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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1일 17시 16분 등록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인터뷰-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삽화-레미 말랭그레/ 번역-강주헌


● 저자에 대하여

아브람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1928년 12월 7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유태계 러시아인 이민 2세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촘스키는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였다.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와 필라델피아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촘스키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존 듀이의 교육이념을 따르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촘스키는 창조적인 사고를 키웠다. 반면에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쟁적인 학교였는데 촘스키는 이 학교에서 불행했으며 의욕을 상실했다.

촘스키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서 언어학 수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특별연구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 29세인 1956년에 MIT 대학 부교수 32세인 1959년에는 정교수가 되었으며, 1964년에는 37세의 나이로 석좌교수가 되었고, 47세인 1974년부터는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49년 22세에 언어학자인 캐럴 슈어츠 촘스키와 결혼해 2녀 1남을 두고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 시절 언어학 교수였던 젤리그 해리스의 영향으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된 촘스키는 생성문법이론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생성문법체계 수립과 생성문법에 내포된 의미로부터 언어이론을 세우는 작업은 현대 논리학과 수학의 기초에 관한 그의 관심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촘스키의 저술들은 1960년대 이후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는 왕성한 저술활동과 더불에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강의 활동을 수행했다.

어릴 때부터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언어학자로만 머물지 않고 1960년대부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1966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지식인의 책무’를 통해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기고문은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흔히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미국의 힘과 새로운 관료들(1969)’을 통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신랄하게 규탄했으며, 이후 다양한 저술을 통해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저서에는 ‘아시아와의 전쟁에서(1970)’ ‘국가의 이유에 대하여(1973)’ ‘밀실의 남자들(1973)’ ‘중동의 평화?(1974)’ ‘인권과 미국의 외교정책(1978)’ ‘새로운 냉전을 향하여(1982)’ ‘숙명의 트라이앵글: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1983)’ ‘미국의 대외정책:제3세계 정책을 중심으로(1985)’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year 501(1993)’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1996)’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1999)’ ‘불량국가: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2000)’ 촘스키, 9-11(2001)’ 등이 있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 년 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수필가이자 철학자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도 고육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민중이 우리 멱살을 잡지 않도록 민중을 교육시켜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민중을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지식인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2]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광고 산업이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25]

홍보와 광고, 그래픽 아트, 영화, 텔레비전 등을 운영하는 거대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 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의 벽을 세우고 대중을 그 벽 안에 가둬 격리시키려 합니다. 신문과 방송, 광고와 예술 등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간에 선전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선전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울 뿐입니다. 예전부터 그 역할은 지식인의 몫이었습니다. 학식과 지식을 지닌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28]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인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명한 지식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들만의 고유한 권력체계 내에서 ‘책임 있는 지식인’이란 직함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 ‘책임 있는 지식인’이라 자처합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그들을 ‘테크노크라트 지식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에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무책임한 지식인’, 즉 ‘반체제적 지식인’과 구분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적국에 대해 말할 때는 가치기준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테크노크라트 지식인들을 ‘인민위원’이나 ‘기관원’이라 매도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비난합니다. 반면에 반체제적 지식인들 결국 적국의 지배자들에게 멸시당하고 핍박당하는 불평분자들에게는 월계관을 씌워줍니다.  [31]

우리 적의 영항 하에 있는 땅에서 가혹한 억압을 받았든,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땅에서 무참하게 암살당했든 간에 남다른 용기를 보여준 반체제인사들은 공평하게 존경받고 찬사 받아야 합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드레퓌스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지식인들은 에밀 졸라의 용기를 옹호하지만, 당시 지식인들은 대부분 정부 편을 들지 않았습니까!  [36]


*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괴벨스와 즈다노프의 주장까지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 표현만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46]


*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은 강력한 정부를 원합니다. 정부를 울타리로 보호받겠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2백 년 전, “기업이 정부의 도구이자 정부의 지배자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 제임스 매디슨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기업은 기꺼이 정부의 도구가 되었고, 정부는 기업을 앞세워서 목적을 달성하려 합니다. 하지만 기업은 정부를 지배하는 폭군이기도 합니다. 기업이 정부의 정책 결정을 뒤에서 조정한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55]

기업은 독재적 성격을 띤 기관입니다. 현대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기적 존재가 개인에 앞선 특권을 갖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됩니다. 그런데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두 가지 형태의 독재체제, 즉 볼셰비키즘과 파시즘도 바로 이런 원칙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요컨대 이 셋은 개인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한 전통 자유주의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57]

