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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7일 21시 44분 등록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백범 출간사

1. 애초에 이 글을 쓸 생각을 낸 것은 당시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 이렇게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 이 책의 상편

  하편은 주로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나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고 쓴것. 이것 역시 유서라 할 것이었다.(p13)

2. 끝에 붙인 ‘나의 소원’ 한 편은 내가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요령을 적은것(14)

3.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나의 소원’은 이러한 동기, 이러한 의미에서 실린것. 다시 말하면 내가 품은, 내가 믿는 우리 민족철학의 대강령을 적어본 것이다.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은 이 한 편을 주의하여 읽어주셔서, 저 마다의 민족철학을 찾아 세우는 데 참고를 삼고 자극을 삼아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14)

4.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시체로 발등상을 삼아서 우리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 일을 하고 간 것을, 나는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비록 늙었으나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아니할 것이다.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14~15)


■ 상권

▶ 인.신 두 아들에게

  지금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들 또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니,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나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19~20)

1. 황해도 벽촌의 어린 시절

1) 조상과 가정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21)

2) 난산의 개구쟁이

-. 앞으로 내 일생이 기구할 조짐이었는지 나의 탄생은 유례없는 난산이었다.(24)

-. 어머님은 나에게 ‘너희 집에 허다한 풍파가 모두 술로 해서 생기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단연코 자살하더라도 그 꼴을 안 보겠다.’

  나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다.(29)

3) 궁핍한 배움길

-. ‘그 사람들은 어찌하여 양반이 되었고, 우리집은 어찌하여 상놈이 되었습니까?

  ‘침산 강씨의 선조는 우리만 못하나 현재 진사가 세 사람이나 있지 않느냐, 별담 이진사 집도 그렇다.’

  ‘진사는 어찌하여 되는가요?’

  ‘진사 급제는 학문을 연마하여 큰 선비가 되면 과거 보아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글공부할 마음이 간절하여 아버님께 어서 서당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30)

-. 어느날 갑자기 아버님이 전신불수가 되셨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도 못하고 아버님 심부름만 하였다. 워낙 가난한 살림에 의사와 약을 대야 하니 가산은 곧 탕진되었다.(32)

2. 시련의 사회 진출

1) 과거 낙방

-. 드디어 나는 과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위의 몇 가지 현상만 보아도 과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37)

-. 또한 큰 선비가 되도록 공부를 하려면 다소의 금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이같이 가난하니 앞으로 서당 공부를 그만두겠습니다.(38)

-. ‘상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 이제부터 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39)

-. 장수가 될 훌륭한 재질을 논하면서,

   태산이 앞에서 무너져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병사들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한다.

   나아가고 물러섬을 호랑이와 같이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지지 않는다.(39~40)

2) 동학의 세계로

-. 과거에 낙방하고 난 뒤 관상공부에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나에게 하늘님을 모시고 도를 행한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상놈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에게 동학에 입도만 하면 차별 대우를 철폐한다는 말이나...(42)

3) 팔봉 접주

-. 나는 각 동네에 ‘동학당을 빙자하면서 금전을 강제로 빼앗거나 행패하는 자가 있으면 즉각 보고하라’고 훈령을 보내고, 고발되는 대로 체포하여 무기 있는 자는 무기를 빼앗고 곤장.태장으로 다스리고, 맨손으로 행패를 부리는 자도 엄히 다스렸다. 그러자 사방이 평안해지고 민심이 안정(51)

4) 청계동 안진사

-. 진사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맏아들은 중근으로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틈. 중근은 영기가 넘치고 여러 군인들 중에도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재주가 있었다.(57)

5) 스승 고능선

-. 당시 나의 심리 상태는 매우 절박. 장래를 생각하면 과연 어떤 곳에다 발을 디뎌야 나아갈 길을 찾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61~·62)

-. 고선생은 극히 동정하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밝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현을 목표로 하여 발자취를 밟아가도록 하게.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지금은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보다 행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62)

3. 질풍노도의 청년기

3) 인연 없는 스승의 손자사위

-. 이 일이 안진사의 인격으로 된 것이었든지 아니었든지 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동학은 토벌하고 서양 오랑캐가 하는 서학西學을 한다는 말이 괴이. 모름지기 의리 있는 선비라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저승에서 머리 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이승에서 머리 깎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할 때였다.’(88)

