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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01시 59분 등록




북 리뷰 12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 길은 내 안에 있다.  김현국 역. 태일출판사. 2003

원제: Autobiography Of a Spiritually Inncorrect Mystic. 2000



***저자에 대하여


오쇼 코뮨 인터내셔널의 명상 리조트는 봄베이 동남쪽 100마일 정도에 위치한 인도, 푸나에 있다. 그의 죽음 몇 달 전에 지시한 그의 비전에 따라 명상과 자기발견을 위한 고급 리조트로 성장했다. 명상과 워크샵을 위한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들, 온천, 레크리에이션과 운동을 위한 복합건물, 그리고 새로운 명상 피라밋 홀 등의 시설 확장 계획의 많은 부분에  오쇼 라즈니쉬가 직접 간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독립적인 정신을 지녀서,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지식이나 신념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체험하고 익혀서 자기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으로 동양의 정신을 현대에 맞게 되살려 내었고 , 그 지식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문명에 예리한 비판을 가했다.


서구의 기성사회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강의는 동서양의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고 있으며, 전세계에 수천만의 제자와 추종자를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의 일생은 스스로 불꽃으로 피어나 충만한 삶을 살아낸 붓다였다.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명상의 정수를 가르쳤으며, 형식이나 가면, 억압과 위선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꽃피우도록 앞에서 끌어준 훌륭한 명상가이며, 영성가이며, 선생이었다.


그는 말한다. “ 나의 메시지는 교의가 아니며, 철학도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일종의 연금술이며 변형의 과학이다. 따라서 나의 메시지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자들, 용기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깨달음은 불현듯 서까래에서 별이 떨어지듯 온다.

춤을 추어라. 서까래에서 별이 떨어질 때까지!

춤을 추고, 춤을 추고, 춤을 추어라. 그대가 떨어질 때까지!


스승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다. 그것을 가르칠 방법이 없다. 그것은 경전을 넘어선 , 말을 넘어선 전이이다. 그것은 전이다. 그것은 그대 안의 에너지를 자극하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일종의 동시성이다.


그대는 커다란 사랑, 커다란 신뢰, 열린 가슴을 가지고 스승에게 다가가야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배추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다. 배추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스승은 그대가 그대 자신의 경험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스승은 그대의 의사이다. 일반적인 병이 아닌 그대의 존재적인 갈등을 치유하는 의사이다.


현자는 그대가 통찰력을 가짐으로써 그대 자신의 등불을 가지기만을 바란다.


그는 농담을 사랑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해 농담을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의 사람들에 대한 농담을 한다.

그는 126평방 마일의 라즈니쉬푸람에서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있다가 하루에 딱 두 번만 밖에 나온다. 아침에는 산야신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그리고 저녁에는 기자들에게 인터뷰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하루 일과를 통해서 그를 이해 해보자.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그를 돌봐주는 사람이 깨워줘야 일어난다.

차를 한잔 마신다. 물과 약간의 찻잎이 있을 뿐이다.

한시간 반 동안 목욕과 샤워를 즐긴다.

강당으로 가서 강의를 한다.

11시에 점심을 먹고 다시 잠을 잔다.

2시에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한시간 동안 차를 몰고 돌아온다.

그후 한시간 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단단히 침묵하며 풀들이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 둔다. 그리고나서 목욕을 한다.

목욕 후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식사 후에 언론사와 인터뷰하고  9시-9시30분에 방으로 돌아 온다.
개인비서가 읽어주는 편지와 기사들을 듣는다.

11시쯤 다시 침대로 간다.


다음은 그의 생애의 시간표이다.


1931년(탄생) - 오쇼 라즈니쉬는 1931년 12월 11일 인도의 Madhya Pradesh에서 자이나교도인 직물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7살이 될 때까지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절대적 자유를 허락해주고, 삶의 진리에 대한 그의 조숙하고 강렬한 탐구를 전면적으로 지원해 준다.


1938년(7세)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인구 2만의 읍인 Gadawara로 가서 부모와 함께 사는데 그의 할머니도 같은 마을로 이사를 와 스스로 손자의 제자임을 선언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가장 관대한 친구가 되어준다.


1946년 ( 15세) - 14살 때 오쇼는 처음으로 사토리를 경험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명상 실험은 깊어져 갔으며, 영적 탐구의 강렬함은 육체적 건강을 손상시킬 정도여서 부모나 친구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1952년 ( 21세 대학생) - 3월 21일, 21살의 오쇼는 인간 의식의 최고 정점인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외적 전기는 끝났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삶의 내적 규율을 갖고 일체성이라는 무아의 경지에서 살면서 외면적으로는 Saugar 대학교에서 학문을 계속하여 1956년 졸업할 때에는 철학 부문의 최고상을 받는다. 그는 인도 토론대회의 우승자로 졸업반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다.


1957년 ( 26세) - 오쇼는 Raipur시의 Sanskrit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1년 후 그는 」Jabalpur 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된다. 1966년 그는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버린다. 60년대를 통해 그는 '아차리야(교사) 라즈니쉬 '로서 인도 전역을 여행하고, 가는 곳마다 기성 체제 측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특권계급의 위선을 폭로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대 권리-자기 자신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그들의 기도를 폭로한다. 그는 수만 명의 청중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가슴속 깊이 감명을 준다.


1968년( 37세 봄베이) - 그는 봄베이에 정착해 살며 가르침을 계속한다. 그는 주로 고원의 피서지에서 정기적으로 명상캠프 '를 열어 혁명적인 '다이나믹 명상법 '을 도입하는데, 그것은 먼저 카타르시스를 허용함으로써 상념의 정지를 돕는 기법이었다. 1970년부터 그는 애정과 개인적 지도로써 사람들을 자기탐구와 명상으로 들어서는 길인 Neo-Sannyas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그는 축복 받은 자라는 의미인 '바그완(Bhagwan) '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70년 ( 39세) - 서양으로부터 최초의 구도자들이 도착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이 때부터 오쇼의 명성은 유럽,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까지 퍼지기 시작한다. 매달 명상캠프가 열렸고, 1974년에는 푸나(Poona)에 새로운 장소가 물색되어 그 곳에서 그의 가르침은 더 강렬해진다.


1968년 ( 37세 뿌나) - 오쇼의 깨달음을 기리는 21번째 기념일에 뿌나에서 아쉬람이 열린다. 오쇼의 영향력은 이제 세계적인 것이 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건강은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점점 자신의 방에 칩거하게 되었고, 아침에 강의를 할 때와 저녁에 구도자들의 입문을 받아들이거나 조언을 줄 때 두 번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된다.


동양의 명상에 대한 통찰과 서양 정신요법의 결합에 기초한 치료집단이 창설된다. 2년 만에 아쉬람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장과 세라피(therapy)의 센터 '라는 명성을 얻는다. 오쇼의 강의는 세계와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을 포괄하고 있었으며 서양의 과학이나 사상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 언사의 명증성, 논의의 깊이는 오랜 동서양간의 단절을 해소시킨다.


70년대 후반까지, 뿌나에 있는 오쇼의 아쉬람이 현대의 진리 탐구자들의 메카였다. 열렬한 전통적 힌두교도인 인도 수상 Moraji Desai는 아쉬람을 인도의 변방으로 옮기려 하는 오쇼 제자들의 모든 시도를 방해한다. 그곳에서는 오쇼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명상, 사랑, 창조성, 웃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를 창설하기 위한 실험이 가능했을 것이다.


1980년 ( 49세) - 강의 중에 오쇼를 암살하려는 기도가 어떤 전통적 힌두교파의 일원에 의해 일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공적인 종교, 교회들은 그를 비난하지만 그때까지 오쇼는 전 세계에 25만 명이 넘는 제자를 갖고 있었다.


1981년 ( 50세-새로운 국면, 푸람, 미국) - 5월 1일 오쇼는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됨에 따라 그의 육체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슴과 가슴을 통한 침묵의 교감 '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긴급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의 미국 제자들은 센트랄 오레곤의 불모지에 있는 6만 4천 에이커의 목장을 구입하여 오쇼를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한다. 그리고 동물들이 풀을 너무 많이 뜯어먹어서 고갈되어 버린 황무지를 개간하여 5000명이 살 수 있는 녹색의 오아시스로 바꾸는 모범적인 농업공동체를 급성장 시킨다.


해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오쇼의 친구들을 위해 여름 축제가 열리고, 2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라즈니쉬 푸람이라는 이 새 도시에서 숙박하며 음식을 제공받는다. 오레곤 공동체의 급성장과 함께 주요 서방 국가들과 일본에서도 대규모 공동체가 형성되어 독자적 사업으로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오쇼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미국 정부에 영주권을 신청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공적으로 침묵할 것을 서약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동시에 새로운 도시는 오레곤 주정부와 다수파 기독교인들의 가중되는 법률적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원래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했던 '오레곤주 토지 이용법 '이, 불모지를 개간하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라즈니쉬 푸람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요한 무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시도야말로 전 세계를 위한 하나의 생태학적 모델이 되고도 남을만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84년 ( 53세) - 10월, 오쇼는 자신의 저택에서 소수 그룹을 상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985년 ( 54세) - 7월, 그는 라즈니쉬 만디르에서 매일 아침 수천 명의 구도자들에게 공개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9월 14일, 오쇼의 개인 비서와 공동체 관리를 담당하던 몇 명의 구성원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 비합법적인 행위가 밝혀진다. 오쇼는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미 당국자들을 시로 불러 들였으나 당국자들은 이 기회를 공동체에 반대하는 싸움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한다.


