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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07시 04분 등록

I.       저자 소개

 

이주은

 

현재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며,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학예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3년 동안 대기업에서 무난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 시간 앞에서 진정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이미지의 역사와 그 소통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던 그녀는 미술사를 선택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덴버 대학교에서 로제티의 제인 모리스 초상에 관한 연구로 서양미술사 석사학위를, 돌아와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빅토리안 회화의 인물상을 통해 본 근대 영국 사회의 특성으로 현대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모던 유럽 아트‘1960년 이후의 현대 미술이 있고, 저서로는 빅토리아의 비밀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4 그렇게 자라서인지 나는 고통을 표현하는 일에 서툽니다.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모두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심정을 몰라주면 쓸쓸히 마음을 접습니다. 아플 때에도 혼자 끙끙 앓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이젠하워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일까요?”어휴, 정말 많이 아팠겠어요라는 말을 병원에서 듣고서야 내가 너무 참았나보다하고 깨닫곤 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동요를 부를 적도 간혹 있습니다.

 

5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니 결코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의젓한 척, 용감한 척 했을 뿐이었습니다. 극복하지 못한 두려움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서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젠 살짝만 건드려도 그 부위에 통증이 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고 싶다는 발악이었습니다.

 

6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삭이면 병이 됩니다. 반드시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빨간 사과이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 사과는 빨간색으로 정의되고, 그리운 고향의 사과나무를 눈앞에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빨갛게 달아오른 열정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15지금 생각해보니 공감한다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함께 나누는 일상의 일들이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화가 존 슬론이 그린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을 보자. 여자들은 아마도 근처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듯 보인다. 주중에 고달프게 일을 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편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씨 좋은 일요일,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빨래를 널어놓고, 함께 젖은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 상쾌하고 즐거워 보인다. 머리의 물기를 털어 내듯 고민도 울적함도 털어내어 버린다. 눅눅한 슬픔은 웃음소리를 따라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정말 보송보송하고 개운하다.

 

17사랑에 전부를 걸었던 당신, 상대를 독점할 수 없어 슬픈 당신, 믿었던 사랑에게 배신당한 당신, 끝난 사랑을 붙들고 있는 당신, 아직 사랑 한 번 못해본 당신도.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고개를 가로젓는 지금, 사람의 문을 두드려 보아라. 똑똑.

 

21 인간의 이성은 감정을 통제할 만큼 월등하지는 않다.

 

21하지만 그녀는 이성으로 밝혀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멀더,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해요?”하고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서도, 한계에 부딪힌다. 이에 반해 멀더는 사건 해결의 상당 부분을 논리보다는 직관에 맡기는 자이다. 그는 느낌이 주는 감지 능력을 통해 스컬리가 보지 못하는 여러 가능성들을 하나씩 열어 보인다.

 

23이성이 아니라 느낌이 혹시 해결책이 아닐까. 나는 페르시안 카펫을 끌어들인 모옴의 인생론이 요즘 들어서야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무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식대로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그때그때의 느낌에 손을 맡겨 보아야 한다. 격정이 만들어낸 인생의 얼룩은 바로 그 시절에는 보기 싫지만 다 지나고 나면 무늬가 되는 것이다. 느낀 그대로 엮어야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고유의 무늬가 탄생하는 것이다.

 

23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 잘 보기 위해서 타인의 눈을 필요로 하고, 나 자신의 욕망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타인의 촉감을 필욜 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감정이란 막고 통제하려고 하면 굴레가 되지만, 느끼고 만끽하려고 하면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는 마술의 틀이 되는 것이다.

 

29입맞춤에 몰입할 때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이 그리고 상대방이 각각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29경계 없음의 경지에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세계를 소멸시켜 경계 없음에 도달하는 것은 하수이다. 자기영역을 굳건히 지키면서 경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고수가 되는 것이다.

 

31사실 나는 사회적 주제를 다룬 그림일지라도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그날 만난 작가에게는 그림을 보는 내 성향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폭력과 저항이라는 어마어마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한낱개인적인 주제를 끄집어 내기란 늘 주눅이 든 법이다. 내가 그런 시절에 대학을 다닌 탓이다.

 

35감정은 피하려 하면 오히려 더 커지는 법이다. 가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면 힘겹게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차라리 터뜨려 버리는 게 낫다. 모든 감정은 한 번 두 번 일어났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서리 스러지기 마련이다. 사랑도 그렇고 울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게르니카를 본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울고 있는 도라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

 

39 하지만, 오직 여자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보고 싶지 않은 오페라를 꾹 참고 끝까지 감상한 남자라면 , 정말 지쳤어. 오늘은 정말 피곤해하고 짜증스럽게 말할지도 모른다.

