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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6일 08시 49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파블로 네루다 지음/ 박병규 옮김 / 민음사

 

 

저자에 대하여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본명은 리카르도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이고, 1904년 칠레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철도원이었고, 교사였던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난 직후 돌아가셔서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열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시를 쓰는 것을 반대해서 아버지가 알 수 없도록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의 이름을 따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을 갖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시인 가브리엘 미스트랄의 서재에서 고전을 발견하고 탐독하게 되면서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넓혀가게 되었다.

18세 때 산티아고 데 칠레 사범대학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본격적으로 시의 창작에 몰입하여 매일 두 편이상의 시를 쓰는 등 열정적인 창작활동에 나서게 된다. 19세이던 1923년 처녀작 <황혼일기>를 출간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24년 20세의 나이에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시작에 몰두하던 그는 1927년 23세 약관의 나이에 외교관으로 임명이 되는데, 랑군 영사를 시작으로 콜롬보, 실론, 바타비아, 자바, 싱가포르를 옮겨 다니며 영사로서 외교관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자바에서 하게나르라는 네덜란드 출신 여인을 만나 첫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시집〈대지에 살다>를 출간한다.

1934년 동남아시아를 떠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로 발령이 나게 되는데, 스페인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면서 그의 시는 유럽 문학계에도 많이 알려 지게 되었다. 하지만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짐으로써 그의 시작 활동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 내전 동안 친구 가르시아 로르카의 처형과 미겔 에르난데스의 투옥 등의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정치적으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어 민중에 대한 애정과 사회 의식이 묻어나는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38년 스페인 내전을 피해 탈출한 망명자들을 이끌고 칠레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칠레 정부에 의해서 멕시코로 보내진다. 이 망명의 세월 동안 그는 완성한 창작기를 보낸다. 이 때 쓴 시의 대부분이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1943년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칠레로 돌아온 그는 이 시기에  델리아 델 카릴이라는 20살 연상의 여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의 정치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1945년 노동자들의 지지로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곧 이어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독재자 곤잘레스 비델라의 탄압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고, 이때 위대한 서사시 <모두의 노래>를 탈고하게 된다. 1949년부터 시작된 그의 망명 생활은 1952년까지 계속되는데, 그가 이탈리아 나폴리에 망명해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일 포스티노>이다. 1952년 좌익작가와 정치인에 대한 검거령이 철회되자 네루다는 칠레로 돌아왔으며, 1953년 마틸데 우루티아와 세 번째로 결혼하였다.

1970년에 칠레의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권이 세워졌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였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가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는 이에 충격을 받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었으며, 군사 구테타 10여일 후 9월 23일 그가 사랑했던 조국을 떠나 영면에 들게 되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13]

 

1. 시골소년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17]

 

이런 기억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여러 가지 일이 뒤섞여 혼동을 일으킨다.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25]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33]

 

나는 시적 영감이 채 가시지 않아 조금 떨고 있었다. 부모님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건성으로 받아 들고 대충 훑어본 후에 되돌려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어디서 베꼈니?”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낮춰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했다. 내 기억으로 첫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무책임한 문학 비평의 쓴맛을 보았다.[36]

 

2. 도시의 방랑자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의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56]

 

광기와 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성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정의의 근간인 이성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칠레를 매우 사랑한 우나무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이성 또는 힘으로’라니. ‘이성으로, 항상 이성으로.’ 이렇게 말해야지.”[66]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72]

 

나는 적들과 다니면서 내 자신이 오염될까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민중의 적만이 내 적이기 때문이다.[72]

 

그때 가죽상은 단호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불후의 명문을(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랬다) 남겼다. “이런 가죽하고는 결혼할 수 없소.”[76]

 

첫 시집! “작가와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 그러나 어떤 장인도 시인처럼 자신의 손으로 처음 창조한 대상에서 이러한 도취의 감정이나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환희를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은 결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판을 거듭할수록 더욱 완전하고 아름다운 책이 되고, 시인의 언어는 향기를 품고 노래하는 포도주처럼 다른 언어라는 술잔에 옮겨져 지구 곳곳을 누비겠지만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빳빳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낸 저 순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가는 듯한 저 황홀한 도취의 순간,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꽃봉오리를 응시하는 그런 환희의 순간은 시인의 일생에서도 단 한 번밖에 없다.[77,78]

 

