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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 )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
미래의 교육 대안을 모색하는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연구소 공동소장,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로 창의성 교육의 세계적 석학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교수이자,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 보스톤 대학교 약학대학 신경학과 겸임교수, Good Work Project 책임자로 재직 중에 있다.
가드너 부모는 나찌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해 왔으며, 가드너는 1943년 미국 펜슬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겨 쳤으며, 이를 통해 많은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1965년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한 뒤,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되돌아와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하여 197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스톤 대학에서 Postdoc 과정을 밟았으며, 이후 그는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과 두뇌기능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피아제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정신을 파고 들었다. 피아제 이론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고 재평가하면서, 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한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의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스럽게 그이 관심은 영재아동과 두뇌기능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관심은 영재 아동과 두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로 쏠리게 된다.
가드너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인간개발에 관한 연구기관이다. 가드너는 줄곧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25년이 넘게 이 연구소를 이끌어 온 가드너는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1983년, 박사학위를 받은 지 12년 만에 그는 다중지능에 관한 최초의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의 틀 (Frames of Mind : The Theory Multple Intelligences)이다. 1972년부터 데이비드 퍼킨스(David Perkins)와 함께 하워드 프로젝트 제로의 공동 소장으로 연구해 오면서, 기존의 지능관에 대한 회의를 펼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여 쓴 책이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지능개념인 IQ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지능의 개념을 창안한다. 이른바 일곱 가지 다중지능을 제안하고 그것이 상상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이 책은 가드너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지능개념을 제안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긍정적이고 수용적이라 크게 놀라 했다. 가드너는 자신이 제안한 다중지능이론이 다른 곳은 몰라도 교육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다중지능이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1993년에<마음의 틀>개정판을 내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가드너는 다중지능의 실체를 다룬 1993년 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13년 만에 수정 보완한 셈이다. 이때 책의 제목도 <다중지능>으로 바꾸었다. 이 책은 25년에 걸친 가드너의 다중 지능연구를 결산하고 있다.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강조한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의 도움과 창조적 발상으로 앞으로 10년 후에는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어떤 획기적인 도약을 이룰지 기대된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 학계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교육심리학 분야에서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수백 편의 학술 보고서를 발표한 가드너는 1981년에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Louisville's Grawemeyer Award)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다. 그의 책으로는 <열정과 기질>, <체인징 마인드>,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등이 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 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5]
‘창조성이란 어디에 있는가?’하는 의문에서 그는 <개인-일-타인>이라는 창조성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
대가가 될만한 소질을 싹으로써 가지고 태어나고, 그러한 소질을 심화시키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7]
‘10년’주기론은 그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9]
가드너의 시대적 특징에 대한 관심은 보다 큰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먼저, 창조성의 발휘와 관련해서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은 무엇이고, 시대에 국한된 특수성은 무엇인가? 둘째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인간의 심리와 족적 속에서 그가 살아갈 시대의 특징과 의미를 연역해 낼 수 있을까? 시대의 의미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역사가들과 철학자들의 사변일 뿐이었다. 창조적 거장들은 시대적인 문제와 가장 근접해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사고 속에는 그들이 살고 간 시대의 의미가 고스란히 녹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10]
들어가는 글 ? 창조적 거장들이 삶을 지배한 실험정신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출발점이다. [13]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는 인간의 상징화 능력의 본질에 열렬한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예술적 창조의 핵심 관건이 되는 상징화 형식에 각별히 주목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어떤 아동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위축되는가 하는 문제였다.[15]
내가 궁금했던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서로 다른 지능을 대표하는 몇 명의 인물을 비교하고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18]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예술가란 붊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마술사와 같습니다.[31]
<익살>은 오랜 옛 일을 다루고 있지만, 분명히 우리 시대의 작품이다. 서로 갈등하는 해석의 틀과 정치적 신조, 그리고 미학적 규범을 빠른 장면 전환으로 보여주는 <익살>은 조이스나 레닌 그리고 차라오 같은 ‘현대’의 핵심적인 인물들의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작품이다.[31]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미엄 그리고 간디의 창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분명 인간의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가지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또한 그들의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이해하면, ‘현대’를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35]
이 책의 목표
첫째,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다. 그들 나름의 특별하고 종종 기묘하게도 보이는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 그들의 성취한 업적의 특징을 밝힐 생각이다.
