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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9일 12시 02분 등록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저자에 대하여

아놀드 하우저는 1892년에 태어난 유대계 헝가리인이었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자유대학에서 독일 낭만주의 미학을 강의하며 ‘일요모임’에 참석했던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파리로 간다.

그 곳에서 서구 문학의 원전을 읽었으며 딜레탕티즘(Dilettantism)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미술사에 탐닉한 진지한 예술학도가 되었다. 미술에 대한 보다 풍부한 경험을 위해 그는 로마로 갔다. 또 독일 역사학과 사회학의 연구에 관심이 끌려 베를린으로 갔는데 그때가 그의 나이 29세인 1921년이었다. 1969년 어느 날 영국 BBC 방송국과 헝가리 방송국은 런던의 아놀드 하우저와 부다페스트의 루카치 사이의 방송 대담을 중계하였다. 이 자리는 하우저의 노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그의 모국어인 헝가리어로 출간된 것을 기념하여 마련된 것으로 루카치의 “헝가리 땅에서 헝가리 사람과 함께 헝가리어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는 감격스러운 인사말로 시작됐다.

금세기가 낳은 유럽의 대표적 두 지성은 이렇게 해서 실로 50년 만에 음성으로 만나게 되었다. 하우저에게 있어서 루카치는 동료이자 선배이자 정신적 은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1916년 부다페스트에서 ‘일요모임’의 회원으로 만났다. 자유주의자들의 좌파적 분위기가 있었던 이 모임에는 사회학자 칼 만하임, 시인 벨라 바라즈 등이 함께 하고 있었으며 루카치가 정신적 지도자였다. 감수성과 상상력이 한창인 20대를 이러한 예리한 지성들이 함께 보냈다는 것은 모두의 행복이고 평생의 자산이었으며, 모두가 각 분야에서 대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루카치와의 대담에서 스스로 회상하기를 이 방랑의 세월 속에서 그는 처음에는 뵐플린의 미술에 대한 형식적 분석에 이끌렸으나 나중에는 드보르작의 정신사적 해석에 큰 감동의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양식의 변화와 취미의 변화는 단순히 현실적 변화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영향과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진보적 신념이 거기에 없음을 발견하고 “역사의 필연성과 역사의 내재적 논리는 현실과 부닥치는 저항 여하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그는 변증법적 인식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출판사 일을 하며 틈틈이 베를린 대학 강좌를 청강하던 그는 1928년 아내의 요청으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했고, 거기에서 구한 직업은 허름한 영화사의 홍보과 직원이었다. 이 직장은 “10년 동안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오후 6시 까지 꼬박 일해 준 지겨운 곳”이긴 했지만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예술, 즉 영화의 자기발전 과정과 성공한 영화·실패한 영화의 유형을 분석하면서 예술의 소통 방식을 마치 ‘임상실험’처럼 경험했다. 그의 뛰어난 사회학적 통찰력은 이처럼 ‘책’ 보다는 ‘경험’에서 얻은 것이 더욱 컸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유대인인 그는 런던으로 피신했다. 아내와도 사별한 고독한 40대 후반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친구 만하임만은 그를 알아주어 『예술사회학의 선집』에 부칠 서문을 1백 쪽 정도 쓰도록 주선해 주었고, 그는 진심으로 이 글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예술과 사회에 관해 쓴 글들이 ‘논문제목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은’ 거의 관심표명 정도였음을 확인하고는 차라리 이에 관한 역사적 사례를 연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이 글 대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0년부터 50년까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창조적 열정의 정점이 지나가버린 48세부터 58세까지 10년간의 세월을 이 책을 쓰는데 바쳤다. 책의 총 분략은 1천여 쪽. 그러나 이 방대한 저술의 가치를 보증해줄 후견인이 그에게는 없었다. 벗 만하임은 이미 세상의 떠났다. 허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명망 높은 보수적 미술 평론가인 허버트 리드의 출판보증으로 1951년에 영어본이 먼저 출간되었고 이듬해 독일어 판이 나왔다.

하우저의 이 저서는 유럽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들의 높은 평가와 함께 진보적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필독의 저술로 평가되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독일 곳곳에서 초청 강연을 갖게 되었고, 또 이 저술 덕분으로 런던 교외에 있는 리즈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이리하여 하우저는 생애 처음으로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되었는데 이미 그의 나이는 60세였다.

대학 밖에서만 살던 노교수 하우저에게 이 대학 학생들은 큰 실망을 주었다. 그는 학생들이 너무 한심해서 가르치기보다는 저술에 정열을 쏟았다. 그 첫 번째 책이 『예술사의 철학』(황지우 옮김, 돌베게, 1958)이며 이 책의 내용은 사실상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서문에 해당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저작들이 이끌어간 주된 원리는 “역사의 모든 것은 여러 개인이 이룩한 것이지만 그 개인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상으로 어느 특정한 상황에 갖혀 있게 마련이며, 따라서 그 행동은 생래적인 능력과 상황, 양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상 역사적 산물의 변증법적 성격을 강조하는 학설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그는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예술에 있어서 리얼리즘이 보다 더 절대적 타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하였는데 이처럼 단호하게 자신의 예술관을 제시하게 되기까지는 이미 그가 순수예술론자들의 해석 방식을 경험하였기에 누구보다 예술 작품을 폭넓고 예리하게,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통찰력을 갖추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후 그는 미국에 초청되어 그의 전공이라 할 『매너리즘』(1965)을 집필했고, 또 필생의 과제 『예술 사회학』(최성만 옮김, 한길사, 1974)을 펴냈다. 다만 그가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영화 미학’만은 끝내 출간되지 못했다. 1978년 86세의 하우저는 60년 만에 헝가리로 돌아가 과학원 아카데미 회원으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1년 뒤 ‘기나긴 지적 역정’을 마치고 고국 땅에 묻혔다. 하우저의 저작, 특히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우리 지식인 사회에 끼친 영향은 별도의 장으로 말해야 할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다. 우리 지식인들이 서구 좌파 지식인의 진보적 예술관뿐만 아니라 세계관까지도 직접 경험한 것은 1966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처음 소개된 이 저작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문학·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전분야에 걸친 것이다. 국내에선 1981년 창비신서 4권으로 무려 15년 만에 완역됐는데 세계에서 14번째 번역본인 셈이다.

- 유럽 좌파 지식인의 진보적 예술관 - 유홍준|  

♣저자에 대한 생각

그의 이력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력이었으나 책을 다시 읽으며, 작가의 삶에 대해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이력 소개를 유홍준의 글로 대신 한 것은 더 이상 그를 잘 소개 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한사람의 가치관이 이렇게 집대성을 이룰만한 사고의 깊이는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것일까? 환경을 넘어서고, 개인의 사고를 넘어 선 작가는 경외의 대상이다. 작가에게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마음에 남는 구절  
p.13. 과거의 문학과 우리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어 과거의 문학을 이해하자면 우리 쪽에서 특별한 입장을 견지하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러면서도 자칫하면 잘못 해석하거나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p.17. 18세기까지는 작가란 단지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하인과 관리들이 그들의 물질적 재산을 관리하듯이 작가들은 독자의 정신적 재산을 관리했다.  
p.20. 현실은 기계적, 자기충족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없고 생명을 잃었다. 지금까지 개인의 자연적 환경이요 유일한 활동무대였던 사회는 모든 의의, 더욱 높은 목표를 위한 모든 가치를 상실했으며, 그러면서도 사회에 순응하여 그 안에서 그것을 위해서 살라는 요구는 더욱 강해진 것이다.
p.31. 스땅달의 환멸은 그래도 공격적, 외향적, 무정부주의적이지만 플로베르의 체념은 수동적, 자아중심적, 허무주의적인 것이다.
p.33.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구호는 사실 한편으로는 산업주의와 보조를 같이하여 진행된 분업화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 기계화된 생활에 먹혀들어갈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예술의 방파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예술의 합리화, 탈합리화, 협소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생활의 일반적인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독자성과 자발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p.34.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인가, 아니면 어떤 목적에 이르는 수단일 따름인가? 이 질문은 자기가 처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뿐만 아니라 예술의 복합적 구조의 어떤 요소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예술작품은 유리 자체의 구조나 투명도, 색깔에는 관계없이 다만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유리창과 비교되어 왔다. 이런 비유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관찰과 인식의 단순한 도구, 즉 그 자체로서는 이해상관이 없으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단으로만 봉사하는 창유리나 안경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문 저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창유리의 구조에만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또한 스스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립적 형식체로,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의 결합체로 생각된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줄곧 이 두 관점 사이를-생활과 모든 작품외적 현실에서 단절된 하나의 존재라는 관점과, 생활과 사회와 실제에 의해서 제약된 하나의 기능이라는 관점 사이를 왕래한다. 
p.35. 예술작품의 가장 불가사의한 역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또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에, 그리고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제약을 받는 구체적인 감상자층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도대체 대중을 안중에 두려고 하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중략- 하나의 테제, 하나의 도덕적인 목적, 하나의 실제적인 의도에 의해서 환영을 파괴하는 것은 한편으로 순수하고 몰입적인 예술감상을 방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관객이나 독자의 전존재를 휘어잡으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작품에 참여하도록 한다. 
p.36. 이 자연주의도 낭만주의에 대해서 모순된 관계에 서 있다. 그 이중감정은 주로 연속되는 두 세대 사이에서 혹은 교대되는 두 정신적 경향 사이에서 일어나곤 하는 마찰에 상응한다. 자연주의는 낭만주의의 연장이며 그 해체이고, 스땅달과 발자끄는 낭만파의 가장 정통적 상속자이면서 가장 장경한 반대자이기도 한 것이다.p.37. 소설의 역사는 중세의 기사들에 관한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p.39. 이제 스토리의 심리적 움직임에 주의가 집중되고, 외부적 사건들은 그것이 정신적 반응을 일으키는 한에서만 문제가 된다. 소설의 이러한 심리화는 그 시대의 문화가 경험한 내면화, 주관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거다.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형태인 교양소설(Bildungsroman)에서 내면화의 경향은 한층 강력하게 표현된다. 

