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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6일 11시 23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 박병규 옮김, 민음사

 


▣ 저자에 대하여

파블로 네루다 (1904~1973)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시인이다. 1971년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본명은 리카르도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였으나 아버지가 시를 쓰지 못하게 하여 처음 시를 발표할 때 아버지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필명을 사용했다. 어떤 잡지에서 네루다라는 체코인의 이름을 보고 필명으로 사용한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체코인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작가로서 아름다운 발라드와 로망스를 창작하였으며, 프라하의 말라스트라나에 기념 동상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1904년 칠레의 팔랑에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열 네 살에 시를 발표했다. 1973 6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시를 남겼다.  1921년 산티아고 데 칠레의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며 첫시집 <황혼의 일기>를 펴냈다. 1924 <스무살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을 발간했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그의 시집이다.

 

1927년 버마의 랭군 주재 명예영사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5년간 공직생활을 했으며 이후 스리랑카, 인도, 싱가포르, 일본 등의 영사직을 맡았다. 스페인 마드리드 영사로 임명되었을 때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페인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가르시아 로르카와 에르난데스를 읽는 비극을 체험하다. 이 때 고뇌히며 이 시대에 시인으로써 역사를 끌어안기 시작하게 된다. 그가 말한 대로 세상이 변했고 그의 시도 변했다.

 

파시즘과 내전의 비극을 본 네루다는 이후 사랑과 낭만의 시인에서 현실에 발붙이는 예술을 택하고, 칠레 공산단원이 된다. 사회주의라면 칠레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네루다는 그러나 공산당을 탄압하는 칠레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한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의 망명생활은 했다.

 

1952년 다시 조국 칠레로 돌아온 네루다는 칠레의 진보세력을 모아 공산당 후보단일화를 시켜 1969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으나 이듬해 살바도르 아옌데를 단일후보로 추대하고, 대통령 후보직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 쿠테타가 일어나고 아옌데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살해된 그해 973 923일 사망한다.

 

그는 타고난 시인이다. 글씨를 알기 전부터 그는 시인이었다.

<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자 적었다. 운율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깨끗한 종이에 정서할 때에도 설렘이라고나할까, 아무튼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깊은 불안, 일종의 고뇌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다.-36p>

 

그리고 일생이 시에 의한, 시를 위한, 시의 인생이었다. 어디에서나 시를 쓰고 낭독했으며 시로 세상과 소통하였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그의 시를 낭독해 본다.

 

<>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이 멀었어.

내 영혼 속으로 뭔가 두드렸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이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서 취해,

내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이 시가 시인인 그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파블로 네다루다의 삶 중에서 1952년 칠레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 작은 섬에 기거할 때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니 챙겨 보고 싶다.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이 1994년에 만든 일 포스티노’.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13]

1.
시골소년
칠레의 숲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16]

 

유년시절 얘기를 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17]

그때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줄곧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줄줄이 떨어진 긴 유리 바늘은 지붕에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유리창까지 차오른 물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 집들은 겨울 바다에서 간신히 항구로 대피한 선박처럼 보였다.[17]

 

원주민들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가게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물건 모양의 간판을 내걸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톱, 가마솥만 한 냄비, 문짝만 한 자물쇠, 삽만 한 숟가락, 그 앞의 신발 가게는 무지막지하게 큰 장화를 걸어 놓았다.[18]

 

굵직한 선 두 가닥이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는 수직으로 그어진 칼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새하얀 웃음이었다.[20]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25]

 

나라는 하찮은 존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담쟁이덩굴과 인동덩굴과 내 시심만이 무성하게 자라는 이 적막한 정원을 찾지 않았다.[30]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33]

 

광활하고 무서운 개척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년 시인은 무척이나 고독했다. 나는 삶과 책을 통해 조금씩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로 나아갔다.[35]

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자 적었다. 운율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깨끗한 종이에 정서할 때에도 설렘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깊은 불안, 일종의 고뇌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다.
나는 시적 영감이 채 가시지 않아 조금 떨고 있었다. 부모님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건성으로 받아 들고 대충 훑어본 후에 되돌려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어디서 베꼈니?”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낮춰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했다.
내 기억으로 첫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무책임한 문학 비평의 쓴맛을 보았다.[36]

세 자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요리 솜씨였다. 그 여자들에게 식탁이란 신성한 문화유산의 보존이었다.[43]

 

우리가 메뉴를 보관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똑 같은 요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거예요.”[43]


2.
도시의 방랑자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 한 사람이 두 겹의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56]

주변을 밝게 만들고 마치 숨겨 둔 나비를 날려 보내듯이 가는 곳마다 아름다움을 날려 보내던 로하스 히메네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회가 새롭다.[63]

 

내가 만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며 종이학과 함께 비를 맞으며 하늘로 날아갔다.[64]


광기와 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66]

 

