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산
- 조회 수 270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저자에 대해서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는 현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교수이자,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 보스톤대학교 약학대학 신경학과 겸임교수, Harvard Project Zero의 추진위원장, Good Work Project 책임자로 재직 중에 있다. 우리에겐 다중지능이론을 개발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72년부터 데이비드 퍼킨스(David Perkins)와 함께 Harvard Project Zero의 공동 소장으로 연구해 오면서, 기존의 지능관에 대한 회의를 펼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여 1983년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라는 저서를 통해 7개의 지능을 주장하였다.
가드너 부모는 나찌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해 왔으며, 가드너는 1943년 미국 펜슬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겨 쳤으며, 이를 통해 많은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1965년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한 뒤,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되돌아와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하여 197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바드 의과대학과 보스톤대학에서 Postdoc 과정을 밟았으며, 이 과정이 가드너로 하여금 두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인지적 문제들을 연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인간의 잠재적 능력과 그것의 발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피아제(Jean Piaget) 이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피아제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정신을 파고 들었다. 피아제 이론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고 재평가하면서, 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한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의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1981년 가드너는 HPZ를 지원하기 위한 5년간의 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받는데, 이 연구자금은 천재학자들만이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연구 자금을 수여하는 재단에서는 가드너가 인지발달 부분에 기여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으며, 훗날 그의 연구가 널리 인정받는데 힘을 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가드너는 미국 심리학회에서 주는 William James Award, University of Louisville에서 Grawemeyer Award, 그리고 Claude Bernard Science Journalism Award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그의 연구의 대상은 두 주류인데, 첫째는 일반 아동들과 영재아들이며, 둘째는 두뇌손상을 입은 어른들이었다. 가드너는 이 두 주류의 특성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중지능 이론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20여권의 책과 수백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대부분의 저서는 21개 외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고 한다.
문용린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및 같은 대학 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교부 교과서 편찬 심의위원, 한국교육개발원 자문교수,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 교육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에는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 <열 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라>, <지력혁명> 등이 있으며, 감역서에는 <열정과 기질>, <통찰과 포용>이 있고, 역서에는 ,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등이 있다.
내가 저자라면
최근에 들어 창조적인 사고 관련된 관심들이 대두되는 것 같다. 책이나 신문들에서 창조력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기도 하고, 창의력 관련 교육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창조적인 사고가 핵심경쟁력인 브랜딩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기에 무척이나 반갑게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접하는데 있어서 먼저 선입견적인 관념을 정리하고 책을 들여다 보는 것이 좋을 듯 하였다. 이 책은 창의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사고에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창의력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고
창조력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둘간의 차이는 생각과 실행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하워드 가드너는 창조적인 거장들의 사고를 다루는 문제를 확장하여 어떻게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실행조건과 환경등을 면밀히 관찰하여 보여주고자 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창의력은 교육을 통해 발전이 가능하지만, 창조력도 교육을 통해 발전이 가능한가? 이다.
위 의문점을 이 책을 통해서 탐구해 보고자 하였다.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이 책을 집필한 계기는 다중지능이론이 창조성 연구에 중요한 전환을 일으켜 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아동과 두뇌가 손상된 어른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이 다양한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의 지성도 자율적인 여러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어 창조적인 사고 역시 다원적인 개념에서 해석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드너는 7인의 각기 다른 영역의 창조적 거장들을 끄집어 냄으로써 각기 다른 인간의 능력과 그 안에서의 공통된 창조성의 조건들을 찾아 자세하게 알려주고자 하였다.
일곱명의 창조적인 사색가로서 프로이트,아인슈타인,파블로 피카소,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엘리엇,마사 그레이엄, 마하트마 간디를 연대기별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들 외에 수많은 거장들이 존재하지만, 가드너 스스로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시대와 시대속의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정확도와 이해도를 높여 보려 하였다.
그도 그런 것이 창조성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가 창조적 인물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그에 따른 기질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음에 따라 저자 또한 그가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 선택되어져야 했을 것이고, 동시대인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세세하게 창조적인 인물들의 다원적인 관점에서의 다중지능이론의 개념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각기 창조적인 인물의 아동적인 모습에서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관점의 연속성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혁신적인 인물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둘째,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인데 창조적 대가들은 하나의 업종에서 활동하다가 10년쯤 되었을 때 혁신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또한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 갖추고 새로운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셋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인데 창조적인 대가들은 고립되기도 하지만 주변인물들의 자극을 통해 창조적인 도약을 이뤄내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의를 기울인 핵심요소를 간추려 보면,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통해 아동과 대가의 관계을 설명해 나가고 있으며, 프로이트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간디를 통해 창조적인 인물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엘리엇과 그레이엄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활약하는 분야에서 혁신의 경계적인 위치에 속한 사실들을 분석해 나아간다.
