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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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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6일 11시 31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 박병규 옮김 | 민음사


Ⅰ. 저자에 대하여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파블로 네루다가 인용하며 말한 랭보의 시구


파블로 네루다의 본명은 리카르도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이다. 그의 아버지인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가 네루다의 시 창작을 좋아했다면 우리는 위의 기다란 그의 이름을 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파블로 네루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시를 쓰기 위해 아버지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만한 이름을 찾다가 우연히 한 잡지에서 체코 이름을 발견했고, 그 이름의 주인공이 체코의 서민 시인 얀 네루다였다. 물론 그는 여러 필명을 사용했으나 최종적으로 네루다를 선택했던 것은 "그가 체코의 서민 시인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中에서)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생애


네루다는 1904년 칠레 중부의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 난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고 만다.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쓰고 있다.


네루다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테무코를 떠나 수도인 산티아고로 갔다. 그의 목표는 사범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는 것이었지만, 불문학 공부보다는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네루다는 어깨에 시인의 망토(아버지가 쓰던 철도노동자 망토)를 두르고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차림으로 칠레의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해 10월 <제가 La cancion de la>라는 시로 칠레 학생연맹이 주최한 백일장에서 1등상을 탔으며, 이 연맹이 펴내는 잡지 <클라리다드 Claridad>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3년 갖고 있던 가구와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처녀시집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를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업자를 만나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시집이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성공을 거두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인기를 얻게 된다. 네루다는 그토록 고통스럽게 쓴 이 시들이 새 시대의 연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이 고통스럽게 씌여진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에 이르는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미 20세에 2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던 네루다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불문학 공부를 그만두고 시에만 몰두해 <조물주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토마스 라고와 함께 쓴 <반지 Anillos> <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 El hondero entusiasta>을 발표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공직 생활


1927년 네루다는 미얀마 랭군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받아 5년 동안 아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랭군에서 콜롬보 ․ 실론 ․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 ․ 자바 ․ 싱가포르로 옮겨 다녔다. 네루다가 랭군을 선택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유배시킨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철저한 자기 파괴 과정을 거치며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이런 자기 파괴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했다. 그가 민중 지향의 시인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난해한 시를 쓰는 시인,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이런 자기 파괴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언어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네루다는 자바에서 네델란드 출신이 마리아 하게나르와 첫 결혼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출신의 아내는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캘커타에서 열린 '범힌두인 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행들을 회고하는 책들은 감동적이지만 때로는 가슴 아픈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 그의 생활은 외로웠으며, 버마 처녀 조시 블리스와의 연애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파블로 네루다. 투사가 되다.


그가 스페인 마드리드 영사로 임명되었을 무렵 스페인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페인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파시스트들에 의해 재판도 없이 처형되고, 또 다른 동료 시인 미겔 에르난데스가 내전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1936년 내전의 비극과 파시즘의 광기는 파블로 네루다로 하여금 그간의 나르시시즘적이고 낭만적 정서에 기반한 이기적 시인의 탈을 벗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는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시구 위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은 그 속에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 가슴 속의 스페인 Espana en el corazon〉은 내전 중 공화군 전선에서 출판되었다.


시대적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문학을 위한 문학,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문학보다 더 절박한 현실에 뛰어든다. 그는 1938년 스페인 망명객들을 이끌고 칠레로 돌아왔으나, 정부는 그를 또다시 멕시코로 보낸다.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이때 쓴 시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 당시 멕시코의 벽화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1943년 태평안 연안의 모든 나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배를 타고 칠레로 돌아간다. 1945년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3년 동안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문학에 바쳤던 만큼이나 많은 열정을 바친다. 그러나 칠레에 우익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활동은 끝나게 된다. 공산주의자인 네루다는 다른 좌익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숨겨야 했다.


숨어 살던 이 시기가 네루다에게는 작품을 쓰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쓴 가장 위대한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모든 이를 위한 노래 Canto general>가 탄생했다. 그는 1948년 2월 칠레를 떠나 말을 타고 안데스 산맥 남부를 가로질러 4월에 파리에서 열린 평화지지자회의에 참가했다.


또 1949년에는 알렉산드르 푸슈킨 탄생 15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하게 된다. 그 뒤 유럽의 다른 지역을 돌아보고 다시 멕시코를 방문했다. 1952년 좌익작가와 정치인에 대한 검거령이 철회되자 칠레로 돌아왔으며 칠레 출신 마틸데 우루티아와 3번째로 결혼하게 된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지만,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했으며,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배의 선수상과 그 밖의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나 명소가 되었다.