내가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잘 알지도 못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거네.[72]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단순하다. 이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친구들의 장난기에 덩달아 합세했고, 또 화려한 옷차림, 못된 짓, 종이학, 소까지 부러워했다. 아무튼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내 시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더니만 이제는 나를 공격하고, 내 눈을 빼먹으려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분파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 침묵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나는 적들과 다니면서 내 자신이 오염될까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민중의 적만이 내 적이기 때문이다.[72]

첫 시집! “작가와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깍은 목각품이다.” 그러나 어떤 장인도 시인처럼 자신의 손으로 처음 창조한 대상에서 이러한 도취의 감정이나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환희를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77]

 

우리 시인들은 작품 가운데 단 한 편만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 이러한 알레르기는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반응이다. 앞서 말한 독자들의 애착은 시인을 특정 순간에서 못 빠져 나오게 만든다.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78]

나는 병을 보고 도취했다. 우주적, 천상적 도취였다. 그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 없이 써 내려갔다. 마치 누군가 불러 주는 말을 받아 적는 것 같았다.[79]

 

내 곁에는 시에 나타난 그 모든 것들이, 이를테면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소리, 대들 지저귀는 소리, 불멸의 가시나무처럼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존재하고 있었다.[81]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83]

3.
세계의 길
뭐든지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노래하는 것은 말()입니다. 음정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말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말을 사랑하고 말에 집착하고 말을 추적하고 말을 물어뜯고 말을 용해시킵니다. 그토록 말을 사랑합니다. 예기치 못한 말을 사랑합니다. 사랑스러운 말은 색 돌처럼 빛납니다. 은빛 물고기처럼 뛰어오릅니다. 말은 거품이고 실이고 금속이고 이슬입니다.

나는 몇몇 말을 뒤쫓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 시에 모두 다 집어넣고 싶습니다. 나는 윙 하고 날아가는 말을 붙잡습니다. 말을 생포해서 잘 씻고 껍질을 벗겨 접시에 담아 내놓습니다.

내 느낌에, 이런 말은 수정 같고 공명판 같고 상아 같고 청초한 식물 같고 매끄러운 기름 같습니다. 파일처럼 해초처럼 마노(瑪瑙)처럼 올리브처럼 보입니다. 그런 말을 휘젓고 뒤흔들어 마십니다. 꿀꺽꿀꺽 삼킵니다. 말을 분쇄합니다. 말을 치장합니다. 말을 해방시킵니다. 말을 종유석처럼, 곱게 손질한 나무 조각처럼, 석탄처럼, 파도에 밀려오는 난파선의 잔해처럼 시에 놓아둡니다.[84]

모든 것이 말에 달렸습니다. 어떤 생각은 통째로 바뀌기도 합니다. 말이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어떤 문장에 기대하지 않은 말이 느닷없이 끼어들더니만 이내 여왕 행세를 하면서 문장을 복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그림자, 투명함, 무게, 깃털, 머리카락 등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과 강물에서 떠내려 오는 동안, 혹은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니는 동안 들러붙은 것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말도 있고 최신식 말도 있습니다. 숨겨 놓은 관()에 거처를 마련한 말도 있고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에 거처를 마련한 말도 있습니다. [84]

 

그러나 말은 이 야만적인 정복자들의 장화 밑바닥에 박혀 있던 조약돌처럼 수염에서, 투구에서, 편자에서 떨어졌습니다. 지금 그 빛나는 말이 여기 남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패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였습니다. 저들은 황금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황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85]

갑자기 이상하고 매혹적인 무언가가 몸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숲의 향기였다. [89]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91]

저 위 산동네에서는 빈곤이 만발했다. 역청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덩달아 기쁨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동네였다. 해안을 뒤덮고 있는 기중기, 선창, 부두 노동은 덧없이 지나간 행복한 시절에 그려 놓은 마스카라 같았다.[94]

지진은 도시의 심장에 붙어 있는 공포의 꽃잎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영웅이다.. 항구의 기억 속에 천재지변, 흔들리는 땅의 전율,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포효소리가, 마치 바다 밑 도시나 땅 밑 도시가 요란스럽게 경종을 울리며 인간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알려 주는 듯한 소리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94]


계단! 어떤 도시도 발파라이소처럼 계단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지 않는다. 어떤 도시도 자기 얼굴에 이처럼 고랑을 파 놓지 않는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내려가는 듯이 삶이 오가는 계단! 중간에 자주색 엉겅퀴 꽃이 피어 있는 계단! 아시아에서 돌아온 선원이 텅 빈 집이나 화목한 집으로 들어서는 계단! 술 취한 사람이 검은 유성처럼 떨어지는 계단! 태양이 언덕과 정사를 나누기 위해서 오르는 계단!
발파라이소의 계단을 전부 돌아다니면 세계를 한 바퀴 돈 셈이 된다.[96]

불을 밝힌 발파라이소, 요란한 발파라이소, 물거품과 환란의 발파라이소가 태어났다.[97]

