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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3일 21시 31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김용택
1948년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소설책,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1969년 순창농림고교를 졸업했다.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1’등을 발표, 시인으로 등단했다. 진메마을의 서정과 공동체를 가꾸며 사는 농부들의 일상을 노래한 시와 산문을 쓰고 있다.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김원우
본명은 원수(源守)이다.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 스스로 원우라는 이름을 만들어 쓰고 있다. 소설가 김원일(金源一)이 그의 형이다. 1947년 4월 1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경상중학교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73년 경북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중편소설 ‘임지’가 한국문학에 준당선 되었고 1979년 동인지 ‘작가’를 발간했다. ‘무기질 청년’ ‘장애물 경주’ 등의 작품이 있고 1983년 한국창작문학상, 1991년 동인문학상, 1999년 오영수문학상, 2002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도종환
충북 청주에서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하였다. 시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산문집에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이 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시작으로 교사을 하던 중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투옥되었다. 1998년 해직 십 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몸이 아파 학교를 그만 두고 보은군 내북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서정오
195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 교육 대학과 대구 교육 대학을 졸업한 뒤 오랫동안 초등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1984년 소년 소설 ‘언청이 순이’를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옛 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어린이들에게 우리 옛 이야기를 들려준 경험을 바탕으로 ‘옛 이야기 들려주기’를 썼고, 이야기들을 모아서 ‘옛 이야기 보따리’시리즈(모두 10권)로 펴냈다. 끈끈한 정이 담긴 입말을 살려 새로 쓴 옛 이야기로, 방정환 이후 ‘들려주는 문학’으로서 옛 이야기를 다시 꽃피운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단에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노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등의 작품이 있다.

신달자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숙명여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시절인 1964년 <여상>여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결혼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게재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백치애인’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등이 있다.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같은해 전북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첫 번째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출간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지 5년만에 복직되었으며, 1996년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1997년 전업작가가 되었다. 2004년 이후에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전임강사로 재직중이다.

안정효
1941년 출생,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초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소설과의 인연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27년 후 미국에 있는 출판사에서 ‘하얀 전쟁’이 출간되면서 한국 중진의 소설가가 되었다. 재미가 없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어령 교수의 권유로 시작했던 번역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 즐거워 계속 하는 것이라고 한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영화 약 이만 편을 종교 영화, 역사 영화, 서부 영화 같은 식으로 분야를 나누어 각 장르당 한 권씩 써 나갈 계획으로 약 스무 권 정도 예상하는 대장정인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을 집필 하고있다.

우애령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학위를, 1995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문화일보 춘계문예에 단편 ‘오스모에 관하여’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94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갇혀 있는 뜰’이 당선되었다. 장편소설 ‘행방’ ‘깊은 강’ ‘겨울숲’ 에세이집 ‘사랑의 선택’ ‘자유의 선택’이 있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 김용택 -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

그때가 겨울방학 때였다. 낮에는 산에 나무하러 가고, 밤이 되면 나는 그 책 속에 푹 빠져 지냈다. 방학동안 밤을 새워가며 그 책들을 다 읽었다. 눈이 많이 온 날은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밖에 나가면 눈이 쌓인 산천은 참으로 눈이 부셨다. 방으로 들어와 밥 얼른 먹고 책을 보다가 화장실에 갈 일만 빼고는 책 속에 코를 박고 살았다. 책 여섯 권이 다 끝나가자 방학도 끝나갔다. 나는 놀랐다. 그 작은 책 속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고 펄펄 살아있던 것이다. 그 작은 책 속에 그토록 가슴 아프고 기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놀랍고도 놀라웠다. 책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나는 숨이 막히게 따라다녔던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서서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내게 놀라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늘 보아왔던 강물이며, 빈 들판이며, 앞산이며, 느티나무며, 강물 속의 바위들이며, 마을의 가난한 집들이며,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새로 보였던 것이다. 고개를 들거나 휘둘러보면 늘 내 눈에 들어선 어제의 것들이 오늘 다 새로 보였던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는 발걸음이 힘찼으며, 온몸에 힘이 느껴졌다. 산과 강이, 모든 것들이 다 내 속으로 들어와 나는 자꾸 심호흡해야했다. 아! 저기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오늘 새로 보이면 그게 사랑이 아니던가. 나는 나도 몰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8]