나는 사회과학자로서 이 과업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 책은 창조성의 유형을 찾는 형식을 취한다. 즉 이들간의 유사점과 교육상 의미 있는 차이점을 규명할 생각이다.[36]
둘째,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특정한 상품과 조건이 20세기의 창조적인 인물들이 일반적인 특징이며 우리가 이런 저런 사상을 구상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또한 다양한 사상들에 반응하는 방식에도 어는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37]
마지막 목표는 ‘현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들을 형성했고 또한 그들이 그 특성을 만드는데 기여했던 시대에 관해서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37]
모든 창조적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두 번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40]
물론 이들 각자는 지능의 전 영역을 골고루 지녔고,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능을 두루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우수한 지능이 서로 달랐고, 각자의 창조적인 도약 역시 특정 지능의 우수함을 요구하는 해당분야의 상징과 이미지 및 조작 방식을 정교하게 활용한 성과물이다. [48]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49]
미셜푸코, ‘역사적 새대는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보통 무의식적인) 가설들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49]
이 연구에서는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개인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고 함께 활약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엘리엇과 스트라빈스키는 만년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사시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50]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유럽과 동유럽에 만연한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제도의 퇴조와 공통 지식의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게는 불온하다 싶을 정도로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모한 창조적 열정이었다.[53]
일단 전통과 관습이 특정한 예술 및 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전통과 관습이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나의 이유는 새로운 회화가 존재할 수 있다면 새로운 무용이나 시 혹은 정치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어느 한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순식간에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54]
연구 대상에서 삼은 분야들에서 생겨난 도전들은 상당히 비슷하다. 각각의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형식을 추구한다는 점, 전통적으로 아이들이 매달리는 문제나 개념들과 씨름한다는 점, 낡은 문명이 죽고 새로운(그러나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문명이 탄생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기록하려고 한다는 점등이 비슷하다.[55]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대상 인물의 관념 체계에 주목하고 인지 과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모델을 활용하여 대상 인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전하려고 하다는 점에서 인문학 전통의 전기물과 구분된다.[63]
일반적으로 인간 행동의 성적 동기를 강조한 프로이트는 창조적인 삶을 뒷받침하는 성적 요인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적인 인물은 리비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승화시켜서 글쓰기나 그림, 작곡, 혹은 과학탐구와 같은 2차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아마도 그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곱 명의 인물들에게서도 흥미로운 자료를 많이 발견했을 것이다. [66]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67]
내재적으로 동기화 된 경험에서 자기 관심을 쏟은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69]
사이컨트 ‘뛰어난 창조자들은 대체로 왕성한 창조력을 보이는 법이어서 후세대가 존경할 훌륭한 작품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무시되어온 신통찮은 작품이 창조했다.’ [71]
역사계량학파가 제공하는 귀중하고 풍부한 배경 자료 역시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창조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과학은 어떤 식으로든 이 두 가지 접근법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 책은 개별 사례에서 발견한 사항을 일반화해서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을 해명하고자 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72]
창조성에 대한 나의 접근법
구성적 주제는 순서와는 상관없이 대체로 다음 세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관심사는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이다. 이는 어른들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두 번째는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전착하다. 다른 사람들로는 창조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이나 친밀한 친구), 교육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교사와 스승) 그리고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동료나 경쟁자, 혹은 추종자들)이 있다.