또한 개인과 그가 속한 분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가 속한 분야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분석하여 설명해 줌으로써 창조성의 조건들에 대해서 이해시켜 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기한 문제 즉 창의성과 창조성의 차이 그리고 창조성도 교육을 통해 발전이 가능한지?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창조적인 인간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왔고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의의이기도 하다.
먼저 창의성과 창조성의 차이는 창조성 연구와 지능 연구 부분에서 다뤄진다.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에 있는데,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한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현재로선 창의력을 정의 내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생각자체에 머물고 특이한 발상적인 측면에서 머물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문중에 “사실 창조성 검사는 시사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아직 그 유효성을 인정받지는 못한 상태이다. 즉 창조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전문 직업이나 여기에서 창조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나 소속 문화권에서 창조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창조성 검사에서 우수함을 입증하는 표시로 여겨지는 발산적 사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창의력과 창조력은 극명하게 구분되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평면과 공간의 차이로 구분되어 질 수 있는데, 인지과학자들은 창조적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성 있는 문제와 해답의 ‘공간’을 찾아내는지 보여 주었다. 창조적인 사람은 이 공간안에서 당면 문제에 적합한 접근법과 해답의 살마리를 찾으며, 효율적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배분하여 단계적으로 탐구해 나간다고 하는데, 이는 스스로 반성하며 창조적인 성과를 이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창조성에는 공간이 존재하고 그 관계가 존재하고 자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창의력은 나와 다른 일일지라도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는 쉬우나 창조력은 주체가 개인이며 개인이 속한 사회와 경험과 그 안에서의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에 비해 창조력 교육은 프로그램처럼 학습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보다 폭 넓은 관점이 생긴 것은 나에겐 수확이기도 하였다.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가 의미하는 것은 창조의 적은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창조적인 인물들 주변에는 자극과 변화를 줄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나와 다르지만 뛰어난 조언자와의 교우의 중요성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서의 전문성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쌓여야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창조성은 머리보단 성격과 기질에 의한다는 것이다. 즉 그 사회적 환경과 그 속에서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성장하며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감역자의 글
세계 국가의 국부의 순서는 창조성의 지표인 특허출원 총량순위와 일치하며, 조직과 기업은 감동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상품과 시스템을 얼마나 선보이느냐로 그 존재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5]
이 책은 다중지론을 주창했던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창조성의 비밀을 역동적으로풀어낸 교양서이다. 이는 창조성의 본체를 밝히고자 출간된 그간의 어느 책보다도 깊고 넓고 방대하다.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창조성과 관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넓다.[6]
이 책은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그가 처한 주변환경, 그리고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 본질을 날카롭게 조명해낸 최초의 분석서이다.[7]
연구소 동료들과 내가 천착한 주제는 왜 어떤 아동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위축되는가 하는 문제였다.[15]
일곱명의 현대적 거장들에 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세가지 중요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나는 대체로 1885-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다. 이를 통해 그들 나름의 특별하고 종종 기묘하게도 보이는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 그리고 그들이 성취한 업적의 특성을 밝힐 생각이다.[36]
일단 전통과 관습이 특정한 예술 및 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전통과 관습이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회화가 존재할 수 있다면 새로운 무용이나 시 혹은 정치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순식간에 전세계에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55]
버클리 성격 연구소에 따르면,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심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하다.[65]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67]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68]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따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69]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79]
창조적인 도약을 이룬 인물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탐구자이며 혁신가이고 사색가인 경우가 많다.[80]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82]
이제 일곱가지 사례 분석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을 요약하겠다.
