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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8일 21시 24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3년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2)’ ‘The Political Economy of Industrial Policy(1994)’ ‘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2003)’ ‘개혁의 덫(2004)’ 등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2)’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많은지를 보여준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다시 읽기-세계화에 대한 신화와 진실

프리드먼의 견해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그가 ‘황금 구속복 golden straitjacket’ 이라고 일컫는 특정한 경제 정책이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그는 황금 구속복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황금 구속복을 입고 싶은 나라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흑자까지는 안 되어도) 재정 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 등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새로운 세계화 경제에서 성공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 [43]

아편 전쟁은 한마디로 자칭 ‘자유’무역의 선도자가 자국의 마약 불법거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렇듯(1870~1913년 사이의) 첫 번째 세계화 시기에 영국의 패권하에 발전하고 있던 상품 사람 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자유무역을 실천했던 나라들은-영국을 제외하면-대부분 식민지배나(난징조약 같은) ‘불평등 조약’의 결과로 자유 무역을 강요당한 약소국들이었다. 불평등 조약은 다른 무엇보다 약소국들에게 관세를 자율적으로 부과할 권리를 박탈하고, 외부적으로 결정된 낮은 고정 관세(3~5%)를 강요했다. [48]

결국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첫 번째 세계화의 역사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의 정통적 견해에 부합되도록 다시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이 취했던 보호무역주의의 역사는 지극히 과소평가되어있고,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도의 전 지구적인 퉁합이 제국주의적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 식이다. 이 사건에 드리워진 마지막 커튼-즉 영국의 자유무역 포기-의 묘사 역시 편파적이다. 엄밀하게 짚어보면 영국이 자유무역을 포기하게 된 진정한 원인은 경쟁국들이 보호 무역주의를 성공적으로 활용한데 있다는 사실이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50]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편없는 ‘성장’기록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성장의 가속화-필요하다면 불평등의 증대와 약간의 빈곤 증대라는 대가를 치르고라도-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내건 목표였다. 우리는 부를 더 많이 나누어 가지려면 그 전에 먼저 ‘더 많은 부’를 창출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야말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어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사실상 크게 둔화되었다. [53]

요약하면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1950~19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던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다.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다. 통제된 세계화 시기의 세계 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 분배도 훨씬 균등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발도상국들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정사는 이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를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로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기록을 퍼뜨리는 의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데 있다. [57]

그렇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정책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8]

이 장의 앞부분에서 지적했듯 브레턴우즈 기구들의 정책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서 성장 저하와 불평등한 소득 분배의 심화, 그리고 경제 불안정을 낳았을뿐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나라들의 융자 조건 악용과 결부된 IMF 와 세계은행의 임무 확대는 정말이지 용납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IMF와 세계은행은 어째서 이런 형편없는 결과를 초래한 잘못된 정책을 끈질기게 고수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의 의사결정 지배 구조가 부자나라들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62]

이 장에서 나는 대안없음이라는 결론은 세계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에서, 역사를 이론에 맞추어 왜곡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했다. 자유 무역은 대개 약소국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으며,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의 대부분은 짧은 예외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유 무역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성공한 경제들은 거의 모두 세계 경제로의 무조건적인 통합 과정이 아닌,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통합과정을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도 제시했다.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은 정책 자율성을 완전히 박탈당했던(식민 지배와 불평등 조약으로 점철된) 첫 번째 세계화 시기나 정책 자율성이 크게 위축되었던 지난 사반세기보다 상당한 정책 자율성을 가지고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했던 ‘형편없었던 옛날’인 그 시잘에 훨씬 더 나은 성과를 올렸다. [67]

* 다니엘디포의 이중생활-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계획』은 이렇듯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남들보다 먼저 번영의 진정한 경로-자유 무역-를 찾아냈기 때문이라는 자본주의 창세 신화를 산산조각 내고 있다. [73]