세 번째 구성적 주제 창조적 인물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이다.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1. 구성적 |
A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과제 어른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B. 창조적인 인물과 작품의 관계 창조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이나 친구들), 교육과정에 관여한 사람들(동료나 스승), 그리고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동료, 경쟁자. 혹은 추종자)이 있다. C. 창조적인 인물과 작품의 관계 창조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의미체계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검토 할 것인데, 다양한 분야에 걸쳐 놀라운 공통점이 드러날 것이다.[76] |
2.구성의 틀 |
A.발달 1. 인생 행로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간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78]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78]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79] 2. 창조 활동 해당 분야의 상(像)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해당 분야의 문제점이나 불확실성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해당 분야에 결여된 부분을 지적하고 가능성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살펴 볼 것이다.[81] 1. 정의 창조적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 들어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83] -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창조적인 인물이 정규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 창조성 문제 풀이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이나 새로운 질문의 고안도 포함할 수 있다. -창조적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여기서 시간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84] 2. 학제적인 분석 창조성을 이해하려면 아개인성, 개인성, 비 개인성, 다개인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85] 3.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 (1)재능 있는 개인 (2) 그 개인이 활약하는 특정 분야나 학문 영역 (3)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 창조성은 어는 한 요소나 한 쌍의 요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성은 이 세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볼 때 가장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88] C. 생산적인 비동시성 비동시성의 용어로써 나는 창조성의 삼각형 내에 존재하는 부정 교합과 예외적인 유형 및 불규칙성을 지적한다. 이들 세 결절점 가운데 어느 한 결절점 내에 예외적인 유형이 존재할 때 하나의 결절점 내에 비동시성이 발생한다고 말한다.[93] |
3. 경험적 문제 |
A. 개인 1. 인지적 문제 특정 창조자의 지적인 장점과 약점(특정지능), 그리고 어린 시절의 신동의 재능을 보인 증거에 대해 검토한다. 2. 성격과 동기부여 문제 창조적인 성격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탐구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자기 계발의 진척 정도, 거장이 되었을 때에 남아 있는 아이다운 특성에 대해 주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면서 버티고 이겨내야 했던 긴장감의 정도에 관심을 기울인다.[95] 3. 사회적. 심리적 문제 아이와 부모관계의 성격, 가정 내의 규율과 관대함에 대한 태도, 사회 및 해당 분야의 다름 사람들과의 관계를 특정 짓는 경계성의 정도를 살펴본다. 4. 삶의 패턴 살아가면서 창조성의 절정과 추락을 경험하는 패턴, 특히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도약을 이뤄내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입증한다.[95] B. 분야 1. 상징체계의 특성 2. 활동 유형 :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활동이라는 견지에서 서술한다. 3. 패러다임의 지위: 창조자들이 활동하는 해당 분야에 존재하는 패러다임이나 주오 연구 방법의 지위를 살펴본다.[96] C. 장(場) 1. 스승과 경쟁자 및 추종자와의 관계 2. 정치적 갈등 3. 위계적 구조 |
4. 새로 |
A. 도약의 시기에 얻은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 창조적인 도약 주위에 강렬한 사회적, 정서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98] B. 파우스트적 거래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98] |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이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127]
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한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 [130]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137]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139]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44]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145]
프로이트 스스로 걸작이라고 여긴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그의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가? 얼핏 보기에 그처럼 폭넓은 시야를 가진 저서라면, 프로이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주된 대상 독자인 심리학자들의 장(場)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148]
프로이트와 맺은 인연으로 인해 불운을 겪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와 절교하게 된 사람들이 그러했는데 가령 젊은 제자였던 빅토르 타우스크는 용서할 줄 모르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낙심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기 추종자들 중에 적어도 여섯 명은 같은 선택을 했다. 이는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159]
죽은 뒤에도 자신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계속 성장해 갈 학회 조직과 정신분석학 운동 역시 유산으로 남겼다.[163]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원한 아이
또 한명의 존경스러운 물리학자 라바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71]
아인슈타인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팔았으며, ‘나’와 ‘우리’의 세계에서 ‘그것(사물)’의 세계로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1]
어느 경우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최종 결과물의 요체가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3]
아인슈타인은 회고한다. “현대의 여러 조직 중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처럼 고독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등대나 등대선에서 근무하는 것이 그런 직업이 아닌가 싶다.”[193]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202]
아인슈타인은 기꺼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고자 했는데 어린 아이의 중요한 정신적 성향이랄 수 있는 이런 특징을 그는 꽤 오랫동안 보유했다.[210]
아인슈타인의 외모와 몸가짐,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어른’의 기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에는 아이다운 천진성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낙천적인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220]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구상한 아인슈타인은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적 행위를 특정 짓는 일정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전문지식을 익힌 아인슈타인은 아직 젊은 나이에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쇄신했다. 많은 창조적인 인물들이 처음의 근본적인 도약이 함의하는 내용을 탐구하는 다음 10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 결정적인 도약을 감행했다. [229]