10월 29일, 오쇼는 노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샬롯에서 영장 없이 체포된다. 보석심문 때 그는 묶여 있었고, 그의 법정 출두를 위해 마련된 오레곤으로의 귀로는 통상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거리인데도 8일간이나 걸리게 된다. 수일 동안 오쇼는 행방불명이 된다.


나중에 그는 오클라호마주 연방형무소에서 '데이비드 와싱톤 '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염성 헤르페스를 앓고 있는 죄수와 함께 격리 감방에 수용되어 있었음을 밝힌다. 12일 동안 감금당하고 결박당하는 수난을 겪은 후 석방되기 바로 1시간 전, 오쇼가 수감되어 있던 오레곤주에서 보안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던 포틀랜드 감옥에서 폭탄이 발견된다.


오쇼 이외의 죄수들은 모두 대피했는데도 오쇼는 1시간 동안이나 그 안에 갇혀 있게 된다. 11월 중순, 오쇼의 변호사들은 미 사법제도의 손안에 놓인 그의 생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고발된 34개의 죄목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출입국 관리법 위반 ' 등의 두 항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도록 그를 설득한다.


그러나 오쇼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알프레드 항변 '에 들어간다. 그 항변은 미국 사법제도의 특이한 것으로, 그에 의해 무죄를 주장함과 동시에 그 죄목에 대한 논쟁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는 40만 달러의 벌금을 물 것, 즉시 미국을 떠날 것,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을 명령받는다. 그는 자가용 제트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갔고, 거기에서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기자회견에서 미 연방 검사 찰스 터너는 '오쇼의 비서에 대해 이루어진 고발이 왜 오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며 세 가지 요점을 열거하는데, 정부의 첫 번째 관심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당국자들은 오쇼의 추방이 그것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째, 그들은 오쇼를 순교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셋째, 오쇼가 어떠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고 실토한다.


1985년 ( 54세-세계여행) - 12월, 오쇼의 비서와 동료, 의사는 인도에서 떠날 것을 명령받았고, 그들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네팔의 카트만두로 떠나 그곳에서 강의를 재개한다.


1986년 ( 55세) - 2월, 오쇼는 30일간의 관광 비자로 그리이스에 간다. 그는 그 곳에서 한 그리스인 영화 제작자의 집에 머물며 매일 2회씩 강의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들고, 그리이스 정교의 성직자들은 그를 국외로 추방하지 않으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정부를 협박한다.


3월 5일 경찰이 별장에 난입하여 영장도 없이 오쇼를 체포하고, 곧이어 아테네로 이송한다. 아테네에서는 겨우 2만 5천 달러의 금액을 내고 그를 인도행 배에 태우지 못하도록 당국을 움직일 수 있었다. 3월 6일, 오쇼는 자가용 제트기로 스위스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무장 경관들에 의해 7일간의 비자를 취소 당한다.


그는 '미합중국 출입국 관리법 위반 '을 이유로 '탐탁지 않은 인물 '로 선언되어 스위스를 떠나도록 명령받는다. 그는 스웨덴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라이플 총으로 무장한 경관들에 의해 포위되어 '국가의 안전상 위험하다 '는 이유로 경고를 받고 즉각 출국하도록 명령받는다.


그는 영국으로 간다. 이번에는 법률상의 이유로 비행기 조종사가 8시간의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오쇼는 일등급 통과여객용 라운지에서 대기하기를 윈했지만 허용되지 않고 호텔에서 1박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와 그의 일행은 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작고 더러운 방에 갇히게 된다.


3월 7일, 오쇼와 그 일행은 아일랜드로 간다. 그 곳에서 그들은 관광비자를 받고 리메릭 부근에 있는 호텔로 갔으나 다음 날 아침 경찰이 와서 그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했다. 그때까지도 캐나다 정부에서는 오쇼의 비행기가 예정지인 카리브해의 안티구아로 가는 도중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캐나다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료 보급의 권리에 대한 이 이해할 수 없는 거부는, 오쇼가 비행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보증을 했던 런던 로이드 보험 협회의 보증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행된 것이었다. 당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공표는 일체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른 채비가 마련될 때까지 아일랜드에 체재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대기 중에 안티구아는 오쇼의 입국 허가를 철회한다. 홀랜드도 타진했지만 그들 역시 오쇼를 거절한다. 독일은 이미 오쇼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저지법 '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관광비자 신청의 심리가 연기된 상태였고, 10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루고 있었다.


3월 19일, 뜻밖에 우루과이에서 초청장이 발급된다. 3월 19일 오쇼와 그 동반자들은 세네갈의 다카르를 경유하여 몬테비데오로 날아갔고, 우루과이는 영주 가능성까지 밝힌다. 우루과이에서 모든 나라들이 그의 입국 허가를 거부한 이유가 밝혀진다.


오쇼 일행이 '밀수, 마약취급, 매춘 '에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인터폴의 루머에 대해 언급한 '외교상의 비밀정보(이 모든 것은 NATO의 정보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에 관한 텔렉스가 미리 입국 예정국에 도착하여 경찰이 경계태세를 갖출 시간적 여유를 주었던 것이다.


우루과이도 곧 다른 나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 5월 14일, 우루과이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오쇼가 우루과이의 영주권을 얻었다고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그날 밤 우루과이 대통령 상귀네티는 오쇼가 우루과이에 체재한다면 현재의 미국 차관 600억 달러는 회수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차관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하는 미국 정부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6월 18일 오쇼는 우루과이를 떠나야 했고, 다음날 워싱턴에서는 레이건이 우루과이에게 1억 5천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다. 6월 19일, 자마이카는 오쇼에게 10일간의 비자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마자 미해군의 제트기가 오쇼의 자가용 제트기 곁에 착륙하더니 두 사람의 요원이 접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쇼와 그 일행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마드리드를 경유하여 리스본으로 날아갔고, 잠시 동안 발견되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주일 후 경관들이 그가 쉬고있는 별장을 포위했으며, 오쇼는 다음날 인도로 돌아갈 것을 결정한다.


이렇게 모두 21개의 국가들이 그를 추방하거나 입국을 거절했다. 7월 29일, 오쇼는 인도의 봄베이에 도착해 그곳에서 인도 친구의 개인적인 손님으로 6개월간 체재한다. 그는 그 친구의 집에 은둔하며 매일 강의를 재개한다.


1987년 ( 56세) - 1월 4일, 오쇼는 1970년대의 대부분을 보냈던 뿌나 아쉬람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뿌나의 경찰서장은 '시의 평화를 어지럽힐 염려가 있는 문제 인물 '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 명령은 같은 날 봄베이의 고등재판소에 의해 무효화된다.


그러자 1980년 5월 공개 강의 중에 칼을 던져 오쇼를 살해하려 했던 그 힌두교 광신자들이 오쇼를 뿌나에서 추방하지 않는다면 격투기로 훈련된 200명의 기습부대로 아쉬람을 침입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8월, 소위 '자유세계의 정부 '들이 연금 상태로 오쇼를 고립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제자들은 다시 한번 스승과 함께 하기 위해 뿌나로 향한다.


1990년 ( 59세) - 1월, 오쇼는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인도의 뿌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출처: http://moksha.ohpy.com/




***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길은 내 안에 있다.


그렇다. 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시작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어떠한 경계도 모르는,

오직 영혼의 자유만을,

오직 그대 존재의 침묵만을,

오직 그대 잠재력의 성장만을,

그대 밖의 신이 아닌 오직 그대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신성(神性)만을,

그대 안에 존재하는 그 신성의 경험만을 아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성(religiousness)의 시작이다.


편집자 서문


9. 그는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신문기사 모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시간속의 사건들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사건들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하나의 정황을 파악하고 싶어 한다.


12.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누구냐'이다.


그들이 죽을 때 어떤 이해를 지니고 있었느냐보다는 그들이 삶에서 어떤 소유물을 얻었느냐로 그들을 정의하려 한다.


13. 결국 오쇼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에만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문 


14. 그대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사실(fact)과 진실(truth)의 차이이다.

 역사학은 진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진실은 물질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직 의식의 사건들을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확실히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목한다. 인간은 시간 너머에서, 공간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에 다른 말로 하면 마음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그 만큼 통찰력을 갖추지 못했다.


Part 1 : 평범한 인간 전설- 뒤에 숨은 역사


황금빛 어린 시절의 일별들


19.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은 순수한 개인성을 필요로 한다. 영성은 어떠한 종류의 의존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자유를 창조해 낸다.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


20. 나에게 있어 영성은 단지 자신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를 대신하여 이 일을 하도록 하지 않았다.


1931-1939:

인도, 마드야 프라데시주, 쿠츠와다,


25. 평생동안 나는 그 누구도 친구로 알지 못했다.

그 어린 시절 동안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그래서 나는 그 외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하나의 즐거움이며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천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축복으로 드러났다.


27. 침묵은 고유의 진동을 가지고 있다. 침묵은 전염성이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강요되지 않은 침묵은.... 그의 행복은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방에 커다란 물결들을 만들어낸다.


28. 이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31. 아버지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거칠어요. 그리고 계속 거친 아이로 남아 있을 거예요.” 어쨌든 나는 문명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35. 가르치지 않는 것, 그것이 대단한 점이다. 무력한 아이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유혹 당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가장 큰 유혹이라 부른다. 그대가 어떤 식으로든 그대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그대는 가르치기 시작한다.