p.41. 그들의 태도는 낭만파의 현실모멸과 괴테식의 낭만주의 비판을 모두 극복한 것이다. 사회문제의 헤결 가능성에 관해서 일체의 환상을 허락치 않는 냉철한 현실사회 분석에서 그들의 비관주의가 생겨난다. 
p.43. 즉 그는 학문, 예술, 도덕이 그때그때 존재하는 형태란 정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현실의 여러 기능이며,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로 규정되는 부르즈와 문화란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p.44. “목적을 원하는 자는 수단을 원한다”라는 쥘리앵 쏘렐의 마끼아벨리식 신조는 여기서 발자끄 자신이 거듭 사용한 고전적 문구, 즉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은 세상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문구로 표현된다.

p.48. “나는 민중을 사랑하고 압제자를 증오한다. 그러나 항상 그 민중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p. 51.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의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
 p.54. 릴케(R.M. Rilke)는 사자 우리 앞에서 물은 적이 있다. “누가 아는가,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울타리 앞에 있는지 혹은 뒤에 있는지?”-이것은 정말 스땅달적 물음이며 지극히 낭만적인 물음이다.

p.55. 모짜르트가 항상 객관적이며 필연적인 확고한 플랜을 좇는 것같이 보이는 데 반하여,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모든 주제, 모든 모티프, 모든 음조가 마치 “나는 이렇게 느끼니까” “나에겐 이렇게 들리니까”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하고 작곡자가 말하고 있는 듯이 울린다.
 p.57. ‘자잘한 진실들’(petits faits vrais)을 나열하는 스땅달적 수법은 정신생활이 하찮고 일시적이며 본래적으로 불합리한 현상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성이란 변덕스럽고 정의될 수 없으며 본성을 바꾸고 통일성을 깨뜨리기 쉬운 무수한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p.58~59. 우리는 여기서 발자끄 예술의 하나의 신비와 마주서게 되는데, 그것은 전혀 고르지 않은 가치의 구성요소로써 그처럼 압도적 효과를 얻는다는 점에서 예술사에서 가장 불가해한 현상 중의 하나인 것이다.
p.59. ‘개인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p. 62. 인간 영혼을 짓누르는 이 자연의 힘, 이 물질의 지배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돈은 인간을 자기에게서 소외시키고, 이상을 파괴하며, 재능을 타락시키고, 예술가와 시인과 학자를 더럽히며, 천재를 범죄자로 만들고, 타고난 지도자를 모험가나 노름꾼으로 만든다.
p. 63. 발자끄는 모든 자연스러운 생활감정이 자기 계급에 뿌리박고 있는 철두철미 부르즈와적인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르즈와지의 가장 성공적인 변호자로서, 이 계급의 업적에 대한 감탄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p. 64. 그는 <고기 낚는 여인>(La Rabouilleuse, 1841~42)에서 “덕은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며, <잃어버린 환상>에서 보트랭은 사람은 바람직한 지위와 그에 어울리는 재산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정직 따위의 사치”부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혁명은 무엇보다 먼저 물질계와 이해관계에서 일어나며, 다음에 관념으로 확대되고, 마지막으로 원칙이 된다.”
p. 66. 졸라는 발자끄 세계관에서 발현된 요소와 잠재적 요소 사이의 대립을 규명하고, 맑스적 해석에 앞질러 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의식적인 확신과 상반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상반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여 정의내린 최초의 인물은 엥겔스이다. 그는 최초로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예술적 창작 사이의 모순을 과학적 탐구의 방식으로 취급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사회학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개발적인 원리의 하나를 공식화 했다. 예술적 진보성과 정치적 보수주의는 완전히 양립할 수 있으며, 현실을 충실하고 올바르게 묘사하는 모든 정직한 예술가는 본래적으로 그 시대에 계몽적, 해방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p.68~69. 발자끄의 작품세계가 실감을 주는 것은 주로 자신의 기분에 독자를 예속시키는 독단과, 경험적 실제 현실과의 경쟁을 처음부터 배제한 그의 소설세계의 소우주적 전체성을 통해서이다.
p.69.고전주의적 예술작품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자신의 미학적 영역 내부에 엄격하게 고립된 채 서로 나란히 서 있다. 모든 형태의 자연주의, 즉 하나의 실제 모델에 명백히 의존하는 모든 예술은 이러한 미학적 영역의 내재성을 깨뜨리며, 이질적인 여러 예술적 표현들을 자기 속에 포용하는 모든 연작 형식은 개개 예술작품의 자주성을 해친다. 
p.70. 프루스트는 바그너와 발자끄의 연작 형식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에 거듭 나옴으로써 하나의 싸이클로 통일된다면 훨씬 더 아름다우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자기의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가장 탁월한 손질을 가했다. 부가적이긴 하지만 결코 인공적이 아니며 ,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만큼 더 진실하고 생생한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 것이다.” 
p.74. ‘예언’과 ‘비전’이란 물론 결점을 들춰낼수록 오히려 그 마술적 영향력이 늘어가기만 하는 것 같은 그의 예술 앞에서 무어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우리의 당혹스러움과 무력을 감추기 위한 낱말일 따름이다. 
p.80. 저급하고 불확실하고 쉽게 만족되는 취미가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반면, 진정한 예술은 예술가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해줄 능력이 없는 소수 전문가계층의 소유물이 되었다. 
p.81.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다. 진실감에 대한 자연주의의 가정이 새롭기는 하나, 이러한 가정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언제나 자의적이기 마련이다. 19세기 후반에 자연주의적 예술이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된 것은 관념론과 전통주의의 정신에 대한 과학적 세계관 및 합리주의적, 기술 중심적 사고방식의 승리에 따른 한 징후일 따름이다. 
 p.82. 너무 예술적으로 완벽한 구성을 회피하는 것은 과학적 연구가 언제나 미완성 상태에 있을 수박에 없다는 사실에서 각기 나오고 있는 것이다. 
p.85. “나는 사회주의자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자요 공화주의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의 지지자이며 무엇보다도 리얼리스트, 즉 진짜 진실의 참다운 벗입니다.” 
p.87. 이러한 하잘것없고 ‘비(非)시적’인 주제의 선택에서 우리는 꾸르베, 밀레, 도미에 등의 인물선택에서 본 것과 같은 민주적 정신의 표현을 본다.. 낭만주의자들이 성스러운 숲의 시를 그렸다면 자연주의자들은 시골생활의 산문을 그린 셈이다.

p.88. “살아있는 예술을 만든다”(faire de l’art vivant)는 꾸르베의 격언이나 도미에가 신조로 삼았다는 “자기 시대에 속해야 한다”(Il faut etre de son temps)는 말은 모두 똑 같은 생각, 즉 낭만주의자들이 소외상태를 극복하고 예술가를 개인주의에서 건져내려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p.97. 그의 ‘예술을 위한 예술’의 비인간성과 그의 스타일에 있어서 비인격성-한마디로 말해 그의 예술적 이론과 실천 전부가 사실은 그러한 파멸로부터 자신을 구하려는 결사적 노력인 것이다.
p. 98. 무엇보다도 플로베르는 발자끄의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와 반대로 모든 멜로드라마적이고 모험소설적인 것의 포기, 심지어는 단지 스릴만을 주는 플롯의 완전한 포기를 대표하며,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즐겨 그리고, 인물 창조에서 모든 극단을 피하고 선, 악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지 않으며, 그리고 모든 주의와 선전과 도덕적 교훈 등 사건진행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 간섭이나 사실의 직접적 해석을 피하는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p.99. “우리는 인생을 말하기 위해 태어났지 소유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주장이야말로 하나의 예술관 및 세계관으로서 낭만주의의 출발점을 이루었던 저 삶의 포기가 가장 극단적이고 철저한 형태를 취한 것이요, 동시에 플로베르의 분열된 감정의 논리 그대로 그것은 낭만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거부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플로베르가 문학은 ‘감정의 찌꺼기’가 아니라고 외쳤을 때 그는 문학의 순수성뿐 아니라 감정의 순수성도 동시에 지키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관념’과 ‘육신’의 구별이나 예술을 위해 삶을 버리는 결단 자체가 사실은 얼마나 낭만적인 것인가를 미처 깨닫지 못했고, 그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진정한 비낭만적인 해결은 오직 삶 자체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혼란되고 자기도취된 젊은 시절의 낭만적 기질이 그를 인간으로서 및 예술가로서 파멸시킬 뻔했다는 깨달음에서 플로베르는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음악이 부당한 자극을 주는 일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1982년의 어떤 편지에 쓴 바 있다. 


 p.101. 플로베르의 부르즈와 기질은 무엇보다도 꼼꼼한 작업방법과 엄격한 자기단련, 그리고 이른바 천재형의 무질서한 창작방식에 대한 반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그날그날의 임무’에 관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좋든 실든, 영감이 떠오르든 안 떠오르든 하나의 규칙적인 부르즈와적 직업으로서 글 쓰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았다. p.103. 플로베르는 작가생활 초기(1851년9월)에 “인생에서 참되고 좋은 유일한 것, 그것은 예술”이라고 말했고, 말기(1875년12월)에는 다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작품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중략- 플로베르가 종국에 도달한 심미주의는 반사회적이고 삶을 적대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행위를 대표하게 된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이요 부정인 것이다. "삶이란 너무나 추악해서 그것을 피함으로써만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아고 플로베르는 신음한다.