그때 발파라이소가 밝아 왔다. 처음에는 짙은 황금빛이더니, 이내 바닷가 오렌지나무로 변하고, 잎이 무성해지고, 그늘을 드리우고, 눈부신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다.[98]

나는 다만 종소리와 굽이치는 기복과 이름을 따라갈 뿐이다. 특히 이름을 따라간다. 이름에는 큰 뿌리와 잔뿌리가 있고, 공기와 기름기가 있고, 역사와 오페라가 있으며, 그 음절에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100]

항상 너무 바쁘고 항상 너무 한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알바로는 모르는 게 없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어 보는 당돌한 푸른 눈, 섬세한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으니.....[119]

4.
빛나는 고독
파도는 내가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바다가 수천 개의 물거품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121]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127]

나는 수없이 아편을 피워 댔고,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속이 텅 비고 온 몸이 나른해졌다.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도(이를테면, 팔꿈치나 목을 움직인다든지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 소리, 경적 소리, 길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라든지) 한데 어우러져 느긋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137]

몽롱한 침묵은 아편굴이라는 물웅덩이에 가라앉은 부서진 꿈의 침전물이다. 눈을 반쯤 감고 섬세하고 감미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는 그 사람들은 바다 밑에서 한 시간 동안 지내는 꿈을 꾸거나 언덕 위에서 하룻밤 지내는 몽환에 젖어 있었다.[138]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 입은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지만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139]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142]


소년인지 여인인지 떨리는 듯 흐느끼는 목소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음으로 치달았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어둠이 물든 저음으로 내려왔고, 프랑기파니 향에 달라붙어 아라베스크처럼 굽이치다가 분수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수정처럼 맑은 높이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 재스민 꽃 사이로 사그라졌다.[143]


로렌스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위대한 영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를 훈계하려 들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로렌스는 우리가 삶과 사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성교육 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나는 로렌스가 지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성의 신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구, 쓸모 없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이러한 탐구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145]

반제르는 대영제국의 탁월한 산물이었다. , 우아한 철면피였다.[147]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149]

5.
가슴 속의 스페인

행복은 피부와 마찬가지로 로르카의 일부분이다.[176]

 

에르난데스는 종종 동물과 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치 다듬지 않은 돌처럼, 순수한 숲과 굽이치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에서 솟아나온 작가였다. 잠든 암염소의 배에 귀를 대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지도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젖통으로 젖이 흘러 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인데, 저 염소 시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일 것이다.[179]

그 노랫소리는 피 속에 흐르고 있었고, 흙 냄새 물씬한 야생적인 시 속에 흐르고 있었다. 왕성한 젊음의 향기와 풍요가 배어 있고, 동부 스페인의 색깔, 향기, 소리가 무성하게 뒤엉켜 있는 시 속에 아직도 그 노랫소리가 살아 있다.[180]


에르난데스의 얼굴은 스페인의 얼굴이었다. 햇빛에 깎이고, 씨를 뿌려놓은 밭처럼 고랑이 파인 얼굴은 빵이나 지구처럼 둥글둥글한 데가 있었다. 바람에 그을려 까칠까칠해진 얼굴에서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은 강인함과 온유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180]

스페인은 건조하고 바위가 많은 나라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들판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먼지 자욱한 빛의 성곽을 만들어 낸다. 스페인의 진정한 강은 시인들이다. 케베도의 시는 깊은 초록색 물과 거품이며, 칼데론의 시는 강물처럼 노래하는 음절이며, 아르헨솔라 형제의 시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며, 공고라의 시는 루비 강이다.[181]

로르카는 사방에 빛을 뿌리는 요정이었다. 가슴에 모아 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186)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를 창작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188)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의 시를 요동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195]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210]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210]

 

순수한 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베르티는 세계적인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다.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애정,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갖지 못한 시는 소리야 나겠지만 노래하지는 못한다. 알베르티 시는 항상 노래한다.[212]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사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 왔다.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준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214]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215]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228]


그러자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영원해졌다. 이제 우리는 대지 위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서 있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한정 소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신비도 찾지 않는다. 우리들이 바로 신비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속 깊은 곳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 대기가 어두워진다. 가끔씩 인광과 공포로 충전된 번갯불이 환하게 빛난다. 명확한 언어, 진부한 언어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구조물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내 시에서 가장 신비로운 재료로 만든 새로운 대륙이 솟아나고 있다. 나는 이 대륙에 정착하고, 이 대륙에 이름을 붙이고, 신비한 해안선을 만져 보고, 파도를 잠재우고, 동물들이 사는 땅을 둘러보고, 지형을 측량하는 데 어둡고 고독하고 아득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229]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멕시코는 진홍색과 번쩍이는 청록색이 어우러진 숄의 고장이다. [231]

 

나는 어촌에 들렀다. 마을에 널어 놓은 그물이 얼마나 투명한지 마치 잃어버린 은빛 비늘을 찾으러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대한 나비처럼 보였다.[233]