40. 그대는 스승과 선생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다. 스승은 그 스스로 알았고 자신이 안 것을 나누어 준다. 선생은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41. ‘안다고요?  뭘 알지요? 앎의 대상이 무엇이죠?  앎의 대상은 없다. 알아야 할 것은 없다. 오직 아는 자가 있을 뿐이다.


51. 지식은 그대를 매우 교활하게 만든다. 나는 교활하지 않았다. 나는 교육받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물을 수 있는 질문을 했을 뿐이다. 교육은 인간이 불쌍한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범죄다.


53. 당신이 타고난 말썽꾸러기라고 생각하는 그 아이는 씨앗이예요. 거기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54. 나는 조르바 붓다다. 나는 동양과 서양, 높은 것과 낮은 것,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신과 악마를 나누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나누어졌던 것을 다시 합친다.


54. 씨앗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나무와 그 꽃의 피어남 그리고 어쩌면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달까지도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종류의 자기 학대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 나는 모든 인간이 한껏 살기를 바란다. 최소한은 나의 길이 아니다. 최대한도로 살아라.


55. 나는 삶을 길고 긴 고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56. 바꾸기에 너무 늦는 법은 없어요. 당신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꾸세요. “언제 스승을 바꿀거죠?”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요. “바꾼다, 바꾼다” 말만 하지 마세요. 바꾸든지 바꾸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분명하게 하세요.


58. 할아버지는 코끼리의 양쪽에 얹은 두 개의 큰 자루에 은화를 가득 채웠고 나는 은화를 뿌리며 마을을 돌았다. 그것이 그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방식이었다.


59. 헤어짐은 그 나름의 시(詩)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단지 그 헤어짐의 언어를 배워야 할 뿐이다. 그리고 한껏 그 깊이를 체험해야 한다. 그때 슬픔 그 자체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나온다.


60.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안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뿐이다.


62. 사랑에 빠지는 데는 ‘왜’가 없다. 나는 그저 그를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고 내안에서 신뢰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64. 그녀는 지금의 내가 있도록 모든 방법으로 나를 도와 주었다.


“걱정마라, 얘야. 대학에 가거라. 가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라.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너 자신이 되는 것을 돕기 위해서러면 나는 뭐든지 팔 것이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는 묻지 않겠다.”


반역적인 영혼

67.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나는 오직 한가지 놀이만을 사랑했다. 그것은 논쟁이었다. 모든 것들에 대한 논쟁이었다.


나의 관심은 언제나 똑 같았다. 궁극의 진리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1931-1951:

인도, 마드야 프라데쉬, 가다와라


68.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있어 죽음과의 첫 조우였다.

나는 죽음을 보았다. 그리고 죽지않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대가 정말 사랑하단 어떤 사람이 죽지 않고서는 그대는 정말로 죽음을 만날 수 없다. 이 말에 밑줄을 그어라.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속에서만 죽음을 만날 수 있다.


69. 사랑 없이는,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로 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통하는 열쇠를 건네준다.


 자유가 함께 하는 사랑, 만약 그대가 그것을 갖는다면 그대는 왕이나 여왕이다. 자유가 함께 하는 사랑, 그것은 진정한 신의 왕국이다. 사랑은 그대에게 땅으로 통하는 뿌리를 주며 자유는 그대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76.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자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겠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렇다면 방랑자라고 해도 존경받을 만해요. 존경은 직업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존경은 그 사람의 행동이 힘과 명료함, 지성으로부터 나오고 있느냐와 관계가 있어요.


86. “싫어요. 저는 이 문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이것은 학교가 아니라 감옥이예요.” 참 이상하다. 인도에서는 감옥과 학교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모두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93. "교육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저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어요. 아무도 이유 없이 저를 괴롭힐 수 없어요. 저에게 교육법전을 보여주세요. 저는 읽을 수가 없으니까 모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데도 창 밖을 내다보는 게 법에 어긋나는지 알려주세요."


100. 그대가 흐르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과 사랑에 빠지게 될 때, 그대는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은 아스팔트길,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들과 함께 산다. 이러한 것들은 명사들이다. 기억하라. 이러한 것들은 동사들이 아니다.


인간은 명사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창조해냈고 스스로 만든 세상 속에 갇혀버렸다. 인간은 나무들의 세상을, 강들의 세상을, 산과 별의 세상을 잊었다. 그들은 오직 동사만을 안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신은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115. 몇 번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좋다. 몇 번쯤 길을 잃는 것은 좋다.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대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돌아오라. 삶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119. 선생님의 과목이 아니면 어떠한 조언도 저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저의 삶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저는 기꺼이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그것만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123. 만약 어떤 신이 있어서 언젠가 내가 그를 만난다면 그는 나에게 화를 낼 수 없어. 오히려 내가 그에게 화를 낼 것이야 '왜 당신은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소?'라고, 나는 두렵지 않다.


125. "저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단지 볼 뿐이에요. 그리고 선택의 문제는 없어요. 저는 제가 뭘 공부하게 될지 알아요. 그것은 어떤 직업이 더 유리할지 저울질해볼 문제가 아니에요. 거지가 될지라도 해도 저는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127. 괜찮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 모든 조언들을 결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저는 결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었든지, 저는 누가 뭐래도 그것을 했을 거예요.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지 마세요. 저는 결코 여러분들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어요. 그 말들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저는 제 속에 하나의 결정을,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불멸을 찾아서


129. 만약 내가 그대의 죽음만 볼 수 있다면 나는 그대의 모든 전기를 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한순간 속에 그대의 전 생애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순간 속에서 마치 섬광처럼 그대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130. 마치 어떤 아름다운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렇게 큰소리로 웃고 싶은 느낌은 느껴보지 못했다. “뭔가가 일어났어요. 그 노인에게서 뭔가가 풀려나왔고 그것은 엄청나게 아름다웠어요. 그는 지복스런 죽음을 맞았어요.”


137. 일곱 살의 나이에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나는 깊은 죽음의 경험을 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죽음이 아닌 나의 외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유치했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흉내냈다. 나는 3일 동안 먹지도 않았고, 마시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먹는 것은 하나의 배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일부였다. 나는 그와 함께, 그의 사랑과 함께 자라났다.

138. 나는 살아 남았다. 그러나 그 3일은 하나의 죽음경험이 되었다. 어떤 점에서는 나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게 되었다.


140.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은 없다. 만약 그대가 삶에 집착한다면 그때는 모든 두려움이 거기 있다.


내가 파리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순간, 짜증은 사라졌다. 파리들은 여전히 몸 위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파리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몸 위를 움직이고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즉시 하나의 거리가 생겼다.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이면 하나의 거리가 만들어 진다. 삶은 모든 걱정과 초조함, 그 모든 것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간다. 어떤 점에서는 나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 죽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그대가 완전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면 그대는 죽음을 알게 된다.



깨달음: 과거와의 단절


147. 나는 그들이 나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대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에 빠진다. 세상이 그대를 그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대 쪽에서도 아무런 기대가 없다.


159. 마음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성을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적인 일들에 질리게 되면 마음은 깨달음을, 해탈을, 니르바나를, 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똑같은 욕망이 돌아온 것뿐이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164. 1953년 3월 21일이 되기 바로 7일 전, 나는 스스로에 대한 노력을 그만 두었다.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165. 구한다는 것은 항상 먼곳을 향한 것이다. 구하는 것은 항상 거리가 잇는 대상을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에 있지 않았다.


 에고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계속 욕망의 페달을 밟기 때문이며, 계속 무언가를 얻으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이며, 계속 자기 자리보다 앞을 향해 도약하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의 자리보다 앞으로 도약하는 것, 미래로 도약하는 것, 내일로 도약하는 것, 이러한 것이 바로 에고의 현상이다. 비존재 속으로의 도약은 에고를 만들어 낸다. 비존재에서 나오는 것은 신기루와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168. 그날 욕망이 멎었다. 그날 나는 그것을 보았고 그것이 허망한 일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력했고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여러 생을 거치면서 노력해왔지만 일어나지 않고 있었던 그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대의 희망없음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 그대의 욕망없음 속에 그대의 유일한 충족이 있다. 그대의 엄청난 무력함 속에 불현듯 전 존재가 그대를 돕기 시작한다.


170. 그 7일간은 엄청난 변형의, 완전한 변형의 날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날, 전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의 현존, 새로운 빛, 새로운 기쁨이 너무도 강렬해져서 거의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내가 폭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172. 이 7일간의 체험은 너무나 이름다워서 나는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176.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너무나 투명하게, 그러나 또한 너무나 확실해서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180. 붓다들의 힘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전적으로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미꽃이나 이슬방울처럼…… 그들의 힘은 매우 부서지기 쉽고 연약하다. 그들의 힘은 죽음의 힘이 아닌 생명의 힘이다. 그들의 힘은 죽이는 힘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창조하는 힘이다. 그들의 힘은 폭력과 공격성의 힘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연민의 힘이다.


183. 그대는 그대 주위에 자신의 꿈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그대가 깨어나지 않는 한 그대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것이다. 세상은 비실재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아는 세상은 그대 꿈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꿈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대가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만날 때, 그때 진짜 세상이 드러난다.


184. 그날 밤 나는 텅 비었고 동시에 가득 찼다. 나는 비존재적이 되었고 동시에 존재적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그것은 죽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별개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별개의 것이다. 죽은 자는 완전히 죽었다. 그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85. 그날 밤의 죽음은 전체적이었다. 그것은 죽음과의 데이트이며 동시에 신과의 데이트였다.