4) 복수 의거, 치하포 사건

-. 무작정 소리내어 우는 것이 우리 목숨을 구하는 길이 아니니, 뱃일을 사공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선객 모두가 일제히 힘을 합해서 빙산을 밀어내자고 하였다. 빙산이 순식간에 물러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추위 속에 몸을 움직이면 운동이 될 터이니 유익할 것 같았다.(92)

-. 후조 고능선 선생이 가르쳐 주신 교훈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94)

-.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94)

-.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95)

-.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96)

-.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하여야 하오. 그래야 사나 죽으나 값이 있지.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오.’

  나는 이번에 내가 왜놈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치를 씻기 위해 행한 일이니 정정당당하게 대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피신할 마음이 있었다면 애시당초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실행한 이상 자연히 법사法司에서 사법적인 조치가 있을 터이니 그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100)

5) 첫 번째 투옥

-.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103)

-. ‘어머님은 자식이 이번에 가서 죽는 줄 아십니까? 결코 죽지 않습니다. 자식이 국가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치게 정성을 다하여 원수를 죽였으니, 하늘이 도우실 테지요. 분명히 죽지 않습니다.’(104)

6) 역사적인 심문

-. ‘지금 소위 만국공법이니,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간의 통상.화친조약을 체결한 후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하였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살면 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없이 다 죽여 우리 국가의 치욕을 씻으리라!’(108)

7) 사형수의 옥중생활

-. 이때부터의 옥중생활을 대략 들어 쓴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독서.

  감리서 직원 중에서도 나와 이야기해 본 후 신서적들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자기 것만 지키려는 구지식.구사상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가 없소. 세계 각국의 정치.문화.경제.도덕.교육.산업이 어떠한지를 연구해 보고, 내 것이 남만 못하면 좋은 것을 수입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이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 시대 과제를 아는 영웅의 할 일인 것이오. 한갓 배외사상만으로는 이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오. 그리니 창수와 같이 의기 있는 남자는 마땅히 신지식을 구하여 장래 국가에 큰 일을 하여야 하오.’

  신서적을 보고 새로 깨달은 것은, 고선생이 전에 조상께 제사지내면서 ‘유세차 영력 이백 몇 해’ 라고 축문을 읽던 것이나, 안진사가 양학洋學을 한다고 하여 절교한 일이 그리 잘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리는 유학자들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14~115)

  두 번째, 교육(116)

  세 번째, 대서代書(117)

  네 번째, 성악聲樂(117)

-.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은 조금도 경동되지 않았다. 교수대에 오를 시간이 반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음식과 독서와 사람 만나는 일을 평상시처럼 하였다.(118)

8) 파옥

-. 김경득이 김구에게 보낸 단율單律 한 수(126)

 조롱을 박차고 나가야 진실로 좋은 새이며

  그물을 떨치고 나가야 예사스런 물고기가 아니리.

  충은 반드시 효에서 비롯되니

  그대여, 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소서.

4. 방랑과 모색

3) 출세간(出世間)의 길

-. 중이 되려면 제일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154)

-. 나는 깜짝 놀랐다. 망명객이 되어 사방을 떠돌아다니던 때에도 내게는 영웅심과 공명심이 있었다. 평생의 한이던 상놈의 껍질을 벗고, 평등하기보다는 월등한 양반이 되어 평범한 양반에게 당해온 오랜 원한을 갚고자 하는 생각이 가슴 속에 가득하였다. 그런데 중놈이 되고 보니, 이상과 같은 생각은 허영과 야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불씨佛氏 문중에서는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악마와 같은 생각이었다. 만일 이런 따위의 악한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싹트고 자랄 때에는 곧 호법선신護法善神께 의뢰하여 물리쳐내야 하는 것이었다.(155)

-. ‘견월망지見月忘指’

: 달을 보되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생각지 말라. 어떤 목적을 세웠으면 그 목적을 이루는 동안 생겨나기 마련인 자질구레한 일에 얽메이지 말라는 뜻.(156)

4) 장발의 걸시승

-. 그러나 작은아버지는 계속 부모님께 말씀하셨다.

  ‘형님 내외분은 창수놈 글공부시킨 죄로 온갖 고생을 하셨으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시오?’