 

젊은 시인들이 나에게 시 낭송회를 부탁했다. 그리고 우비코에게 전보를 보내 집회 허가를 받아냈다. 지인들과 젊은 학생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시를 낭송했다. 저 거대한 감옥에 창문을 내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242]

 

처음 시를 발표할 때 아버지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필명을 사용했다. 어떤 잡지에서 네루다라는 체코인의 이름을 보고 필명으로 사용한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체코인에게 존경 받는 위대한 작가로서 아름다운 발라드와 로망스를 창작하였으며, 프라하의 말라스트라나에 기념 동상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245]

 

역사는 정복자들이나 정복을 향유하는 자들이 쓴다.[251]

 

인간 종족이라는 나무에 지성이라는 수액이 타고 올라감으로써 다양한 색깔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251]

 

8. 암담한 조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뿌리 뽑힌 사람이 맛보는 좌절감은 어떤 형태로든 영혼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향 땅이 아니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발을 딛고, 내 땅을 만지고, 내 땅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의 물소리와 그림자를 느끼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깊이 뿌리 내라고 자양분을 흡수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255]

 

나는 돌로 만든 세계의 배꼽, 당당하게 치솟은 세계의 배꼽,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세계의 배꼽,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도 속해 있는 세계의 배꼽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칠레인이자 페루인이고 아메리카인이라고 느꼈다. 저 험준한 봉우리에서 영욕의 세월을 거친 유적을 돌아보며 나는 추후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시집 <마추픽추 산정>은 이렇게 태어났다.[256]

내 시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시 덕분에 고단한 삶을 사는 동포들과 한데 어울릴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둘도 없는 형제처럼 받아 주었다.[257]


강가에 펼쳐진 숲 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259]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 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262]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263]

르드리게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주도권을 장악한 사람 특유의 솔직 담백함이었다. 내 시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낭송했다. 지적이면서도 굵직한 목소리로 낭송할 때는 내 시가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275]

 

우리는 저 끝없는 고독의 세계, 푸르고 하얀 침묵의 세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람한 나무, 무성한 덩굴 식물, 수백년 동안 쌓인 부엽토, 느닷없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나선 나무둥치를 헤집고 전진했다. 이 모두 신비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이면서 동시에 갈수록 심해지는 추위와 눈과 추적의 위험을 뜻했다. 고독, 위험, 정적, 절박한 심정이 한꺼번에 우리를 엄습했다.[278]

 

우리를 접대한 것, 그뿐이다.[281]

 


문득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286]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런 뿌리는 오솔길을 가로막고 우리에게 나무가 자라는 땅 속의 비밀을 들려주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질 수 있는 신비를 보여 주며, 식물 왕국을 일으켜 세운 근육을 자랑한다. 무성한 이끼에 덮여 비극적인 생을 마치는 뿌리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조각품,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291]

 

9. 망명의 시작과 끝

"나는 시의 미래를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시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297]

 

과연 문학이나 예술이 이처럼 본질적인 사안을 외면하고 공허한 자율성만 고집해도 된다는 말인가?[298]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시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300]

나 죽거들랑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주길 바란다. 지명을 말할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내 유골 위에서 되울렸으면.[313]


중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 사람들이다. 혹독한 식민 시대와 혁명, 기아와 학살을 겪었으나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잘 웃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구가 수확한 가장 귀중한 쌀은 어린아이의 웃음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웃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노란색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농부들과 대다수 민중들이 이런 웃음을 짓는다. 다른 하나는 코 밑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웃음이다. 이는 관료들의 웃음이다.[314]

 

우리 눈에 비친 에드윈 체리오는 도량이 넓고 관대하고 향기로운, 이탈리아의 심장이었다.[323]

 

이 시집 때문에 그 무렵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델리아 델 카릴이 상처를 받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델리아 델 카릴은 격동의 시기에 꿀처럼 달콤하고 강철처럼 강인한 실로 내 손을 묶어 놓은 상냥한 반려자였다. 지난 18년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325]

10. 여행과 귀환
나는 파문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341]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 모두가 말하고 읽고 듣고 번영하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341]

심오한 시는 이런 장엄한 자연에서 흘러나온다. 새의 날갯짓 같고, 고여 있는 듯이 흐르는 시냇물의 반짝거림 같은 간결하고 투명한 시가 흘러나오는 것이다.[349]

내가 이런 중국과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마오쩌둥이 아니라 마오쩌둥 주의 때문이다.[353]

 

맛은 훌륭해야 하고 향기는 감미로워야 하며, 색깔은 입맛을 돋우고 조화로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칭은 이렇게 덧붙였다. “ 이 식당만의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리입니다.”[355]

 

시인의 일이란 대부분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다.[372]