깨달음은 매우 개인적인 과정이다. 그 개인성 때문에 깨달음은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먼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정해진 단계들이라는 것이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다른 조건화들을 가지고 있다.

고속도로는 없다. 단지 오솔길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조차 이미 있는 길이 아니다.


186. 이미 거기 있는 길을 찾아서 그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걸어가면서 그대가 길을 만든다. 그대의 걸음 자체가 길을 만든다.


깨달음의 길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다고 한다. 그것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187. 깨달음은 다름 아닌 깨어남이다.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 우리의 모든 삶은 단지 꿈들이다.


188. 따라서 내가 겪은 “붕괴와 돌파”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일어났다.

나는 친구도, 길동무도, 공동체도 없이 혼자서 나 자신에 대해 작업하고 있었다.


192. 깨달음은 매우 개인적인 노래이다. 언제나 미지의 것이고,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독특하다. 그것은 결코 하나의 반복으로써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코 깨달은 두 사람을 비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둘 중 한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당한 짓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고정된 관념도 갖지 말라. 단지 매우 액체와 같은 특질들이 기억되어져야 한다. 나는 굳게 정해진 자격요건이 아닌, 액체와 같은 특질을 말하고 있다.


195. 삶에서 그의 유일한 노력은 ‘어떻게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느냐’일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만이 모든 행동 뒤의 유일한 목적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점점 더 깨어나게 할 것인가?’ 왜냐하면 깨어남을 통해서 그는 삶의 궁극적인 지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칼날을 세우며


196. 아주 어린시절부터 나는 실제 이야기든, 가공의 이야기든,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이 ‘이야기 들려주기’가 나에게 표현력을 더해주고 그것이 깨달음 후에 엄청난 도움을 주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1953-1956 대학시절


199. 대학들은 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파괴한다.

그들은 그대에게 돈을 더 많이 버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에게 깊이 사는 법, 전체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206. “뭔가가 완벽하다면 분명 그것은 죽어야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불완전 해야만 한다. 이 생각이 내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시간을 다오.”


208. “저는 대답될 수 없는 질문만을 질문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대답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질문입니까?”


213. 그리하여 나의 전 생애는 맨 처음부터 두가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어떤 우둔한 일도 나에게 강요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 결과가 어찌되든 모든 종류의 어리석음에 대항해서 싸우고, 끝까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남아있는 것, 두 번째 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점점 더 깨어있게 되는 것, 그래서 단지 지적인 사람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었다.


216. 그는 거의 예순 여덟 살이었고 그리고 나는 겨우 스물네살이었다.


217. “뭐든 말해다오. 나는 듣고 싶다. 일생동안 나는 말을 해왔다. 나는 듣는 것을 잊어버렸다. 게다가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그리고 그는 제자가 스승의 이야기를 듣듯이 나의 말을 들었다.


 218. “똑같은 일이 교수님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교수님은 그만큼 지적이지 않고, 그만큼 예민하지 않고, 그만큼 이해가 깊지 않아요. 그 노인은 정말 드문 인물이예요.”



1957- 1966:

대학교수 시절


228. 지금은 밖으로 나가서 사랑을 할 때다. 철학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은 나이에 하는 것이다.

우리는 2년 과정을 6개월안에 끝낼 것이다. 나머지 1년 반은 즐기고 춤추고 노래해라. 걱정하지 마라.

232. 나는 말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억압이 없으니까요.”


길 위에서


238. 나의 통찰 속에서 과학, 종교, 예술, 그것은 하나의 삼각형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다른 차원들이다. 그것들은 다른 언어를 쓴다. 그것들은 서로 모순적이다. 그것들은 표면적으로는 조화되지 못한다.


240. 나는 모든 독서를 통해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독서는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그 목적은 나의 메시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것, 지역적인 한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


241.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없는 단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통합과 개인성, 진정함, 그리고 충족감에서 오는 엄청난 지복을 주었다.


깨어난 사람은 인간을 너무나 깊이 이해한다.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는 모든 인간의 불행한 상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가엽게 여긴다. 그는 연민이 많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당연한 일입니다. 억압이 없으니까요.”


255. “뭔가 나의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그들은 다른 진영에 있다. 아무도 나의 사람들이 아니다.”


261.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의 전략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힌두교 회의에서 강연하기는 힘들거든요.”


267. 사람들이 고요하고 주의깊게  앉아서 모든 단어 하나하나릏 깊이 들이마시며 집중적이고, 명상적으로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훨씬 더 높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다.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이 그들에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친구들이 내 앞에 앉아 있지 않다면 나는 언제나 abc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행기는 결코 날아 오를 수 없다. 그때 비행기는 버스의 기능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여행을 그만 두어야 했다.


표현 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다:

단어들 사아의 침묵들


273. 스승이 되는 매우 드문 사람들은 여러 생을 통해 단어와 언어, 어감, 언어의 아름다움과 운율에 대한 어떤 명료성을, 어떤 통찰력을 얻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언어학이나 문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언어 속에서 어떤 비범한 음악을 발견하는, 평범한 산문에서 위대한 시의 질(質)을 창조하는 문제에 더 가깝다. 그들은 그대가 말을 넘어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단어를 가지고 노는 법을 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우연이다. 깨달음 전에 그들은 위대한 스승이었고 이제 깨달음 때문에 그들은 스승이 된다. 이제 그들은 선생에서 스승으로 바뀐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274. 나의 강의는 정말로 명상을 위해 내가 고안한 장치의 하나이다. 나는 그대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 마음의 기능을 정지시키기 위해 이야기한다.


275.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도 다음 단어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어떤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 사람은 준비를 할 때 실수를 범한다.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것을 기억할 때에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어떤 강연자도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276. 나의 목적은 참으로 독특하다. 나는 단지 침묵의 간격들을 창조하기 위해 말을 이용하고 있다. 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나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하고 관계 없는 어떤 말도 할 수 있다. 나의 목적은 단지 간격들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들은 부차적이다. 그 말들 사이의 침묵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대에게 명상의 일별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일단 그대가 그 일별이 그대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대는 이미 그대 자신의 존재를 향해 많이 온 것이다.


278. 나의 성공은 그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공은 그대에게 진정한 명상의 맛을 주는 것, 그래서 그대가 명상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무심의 상태가 단지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자격도 필요치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279. 존재는 도덕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존재는 도덕과는 관계가 없다. 존재에 있어서는 옳은 일도 없고, 그른 일도 없다. 오직 한가지 만이 옳다. 그대의 각성과 자각이다. 그때 그대는 지복이 넘친다.


280. 왜 내가 고타마 붓다나 보디다르마, 예수 그리스도에 의존해야 하는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와 통찰에 따라 그들의 삶을 살았다. 나는 나의 이해와 나의 통찰에 따라 나의 삶을 산다.


281. 깨달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며 유일한 경험이다.


285. 명상은 빛을 가져오려는, 기쁨을 가져오려는, 침묵을 가져오려는, 지복을 가져오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명상의 세계에서 그대는 어떤 잘못된 일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완전히 바꾸었다. 종교는 행동을 강조해왔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의식(意識)이다. 그리고 의식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침묵은 의식을 위한 올바른 토양이다. 그대의 머리가 소란스러울 때 그대는 그다지 깨어 있거나 의식적이 될 수 없다. 그대가 의식적이고 깨어 있을 때 그대는 소란스러울 수 없다. 그 둘은 공존할 수 없다.



Part 2 :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293. 만약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나와 똑같이 절대적으로 비어 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두 거울이 서로 마주보고 있게 될 것이고 두 비어있음만이 비춰질 것이다. 무한한 비어있음이 비춰질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 그러나 그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안에서 그대 자신의 생각을 볼 것이다.


섹스 구루


295. 그것은 <성으로부터 초의식으로 : From Sex to Superconsciousness>라는 책이다. 그때 이래로 나의 책은 수백 구 js이 넘게 출간되었지만 아무도 다른 책은 읽지 않는 것 같다.


296. 성적인 오르가슴은, 나의 생각으로는 그대에게 명상의 첫 번째 일별을 준다. 왜냐하면 마음이 멈추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추기 때문이다.


300.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아내이기 때문에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은 매춘이다. 법적인 매춘이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만약 두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한 함께 살 수 있다.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감사하며 헤어져야 한다.


나의 모든 철학을 단 두 단어로 한정해버린 것은 어리석은 인도 신문의 선정주의 이다.


301. 그들이 이제껏 해온 일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나서 그 잘못된 정보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나를 제대로 묘사한 적이 없다. 그것만 아니라면 나는 인도를 그토록 우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컬트 교주


302.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운동이다. 사교도 아니고, 종파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 다만 명상을 위한 운동, 내면의 과학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것은 의식의 과학이다.


303. 나는 종교성을 하나의 특질로 본다. 그것은 조직의 회원권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인 경험이다.


사기꾼


307. 나는 두가지 수준에서 작업해야 한다. 하나는 그대가 살고 있는, 그대가 위치해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위치해 있는 수준이며 그대 또한 도달하게 하고 싶은 수준이다.

308. 세상의 모든 스승들은 이야기들을, 우화들을 들려주어 왔다. 왜인가? 그냥 간단히 진리를 말하면 된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밤은 길고 그대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야기들이 없다면 그대는 잠에 빠지게 된다. 아침이 오기까지는 그대의 관심을 끌어두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스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진리는 말해질 수 없다. 그러나 진리를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이끌려 갈 수는 있다.


