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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5일 20시 45분 등록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 저자에 대하여

나탈리 골드버그는 1948년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폴란드계 유태인 이었다.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그녀는 24년 동안 선(禪)불교를 공부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1986년에 그녀가 쓴 책이다. 지금부터 20여년전에 출판된 이 책은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 100만부의 판매를 기록했고 9개 국어로 출간되어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25년 간 이어온 선禪 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킨 노하우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작법론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데까지 이른다. 그녀가 말하는 창의력의 비밀은 글을 첨가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기의 법칙”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독특한 관점은 오랜 명상체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현재 뉴 멕시코 북부의 산타페에 살고 있으며,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기초해서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의 또 다른 저서로는 'Wild Mind: Living the Writer's Life' (1990), 'Long Quiet Highway ' (1993), 'Banana Rose' (1995), 'Living Color' (1997), 'Thunder and Lightning' (2000), 'Top of My Lungs' (2002), 'The Great Failure ' (2004) 등이 있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12]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똑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연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16]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18]

훈련은 공연에 앞서 무용수가 몸을 풀고, 시합 전 육상 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과 똑같다. 육상 선수라면 “나 어제 뛰었어. 그러니 오늘은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달리기를 위해 매일같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또 육상 선수들은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기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뜨거운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더욱이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 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30]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34]

우리의 지각 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36]

우리는 글이 안 써질 때도 무조건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55]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 자세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쓰기를 배운답시고 쓸데없이 대가들과 문학 강의를 좇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훌륭한 대가를 열 사람이나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
한 편의 시를 놓고서, 학교 수업은 살아 숨쉬는 시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기보다 은유법과 상징법을 찾아 낱낱이 해부해 버리고 만다. 학교는 우리에게, 시를 대할 떼는 시인이 언어속에 숨겨 둔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시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맥박이 뛰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언어로 된 생명체다.  [64]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69]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 누구나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오븐에서 막 꺼낸 피자처럼 종이위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 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서투르고 꼴사나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  [75]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77]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닐 수 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 보라. 이제 우리는 강박증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79]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88]

“아주 맛있어요. 일품이야!”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어떻게 대단한 것인가? 독자에게 그 대단함의 냄새를 맡게 하라. 바꿔 말해서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  [90]

위대한 선승인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 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101]

우리는 정직한 지원과 격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누군가 칭찬을 해 주면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비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결국 자신은 별 볼일 없고 진짜 작가도 못 된다는 쓸데없는 믿음만 키워가려 한다.  [108]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도,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  [109]

나는 결국 꿈에 이끌렸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일단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자신 안에 내재된 창의적인 힘을 허락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당신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또는 시든, 그것을 쓰는 방향을 잡게 된다. 당신에게는 꿈을 채워 나가게 하는 기본적인 연장인 ‘글쓰기’가 있다. 또 기억할 것이 있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당신 안에 숨겨져 있던 은밀한 꿈들 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절대 당신의 꿈을 회피할 수 없다.  [112]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알게 될 수록,당신은 글을 쓸 때 상황에 따라서는 구문론이라는 틀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이처럼 문장 구조를 깨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116]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글쓰기는 심리학 논문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117]

그렇다. 나는 이야기 바깥에 있었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야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말은,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절대 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 이야기에 당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119]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 줄 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연인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136]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138]

 “아, 그래. 에로티시즘에 대해 써 보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쓰려면 성적 본능을 구체적 행동과 관련지어서 ?????  .”하지만 이러한 초조함으로 작품을 시작하게 되면 자신이 진짜 하려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길을 잃거나, 과연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작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에로티시즘에 대해 자신이 없고 불안하다면 방을 둘러보라.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접시 위에 놓인 찻잔, 썰어 놓은 얇은 사과 한쪽, 당신의 빨간 입술에 달라붙은 오레오 쿠키 부스러기도 괜찮다. 때로는 대답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거꾸로 돌아오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158]

또한 거창한 주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다루려는 주제 속에 들어 있는 작은 편린들을 들여다보라.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라.
   ? 무엇이 당신의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섹스를 연상시키는 과일의 이름을 아는 데로 적어 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혹시 성적 경험이 부족해서 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지금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써보라. 단 10분간이다. 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써보라. 계속 써라. 손은 멈추지 말라. 수정이나 삭제. 첨가도 하지 말라.  [160]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변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4]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166]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로움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해도, 두려움에 갇혀 버리거나 존재론적 무의미로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다만 지도를 꺼내 내가 가야할 길을 확인할 뿐이다. “왜 나는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모든 것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나는 나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다.  [171]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172]