11.
시는 직업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며 내 목소리가 깊은 우물과 같은 침묵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또 저 노동자들의 검은 눈동자와 눈썹이 점차 내 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제야 진정한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운율에 취하고 또 버려진 영혼들이 시에 젖어 들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계속 시를 낭독했다.[377]

 

이처럼 냉대와 열광을 한꺼번에 경험한 뒤에 달라지지 않을 시인은 없을 것이다.[378]

 

건달은 웃고 있는 여자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게 된 건 당신 때문입니다. 우린 시를 함께 외웠거든요.”[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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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시는 이미 독자와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 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 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386]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당겨 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387]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387]

 

나는 한계를 넘어야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나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했다.[389]


나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391]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392]

 

행동하는 시인으로서 나도 자기도취와 싸웠다. 따라서 개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갈들은 나라는 존재 내부에서 해결되었다.[392]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삐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393]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 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394]

 

우리 시인들은 독자를 찾아나서야 한다. 독자가 있는 곳이라면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거나 우주선을 타고 하늘을 비행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394]


시란 인간의 심오한 감성에서 우러나온다. 바로 이런 감성에서 예배와 찬송이 우러나왔고, 나아가서 종교가 탄생했다. 시인은 갖가지 자연 현상과 대담하게 맞섰고, 원시 시대에는 사제라는 이름으로 직책을 유지했다. 근대에 이르러는 자신의 시를 방어하기 위해 일반 대중이 부여한 자격을 등에 업었다. 오늘날 시민사회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고대의 사제 행세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둠과 결탁했다면, 이제는 빛과 함께해야 한다.[394]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395]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396]


술을 마시면 빈곤마저도 다음 날 아침까지는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났다.[397]

나는 집에다가 크고 작은 장난감을 많이 모아두었다. 모두 내가 애지중지 여기는 수집품이다.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399]

아내는 발과 손과 눈과 목소리로 땅에서 수확한 온갖 뿌리와 꽃과 달콤한 열매를 내게 가져다 주었다.[407]

 

그래, 투명하다는 말이 안성맞춤이다. 엘뤼아르의 시를 수정하고 노래하는 시냇가에 잔잔하게 고여 있는 맑은 물이다.[411]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 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천장에서는 탄환이 된다.[434]

 

학파나 유파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 책 자체가 좋다. 삶도 마찬가지다.[435]


시의 영예란 거리에 나가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 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씨앗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며, 모든 생각은 이국적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며, 인간 질서의 변혁을 열렬하게 고대한다. 봄은 반역이다.[436]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436]

 

시인이 이처럼 자기만의 신성한 영역을 떠받들고 있는 한, 매수하거나 억누를 필요가 없다.[438]

봄은 노란색 물결로 시작된다. 작은 황금색 꽃들이 무수히 피어나 사방을 뒤덮는다.[444]


비일상적인 행사를 감싸고도는 엄숙한 분위기는 이 세상에 늘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것 같기도 하다.[457]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울 게 아무것도 없다.[474]

 

체 게바라에게 내 시집 <모두의 노래>에 얽힌 얘기를 듣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밤마다 내 시를 게릴라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내 시집을 갖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볼리비아 산 속에서 활동하던 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 두 권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한 권은 수학책이고, 또 한 권은 <모두의 노래>였다.[478]

나는 또 다른 체를 생각한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이면서도 무기 곁에 시집을 놓을 자리를 항상 마련해 둔 명상의 사나이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479]

 

결점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많다. 예를 들어, 불굴의 혁명 투사라는 나의 자부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485]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
공산주의자들 >
당에 입당하고 나서 십수 년이 흘렀는데, 지금도 만족스럽다. 공산주의자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풍파에 시달려 피부는 거칠어졌어도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들이다..... 어딜 가나 공산주의자들은 매를 맞는다.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 얻어맞는다. 정신주의자들 만세, 왕정주의자들 만세, 일탈자들 만세,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 만세, 알맹이 없이 냄새만 피우는 철학 만세, 짖어대고 물어뜯는 개들 만세, 엉큼한 점성술사 만세, 포르노그래피 만세, 냉소주의 만세, 배신자 만세, 모든 사람들 만세, 단 공산주의자는 제외하고..... 정조대 만세, 500년 동안 이념의 발바닥을 씻지 않은 보수주의자들 만세, 빈민가에 득실거리는 이 만세, 집단 매장 만세, 무정부적 자본주의 만세, 릴케 만세, <코리돈>(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발표한 앙드레 지드 만세, 온갖 종류의 신비주의 만세, 무엇이든지 다 좋고, 모두 다 영웅이다. 무슨 신문이든지 다 발행해야 한다. 누구든지 출판할 수 있다. , 공산주의자는 예외다..... 모든 정치인은 자유롭게 산토 도밍고(도미니카 공화국의수도)에 들어올 수 있다. 모두들 흡혈귀 같은 트루히요(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의 죽음을 축하할 수 있다. 그러나 트루히요에게 맞서 처절하게 투쟁한 사람들은 제외하고..... 카니발 만세, 한창 달아오른 카니발 만세, 누구든지 변장할 수 있다. 기독교 이상주의자 변장, 급진 좌파 변장, 자선 단체 사모님 변장, 구호 단체 여걸 변장도 좋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입장하지 못하게 주의하라. 문단속 잘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공산주의자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 우리는 주관적인 것, 인간의 본질, 본질의 본질을 걱정하자. 그러면 우리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누린다. 자유란 얼마나 위대한가! 공산주의자는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본질을, 본질을 걱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492]