p.105. “글나부랭이에 미쳐서 네 마음이 메말라버렸다” 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한 번도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정말 쓰고 싶은 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의 편지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p.107. 우리는 우리 생애의 가장 거창하고 충격적인 좌절들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야심이 시들면서 함께 시들어간다는 인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서글픈 사실이다. 이러한 점진적이고 눈에 안 띄고 그러면서도 막을 길 없는 쇠진의 경험, 거창한 파국이 갖는 놀라운 효과조차 만들어주지 않는 조용한 삶의 침식의 경험은 <감정교육>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현대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p.108. 하지만 과거에 대한 이러한 재평가와 그에 따른 하나의 위안, 즉 우리 자신과 우리 인생의 깨진 조각들을 묻어버리는 시간이 또 “잃어버린 의미의 싹과 흔적을 도처에 남긴다”는 사실에서 얻는 위안은, 모든 현재는 메마르고 무의미하며 과거조차 그것이 현재인 동안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낭만적 감정의 지속이며 확대이다.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말 하잘것없고 공허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우리 인생을 이어주는 사슬에는 항상 어느 한 고리가 빠져 있고 객관적 무의미와 순전히 주관적인 의미가 안겨주는 서글픔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p.109. 인간의 모든 행동이 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기는 하지만, 그 조건들이 불변의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p.113. 물론 예전에도 엉터리 화가와 재능 없는 작가들이 있었으며, 아무렇게나 후닥닥 만들어진 작품과 서투르고 시시한 예술적 아이디어가 있었다. …… 그러나 이제 이러한 가짜가 완전히 행세를 하며, 진짜의 껍데기를 쓰고 진짜를 대신하는 일이 통례가 된다. …… 대중이 알면서도 일부러 자기의 수준 밑으로 내려간 ‘휴식’으로서의 예술, ‘기분전환’으로서의 예술은 이 시기의 발명인데, 그것은 모든 창작형태를 지배하지만 특히 가장 거침없고 과감한 대중예술인 연극에서 그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p.116. 시민계급의 삶을 이상화하는 작업의 기초로서 결혼과 가족이란 제도만큼 적합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하고 사심 없는, 가장 고상한 감정이 존중되는 사회형태의 하나로서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서술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봉건적 속박이 풀어진 이래 사유재산의 안정과 영속을 여전히 보장해주는 유일한 제도였던 것도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p.117~118. 한 등장인물이 작가의 스피커 이상의 다른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원리가 순전한 추상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배후의 이데올로기가 예술적 형상화로써 하나의 통일을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p.120. ‘대단원’은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다. 해답이 틀리다면 계산 전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뒤마 2세는 말한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결론, 해결, 그 마지막에 맞추어 작품을 꾸며야 하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뒷걸음질쳐나가는 방법이야말로 ‘잘 만들어진 각본’을 조립해내는 타산적 능력과 진정한 작가가 창작과정에서 자신을 내맡기는 비합리적 충동 사이의 차이를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효과는 순전한 수학적 관계의 범위 이상의 무한한 성분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 반하여, ‘잘 만들어진 각본’의 효과는 오로지 술수와 충격적인 효과의 연속에만 의존한다. 
p.121. 오히려 예술은 사건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을 적당히 미리 준비하고 뒤얽힌 매듭을 매끈하게 푸는 데 있다는 것이다. p.125. 오페레타가 사람들의 기강을 문란하게 한 것은 그것이 모든 ‘고상한’ 것을 비웃는다거나 고전과 고전비극과 낭만주의 오페라에 대한 조소가 실상은 위장된 형태의 사회비평이었던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원칙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 권위에 대한 신앙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p.131. 올바르게 지적된 것처럼 개인적 체험과 개인적 발견에서 출발하여 자기 나름의 어떤 매너리즘으로 끝나는 보통 예술가들의 전형적 코스와 반대로, 그는 당대의 지배적 인습들을 아무런 내적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가 점차 자기의 길을 찾아 독창성에 이른다.  
p.133. 그들은 다 같이 자기중심주의와 심미주의에 대한 희망 없고 끝이 없는 싸움을 계속했던 동일한 후기 낭만파 세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p.143~144. 사회적 현실과 사회생활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면서도 그는 중세적 미의 이상을 낭만적으로 사랑한다. 민중에 의해서 민중을 위하여 창조된 예술의 필요성을 설교하지만, 자신은 한결같이 부자에게만 허용되고 교양인만이 즐길 수 있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하나의 쾌락적 딜레망뜨인 것이다. 

p.146. 그는 예술을 “노동의 기쁨의 표현”으로 정의한다. 그에게 예술은 행복의 한 원천일뿐더러 무엇보다도 어떤 행복감의 결과이며, 예술의 참다운 가치는 창작과정에 있다. 예술가는 작품에서 자기 고유의 생산성을 맛보는데, 그것은 예술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의 기쁨이다. 
p.152. 그는 일반의 의식을 뚫고 들어가 영국 독서층의 상상세계에 자리를 잡게 된 가장 포괄적인 인물군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이 인물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내적 관계도 그의 독자들의 그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p.158. 빅토리아 시대의 독서층은 이미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는 두 개의 써클로 나누어졌으며, 디킨즈는 상류계급의 독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받지 못한 마구잡이 대중들의 작가로 통했다.

p.160.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죠지 엘리어트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정신적 및 도덕적 본성에 관한 것이며, 거대한 운명적 투쟁의 무대는 인간의 영혼, 내면세계, 도덕의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심리소설인 것이다.
p.161. “최고의 사명과 선택받음이란 환각제 없이 일하는 것이요, 맑은 정신으로 눈을 똑똑히 뜨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끝까지 견디며 사는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1860년의 어떤 편지에 쓰고 있다. 죠지 엘리어트처럼 당대의 지적 생활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던 작가의 작품에서만 사색적 인간들의 운명, 그들이 지닌 문제와 모순, 그들의 비극과 패배가 소설 '마들마치'에 구현된 직접성과 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p.164~165. 그러나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계급이 어떻게 경제적, 정치적 모든 실권을 소유한 계급에게 질투와 선망과 증오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p.174. 사회소설은 발자끄에서, 교양소설은 플로베르에서, 삐까레스끄 소설은 디킨즈에서 각기 그 완성을 보듯이 심리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에 이르러 그 완전한 성숙기에 들어간다. 러시아 소설의 놀라운 점은 그 연천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 소설의 높은 경지에까지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로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아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생기있는 문학형식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p.175. 근대 심리학은 영혼의 분열상을-어떤 구체적인 내적 갈등으로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부조화를-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띠고네도 이미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림을 맛보고, 꼬르네유의 주인공들은 거의 그 문제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주인공의 우유부단을 희곡의 주제로까지 삼는다. 

p.176.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시작이 아니라 끝이요, 그의 모든 독창성과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구 심리소설의 업적을 순순히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일관되게 발전시킨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177. 모든 충동, 모든 감정, 모든 생각은 그것이 이 인물들의 의식에 나타나는 순간 그 정반대의 충동, 감정, 생각을 낳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주인공들은 항상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양자택일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와 자기분석 및 자기비판은 그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타이며 몸부림이다. 
p.180. 그런데 한 작가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보다는 오히려 그가 누구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느냐 하는데 있다. 
p.183. 그의 정신성이란 완연히 하나의 열병에 가까우며, 모든 경험을 그 마지막 한 오라기까지 규명하고 모든 감정을 그 충동 하나하나까지 추궁하며 생각을 더욱더 멀리 밀고 나가서 그 생각의 모든 결과를 시험해보고 온갖 사상의 가장 깊은 무의식적 원천에까지 내려가보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p.186. 도스또예프스끼에 의하면 인간존재의 의미는 그 시간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목표의 생겨나고 사라짐, 어제의 기억과 내일에 대한 환상, 끊임없이 쌓이면서 우리를 묻어버리는 그 세월 속에 잇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발가벗겨져 몇 개의 간단명료한 공식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보이는 고조된 순간들, 인간의 본질 그대로의 진정한 자기임을 느끼고 자신의 자아 및 자신의 운명과 일치됨을 선언하는 그런 지고의 순간에 있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항상 최고의 행복과 가장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초시간성의 체험으로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간질병 발작이 일어나기 전의 므이슈낀의 상태가 그렇고, 끼릴로프의 ‘5초동안’-그 황홀감이 오래 계속된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가 말하는-이 그렇다. 이러한 순간에 그 정점에 달하는 그런 삶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시간의 느낌에 바탕을 둔 플로베르적 소설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설과거의 공통점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p.187.심리관찰이 날카롭기로 말한다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연주의 소설의 가장 발달된 형태를 대표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그리는 것이 자연주의라고 할 때 꿈처럼 과장된 상황과 환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을 즐겨 쓰는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이 그의 문학적 위치를 그야말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는 "나를 심리학자라고들 말하지만 그건 틀린 밀이다. 나는 더욱 높은 차원의 리얼리스트 일 뿐이다. 즉 나는 인간 영혼의 심층을 속속들이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이러한 심층이란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 귀신들리고 꿈같고 도깨비 같은 면을 뜻한다. 그것은 표면의 진실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자연주의를 요구하며, 실생활의 요소들이 환상적으로 서로 섞이고 서로 어지럽게 밀어대고 서로 다투어 눈을 끄는 현상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술에서 무엇보다도 리얼리즘을 사랑한다. 환상적인 것에 접근하는 리얼리즘을 현실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현실보다 더 있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189.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생각이 얼마나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며 그의 도덕적 및 정치, 사회적 입장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저 악명 높은 반동분자이자 독단론자 도스또예프스끼는 그의 작품을 하나의 해결 안 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끝맺고 있는 것이다. 
p.190. 개인주의에 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반대이유는 좀더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그는 개체화의 원칙 자체가 민중과 민족과 공동체 사회를 통해 그 구체적 역사적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정신, 원초적 단일자 내지는 초월적 관념으로부터의 탈락이라고 본다. 그에 반해 똘스또이는 순전히 합리적이고 행복론적인 이유로 개인주의를 배격했다. 사회로부터 개인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행복이나 만족을 가져올 수 없고 오직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평안과 만족을 가져올 수 없고 오직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헌신함으로써만 평안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p.191. 귀족은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즉 그의 출생과 혈통에 의해 지위를 가짐에 반해 평민은 그의 재능과 개인적 능력 및 업적에 의존하는 것이다.
 p.195. 그의 모든 종교적 행위는 하나의 ‘합목적적’인 고행이요 동양적 규범에 따른 기독교의 수행이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의 그의 도피는 기독교적 겸허라기보다는 귀족적인 당당함을 보여준다. 그는 세상을 완전히 정복하고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 
p.199. 예술가 체호프(A. Chekhov)가 생각했듯이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족할지는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동시에 올바른 해답까지도 제시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유동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두 경향을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양식의 변화가 점진적이었던 것은 그 시대의 경제적 발전이 연속적이었고 사회적 권력관계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에 부합되는 현상이다.
 p.201. 오직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쉴새없이 새것을 추구하는 흔히 무의미하고 실속 없는 쇄신욕구를 초래하는 것이다. 기술의 성과에서 실제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기업가는 새로 고쳐 만든 신식 제품에의 수요를 인위적인 수단으로 높이지 않을 수 없으며, 새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이라는 느낌이 가라앉을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낡은 일용품이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보충하고 게다가 새것이 점점 빨리 나오게 되면 이에 따라 물질적 자산에 대한 집착이 약해지고 또한 곧 정신적 자산에 대한 집착마저 희미해지며, 결과적으로 철학적, 예술적 평가의 변화속도가 유행의 변화속도에 적응하게 된다. 이리하여 현대의 기술은 유례없이 생활감정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니와, 인상주의에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동적인 감정인 것이다. 
p.201. 인상주의는 유례없이 도시적인 예술인데, 그것은 다만 인상주의가 풍경으로서의 도시를 발견하고 그림을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을 도시인의 눈으로 보고 현대적 기술인의 극도로 긴장된 신경으로 외부 세계의 인상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의 다양한 변화, 신경질적인 리듬, 갑작스럽고 날카롭지만 언제나 사라지게 마련인 인상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그것은 도시적 양식인 것이다. 현대의 기술은 유례없이 생활감정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니와, 인상주의에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동적인 감정인 것이다. 기술의 진보와 관련하여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로 발전해가는 일로서, 이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p.202. 인상주의를 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가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 번 다시 발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p.203. 순간과 변화와 우연의 우위는 미학적으로 말하면 분위기가 생활을 지배한다는 것, 말하자면 변화하기 쉬울뿐더러 분명치 않고 모호한 속성을 가진 사물과의 관계가 삶에서 지배적인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적 표현을 이처럼 순간적 분위기에 귀속시키는 데에는 동시에 인생에 대한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태도, 수용적, 관조적 주체로서의 방관자의 역할에 대한 만족, 멀찍이서 바라볼 뿐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입장, 요컨대 전적으로 심미주의적 태도가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을 의미한다.

