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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2일 10시 52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강영희

그녀는 문화평론가다. 처음 연극평론으로 평론에 입문해 문화평론으로 발을 넓혔고, 이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이런 그녀의 활동은 1994년 문화평론집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와 1998년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만난다>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래도 그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 같다. 그리고 특히 사람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녀가 내 생각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렇고,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렇고 사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또 인터뷰에 팔을 걷고 나섰다고 하지 않는가?

책의 저자 소개에는 '6년 전부터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면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라고 나와있다. 그녀는 이 기간동안 여행 뿐만 아니라, 서양사상와 풍수, 그리고 음양오행을 공부했다고 한다. 6년 동안 실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쓰기에 투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이 한 권의 책을 위하여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듯하다. 일부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긴 했지만, 정확한 자료는 찾을 수 없느니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 책을 쓰도록 만든 것일까? 1, 2년도 아니고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이 책을 쓰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것을 '서울 북촌의 조선식 기와집'과 '토종 순한국인 외할머니'에게서 찾았다. 1998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던 경험이 발단이 되어 시작된 작업이었다.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선비정신의 세례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제가 푸른 기 도는 순백자나 탈속(脫俗)의 해학이 넘치는 ‘골코름한’ 철화백자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영혼이 말갛게 씻기는 상쾌함을 맛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시작된 의문의 답을 풀어낸 것이 이 책이다. 이 역시 그녀의 열정적인 호기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잡사(雜事)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잡문(雜文)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공부한 학문을 잡학(雜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왠지 그녀의 책은 그리 잡(雜)스럽지 않아 보인다. 그녀의 지속적인 꿈인 문화, 인문, 창조,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오밀조밀 조리있게 재미있는 말투로 들려준다.

그녀는 1960년 6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문화평론가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를 마쳤다. 또한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18) 진실을 말하면 겸재는 동북아시아의 문화권 전체를 시야 속에 확보한 세계인인 동시에 진경산수의 아름다움을 시야의 중심에 놓은 한국인이었고, 겸재의 진경산수는 '밖으로 향한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결과 탄생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 강서대묘 사신도의 생기,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정겨운 봉안, 고려 수월관음의 휘황한 신비, 겸재 진경산수의 금수강산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인에 대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승리가 아니라 그같은 구별과 경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 안아 한국을 피워올림으로써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였다.

23) 어쩌면 우리는 세계성의 부재를 토속성의 과장으로 얼버무리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25)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26) 한국인과 세계인, 토속성과 세계성이 창조의 마음을 징검다리 삼아 경계를 허물고 손잡는다면, 그것들은 서로 다른 둘이고 모순이되 상생적인 둘이며 창조적인 모순이 될 것이다.

27) 세계인 백남준이 전통적인 인간의 감정과 소양을 지닌 순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이다. 세계인 백남준의 예술이 한국인의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전통을 기억의 형태로 몸 속 가득히 저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낟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28) 러셀은 '철학의 문제들'에서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의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28)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비극은 인간이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시간의 엔트로피 법칙 또는 불가역성은 덧없음이라는 인생의 쓰디쓴 진리를 탄생시킨 우주의 원죄다. 이같은 시간의 불가역성에 항거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29) '기억 속의 심상'에 의지하여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는 세월의 무상함에 대항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인간에게 정체성의 후광을 부여하며 주체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인문적인 가치의 본령이다.

기차가 있는 풍경

38) 지난 세기의 한국인에게 이같은 기억상실이 발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갑자기 들이닥쳐 굴욕적인 관계를 강요한 제국의 군함이 던진 근대화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47) 시간의 흐름보다 앞서고자 하는 조급함의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가끔씩 시간의 흐름에서 뒤돌아설 때만 확보되는 기억 속의 심상을 상실한 근대 한국인은, 마침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리는 비극에 직면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 한국인의 기억상실이다.

50) 취향이란 저마다의 몸 속에 자리잡은 나름의 척도인 까닭에, 낯익은 취향 속에 들어 있는 자신의 척도를 향해 침을 뱉고 낯선 취향 속에 들어 있는 타인의 척도를 향해 미소짓는 것은 결국 저다움에 대한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55) 야나기 무네요시는 기억상실에 빠진 지난 세기의 한국인들에게, 당신들에게는 미의식 대신 무의식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말한 사람이다.

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60) 에드워드 사이드는 허위사회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내세워 그들의 미와 상상력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자기소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같은 근대 속의 야만을 동양주의 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

65) 흔히 '무의식의 미' '무작위의 미' '무기교의 미'로 표현되는 야나기의 한국 예술론으 핵심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인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면서 그것을 미의식에 미달하는 무의식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같은 격하의 이면에는, 이것을 최고의 미로 격상시킴으로서 왜곡의 면죄부를 스스로 발행하는 교묘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장착되어 있다. )

67) 조선 도공이 그것을 잡기로 대하지 않는다면, 일본 다인은 그것을 명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도자기는 잡기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지킬 때에만 일본 다인에 의해 명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

70) 조선 예술에서의 조선 도공의 역할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되어야 할 것은 일본 다인의 안목과 조선 도공의 무지가 아니라, 일본 다인의 미의식과 조선 선비의 미의식이다.