그러나 스미스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애국자였다. 그가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지지한 것은 그것이 영국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노골적으로 ‘시장을 돼곡하는’법령인 항해조례를 영국의 모든 무역 관련 법령 가운데서 가장 현명한 법령이라고 그가 극찬한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78]

게다가 관세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1860년이 되어서였다. 요컨대 저명한 경제 사학자 폴 베어록이 표현한 대로, 영국은 ‘장기간 지속되어 온 높은 관세 장벽’뒤에 숨어 경쟁국들을 누르며 기술적 우위를 획득하고 나서야 자유 무역을 채택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81]

해밀턴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의 미국 경제 정책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유치산업 프로그램으로 공업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또다시 토머스 제퍼슨과 그 추종자들의 반대에 직면하기는 했지만)국채시장을 설립했으며 은행 제도의 발전을 장려했다. 뉴욕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가 최근에 있었던 전시회에서 그를‘현대의 미국을 만든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만일 해밀턴의 선견지명이 묵살되고, 그의 최대의 라이벌이자 자치적인 자작농으로 이루어진 농업 경제를 이상 사회로 여기던 (아울러 이런 생활양식을 지탱하기 위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던)토머스 제퍼슨의 견해를 따랐다면, 미국은 막강한 식민 본국에 반항하는 별 볼일 없는 농업국가에 머무른 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85]

많은 미국인들은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해방자’라고 부른 다. 하지만 링컨은 유치산업 보호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미국 공업을 보호한 ‘위대한 보호자’라는 명칭까지 달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86]

반면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정치에서 노예 제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분열적 요소가 아니었다. 노예 제도 철폐론자들은 일부 북부 주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매사추세CM 주가 특히 심했다. 그러나 북부에서도 노예 제도 철폐론이 우세한 견해는 아니었다.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흑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해 투표권을 비롯한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 제도를 당장 철폐하자는 급진론자들의 제안을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해방자’인 링컨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링컨은 즉각적인 노예해방을 촉구하는 신문 사설에 대해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일부 노예만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썼다. 당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 [88]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들은 많지만, 우리는 이런 경험에서 배우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이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 정책을 통해 발전했다는 널리 알려진 신화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거의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98]

*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자유 무역의 가치에 대한 믿음은 정통 신자유주의 이론에서 매우 핵심적인 것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정의하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자유 무역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신자유주의적 명제들의 다른 요소(자본 시장 개방이나 강력한 특허권 보장, 심지어는 민영화)에 대해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지만)의문을 품더라도 여전히 신자유주의 교파 안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자유 무역을 반대한다면 그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확실하게 신자유주의 교파로부터 파문장을 받게 될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런 확신에 근거하여 개발도상국들을 자유 무역으로 극한까지 밀어붙이거나, 적어도 무역을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110]

1980년대와 1990년대 멕시코의 광범위한 무역 자유화는 수입 대체 산업화시기에 정성들여 일구어 놓은 산업을 모조리 파괴했고, 그에 따라(보수가 좋은 제조업 일자리들이 사라지면서)경제 성장의 둔화와 실업, 임금 하락 현상이 나타났다.  멕시코의 농업 부문 역시 보조금의 혜택을 받은 미국 농산물 (특히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의 주식인 옥수수)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NAFTA 의 긍정적인 영향력은 지난 몇 년 동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2001-2005년의 멕시코 성장실적은 연간 1인당 소득 증가율 0.3%(5년간 총 증가율은 겨우 1.5%)로 보잘 것 없었다. 이에 비해 ‘성적이 형편없던 옛날’인 수입 대체 산업화 시기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연간 3.1%로 NAFTA 시기보다 훨씬 높았었다. [112]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119]