산골의 밤은 알 속처럼 깊고 아늑했으며 또한 산과 강물은 늘 살아 꿈틀거렸다. 아이들이 돌아간 오후 내내 나는 책 속에 코를 박고 살았고, 밤이 하얗게 될 때까지 책 속에서 살았다. 소변을 보려고 밖으로 나오면 달이 높이 지나갔고, 별들이 이마 가득 초롱초롱 빛났으며, 또 산들은 적막하고 막막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렸으며 내 청춘의 푸른 어깨는 부풀어 올랐다. 눈은 빛났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날이면 날마다 자신 속에 자라고 있는 그 어떤 힘으로 늘 충만해지고 막강해졌다. [20]

그렇게 헌책을 사서 읽기를 몇 년, 내 생각은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고, 산처럼 솟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하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어느 해 였던가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인생이 신나게 되었을 무렵 아침 일찍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며 아침인사를 했다.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붉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이들이 하나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그 전에는 아이들 30명이 모두 하나로 보였는데, 그날 아침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보였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비로소 선생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기되었다.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나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비로소 내가 선생으로 일생을 보내기로 작심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희망을 버렸다. 무엇이 되는 것에 대한 것들을 모두 놓아버렸다. 이 아이들과 인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날 것 같았다. 세상이 환히 개이고 마침내 내가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열중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신나고 재미있게 살았고, 집에 가면 책 속에 묻혀 지냈다. 농사일도 도왔고, 그 좋아하던 낚싯대도 버렸다. 내 생각은 커 갔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가난도 가난이 아니었고, 나는 정말 이 세상을 다 안고 사는 큰 부자가 되었다. [22]

나는 나도 모르게 시대의 흐름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책을 통해 나와 우리 부모님들과 농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의 분노와 울분과 기쁨과 슬픔을 써갔다. [25]

나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다가오고 일어나고 쓰러지는 온갖 생각들을 책을 통해 또 밀어내고 쓰러뜨리고 일으켰다. 절망과 좌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으며, 나는 때로 절망으로부터 도망갔고, 정면으로 대들었다. 외로웠을 것이다. 나는 저문 강변을 따라 멀리 갔다가 어두워져서야 돌아와 내 방의 불을 켰다. 어둠은 길고 깊었으며, 아침은 빨리 왔다. 누군가를 기다렸다. 겨울 무구덩이 속의 무처럼 누군가를 기다렸다. 캄캄한 땅 속에서 나를 건져 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다. 빛이 없어도 때로 무순은 노랗게 자랐다. 달빛 아래 강물을 나는 수도 없이 건너다녔다. 물소리는 외로운 내 발목을 잡고, 내 발소리는 산이 잡아갔다. 그렇게 나를 꺼내간 흰 손을 기다리던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산이 환하게 열리고, 강물이 산굽이를 희게 돌아왔다. 발등이 환했다. [28]

사는 게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알았다. 삶은 허망한 것이고 바람 같은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일찍 알았다. 별것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사람이기를 버린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 어느 것에게도 머리 숙이기를 거부했다. 내가 머리를 숙이는 곳은 어린아이들이 노는 땅이었다. 저 무구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내 앞에서 꽃이었다. 나는 그 꽃밭에서 오래오래 산 것이니. 그렇게 되기를 원했더니, 마침내 내 삶은 그렇게 된 것이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시작되었고, 나는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썼다. 그 길고도 긴 인생의 길이 책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내 책이 다른 책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나는 신기하다. 내가 처음 글을 써보려고 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많은 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저 책을 쓴 것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 그리고 나는 글을 써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29]

* 김원우 - 책읽기와 글쓰기의 고락

요컨대 독서는 세상이 돌아가는 낌새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태를 한눈에 이해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그 경비가 싸게 치이는 수단이긴 해도, 그것에 몰입하면 할수록 그 일상과 생애는 정태적이 됨으로써 세상의 흐름과 일정하게 유리되거나, 심지어는 도태의 길을 줄여 밟게 되는 도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흡사 골동품 수집가가 제 소장품만 제일이라며 애지중지하는 경지, 세상의 사정과 사람들끼리의 인정이 북적이는 현실이야 어찌 됐든 오불관언하는 그 몰입의 기상과 닮았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36]