우리 시인들은 작품 가운데 단 한 편만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 이러한 알레르기는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반응이다. 앞서 말한 독자들의 애착은 시인을 특정 순간에서 못 빠져 나오게 만든다.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78]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83]

 

뭐든지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노래하는 것은 말(言)입니다. 음정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말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말을 사랑하고 말에 집착하고 말을 추적하고 말을 물어뜯고 말을 용해시킵니다. 그토록 말을 사랑합니다.[84]

 

3. 세계의 길

 

지진은 도시의 심장에 붙어 있는 공포의 꽃잎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영웅이다.. 항구의 기억 속에 천재지변, 흔들리는 땅의 전율,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표효소리가, 마치 바다 밑 도시나 땅 밑 도시가 요란스럽게 경종을 울리며 인간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알려 주는 듯한 소리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94]

 

계단! 어떤 도시도 발파라이소처럼 계단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지 않는다. 어떤 도시도 자기 얼굴에 이처럼 고랑을 파 놓지 않는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내려가는 듯이 삶이 오가는 계단! 중간에 자주색 엉겅퀴 꽃이 피어 있는 계단! 아시아에서 돌아온 선원이 텅 빈 집이나 화목한 집으로 들어서는 계단! 술 취한 사람이 검은 유성처럼 떨어지는 계단! 태양이 언덕과 정사를 나누기 위해서 오르는 계단! 발파라이소의 계단을 전부 돌아다니면 세계를 한 바퀴 돈 셈이 된다.[96]

 

나는 다만 종소리와 굽이치는 기복과 이름을 따라갈 뿐이다. 특히 이름을 따라간다. 이름에는 큰 뿌리와 잔뿌리가 있고, 공기와 기름기가 있고, 역사와 오페라가 있으며, 그 음절에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100]

 

결국 애국심을 가장한 이 엉뚱한 제안으로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영사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영수증에 우리 서명을 받고 돈을 건네주었다. 실제 수령액을 세어 보니 영수증에 기입된 금액보다 적었다. “그건 이자입니다.”라고 영사가 설명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 랭군에 도착해서 빌린 돈을 수표로 변제했다. 물론 이자는 제외했다.[117]

 

4. 빛나는 고독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127]

 

실제 동양에 가 보면 흔히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란 서구인이 직면한 불안, 노이로제, 혼란, 기회주의의 부산물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발생한 부산물인 것이다.[131]

 

나는 수없이 아편을 피워 댔고,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 속이 텅 비고 온 몸이 나른해졌다.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도(이를테면, 팔꿈치나 목을 움직인다든지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 소리, 경적 소리, 길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라든지) 한데 어우러져 느긋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137]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바다의 음악은 더욱 커졌다.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139]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142]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149]

 

5. 가슴 속의 스페인

 

에르난데스는 종종 동물과 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치 다듬지 않은 돌처럼, 순수한 숲과 굽이치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에서 솟아나온 작가였다. 잠든 암염소의 배에 귀를 대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지도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젖통으로 젖이 흘러 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인데, 저 염소 시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일 것이다.[179]

 

로르카는 사방에 빛을 뿌리는 요정이었다. 가슴에 모아 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186]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를 창작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188]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의 시를 요동 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195]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210]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 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210]

 

순수한 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베르티는 세계적인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다.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애정,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갖지 못한 시는 소리야 나겠지만 노래하지는 못한다. 알베르티 시는 항상 노래한다.[212]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 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214]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 했다.[228]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229]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멕시코는 진홍색과 번쩍이는 청록색이 어우러진 숄의 고장이다. 멕시코는 막사발과 항아리의 고장이고, 곤충이 갉아먹은 과일의 고장이다. 멕시코는 노란 가시와 강철처럼 파르스름한 잎을 자랑하는 용설란의 고장이다.[232]

 

역사는 정복자들이나 정복을 향유하는 자들이 쓴다.[251]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254]

 

8. 암담한 조국

 

나는 돌로 만든 세계의 배꼽,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도 속해 있는 세계의 배꼽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나 자신이 초라한 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득한 옛날 내가 여기에 살면서 밭이랑을 갈고 돌을 다듬은 것만 같았다.[256]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259]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 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263]

 

지금까지 수 많은 상(償)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263]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263]

 