'자칭 바그완(Bhagwan)'


314. '바그완'이란 경험의 한 상태이다. 임명이나 선거, 직함, 학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전 존재가 신성으로 가득하고 신성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바그와타(bhagwata), 즉 신성(神性)의 경험이다.

315. 신은 없다. 그러나 모든 꽃 속에, 모든 나무 속에, 모든 돌 속에 신성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 안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에만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 언어를 모른다.


318. 아차리야란 ‘스승’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실제로 그것은 오직 자신이 몸으로 체험한 것만을 이야기 하는 사람, 그의 행동과 생각이 절대적인 조화 속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320. '바그완'은 비(非) 비교급 단어이다. 그대는 신보다 더 신적(神的)일 수 없다. 신보다 더 신일 수 없다. 그것은 비 비교급 단어이다. 그리고 그 단어는 어떠한 성취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그대의 본성을 보여준다. 사람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신이다. 단지 그것을 깨달아야 할 뿐이다.


322. 나는 그대에게 지식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대에게 ‘앎’을 준다.


323. 나는 철학자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삶을 향한 나의 접근은 연애소설과 같은 접근이다. 그것은 로맨스이고 상상이 가득한 세계이다. 나는 그대들 모두가 신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가 그대의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기를 바란다.


324. 그리고 서서히 그대는 주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주인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 주인은 그대 내면 깊은 곳의 핵(核)으로부터 온다. 그 주인은 그대의 심연으로부터 떠오른다. 나는 안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발견했다. 나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나는 내안에서 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노력은 그대가 안을 들여다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언덕 위의 주시자' 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깨어서 관찰하라. 지켜보는 자가 되어라. 그러면 그대는 충족될 것이다.


부자들의 스승


329. 부유한 사람이 나에게 올 때, 그는 돈이 잇고 직업이 있고 건강이 있다. 그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신에 대한 추구가 시작된다.


330. 부유한 자가 종교적이지 않다면 그는 어리석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종교적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총명한 것이다.


나는 부유한 자의 스승이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종교는 사치품이다. 최후의 사치품이다. 나는 종교를 그렇게 부른다.


333. 지성이 가난하고 돈이 가난한 사람이 종교적이 되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농담꾼

337. 정말로 명상적인 사람은 장난스럽다. 그에게 삶은 재미다. 그에게 삶은 하나의 놀이이다. 그는 심각하지 않다. 이완되어 있다.


343. 웃음은 그대 내면의 근원으로부터 그대의 표면으로 어떤 에너지를 가져온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한다. 에너지는 그림자처럼 웃음을 따라온다. 그것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한순간 동안 그대는 깊은 명상적 상태 속에 있다.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문득 마음은 사라진다. 선(禪)의 모든 방법론은 어떻게 무심 속으로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웃음은 무심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문의 하나이다.

내가 아는 한, 춤과 웃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무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이다.


344. 그대는 춤을 추고 또 춘다. 그대는 돌고 또 돈다. 그대는 소용돌이가 된다. 모든 경게가, 모든 구별이 사라진다.

웃음은 사념없는 상태로 가는 아름다운 전주곡이 될 수 있다.


롤스로이스 구루


346. 모든 물질적 욕구들이 충족되었을 때, 이제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명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이 아직도 열려 있는 채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다른 모든 문들은 그대가 이미 두드려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347. 오직 하나의 문만이 그대를 초대하며 아직 열려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좌절하지 실망한 채 돌아오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자기 존재의 중심에 도달한 사람이 실망하거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거나 자살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명상은 그대를 궁극의 지복으로 데려간다.


1978년 인도, 푸나


350. 나는 인도에서 2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 왔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변형되었고 수백만이 나의 말을 들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책을 읽었다.


352. 종교적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신의 선물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981-1985, 오레곤


354. 나는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쳐 왔다. 미국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코뮨에 오고 있었다. 미국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코뮨 축제때마다 전 세계로부터 2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미국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모든 뉴스 매체는 끊임없이 93대의 롤스로이스에 대해서만 떠들어 댔다.


스승


361. 스승은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는 그대 안의 무언가를 휘저을 수 있다. 그는 불꽃에 불을 붙이는 그대 안의 어떤 과정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대가 진리이다. 단지 너무나 많은 먼지가 그대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스승의 역할은 소극적인 것이다. 스승은 그대에게 목욕을, 샤워를 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먼지가 사라지게 해야한다.


362. 위대한 선사 다이에(Daie)는 말한다. "현자(賢者)들, 성자들, 스승들의 그 모든 가르침들이 설명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 이것!'이라는 그대의 갑작스런 외침에 대한 주석들일 뿐이다."


갑자기 그대가 깨끗해질 때, 그대 안에서 커다란 기쁨과 환희가 일어나고 그대의 전 존재가, 그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춤을 춘다. 그리고 그대는 말한다. "아, 이것! 알렐루야!" 그대의 존재 안에서 커다란 기쁨의 외침이 일어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불현듯 서까래에서 별이 떨어진다. 그대는 존재의 영원한 춤의 일부가 된다.


363. 춤을 추어라. 서까래에서 별이 떨어질 때까지!

춤을 추고, 춤을 추고, 춤을 추어라. 그대가 떨어질 때까지!


364. 그대는 커다란 사랑, 커다란 신뢰, 열린 가슴을 가지고 스승에게 다가가야 한다.


365.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배추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다. 배추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배추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비는 배추벌레 안에 하나의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368. 현자는 그대가 통찰력을 가짐으로써 그대 자신의 등불을 가지기만을 바란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순간 탄생한다.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탄생한다.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그것은 이 순간의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371. 성장하는 유일한 길은 좋고 나쁘고, 즐겁고 슬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그것에 대해 그대는 책임이 잇다. 그것이 그대에게 커다란 자유를 준다.


372. 내가 꼭두각시 부리는 사람이 없다고, 신이 없다고, 성자가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모두 쓰레기라고 말할 때, 나는 그대에게 전적인 자유를 주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그대가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게 하려하고 있다. 이 자유를 즐겨라. 그대가 그대 삶의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이 위대한 자각을 즐겨라. 그때 그대는 내가 '개인'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되는 것은 알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며,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이 되는 것은 해방되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373. 수백만의 사람들이 산야스에 기여해왔다. 나 또한 나의 몫을 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점점 더 풍부해 질 것이다. 내가 떠나가고 나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고 그것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374. 세상을 포기하고 은둔할 필요는 없다. 오직 겁쟁이들만이 세상을 포기한다. 세상속에 살라. 세상을 경험하라. 세상은 하나의 학교이다.


376.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달을 가리켜 보여줄 수 있다. 부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말라. 이 손가락은 사라질 것이다. 달은 남을 것이다. 그리고 탐구는 계속될 것이다.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남아 있는 한, 산야스의 꽃들은 계속해서 피어날 것이다.



Part 3 : 유산


384. 기독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이런 것들은 단지 이데올로기이며 교리이며 교의이다. 그것은 단지 예식이다. 진정한 종교는 이름이 없다. 결코 어떤 이름도 가질 수 없다. 붓다는 그것을 살았다. 예수는 그것을 살았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으며, 붓다는 불교도가 아니었다. 결코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종교적이었다.


385. “이것이 창문이다. 이것을 열어라. 그러면 그대는 별이 가득한 밤을 볼 것이다.”


보는 것(seeing)이 아는 것(knowing)이다. 그리고 보는 것은 또한 되는 것(being)이 되어야 한다.


386. 과학은 객관적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며 종교는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다.


물질의 차원 안에서의 앎을 그대는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대의 내면성의, 그대의 내면의 존재의, 그대의 의식의 차원 안에서의 앎, 그것을 그대는 주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종교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387.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과학의 근본이다. 그것이 진리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다. 믿지 말라. 물어라. 그대가 믿는 그 순간 질문은 멈춘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두라. 믿지도 말고 믿지 말지도 말라. 단지 깨어 있는 채로 모든 것을 탐구하고 의심하라, 그대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것이 진리이다. 그대는 그것을 의심할 수 없다. 그것은 믿고 안 믿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현상이다. 그것은 그대를 완전히 압도하는 너무나 분명한 확실성이기에 그것을 의심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앎이다. 그리고 이 앎이 인간을 붓다로, 깨달은 자로 변형시킨다. 이것이 모든 인간 성장의 목표이다.


393. 이제 나의 노력은 그들이 신을 해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종교 또한 해체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잊혀질 수 없는 것으로서 오직 명상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명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도 없고 종교도 없다. 내가 종교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조직화된 교리, 교의, 제식, 성직자들이다.


395. 명상은 단순히 불행, 고통, 고뇌, 근심의 정반대 상태이다. 명상은 존재가 평화롭고 지복스럽게 꽃피어나는 상태이다.


397. 나의 노력은 그대와 존재 사이에 어떤 명상가도 없이, 그대를 명상과 함께 홀로 남겨두려는 것이다.


명상은 생각, 감정, 감상과 같은 그대와 존재 사이의 벽을 만들어내는 모든 장벽들을 치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슬 방울이 연잎에서 미끄러져 대양 속으로 떨어질 때 이슬방울은 자신이 대양의 일부라고 느끼지 않는다. 바로 대양 자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궁극적인 깨달음이다.