  작은아버지의 관찰이 사실을 바로 본 것이었다. 만일 글을 몰랐다면 동학 두령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천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텃골의 순전한 한농꾼으로 땅 갈아먹고 우물 파 마시며 살았을 것이다. 세상을 요란케 할 일은 없었을 것이 명백하다.(165)

5) 동지를 찾아서

-. ‘나는 유완무요. 오시느라 무척 고생하셨소. ’남아가 어디에 있든지 만날수 없으랴‘는 말이 오늘 창수 형에게 비유한 말인가 보오.’(172)

-. 유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뱀의 꼬리를 붙잡고 올라가면 용의 머리를 볼 터이지요.’(173)

6) 스승과의 논쟁

-. 나는 그사이에 깨달은 세계 사정에 대해 말씀드렸다. 또 선생님(고선생)께서 평소에 교훈하시던 ‘존중화양이적尊中華壤夷狄’ 주의가 정당한 주의가 아니라는 것과, 눈이 들어가고 코가 높은 사람이면 덮어놓고 오랑캐라고 배척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였다.(178)

-.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세계 문명 각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서 학교를 세우고 이 나라 백성의 자녀들을 교육하여 그들을 건전한 2세들로 양성해야 합니다. 또한 애국지사들을 규합하여 이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 잃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라가 발전하는 복락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망하는 것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자는 생각합니다.‘(179~180)

7) 부친상, 미혼처의 죽음

-. 할머니는 웃으면서 물으셨다.

  ‘자네의 뜻에 맞는 처녀란 어떤 처녀인가?’

  내 대답,

  ‘첫째, 재산을 따지지 않는다. 둘째 처녀는 학식이 있어야 한다. 셋쩨 직접 상면하여 서로의 마음이 맞으면 결혼한다. 이렇습니다.’(183)

5. 식민의 시련

1) 을사늑약과 구국운동

-. 을사년(乙巳年:1905. 30세)에 이른바 신조약(을사늑약)이 체결(193)

-. 먼저 의병을 일으킨 산림학자들을 구舊사상이라 하면, 예수교인들은 신新사상(193)

-. 다섯 사람만 상소한 것은, 상소하면 반드시 사형될 것이요, 사형되면 다시 다섯 사람씩 몇 차례든지 계속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195)

-. 근처에서 호위하던 우리들은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왜놈이 국권을 강탈하고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는데, 우리 인민은 원수의 노예가 되어 살 것인가 의롭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격분한 연설을 곳곳에서 하니 인심이 흉흉해졌다.(195)

-. 아무리 급박하여도 국가흥망에 대한 절실한 각오가 적은 민중과 더불어서는 무슨 일이나 실효 있게 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아직 민중의 애국사상이 박약한 것이다.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격으로 때는 늦었으나마, 인민의 애국사상을 고취하여 인민으로 하여금 국가가 곧 자기 집인 줄을 깨닫고, 왜놈이 곧 자기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자기 자손을 노예로 삼을 줄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는 수밖에 다른 최선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모였던 동지들이 사방으로 헤어져서 애국사상을 고취하고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하여, 나도 다시 황해도로 돌아와 교육에 종사하였다.(196)

2) 안악 양산학교와 하기 사범강습

-. 안창호가 ‘13개 도마다 안악군 같은 마을이 하나씩만 있으면, 이 나라는 10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격찬한 바와 같이 당시 안악군은 신교육의 선구지대였다.

(198)

-. 작은 아버지는 의아해 했다.

  ‘너 같은 난봉꾼을 누가 도와주어서 그렇게 사느냐?’

  ‘작은아버지 보시기에 저의 난봉은 위험하지만, 난봉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게지요.’(202)

-. 성장한 청년 중에 쓸 만한 인재가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모양만 상놈이 아니고 정신까지 상놈이 되고 말았다. 그이들은 민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터럭만큼의 각성도 없는 밥벌레에 불과했다.(203)

-. 자제를 교육하라고 권하니 머리 깎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교육은 단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여 장래 완전한 국가의 일원이 되어, 약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어둠에서 광명을 되찾는 것이라 하였다.(204)

-. 구식 양반은 군주 일개인에 대한 충성으로도 자자손손이 혜택을 입었거니와, 신식 양반은 삼천리 강토의 이천만 민중에게 충성을 다하여 자기 자손과 이천만 민중의 자손에게 만세토록 복음을 남길지라. 그 얼마나 훌륭한 양반이냐, 환등幻燈기구를 가지고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인근 양반 상놈을 다 모아놓고, 환등회 석상에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라고 절규하였다.(204)

4) 재령지역 교육운동의 추억

-. 계원과 나는 동일한 관찰로 그를, 시세의 격변 때문에 헛된 열정에 들뜬 청년으로 보았다. 계원이 이재명 의사의 손을 잡고 간곡히 말했다.