한편, 태양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이 낡은 체제를 제외한 모든 것이 변화하려고 몸부림친다. 이 낡은 체제는 중세의 거대한 거미줄에서 태어났다. 쇠보다 단단한 거미줄에서, 그러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쟁취하고, 변화를 꽃피운 사람들이 있다..... 제기랄! 속절없이 봄이 와 버렸네![492]

 

이른 아침부터 바다는 황홀하게 부풀어 올랐다. 어마어마하게 큰 빵을 반죽하는 것일까? 심해가 차가운 이스트가 발효하면서 밀가루처럼 하얀 포말이 넘쳐흘렀다.[494]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 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월트 휘트먼은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부가적인 요소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나 벌거벗은 창조 행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495]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496]

 

나는 군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 놓을 것이다.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496]

아옌데는 칠레의 또 다른 지하 자원인 구리를 국유화했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다. 두 경우 모두 과두지배 세력이 피비린내 나는 정변을 일으켰으며, 두 경우 모두 군이 사냥개 역할을 했다. 발마세다의 경우에는 영국 기업이, 아옌데의 경우에는 미국 기업이 이 같은 군부의 만행을 조장하고 후원했다. 두 경우 모두 대통령 관저는 저명한귀족들명령으로 파괴되었다. 발마세다 관저는 도끼로 부셔 버렸고, 아옌데 관저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용감한 우리 공군이 폭격했다.[515]

옮긴이의 말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534]

 

이처럼 네루다를 끊임없이 노래하게 만든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거의 모든 비평가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듯이, 대자연이다. 산과 숲, 벌판과 꽃, 식물과 동물, 하늘과 땅, 비와 바람이다.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시에서는 물론이고, 끈끈한 고독이 묻어나는 시, 분노와 함성이 메아리치는 시,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의 소박한 정취를 노래한 시에서도 항상 텁텁한 흙냄새가 나고 신선한 초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기에 네루다 또한 이렇게 고백한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534]

이 회고록에서 네루다가 특별히 강조하는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에 대한 사랑이다. 계기는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 네루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에 눈을 뜬 네루다는 한평생 사회적 약자들, 버려진 영혼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하고 투쟁했다.[535]

엘뤼아르와 마찬가지로 네루다에게도 공산주의는 권력이 아니었다. “시와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인본주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536]


 

▣ 내가 저자라면

세상에! 시를 이렇게 누워서 떡 먹듯이 아니 숨 쉬듯이 다룰 수 있다니!
시라하면 추상화 그림을 보듯 누구나 처음에는 선뜻 이해 가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특히 시 쓰기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글 중에서 어디에 쉽게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나 파블로 네루다 그에게 시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시를 쓰겠다고 마음 먹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 같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파블로 네루다의 <> 중에서

시가 어디서 왔는지 자신도 모르게 왔다는 것이 가장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왔기에 평생을 시와 함께 살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늘 시를 썼다. 25살에 영사가 되어 랑군, 인도 캄보디아, 스리랑카, 콜롬보, 싱키포르에 머무를 때도 시를 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외로움을 달랬으며 공산당원이 되어 중국, 러시아를 여행하면서도 시를 썼다. 하물며 탈출의 길에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서도, 조국 첼레에서 추방되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명 망명으로 힘든 세월속에서도 시를 썼다. 그리고 시를 낭송했다.

정치와 시가 어울리는 하단 말인가. 파블로 네루다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시를 이용한 정치를 하였다. 시로 민중을 달래고 시로 시국을 비판하고 시로 통하는 마음을 얻었다.

시의 힘은 강력하다. 그는 어디서나 시를 낭송했다. 그냥 낭송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마음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짧은 문장에.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시심은 시를 듣는 이의 귓속으로 전달되어 마음에 내려 앉는다. 시는 마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싱그러운 나무와 같다. 시는 우리 영혼의 울림이다. 그러하기에 파블로 네루다 시인을 그토록 칭송하지 않았을까.