p.205. 색체를 강조하여 화면 전체를 색체와 명암효과의 조화로 만들려는 욕망이 목표요, 공간이 평면에 흡수되고 물체의 조형성이 해체되는 것은 이에 따른 부득이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p.206.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한 대상에서 연상하는 ‘기억된 색채’가-그것은 실로 오랜 경험과 습관의 결과인데-직접적 지각에서 얻어진 구체적 인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상주의는 이론적으로 정립된 색채를 떠나 실제의 감각으로 파고드는데 그것은 결코 어떤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극히 인위적이요 극도로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이라 할 것이다.
p.207. 19세기 후반에는 회화가 주도적 예술이 된다. 문학분야에서는 아직 자연주의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시기에 회화에서는 인상주의가 하나의 독립된 양식으로 발전한다.
p.208. 인상주의는 단지 그 시대의 모든 예술장르를 지배한 하나의 시대양식일 뿐 아니라 보편타당한 '유럽적' 양식으로서도 최후의 것-취미의 전반적 합의에 근거를 둔 마지막 예술경향이다. 인상주의가 해체된 이래 여러 다른 예술장르들 또는 여러 다른 국가와 문화들을 양식상으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p.209.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것처럼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은 없으며, 낯선 사람들의 떼거리 속에서처럼 외롭고 버림받은 느낌이 강한 경우도 없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생기는 기본적인 두 감정, 즉 한편으로 남이 봐주지 않는 데서 혼자 있다는 느낌과 다른 한편으로 번잡한 교류와 끊일 사이 없는 움직임과 쉴새없는 변화의 인상이 가장 섬세한 기분과 가장 신속한 자극의 교체를 결합시키는 인상주의적 생활감정을 낳게 되는 것이다

p.210. 인상주의에는 또한 부르즈와 예술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서민적 체취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의 ‘귀족적 양식’으로서 우아하고 까다로우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감각적·향락적이요, 값진 것과 희한한 것에 애착을 가지며, 엄격하게 개인적인 체험 즉 고독과 고립의 경험 및 극도로 섬세한 감각과 신경의 경험에 몰두한다.
p.215. 문학의 역사는 회사의 역사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인상주의는 원래 윤곽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연상인데, 자연주의라는 복합적 현상 전체에서 인상주의의 발단을 식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후기의 발전형태는 상징주의의 여러 현상들과 완전히 뒤엉켜 있다.
 p.218. 이성적인 것을 천박하다고 타박하며, 미지의 것과 불가지의 것을 찾아 느끼려고 한다. 그들은 현세부정적인 ‘금욕적 이상’을 신봉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니체와 더불어 왜 정말 그것이 필요한지 묻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p.220. 그우리가 우리의 체험을 가장 강렬하게 실감하는 것은 현실 가운데서 인간이나 사물들과 마주칠 때가 아니라-이러한 체험의 ‘시간’과 실감은 늘 ‘잃어버리고’마니까-우리가 ‘시간을 되찾을’ 때, 이미 우리 삶의 행위자가 아니고 관찰자일 때, 예술작품을 창조하거나 감상할 때, 즉 우리가 기억을 할 때라는 것이다. 
p.221. 이른바 자연의 매혹보다 도시, 도시적 문화, 도시적 오락, ‘인공적 생활’ 그리고 ‘인공낙원’이 비할 데 없이 더 매력적일 뿐 아니라, 또한 더욱 정시적이요 영혼에 파고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 자체는 추하고 범속하고 무형식적이어서 예술을 통해서야 비로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된다.
p.225. 데까당들에게는 ‘모든 것이 심연’이요 모든 것이 삶의 불안과 불안전으로, 보들레르가 노래하듯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막연한 전율로” 가득 차 있다.

p.227. 예술간란 존재의 역설은 그가 인생을 묘사해야 하면서 그 인생 자체로부터 쫓겨나 있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끓는 경쟁무대를 떠나 좀 멸시당하긴 해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맨 뒷줄의 의자'에 남아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세계관 전체는 단 하나의 중심적 문제, 즉 부르즈와 세계에서의 예술가의 위치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삼고 있는데, 이러한 사상가에게 있어서 이런 명확히 무해해 보이는 언급조차도 예술가의 생활방식에 대한 그의 판단과 결부되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p.228. 낭만주의자들은 아직 ‘푸른 꽃’(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소설 제목이자 낭만주의적 이상의 상징), 꿈과 이상의 나라를 찾고 있었으나, 이제 보들레르는 “그러나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만이 참 여행자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진짜 도망이요, 무엇이 끌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구역질나기 때문에 떠나는 미지에의 여행인 것이다. 
p.232.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처럼 쉽게 행복하다는 사실을 동정합니다. 사람이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깊이 내려가보았어야 하지요.” - 보들레르

p.233. 1890년 이후 '데까당스'란 말은 암시적인 느낌을 잃어버리고 '상징주의'가 주도적 예술경향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모레아스는 이 말을 도입하여, 시에서 현실을 '관념'으로 대체시키려는 노력이라고 그 개념을 정의했다.
p.234. 특히 말라르메가 시의 본령을 음악에서 탈환하는 것으로 이해한 점에서 상징주의는 ‘인상주의적’이다. 그러나 비합리주의적·정신주의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주의는 또한 자연주의적·유물론적 인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반동을 뜻한다. 인상주의에서는 감각적 경험이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임에 반하여, 상징주의에서는 일체의 경험적 현실은 단지 관념세계의 비유일 뿐인 것이다