또한 분야에 따라서는 ‘경기장을 평평하게’만드는 것 자체가 부자나라들에 대한 일방적인 혜택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로 가장 중요한 것이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지적소유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무역 관련 지적소유권TRIPS 협정이다. 재화와 용역의 교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도 팔 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적소유권의 분야에서는 대부분 선진국이 판매자이고 개발도상국이 구매자이므로, 지적소유권 보호를 확대하면 주로 개발도상국이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 [123]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두 나라를 제외하면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이런 농산물들을 많이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부자 나라들 내에서 농산물 시장 무역 자유화 조치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의 일부는 선진국 내부의 기준으로 결코 유복하지 않은 사람들, 즉 노르웨이나 일본, 스위스 등의 가난한 농민들이 포함되는 데 반해, 이런 조치로 혜택을 입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유복한 사람들인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농업 자본가들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부자 나라들의 농산물 자유화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127]
하지만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발전에 가장 좋다(또는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더 좋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무역을 해야만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유치산업을 장려하지 않고 자유 무역주의를 추구했다면 한국은 지금과 같은 중요한 무역 국가가 되지 못하고, 아직도 1960년대에 주된 수출 품목이었던(텡스텐 원광, 생선, 해초 등의)원료들이나 (직물,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 같은)낮은 기술, 낮은 가격의 상품들을 수출하고 있을 것이다. [130]

*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특정 개발도상국의 경제 전망이 밝으면 지나치게 많은 외국 금융 자본이 몰려와 자산 가격은 일시적으로 실질 가격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자산 버블을 형성한다. 반면 상황이 악화되면 자산 버블이 터지고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철수하게 되면서 경기 침체가 약화된다. 이와 같은 쏠림현상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장기적인 경제 전망이 밝았던 나라들에서마저도 외국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간 것이다. [138]

브라운 필드 투자는 새로운 생산설비를 추가하지 않는다.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기존 공장을 그대로 인수하고 예전에 만들던 것과 똑같은 자동차를 이름만 바꿔서 생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경영 기법이나 우수한 엔지니어의 공급으로 생산 능력 증대에 이바지할 수는 있다. 다만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브라운 필드 투자는 또 인수한 회사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킬 의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외국인 직접투자자들은 금융 위기의 시기에 시장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다른 적당한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만 예전과 똑같이 회사를 인수한 다음 다른 적당한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만 예전과 똑같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아니면 외국인 직접투자가가 적극적으로 ‘자산 약탈’에 나서서 사드린 회사의 생산 능력을 파괴하는 일도 있다. [143]

외국인 직접 투자로 인한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쉽게 간과되는 것이 국내 경쟁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국내 기업들은 때 이른 경쟁에 노출되지만 않는다면‘성장’해서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초국적기업이 진입하게 되면, 이런 국내 기업들을 파괴하거나 국내 경쟁자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투자 유치국의 단기적인 생산 능력은 향상된다. 국내 기업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초국적기업의 자회사는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보다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가 장기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의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145]

요컨대 역사는 규제자들의 편이다.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대부분은 자국이 투자를 받는 입장이었을 때는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그 규제의 정도가 매우 가혹한 경우도 있었는데, 핀란드,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와 아일랜드 등 외국인 직접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성공한 나라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에게 권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유방임적인 초국적기업 정책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151]

외국인 직접투자는 경제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장기적인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정책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국내 생산자들을 고사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또한 외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 기법들이 최대한도로 국내 기업에 이전되어야 한다. 싱가포르와 아일랜드처럼  외국 자본, 특히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인하여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있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방법을 써서 성공한 나라들이 역사적으로도 더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을 것이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의 외국인 투자 규제를 막으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시도는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158]

*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민간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업의 국가 소유에 기초한 중앙 집중적 계획 경제가 올린 성과는 형편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경쟁이 사회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았지만, 완전한 중앙 집중적인 계획과 포괄적인 국유화를 통해 모든 경쟁을 억제하려던 시도는 경제의 역동성을 파괴하여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게다가 공산주의 체제하의 경쟁 부재와 과도한 하향식 규제는 순응주의, 관료적 형식주의, 그리고 부정부패를 낳았다. 공산주의가 경제 시스템으로서 실패했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서 국영 기업이나 공기업이 비효울적이라는 주장을 이끌어 낸다면 이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164]