  ‘군이 국사에 비분하여 용기 있게 활동하는 것은 극히 가상하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대장부가 총기로 자기 부인을 위협하고 동네에서 총을 마구 쏘아 민심을 요람케 하는 것은 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표징이요, 그러니 지금 칼과 총을 나에게 맡겨두고, 의지를 더욱 강하고 굳게 수양하고 동지도 더 사귀고 얻어서, 실행할 수 있을 때 총과 칼을 찾아가는 것이 어떠하오?’

-->나는 깜짝 놀랐다. 이재명의사가 단총을 사용하였다면 국적 이완용의 목숨을 확실히 끊었을 것인데, 눈먼 우리가 간섭하여 무기를 빼앗는 바람에 충분한 성공을 못한 것이다. 한탄과 후회가 그치지 않았다.(214)

5) 신민회와 안악 사건

-. 오직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농민들 중에는 합병이 무엇인지, 망국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자도 많았다.

  나부터 망국의 치욕을 당하고 나라 없는 아픔을 느끼나, 사람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면서도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 나는 것처럼, 나라가 망하였으나 국민이 일치 분발하면 곧 국권이 회복될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렇게 하려면 후세들의 애국심을 앙양하여 장래에 광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계속하여 양산학교를 확장하고 중소학부에 학생을 늘려 모집하면서 교장의 임무를 다했다.

  이에 앞서 국내 국외를 통하여 정치적 비밀결사가 조직되니, 곧 신민회新民會였다.(215)

6) 세 번째 투옥과 고문

-. 나는 깊이 생각했다. 이와 같은 위난한 때를 당하여 응당 지켜갈 신조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국가가 혼란할 때 진실한 신하를 안다’는 옛 가르침과, 사육신.삼학사가 죽어도 꺾이지 않았다는 고후조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금 생각하였다.(220)

-. 나는 결심에 결심을 더하여 나의 혀끝에 사람의 생사가 달렸다는 것을 각오 하였다.(222)

-. 그놈들이 또한 정신을 잃도록 가혹하게 고문하였다.

  ‘학생 중에는 누가 너를 가장 사랑하더냐?’

  하는 말에, 졸지간에 내 집에 와서 공부를 하던 최중호를 말하고선 혀를 끊고 싶었다. ‘젊은 것이 또 잡혀오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벌써 언제 잡혀왔는지 반이나 죽은 것을 끌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222)

-. 그러고 보니 국가는 망하였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평소 우리 한인의 정탐을 몹시 미워해서 여지없이 공격하곤 했는데, 나에게 공격을 받은 정탐배까지도 자기가 잘 아는 그 사실만은 왜놈에게 밀고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준 것이 아닌가.

  사회에서 나를 이같이 동정해 주었으니 나로서는 최후의 한 숨까지 동지를 위하여 분투하고 원수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225)

-. ‘나의 생명은 빼앗을 수 있거니와 내 정신은 빼앗지 못하리라.’(225)

-. 왜놈이 신문하는 방법에는 대략 세 가지 수단이 있다.

  첫째, 가혹한 고문 둘째, 굶기는것 셋째, 온화한 수단(226~227)

-. 다른 사람들이 문전에서 사식을 먹으면, 고깃국과 김치 냄새가 코에 들어와서 미칠 듯이 먹고 싶어진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음식 냄새가 코에 들어올 때마다, 나도 남에게 해가 될 말이라도 하고서 가져오는 밥이나 다 받아 먹을까, 또한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이나 늘 하여다 주면 좋겠다 하는 더러운 생각이 난다.(228)