1>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 시절의 관심 2> 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 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 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 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역할 혹은 방해 역할 6> 서서히 새로운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을 만들어가는 모습 7> 관련 비평가들의 첫 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 보통은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더 포괄적인 성격의 부번째 혁신들[82]
하지만 좀 더 높은 수준에서 보면,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84]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84]
하지만 내가 말하는 핵심적 요지는 그 자체로 창조적인 것은 없다는 점이다. 공동체의 평가가 내려지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은 창조적인 잠재력을 지녔다는 지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소속 공동체나 무화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려야 마땅하다. 다른 판관의 말은 쓸모가 없다.[85]
창조성은 예술가의 머리나 손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분야나 심판관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창조성이라는 현상은 오직 이 세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럴 때에만 좀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90]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頌歌)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도가 되는 촉매 역할을 했다.[108]
나의 용어로 말하면,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personal)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학업을 마쳤을 때는 마치 세상이 그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야흐로 현대의 문이 열리는 시대에 문명 세계의 중심지에 살면서 영향력 있는 스승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프로이트에게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무한했으리라 보인다. [111-112]
이 치료법은 말(言語)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 (associative correction)하는 것이다.[119]
어떤 지적 혁명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하나만 집어내는 일은 위험하다. 이 위험은 특히 프로이트의 혁명적 사고와 같은 경우에서 두드러지는 법인데,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프로이트의 이론 체계에 힘과 매력을 부여한 것은 여러 맹아적인 관념들이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129]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 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129]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30]
대체로 꿈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에서 자극을 받는데, 꿈 꾼 당사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꿈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의 ‘외현적 내용(manifest content)'을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잠재적 내용(latent content)'을 밝혀내야 한다. 꿈의 잠재 내용을 해독하려면 꿈 상징에 관한 완전한 어휘 목록이 필요한데, 물론 배경 지식 없이는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휘들이다. 꿈을 형성하는 방어 기제로는 응축(condensation)과 전위, 다양한 종류의 방어막(screen)이 있는데, 꿈의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방어 기제를 끈기 있게 해소해야 한다. [138]
프로이트는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sympathetic listener)'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139]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내부의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발견했다. 이 감정은 아주 어린 유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아들은 어머니에게는 강한 애정과 사랑과 욕망을 느끼는 반면 아버지에게는 질투와 두려움, 심지어 증오심까지 품는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 전화한다. 처음 이런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꼈을 때, 프로이트는 광범위한 문학적 소양과 다른 환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감정이 인간의 정서를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중세 헴릿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 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140]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145]
처음의 반응
프로이트 스스로 걸작이라고 여긴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그의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가? 얼핏 보기에 그처럼 폭넓은 시야를 가진 저서라면, 프로이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주된 대상 독자인 심리학자들의 장(場, field)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몇몇 공감 어린 서평도 받긴 했으나, 가령 다윈의 『종의 기원』과는 달리 학자들이나 대중들은 이 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48]
나는 창조적인 인물에 관해 연구하면서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즉,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161]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결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들어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 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5]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영원한 아이
아마도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가장 잘 드러낸 물음일 터인데, 열여섯 살에 그는 사람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조금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주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할 때,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지닌 물건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했다. 그러니까, 물건이 주머니에서 빠지면 바닥에 떨어질지, 아니면 공중에 그대로 떠 있을지가 문제였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168]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관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169]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0]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서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악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그는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 동료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는 빛의 본성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네”라고 말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194]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195]
물리학의 표준 절차는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후에, 이로부터 원리와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정반대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에서 기본적인 물리 법칙, 가령 광속 일정의 원리를 우선 제기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현상을 추측하고 그 기본 원리를 다른 법칙과 연결시켰다.[208]
제 대답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농담 한 마디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제 이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애기지요. [222]
아인슈타인은, 우선 그가 젊은 시절에 숙고했던 문제가 당시의 물리학에 적합했다는 점에서, 둘째 그가 공간적, 시각적 상상력에 재능이 있다는 점이 그의 과학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20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과 세계관은 노리-수학 지능이 공간적 재능보다 더 중요한 양자 역학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233]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reflective wisdom)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236]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관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의존해서 이런 존재의 오점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237]
그러나 깊은 수준에서는 유년기와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이고 어른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프로이트가 몰두했던 주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종류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동의 삶을 지배하는 것인긴 하다. 즉, 꿈이나 농담, 성적 놀이와 같은 다양한 현상뿐 아니라 전위와 응축, 대체와 같은 심리 과정이 그렇다는 애기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 개시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7]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데이비드 펠드먼이 설명하듯이,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251]
비상한 재능을 타고 난 신동이라도 장애를 만나게 마련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 소리에 대해 아이들 방어해 주면, (현실적 상상만으로든)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252]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함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259]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261]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 걸 한데 모으는(all-put-together)' 스타일의 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structure)' 형의 예술가이다. 모차르트가 전자의 전형이라면, 베토벤은 후자의 전형이다. 신동 피카소는 첫 번째 유형을 대표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예술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아폴리네르는 주장한다. [279]