싱가포르에서 국영 부문의 규모는 국민생산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한국의 두 배이고, 전체 국내 투자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한국의 거의 세 배 규모에 이른다. 그다음 한국의 국영 부문의 규모는 국민소득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아르헨티나의 약 두 배, 필리핀의 다섯 배에 이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을 지나치게 비대해진 정부 때문에 실패한 사례로 간주하고, 한국과 싱가포르를 민간 주도 경제 발전의 성공 사례로 칭송하는 경우가 많다. [171]

국영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가 적은 데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인해 국가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나간 상황 탓에 성공한 국영 기업들 스스로가 국가와 연관되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174]

* 1997년에 만난 윈도98-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

특허의 경우 제약을 비롯한 화학, 소프트웨어, 연예 등 비교적 복제가 용이한 특정 산업의 경우에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산업의 경유에는 신기술을 복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특허법이 없다 해도 혁신을 이룬 발명가에게는 자동적으로 일시적인 기술적 독점이 주어진다. 이 독점은 혁신자가 확보하게 된 자연발생적인 우위에서 비롯되는데, 그 예로는 모방 시차, 명성의 우위, 그리고 ‘학습 곡선 경주에 있어서’출발의 우위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이런 자연발생적 우위로 인한 일시적 독점 이윤만으로도 혁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 [195]

지적 소유권이 보장되어 이용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산업들도 기꺼이 이용하겠지만 이들의 경우 실제 새로운 지식의 창출에 반드시 특허를 비롯한 지적소유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특허권이 없으면 새로운 기술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특허권 로비 단체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196]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후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적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특허 제도는 선진 기술의 수출 금지령이든 선진 기술의 흡수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경제 발전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과거 부자 나라들은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런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197]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짝퉁 제조나 목제품 제조는 현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적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스위스는 독일의 화학적 발명을 ‘차용’했고, 독일은 영국의 상표를 ‘차용’했으며, 미국은 영국의 저작권을 ‘차용’했다. 물론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금 기준으로 ‘정당한’보상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이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이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수준의 강력한 지적소유권 보호를 개발도상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면서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면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자극하여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사실인가? [206]

앞에서 계속 강조한 바와 같이 경제 발전의 근저에는 보다 생산적인 지식의 획득이 놓여 있다. 지적소유권에 대한 국제적 보호가 강화되면 될 수록 후발 국가들의 새로운 지식 획득은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에 각국이 외국인의 지적소유권을 부실하게 보호하거나 아예 보호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식을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지적소유권 제도는 비옥한 경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아 기술의 황무지로 바꾸어 놓는 댐과 같다. 이런 상황은 뜯어고쳐야 마땅하다. [217]

* 미션 임파서블? -재정 건전성의 한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에 대해 통화량 규제의 필요성을 더 더욱 강조한다. 이들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이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자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즉 개발도상국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찍어 내고, 빌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전직 경제 장관 도밍고 카발로 같은 이는 자기 나라를 치기가 가시지 않아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반항하는 10대’로 묘사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 안정과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IMF의 단호한 지도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IMF가 권장하는 거시경제 정책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227]

로널드 레이건 시절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는 “물가 상승률은 잔인한, 아마도 가장 잔인한 세금일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 상승률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예상 찮은 방식으로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특히 고정된 수입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심하게 피해를 입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자리 진실일 뿐이다.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것을 더 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벌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왜 그럴까? 물가 상승률을 낮은 수준, 그것도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금융, 재정 정책은 경제 활동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 수요의 감축, 실업 증대, 그리고 임금 감소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물가 통제는 노동자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수입은 더 잘 보호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의 미래 수입을 감소시킨다. [233]