그러나 어떤 기발한 글이라도 그 한 편 속에는 상당한 양의 일반성이나 보편성이 내장되어 있고, 그 나머지에 어떤 독창성, 특이성, 독자성이 암류한다. 거꾸로 말하면 한 편의 글이 온통 발랄한 문맥, 곧 참신한 비유, 명료한 논리, 정곡을 찌르는 설명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크게 말하면 누구라도 쉬이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문장이 반 이상 넘실거려야 한편의 글이 활력과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이 확연히 드러나 있지 않을 때, 그 글은 긴가민가한 상형문자의 나열이 되거나 글쓴이 자기만 알고 있는 암호의 배열에 그치고 만다.
물론 글쓰기는 지난한 작업이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쓴다 하더라도 무슨 내용을 어떤 어희들로 단장해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이 구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트나 잡기장에 메모를 해두거나, 머릿속에다 어떤 상을 저장해두는 각자의 기량을 개발 연마할 수도 있다.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 상이 어느 정도로 윤곽을 드러냈을 때, 기고를 하게 되고 그 직전에 초조해서 손을 자주 씻는 강박증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48]

잘 썼든 못 썼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그 득의감은, 과장이 심한 상투적 표현을 끌어다 쓰면, 천하를 얻은 성취감과 견줄 만하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세상의 이치에 대한 부분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나름의 시각 · 설명 · 해석으로 풀어보였으므로 자가당착의 빈말만도 아니다. 게다가 극소수의 독자들로부터나마 동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자부심은 꽤나 알찬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쓰기는 오복 중 하나라는 유호덕과 견줄만한 일상의 낙일 수 있다. 그런 낙을 만끽하려면 숱한 고행과 쉬임없는 노력을 감수해야 한다. 덕을 좋아해서 스스로 매일같이 갈고 닦으며 실천하는 일상을 낙으로 삼는 것과 동일한 이치인 것이다. 글을 제만의 특이한 가락도 없이 쉽게 써버리는 사람들, 다듬을 겨를도 없이 한정된 시간 안에 써냄으로써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요행심리, 남의 글을 한사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제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양산체제의 타자수들에게서 과연 정직한, 바른, 훌륭한 문맥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3]

* 도종환 -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생명력. 생명력일 것이다. 그 생명력이 곧 창의력의 씨앗인 것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푸른 계곡물, 지평선 가득히 출렁이는 황금물결, 댐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 이런 것들은 가슴속에 그렇게 출렁이는 것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댐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마음 깊은 곳에 쏟아놓고 싶던 것들이 넘실대며 고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어느 날 문득 일상 속에 묻혀 사는 나를 다시 보게 만드는 사물, 자연현상, 일을 만나고 그것들이 그 일상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게 하고, 그 거리에 서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글인 것이다. [59]

조영혜 씨의 말처럼 글을 쓰는 행위는 거창하게 문학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쓴다는 것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배설’, “참을 수 없는 내 안의 버거움들을 쏟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배설은 단순히 버리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소모적인 배설이 아니라 창조적인 배설인 것이다.
나 자신을 내다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보살피는 일이다. 그것도 “양질의 보살핌으로 가슴을 따뜻이 데우는”일이다. 절름거리며 버티고 있는 내 얕은 생각의 뿌리가 대지 깊숙이 뿌리내리고 튼튼해지게 하려는 일이다. 그러는 동안 “자작나무 숲 우듬지의 사연도 들어보고” “아파트 화단의 라일락에게도 나를 보여주는”일이다. [61]

그러나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상처가 스승이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인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인 것이다. [64]

글이라는 것은 참 좋다. 슬프고 화나는 것을 글로 방출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되곤 한다. 글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가능한 셈이다. 속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적어놓다 보면 어느새 내 감정을 지면에 옮겨놓은 양 속이 후련해지고, 나중에 적은 글을 지우거나 쪽지를 불에 태우기라도 하면 마치 내 감정을 직접 없애버리는 것처럼 아무 뒤끝 없이 회복되기도 한다. 또한 뭔가 답답한 일이 있어도 글로 적어 본다. 그렇게 하면 적는 과정에서 일이 정리되면서 의외로 손쉽게 해결될 때도 있고, 굳이 그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우선 마음이 차분해져 다른 대안을 찾는 융통성을 얻을 수 있다. [65]

글은 “삶의 고통 속에서 늘 곁에서 애인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내 속에 들어 있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까운 친구이다.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 투정과 불만을 받아주며 나를 위로해주는 애인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게 되면 시는 “내가 심고 가꾸고 보살펴야 할 밭”이고 “다시 내게 돌려주는 향기이고 꽃”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시를 짓고 문학을 하는 것이다. [70]

* 서정오 - 글장이는 별종인가?