71) 타력의 존재인 조선 도공은 자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없다. 조선의 도자기는 조선의 도공 앞에서는 아름다운 존재로 빛날 수 없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조선의 도자기를 아름다운 존재로 빛나게 해줄 구원의 두레박이 일본인으로부터 드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력의 일본인이 타력의 산물인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보호해 준다는 것. 이것은 제국의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알아보고 보호해 준다는, 저 흉악한 제국주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76) 일본의 국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동참하는 '세계인'이기를 거부하고 '일본인'이기만을 고집한, 이를테면 동북아시아 세계의 왕따(?)를 자처한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다.

78) 국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조선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예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거기서 '일본적인 것'을 발견했을 경우에 한정된다. 야나기가 바로 그런 경우다.

80) 결국 야나기가 사랑한 것은 한국인의 미의식에 따라 창조된 한국 도자기가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에 따라 향유된 또하나의 한국 도자기였다.

85) 타고난 자연스러움에 따라는 일본적인 삶이란 결국 신이 마련한 길에 순종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구하는 삶인 것이다.

86) 신을 정점으로 해서 인간 사회의 위계질서로 이어지는 은총과 순종의 함수관계. 이같은 일본 국학의 핵심을 토대로 하여 피어오르는 미가 '무작위의 미'와 '비애의 미'인데, 야나기는 이같은 위계질서의 끄트머리에 한국인과 한국 예술을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다.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94) 야나기가 말하는 한국 예술의 '선의 아름다움'이란 일본인 야나기의 미의식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것이며, 그것의 배후에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 예술에 덮어씌우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자리잡고 있다.

98) 한옥의 지붕곡선이 현수곡선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그것이 저고리 깃이나 버선 같은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이루게 된 것은 이같은 과학적 노력에 더하여 주변의 산세 특히 뒷산과의 조화를 고려한 미학적 노력의 산물이다.

103) '작은 것을 보살피고 큰 것을 섬기는' 자소사대(字小事大)의 준말인 사대는, 동복아 세계질서의 중심인 중국과 중국의 문화적 선진성을 인정한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형성된자율적 질서의 메커니즘이었다.

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104) 우리는 그(야나기)의 밝은 눈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되 그의 어두운 환상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교의 미'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107) 한국의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 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

107)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

111) 사물은 상(象)과 형(形)이 하나로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양자는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어 하나가 평균 이상으로 빼어나면 다른 하나는 평균 이하에서 어릿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勢)

124)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3부. 한국인의 미의식

128) 아름다움이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창조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성찰이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29) 신의 창조란 인간의 창조의 원형이다. 성경 역시 신화 즉 '신에 대한 이야기'의 일종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의 메타포에 해당한다. 신이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는 것을 청조의 객체인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인 신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창조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30) 교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삶의 지혜를 대표하는 미의식은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대표한다.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멋'이라는 이름의 미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130) 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가치관념이 바로 '멋'이다.

응양호행과 상(象)의 미의식

138) 박수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사람의 마음이 그림 밖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듯이 느껴진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

139) 상이란 형상에서부터 심상에까지 걸친 다양한 스펙트림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에는 미의 문제뿐 아니라 진과 선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가치관 전반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아졸미 또는 고졸미

145) 여느 한국인들처럼 상의 문제를 일상의 척도로 사용해온 그들은 상과 관련된 최대한의 성과에 도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146) 상의 아름다움은 형의 어눌함을 수반하며, 높은 경지의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성격을 지닌 형상을 가리켜 아졸(雅拙)하거나 고졸(古拙)하다고 하는데, 한국문화는 이렇게 상의 세련됨과 형의 어눌함이 어우러진 아졸함이나 고졸함의 형상으로 넘쳐난다.

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161) 한국인은 대체 어떻게 해서 이처럼 발효음식 위주의 음식뭄화를 창조하게 되었을까?/
첫째는 한국의 풍토와 관련된 것인데, 기호가 온난하고 습윤하며 토양이 산성이어서 음식물이 부패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둘째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농경국가인 한국은 육지와 바다 양쪽에서 먹거리를 거둬들였는데, 양쪽에서 거둬들인 다양한 먹거리 - 육지의 채소와 바다의 소금 및 생선 -를 잘 조화시켜 풍요로운 발효음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164)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며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상생의 관계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너 죽고 나 살자는 상극관계로 넘쳐난다.

164) 봄이 되면 대지로부터 상생의 기운을 받아 성장하던 나무가 가을이 되면 상극의 원리에 따라 성장의 기세를 억제당하면서 열매를 맺는 이치와도 같이, 상극의 원리 역시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필수적이다.