파블로 네루다, 칠레 민중의 불꽃


1969년 12월 칠레의 진보 세력들은 대중운동연합인 MAPU를 비롯해 사회당, 공산당, 진보당, 사민당이 공동전선을 형성해 1970년 선거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때 공산당 후보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다. 그러나 네루다는 곧 이를 철회하고, 살바도르 아옌데를 인민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후보 단일화를 이룩한다. 이전까지 노선 대립과 이념 갈등으로 통합되지 않던 진보세력은 인민연합의 기치 아래 하나로 뭉쳤고 결과적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는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공중 폭격하는 등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시키고 만다. 이 사건은 네루다가 노벨 문학상(1971년)을 받은지 불과 2년 뒤의 일이었다. 아옌데 대통령이 끝까지 대통령궁을 사수하다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네루다는 낙담하여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파블로 네루다


며칠 후 침대에 누운 채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구술하던 중 창 너머로 무장한 군인들이 자신의 바닷가 집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병사들이 가택을 수색하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부인이 받아 적던 것을 급히 감추자마자 장교 하나가 침실로 들어와 집안 수색하겠다고 통고했다. 네루다는 불쑥 장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 장교는 깜짝 놀라며 권총에 손을 댔다. "그게 뭡니까?" 네루다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시(詩)라네."


파블로 네루다 - 영원한 청춘의 시인


네루다는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꾸었고, 그런 낙원을 일구기 위해 노력했던 시인이다. 그러면서도 시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은 칠흑 같은 암흑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그의 시는 그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 되었고,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아래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장례식에 하나둘 모여들어 수많은 군중을 이루었고, 그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군중집회가 되었다. 누군가 앞장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고, 처음의 작은 합창은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려 퍼졌다. 지금도 그가 말년에 머물던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의 바닷가 집에는 추모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시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끊임없이 타올랐고, 칠레 국민들은 결국 군부 독재를 마감시킬 수 있었다.


『현실주의자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리고 오직 현실주의적이기만 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단지 비현실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슬픈 일이다. 모든 것이 현실적인 시인은 모든 얼간이들까지 다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지독히 슬픈 일이다. 단순명료한 규칙이나 신이나 악마가 처방한 성분도 없지만, 이 두 중요한 신사들은 시의 영역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한 번은 첫 번째 신사가 이기고, 다음에는 두 번째 신사가 이기지만 시 자체는 결코 지지 않는다. - 파블로 네루다 <추억> 중에서』



Ⅱ, 내 맘을 무찔러드는 글귀


1. 시골소년


유년 시절 애기를 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남반구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가 쏟아진다. 마치 케이프혼이라는 하늘에서 개척지라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  p.17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p.33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p.56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의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p.56


그러나 주변을 밝게 만들고 마치 숨겨 둔 나비를 날려 보내듯이 가는 곳마다 아름다움을 날려 보내던 로하스 히메네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회가 새롭다.  p.63


아무튼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p.72


첫 시집!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깍은 목각품이다.  p.77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p.78


우주의 위대한 신비와 인간의 가능성을 모두 아우르는 그런 서사시 말이다.  p.79


영감을 믿지 말아야 했다. 이성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좁은 길로 나아가야 했다. 겸손을 배워양 했다. 찢어 버린 원고도 많았고 다시 써야 하는 원고도 많았다.  p.80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p.83


3. 세계의 길


스무 살 남짓한 시인이자 화가인 우리들은 어떻게든 발산시키고 폭발시켜야 할 객기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p.87


“지금 당장 저 여자를 떼어 버리지 못하면 우리 일행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야.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바닥 없는 성의 성전에서 파멸하고 말거야.”  p.110


4. 빛나는 고독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입는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p.139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  p.139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p.141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  p.149


나를 휘감는 그 소나타의 영원한 슬픔, 그 장려한 우수에 몸을 내맡겼다.  p.151


나무 밑에서는 모든 것이 건강하고 시원했으며 생명체는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숨쉬고 있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치솟아 있었다.

높은 나무에서 쏟아지는 신선한 기운이 코로 스며들었다. 이 황제 같은 나무가 나를 가엾게 여긴 모양이다. 그렇기에 신선한 기운을 내려 보내 내 원기를 회복시켜 준 것이리라. p.162


5. 가슴속의 스페인


"초록색 말도 있나? 붉은 말이라고 해야지"

나는 색깔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로 알베르타와 말다툼을 벌이지는 않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지 알베르티와 언쟁을 한 적은 없었다. 세상은 무지개 색깔처럼 다양한 말(馬)과 시인을 받아들이고도 남으니까. p.185


로르카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우아한 기품과 천재성, 뜨거운 가슴과 맑은 폭포수가 그렇게 완벽하게 결합된 시인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로르카는 사방에 빛을 뿌리는 요정이었다. 가슴에 모아 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  p.186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p.188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p.209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  p.210


순수한 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베르티는 세계적인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시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다.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애정,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p.212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p.214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라그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암울한 그 시절 나는 혁명과 같은 지각 변동은 두려워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독소가 숨쉬는 공기와 먹는 빵에 스며들어도 수수방관하는 유럽인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익숙해졌다.  p.227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을 제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내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공허뿐.  p.228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강렬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을 뿐이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았으니 텅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비참한 모습의 공장을 둘러보았으나 지붕 밑에서,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p.228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인간 종족이라는 나무에 지성이라는 수액이 타고 올라감으로써 다양한 색깔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  p.251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p.254