어떤 이는 말한다. 이러한 문단해체 현상 때문에 요새는 ‘개나 소나’ 글을 Tm게 됐고, 그 때문에 ‘함량미달’의 작품이 쏟아져 나와 그 질과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고. 어쩌면 그 개나 소에 해당될지도 모르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개든 소든 누구나 글을 쓰는 때가 바로 참된 민주시대라고. 몇몇 문단 안의 특권층이 독점해 오던 ‘글 쓸 수 있는 권리’는 이제 마땅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수많은 대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글이 함량미달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테고, 만약 그 수준이라는 게 단순히 글을 어렵게 쓰는 걸 뜻한다면 낮아질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78]

글장이들이 글을 어렵게 쓰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다. ‘글 쓰는 시인묵객이 어찌 저잣거리 속인들과 똑같은 말을 쓸쏘냐?’ 이런 생각 때문에 많은 글장이들은 쉬운 말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쓴다. ‘낯선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 대신 ‘생소한 이방인과의 조우’라고 하고, ‘빠르게 날아 오르내린다’고 하면 너끈할 곳에 굳이 ‘날렵한 비상 그리고 추락’이라는 말을 쓴다. 이래서 글장이들은 본뜻이 그렇든 아니든 권력자와 부자들 편에 서서 가난한 백성들을 기죽이게 된다. [85] 

쉬운 토박이말은 저급하여 ‘수준 높은 글’을 쓰는 데 알맞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건 곧 이미 만들어진 편견에 속고 있거나 스스로 편견을 만들어 남을 속이는 일이다. 세상에 고급하거나 저급한 말이란 없다. 그 말에 담는 생각이 고상하거나 천박할 뿐이다. 아무리 어려운 한자말과 서양말로 철갑을 해도 글 속에 읽는 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으면 얄팍한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시오.” “목숨은 다 귀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게 또한 즐겁지 않나요?” 성인들의 가르침은 너무 쉬워서 다섯 살 난 아이도 알아들을 만하지 않은가. 말과 글에 진심이 담기면 저절로 쉬워진다. [87]

다른 작가들이 들으면 눈총을 줄지 모르지만, 나는 글 쓰는 일에 아주 별스런 값어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 한 번도 글 쓰는 일이 농사짓는 일이나 고기 잡는 일보다 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의 성격이 다르다 뿐, 이 세상 노동은 모두 값진 것이다. 글 쓰는 일도 그런 노동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다. 힘이 없어 농사도 못 짓고 꾀가 없어 장사도 못 한다. 손재주가 없으니 물건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배우기 어렵고, 헤엄을 못 치니 물에 들어가 하는 일은 엄두조차 못 낸다. 말재주가 없어 남을 설득할 줄도 모르고, 숫기가 없어 낯선 곳에 가면 몸부터 얼어붙는다. 형편이 이러하니 그저 글이나 쓸 수 밖에 없다. 글도 썩 잘 쓰는 축에는 못 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써 놓으면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88]

‘창작의 고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마는, 글을 쓸 때 흘리는 땀이 아무리 진한들 농사꾼이 뙤약볕 아래 일하면서 흘린 땀만 하겠는가. 글을 쓸 때 드는 힘이 아무리 큰들 공사판에서 막노동꾼이 쓰는 힘만 하겠는가. 단돈 천 원을 벌기위해 굽은 등으로 종이상자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힘겨움에 견주겠는가. 글을 쓸 때 느끼는 아픔이 아무리 모질다 한들, 그 옛날 독립투사들이 일본헌병에게 끌려가 받은 고문의 아픔만 하겠는가. 아니, 무엇보다도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만 하겠는가. 그런 땀과 힘과 아픔과는 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말이지, 작가가 스스로 창작의 고통 따위를 자꾸만 들먹이는 건 힘겹게 살아가는 다른 많은 이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89]