"기자 양반. 이렇게 쓰세요. 나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다른 칠레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이름 또한 파블로 네루다라고요."[286]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런 뿌리는 오솔길을 가로막고 우리에게 나무가 자라는 땅 속의 비밀을 들려주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질 수 있는 신비를 보여 주며, 식물 왕국을 일으켜 세운 근육을 자랑한다. 무성한 이끼에 덮여 비극적인 생을 마치는 뿌리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조각품,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291]

 

9. 망명의 시작과 끝

 

"나는 시의 미래를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시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나짐 히크메트 [297]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시 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300]

 

이 시집 때문에 그 무렵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델리아 델 카릴이 상처를 받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델리아 델 카릴은 격동의 시기에 꿀처럼 달콤하고 강철처럼 강인한 실로 내 손을 묶어 놓은 상냥한 반려자였다. 지난 18년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325]

 

10. 여행과 귀환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341]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바위 꼭대기에는 신선의 도포 자락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동양화의 거장들이 즐겨 그린 그림이고 날아가는 새였다. 심오한 시는 이런 장엄한 자연에서 흘러나온다. 새의 날갯짓 같고, 고여 있는 듯이 흐르는 시냇물의 반짝거림 같은 간결하고 투명한 시가 흘러나오는 것이다.[349]

 

11. 시는 직업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며 내 목소리가 깊은 우물과 같은 침묵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또 저 노동자들의 검은 눈동자와 눈썹이 점차 내 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제야 진정한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운율에 취하고 또 버려진 영혼들이 시에 젖어 들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계속 시를 낭독했다.[377]

 

시는 이미 독자와의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 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386]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 당겨 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를 다루었다. 구어도 색다른 맛이 있으나 문어 또한 예상 외로 맛깔스러운 면이 있다.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387]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데, 이것도 물론 이해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391]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392]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 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삐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393]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 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394]

 

시란 인간의 심오한 감성에서 우러나온다. 바로 이런 감성에서 예배와 찬송이 우러나왔고, 나아가서 종교가 탄생했다. 시인은 갖가지 자연 현상과 대담하게 맞섰고, 원시 시대에는 사제라는 이름으로 직책을 유지했다. 근대에 이르러는 자신의 시를 방어하기 위해 일반 대중이 부여한 자격을 등에 업었다. 오늘날 시민사회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고대의 사제 행세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둠과 결탁했다면, 이제는 빛과 함께해야 한다.[395]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395]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396]

 

신비한 영감이라든가 시인과 하느님 사이의 교감이란 사실은 불손한 의도를 지닌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위대한 창의력이 발현되는 순간에 창작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외적인 압력이나 이전의 독서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얼마간은 타인의 것이다.[396]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399]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 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천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34,435]

 

시의 영예란 거리에 나가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 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씨앗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며, 모든 생각은 이국적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며, 인간 질서의 변혁을 열렬하게 고대한다. 봄은 반역이다.[436]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436]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인들은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은 “장미꽃 침대”가 아니었다. 잔혹하고 부당한 전쟁, 지속적인 억압, 자본의 침투와 같은 불의가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난다. 쇠망기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조건부 자유, 성, 폭력, 할부 판매를 미끼로 유혹한다.[473]

 

체 게바라에게 내 시집 『모두의 노래』에 얽힌 얘기를 듣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밤마다 내 시를 게릴라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내 시집을 갖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볼리비아 산 속에서 활동하던 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 두 권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한 권은 수학책이고, 또 한 권은 <모두의 노래>였다.[478]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 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월트 휘트먼은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부가적인 요소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나 벌거벗은 창조 행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495]

 

나는 군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 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496]

 

옮긴이의 말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 이처럼 네루다를 끊임없이 노래하게 만든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거의 모든 비평가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듯이, 대자연이다. 산과 숲, 벌판과 꽃, 식물과 동물, 하늘과 땅, 비와 바람이다.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시에서는 물론이고, 끈끈한 고독이 묻어나는 시, 분노와 함성이 메아리 치는 시,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의 소박한 정취를 노래한 시에서도 항상 텁텁한 흙 냄새가 나고 신선한 초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기에 네루다 또한 이렇게 고백한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534]

 

이 회고록에서 네루다가 특별히 강조하는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에 대한 사랑이다. 계기는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 네루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에 눈을 뜬 네루다는 한평생 사회적 약자들, 버려진 영혼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하고 투쟁했다.[535]

 

 

 

내가 저자라면

 