훗날 칸바일러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선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피카소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동료 화가들 누구도 그를 뒤따르지 않았으니, 당시 그가 느낀 정싡거 고독이란 참으로 공포스러울 정도였겠지요.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287]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 피카소는 열정에 넘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났으며, 스스로 신동임을 알고 있었다. 음악에는 아무 흥미가 없어서 오로지 그림에 살고 그림으로 호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8]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음악 신동은 아니었다. 실상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회화나 연극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였다. [339]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340]
자신의 말대로라면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어서 학급에서 평균 혹은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340]
스트라빈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견지했고 엄격한 훈련방식을 선호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요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42]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55]
스트라빈스키는 늘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만들었으므로 피아노 연주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작곡할 때 가장 힘들었으리라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359]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대체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착수할 무렵부터 곡의 전모를 분명하게 구상해놓는 편이었다. 피아노 반주를 통해 일찍부터 기본 선율과 리듬을 정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감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적 구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음악적 효과 및 표현 효과를 내려면 악기 파트와 단편적인 악절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그에 가장 알맞은 악기 및 기악 앙상블로 실험해 보고, 또 고전 음악이나 민요의 단편적인 악절을 차용하여 멜로디를 구성했다. [378]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오랜 전통에 속하는 장인(匠人)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내가 가진 기질과 재능이라면 차라리 소(小) 바흐로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가끔 교회와 신을 위해 곡을 쓰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삶 말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만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고 견뎌냈다. 타락한 면이 없지 않은 출판업자나 음악 축제, 음반사, 홍보업계의 오랜 인습(물론 나 역시도 그런 인습에 빠져 있었지만)을 극복해낸 것이다. [387]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가 적절하게 활용한다.” [388]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신적인 영감을 느낀, 보스톤 거리에서 겪은 ‘결정화 경험’을 통해 그는 시로써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소외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한 시대의 사려분 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라고 쓴 대로 ’무인지경의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10]
다른 이들에게 대단한 업적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420]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0]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되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44]
『황무지』의 저자로서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에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오랫동안 살아남을지 아니면 금방 잊혀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기엔 스텝 지방의 리듬이 자동차 경적과 기계 소음, 기어와 맞물리고 금속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 지하철의 굉음 등 현대 생활에 미만한 거친 소리로 변형되고, 다시 이 절망적인 소음이 음악으로 변환된 것 같다. [449]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로 온 여자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인 자립적인 상징 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Lynn Carafola)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517]
그레이엄 무용단의 일원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우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창조적 도약에 관한 10년 규칙에 적합하다.) “엄정하고 힘든 테크닉, 그러니까 무용 동작의 과학에 따라 신체를 단련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학생은 매일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521]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523]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소년 간디는 몸집이 왜소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체육을 싫어했다. 특별히 훌륭한 학생도 아니어서 학교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쾌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44]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
전기작가 루이스 피셔(Louis Fischer)는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도 많고 허둥대는 변호사로 1891년에 런던을 떠났던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고 말한다. [549]
에릭슨은 이 점을 좀더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어떤 천재들은 도대체 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진화론적이고 실존적인 저주를 스스로 짊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왜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신적 위대성을 그런 사람에게 기꺼이 부여하려고 하는 것일까?” [575]
추종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부 규범
마음속에 분노를 품지 말고 상대의 분노를 그대로 감내할 것. 상대의 공격을 앙갚음하지 말 것.
체포에 저항하지 말고, 타인의 재산을 보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산의 압류에도 저항하지 말 것.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로서 사티아그라하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심각한 의견 불일치 사안이 생기면 사이아그라하 운동 집단에서 물러날 것.
“6미터 높이의 밧줄 위해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하는 줄타기 곡예사는 밧줄에 정신을 집중해햐 한다. 아주 작은 실수가....... 그에rps 죽음을 의미한다........ 사티아그라하의 실천자는 이보다 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580]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 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천명의 남녀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581]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5]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취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전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00]
간주곡 3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마트 간디
몸을 위주로 한 삶은 작업실이나 실험실에 기반한 다른 창조자들의 삶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 현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관객과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단식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텝을 잘 못 밟아 작품을 그르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그럴싸하게 보이지 못한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실존의 순간 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611]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비록 부모와 친밀한 사이일 수는 있어도 감정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오히려 유모나 보모 혹은 다소 먼 친척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622]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집안에서 종교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라도 도덕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E.C.는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로 자라나는데, 덕분에 스스로 가책을 받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한 때는 종교를 거부했다가도 훗날 다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 [623]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623]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4]
나는 두 가지 요인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항적인 태도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재능과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634]
인생패턴 : 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 이다.[ 637]
창조적인 인물들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서로 구분되는 활동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1) 특정한 문제풀이(주로 과학 문제 풀이)
2) 일반적인 이론 체계 수립.
3) 작품 창조
4) 양식화된 공연
5) 대의를 위한 실천(실행)
어쩌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646]
친밀한 관계에 대해 좀더 말해 둘 내용이 있다.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661]
옮긴이의 말
창조성은 단순한 재기(才氣)나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도한 입시교육이나 취업경쟁이라는 상황 탓인지 창조성을 그런 재주 정도로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