아니, 도대체 내가 글 쓰겠다는 데 누가 허락을 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작가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오늘 일터에서 느낀 즐거움이나 억울함을 내 나름대로 글로 써 본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작가다.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문득 생각난 옛 동무의 이름 석자 가만히 불러보고 마음에 묻어 둔 말 네댓 줄 끼적여 본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시인이다. 어릴 적 할머니한테서 들은 옛이야기 한 자리 떠올려 여섯 살배기 아이에게 나긋나긋 들려준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달리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92]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작가가 돼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특별히 전문작가라 불러준다면, 그렇다면 그런 작가는 ‘잠수함 속의 토끼’가 돼야 한다. 잠수함 속에 토끼를 두면, 위험이 닥쳤을 때 그것을 미리 느끼고 경고해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토끼가 사람보다 위험신호에 더 예민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어디서부터 허물어져 가는지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서 그것을 대중에게 두루 알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경고하고 위험에 맞서 싸우는 일, 이것이 바로 작가가 할 일이다. 눈앞의 위험을 못 보고,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체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말놀음이나 즐기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니다. 대중들이 이해 못하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서양말 몇 마디로 행세하는 것도 작가가 할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작가와 같은 지식인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을 때, 그 사회는 오래가지 못했다. [93]

* 성석제 - 문학의 뿌리와 샘, 감동

싸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쥐벼룩이 떼로 몰려오나 싶었지만 쥐벼룩은 그런 소리를 낼 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바로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 나는 그때 바로, 이후 수많은 감동의 맏형이 되는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101]

강의가 끝나고 나서 나는 혼자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곱씹으면서 슬픔, 허무, 인간의 존재조건 같은 다양한 맛이 느껴졌다. 고양된 시적언어로 직격당했을 때 받는 감동이 아니라 이야기로 잘 감싸여진 진실, 어쩌면 보편의 진리가 거기에 있는 듯 느껴졌다. 도그마가 아닌 조용한 이야기, 그리고 진리가 어쩔 수 없이 설파된 뒤의 침묵이 아름다웠다. [109]

* 안도현 - 처음처럼

내가 문학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니었다. 문학이 몽매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글쓰기란, 나라는 인간을 하나씩 뜯어고쳐 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문학에 의해 변화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문학은 다시 나한테 회초리를 갖다 댔다. 문학은 나에게 늘 초발심의 불꽃을 일으키는 매서운 매였다. 문학은 엄하고 무섭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문학을 가르쳐 준 세상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151]

하지만 현실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수록 시대의 무거움이 버거워 나는 끙끙댔다. 그 끙끙대던, 그 전전긍긍하던 시간들을 나는 참으로 소중하게 여긴다. 문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긴장하고 현실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그렇지만 한 번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그런 고민을 어깨에 얹어준 것만으로도 80년대에게 빚진 게 많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빚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 빚을 갚으려고 나는 쓴다. [152]

한 편의 시를 위해서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인지 시를 쓰는 동안에는 시간이 잘 간다. 마치 애인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처럼, 남의 시를 읽을 때도 시인이 장인적 시간을 얼마나 투여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시간을 녹여서 쓴 흔적이 없는 시, 시간의 숙성을 견디지 못한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은 시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하고 연애하는 일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가슴으로만 하는 연애, 손끝으로만 하는 연애도 나는 경계한다. 가슴은 뜨겁지만 쉽게 식을 위험이 있고, 손끝은 가벼운 기술로 사랑을 좌우할 수도 있다. 가슴과 손끝으로 함께 하는 연애, 비록 욕심이라 할지라도 내 시는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어나기를 꿈꾼다. [154]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155]

* 안정효 -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된 사연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도대체 몇 백 권이나 읽었는지 지금까지도 계산이 잘 되지를 않지만, 어쨌든 이 당시에 읽어치운 책들은 평생 나에게 소중한 지적 재산이 되었다. 단순히 정신적 양식으로서뿐 아니라, 번역과 창작을 넘나드는 생계활동에서도 그때 읽은 책들이 평생, 심지어는 요즈음에도, 실질적으로 크나큰 밑천 노릇을 했다. [161]

