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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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이순신(李純臣)은 1545년(인종 원년) 음력 3월 8일(양력 4월 28일) 서울 중구 건천동에서 이정과 초계 변씨 사이의 4남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덕수이씨 12대 손으로 형제로는 희신(羲臣), 요신(堯臣), 우신(禹臣) 등이 있다.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李百祿)은 기묘사화에 연루돼 고난을 겪어 아버지 이정(李貞)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평민으로 지냈다. 때문에 집안 형편은 기울었다고 한다. 이순신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의 딸 방씨(方氏)와 결혼하여 회, 열, 면 등 3형제와 서자로 훈(薰)과 신(藎), 그리고 2명의 서녀를 두었다.
문신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하였다고 하며 22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28살 때에 무과(武科)에 응시하였으나, 시험중 낙마 사고로 낙방했다. 4년 뒤인 1576년(선조 9년) 32살에 비로소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무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난중일기>와 시조, 한시 등 여러 편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더불어 뛰어난 인격과 지도력을 갖추어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품 가운데 <난중일기>가 포함된 <이충무공 난중일기 부서간첩 임진장초>는 국보 제76호로, 장검 등이 포함된 이충무공유물은 보물 제326호로, 명나라 신종이 무공을 기려 하사한 충무충렬사팔사품(통영충렬사팔사품)은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자에 대하여
고문서(古文書) 초서(草書) 연구가 노승석씨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성균관대 한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성균관 한림원 교수,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전문위원과 교양학부 대우교수를 지내고 있다고 그의 홈페이지(http://seungsek.wo.to)에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그를 인터뷰한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초서 해독에 뛰어난 한문학 전공자였던 노 교수는 2004년 문화재청의 국가가록유산 정보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난중일기 초고본을 판독할 기회를 얻었으며 “해전의 영웅적 측면이 부각돼 장군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는 난중일기에 대한 분석은 엄밀하지 못했습니다. 그 가려졌던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2090042)
젊은 학자의 꾸준한 노력 끝에 완성된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이 내 손에 들어왔으나, 초심자가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내가 저자라면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부터 시작하여 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앞에 두고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전사하기까지(1592년1월1일~1598년11월17일) 7년간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임진왜란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료(史料)여서인지 일기 7책과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까지 총 9권이 대한민국의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난중일기>는 두 가지의 전적이 있는데, 하나는 이순신이 진중에서 친필로 기록한 초고본으로 7책 205장이 전해지며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어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정조대왕의 명으로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실려 있는 것으로 4권(권5~권7)이다. <이충무공전서>는 규장각(奎章閣) 문신(文臣)인 윤행임(尹行恁)과 예문관(藝文館) 검서관(檢書官) 유득공(柳得恭)이 1793년부터 3년간에 걸쳐 그의 모든 행적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시·잡저(雜著)·장계(狀啓)·난중일기·부록 등의 총 1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를 두고 특별히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찬자의 편의상 이름이 붙여진 데에서 연유한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의 개인적 전장 체험뿐 아니라 전쟁전의 상황과,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해전상황과 전적, 가족과 친지들과 관련한 개인사, 관리들의 인사조치, 정치군사에 관한 서신교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저자라면? 부족한 내가 어떻게 남의 일기를 평가할 수 있을까. 게다가 국보까지 된 일기를 말이다. 이순신에 대한 여러 오해로, 군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이순신을 읽지 못하던 내가 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주는 이 책을 지금이나마 읽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부모와 아내,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부분에는 다른 때보다 더 마음이 찡해졌다.
일기를 써야겠다는 교훈으로 이 책을 덮은 나는 정말 초등학생 수준이다.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행동으로 바로 옮기게 하는 그것보다 더 강력한 교훈이 또 어디 있을까. 법정에서도 꾸준히 써온 일기는 매우 뚜렷한 증거로 채택되고 인정받는다. 한두 줄이지만 강력한 이순신의 일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몸의 약한 부분까지도 세세히 기록한 그에게 오늘 큰 자극을 받는다.
마음에 들어온 글귀
글로 적기를 생각하면서도 바다와 육지에서 매우 바쁘고 또한 쉴새가 없어서 잊어둔 지 오래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계속한다. (84)
12일_계사_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누워서 신음했다. 식은땀이 때도 없이 흘러 옷을 적시어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124)
사직의 존엄한 신령에 힘입어 겨우 작은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초월하여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지닌 몸이지만 세운 공은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하여 입으로는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138)
12일_신묘_맑음. 아침식사 후에 어머니께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143)
아침에 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보냈다. (중략) 아내의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이미 생사가 결정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괴롭구나. (203~204)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종일 큰바람이 불었다.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라 일은 어지럽건만 안으로 구제할 계책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206)
오늘은 아버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고 홀로 방에 앉아있으니, 슬픈 회포를 어찌 다 말하리오. (223)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다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이기고 지는 것이 반반이며,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의 변함없는 설이다. (226)
정월 초1일_갑술_맑음.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나라 일을 행각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 또 팔순의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239)
초1일_임신_ 잠깐 비가 내렸다. 나라 제삿날(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혼자 다락에 기대어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중략)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이다. 슬픔에 젖어 생각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271)
아버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 혼자 앉아서 그리워하니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달랠 길 없다. (296)
이날 밤에 식은땀이 등을 적셔 옷 두 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도 젖었다. 몸이 불편하였다. (328)
저물 무렵 몸이 몹시 피곤하고 수시로 많이 흐르니 이 또한 비가 올 징조다. (331)
하루 내내 어머니를 모셨다. 내일 진중으로 들어갈 일로 어머니께서는 몹시 서운해 하시는 빛이었다. (379)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였다. (중략)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에 적었다. (중략) 배를 끌어 중방포 앞으로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며 찢어지는 아픔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여 빈소를 차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나는 기력이 다 빠진데다가 남쪽으로 갈 일이 또한 급박하니, 부르짖으며 울었다. 다만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387~388)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니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사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에서 하직을 아뢰고 길을 떠났다. (389)
오늘은 곧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영에서 복무하고 있으니 인간사가 어찌 이러한 것인가. (419)
날이 채 새기도 전에 곽란이 나서 심하게 앓았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가 생각하여 소주를 마셨더니 얼마 뒤 인사불성이 되어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앉아서 밤을 새웠다. (435~436)
그 편에 경상수사 배설의 겁내하던 꼴을 들으니 괘씸하고 한탄스러움을 참지 못했다. 귄세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치 못할 지위에 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에서는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452)
새벽 2시경 곽란이 일어났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가 생각하여 소주를 마셔서 치료하려 했다가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토하기를 10여 차례나 하고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454)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긴장되고 조급했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하여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이 있은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중략)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인데도 마음 놓고 울어보지도 못했다. (469~470)
이날 밤 자정경 면이 죽는 꿈을 꾸고 울부짖으며 곡했다. (477)
다른 문헌에 남은 이순신의 최후 기록
이순신이 배 위에서 꿇어앉아 하늘에 축원하기를 “오늘은 진실로 죽기로 결심했사오니, 원컨대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다. (502)
도독을 매우 급하게 포위하자, 공이 곧바로 전진하여 그를 구하였다. 그리고 친히 시석을 무릅쓰고 손수 스스로 북을 치다가 갑자기 탄환을 맞아 쓰러졌는데, 운명하기 직전에 휘하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겨서 군중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도독은 공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세 번씩이나 배에 엎어져 넘어지면서 말하기를, “함께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하였다. 그리고 남민들은 공의 죽음을 듣고 분주히 길거리에서 통곡하였고,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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