398. 나는 그 누구도 개인과 존재 사이에 서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도도, 성직자도 필요치 않다. 그대 혼자서도 충분히 일출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줄 사람이 필요치 않다. 그대가 거기 있고 전 존재가 그대의 것이다.


399. 그대에게 필요한 건 단지 침묵하고 존재의 소리를 듣는 것뿐이다. 어떤 종교도 필요하지 않다. 어떤 신도 필요치 않다. 어떤 성직자도 필요치 않다. 어떤 조직도 필요치 않다.

단지 단순한 침묵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그러면 존재는 그 모든 아름다움을 그대에게 열어줄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명상


407. 마음은 단지 하나의 기계장치일 뿐이다. 말을 할 수도 있고 침묵할 수도 있다. 유일한 문제는 마음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음은 하인이 되어야 한다. 하인으로서 마음은 훌륭하다. 주인으로서 마음은 위험하다. 그대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대는 명상을 할 수 없다. 단지 명상 속에 있을 수 있을 뿐이다. 명상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명상은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408. 동양에는 드야나(dhyana)라는 다른 단어가 있다. 드야나란 무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집중을 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그것은 마음의 모든 내용물을 버리고 단지 존재하는 것이다. 드야나가 의미하는 명상은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도 없고 만족도 없는 의식의 상태이다. 그대는 계속해서 버린다. 네티, 네티(neti, neti),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대는 계속해서 좋건 나쁘건 모든 생각들을 거부한다. 모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그것이 그대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성이다.


410. 신 때문에 그대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단지 이 한 단어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한다. 어떤 사람을 신을 증명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신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위대한 논문들이 쓰여지고, 신에 관한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많다. 그대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방법은 있다.


411. 명상의 112가지 방편들이 있다. 그 방편들은 만 년전에 발견되었다. 나는 현대인을 위해 몇가지 새로운 방편들을 만들었다.


412. 매일 하루 60분 동안만 세상에 대해 잊어라. 세상이 그대에게서 사라지게 하라. 그리고 그대도 세상으로부터 사라져라. 방향을 180도 돌려 단지 안을 보아라. 처음에는 구름들만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그 구름들은 그대의 억압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대는 분노와 미움, 탐욕, 온갖 종류의 블랙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것들을 억압했다. 때문에 그것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소위 종교들은 그런 것들을 억압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그것들은 상처처럼 거기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것들을 숨겨왔다.


414. 그러나 정화는 도움이 된다.

먼저 동적인 명상법들, 그다음엔 정적인 명상법들이다.


1972: 인도 라자스탄,

마운트 아부 (Mt. Abu) 명상 캠프


414. 아침명상은 네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10분동안 그대는 빠른 호흡을 행하게 된다.10분 동안의 이 강렬한 호흡은 그대 안에 잠들어 있는 모든 에너지를 깨울 것이다.


417. 명상은 도박이다. 다른 모든 도박에서는 어떤 물건을 내건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우리 자신을 내건다. 명상은 분명히 도박꾼의 행위이지 사업가의 행위는 아니다. 사업가의 관심은 이득이 적더라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꾼의 관심은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있더라도 이득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박꾼과 사업가의 차이이다.


425. 명상은 무엇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심 밖에서의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을 만큼 전적으로 그대 자신이 될 뿐이다. 내면의 불꽃은 움직임이 없다. 타인은 사라졌다. 오직 그대만이 있다. 단 하나의 생각도 거기 없다. 온 세상이 사라졌다. 마음은 더 이상 거기 없다. 그대의 절대적인 순수 속에 오직 그대만이 있다.


제 3의 심리학:

붓다의 심리학


428. 붓다의 심리학은 분석도 아니고 종합도 아니다. 그것은 초월이다. 그것은 마음을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 안에서의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를 마음 밖으로 데려가는 작업이다. 그것이 바로 영어의 무아경(ecstasy)이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이다.


429. 그대의 마음과 존재 사이에 거리를 창조할 때 그 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마음 그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정신분석은 집을 수리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의식을 변형시키지 못한다.


430.붓다의 심리학은 마음 안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붓다의 심리학은 단순히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바깥으로부터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바로 그 바라봄이 곧 변형이다.


432.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에너지를 주고 있지 않을 때, 이것이 진짜 명상이다. 명상은 초월의 기술이다.



433. 그대의 마음을 더 자각하라. 그러면 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그대는 높이 더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다. 마음은 바윗덩이와 같은 작용을 하여 그대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434. 마음은 그대를 중력의 장(場) 안에 붙잡아 둔다.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묶여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대는 붓다장(buddhafield)으로 들어간다. 중력이 그대에 대해서 그 힘을 잃을 때 그대는 붓다장 속으로 드어간다. 붓다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공중부양의 세계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대는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음은 계속 그대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치유는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분리될 때, 비동일시될 때, 완전히 벗어날 때, 속박이 끝날 때, 그때 치유가 일어난다.

초월이 진정한 요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심리치료요법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심리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더 넘어서는 것이다.


435. 그것은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존재 그 자체를 치유한다. 마음은 단지 그대의 주변일 뿐이다. 마음은 그대의 중심이 아니다.


444. 사회에서 시작해서 그대 자신에 도달하라. 공동체로부터 달아나지 말라. 세상 속에 살아라. 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는 말라. 관계하라. 그러나 여전히 홀로 남아라. 사랑하고 명상하라. 명상하고 사랑하라. 그러나 선택하지 말라. 사랑 더하기 명상,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446. 오직 죽음이 앗아갈 수 없는 것만이 진짜다. 1991년 1월 19일 오쇼의 육체는 명상홀로 옮겨져 오고, 화장을 위해 화장터로 운반된다.


448. 서양인의 마음은 매우 급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건화에 따르면 삶은 단한번, 70년 뿐이고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그대의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는데 들어가고 또 3분의 1은 교육에, 배우는데 들어간다. 뭐가 남는가? 그 중 많은 부분은 밥벌이에 들어간다.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을 계산해본다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70년 가운데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7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쳐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대가 염두해 두는 것은 그대가 빨리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460. 마음은 그대를 속일 수 있다. 마음은 그 안에 비치는 것이 실재라는 관념을 그대에게 줄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이 치워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바로 그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무심의 상태이다. 명상은 마음을 가져간다. 그리고 명상은 그대에게 거울에 비친 그대 존재의 보물이 아닌, 보물 그 자체를 볼 기회를 준다.


조르바 붓다:

완전한 인간


461. 삶을 아주 즐거운 태도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그대는 양쪽 세상을 함께 가질 수 있다. 그대는 케익을 먹기도 하고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예술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 소리와 침묵, 사랑과 명상, 사람들과 관계속에 함께 있는 것과 홀로 있는 것. 그대는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함께 겪어야 한다. 오직 그때에만 그대는 그대 존재의 가장 깊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을 알게 될 것이다.


463. 그대가 외적으로 부유할 때, 그때에만 그대는 그 대비를 통해 그대의 내적 가난을 깨닫게 된다. 그대가 외적으로 가난할 때, 대비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는 결코 그대의 내적 가난함을 깨닫지 못한다.


464. 나는 가난함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가난해질 때면 언제나 그 나라는 모든 명상과의, 모든 영적인 노력과의 접촉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외적으로 가난해질 때마다 그 나라는 내적인 가난함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468. 그대가 내면의 부유함을 창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다시 하나의 조화로움이 일어날 때, 즉 외면의 부와 내면의 부가 만날 때, 그때 거기 진정한 만족이 있다.


472. 동양은 명상을 하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기도를 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하다.


474. 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 그리고 궁극적으로 양쪽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지지한다. 내면과 외면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지지한다. 명상과 사랑, 이것이 삶의 양극이다.


475. 명상은 홀로있음의 기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은 함께 있음의 기술을 의미한다. 완전한 인간이란 양쪽 모두를 알며 가능한 한 쉽게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명상 속에서 그대는 들이쉬고, 사랑 속에서 그대는 내쉰다. 그리고 사랑과 명상이 함께 잇을 때. 그대의 호흡은 완전하고 온전하며 전체가 된다.


477. 나는 전체적으로 사랑했고 전체적으로 명상했다.


478. 이제 인류는 전체적인 시야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너무 오fot동안 절반의 시야만으로 살아왔다.

명상과 사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한껏 침묵하면서도 한껏 춤추고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의 침묵은 또한 그들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479. 이 만남은 새로운 인간, 조르바 붓다(Zorba the Buddha)를 창조할 것이다. 그것이 신 인간을 부르는 나의 이름이다.

나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의 메시지는 신인간, 호모 노부스이다.


482. 나는 자유를 가르친다. 이제 인간은 모든 종류의 구속을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감옥으로부터 나와야한다.


483. 나의 신인간 개념은 그리스인 조르바도 되고 고타마 붓다도 될 수있는 사람이다.신인간은 ‘조르바…붓다’가 될 것이다.

구인간의 이상이 세속의 포기였다면 신인간의 이상은 기쁨일 것이다.


484. 옛것의 죽음을 도와라. 그리고 새 것의 탄생을 도와라. 그리고 기억하라.

나의 작업은 신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 하나의 붓다장 에너지 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487. 서양은 지나친 과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동양은 지나친 종교로 고통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인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Part 4  :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사건들


490. 나는 태풍의 중심이다. 따라서 나의 주위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나의 내면 깊은 곳의 존재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다만 똑같을 뿐이다. 외부상황은 변할지 몰라도 그대의 의식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르침의 전부이다.