졸업 후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명동 뒷골목의 고서점 구멍가게들을 뒤지고 다녔다. 남들이 돈과 명예와 직위를 수집하는 동안 나는 죽어라고 책만 수집 해다가 읽어치웠다. 미군들이 부대 도서관에서 훔쳐 내다파는 책이 대부분이었던 그곳 ‘헌책’들 가운데, 작가나 제목이 조금이라도 귀에 익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판매부수가 수십만 부를 기록한 책이 나타나면 나는 모조리 사다가 읽었으며, 이러한 마구잡이 독서는 훗날 번역가로서의 내 활동에 넉넉하고도 다양한 밑거름을 당연히 제공했다. [168]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생명을 잉태했다.
잉태한 그 생명을 빛의 세상으로 내보내야 할 사람, 창조의 폭발을 일으킬 사람, 아직 형성되지 못한 나의 존재를 일으켜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숙제 또한 눈앞에 선히 보였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곧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숙제가 아니라 욕망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176]

* 우애령 - 뗏목 위에서

그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의 영혼을 자신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속에 쌓이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194]

오랜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과 슬픔이 평안과 기쁨보다 더 많이 삶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휘 두르는가 … . 우리는 운명에 맞서 싸울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한 무력한 존재인가 … . 의문은 지금도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해 보려고 절망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202]


● 내가 저자라면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은 책을 읽다가 가득 찬 생각들이 튀어나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 성석제는 아직까지 기억하는 감동을 꺼낸다. 책을 읽던 중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감동을 맛 본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도현은 젊은 시절 겪었던 치욕적 경험이 자신을 시로 이끌었다고 한다. 어떻게 라는 시작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글쓰기라는 같은 길 위에서 인생을 걷고 있다. 태어날 때 목숨이 버려질 뻔 했던 우애령은 병원에서 일하며 목격한 사람들의 아픔을 보며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은 그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신달자에게 글쓰기는 마음의 내면읽기였다. 한국의 유명 작가들로 우뚝 선 그들에게 글쓰기는 비켜가지 못할 인생의 길이었다.

책은 유명한 작가들은 어떤 이유로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준다. 그것도 작가들 본인이 말해준다. 이름을 들으면 쉽게 알만한 한국문단의 유명한 작가 아홉 명이 풀어낸 글쓰기의 내력을 담았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독서강연회 연사들의 글을 묶어낸 것이다. 그들이 글쓰기에 들어 선 이유는 삶의 행로만큼이나 제각각이다. 길지는 않은 글이지만 작가들은 자신의 삶과 책과 글쓰기를 비교적 속속들이 보여준다.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고민만큼이나 어떤 희열을 느끼는지, 저자들은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의 입장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또한 책은 자신에게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찬찬히 풀어놓는다.

형태는 다르지만 글쓰기라는 공통된 길에 서있는 작가들은 글쓰기에서 얻은 것도 느끼는 것도 서로 다르다. 김용택은 세상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 그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다른 모습에 눈을 떴고 글쓰기 이전에는 없었던 사람을 보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 도종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였다. 신달자에게는 글이 자신의 내면을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팽개친 세상을 스스로 보듬어 안는 수단이었고 자신에게 차디찬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글을 통해서 일어설 수 있었고 글쓰기와 자신이 쓴 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른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서정오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창작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농사꾼이 뙤약볕 아래 일하면서 흘린 땀만 못하며 공사판에서 막노동꾼이 쓰는 힘만 못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스스로 창작의 고통 따위를 들먹이는 건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또한 작가는 사회가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어디서 허물어지고 있는지 살펴서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먼 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말놀음이나 즐기는 것은 작가가 할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원우는 글쓰기는 고행이며 강박증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마치 천하를 얻은 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성석제는 자신이 문학을 끌고 온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자신을 끌고 왔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자신을 하나씩 뜯어가는 일이었고, 문학에 의해 변화된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문학이 다시 회초리를 갖다 대었다고 한다. 우애령은 자신의 첫 장편소설 서문에 썼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내가 쓴 글이 책이 되어 사람들의 머리맡에 놓여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속에 등불이 켜진 듯한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을 준 일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책의 차례를 읽는 재미도 있다. 차례는 작가의 이름과 함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징하는 하나씩의 제목을 더불어 가지고 있다. 김용택은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 서정오는 ‘글장이는 별종인가’ 안정효는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된 사연’ 하는 식이다. 제목을 보면 작가의 삶의 흔적과 글쓰기에 들어선 과정, 작가관 등이 은은히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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