p.235. 상징주의는 시의 임무가 명확한 형태의 틀에 박을 수 없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p.236. 시인은 말라르메가 강조한 대로 “단어들 자체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야”한다. 시인은 언어의 흐름에, 이미지와 환상의 자발적인 연속에 자기가 운반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언어가 이성보다 더 시적일뿐더러 더 철학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이란 ‘예시자’(voyant)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들을 정상적 기능의 관습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분리시켜서 비자연화·비인간화시킬 용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현대문학 전반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발언을 한 것은 바로 랭보였던 것이다. . 본질적으로 소박하고 정상적인 정신적 태도란 예술적으로 불모이고, 시인이란 사물들의 숨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자기 속의 자연인을 극복해야 한다는 느낌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p.237.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p.238. 그는 불확실한 것, 수수께끼 같은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한다. 표현이 막연할수록 암시성이 더욱 풍부해 보인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란 그의 의견에 의하면 “독자가 그 열쇠를 찾아야 하는 어떤 비밀스러운 것이어야 하기”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시인의 이러한 소외와 고립에 표현된 귀족적 초연성은 표현의 고의적인 불명료성과 시적 사상의 의도적인 난해성에 의해서 더욱 강조된다.
p.239. 그의 시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관념의 압축과 이미지의 비약에 힘입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결코 언제나 예술적 관념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의적이고 유희적인 언어의 취급방식과 결부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p.241. 젊은이들의 자아실현 추구와 낡은 초개인적 형식에 대한 그들의 투쟁은 새로운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현상이지만, 1880년대 영국 문학 및 예술에서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비정치적 개인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p.242. 예술가의 언사나 사고방식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생활형식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고 공상을 모르며 거짓말 잘하고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극단적인 댄디즘은 인상주의 스타일의 모든 매력적인 요소를 과시하는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항의의 일부를 이룬다.  
p.244. “체험의 결실이 아니라 체험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다. 황홀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성공을 의미한다. 
p.245. 헤라끌레이또스적인 의미에서 “만물은 유전”하고 인생은 무서운 속도로 흘러가는만큼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진리, 즉 순간의 진리, 오로지 순간으로부터 앗아낼 수 있는 환희와 쾌락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어떠한 순간도 그 순간 고유의 매력과 내적 힘과 아름다움을 음미하지 않고는 흘려보내지 않는 일이다.p.246. 프랑스 문학에 있어 강력한 직관주의적 흐름이 개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적 경향을 이루는 지성주의는 영국에서도 새로운 문학의 주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p.247. 사람들은 찰나적이고 거의 포착할 수 없는 느낌의 서정시, 불명확하고 정의할 수 없는 감각적 자극, 연한 색깔과 피로한 음성 등을 노래하는 서정시들을 이리저리 되씹는다. 애매하고 막연한 것, 우리의 감관으로 겨우 잡힐까말까 하는 것들이 시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p.249. “지금 이곳이 동시에 피안이기도 하다”는 사실 앞에서의 놀라움, “모든 인간이 각기 자기의 길을 간다”는 데 대한 낭패감,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크나큰 의문-“한 사람이 살다가 죽었을 때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가, 그라는 인간만이, 정신적인 의미에서 살 수 있었던가 하는 비밀을 가지고 가버린다”는 수수께끼.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는다”라는 발자끄의 말을 생각해보면 1830년 이래 유럽의 인생관이 얼마나 수미일관하게 전개되어왔는가를 알 수 잇다. 이 인생관에는 항상 지배적이고 점점 더 깊어지는 한가지 불변의 특징이 있다. 소외와 고독의 의식이 그것이다. 
p.251. 체호프의 희곡형식은 아마도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연극적이지 않은, 아마도 ‘극적인 고비’라든가 돌발사건이나 긴장이 가장 미미한 역할을 하는 형식일 것이다. 그의 연극처럼 사건이 적고 극적인 갈등이 적은 연극은 없다. 등장인물들은 싸우지도 않고 자신을 방어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정복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들 스스로 몰락하고 서서히 망해가며 아무 사건도 희망도 없는 삶의 일상성 속에 휩쓸려들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인생을 고스란히 내맡기는데, 이 운명은 파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멸을 통해 완성된다.
p.253. 인간이란 그때그때의 경우, 즉 유전, 환경, 교육, 천성, 장소, 계절, 우연 등 여려 영향의 소산으로서 인간의 행위는 어느 한 가지 동기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일련의 동기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p.256. “내 여행의 제일 큰 수확이 무엇이었는가를 지금 말하라고 한다면, 이제까지 나에게 큰 지배력을 갖고 있던 유미적인 것, 자신의 독자적 존재 이유를 주장하는 고립적인 유미주의를 나 자신의 내부로부터 몰아냈다는 사실을 들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유미주의는 이제 내게는 종교에서 신학이 암적인 존재이듯이 시에서 암적인 존재로 보입니다.” 
p.257. 이러한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처음으로 종교적·윤리적 체험이 미나 천재와 전혀 무관하며 신앙상의 영웅이란 예술적인 천재와 전혀 별개의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 키에르케고르였다. 
p.258. 입센은 근본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로서 개성적 자유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삼았고, 일체의 외부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은 그 자신을 위해 매우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사회는 그를 위해 별로 해줄 게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p.262. 세기전환기에 있어 세계관의 기본 방향을 규정해주는 심리학은 '폭로의 심리학'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p.263. 맑스의 역사철학 전체의 기초가 되는 이론의 핵심은 계급적으로 분화되고 분열된 사회에서는 올바른 사유라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통찰이다. 
p.264. 정신의 자율성이란 하나의 허구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때로는 우리 자신의 적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힘의 노예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p.266. “지성의 목소리는 희미한 소리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이 귀를 기울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리고 수없이 거듭 거절을 당한 끝에 결국 지성의 소리는 듣는 사람을 찾고야 만다.
 p.267. “진리가 어떤 절대의 팔에 매달려 있던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자기 목적으로서의 학문, 무(無)전제의 진리, 이해를 초월한 미, 무아의 도덕 등은 니체 및 그의 동시대인들에게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p.268. 현실이란 떼어놓을 수 없는 주체·객체의 관계로서 그 개별적인 구성요소는 서로서로의 의존관계를 떠나서는 규명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는 변하고 있고 객체의 세계도 우리와 더불어 변하고 있다. 자연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어떤 발언이 설혹 100년 전에는 진리였다 하더라도 오늘날엔 이미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이란 우리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운동·발전·변화의 와중에 있으며 항상 새롭고 예상 못한 우연한 현상의 총화요, 언제나 완결되었다고 볼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p.269. 프루스트에 이르면 시간은 이미 분해와 파괴의 원리가 아니요, 그 속에서 이념과 이상이 가치를 잃고 삶과 정신이 실체를 상실하는 요소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존재, 생명 없는 물체와 기계작용에 반대되는 우리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 본연의 삶에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그렇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삶의 개개의 순간의 총화일 뿐 아니라 이러한 순간들이 모든 새로운 순간을 통해 획득하는 모든 새로운 국면들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생활에 내용을 부여한다. …… 프루스트의 말대로 진정한 낙원이란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p.279. 프루스트에 의한 인생 가치의 전도는 병든 한 인간의, 생매장된 한 인간의 지위와 자기기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2장 영화의 시대
 

p.286. 1930년대의 역사는 사회비판의 시대, 사실주의와 행동주의의 시대의 역사다. 모든 정치적 입장이 극단화한 시대이며, 오직 극단적인 해결만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모든 온건주의자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신념이 널리 퍼진 시대다.

p.287. 우리는 과연 대중사회 및 대중적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겠다. … 현대문명의 타락과 소외에 대한 책임을 이러한 "대중의 봉기" 탓으로 돌리고 정신과 영혼의 이름으로 이 봉기를 공박하려는 노력처럼 이 시대의 지배적 문화관을 잘 나타내주는 것도 없다.

p.289. 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은 이미 자연의 재현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이 예술이 자연과 갖는 관계는 일종의 폭력적인 것이다. 굳이 더 덧붙이자면 현실과 나란히 공존하고 있으나 현실을 대체할 의사는 없는 그러한 대상들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마술적 자연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p.290. 현대예술은 인상파의 부드러운 화음과 아름다운 색조를 거부하는, 근본적으로 '보기 싫은' 예술이다. 회화에서는 '회화적' 가치를 부인하고, 시에서는 정서의 조화와 아름답고 일관성있게 구성된 이미지를 배격하며, 음악에서는 멜로디와 음조를 파괴한다. 현대예술은 모두 즐겁고 기분 좋은 것, 모든 순전히 장식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한사코 기피하는 것이다.
 
p.293. 다다운동 전체의 의의는 기존의 모든 형식과 상투구의 유혹에 저항했다는 데 있다. 기성 양식이 손쉬운 대신 오래 사용된 탓에 가치를 잃었으며, 대상을 왜곡하고 표현의 자발성을 파괴하는 까닭이다. 다다이즘 그리고 그런 면에서 다다이즘과 완전히 일치하는 초현실주의는 표현의 직접성을 위한 투쟁이다. 즉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19세기가 항상 낡은 것과 새것, 전통적 형식과 개인의 자연발생적 창조력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데 그쳤던 반면에, 다다이즘은 닳아빠진 기존의 모든 표현방법의 전면적 파괴를 요구한다. 이들은 완전히 자연발생적인 표현을 요구하는데, 이 경우 그들의 예술이론은 하나의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어도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사전달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동시에 모든 의사소통의 수단을 부인하고 파괴할 수 있겠는가?프랑스의 비평가 장 뽈랑은 언어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작가들을 뚜렷한 두 부류로 구별했다. 그는 낭만주의자, 상징주의자, 초현실주의자 등 범속하고 인습적인 형식과 상투구를 언어로부터 완전히 제거하고 언어의 함정을 피하여 순수하고 신선하고 시원적인 영감에 호소하는 언어파괴자들을 '테러리스트'들이라 부른다.

p.294.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예술사적 의의는 그 운동의 공식 대변인들의 작품에 있다기보다 상징주의 운동 말기에 이르러 문학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그리고 삶과 완전히 절연된 문학 형식의 불모성을 지적했다는 데 있다.

p.295. 그들의 선언문에서도 말했듯이, "영원의 척도로 재볼 때 모든 인간행위는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p.295.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1922년에 동시에 발표되어 새로운 문학의 대조적인 두 가지 기본 음정을 들려주었다. 조이스의 소설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방향으로, T.S. 엘리어트의 시는 상징주의와 형식주의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두 작가에게서 다 주지주의적 태도를 볼 수 있지만, T.S. 엘리어트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교양경험'인데 반해 조이스의 경우는 '원초체험'이다. -중략- 교양경험에서는 역사적 문화와 정신적 전통 그리고 문학의 사상적, 형식적 유산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반면 원초경험의 경우 직접적인 생활현실과 존재의 문제가 그 원천을 이룬다. T. S. 엘리어트나 발레리에서 출발점은 항상 어떤 개념이나 사상 아니면 어떤 문제이고, 조이스나 카프카에서는 어떤 비합리적인 체험, 어떤 비전 또는 어떤 형이상학적, 신화적 이미지이다.

p.296. 삐까소의 절충주의는 인격의 통일성에 대한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파괴를 뜻하는 것이며 그의 수많은 모방은 독창성의 숭배에 대한 항의이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여 형식의 자의성을 좀더 강력히 보여주려는 그의 왜곡 변형 수법은 무엇보다도 '저연과 예술은 완연히 다른 현상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p.297.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의 방법에 '자동기술법'을 보완함으로써 이미 혼돈으로부터, 무의식과 비합리의 세계로부터, 꿈과 영혼의 통제 안된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진리, 새로운 예술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표명한 셈이다.

p.297.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인 것을 예술적 판단과 비판정신에 의해 통어하며 무분별 대신 분별로써 원칙을 삼았던 종래의 창작방법과 비교해볼 때, 결과적으로 다른 점은 초현실주의 방법이 더 현학적이고 독단적이며 신축성이 없다는 특징을 들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의 처방에 비하면 프루스트의 방법은 얼마나 더 효과적인 것인가. 프루스트도 일종의 몽유병적인 상태에 들어가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수동적으로 회상와 연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렸지만, 동시에 그는 끝내 엄격한 사상가요 극히 의식적으로 창작하는 예술가였던 것이다.

p.298. "내가 당신의 예술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의식적인 면이 아니라 의식적인 면입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기본 체험은 '제2의 현실'의 발견이다. 이 제2의 현실은 비록 일상경험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일상적인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까닭에, 우리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우리들 경험에 드러나는 심연과 공백을 통해서 그 존재를 암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원현상이 카프카와 조이스의 작품에서만큼 날카롭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p.298. 디테일을 세심하게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그러한 디테일들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조합하는 수법은 초현실주의가 꿈속에서 따온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두 가지 다른 차원,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뿐 아니라 이러한 두 영역이 너무나 철저히 상호 침투하고 있어 그 어느 하나를 다른 영역에 종속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둘을 단순히 반대명제로 대응시킬 수도 없다는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p.299. 모든 것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세계, 또는 모든 것이 동등한 의의를 지닌 세계에서 인간은 탁월한 존재자로서의 지위를 잃고 심리학은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p.300. 프루스트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총괄적인 묘사를 담고 있다고 흔히들 말하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현대인의 모든 욕망과 충동, 재능, 콤플렉스, 합리성, 비합리성 등 그 정신구조 전체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301. 이제 와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의식 내용의 동시성이며, 또한 개인과 종족과 인류 전체, 과거의 현재성, 여러가지 다른 시점들의 뒤섞임과 내면적 체험의 변화무쌍한 유동성, 영혼을 싣고 흐르는 시간의 흐름의 무한성,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즉 주체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러 매개체들을 이제 더 이상 분별하거나 제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새로운 시간 개념의 기본 요소는 '동시성'이며 그 본질은 시간적 요소의 공간화인데, 이러한 시간 개념은 제일 나이 어린 예술이요 배르그쏭의 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장르인 영화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영화의 수법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특징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어서 현대예술의 시간 범부가 영화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며, 현대예술에서 영화가 비록 질적으로 가장 풍부한 장르는 못 되더라고 스타일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p.302. 연극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영화와 닮은 장르이다. 특히 시간적 형식과 공간적 형식을 종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일부는 시간적일 따름이다. 대개는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이 나란히 병존할 뿐이지 영화에서처럼 양자가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 영화와 다른 예술 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는 공간이 시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시간은 또 어느 정도 공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공간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무제한적인 미완성의 공간이며 그것 자체의 역사, 그것 자체의 유일무이한 순간, 그리고 그 나름의 순서와 단계를 지닌 공간이다.