기업계 지도자들은 노동세력이 무력으로 억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은 유난히 폭력으로 유린된 노동운동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 때문에 수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산업국가에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많은 희생자를 낸 셈 입니다. 폭력적 수단으로 노동자를 억압할 수 없게 되자 기업주들은 선전으로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파업을 분쇄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 즉 노동자의 정신을 통제하는 수단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모호크 밸리 법칙이 개발되고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전투적인 노동운동가는 ‘외부의 선동가’ 즉 십중팔구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라도 돈을 빌려주는 정겨운 은행가 친구가 있고,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 정직한 일꾼과 그의 정숙한 아내를 돕기 위해서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기업주가 있는 나라, 달콤한 미국식 생활방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나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우리나라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노동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모든 통로가 동원되었습니다. 언론, 성직자, 영화, 라디오가 동원되었고 나중에는 텔레비전, 노동현장의 주변 사람들, 스포츠, 학부모 모임과 교사 협의회까지 활용했습니다. 기업계 지도자들은 “정신과 마음을 얻기 위한 영원한 전투”에 전력투구하고,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상을 주입시켜야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다소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기업의 지배가 위협받자, 선전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기업계 지도자의 표현대로 ‘개똥철학’ 즉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69]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의 역할은 ‘참여자’가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나 관심을 갖는 구경꾼’의 역할이어야 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예부터 저명한 사상가들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20세기 들어 민주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사상이 되었습니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런 흐름을 꿰뚫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합니다.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피에르 부르디외는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택시기사로 삶을 끝마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70]

미국 대통령은 제한된 권력을 지닐 뿐입니다. 거대한 집단들이 강요하는 틀을 깨려고 한다면 미국 대통령이라도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1992년, 즉 빌 클린턴의 첫 임기 초가 좋은 예입니다. 당시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못하고 있어 클린턴의 자문위원 중 일부가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두세 가지 사회정책을 제안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인지조차 못할 정도로 아주 온건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융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 그 정책을 중단시켰습니다. 채권 유통이 늘어나고 자본이 유출될 것이라 협박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클린턴은 우익에 편향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통적인 역할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후 모든 정책이 공공연히 우익적 성향을 보였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 의 기사에서도 확인되는 것입니다. 밥 우드워드가 출간한 책을 포함해서 여러 책이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가마저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72]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에 관련된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개발, 자금과 용역이 공공 분야에서 나온 것입니다. 웹도 공공 분야가 지원한 연구로 완벽하게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인터넷이 민간 기업으로 이전된 과정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 분야의 창의적 발상으로 공공자금으로 개발된 이런 모든 것은 당연히 공공의 재산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민간 기업에 양도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말입니다.  [79]


* 자본주의는 없다

브레틴 우즈 체제는 자본의 흐름을 규제하고 악의적인 투기와 자본 유출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교환율을 조절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을 지켜낼 방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체제가 1970년대 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자본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금융자본의 이동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현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왜곡되고, 실질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조건도 악화되었습니다.  [85]

이 모든 것이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전역에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쇠퇴하고 실질임금은 답보 상태에 있거나 줄어들었으며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86]

자본주의요?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체제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래서 ‘연대 국가자본주의’ 혹은 ‘기업 중상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꼭 들어맞는 명칭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애덤 스미스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던 학자들이 요즘의 자본주의를 본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87]

결국 모든 면에서 우리 경제는 자유경쟁체제의 껍데기만 흉내 내고 있다는 뜻입니까?
금융 부분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다. 실제로 금융시장은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어떤 규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경제만이 아니라 사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도 시장의 규제 장치가 마비된 결과였습니다. 일반적인 관측에 따르면, 금융의 탈 규제화 때문에 고도성장과 공평한 분배로 정의되는 50년대와 60년대의 황금시대가 끝나고 대다수 국민의 실질임금의 정체나 하락, 노동시간의 증가, 사회보장제도의 악화, 민주주의의 쇠퇴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금융시장의 탈 규제화와 거의 동시에 닥친 것이 사실입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단순한 시간적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88]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금융시장은 집단행동, 즉 부화뇌동적 특징을 띱니다. 그래서 케인즈는 금융시장을 미인경연대회에 비유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경연자들을 개인적 판단에 따라 채점하지 않고, 다른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고려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곳이 바로 미인경연대회가 아닙니까! 금융시장과 투기시장도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투자 방향을 짐작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지수가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합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폭락이 일어나고, 거꾸로 급격히 상승합니다. 이처럼 지수가 등락을 거듭하며 금융시장은 나날이 새로운 기록을 만듭니다. 달리 말하면 일정한 간격으로 두고 금융시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며 재앙이 닥칩니다. [91]