 

시는 어느 시인에게나 파블로 네루다가 말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다가 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쓰여지는 것이 아닐까.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날아 들어 심금을 울리는 시는 나도 모르게 오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태주 시인이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노래 했듯이 시도 자세히 보아야 더 아름답다. 나에게 시는 그렇다. 자세히 보며 음미하고 행간의 여백과 마침표 하나도 정성 들여 보면 더 아름답다. 읽을 때마다 읊조릴 때 마다 그 시의 색깔이 달라지고 감동의 농도가 달라진다. 마음을 다 주어 어루만지고 어루만져야 더 느껴지는 시도 있다. 무엇보다 시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나의 상황과 생각과 일치점이 찾아질 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부럽다. 파블로 네루다 같은 시인이 되고 싶다. 시를 공기같이 생각하는 시인,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시인. 시로 감동을 주고 민중의 아픔을, 조국의 발전에 앞장 서는 시인, 일도 사랑도 정치도 시를 통해 하는 시인. 시로 역사를 바꾸는 시인. 권력의 힘 앞에서 시라는 무기로 진실을 말하는 시인. 

 

나는 칠레를 꿈꾼다. 그가 나고 자란 칠레의 숲과 테무코, 아름답게 그려낸 항구의 도시 발파라이소를 꿈꾼다. 그는 아름다운 지명에 살기를 좋아했다. 지명의 발음을 음미하면서 살았다. 그는 자신이 죽거든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주길 바랬다. 지명을 말할 때 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유골 위에서 되울리기를 바랬다. 그가 말한 아름다운 지명을 따라 발음할 때 마다 골이 울리는 느낌은 받아 보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은 시집이다. 그의 일생을 기록한 대서사시. 어느 문장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선지 그의 망명생활도, 그 험준한 안데스 산맥의 탈출도 아름답다.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다. 그의 눈과 심상에는 그런 와중에도 아름다운 것, 보여지는 그 이면의 것이 보였으리라.

, 그 삶에, 그의 시 같은 문장에 매료되었다. 작은 책벌레가 되어 글씨 사이 사이를 꼬물거리며 기어 다닌다. 난 책벌레에서 나오기 싫다. 다 갈아 먹을 때까지, 파블로의 목소리가 되어 들릴 때까지 그 속에 파묻혀 있도록 누가 책장을 덮어 주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때 그때 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펴낼 때의 이야기에서는 그 때의 시가, 랑군과 인도 등 영사직을 하며 쓴 <지상의 거처>를 출간할 때의 대목에서는 그때의 시를, 페루 안데스 산맥 꼭대기의 마추픽추를 다녀와서 지은 시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그 시를 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의 시집을 펼쳐 보았지만 말이다.

 

그 아쉬움을 달래며 여기에 그의 시 몇 편을 읊조리며 적어 본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연거푸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한테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잠겨.

 

광대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詩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어놓지 못한 게 뭐 어떠랴.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하다.

내 눈길은 마치 그녀한테 가려는 듯이 그녀를 찾는다.

내 가슴은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를 지나온 우리는 이제 똑같지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허나 나는 얼마

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다른 사람 거. 그녀는 다른 사람 것이 되겠지. 지난날의 키스처럼.

 

그 목소리. 그 빛나는 몸. 그 무한한 두 눈.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허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잊음은 그렇게도 길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으므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어버린 게 못마땅하다.

비록 이게 그녀가 나한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그리고 그게 그녀를 위해 쓰는 내 마지막 시일지라도.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중에서

 

<산책>

내가 사람이라는 게 싫을 때가 있다.

나는 양복점에도 들어가 보고 영화관에도 들어가 본다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 시들고, 뚫고 들어갈 수 없이 되어,

근원의 물과 재 속으로 나아간다.

 

이발관 냄새는 나로 하여금 문득 쉰 소리로 흐느껴 울게 한다.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돌이나 양모처럼 가만히 놓여 있는 것.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더 이상 상점들을 보지 않고, 정원들,

상품, 안경들, 엘리베이터들을 보지 않는 것.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하지만 멋진 일일 거야.

한 송이 자른 백합으로 법원 직원을 놀라게 하고

따귀를 갈겨 수녀를 죽이는 건 말야.

참 근사할 거야.

푸른 칼을 들고 거리를 헤매며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소리를 지르는 건 말야.

 

나는 줄곧 암흑 속에서 뿌리로 있는 걸 바라지 않는다.

불안정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잠으로 몸서리치고,

땅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계속 내려가,

흡수하고 생각하며, 매일 먹는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너무 심한 비참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계속 뿌리나 무덤이기를 원치 않는다,

시체들의 창고인 땅 밑에서 혼자

거의 얼어서, 슬픔으로 죽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

 

그게 바로 월요일이, 내가 가책 받는 얼굴로

오고 있는 걸 볼 때, 가솔린처럼 불타고

상처 입은 바퀴처럼 진행하면서 울부짖고

밤을 향해 가며 뜨거운 피로 가득 찬 자국을 남기는 이유.

 

그리고 그건 나를 어떤 구석으로 몰아 넣고, 어떤 축축한 집으로,

뼈들이 창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병원들로,

식초 냄새 나는 구둣방으로 몰아넣고,

균열처럼 무서운 어떤 거리로 몰아넣는다.