p.303. 우리는 다른 장르에서는 오직 공간 속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였는데, 이제 영화에서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전혀 관계없이 마치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듯이 시간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인다. 사건 진행과정의 여러 단계를 분해하여, 말하자면 공간적 질서의 원칙에 따라 이것들을 배합하는 것이다. 즉 시간은 한편으로는 그 연속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고정된 일방통행적 성격을 잃어버린다.

p.304.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는 플롯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그것을 연속적 사건의 진행 도중에, 그러니까 연극적 현재에 직접 끌어넣는 것을 희곡의 수법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허용하게 되었는데, 아마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거나 현대소설에서도 익히 보는 새로운 시간관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p.305. 시간의 부단한 굴절과 변동을 통해, 영화감상 체험의 본질을 이루는 가동성(可動性)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시간의 참된 공간화는 평행하는 플롯들의 동시성이 묘사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우리는 공간적으로 떨어져 일어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각기 다른 사건을 동시적으로 체험할 때 비로소 시간과 공간 사이로 움직이며 시간적 질서와 공간적 질서의 범주를 모두 요구하는 일종의 부동(浮動)상태에 들어간다. 사물이 멀고도 동시에 가까운 상태, 시간적으로 서로 가까우면서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먼 상태에서 비로소 시, 공간의 내적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시, 공간의 통합 - 또는 말을 바꾸면 시간의 2차원성 - 이야말로 영화 본연의 세계이며 영화적 대상 성립의 기본 범주가 되는 것이다.
p.306. 여하튼 영화의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언제나 그 두 선의 교차와 사건 전개의 이중성, 그리고 대립되는 행동들의 동시성이다.

p.306. 현대의 시간 경험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 속에 던져져 있는 순간의 의식, 즉 현재의 의식이다. 오늘의 인간에게는 모든 시사적인 것, 동시대적인 것, 현시점에 함께 얽혀 있는 것들이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현대인의 정신세계는 직접적 현재성과 동시성의 느낌에 젖어 있다. 현대인은 갖가지 사물 및 사건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상호작용에서 현대도시의 거대함과 현대 기술문명의 기적을, 그리고 그 사상세계의 복잡성과 그 심리의 애매성을 체험하고 있다. '동시적인 것'의 매력 - 한편으로는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각에 상이하고 상호 무관하고 모순된 것을 수없이 많이 체험하는가 하면 한편으론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그리고 지구상에 서로 격리된 여러 곳에서 같은 일이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이러한 매혹적 발견과 그에 따른 세계주의를 현대의 기술문명은 현대인에게 의식시켜 주었는데 이러한 세계주의야말로 새로운 시간 개념의 근원이며 현대예술이 삶을 경련적으로 그리는 원인일 것이다.

p.307. 이러한 경험이나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고 구분하려는 노력이 프루스트의 관점에서 더욱 무의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견해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그 사람 특유의 전형적 체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다시 성인이 되더라도 항상 근본적으로 동일한 체험을 한다. 어떤 사건의 의미는 그 사건을 겪고 견뎌낸 여러 해 후에야 비로소 머리에 떠오르기 일쑤다. … 인생의 어떠한 처지에서도 항상 이러저러한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따라서 세월의 흐름에 대한 유일한 자기 방어를 자기 체험의 고정된 정형성에서 찾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모든 체험들은 말하자면 한꺼번에 일어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은 결국 시간의 부정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저 내면성을 되찾으려는 투쟁이 아니겠는가

?p.308. 조이스에게도 시간이란 인간이 그 위를 오락가락하는 방향 없는 길과 같은 것이다. 이 수법의 영화적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조이스가 이 소설의 각 장을 순서대로 쓰지 않고 영화제작에서 늘 그러듯이 플롯의 전후순서를 떠나 여러장을 한꺼번에 쓰곤 했다는 사실이다.


p.309. 정신활동 과정의 대위법과 그 내면적 상호연관의 음악적 구조를 발견한 것은 베르그쏭이었다. 마치 우리가 한 음악작품을 제대로 듣는 경우 지금 울려나오는 음정 하나하나와 그 전에 나온 모든 음정들의 상호관계를 귀에 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가장 깊고 중요한 경험에서는 우리가 과거에 체험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을 마치 하나의 악보처럼 읽게 된다. 그리하여 두서없이 뒤섞인 소리들의 혼돈상태를 지양하고 여러 음정의 예술적 합창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혼돈과의 유희요 혼돈에 대한 싸움이다. 예술은 언제나 혼돈을 향해 점점 더 위태롭게 다가서서 더욱더 넓은 정신적 영토를 그로부터 건져오는 작업이다. 예술사에 어떤 진보가 있다면 그것은 혼돈으로부터 탈환해온 이러한 영토의 끊임없는 확대를 말하는 것일게다. 영화는 시간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발전을 또 한걸음 밀고 나갔다. 전에는 음악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었던 경험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 아직 비어 있는 이 새로운 형식을 참다운 삶으로 가득 채워줄 예술가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p.312. 이들은 아무 형체없이 몰려들었다가 또 형체없이 쏟아져나간다. 그들은 이질적이고 불투명하며 무정형의 군중으로서 그 윤관은 유동적이며, 단지 그들이 모든 사회적 범주에 두루 걸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계급적 성격이나 교양에 비추어볼 때 유기적으로 형성되고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그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을 따름이다.

p.313. 영화관에는 입은 옷 그대로, 연속 상영 도중 아무 때나 지나는 길에도 들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예술의 일상적 양상은 영화관람 행위의 즉흥적이고 서민적인 성격과도 일치하고 있다.
p.314. 예술의 품질과 대중적 인기는 항상 어떤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p.315. 대중과의 관계에서 성공 여부는 미적 질의 문제를 넘어선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 그들은 예술적으로 좋고 나쁜 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들에게 확신을 주거나 불안을 주는 여러 인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 그들에게 맞게, 다시 말해서 매력 있는 소재로 제시되었을 때 그것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 오직 젊은 예술만이 대중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장르가 오래되면 그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발전단계들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형식과 내용의 적절한 결합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이 젊은 동안에는 그 내용과 표현 형식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단순하다. 즉 주제에서 형식으로 직통하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형식들은 소재에서 독립하게 되며 점점 공허해져서 특별한 교양을 쌓은 소수의 계층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p.316. 영화의 대량 관객은 이러한 평준화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영화가 수지를 맞추려면 이러한 지적 평준화 작용의 근원이 되는 계층에 뿌리박지 않을 수 없다.
 p.317. 그들은 언제나 상하 양면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면서도 막연한 희망이나 가상적인 장래를 버리기보다는 자신의 참된 이익을 희생시켜왔다. 그들은 실제로는 하층 부르즈와지의 운명을 누리면서도 상층 부르즈와지의 일부로 간주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확고하고 선명한 사회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만큼 일관된 의식이나 세계관이 있을 리 없다. 그리하여 영화업자들은 사회의 이러한 뿌리 잃은 요소들이 아무런 방향감각도 못 가졌다는 사실에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분별하고 무비관적인 낙관주의가 소시민적 인생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대립이라는 것이 결국 별 것 아니라고 믿고,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들이 한 사회계층에서 다른 사회계층으로 쉽사리 옮겨가는 영화들을 보기 좋아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행운의 창조자다' - 이것이 중간계급의 가장 중대한 신조이며, 입신 출세가 그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원망적(願望的) 환상의 기본 주제를 이루고 있다.. 활동 사진이 영화예술로 발달하는 데는 두가지 업적이 그 기초를 이루었다. 하나는 미국의 영화감독 그리피스의 공로라고 하는 클로즈업의 발명이요, 다른 하나는 이른바 '쇼트 커팅'이라 하여 러시아인들이 발견한 새로운 화면삽입 수법이다.

p.320. 전 세계의 영화감독들은 국적과 세계관의 차이에 구애됨이 없이 러시아 영화의 기성 형식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술에서 어떤 내용이 어떤 형식을 이루는 순간 형식은 그것이 생겨난 세계관의 배경을 떠나서 채택될 수 있고 순전히 하나의 기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입증해주었다. p.321. 정말 어려운 문제는 그리스의 예술과 서사시가 특정한 사회발전 형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예술이 아직도 우리에게 심미적 만족을 주고 어떤 면에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모범이요 모델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있다.
p.322. 기계가 바로 창조적 주체와 그의 작업 사이에, 그리고 감상하는 주체와 그의 예술 감상 행위 사이에 개입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것,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영화의 기본 현상이다. 각종 경주와 차 또는 비행기 여행, 도주와 추격, 공간적 장애의 극복, 이러한 것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테마이다. 운동, 속력, 속도를 묘사할 때처럼 영화가 득의양양해지는 적은 없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사진'이며, 이 사실은 곧 그것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지고 기계적 재생을 목표삼은 공업기술적 예술임을 의미한다. 영화란 그 현실묘사에서 인간 아닌 물질적 사실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p.323. 사실 그대로, 진실 그대로인 것 - 즉 '다큐먼트'가 될 수 있는 것 - 에 대한 집념은 현대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장르의 가장 똑똑하고 재주 있는 대표자들은 그들의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될 것을 구태여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예술은 항상 하나의 부산물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목적을 수행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p.324. 우리의 과제는 다수 대중의 현재 시야에 맞게 예술을 제약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시야를 될 수 있는 한 넓히는 것이다. 참된 예술이해의 길은 교육을 통한 길이다. 소수에 의한 항구적 예술독점을 방지하는 방법은 예술의 폭력적인 단순화가 아니라 예술적 판단능력을 기르고 훈련하는 데 있다. … 오늘날 원시적이면서 동시에 가치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길은 없다. 오늘날 참되고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은 복잡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예술을 누구나 똑같은 정도로 즐기고 이해할 도리는 없지만 좀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고 심화될 수는 있다. 문화적 독점을 해소하는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


3. 내가 저자라면

이미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하지만 지금 이 책은 새롭다.
나의 관점이, 그리고 소설을 새로이 들여다보기로 한 시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스펀지처럼 읽혔다.
작가는 스탕달에서 입센까지 주로 프랑스의 문학사적 의미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맑스 앵겔스의 리얼리즘을 주창하고 있는 작가의 편향적인 예술론은 곳곳에서 자칭 자유로운 영혼인 나와 부딪쳤다. 스탕달을 실언을 한 작가로, 반면에 발자크의 시각은 훨씬 더 넓은 지평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우저는 특히 엥겔스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발자크가 이룬 업적을 ‘리얼리즘의 승리’로 예찬하고 있다. 또한 하우저의 예술사적 시각은 프롤레타리아가 싹트기 시작한 시점에서 초점화 되고 있다.