그건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약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또 다시 당신을 쓰러뜨린다 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글쓰기에서도 같은 진실이 통한다.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늘 똑같다. “어리석은 짓이야. 돈 한푼도 벌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경력도 쌓지 못하고 있잖아. 이제는 내 걱정을 해 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너무 외로워. 이런 게 싫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도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어.”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174]

모든 순간이 새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사업상의 자리에서 물총이 사용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물총을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면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  [180]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근사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193]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208]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규칙만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일주일에서 멀게는 1년이 되어도 좋으니 글쓰기에서 떨어져 있으라.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글쓰기로 돌아가라.  [209]

만약 오랜 시간에 걸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글쓰기에 충분히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오직 연습 시간의 경과로만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평생을 연습해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때로는 더 멀리 가기 위해 인생을 변화시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212]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등을 펼 수 없고, 펜을 놓은 다음에야 등을 편다.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 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214]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정원을 손질해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여기 내가 1984년 7월 27일 노트에 적었던 글을 소개하겠다.  [218]

이렇듯,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 동안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다시 기억할 것이다.  [219]

“작품도 형편없고 나도 형편없다” 라거나 “작품은 좋은데 나는 나쁘다” 또는 “작품은 나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은 하지 말라.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라.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떼어 놓아야 할 첫 걸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  [248]

글쓰기를 하다보면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을 뚫고 무언가 선명한 것이 표면으로 올라올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글에 에너지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 가치 있는 작품을 썼다고 자신하지는 말라.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토요일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취중에 쓴 낙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일요일 아침 깨어나서 보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지 모른다. 자신이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 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그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254]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 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 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255]

그 대신 작품을 다시 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즉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미련 없이 적을 잘라 내는 사무라이처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기꺼이 감상을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본질을 꿰뚫는 마음으로 자신의 글을 쳐다보라. 하지만 글에 간섭하고 싶고 좀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단신의 에고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면된다. 작품을 타이핑하고,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표에 침을 묻히는 일을 시키면 된다. 단지 작품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라. 원고 수정 작업은 ‘새롭게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쓴 글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전체 그림을 다시 본 다음 그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부  묘사를 첨가하면 된다. 이때도 10분, 20분식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수정에 들어간다. 원래 작품에서 나온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다시 써 보자.  [260]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큰 감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말라.  [267]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탈리, 이 책은 끝났어. 넌 또 다른 책을 쓰게 될 거야.”  [268]


● 내가 저자라면

옆집 아줌마가 된장찌개를 끓이는 방법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이야기 속에는 철학이 있고 인간이 있고 생활이 있다. 그 이야기를 모아서 글로 구성하면 그럴듯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는 동안 가끔씩 옆집 아줌마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책은 편하게 읽혔다. 철학과 인간과 삶을 말하고 있음에도 책은 편하게 다가온다. 반면 옆집 아줌마의 에세이처럼 형식이 없어 보이는 책의 구성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편안하고 친근해서 접근이 쉽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두서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나는 대로 이런저런 내용을, 되는대로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느낌은 달콤 쌉싸름하다.
책은 솔직하다. 솔직하게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은 까닭에 억지로 강조하지 않아도 진정성이 풍겨온다. 책을 읽다보면 독자는 책쓰기에 대한 희망이 자신도 모를 곳에서 솟아오르고 누군가 어깨를 두들겨주는 듯한 느낌에 용기가 생겨난다.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심어준다는 것이 책의 가장 큰 역할이고 장점이다.

책의 소개에는 저자가 20년 넘게 공부한 선(禪)문화와 글쓰기를 접목 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선(禪)문화와 글쓰기의 연계는 매끄럽지 않고 부조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이 산만하게 보이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62개의 주제를 순서 없이 늘어놓은 내용은 계산된 과정이 없어서 인지 내용과 내용의 연계성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저자는 자유롭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자유로움의 대가로 독자는 몰입의 흐트러짐을 경험하게 된다. 책 전체의 물줄기를 크게 묶어주는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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