 

41사람들은 늘 다른 곳은 바라보고, 같은 자리에 누워서도 다른 꿈을 꾸며 산다. 직장 상사가 괴롭힐 땐 동료가 같은 편이 되어주고, 동료와 심한 경쟁을 해야 할 땐 학교 다닌 적 친구가 큰 의지가 된다. 직장에 나가기 싫을 땐 집이 천국이 되고, 배우자가 숨막히게 할 땐 오히려 직장이 도피처가 된다. 시댁 식구들이 서운하게 할 땐 친정 식구들이 있어 힘이 나고, 친정에 큰일이 생겼을 때에는 시댁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공간이 있고, 숨통을 틀 수 있는 창문이 있다. 여러 일로 힘들면서도 그럭저럭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저쪽 생각으로 이쪽 생각을 잊고, 또 이쪽 생각으로 저쪽 생각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눈을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키고 싶은 사랑을 위해, 숨쉴 고간을 만들어놓자는 것이다.

 

41사랑은 세상 안에 놓여 있을 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 상대적으로 유일함의 가치가 빛난다.

43 그냥 지나쳤던 불쾌한 일들이 한꺼번에 겹겹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분노를 담아두는 그릇에 용량이 꽉 차서 비울 때가 왔다는 신호인가 보다. 통로에 차를 가로막고 주차시켜 놓은 채 아침 일찍 빼놓지도 않는 동네 운전사, 내막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신경질부터 내어 위축되게 만드는 윗사람, 같이 결정한 일이 잘못되면 기막히게 발뺌하는 동료, 오랜만에 불러놓고 번거로운 부탁만 하고는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는 옛 친구, 일 관계로 만나 상냥하게 대해주었더니 대놓고 무시하려 드는 사람 등등, 한 번 정도는 별 일 아니라며 넘어갈 수 있는 이들이지만,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당하게 되면 감정 통제 능력에 빨간 불이 켜진다. 그런 날은 책상머리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례차례 복수하는 공상을 하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생각만으로 통쾌하다.

 

45 복수의 화신 메데이아,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분신인 아이들을 죽여야 했던 저주받은 운명이기도 했다. 복수는 어느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파멸로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크다.

그래서 세상의 현자들은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일지라도 너그러이 용서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가 보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속에 화를 담아두데 되는 것이고, 화를 오래 담아두면 독이 되어 마음에 구멍을 내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용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47서슬 푸른 칼에서 팔의 근육을 타고 전해지는 살을 베는 생생한 느낌, 목을 관통하는 예리한 감각. 이것은 내용상으로는 살인의 장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자신의 살갗 속에 스며 있는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끊어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자신의 몸 안에 원치 않는 욕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마지막 한 올마저도 종결시켜버리려는 것이다.

 

47피는 몸을 빠져나오는 즉시 식고 마르며, 진하게 빛나던 피의 빨강은 곧 무기력한 갈색으로 후퇴한다. 피는 오직 붉고 따뜻할 때에만 에너지를 발산한다. 죽은 피는 더 이상 분노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잊어버린 과거는 죽은 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결국 최고의 복수란, 용서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다.

 

53아름다움도 환상이고 사랑도 결국엔 환상일 수 있다. 인생이라는 현실도 많은 부분은 환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환상은 순간일 뿐일지라도 허무하지는 않다. 잠시나마 누렸던 행복은 이미 그 사람의 것으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홀한 사랑은 약속하던 불빛이 꺼지고 나면, 그림 속 여인들은 하나둘 말없이 허름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침의 그 여인들은 여기저기 상처만 남아 있는 가엾던 그 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행복해진 달라진 사람이다.

 

53초라한 일상 속에 기억할 만한 좋은 순간이 몇 분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힘들 때마다 꺼내어 되뇔 수 있는 좋은 기억이란 마음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환상에 빠져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거짓 주문을 걸거나 다른 사람들을 그 거짓 속에 끌어들인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사실 환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론 환상 속에 숨는 것이 슬픔을 잊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55 내면의 슬픔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면화된다. 폭력이 되기도 하고, 광기가 되기도 하고, 불같은 열정과 창조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타고난 슬픔을 이성적으로 억누르고자 하면 병이 되기도 한다.