물론 이데올로기가 문학사적으로 그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우저는 자연주의인 플로베르가  뚜렷한 작가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일생을 보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글나부랭이에 미쳐서  마음이 메말라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플로베르에게 하우저는  삶의 ‘소유’와 삶의 ‘표현’ 간극을 프로베르가 메울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우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플로베르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졌는지까지 부인 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영국과 러시아 소설로 넘어 오면서 하우저는 낭만주의를 치명적인 독이라고까지  폄하하고 있다. 또한  “원시적이고…우둔하며”, “인생의 좀더 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갖지 않은 커다란 아이”로 까지  표현하고 있는  디킨즈에 대한 하우저의 긴  비판은 자신을 선민의 위치에 놓은  맹목적인 비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허드슨은 '리얼리티가 없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우저의 주장과도 일치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몰튼이 '소설은 인생의 서사시' 라고 말한 것처럼  작가가 어떤 주의로 말할 것인가는 그야말로 작가의 권리이다. 하나의 사조를 놓고 절대 진리처럼 주장하는것은 그야말로 편향적인 서적이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만약에 저자가 아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18,19세기의 예술사를 조망했다면 이 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p.48. “나는 민중을 사랑하고 압제자를 증오한다. 그러나 항상 그 민중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p. 51.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의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
 p.54. 릴케(R.M. Rilke)는 사자 우리 앞에서 물은 적이 있다. “누가 아는가,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울타리 앞에 있는지 혹은 뒤에 있는지?”-이것은 정말 스땅달적 물음이며 지극히 낭만적인 물음이다.

 하우저가 이 책을 어떤 시각으로 저술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 나의 문학사적 관점이 데카당스적 관점에서 리얼리즘으로,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시점으로 옮겨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책은 나의 애독서가 될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소설의 어떤 장르든 그 독창성과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이다.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위한, 비평을 위한 비평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19세기의 문학 시대적 배경을 큰 흐름으로 역어내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가 걸어 간 길, 그의 태도에 큰 자극을 받는다.  10년 동안 이 책을 집필하고 이 책의 반향으로 인해 60세에 교수가 된 그는 학생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저술만 했다는 하우저. 

얼마 전에 내 졸고를 최종심사 하셨던 작가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내게 그런 말씀을 주셨다.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우지도, 가르치려 하지도 말아라. 말씀인즉슨 네 스스로가 학생이고, 학교인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과도 같은 그 말씀을 듣고 놀랐다. 어떤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이미 도달해 있는 분들의 말씀은 공통점이 있다. 하우저도 그것을 알았다면, 좀더 겸손한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워진다.     
이책은 문학을 하려는 사람이 읽어야할 예술 개론서와도 같은 가치가 있는 책이다. 


p.237.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몹시 위로가 되기도, 또한 도발적이기도 한 구절이다.

♣ 다시 읽는 구절

p.33.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구호는 사실 한편으로는 산업주의와 보조를 같이하여 진행된 분업화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 기계화된 생활에 먹혀들어갈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예술의 방파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예술의 합리화, 탈합리화, 협소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생활의 일반적인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독자성과 자발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p.48. “나는 민중을 사랑하고 압제자를 증오한다. 그러나 항상 그 민중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p.54. 릴케(R.M. Rilke)는 사자 우리 앞에서 물은 적이 있다. “누가 아는가,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울타리 앞에 있는지 혹은 뒤에 있는지?”-이것은 정말 스땅달적 물음이며 지극히 낭만적인 물음이다.
p.55. 모짜르트가 항상 객관적이며 필연적인 확고한 플랜을 좇는 것같이 보이는 데 반하여,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모든 주제, 모든 모티프, 모든 음조가 마치 “나는 이렇게 느끼니까” “나에겐 이렇게 들리니까”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하고 작곡자가 말하고 있는 듯이 울린다.

p.57. ‘자잘한 진실들’(petits faits vrais)을 나열하는 스땅달적 수법은 정신생활이 하찮고 일시적이며 본래적으로 불합리한 현상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성이란 변덕스럽고 정의될 수 없으며 본성을 바꾸고 통일성을 깨뜨리기 쉬운 무수한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p. 64. 그는 <고기 낚는 여인>(La Rabouilleuse, 1841~42)에서 “덕은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며, <잃어버린 환상>에서 보트랭은 사람은 바람직한 지위와 그에 어울리는 재산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정직 따위의 사치”부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p. 66. 졸라는 발자끄 세계관에서 발현된 요소와 잠재적 요소 사이의 대립을 규명하고, 맑스적 해석에 앞질러 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의식적인 확신과 상반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같은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에 거듭 나옴으로써 하나의 싸이클로 통일된다면 훨씬 더 아름다우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자기의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가장 탁월한 손질을 가했다. 부가적이긴 하지만 결코 인공적이 아니며 ,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만큼 더 진실하고 생생한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 것이다.”

p.74. ‘예언’과 ‘비전’이란 물론 결점을 들춰낼수록 오히려 그 마술적 영향력이 늘어가기만 하는 것 같은 그의 예술 앞에서 무어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우리의 당혹스러움과 무력을 감추기 위한 낱말일 따름이다.

p.103. 플로베르는 작가생활 초기(1851년9월)에 “인생에서 참되고 좋은 유일한 것, 그것은 예술”이라고 말했고, 말기(1875년12월)에는 다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작품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중략-

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한 번도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정말 쓰고 싶은 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의 편지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p.107. 우리는 우리 생애의 가장 거창하고 충격적인 좌절들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야심이 시들면서 함께 시들어간다는 인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서글픈 사실이다. 이러한 점진적이고 눈에 안 띄고 그러면서도 막을 길 없는 쇠진의 경험, 거창한 파국이 갖는 놀라운 효과조차 만들어주지 않는 조용한 삶의 침식의 경험은 <감정교육>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현대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모든 현재는 메마르고 무의미하며 과거조차 그것이 현재인 동안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낭만적 감정의 지속이며 확대이다.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말 하잘것없고 공허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우리 인생을 이어주는 사슬에는 항상 어느 한 고리가 빠져 있고 객관적 무의미와 순전히 주관적인 의미가 안겨주는 서글픔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p.120. ‘대단원’은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다. 해답이 틀리다면 계산 전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뒤마 2세는 말한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결론, 해결, 그 마지막에 맞추어 작품을 꾸며야 하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뒷걸음질쳐나가는 방법이야말로 ‘잘 만들어진 각본’을 조립해내는 타산적 능력과 진정한 작가가 창작과정에서 자신을 내맡기는 비합리적 충동 사이의 차이를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효과는 순전한 수학적 관계의 범위 이상의 무한한 성분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 반하여, ‘잘 만들어진 각본’의 효과는 오로지 술수와 충격적인 효과의 연속에만 의존한다. p.121. 오히려 예술은 사건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을 적당히 미리 준비하고 뒤얽힌 매듭을 매끈하게 푸는 데 있다는 것이다. p.125. 오페레타가 사람들의 기강을 문란하게 한 것은 그것이 모든 ‘고상한’ 것을 비웃는다거나 고전과 고전비극과 낭만주의 오페라에 대한 조소가 실상은 위장된 형태의 사회비평이었던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원칙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 권위에 대한 신앙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p.131. 올바르게 지적된 것처럼 개인적 체험과 개인적 발견에서 출발하여 자기 나름의 어떤 매너리즘으로 끝나는 보통 예술가들의 전형적 코스와 반대로, 그는 당대의 지배적 인습들을 아무런 내적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가 점차 자기의 길을 찾아 독창성에 이른다.  

p.152. 그는 일반의 의식을 뚫고 들어가 영국 독서층의 상상세계에 자리를 잡게 된 가장 포괄적인 인물군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이 인물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내적 관계도 그의 독자들의 그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표면의 진실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자연주의를 요구하며, 실생활의 요소들이 환상적으로 서로 섞이고 서로 어지럽게 밀어대고 서로 다투어 눈을 끄는 현상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술에서 무엇보다도 리얼리즘을 사랑한다. 환상적인 것에 접근하는 리얼리즘을 현실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현실보다 더 있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201. 오직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쉴새없이 새것을 추구하는 흔히 무의미하고 실속 없는 쇄신욕구를 초래하는 것이다. 기술의 성과에서 실제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기업가는 새로 고쳐 만든 신식 제품에의 수요를 인위적인 수단으로 높이지 않을 수 없으며, 새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이라는 느낌이 가라앉을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낡은 일용품이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보충하고 게다가 새것이 점점 빨리 나오게 되면 이에 따라 물질적 자산에 대한 집착이 약해지고 또한 곧 정신적 자산에 대한 집착마저 희미해지며, 결과적으로 철학적, 예술적 평가의 변화속도가 유행의 변화속도에 적응하게 된다. 이리하여 현대의 기술은 유례없이 생활감정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니와, 인상주의에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동적인 감정인 것이다. 

p.202. 인상주의를 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가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 번 다시 발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 표현을 이처럼 순간적 분위기에 귀속시키는 데에는 동시에 인생에 대한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태도, 수용적, 관조적 주체로서의 방관자의 역할에 대한 만족, 멀찍이서 바라볼 뿐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입장, 요컨대 전적으로 심미주의적 태도가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을 의미한다.