그런데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정작 자기들 나라에서는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통화 정책을 느슨하게 펼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통화 규제에 핵심적인 실질 이자율을 높게 유지하라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은 놀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 붐이 절정에 달했을 때, 부자나라들의 실질 이자율은 하나같이 매우 낮았으며 심지어는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었다. [236]

개발도상국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부자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245]

*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하는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부패는 큰 문제이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것을 약속했던 원조를 삭감하는 명분으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들이 원조를 삭감할 경우 해당 국가의 부정직한 지도자가 입는 손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손실이 더 클 것이고, 극빈국들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난 25년 동안 권장해 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점점 더 부패를 이용하는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부패나 ‘잘못된’문화와 같은 각국의 발전 저해 요소들에 압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잘못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250]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부정부패를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부당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권장하는 부정부패 문제의 해결책은 문제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260]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과 모순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것이 모순 된다고 보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몹시 무력한 민주주의이다. 이들의 태도는 좌파인 현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이 1987년에 출간한 책 『만일 투표가 무언가를 바꾼다면 그들은 그것을 진작 없애 버렸을 것이다』라는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270]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을 촉진하고, 자유 시장은 다시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견해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사이에는 강한 긴장이 있으며,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75]

*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경제발전에 유리한 민족성이 있는가?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확실하게 나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 속에 들어 있는 ‘원료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우세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우세할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지리적인 위치에 차이가 있다면, 설령 두 사회가 똑같은 원료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혀 이질적인 행동 양식을 드러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무수히 존재한다. [296]

다시 말해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날의 일본과 독일 문화가 자신의 선조들의 문화와 크게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300]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동 특성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설득과 경제 발전을 증진하는 정책적 수단, 그리고 바람직한 문화 변화를 촉진할 제도의 변화를 결합시켜야 한다. 이것들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적절한 혼합에 성공하기만 하면 문화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 [307]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이 뜻밖의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아무래도 2008년에 국방부가 불온도서로 선정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책에 대한 평가는 극에서 극을 달린다.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이면서 ‘올해의 책’이기도 하고 ‘네티즌 선정도서’이다. 그러한 평가들이야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생각의 차이라는 단순한 원인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책은 저자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이름 붙인 부자나라들의 자유무역주의를 시종일관 비판한다.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파도 속에 숨어있는, 자유무역주의라는 포장 속에 숨어있는 불편한 속셈을 드러내 펼쳐내 보이는 것이다. 세계화에 숨어 있는 진실, 자유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하는가 등의 목차에서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가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개발도상국들이 자유무역주의를 따라가면 어떤 피해를 보는지 저자는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문과 방송에서 외쳐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뜻밖의 내용일 수밖에 없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성공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제목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함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차례에 펼쳐 놓은 제목은 또 어떤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 등의 제목은 독자를 유혹하기에 나무랄 데 없는 설정이다. 그러나 각 장의 제목을 거쳐 시작하는 책읽기에서는 제목과 내용과의 끈끈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매칭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각 장의 제목이 독자들을 책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그 효과가 길게 가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한 제목이 길을 잃어버리고는 한다.

책은 시종일관 하나의 목적지를 가지고 전개되어진다. 찬찬히 조근조근 목적지로 독자를 몰고 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계의 경제역사에서부터 각국의 경제현황등에 대한 설명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논거로서 충실하다. 그런 까닭에 당연히 설득력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저자가 강조하는 결론의 충격은 덜하다. 너무 많은 설명이 앞선 까닭일까, 아니면 예측되어진 결론이기 때문일까. 설명하는 과정은 예리한 반면 결론은 무언가 둔감한 느낌을 준다. 촘스키의 책은 설명이 짧고 간결하며 쉬웠지만 결론이 주는 충격의 강도가 컸다. 반면 장하준은 독자들이 충분히 설득당할 만큼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음에도 정작 결론의 충격이 적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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