 

56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이라는 필터를 끼고 사랑이라는 뷰파인더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만 존재하려 한다. 하지만 사랑이 인간을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근본적으로 회복시켜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슬픔은 인간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온 것이며, 사랑보다 훨씬 오래되고 끈질긴 어떤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슬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슬픔을 직접 대면할 수는 없을까.

 

59 이 책을 쓸 무렵 열여덟 살에 불과했던 어린 저자는 이미 슬픔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 터득하고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슬픔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 터득하고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맞이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픔은 떼어버릴 수 없는 생의 그림자임을,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렇게 말이다. 슬픈, 또 너로구나. 반갑다.

 

63수녀들에게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 그것이 자기애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애란 바로 사랑에 빠지기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65사람들은 자신의 상을 사랑하는 이에게 비추어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연인의 눈은 자신을 실시간 촬영해 주는 동영상 카메라와 같다고나 할까. 연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이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잦은 가슴앓이를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사랑의 관계 자체에 있지 않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제대로비추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상처를 받는다. 나만큼 나에게 집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섭섭하고, 나보다 나를 하찮게 취급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인간은 평생 타인을 사랑은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나에게만 빠져 살다 죽을 운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의 눈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듯, 상대방도 나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끄덕임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67 열정은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찾게 하는 것은 물론, 오감을 열어 풍부한 감수성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한다. 또한 심장이 매일매일 힘차게 뛰고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하고 피가 온몸 구석구석까지 돌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만든다. 열정이야말로 지쳐가는 일상에 희열을 안겨주는 축복이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고 평생 놓쳐버리지 않고 지켜내고 싶은 그 무엇이다.

 

71 열정을 품는다는 것은 말이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숨도 가쁘고 에너지 소모량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고삐를 채우지 않은 채 변덕스럽게 질주하는 말과 같이 사랑을 하면, 쓸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모두 소모된다. 그런 사랑은 서로를 상처 입히고 쇠진시키는 폭력적인 사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폭풍 후에는 잔잔한 하늘이 열리듯, 열정적인 사랑 후에는 잔잔한 사랑의 단계로 넘어간다. 여러 국면의 사랑들을 한 단계씩 차례로 경험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꼭 열정은 아니어도 영혼은 풍요로울 수 있다.

 

77 그런 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컷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이 개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못난 것도 없는 내가 왜 매달려야 할까.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좋아했는데 나를 떠나버리면 억울해서 어쩌지, 나 혼자 상처 받으면 어쩌지.’ 이런 의심 때문에 사람들은 정작 사랑은 않고 후회만 할 뿐이다. 그때 더 사랑할 걸 하고.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 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79 부모, 친구, 애인 그리고 모르는 타인, 우리는 수많은 관계로 행복하지만 때로는 힘들고 피곤하다. 나를 누르기만 하려는 상사, 무관심한 애인, 그리고 타인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나까지. 가면 쓴 세상에 지치고, 엉킨 관계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보자.당신 , 도대체 어디에 서 있는 건가요?

 

85 부모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오직 은혜와 효도라는 말밖에 없다. 부모이기에 희생하고 자식이기에 복종하면서 서서히 꿈이 말라가고 조금씩 섭섭한 감정을 쌓아가는 것도 은혜이고 효도일까? 가슴에 고인 물은 오래두면 썩는다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리를 행하기 보다는 서로 많이 사랑해 주면 좋겠다.

 

88규칙에 좀 집착한다고 해서 사는 데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묻겠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다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관계에서의 규칙은 일률적을 적용할 수 없이 개별적이며, 예외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루 한 번 늘 비슷한 시간에 전화하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 데이트하던 연인이, 어느 날엔가 갑작스레 연락을 끊을 수도 있고 그렇게 몇 주가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88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하려고 드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서툰 부류에 속한다. 이런 사람은 아주 이기적인 집을 마음속에 지어 놓고 그 집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가두려고 한다. 정작 스스로는 틀을 지어놓은 규칙들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의 많은 것을 희생시켜 자신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91 관계의 속성은 방랑에 가까운 것 같다. 자연을 방랑하는 태도로 상대방의 세계에 다가가면, 서로가 고유할 수 있는 공간은 배로 넓어질 것이다. 자연은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처럼 규칙적이면서도 형형색색 그 모습이 변화무쌍하고, 때론 폭풍우처럼 예측 불가능하다. 자연은 바위처럼 늘 한결같은가 하면 파도처럼 모험적이고, 얼음처럼 차갑기도 하다. 자연을 여행하듯 사람을 맞이하고 사랑해야 한다.