169) 비보라는 말은 도와서 보충한다는 뜻인데 흔히 풍수지리에서 국면을 이루기 위한, 그 중에서도 이른바 명당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마을 형태에서 부족한 점을 인공적으로만들어 보충한다는 것이다.

169) 비보는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련느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171)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완전한 땅이란 '자연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을 거친 '인문적인 것'으로서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사람의 손길이란 비보요,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상의 아름다움이다.

해학과 신명

178)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 단계이며,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김치가 익어 시원하고 칼칼한 발효맛을 내기 전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에 비유된다. 맛이 들고 난 후의 곰삭아 익은 맛을 김치맛이라고 하지, 맛이 들기 전의 설익은 맛을 김치맛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지도와 명당론

185)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간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

186) 사람은 위치와 장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람은 시간에 대한 사유보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더 절실해 한다.

187) 한국인의 공간 의식을 한눈에 실감하게 하는 아름다움 고지도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지도가 지닌 이같은 매혹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것은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와는 달리, 땅의 모습을 기록하는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과 함께 땅의 형상을 묘사하는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녔기 때문이다.

190) 땅을 '살아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면서 돈가치, 효율성, 편리성을 내세운 마구잡이 개발에 몰두한 결과,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는 그동안 '살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온 지구를 '살리자'는 깃발을 내세우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93) 풍수사상은 모든 지리적 요소들에 매우 인간적인 실존성을 부여한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을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상호유기적 관계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백의와 색동

225) 마음의 색이 풍경의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미의식의 행복한 주인공들이다.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231) 이데올로기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미의 문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적인 표상보다는 취향적인 심상이 사물의 본질에 입체적으로 다가서는 쿨한 프리즘이다.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끌리며 좋아하는 것이다.

231) 수많은 풀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이 격조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그것이 빛깔과 향기를 달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32) 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을 꾸며낼 수 있다.

232) 한국인이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색동옷을 즐겨 입으며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식의 취향에 대한 담론들은, 사실상 된장찌개나 색동옷, 상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이끌리는 한국인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취향에 대한 담론은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하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279) 흔히 두 개의 길이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한국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인의 길이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의 물음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라고. 백남준과 겸재가 그랬으며 추사도 그랬듯이, 한국인이니 세계인이니 하는 구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자신을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인으로 여겼으며, 이같은 회통적인 사고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창조의 주체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회통적인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유월의 햇살 아래 붉은 악마로서있었던 우리 모두가 눈부시게 깨달았듯이,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III. 내가 저자라면

"어라?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는걸?". 이 책을 몇 장 읽다가 들었던 생각이다. '금빛 기쁨의 기억'이라는 도무지 내용을 예측하기 힘든 제목에, '한국인의 미의식'이라는 부제는 전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왠지 따분할 것 같고, 왠지 지루할 것 같고, 왠지 교과서스러운 내용으로 가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이었을까? 저자가 끊임없이 들려주는 한국인, 즉 우리들의 미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귀 기울여들을 만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한국인과 기억상실

"결국 한국인 자회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 단계이며,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흔히들 한국인을 한의 민족이라 말한다. 한국인은 누구나 가슴에 하나씩은 풀지 못한 한을 품고 살아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한(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저자의 말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굳이 선택하자면 한에 대한 저자의 정의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한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 그것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그저 가슴에 품고 사는 한이 아닌, 신명을 만들기 위해 밑재료에 부과한 것이 바로 한이다. 곰삭아 익은 맛을 김치맛이라고 하지, 맛이 들기 전의 설익은 맛을 김치맛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하는 저자의 설명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인의 가슴에는 한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만 특이하게도 화병이라는 말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상 더 이상 한은 예전의 그 한이 아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 무네요시, 저자에게 그는 철저한 분석대상이 되었다. 이리 저리 돌려보고, 앞뒤로 번갈아 봐가며 그는 낱낱이 파헤쳐진다. 한국의 문화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 것 같았던 그. 누구보다도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인정했었던 것 같았던 그. 저자는 거의 책의 1/4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며, 야나기의 한국 예술론에 대해 파헤친다. 처음 2부의 '야나가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저자가 이렇게 그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그는 단지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일본인이었다. 게다가 또 시대적으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시선의 높이도 달랐음에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우리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그러한 그의 생각을 이리저리 널리 퍼뜨린 것, 그리고 그의 생각이 한국 사람들의 한국 예술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 것, 그것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한 사람이 오해일 뿐이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예술을 깊이 있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고, 저자가 그에 대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은 그의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바로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술을 우리의 눈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의 눈으로, 그리고 그리 정확하지 않은 시선으로 보도록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깊이있게 다루어져야 했었다.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했었다.

현재를 잊지 않았다.

저자는 현재를 있지 않았다. 흔히들 우리나라의 옛 문화, 예술, 전통을 다루다 보면, 현재를 잊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세계화를 논했기 때문일까?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이라는 장(chapter)을 따로 둘 정도로 저자는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속에서 한국인의 미래를 보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값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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