외부상황은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그대 안의 무엇인가는 언제나 그대로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엇인가가 그대의 실체이다. 나는 나의 실체 안에 살 뿐이다. 나는 실체를 둘러싼 모든 꿈과 악몽들 속에 살지 않는다.


1931년 12월 11일

오쇼는 외조부모가 살던 중앙 인도의 마드야 프라데쉬주 쿠츠와다에서 태어난다.

1932-1939: 쿠츠와다

1938-1951: 가다르와라

1953년 3월 21일 깨달음

1951-1956: 대학생 시절

1957-1970: 교수, 대중 연설가 시절

1962: 첫 번째 명상센터들 ‘삶의 각성센터’

1962-1974: 명상캠프



1964년 6월:라나크푸르(Ranakpur)명상캠프


495. 오쇼의 일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캠프다. 이 캠프에서 강연과 명상과정이 처음으로 녹음되고 자아 실현의 길(Path to Self-realization)이라는 책으로 출판된다. 이 책은 인도에서 널리 갈채를 받게 된다. 오쇼는 후에 이 책에 그의 모든 가르침이 담겨있으며 그 가르침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이 책은 <완전한 길(The Perfect Way, Rebel Publising House, India)>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캠프의 앞부분에서 그는 캠프에 참여하기 위한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첫 번째 금언은 현재에 살라는 것이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이고 살아 있다. 그리고 만약 진리가 알려져야 한다면 그것은 오직 현재를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두 번째 금언은 자연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배우가 연극을 마친 뒤에 화장을 지우고 의상을 벗어놓듯이 그대는 그대의 거짓 가면들을 한쪽에 벗어 두어야 한다. 그대 안의 근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나오게 하라. 그리고 그 안에 살아라.

세 번째 금언은 홀로 살라는 것이다. 내적으로 그대 안에 수많은 것들이 부산을 떨게 하지 말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497. 만약 그대가 사랑에 관한 원초적인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그대가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열린 가슴으로 성(性)의 신성함을, 성의 성스러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열린 가슴과 마음으로 성을 충분히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그대는 성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성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대는 더 성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501. 나에게 있어 산야스란 '나는 나에게 주어져온 모든 것들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씻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의지해서, 새롭고, 젊고,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채로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산야스는 다름 아닌 그대의 순수함으로의 입문이다.


502. 남성의 길은 각성의 길이다. 그리고 각성은 그대가 자신의 존재의 주인이 되는 지점으로 그대를 데려간다. 그것이 '스와미'의 의미이다. 여성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그리고 사랑은 그대가 전 존재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궁극적인 지점으로 그대를 데려간다. 그리고 그것이 '마'의 의미이다. 여성은 더 궁극적인 꽃피어남 속에서 모성의 에너지가 된다. 그녀는 전 존재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그녀는 축복받음을 느끼고, 또한 그녀는 전 존재를 축복할 수 있다. 인간이 그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하게 될 때, 그는 아버지가 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되지도 않는다. 그는 단순히 주인이 된다. 자기 존재의 주인이 된다.


505. 그대 안에 하나의 혁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음을 넘어 의식의 세계 속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종교적이지 않다.


508. 우리의 명상은 다름 아닌 비합리적인 존재 속으로의 뛰어듦이다. 그리고 존재는 비합리적이다. 존재는 신비롭다. 존재는 신비이다. 따라서 부디 내가 그대에게 말해왔던 것들에 집착하지 말라.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행하도록 설득했던 것들에 집착하라. 그것을 하라. 그러면 언젠가 그대는 내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가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511. 마음의 상태는 신경증적이다. 전 사회가 병들어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처럼 혼돈명상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대 자신을 풀어 놓아라. 사회가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 상황이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라. 그것들을 끄집어내라. 그대 자신을 그러한 것들로부터 풀어놓아라. 카다르시스를 경험하라. 그 과정에서 음악은 도움이 될 것이다.


514. 흰 구름은 갈 곳이 없다. 그것은 움직인다. 그것은 어디로든 움직인다. 모든 차원이 흰 구름에 속해 있고 모든 방향이 흰 구름에 속해 있다. 어떤 것도 거부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전적인 받아들임 속에 있다. 때문에 나는 나의 길을 ‘흰 구름의 길’이라고 부른다. 흰 구름의 길은 길 없는 길이다. 흰 구름은 움직인다. 그러나 고정된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흰 구름은 마음 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나는 흰 구름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노력은 그대들 또한 하늘을 떠다니는 흰 구름들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갈 곳도 없고, 어디로부터도 오지 않으며, 단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머무는 것, 그것으로 완벽하다.

나는 그대에게 어떤 이념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에게 어떤 의무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에게 이것이 되라, 저것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상태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달성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흰 구름이 될 것이다.


517. 그리고 이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 육체 속에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없다. 언젠가는 육체라는 탈 것을 버려야 한다. 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나의 일은 이미 완성되었다. 내가 이 육체라는 탈 것을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은 단지 그대를 위한 일이다. 어느 날 그것은 버려질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대는 나의 부재 속에서의, 혹은 마찬가지 이야기지만 나의 비육체적인 현존 속에서의 작업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대가 나의 부재 속에서 나를 느낄 수 있다면 그대는 나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여기 이 몸 속에 있지 않더라도 그 접촉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520. 따라서 그대가 질문을 할 때, 나는 그대를 들여다본다. 나는 결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를 들여다보고, 그대를 느끼고, 그대가 볼 수 없는 그대 자신의 가슴을 보고, 그리고 그 가슴이 결정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기껏해야 그대의 가슴을 그대 자신에게 해석해 주는 것 뿐이다. 나는 산파이다.


523. 내가 선교사가 되지 말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누라, 그러나 강요하지 말라. 나눔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눔은 타인을 매우 존중하는 것이다. 나눔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강요는 폭력적이다. 그대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단지 타인을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단지 그를 개종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것뿐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 결코 사람을 어떤 것에 대한 수단으로도 이용하지 말라. 왜냐하면 각각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527. 단지 나누고 그것에 대해 잊어버려라. 씨를 뿌리고 계속 가라. 그 씨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기 위해 뒤돌아보지 말라. 그들의 때가 오면, 봄이 오면, 그때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다.


528. 엔카운터 그룹에서 그대는 그대 자신의 모든 것에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엔카운터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그대는 억압되어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대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판단 없이 모든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문득 그대는 엄청난 동물들이 그대 안에서 울부짖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동물들은 폭력적이다. 그리고 그대는 비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대의 비폭력이 그대의 폭력성을 억압해왔다. 아무 이유도 없이 거대한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그대는 벽을 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때리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대는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예전에는 절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디에서 이런 것이 나올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물결로, 엄청난 파도로 몰아쳐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목적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부분들이 표현되었을 때……그대의 섹스, 그대의 화, 그대의 탐욕, 그대의 질투, 그대의 분노……그 모든 부분들이 표현되었을 때, 커다란 평온함이 일어난다. 그것은 폭풍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이다.


530. 아무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든 그만 두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자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531. 그러나 그대는 그룹에 중독 되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그룹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에는 그룹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그룹 저 그룹을 떠돌아 다닌다. 따라서 그룹은 단지 하나의 배출구가 된다.


그 점이 이 코뮨이 에살렌과 같은 단체들과 다른 점이다. 그런 단체들은 그룹으로 끝난다. 우리는 그룹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끝나는 지점이 바로 우리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아슈람의 팽창

532. 1976년 3월  새로 입수한 건물들의 개보수 공사가 완료된다. 오쇼는 프란시스, 예수, 에크하르트, 크리슈나와 같은 깨달은 신비가들의 이름을 따서 그 건물들에 이름을 붙인다.


533. 나는 속세의 한 부분으로 남고싶다. 그리고 이 아슈람은 거의 속세의 한 부분으로 운영된다.


534. 이곳에서의 나의 모든 노력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려는 것이다....갖 도전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명상은 점점 더 강해진다.


535. 그들은 아슈람을 억누르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건물의 신축제한이나 아슈람을 목적지로 언급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여행비자의 거부 등이 포함된다.


새로운 코뮨의 비전

537. 나의 코뮨은 지하로 스며들 것이다.


539. 우리는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 코뮨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모든 아름답고 위대한 일들은 언제나 내적인 탐험을 위해 에너지를 한데 모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암살기도

541. 1980년 5월 22일, 힌두 원리주의자 단체의 일원인 빌라스 뚜뻬가 아침강의 중에 오쇼에게 칼을 던진다. 오쇼는 강의를 계속한다. 뚜베는 어떤 유죄판결도 받지 않은채 석방된다. 나는 죽어서도 강의를 계속했을 것이다.


전세계적인 팽창

1980년 말과 1981년 초에 오쇼의 책과 오디오, 비디오테이프를 배포하기 위한 센터가 미국에 세워지고 해외에서 명상센터와 코뮨들을  운영하는 산야신들은 힘을 얻는다.


543. 세상 속에 있어라. 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 말라. 세상 속에 살아라. 그러나 세상이 그대 속에 살도록 허락하지 말라. 그것이 나의 메시지이다.

선가(禪家)에는 이런 말이 있다. “기러기는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려하지 않고, 물도 기러기들의 상(像)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다.”