 

97 울고 있는 여인의 등을 토닥이는 노부가 보인다. 노부는 아무 말고 꺼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줄 사람, 슬픔이라는 짐을 나누어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세상의 일이 심장 하나로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울 때가 있다. 노부는 연륜이 묻어나는 마디 굵은 손으로 흐느끼는 여인의 등을 쓸어준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따뜻한 손길에 여인은 꾹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서 목이 멘다. 하염없이 눈물이 솟아오른다.

 

100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같지 않다. 외로움은 상실감을 내포한다. 지극히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가 만남이 소원해졌을 때, 또는 사랑하던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외로움이 기습한다. 그 느낌은 혼자 있는 사람이 느끼는 인간 본연의 고독과는 정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혼자 있을 땐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하지만, 외로울 땐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면서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오지 않을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며 헛된 기대로 시간을 소모시킨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화가 나서 또 한 번 감정을 소모한다.

 

103 혼자 있어 보면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자기 자신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기뻤다. 유키는 드디어 이별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극복해낸 것이었다.

 

103 그림 속의 여인은 자신의 그릇 속에 환한 달이 담겨 있는 것을 보도 경탄하고 있다. ‘하늘에 뜬 달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달빛이 내 안에도 있었구나.’하고 깨닫는다. 외로움으로 혼탁하고 불안정했던 마음에서 벗어나니, 잔잔한 마음의 수면 위호 하늘의 달빛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유키도 그것을 경험한 듯했다. 이별 후에는 외로움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앓고 나면 혼자가 되는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무엇을 상실한 반쪽이 아닌 온전한 하나가 되어야만 다른 하나를 만나 또다시 반쪽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07 상대방을 의심하고 불안한 상상을 키워가는 것이 바로 질투이다. 그 상상은 사랑함에 있어서 또 사랑 받음에 있어서 자신감을 결여한 자가 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109 만일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불청객들이 마음 속에 버티고 있다면, 정말로 강펀치를 날려버려야 한다. ‘내 마음 속에서 썩 꺼져버려!”라고 말하듯이,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바로 날려버려야 할 불청객들이다. 그 두 감정은 자신감과 만족감을 잠식 시키면서 그 자리에 열등감과 패배감을 자라게 만든다. 행복이란 자기 충족을 마음 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그것들로 인해 충족 상태는 점점 결핍 상태로 바뀌어버린다. 그럴 때가 바로 강펀치를 날릴 순간이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 만큼은 나는 영원한 챔피언이다.

 

113 우연한 만남은 수 겹으로 쌓여온 마음속 염원이 외부세계로 전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일으킨 파동이 점점 커지면 어마어마한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듯, 미미한 인간의 염력도 겹겹이 쌓이게 되면 우주에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이다.

 

121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 혼자만 세상을 약지 못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속임수에 능란하고 약아빠진 가면의 얼굴로 비칠지도 모른다. 또한 약기 못하다고 해서 늘 손해는 보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주어지는 행운과 불운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류고 있기 때문이다.

 

133 꽤 오래도록 떡국을 먹을 때면 목이 메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홈메이드 음식이 그리운 것은 고향 같은 사람이 마음속에 살고 있기 대문이다. 그리운 그것은 소중한 사람이 떠난 뒤가 아니라 가까이 있을 때 실컷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세상에 후회란 없을 텐데.

 

135 황량한 인생의 길 위에 서서 묻는다.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하는 인생, 불투명한 미래. 차갑게 얼어버린 마음,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당신의 삶에 쉼표를 찍을 때가 아닐까.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떠나라.

 

141유토피아에서의 행복한 삶이란 시간을 단순히 흥청망청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고 채워나가는 것에 있으며,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다.

 

141 간혹 한번쯤 간이역에 내려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미로에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미로는 길이 아니다.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에 대해 너무 오래 의심하지는 말자. 잘 가던 기차마저 놓쳐버릴지 모른다.

 

149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고도를 마냥 기다리느니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구체적인 무언가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보람된 일을 하면서도 고도를 기다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자칫 고도를 놓칠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린 후에 무슨 일을 할지 결정하자는 이야기도 한다.