현재의 경제체제가 붕괴된다면 그 이유는 금융위기나 생태환경의 재앙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경계심도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도 삶에 넌더리를 내면서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자료에 따르면 1999년 미국 중산층 가정의 노동시간이 1989년에 비해서 무려 6주나 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재산은 무시할 정도밖에 늘지 않았고 빚은 예전의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모두가 증권시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거의 절반의 주식을 상위 1퍼센트의 주주가 보유하고 있으며, 80퍼센트의 주주가 지닌 주식 보유랑은 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94]
 

*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제정지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재배한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군사적이고 생물학적 공격을 가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까? 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공격을 감행한단 말입니까? 그 땅의 농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코카를 재배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미국에서 만든 담배 때문에 아시아에서도 매년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노스캐롤라이나의 담배농장을 폭격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105]

만약 모든 것이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미국은 중국의 금융시장까지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은행들과 투자금융회사들이 모두 미국계입니다. 미국이 한국에게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지배 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미국계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은행들을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108]

회계상의 이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자나라들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기업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입니다. 거대 기업들은 해외에 본사를 두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는데 힘없는 국민이 그렇게 하는 것은 왜 막습니까?  [111]

큰길가에서 일어나는 범죄보다 오히려 기업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지만 기업이 기소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988년에 아주 예외적인 소송사건이 있기는 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약기업 중 두 회사, 즉 릴리와 스미스클라인이 주의사항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약품을 유통시켜 8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기소 당했습니다. 이때 두 회사는 80명을 죽인 대가로 겨우 8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길거리에서 80명을 죽였다면 곧바로 사형실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113]

이 거대한 사회 간접자본 확충 프로그램은 자동차 회사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타이어 회사와 정유회사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미친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소비 행태가 바뀌었고, 대인 관계도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공동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른 대가로 기소당하거나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법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116]


*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새로운 무역협정들이 존재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독재적 조직체, 즉 이미 불로불사의 지경까지 올라간 기업의 권리를 확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기업은 인간의 권리를 훨씬 넘어서 국가의 권리까지 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126]

따라서 당신이 그럴 듯한 힘을 쥐고 있다면 법 때문에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내법은 문제조차 되지 않습니다. 국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이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런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데도 그런 것을 협정이라 칭하는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127]

문제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시장이 인위적으로 조직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적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결론입니다.  [134]


*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자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165]

30년 전부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조사는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몇 달 전에도 있었습니다. 70퍼센트의 응답자가 베트남 전쟁을 단순한 실수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된 비도덕적인 전쟁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읽는 기사만으로는 누구도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은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95퍼센트 이상의 응답자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요컨대 여론이 생각하는 것과 엘리트 계급이 선전으로 국민을 세뇌시키려는 목표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중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이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시 같은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국민이 혁명세력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168]


*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예컨대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국 중 하나인 ABC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근무했던 한 친구는 리비아 폭격의 진상에 대해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언론매체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던 그 사건의 뒷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리비아 폭격은 텔레비전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맞춰 계획된 역사상 최초의 폭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국이 저녁 뉴스를 시작하는 시간, 즉 동부기준시간으로 정각 19시에 폭격이 계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82]

워터게이트는 언론과 지식인의 원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권력층은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원칙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지만 권력을 움켜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미리 속에 새겨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 충고보다 현실적인 충고는 달리 없을 것입니다. 힘없는 군소 정당이라면 당신이라도 지방경찰을 보내 합법적인 정당을 박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나 권력의 절반을 보유한 정당을 귀찮게 하지는 마십시오! 워터게이트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미국 언론이 거둔 가장 위대한 공적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부끄러운 실패작 중 하나일 뿐입니다.  [191]

가령 “미국이 남베트남을 보호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가”라는 주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토론회가 열린다면 미국이 남베트남을 보호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보호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면 주제 자체가 잘못 선정된 것이라고 항의합니다. 달리 말하면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침략자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남베트남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남베트남을 보호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냐는 식의 토론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나는 40년 동안 미국 언론의 보도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케네디가 남베트남을 공격했다고 지적한 언론 보도는 단 한 건밖에 없었습니다.  [192]

정보는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언론은 광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근본적 한계를 갖습니다. 따라서 제도적 관점에서 언론은 민간 기업들에 시청자를 파는 민간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밀접히 연결된 국가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