동시에 일정한 사고 방식에 너무 오랫동안 물들어 있으면, 새로운 혁신에 적응하지 못한다. [232]
호프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나 그의 마음속에는 과학이 있었다. 그는 차를 저으면서 차 찌꺼기가 컵 바닥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가운데로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전혀 뜻밖의 사실, 즉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과 연결시켜 생각했다. 모래 위를 걸을 때도 그는 우리가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즉 마른 모래나 물에 잠긴 모래는 그렇지 않은데, 젖은 모래는 딱딱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과학적 설명을 찾아냈다. [234]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철학적 색채가 가미된 아인슈타인의 발언은 어는 것도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인상적인 태도로 그런 주장을 했고, 덕분에 그의 주장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될 수 있다. [236]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과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237]
가족이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상 전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 물리적 본성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스스로 맺은 이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 만치 대조적으로 주변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작업에는 익숙지 않고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240]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252]
내가 보기에 이 같은 실험적인 성향이 생긴 이유는 좀더 내생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이 학과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259]
피카소는 아동 전시회에 관해 다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 평생이 걸렸습니다.”[263]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278]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에서 그의 정신의 변천사와 운명의 굴곡을 엿볼 수 있으며, 어느 날 혹은 어떤 시기에 그가 느낀 성취감과 곤혹스러움, 기쁨과 환희, 고통 등을 알게 된다.” 피카소는 이 점을 간결하게 말했다.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 이점에서 이들 드로잉 노트의 첫 번째 대중 전시회를 ‘나는 노트이다’라고 부른 것으로 적절한 것이었다.[284]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287]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피카소와 나의 다시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리들한테는 참으로 즐거웠던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 받았다. ……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서로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290]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하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307]
분명한 것은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332]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342]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355]
<봄의 제전>에 대한 드뷔시의 평이 정곡을 찌른다. “기상천외하고 난폭한 음악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모두 갖춘 원시 음악이다.”[367]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학자나 수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은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은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383]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마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나간다”) [388]
“나는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워진다.”[390]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엘리엇은 라포르그의 분위기에 젖고 싶은 마음에 프랑스로 떠났다.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가 영시에는 전혀 없다. 프랑스 시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411]
엘리엇은 수줍고 뻣뻣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불만이 많았지만 만나는 유력한 인사들 대부분에게 멋진 인상을 심어주었다. 점잖고 신중한 태도며 별로 드러내지 않는 박학다식과 우아한 유머 감각 그리고 영원한 경계인의 표지는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425]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문학계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대단한 성공이 가능한 작품을 난삽하게나마 탈고한 상태였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 줄지가 의문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의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429]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 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히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431]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444]
타고난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해서 스스로를 일컬어 ‘이방인’이라고 자주 불렀다.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456]
8. 마사 그레이엄-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딸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네 모습에 다 써 있어. 주먹을 쥐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등이 뻣뻣해지고 발을 끌거나 눈을 내리깔고 있잖니.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 [470]
“젊은 예술가한테는 담쟁이처럼 타고 넘어갈 벽이 필요한 법이오. 나를 그 벽으로 생각하시오.”[488]
링컨 커스틴은 이렇게 설명했다. “마샤 그레이엄은 특히 미국적인 특성을 지닌 무용가이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지닌 자기만의 표현을 통해 솔직하고 모든 것을 일소하는 자유, 맞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자유의 정신을 창조했다.”[499]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서 수천 번이나 도약연습을 했다.”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521]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523]
그레이엄은 거의 평생에 걸쳐 자신을 무용가이자 배우로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용가로 태어났다고 느꼈다.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그녀는 젊은 사람들에게 무용가가 되는 일에 관해 은근히 겁을 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 뿐이라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 그리고 작품활동의 필연입니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 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524]