8) 서대문 감옥으로

-. 5년 이하는 세상에 나갈 소망이 있으나 7년 이상은 옥중귀신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육체로는 복역을 하나 정신으로는 왜놈을 짐승처럼 여기고, 쾌활한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낙천생활을 하기로 했다. 동지들도 대부분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므로 옥중에서 하는 일이 서로 모의하지 않고도 같은 때가 많았다. 오월동주吳越同舟(중국 병법서 손자에 나오는 말로, 처지가 같으면 마음도 같아진다는 의미)란 옛말이 참으로 헛말이 아닌 줄을 깨달았다.(238)

-. 무룻 일곱 차례나 매달려 질식된 후 냉수를 끼얹어 살아나곤 하였지만 마음은 점점 강고해져 왜놈에게 국권을 빼앗긴 것은 일시적 국운 쇠퇴요, 일본은 조선을 영구 통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불 보듯 확연한 사실로 생각되었다.(238)

-. 근 일고여덟 달 만에 면회하는 어머님은 태연하신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경기 감사나 한 것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네 처와 화경이까지 데리고 와서 면회를 청했는데, 한 번에 한 사람밖에 허락하지 않는데서 네처와 화경이는 저 밖에 있다. 우리 세식구는 평안히 잘 있다. 옥중에서 몸이나 잘 있느냐? 우리 근심 말고 네 몸이나 잘 보중하기 바란다. 만일 식사가 부족하거든 하루에 사식 두 번씩을 들여주랴?’(246)

9) 옥중의 의.식.주

  그리하여 후일 우리나라가 독립한 후 감옥 간수부터 대학 교수의 자격으로 사용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일원으로 보아서 선으로 지도하기에만 주력해야 하겠고,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살이 한 자라고 멸시하지 말고 대학생의 자격으로 대우해야 감옥 설치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다.(254)

10) 기인과 영웅

-. 그리하여 결심의 표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서 동지들에게 언포.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民籍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요, 연하(蓮下)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여러 해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복역중에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窓戶)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고.(267)

6. 망명의 길

1) 출옥, 고향으로

-. ‘네가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한 것이, 오늘 네가 기생 데리고 술 먹는 것을 보려 하였더냐?’

  나는 무조건 대죄待罪하였다. 어머님도 어머님이거니와, 아내가 어머님께 고발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계획을 낸 것이었다.(274)

2) 농감생활

-. 소작인 준수규칙 몇 조를 반포

. 도박하는 소작인의 소작원을 허용하지 않음

. 학령 아동을 입학시키는 자는 소작지 중 가장 좋은 논 두 마지기씩을 더해줌

. 학령 아동이 있는데 입학시키지 않는 자는 소작지 중 좋은 논 두마지기를 도로 회수함

. 농업에 근실한 성적이 있는 자는 조사하여 추수시 곡물을 상으로 줌(279)

3) 상해 망명

-. 인이 난지 석 달, 구름 끼어 어두웠던 겨울 추위가 지나고 따사한 봄바람이 부는 기미년(己未年:1919. 44세)2월이 돌아왔다. 청천벽력과 같이 경성 탑동공원에서는 독립만세 소리가 일었고, 독립선언서가 각 지방에 배포되자 평양.진남포,신천,안악,온정,문화 각지에서 벌써 인민이 궐기하여 만세를 부르고, 안악에서도 계획하고 준비하던 때였다.(282)

-. ‘독립은 만세만 불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장래 일을 계획.진행하여야 할터인즉 나의 참, 불참이 문제가 아니니, 자네들은 어서 만세를 부르라.’(283)

4) 경무국장에서 국무령까지

-. 이동녕, 이광수, 김홍서, 서병호 등 옛 동지들을 찾아가 만나 악수하였다. 그때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285)

-. ‘김구’라는 책에 나의 일언일동 一言一動을 상세히 기재하였을 것이지만, 어떤 정탐이라도 그 사실(국모보수國母報讐)만은 왜놈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나의 몸이 본국을 떠나 상해에 도착한 줄 알고 나서, 비로소 그 사실이 왜에게 알려졌다 한다. 나는 이것 한 가지 일을 보아도 우리 민족의 애국 정성이 족히 장래에 독립의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286~287)

-. 아내는 민국 6년(1924, 49세)1월 1일 흥구 폐병원에서 영원의 길을 떠났다. 나는 아내를 블란서 조계法界 숭신로 경찰서 후면의 공동묘지에 매장(287)