8. 암담한 조국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p.259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p.259


지금까지 수많은 상(償)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이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p.263


여러 나라 말로 번연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고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지,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p.263


문든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기자 양반, 이렇게 쓰세요. 나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다른 칠레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이름 또한 파블로 네루다라고요."  p.286


9. 망명의 시작과 끝


“당신은 우리 모두를 생각하고 노래한 것입니다. 이제 그 점은 확실하므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 모두는 언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p.297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명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p.300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몽둥이로 패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하라며 꽃다발을 건네준다.  p.303


10. 여행과 귀환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성당에 들어갈 수 있고, 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p.341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p.341


정밀한 기계가 항성의 맥동 현상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마치 우주의 심전도 같았다. 이러한 그래픽을 통해 항성은, 비록 지상의 시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제각기 황홀하게 떨리는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361


11. 시는 직업이다.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p.375


나는 천천히 방을 나왔다. 건달은 좀 전의 그 자세로 여전히 시를 외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핏속에서 불타오른 생명으로 우리 삶을 묶어야만 할 것이다." 건달은 시에서 패배한 것이다.  p.384


우리 시인들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 우리가 민중과 강고한 유대를 맺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때만. p.391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p.391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죽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사한 해법도 없다.  p.394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p.396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지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p.406


삶과 땅이 우리를 만나게 했다.  p.407


웰뤼아르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이란 동반자가 필요해. 자질구레한 인생사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말이야.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 숨통을 조르는 것 같아."

p.411


나를 초현실주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리얼리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시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들 반쯤은 옳고 반쯤은 틀렸다.  p.434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나에게는 리얼리즘이 맞지 않으며, 적어도 시를 논할 경우에는 리얼리즘을 혐오한다. 그리고 시가 리얼리즘 이상이거나 리얼리즘 이하일 필요도 없으나 반리얼리즘에 될 수는 있다. 내가 말하는 반리얼리즘이란 모든 합리성과 모든 비합리성, 다시 말해서 모든 시를 내포한다.  p.435


창조의 영역을 이처럼 반반으로 나누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심장은 반 토막 나 버려 더 이상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p.435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다.  p.474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월트 휘트먼은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p.495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p.496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의 삶을 기술한 회고록이다. 이야기는 평온한 유년기로부터 시작해서, 보헤미안 생활을 하던 청년 시절과 동남아시아에서 보낸 영사 시절을 거쳐,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념적 갈등, 칠레의 1970년대 정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굽이쳐 가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낭만적인 연애 시인에서 위대한 민중 시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 중에서도 자신이 특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 사건, 사랑, 그리고 창작과 비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네루다는 젊은 시절 연애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낭만적인 보헤미안 청년에서 민중시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세 번의 결혼, 외교관 생활과 여행, 도피와 정치 망명을 겪었다. 이 책에서는 네루다라는 한 시인의 걸어온 인생을 전해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인물을 회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네루다라는 창을 통해 20세기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 책은 평온한 유년기로부터 시작하여 보헤미안 생활을 하던 청년 시절과 동남아시아에서 보낸 영사 시절을 거쳐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념적 갈등, 칠레의 1970년대 정치 상황 등을 그리고 있다. 또한 군데군데 시의 창작과 비평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가르시아 로르카, 피카소, 에렌부르크, 네루, 엘뤼아르, 카르트로, 체 게바라, 아옌데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단상을 풍부한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준다.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원동력이었다. “리얼리스트가 죽은 시인은 죽은 시인,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라고 외치던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과연 시란 무엇인가, 시를 넘어 소설, 그림 등 문학예술이 주는 시대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시와 사랑과 혁명의 삼중주, 파블로 네루다의 삶은 한 편의 소나타였다. 짙은 에로스와 격정의 파토스가 교차되는 1악장, 깊은 고독과 침잠의 시기는 2악장, 그리고 민중과 교감하며 피날레를 향하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을 하나의 언어에 아우르는 대단원의 마무리이다.』- 국민일보


『격정적인 사랑 노래에서 전율스러운 투쟁까지, 라틴 우림이 선물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네루다는 세상을 시로 빚었다.』- 동아일보



IP *.10.10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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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6.16 18:04:53 *.12.21.21
홍영 오라버니의 격정적인 글과 전율스러운 열정을 불 사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계절인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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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9:38:18 *.40.227.17
홍영 오라버니~

맞아여!  정야 언니의 말이..
이제는 오라버니의 열정?을 화~악 (에고에고.. ).. 꽃피울? 때가 되었다는 거이지요..ㅎㅎㅎ?

근데.. 자꾸만.. 오라버니의 나비 네꾸다이 생각이..ㅎㅎ 앨범 자켓 생각이.. ㅍㅎ
대체 몇년도에 찍으신 거래여?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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