내 생각에, 현재의 인식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억을 지워 없애려고 고안된 것입니다. 1999년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0년째 되는 해이고, 당연히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실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반향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이 사건이 제3세계 국가에게 재앙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3세계의 반공주의자들까지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서방세계가 제3세계의 이익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3세계를 더욱 가혹하게 다를 것이란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인구 과반수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대한 토론에서 이런 문제가 다뤄진 적은 없었습니다. 오직 유럽에 미칠 영향만이 다뤄졌습니다. 결국 부자 나라와 강대국이 관련되지 않은 문제는 모두의 관심 밖입니다.  [201]


*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세르비아가 나토군의 폭격을 억제할 만한 힘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코 나토군의 폭격은 없었을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끌어낼 수 있는 결론입니다. 요컨대 모든 국가가 상대국의 공격을 억제할 힘을 보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보유해서라도 말입니다. [215]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막강한 화력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범죄국가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지식인들은 이 사건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지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강대국이 범죄를 저지르면 누구도 항의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불길처럼 타오르는 대중의 여론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218]


● 내가 저자라면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한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조간신문을 펼쳐 본다. 간밤에 국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해외에서의 전쟁 소식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문을 다 보고나면 업무를 시작한다. 일은 쉴 새 없이 밀려오고 그래도 열심히 그 일을 해치운다. 점심시간이 되면 바람을 쏘이면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한다. 당신이 대기업에서 일을 한다면 가슴에 회사의 배지를 달고 주변 공원을 잠시 산책하기도 할 것이다. 오후 일을 하다 지치면 잠시 쉬는 시간에 ‘별다방’이나 ‘콩다방’의 커피를 한잔 즐긴다. 퇴근을 하면 TV로 광고를 보다가 잠이 든다.

아무생각 없이 지나가는 하루의 일과 속에는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사람들이 신문에서 본 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민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일 뿐이다. 그리고 정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전달되는 기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지식인은 ‘권력층은 비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집단이다. 그들은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권력을 쥔 사람은 비난하지 않는다. 또한 지식인은 일반 대중을 소극적이며 순종적이고 무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열심히 땀흘려 일한 당신이 해낸 일과 일을 하면서 마신 한 잔의 맛있는 커피는 또 어떤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힘없는 집단으로 전락한 ‘국민’에 속하는 당신은 열심히 땀을 흘려 기업을 살찌우고 있다. ‘국민’인 당신은 과거보다 생활이 풍요로워 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수입과 자산의 실질가치는 더 떨어졌다. 맛있게 마신 다국적 기업의 제품인 커피에도 숨어있는 것이 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대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은연중에 심어준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가지게 된 결과에서 나온 행동이다.

편안하게 누워서 본 광고는 당신의 정신을 지배해 들어온다. 광고는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든다. 그 결과로 대중은 소외되어 가고, 기업은 실리적으로 접근한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 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 인공의 벽을 세우고 대중을 그 속에 가두어 격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살고 있는 이 경제체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이다. 그것은 ‘연대 국가자본주의’이고 ‘기업 중상주의’라고 불러야 한다. 이 체제에서는 미국 대통령도 제한된 권력을 지닐 뿐이고 거대한 집단들이 강요하는 틀을 깨려고 한다면 미국 대통령조차 무력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황당한 궤변일까, 진실일까.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 내어놓고 헤집는다. 헤집는 이유는 구석구석 숨겨진 것 없이 잘 드러나게 하자는 것이다. 촘스키는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파헤쳐 내놓는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촘스키는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대단한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한 상식만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힘의 구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제한된 정보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중의 힘’이라고 촘스키는 말한다. 국민이 깨어나 저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촘스키는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자신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팔순의 나이에도 쉬지 않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촘스키의 말은 진실일까, 아닐까. 당신이 영위하는 삶 속에서 답을 찾아볼만한 일이다.

IP *.163.6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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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9.01.11 17:53:09 *.206.243.29
 one of them이 되느냐 neo가 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요즘 저는 광고를 유심히 봅니다. 정말 재미있기도 솔직히 무섭기도 하죠!
'욕망'을 정말 잘 다루는 광고가 참 많죠. 마케터 자신들도 먹고 살려고 일하지만 어떤 때는 '못됐다. '뭐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점점 살면서 주체와 객체를 구분 할 수 가 없습니다. ^^
무엇이 사실인지도 모르겠구요...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말하기를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네가 노예란 사실을....." 뭐 이 대사만 계속 맴 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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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9.01.14 15:26:14 *.240.107.146
"다시 같은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국민이 혁명세력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읽으면서 속이 시원함을 느낍니다. 아, 이런 학자도 있구나. 그런데 곧 다시 답답해집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를 준비가 안된 자신을 봐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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