파블로 네루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그가 태어날 때부터 생의 마감 직전까지의 그의 삶, 즉, 대자연에 감동하며 성장하던 유년기,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게 몰입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창작하던 청년기, 처음으로 고국을 떠나 이국 동남아시아를 경험하던 영사 시절, 국제적 정치적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적/이념적으로 갈등 하던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시기, 고국에 돌아와 헌신하며 사회주의 활동에 전념하던 시절, 그의 이념의 승리로서의 아옌데 정권의 수립과 뒤이은 군부 쿠데타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까지를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함께 그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시적인 표현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감탄한 것은 그의 시적인 표현의 일상성이었다. 자서전 전체를 통틀어 기술/설명 보다는 묘사가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묘사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 산천, 학교를 다니기 위해 다니기 위해 새로이 이사간 도시, 외교관 생활을 하게 된 이국 땅의 풍경들, 그가 만난 수 많은 사람들, 아내와 노동자들을 포함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그는 그가 가진 언어의 마법을 발휘하여 다양하게 표현했다. 평소 사실 관계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류의 글들에 익숙할 뿐 시적인 영감의 표현과 화려한 수사에 미숙했던 나에게는 네루다의 자서전 전체가 새롭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자서전은 ‘시적인 수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그가 자서전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칠레의 지형에 대한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칠레 자연 환경에 대한 묘사의 이해의 어려움, 또한 남미의 역사 및 다양한 인물들(시인, 정치가, 공산주의자 등)에 대한 미천한 지식으로 인한 그의 지인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에 대한 공감의 어려움 등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역자의 노력이 아쉽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지구상 반대편 나라와 문화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의 부족을 감안할 때 세심한 노력으로 보다 많은 주석과 시각적 정보의 제공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자신의 경험, 즉, 친한 시인의 죽음과 내전으로 인해 핍박 받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눈뜸을 계기로 네루다는 사회적 모순과 그 안에서 고된 삶을 영위하는 ‘민중’들을 발견하였고 그의 한평생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를 쓰고 또한 정치적으로 투쟁했다. 이러한 면모는 다음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IP *.17.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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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6:07:10 *.204.150.167
그치? 앞의 두권과 비교되어 그의 시적 표현은 더욱 아름다웠던 것 같아.
시인은 자서전도 시적으로 쓴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어. ^^

그러게. 나도 사실 라틴아메리카, 스페인 내전 그리고 공산주의 등
이 책의 많은 부분들이 참 낯설었는데, 오빠야도 그랬다니 다행! ㅋㅋㅋ

나 역시 결국은 민중에 대한 중심으로 이해했는데..
확실히 오빠 리뷰는 정리하는데 짱이야! 오빠, 짱! 정리, 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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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6.16 18:26:44 *.12.21.21
시적인 표현의 일상성....나도 그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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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6.16 19:28:34 *.17.70.7
댕큐.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리뷰가 제일 짧고 허접한 것 같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오프수업에 지난 주, 이번 주 계속되는 새 회계년도 계획 및 보고 때문에 절대 시간을 많이 못 가진 것 때문이지만.... 더 정확히는 뻔히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충분히 독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겠지. 겨우 한 번 읽고 리뷰를 쓰자니 정말 딸리는 느낌.... 좋은 반성의 시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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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6.17 09:27:49 *.45.129.180
ㅋㅋ그려그려. 연구원을 1순위로 놓는다 함은 일 외의 가용한 시간을 최대한 모아서 북 리뷰/컬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겠지. 3달쯤 지난 마당이니 다시 한 번 마음 다잡는 기회로 삼아야 할 듯함. 댕큐 & 홧팅^^~~

추신) 근디 오빠는 한 번 불러주고 마는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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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20:38:47 *.40.227.17
뭘여~.. 내는 매번 기러는데..ㅎ
그러면서.. 안그래야지.. 여그까지 꼭 읽어야지.. 더 집중해야지.. 변해야지.. 잘해야지..
매번 다짐만? 결심만?  허는데..  ㅋ

읽어야 쓸 수 있는 거이 맞는거 같아여..
근데.. 점점 읽는 거이 느려지니.. 뒤쳐지니.. 이거이..이거이.. 어떡한데여.. 흑흑흑 

희산 오라버니~  내같은 아?도 있으니께..
아~짜 하시고 힘! 용기! 내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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