 

151 그 꽃은 화려한 장미도 백합도 아닌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꽃에 불과하지만, 바로 오늘 본인이 직접 자기 주변에서 찾았기에 반갑고 기쁘고 보람된 존재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발견해낸 사소한 기쁨들이 쌓여서 자신의 미래를 한 칸 한 칸 채워갈 것이다. 결국 미래를 어떻게 즐겁게 맞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오늘을 어떻게 즐겁게 누릴 것인가에 있다.

 

153마흔이라는 나이에 얻은 지혜라고 한다면, 인생은 정답 없는 의문문들로 가득 채워진 교과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찾은 작은 꽃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억해두는 것이 천 번의 의심, 만 번의 후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일 듯하다.

 

157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 그림은 물이 흐르지 않고 덩어리 상태로 경직되어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마음 속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감정의 물결도 치지 않고, 생각의 순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태로는 외부의 충격도 탄력있게 흡수해내지 못하고, 새로운 것도 포용할 수 없다.

 

165 한 순간 한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의미가 된다.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생명은 꽃향기로 가득한 방이다. 눈에 보이는 허울 좋은 아름다움을 좇느라 생명이 뿜어내는 진정한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향수를 뿌릴 때마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173 컴퓨터를 닦달하듯 계속 클릭해대면 과부하가 걸려 빠르기는커녕 작동도 잘 되지 않는다. 사람도 간혹 그런다. 귀에서 웅웅 소리가 나면서 머리가 뜨끈뜨끈할 땐, 능력도 안 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보겠다고 너무 무리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럴 땐 사람도 껐다가 다시 켤 수 있으면 좋겠다.

 

189라스베가스에 가는 것은 좋지만 올 때에는 잃은 것이 없나 살펴봐야 한다.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새로 시작할 수는 있다. 삶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192 유한하다는 이유만으로 생이 헛되다고 할 수는 없다. 허무함이라는 단어는 꽃처럼 찬란해 본 적이 있는 생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 단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한 생을 살았던 이가 삶을 허무하다 말할 수는 없다.

 

195 해가 들지 않는 노랑이의 집은 이제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이 되었다. 노랑이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그 시린 외로움을 이겨내고 노랑이도 마침내 꽃을 피워냈다. 존재감을 느껴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주변에 처박혀 있던 자신을 세상 속으로 꺼내놓은 셈이었다. 꽃이 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스스로를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꽃을 피운 생은, 그 꽃이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꽃이다.

 

201 행복은 언제나 의외의 순간 예기치 못한 곳에서 기지개를 펴며 모습을 드러내는가 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10년 후 물어물어 다시 이 연주가를 찾아온다 한들 지금과 똑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구하고 마침내 성취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하고 매순간 경험하는 그 무엇이니까.

 

III.    내가 저자라면

 

그림을 매개로 한 에세이

 

이 글은 그림을 매개로 한 에세이다. 저자는 그림을 보면서 자신을 일상을 떠올리는 대신,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에세이를 한 편 쓰는데 그림을 도입하는 편이다. 일반 그림을 위한 에세이들이 대부분 그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하려는 편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색다른 접근인 셈이다. 그림이라는 낯선 혹은 대중적이지 않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그림을 독자 앞에 아주 자연스럽게 가져다 주는 면이 있다. 일상과 연결이 되는 그림들이란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지기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이다.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호소력을 더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매우 개인적인 감정들, , 우울,

사랑, 고독, 상실, 죽음, 용서, 원한 등이 책 안에 면면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이

야기, 그 구조 안에서 그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그림 등의 거시적인 접근법으로 그림에 대

해 접근을 했더라면 현재의 호소력이 축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이 시대의 흐

름에 잘 발을 맞춘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의 이야기, 모든 인간들이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 즉, 많은 타인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방식에 많이 의존한다. 저자는 나의 이야기를 너무나 좁혀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만들어 버리지도 않았고, 너무 넓혀서 사회적인 문제로도 만들지 않았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로 인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인간들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저자의 적절한 관점 조절이 매우 부럽다.

 

차분한 글쓰기, 치유에 적합한 목소리

 

모든 글에는 저자의 진짜 목소리가 녹아 있다고 생각이 된다. 저자의 외양이 어떻든 간에 글로서 저자의 진짜 목소리를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서 본 저자는 매우 차분한 목소리를 가졌다. 조근조근 차분차분 치유에 적합한 목소리를 지녔다. 그래서, 이런 글은 서가 한 귀퉁이에 두었다가 가끔 힘이 달릴 때 다시 한번 뒤적거리며 마음을 다잡는데 활용을 하면 좋을 것이다.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튀거나 드높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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