5) 내 인생을 돌아보며

-. 내 육십 평생을 회고하면 너무도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 사람이 귀(貴)하면 궁(窮)함이 없겠고 궁하면 귀함이 없을 것이나, 나는 귀해도 궁하고 궁해도 궁한 일생을 지냈다.(289)

-. 자식들에게 대하여도 아비된 의무를 조금도 못하였으므로 내가 아비라 하여 자식된 의무를 하여 주기도 원치 않는다. 너희들은 사회의 은덕을 입어서 먹고 입고 배우는 터이니, 사회의 아들이라는 심정으로 사회를 부모처럼 효로 섬기면 내 소망은 이에서 더 만족이 없을 것이다.(289)


■ 하권

▶ 하권을 쓰고 나서

-.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물으면, 나의 최대 소원은 독립이 성공한 후 본국에 들어가 입성식入城式을 하고 죽는 것이며, 작은 소망은 미주.하와이 동포들을 만나보고 돌아오다 비행기 위에서 죽으면 시신을 아래로 던져, 산중에 떨어지면 짐승들의 뱃속에, 바다 가운데 떨어지면 물고기 뱃속에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298)

-.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298)

1. 상해 임시정부 시절

1) 상해에서 첫출발

-. 본국 13도 각 대도시는 물론이고, 궁벽한 항구나 시골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물끓듯했고, 해외 우리 한인들도 어디에 거주하든지 정신적으로나 행동으로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그 원인은 대체로 두가지로 설멸할 수 있다.

  첫째, 소위 한일합병의 참된 의미를 그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

  둘째,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이상 두 가지 원인으로 만세운동이 폭발되었다.(300)

-. 상해에서 모여든 여러 청년들 중심으로 정부조직이 운동 진전에 절대 필요하다는 소리가 안팎으로 점차 높아져, 각 곳에서 상해에 온 인사들이 각각 대표를 선출하고 임시의정원을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만드니,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이다.(301)

2) 경무국장 시절

-. 남의 조계지에 붙어 사는 임시정부니만치, 경무국 사무는 현재 세계 각국의 보통 경찰행정과는 달랐다. 그 주요 임무는 왜적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의 투항 여부를 정찰하여, 왜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침입하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정복과 사복 경호원 20여명을 임명하여 이 일을 수행(302)

-. 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로 인하여 종종 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평생 고치지 못하였다.(307)

4) 무정부상태의 국무령

-. 이무렵 내가 연구 실행했던 사무가 하나 있으니, 곧 편지정책이다. 당시 사방을 둘러보아도 정부의 사업 발전은 고사하고, 이름이라도 보전할 길이 막연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가 해외에 있는 만큼 해외 동포들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319)

2.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

1) ‘일본영감’ 이봉창

-. 이씨는 의기남자意氣男子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할 큰 결심을 품고 일본에서 상해로 건너와 임시정부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씨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323)

2) 일본 천황 불행부중不幸不中

-. 사진관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내 얼굴에 자연 처연한 기색이 있었던지, 이씨가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코자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326)

-. 1년 전부터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운동이 매우 침체한즉, 군사공작을 못한다면 테러공작이라도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게 되었다.(326)

-. 1월 8일 신문에, ‘이봉창이 일본 천황을 저격하였으나 명중하지 못하였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보도. 나는 천황을 죽이지 못한 사실이 극히 불쾌하였으나 여러 동지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였다. 그들은 일황이 즉사한 것만은 못하나, 정신적으로는 우리 한인이 일본의 신성불가침인 천황을 죽였으며, 이것은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은 것을 세계만방에 확실히 보여주는 증명이니 족히 성공으로 칠 수 있다고 하였다.(327)

-. 동경의 이봉창 의거가 세계에 전파되자 금전적인 지원이 더욱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중국전쟁에 동반하여 다시 우리 민족을 빛낼 사업을 하라는 부탁이 답지(329)

4) 홍구공원의 쾌거

-. 이 거사로 인하여 미주.하와이.멕시코.쿠바 등지의 한인 교포들의 임시정부에 대한 성원이 대단. 동경 사건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하였지만 조금이라도 민족혼을 떨친 터에. 이번홍구 사건이 절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 이로부터 임시정부에 대한 납세와 나에 대한 후원은 급격하게 증가하여, 점차 사업이 확장되는 단계로 나가게 되었다.(340~341)