p.209.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것처럼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은 없으며, 낯선 사람들의 떼거리 속에서처럼 외롭고 버림받은 느낌이 강한 경우도 없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생기는 기본적인 두 감정, 즉 한편으로 남이 봐주지 않는 데서 혼자 있다는 느낌과 다른 한편으로 번잡한 교류와 끊일 사이 없는 움직임과 쉴새없는 변화의 인상이 가장 섬세한 기분과 가장 신속한 자극의 교체를 결합시키는 인상주의적 생활감정을 낳게 되는 것이다.

p.218. 이성적인 것을 천박하다고 타박하며, 미지의 것과 불가지의 것을 찾아 느끼려고 한다. 그들은 현세부정적인 ‘금욕적 이상’을 신봉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니체와 더불어 왜 정말 그것이 필요한지 묻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p.220. 그우리가 우리의 체험을 가장 강렬하게 실감하는 것은 현실 가운데서 인간이나 사물들과 마주칠 때가 아니라-이러한 체험의 ‘시간’과 실감은 늘 ‘잃어버리고’마니까-우리가 ‘시간을 되찾을’ 때, 이미 우리 삶의 행위자가 아니고 관찰자일 때, 예술작품을 창조하거나 감상할 때, 즉 우리가 기억을 할 때라는 것이다. 

p.225. 데까당들에게는 ‘모든 것이 심연’이요 모든 것이 삶의 불안과 불안전으로, 보들레르가 노래하듯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막연한 전율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진짜 도망이요, 무엇이 끌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구역질나기 때문에 떠나는 미지에의 여행인 것이다. p.232.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처럼 쉽게 행복하다는 사실을 동정합니다. 사람이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깊이 내려가보았어야 하지요.” - 보들레르

p.236. 시인이란 ‘예시자’(voyant)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들을 정상적 기능의 관습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분리시켜서 비자연화·비인간화시킬 용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현대문학 전반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발언을 한 것은 바로 랭보였던 것이다.

p.237.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p.242. 예술가의 언사나 사고방식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생활형식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고 공상을 모르며 거짓말 잘하고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p.246. 프랑스 문학에 있어 강력한 직관주의적 흐름이 개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적 경향을 이루는 지성주의는 영국에서도 새로운 문학의 주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자기들 스스로 몰락하고 서서히 망해가며 아무 사건도 희망도 없는 삶의 일상성 속에 휩쓸려들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인생을 고스란히 내맡기는데, 이 운명은 파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멸을 통해 완성된다.p.253. 인간이란 그때그때의 경우, 즉 유전, 환경, 교육, 천성, 장소, 계절, 우연 등 여려 영향의 소산으로서 인간의 행위는 어느 한 가지 동기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일련의 동기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p.256. “내 여행의 제일 큰 수확이 무엇이었는가를 지금 말하라고 한다면, 이제까지 나에게 큰 지배력을 갖고 있던 유미적인 것, 자신의 독자적 존재 이유를 주장하는 고립적인 유미주의를 나 자신의 내부로부터 몰아냈다는 사실을 들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유미주의는 이제 내게는 종교에서 신학이 암적인 존재이듯이 시에서 암적인 존재로 보입니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p.263. 맑스의 역사철학 전체의 기초가 되는 이론의 핵심은 계급적으로 분화되고 분열된 사회에서는 올바른 사유라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통찰이다. 

p.266. “지성의 목소리는 희미한 소리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이 귀를 기울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리고 수없이 거듭 거절을 당한 끝에 결국 지성의 소리는 듣는 사람을 찾고야 만다. 

p.269. 프루스트에 이르면 시간은 이미 분해와 파괴의 원리가 아니요, 그 속에서 이념과 이상이 가치를 잃고 삶과 정신이 실체를 상실하는 요소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존재, 생명 없는 물체와 기계작용에 반대되는 우리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 본연의 삶에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그렇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삶의 개개의 순간의 총화일 뿐 아니라 이러한 순간들이 모든 새로운 순간을 통해 획득하는 모든 새로운 국면들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생활에 내용을 부여한다. …… 프루스트의 말대로 진정한 낙원이란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장 뽈랑은 언어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작가들을 뚜렷한 두 부류로 구별했다. 그는 낭만주의자, 상징주의자, 초현실주의자 등 범속하고 인습적인 형식과 상투구를 언어로부터 완전히 제거하고 언어의 함정을 피하여 순수하고 신선하고 시원적인 영감에 호소하는 언어파괴자들을 '테러리스트'들이라 부른다.

p.295. 그들의 선언문에서도 말했듯이, "영원의 척도로 재볼 때 모든 인간행위는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p.296. 삐까소의 절충주의는 인격의 통일성에 대한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파괴를 뜻하는 것이며 그의 수많은 모방은 독창성의 숭배에 대한 항의이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여 형식의 자의성을 좀더 강력히 보여주려는 그의 왜곡 변형 수법은 무엇보다도 '저연과 예술은 완연히 다른 현상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p.297.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의 방법에 '자동기술법'을 보완함으로써 이미 혼돈으로부터, 무의식과 비합리의 세계로부터, 꿈과 영혼의 통제 안된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진리, 새로운 예술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표명한 셈이다.

p.298. "내가 당신의 예술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의식적인 면이 아니라 의식적인 면입니다."

p.298. 디테일을 세심하게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그러한 디테일들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조합하는 수법은 초현실주의가 꿈속에서 따온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두 가지 다른 차원,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뿐 아니라 이러한 두 영역이 너무나 철저히 상호 침투하고 있어 그 어느 하나를 다른 영역에 종속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둘을 단순히 반대명제로 대응시킬 수도 없다는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p.301. 이제 와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의식 내용의 동시성이며, 또한 개인과 종족과 인류 전체, 과거의 현재성, 여러가지 다른 시점들의 뒤섞임과 내면적 체험의 변화무쌍한 유동성, 영혼을 싣고 흐르는 시간의 흐름의 무한성,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즉 주체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러 매개체들을 이제 더 이상 분별하거나 제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일부는 시간적일 따름이다. 대개는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이 나란히 병존할 뿐이지 영화에서처럼 양자가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 영화와 다른 예술 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는 공간이 시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시간은 또 어느 정도 공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공간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무제한적인 미완성의 공간이며 그것 자체의 역사, 그것 자체의 유일무이한 순간, 그리고 그 나름의 순서와 단계를 지닌 공간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전혀 관계없이 마치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듯이 시간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인다. 사건 진행과정의 여러 단계를 분해하여, 말하자면 공간적 질서의 원칙에 따라 이것들을 배합하는 것이다. 즉 시간은 한편으로는 그 연속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고정된 일방통행적 성격을 잃어버린다.p.304.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는 플롯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그것을 연속적 사건의 진행 도중에, 그러니까 연극적 현재에 직접 끌어넣는 것을 희곡의 수법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허용하게 되었는데, 아마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거나 현대소설에서도 익히 보는 새로운 시간관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p.306. 여하튼 영화의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언제나 그 두 선의 교차와 사건 전개의 이중성, 그리고 대립되는 행동들의 동시성이다. p.306. 현대의 시간 경험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 속에 던져져 있는 순간의 의식, 즉 현재의 의식이다. 오늘의 인간에게는 모든 시사적인 것, 동시대적인 것, 현시점에 함께 얽혀 있는 것들이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현대인의 정신세계는 직접적 현재성과 동시성의 느낌에 젖어 있다. 현대인은 갖가지 사물 및 사건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상호작용에서 현대도시의 거대함과 현대 기술문명의 기적을, 그리고 그 사상세계의 복잡성과 그 심리의 애매성을 체험하고 있다. '동시적인 것'의 매력 - 한편으로는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각에 상이하고 상호 무관하고 모순된 것을 수없이 많이 체험하는가 하면 한편으론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그리고 지구상에 서로 격리된 여러 곳에서 같은 일이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이러한 매혹적 발견과 그에 따른 세계주의를 현대의 기술문명은 현대인에게 의식시켜 주었는데 이러한 세계주의야말로 새로운 시간 개념의 근원이며 현대예술이 삶을 경련적으로 그리는 원인일 것이다.

p.309. 정신활동 과정의 대위법과 그 내면적 상호연관의 음악적 구조를 발견한 것은 베르그쏭이었다. 마치 우리가 한 음악작품을 제대로 듣는 경우 지금 울려나오는 음정 하나하나와 그 전에 나온 모든 음정들의 상호관계를 귀에 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가장 깊고 중요한 경험에서는 우리가 과거에 체험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을 마치 하나의 악보처럼 읽게 된다. 그리하여 두서없이 뒤섞인 소리들의 혼돈상태를 지양하고 여러 음정의 예술적 합창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혼돈과의 유희요 혼돈에 대한 싸움이다. 예술은 언제나 혼돈을 향해 점점 더 위태롭게 다가서서 더욱더 넓은 정신적 영토를 그로부터 건져오는 작업이다. 예술사에 어떤 진보가 있다면 그것은 혼돈으로부터 탈환해온 이러한 영토의 끊임없는 확대를 말하는 것일게다. 영화는 시간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발전을 또 한걸음 밀고 나갔다. 전에는 음악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었던 경험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 아직 비어 있는 이 새로운 형식을 참다운 삶으로 가득 채워줄 예술가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불투명하며 무정형의 군중으로서 그 윤관은 유동적이며, 단지 그들이 모든 사회적 범주에 두루 걸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계급적 성격이나 교양에 비추어볼 때 유기적으로 형성되고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그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을 따름이다.

예술이 젊은 동안에는 그 내용과 표현 형식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단순하다. 즉 주제에서 형식으로 직통하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형식들은 소재에서 독립하게 되며 점점 공허해져서 특별한 교양을 쌓은 소수의 계층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영화업자들은 사회의 이러한 뿌리 잃은 요소들이 아무런 방향감각도 못 가졌다는 사실에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분별하고 무비관적인 낙관주의가 소시민적 인생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대립이라는 것이 결국 별 것 아니라고 믿고,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들이 한 사회계층에서 다른 사회계층으로 쉽사리 옮겨가는 영화들을 보기 좋아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사진'이며, 이 사실은 곧 그것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지고 기계적 재생을 목표삼은 공업기술적 예술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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