“누구에게나 실패 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526]
“무용가의 도구는 탄생과 죽음의 운명에 매여 있는 그의 육체이다. 그가 사멸하면 그의 예술도 사멸한다.”[530]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간디 가문의 어른들은 도덕적 기준이 높았다. 모한다스의 어머니는 본분에 충실하고 신앙심이 놓았다. 이타적인 마음에서 자주 금식을 실천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544]
어느 회사가 더반에서 법률 조문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건 것인데, 그는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시 한 번 가족을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550]
간디는 이처럼 잔혹하고 단단한 현신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554]
힌두교 교리에서는 가장이 어느 시점이 되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종교적 고행자로서 은둔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위 바나프라스타가 그것이다. [556]
인생 행로에 관한 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간디는 인도 민중과 신 그리고 자기자신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드높은 행위 규범의 모범이 되기 위해 공개적으로 삶의 쾌락을 포기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고립된 작업을 하는 창조자들 역시 사적으로 이러한 맹세를 할 수 있지만, 대중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실행하면서 아주 공개적인 방식으로 파우스트적 계약을 실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58]
“나는 영국 법을 여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놓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간디 자신도 오래 지속된 이러한 ‘진리 실험’이 효과를 거두는데 기여했음은 물론이다.[563]
간디가 처음으로 사티아그라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곳은 남아프리카였다. 그는 참과 사랑에서 태어난 힘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 인도인들이 자기에게 가해진 불의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같은 지역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 간의 보다 인간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실천했던 방법이었다. 사타아그라하는 두 세력이 그 내부에서 불화와 반목 상태에 놓여있는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한다. [577]
시대를 막론하고 간디보다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밝힌 지도자는 거의 없다. 간디는 자신의 모든 글, 특히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진리 실험’에서 정확하고 거짓 없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과 동기를 성찰했다. 이러한 고백적 글쓰기는 두 가지 효과를 자아냈다. 첫째, 이를 통해 간디는 자신의 역사와 현재 처해있는 상황, 자기 및 인도 민중 그리고 인류 전체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온전히 자기 내부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글들은 자신의 삶을 주변의 가까운 동료들뿐 아니라 그의 실천 방법에 관심이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582]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트마 간디 [610]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623]
E.C.는 다소간의 속도 차이는 있지만 관심이 가는 문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해당 분야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 순간이 바로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3]
이들이 보여준 지적인 강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와 양상 역시 상당히 달랐다.[627]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수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629]
인생패턴: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피카소처럼 네 살에 시작하면 10대에 거장이 될 수 있고, 10대 후반에 창조의 노력을 시작한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작곡가와 그레이엄과 같은 무용가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창조성의 본 궤도에 올라선다.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637]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640]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분석적으로 보면, 여섯 가지의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개인 내부, 분야 내부, 장 내부, 그리고 개인과 분야 사이, 개인과 장 사이, 분야와 장 사이에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모든 종류의 비동시성에서 면제된 사람들은 신동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모든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 역시 여기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크다. [654]
‘경계’에 존재하는 전율 혹은 몰입 체험을 하기 위해 비동시성의 조건을 의도적으로 추구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은 왜 이런 비동시성의 과실을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565]
엄마와 아이 혹은 보모와 유아 간의 대화, 혹은 친한 친구들 간의 대화와 같은 어린 시절의 효과적인 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창조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근본적인 소통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년기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지지와 격려는 새로운 업적을 창조한 일과 관련이 있으며, 어린 시절 무엇인가 성취한 일에 보상을 받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662]
▣ 내가 저자라면
나의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 천재적인 예술가 같은 재능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재능은 무엇이며 나의 삶의 외로움과 고민에 함께한 각별한 정신적 스승은 사람은 누구였는가? 사람마다 보여지는 지적인 강점이 다르다는데 인지적 관점으로 볼 때 나는 어떤 분야에 강한가?
프로이트와 엘리엇은 는 학문적인 문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언어와 논리 지능은 강했으며, 특히 프로이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인성에는 강했다. 그러나 이들은 했으나 공간이나 음악에는 취약했다. 피카소는 문학에 약점이 있는 반면 공간, 신체 인성 영역에 지능이 뛰어났다. 창조자들 모두 지배적인 재능이 다르며 이들이 보여주는 지적인 강점들이 지능들의 폭과 결합하는 양상도 다르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와 양산도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로서 가드너는 “창조성이 무엇인가?’라는 진부한 질문을 버리고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가 궁금했던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가드너는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현대’라는 시기의 7명의 창조적 사색가,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엘리엇과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의 창조적 도약과 행위를 관찰하여 이것이 어디에 면밀히 조사했다. 이 책의 목표에서도 밝혔듯이 이들을 통해 그들 나름의 특별하고 기묘하게도 보이는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창조자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과 그들이 성취한 업적의 특성을 밝혔다. 개인적 성장환경과 삶의 가치관,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의 증거를 제시함은 놀랍다.
