 않는다.


야쿠르트(Yakult, 일본어:ヤクルト, Yakuruto) : 일본에서 발명한 유산균 발효유를 의미한다. 야쿠르트란 이름은 에스페란토의 요구르트를 뜻하는 “요구르트”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야후르토”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식 학명은 “요구르트(Yogurt)"가 맞으며 "야쿠르트(Yakult)"는 일본기업에서 유산균 발효유 상품에 붙인 상품명이자 회사명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야쿠르트를 생산하는 한국야쿠르트란 기업이 있으며, 이 회사외에 다른 기업에서 생산하는 유산균 발효유는 모두 ”요구르트“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마무리


“백의민족의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겼다. 따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느새 친근한 벗인양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는 백의민족의 표상을 향해 ‘백의민족이여 안녕, 그동안 겪어내야 했던 뼈아픈 이십 세기여 안녕, 이십 세기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이데올로기여 안녕, 역사의 갈피 속으로 영원히 안녕!’이라는 단호한 고별사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223P)


국악을 사랑하는 것. 우리 것을 살리는 것. 결국 옛 것을 현대에 복원시킨다는 의미는 그 안에 들어있던 ‘우리다움’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형(形)은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여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킨 퓨전형식을 도입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象)은 우리 기억 속의 심상처럼 우리의 옛정신을 되돌릴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형은 세계화의 입맛에 맛도록, 그러나 상은 우리의 정신을 그대로 보존시킬 수 있는 예술, 문화의 재창조, 재발견.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며, 우리가 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이 구본형이 그의 저서 <코리아니티 경영>에서 힘주어 역설한 코리아니티가 될 것이다. 해묵은 민족성, 전통성이 아닌 현대적 차원의 재창조, 재정립만이 우리가 만들어갈 코리아니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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