3. 피신과 유랑의 나날

3) 시골 농부의 민족주의

-. 농촌을 시찰한 나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당.송.원.명.청, 각 시대에 관개사절冠蓋使節이 중국을 왕래하였다. 북쪽지방보다 남쪽지방 명조시대에 사절로 다디던 우리의 선인들은 대부분 눈먼 사람이었던가. 필시 환상幻想으로 국가의 계책이나 민생이 무엇인지를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니, 어찌 통탄스런 일이 아니리오.(351~352)

4. 다시 민족운동의 전선으로

1) 장개석 면담과 낙양군관학교

-. 장소는 낙양분교로 하고, 학교 발전에 따라 자금을 지원한다는 약속하에 1기에 군관 100명씩을 양성하기로 결의(356)

4) 어머님에 대한 추억

-.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내 나이 오십여라. 과거를 회상하고 장래를 추상하니 신세 가련하다. 서대문감옥에서 소원하기를,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가 성립되거든 정부 문지기를 하다가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 소원을 초과하여 최고직을 경험한 나의 책임을 무엇으로 이행할까 하는 생각에서 모험사업에 착수할 것을 결심하고, ‘백범일지’를 쓰기 시작하여 1년 2개월 만에 상편을 완성하였다.(365)

-. 9년만에 모자 상봉하는 첫 말씀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인학교를 하면서 다수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師表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주자는 것일세.’(367)

-. 남경에서 어머님 생신 때 청년단과 우리 동지들이 돈을 모아 헌수獻壽하려는 눈치를 알아챈 어머님은,

  ‘그 돈을 나에게 주면 내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

  하셔서 돈으로 드렸다. 그런데 어머님은 드린 돈에 도리어 보태어 권총을 사서 일본놈 죽이라며 청년단에 하사하셨다.(367)

5) 가슴에 박힌 총탄

-. 자네의 생명은 상제上帝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 하나 유감스러운 것은 이운환 정탐꾼도 한인인즉, 한인의 총을 맞고 산 것은 일인의 총에 죽은 것보다 못하네.‘(371)

5. 중경 임시정부와 광복군

2) 7당 통일회의

-. 나는 약산과 상의한 결과 연명선언으로 조국광복을 위해 민족운동이 필요하다고 발표

-->‘연명선언’은 1939년 5월 김구와 김원봉이 공동으로 발표한 ‘동지.동포 제군에게 고함’을 가리킨다. 이 연명선언에서는 현단계의 10대 정치강령을 제시하였는데, 주용 내용은 자주독립의 민주공화제 수립, 기업의 국유화, 토지국유제, 토지의 농민 분배와 매매 금지 등이다.(378)

-. 당신도 이미 회생치 못할 것을 각오하시고 말씀하셨다.

  ‘어서 독립이 성공되도록 노력하고, 성공하여 귀국할 때 나의 유골과 인이 어미의 유골까지 가지고 돌아가 고향에 묻어라.’

  어머님은 50여년 고생하다가 자유 독립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극히 원통하게 돌아가셨다.(378~379)

6. 해방 전후의 대륙

1)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 어느날 홀연 우리 임시정부 정청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일제히 애국가를 부르며 들어서는 일단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중 중요한 일화는 한 청년의 다음과 같은 답변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역사는 고사하고 우리 언어도 능숙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일본에 유학중 징병으로 출전케 되어 가족과 이별차 귀가하였더니, 부모와 조부모들이 비밀히 교훈하기를 ’우리의 독립정부가 중경에 있으니, 왜군 앞잡이로 끌려다니다가 개죽음을 하지 말고 우리 정부를 찾아가서 독립전쟁을 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 말에 따라 일본 부대에서 탈주하다가 더러는 죽고 더러는 살아 우리 정부를 찾아온 겁입니다.’(395)

2) OSS 국내침투훈련(395)

3) 왜적의 조기항복

-.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안훈련소와 부양훈련소에서 훈련받은 우리 청년들을 조직적.계획적으로 각종 비밀무기와 전기電器를 휴대시켜 산동반도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침입하게 하여 국내 요소에서 각종 공작을 개시하여 인심을 선동하게 하고, 전신으로 통지하여 무기를 비행기로 운반하여 사용할 것을 미국 육군성과 긴밀히 합작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을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399)