가드너가 밝힌 창조자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권력의 영향력이 먼 지역에서 자라나다
창조자들이 출생한 사회의 중심지역, 권력과 영향력이 가장 많은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지방에서 자라났다. 다른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예 모를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창조성의 10년 규칙의 인생 패턴
창조적인 인물들은 분야마다 약간의 가간을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 도약이 이루어졌다. 10년의 견습 기간을 거쳐 중대한 혁신을 이루고 두번째 10년 동안은 창조자 개인의 재능과 포부보다 해당분야의 성격에 따라 좌우 되는 다른 종류의 기회가 생긴다. 피카소와 스크리빈스키, 그레이엄은 모두 신고전주의의 스타일을 표하게 된다.
아이다운 천진성이 있다.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을 나타나는 경우에는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 아인슈타인은 아이다운 면을 가장 많이 가졌으며 어린아이의 마음과 영혼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는데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는 해당된다.
비동시성을 넘나들다
개인 내부, 장의 내부, 개인과 분야 사이, 개인과 장 사이, 분야와 장 사이에 존재하는 비 동시성에대해 창조적인 인물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이때 대체로 한 명 이상의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도약의 시기에 인지적, 정서적 도움을 받다
창조적 도약의 시가는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매우 긴장이 높은 시기인데 이때는 유아기 이래 가장 밀접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했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 주는 인지적 차원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플리스의 도움과 경청이 있었고, 브라크와 피카소, 호스트와 그레이엄, 파운드와 엘리엇, 스트라빈스키에게는 로에리히와 나진스키, 디아릴레프 등이 있었다.
창조적인 삶을 위한 파우스트적 거래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이 필요했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창조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정상적인 인간의 관계를 희생했으며 자기자신과의 계약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로이트와 간디는 젊은 나이에 성관계를 단념했고 엘리엇은 독신 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며 그레이엄은 친밀한 애정관계를 두려워해서 남편과 아이를 두길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7명의 창조자 인물이 비슷한 패턴으로 살았음이 흥미롭고 또한 공통점을 찾아내 창조적 마인드로 추려서 낸 내용이 놀랍다. 인간의 창조성이 지능만 우수하면 되는 것이 아닌 다중지능이론을 만들어낸 점은 가드너 역시 이 창조자들의 반열에 오를만하다고 본다.
이 책은 대중을 위한 학술서이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자신의 이론의 요지와 중요한 결론을 서술하여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 명료하게 쓰여졌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았으며 어려운 이론을 쉽게 다루기 위해 중간 중간 서술 내용을 요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이론을 따라가기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기본바탕이 되는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미리 읽고 들어간다면 쉽게 읽혀졌을까?
1부에서 창조성의 연구 방법론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며, 처음에 이것은 매우 난해해 보였으나 독자를 위해 매우 쉬우면서도 명확하게 연구 방향을 제시해 주어 다음 장에서 매우 수월하게 하였다. 2부에서는 그가 선택한 창조적 거장들의 창조성 발현에 대해 1부에서 설명한 창조성 연구의 주요 요소를 따라 잘 서술해 두었다. 매우 유익했으며 중간 중간 제시된 거장들을 비교한 저자의 설명은 비교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난 저자가 창조적 거장들의 전문분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스트리빈스키의 화제작 봄의 재전에 등에 대해 그토록 자세히 기술함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이루고자 한 분야를 따라감으로써 그들이 고민과 창조적 문제해결 능력을 추적할 수 있었나 보다. 저자는 이 새로운 연구에 인문학이 전통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전통에도 의지하였다고 하면서 학창시절부터 이런 책을 쓰고 싶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한 것인지 알만하다.
3부에서는 친절하게도 1부에서 제시한 연구 이론에 맞추어 2부에서 제시한 7명의 창조적 거장의 사례를 적용하여 결론을 내려 주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처럼 어린 시절도 중요하고 주변의 도움을 주는 사람들,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도 주요하지만 그들의 천재성이 가장 돋보이고 창조성의 가장 큰 근원으로 보여진다. 기존 장의 이론과 흐름에서 새로운 영역으로의 사고의 확장과 발견은 가드너가 제시한 모든 정황이 갖추어 진다 해도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가드너가 연구결과를 이토록 자세히 알려줘도 창조성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 시대든 통하는 창조성, 역사의 변화를 주도하는 창조성은 참으로 잡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이 다중지능이론이 우리의 문화와 실정에 맞게 연구되어 교육현장에 적절하게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책이 많이 번역되고 연구가 이루어짐을 보고 혹시 획일적인 교육의 장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 것 글을 본적이 있다. 각자 재능에 맞는 다양한 맞춤 교육, 진정한 인성교육이 접목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