 

유황색 새들, 내가 증오하는 집들 문 위에 걸려 잇는

끔찍한 내장들

커피포트 속에 잊힌 틀니,

수치와 공포 때문에 울었을

거울들,

사방에 우산들, 독액(毒液), 그리고 탯줄.

 

나는 조용히 거닌다, 두 눈을 가지고, 구두와

분노를 지니고, 모든걸 잊어 버리며,

나는 걷는다, 사무실 건물들과 정형외과 의료기구상들 사이로,

그리고 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안뜰들….

속옷, 수건, 셔츠들에서 더러운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거길 지나서.

  - <지상의 거처2>에서

 

 

<한 여자의 육체>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별처럼 벼렸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흘러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 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끊임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내 검은 하상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중에서

 

<마추픽추 산정 Ⅲ>

쓸모 없는 행동들의 곡창, 불쌍한 사건들의 곡창에서 옥수수처럼 인간의 영혼이 탈곡되었다,

참을성의 그 끝까지, 그리고 그걸 넘어서,

그리고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수많은 죽음이 각자에게 왔다:

매일같이 아주 작은 죽음, 먼지, 구더기,

변두리의 진창에서 꺼진 램프, 두꺼운 날개를 단 작은 죽음이

짧은 창처럼 각자를 꿰뚫었고

사람은 빵이나 칼에 묶이고

가축 치는 사람, 항구의 아이, 경작지의 검은 우두머리,

또는 붐비는 거리의 쥐새끼들한테 포위되었다:

 

모두들 낙담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의 죽음을:

그리고 매일의 가혹한 불운을

그들이 손을 떨며 마신 검은 잔 같았다.


 

<망각은 없다(소나타)>

나더러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있느라고 망가진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한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이어지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찌하여 죽은 사람들이?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가구들,

흔히 썩어버린 큰 가축들,

그리고 내 괴로운 마음 얘기부터,

 

서로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들기도,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게 기억이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의 어둠,

우리의 슬픈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여기 제비꽃들, 제비들이 있다,

마음에 쏙 들고

시간고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엽서에 등장하는 것들.

 

하지만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이 쌓이는 껍질을 물어 뜯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갈라놓곤 했던 바다 제방이 참 많고,

배들에 부딪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엉키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 <지상의 거처2>에서

IP *.11.176.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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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깨이
2009.06.16 12:49:56 *.160.33.149

너는 날 때 부터 시인이다.   네 이름을 봐라.  
너는 골새앙바드레에서 태어났고  땅과 나비와 나물과 햇빛이 키워주었다. 
그러니  어디서나 땅과 숲이 있는 곳에서 넌 원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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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6.16 17:29:35 *.12.21.21
선생님~ 그런거죠. 저도 네루다처럼 태어날 때 부터 시인인거 맞죠. 그런 것 맞죠?
저는 선생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어쩜 이리 자기확신이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그 원인이 되는 근본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피식 웃음을 지으며 얻은 이유의 하나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내세우지 않죠.
이제 저는 세상에 자연스러운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소리치며 떨쳐 일어나렵니다.
수업을 할 수록 확신이 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께서는 더 리얼한 원주민 모습 보시게 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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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6:23:09 *.204.150.167
정말 춘희야.... 맨 위의 시 네가 읽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 함 읽어주라...

네루다가 늘 시와 함께 살았듯이 너에게서 늘 흘러나오는 것이, "자연, 아이 그리고 시" 이렇게 세 단어야.
명석선배말처럼 때로는 타인이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동의해.
물론 아직 더 깊이 네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겠지만, 위 세 단어만으로도 진정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너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만들어질 것 같아.

나하고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네루다의 자서전을 가장 시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너의 리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걸... 그대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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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6.16 17:34:36 *.12.21.21
벌써 시 낭송 신청을 받았네.  영광..영광.^^
이번 수업을 정리하며 나도 조금씩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 "자연, 아이 그리고 시" 이런것은 누구나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더욱 생각을 발전 시켜보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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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9:56:18 *.40.227.17
춘희 언니~
음.. 흠.. 지 생각엔.. 시를 떡먹 듯 다룰 이?는 네루다가 아니고.. 긍께.. 바로 춘희 언니이지요..
(네루다는 아마.. 떡? 잘 몬먹을 거여여 ..먹어는 봤을라나?ㅋㅋ)

수희향 언니의 말처럼.. 이제는 언니가 보내주는 문자에서도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니..
환청도 환청도 이거이..이거이..중독이어여..중독..^^

시 없는 춘희 언니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읍네여..
그 약간의 떨림이.. 숲에서 어우러져.. 호소력 있는 중독?의 목소리로 메아리치네여~^^ 
근데.. 언니.. 언니의 시낭독은 실내보다는 역~쉬 숲과.. 나무와.. 푸른 들판에서.. ...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자연과 함께 해야 제맛이 나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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