-. 중경에 돌아와 보니 중국 사회는 벌써 전쟁중의 긴장된 분위기가 돌변하여 각계 각층이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었고, 우리 한인 사회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한 형편이었다.(400)

-. 나는 개회 벽두에 출석하여,

  ‘임시정부 해산 운운은 천만부당하고 총사직도 불가하다. 우리가 장래에 서울에 들어가 전체 국민에게 정부를 도로 바치고 난 뒤 국무위원이 총사직하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때 ‘14개조 원칙’을 결정. 입국하려 할 때에 미국 축은 미국 군정부가 서울에 있으니 임정은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통보. 결국은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기로 결정(400)

4) 중경생활 회고

-. 내 일생을 통하여 가족을 모아서 가정생활을 한 적은 시간으로도 짧다.(402)

5) 해방직후의 상해

-. 세상만사가 어찌 모두 무심하고 우연이라 하리오. 상해에 거주하는 동포 수가 13년 전보다 몇십 배나 증가되었으나 왜적과의 전쟁으로 인한 생활난의 고통으로 인하여 각종 공장과 사업 방면에서 부정한 업자가 속출. 이와같은 상황에서 이전의 독립정신을 굳게 지키며 왜놈의 앞잡이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10여 인에 불과(408)

7. 조국에 돌아와서

1) 감격의 귀환

-. 고국을 떠난지 27년. 착륙 즉시 눈앞에 보이는 두 가지 감격이 있으니, 기쁨이 그 하나요 슬픔도 그 하나. 책보를 메고 길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의 활발 명랑한 기상을 보니 우리 민족 장래가 유망시되는 것이 기쁨의 하나. 반면 동포들의 생활 수준이 저만치 저열하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 유감의 하나(409)

-. 친척과 헤어지고 묘소를 버리고 고향을 떠난 지 27년. 고국에 돌아왔으나 그리운 출생지인 고향은 소위 38선 장벽 때문에 돌아가 보지도 못하고, 다만 재종형제들과 사촌누이 가족들이 상경하여 기쁘게 만나보았을 뿐이다.(410)

2) 지나온 자취를 찾아서

-. 마곡사 법당문 앞 대웅전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물러나 속세의 일을 돌아보니

  마치 꿈속의 일만 같다.

  라고 되어 있다. 지난온 일들을 생각하니 이 글귀는 과연 나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412)


■ 나의 소원

1) 민족국가

-.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423)

-.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423~424)

-.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425)

-.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것.(425)

-. 이러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리 삼천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것(426)

-.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것(426)

-.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426)

2) 정치 이념

-.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426)

-.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427)

-. 모든 계급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 이조 조선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경제.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427)

-.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것(428)

-. 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428)

-.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것.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429)

-.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429)

-. 미국은 이러한 독재국에 비겨서는 심히 통일이 무력한 것 같고 일의 진행이 느린 듯하여도, 그 결과로 보건대 가장 큰 힘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의 효과이다. 무슨 일을 의논할 때에 처음에는 백성들이 저마다 제 의견을 발표하여서 훤훤효효喧喧囂囂하여 귀일歸一할 바를 모르는 것 같지만, 갑론을박甲論乙駁으로 서로 토론하는 동안에 의견이 차차 정리되어서 마침내 두어 큰 진영으로 포섭되었다가, 다시 다수결의 방법으로 한 결론에 달하여 국회의 결의가 되고, 원수의 결재를 얻어 법률이 이루어지면, 이에 국민의 의사가 결정되어 요지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양으로 민주주의란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는 한 절차 또는 방식이요, 그 내용은 아니다. 즉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이다. 국론國論, 즉 국민의 의사의 내용은 그때 그때의 국민의 언론전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어느 개인이나 당파의 특정한 철학적 이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색이다. 다시 말하면 언론.투표.다수결 복종이라는 절차만 밟으면 어떠한 철학에 기초한 법률도 정책도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그 헌법의 조문뿐이다.(429~430)

-.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430)

3)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431)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431)

-.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432)

-.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432)

-.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이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432)

-.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433)

-.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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