543. 이것이 나의 산야신들의 길이 되어야 한다. 세상 속에 있어라. 세상 속에 살아라. 왜냐하면 모든 욕망은 그대를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모든 야망은 그대의 현재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워지지 말라. 왜냐하면 탐욕은 그대를 미래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말라. 왜냐하면 소유욕은 그대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속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탐욕과 소유욕, 야망,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544.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명상의 모든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각하라. 깨어 있어라. 그래서 이 모든 도둑들이 들어와 그대를 더럽힐 가능성을 갖지 못하게 하라. 명상적이 되라. 그러나 세상 속에 있어라. 그리고 이것이 나의 경험이다. 즉 세상은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대를 명상적으로 만드는데 엄청나게 도움을 준다. 세상은 그대가 빗나갈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빗나가지 않는다면 그때 각각의 성공들은 엄청난 기쁨이 된다. 그대는 중심에 남는다. 그대는 태풍의 중심이 된다. 태풍은 그대 주위를 요동치지만 그대의 중심은 영향받지 않는 채 남아 있다.

그것이 진정한 산야신의 길이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영향 받지 않고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


침묵

544. 1981년 4월 10일, 오쇼는 그의 일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제부터는 오직 침묵을 통해서만 이야기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대한 진흙투성이 목장: 1981-1985

라즈니쉬 푸람: 불법도시.

1983: 도시 전체에 대한 에이즈 검사

1984. 파시즘의 쓴맛


558. 1985년 마침내 쉴라와 그녀를 지지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모든 소유물을 챙겨 독일로 떠난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그녀가 저지른 범죄행위들에 관한 산더미 같은 증거들이 드러난다.


565.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자유는 책임이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스스로 그대의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그때는 다른 누군가가 그대 대신 그 책임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대는 노예가 된다.


586. 나는 그대에게 단지 맛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그대가 그 맛을 알고 나면 그때 그대는 그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때 그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을 보는 것이다.


587. 이제는 내가 그대들에게 맛을 보여주기 시작해야 할 때이다. 말은 많이 주었다. 그것은 준비였다. 씨앗들은 많이 뿌렸다. 그리고 이제 봄이 매우 가까웠고 그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전체적이 되어야 한다. 강렬하게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나의 침묵 속에, 나의 기쁨 속에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대와 나 사이의 이중성이 사라질 때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즉시 그것을 버릴 것이다. 조금 덜 현명한 사람들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대의 해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있다. 그러나 오래 머물 수는 없다.


589. 그대는 그 이상의 어떤 것, 보통 이상의, 당연한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초월적인 어떤 것을 찾고 있다. 그대는 그 길을 익혀야 하며 그 길은 혼자 가야하는 길이다.

나는 그대와 함께 갈 수 없다. 나는 그대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그대에게 달을 가리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손가락은 달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그대에게 달을 보여줄 수 없다. 머지 않아 그대는 나의 손가락을 잊고 그대 스스로 달을 보아야 한다. 그대는 혼자 그 길을 가야 한다.


589. 기억하라. 그대가 그대 자신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발견하든, 그것은 그대의 현실이다. 그것은 정화될 수 있다. 그것은 사라질 수 있다.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뭔가를 행하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590. 그대의 성장에 대한 나의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그대를 나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의존도 노예상태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영적인 의존은 노예상태 중에서도 가장 나쁜 노예상태이다.


도움이 되는 것은 나의 여기 있음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그대의 여기 있음이며, 그대의 현재에 있음이며, 그대의 각성과 깨어있음이다.


593.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있으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종교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으며 그것은 축하라는, 삶이라는, 기쁨이라는 신이다. 이 모든 지구는 하나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이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의 일부분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이며, 인간의 무지이다. 인간이 의식적이 되고, 각성하게 되고, 깨어 있게 되는 그날, 더 이상의 반복은 없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받지 않을 것이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을 것이며, 알힐라즈 만수르는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우리의 가장 위대한 꽃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운명이며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다. 그들은 우리의 본질적인 잠재력이 현실로 드러난 모습이다.


596. 예전의 과학은 종교에 대한 반발로서 생겨났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과학은 어떤 것에 대한 반발도 아닌 넘치는 에너지와 지성, 창조성일 뿐이다. 정치는 과학을 타락시켰다. 정치의 관심은 오직 전쟁뿐이기 때문이다. 종교들은 과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종교들은 모두가 미신적이었고 과학은 그들의 모든 신들과 미신들을 뒤엎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학은 3백년 동안의 이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이에 정치가들의 노예가 되어가면서…….


597. 그 궁극적인 혁명은 하나의 세계정부이다. 왜냐하면 세계가 하나의 정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대는 전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모든 나라는 각자의 군대와 각자의 방어시설, 각자의 무기를 가져야 하며 누가 더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지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정부가 있게 되면 어떠한 육군도, 공군도, 해군도 필요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은 삶에 헌신하기 위한, 전 인류에 헌신하기 위한 봉사단체로 변형될 수 있다.


600. 나는 치유될 수 없는 몽상가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삶에서 꿈꾸었던 모든 것을 나는 해냈다.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존재계에 제안하는 것만으로 그 모든 일은 이루어졌다.


603. 오직 조직화된 교의나 신앙체계, 교리, 신학이 없을 때에만 종교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대들 모두가 기억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점의 하나이다. 단지 이 침묵과 산들바람 속에서 춤을 즐기는 나무들만이 존재할 때, 그대의 가슴 속에는 무언가가 자라난다. 그것은 그대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전으로부터도 오지 않는다. 아무도 그대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604. 나는 선(禪)을 가리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종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선은 종교가 아니라 단지 종교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어떤 창시자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가 없다. 사실 그것은 그대에게 가르칠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류의 전 역사 속에서 일어난 가장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어있음을 즐기며 무(無)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선은 앎이 아닌 무지 속에서 충족된다. 그것은 세속과 신성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선에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성하다.


608. 나는 불교도가 아니다. 고타마 붓다의 의도 역시 불교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었고 조직화된 종교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25세기 전에도 그는 결코 조직화된 종교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진리가 조직화되는 순간 그것은 거짓말이 된다. 조직화된 종교는 다름 아닌 숨은 정치이며, 성직자에 의한 깊은 착취에 불과하다.


"나의 조상(彫像)을 만들지 말라. 나의 말들을 모으지 말라. 나는 숭배되어야 하는 상징이 되고 싶지 않다. 나의 가장 깊은 열망은 그대들이 모방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대는 불교도가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의 잠재력은 붓다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붓다-


614. 이 순간 그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붓다인 그대 자신을 기억하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의 영원성이며, 그것은 그대의 불멸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가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존재 그 자체이다. 그대는 별과, 나무와, 하늘과, 대양과 하나이다. 그대는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다.

붓다의 마지막 말은 사마사티(sammasati)였다.

그대가 붓다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마사티.


620. 오쇼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에필로그 : 1990∼현재


621.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대부분의 나의 산야신들이 느끼게 될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사랑과 같은 특질, 그 주위에는 어떤 교회도 생겨날 수 없다. 깨어있음과 같은 특질, 그것은 그 누구의 독점물도 될 수 없다. 나는 그들이 축하, 기쁨, 그리고 신선하고 어린아이 같은 눈을 키워가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 따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은 안에 있다.


일을 맡기는 것 보다 올바른 지침을 주는 것이 낫다.


622. 나는 나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 따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그들 자신을 알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길은 안에 있다.




*** 내가 만일 저자라면


일상에 머물면서 하안거 수행을 따라가는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운이 좋았다.

살아오는 동안 토막시간이 날 때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띄어 한 구절씩 읽곤 하던  라즈니쉬였다. 부담없이 읽으며 참 쉽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전체 인생을 관통하는 책이었다.


자서전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사실보다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대기는 그가 행한 모든 작업들, 즉, 수백 권에 달하는 강의집과 자신에게 영향을 받아 변형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오쇼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직접 말했던 자료들을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조사하여 3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이루어졌다. 오쇼는 특히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을 해왔으며, 뛰어난 웅변과 통찰력, 유머감각으로 이 모든 일을 해왔다. 진실들은 비 물질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하다. 이 자서전은 오쇼 라즈니쉬의 내적인 사건들의 기록이다.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크게 4개의 파트로 나눴다.

파트 1: 평범한 인간의 모습: 황금빛 어린 시절의 일별들

-외조부모에게서 자라난 것, 외할머니와 각별한 인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화

-모든 것에 대한 논쟁을 즐겼다.

-그의 희망은 교육받은 방랑자가 되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죽음 명상체험

-1953년 3월 21일의 깨달음

-대학생활-학생으로서, 선생으로서

-명상 강의를 하며 전 인도를 돌다.


파트 2: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섹스 구루

-컬트 교주

-사기꾼

-‘자칭 바그완’

-부자들의 스승

-농담꾼

-롤스로이스 구루

-스승

라즈니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양식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본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남에게 비춰 본 모습의 총화라는 생각이 났다.


파트 3: 유산


-종교아닌 종교

-21세기를 위한 명상

-제3의 심리학 : 붓다의 심리학

-조르바 붓다: 완전한 인간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 보는 것은 또한 되는 것이 되어야한다.

이 부분에는 그가 행한 강의와 명상의 지도방법과 그의 생각의 발전과정이 다 모여있다.

너무 방대한 자료에서 뽑아내다보니 간단하고 또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읽을 수록 재미있는 정보들이 많다.

그가 말하는 명상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신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가는 것이며, 명상은 존재가 평화롭고 지복스럽게 꽃피어나는 상태이다.


명상은 생각, 감정, 감상과 같은, 그대와 존재 사이에 벽을 만들어내는 모든 장벽들을 치우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 그대는 문득 전체와 조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조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대는 정말로 그대가 전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단지 침묵하고 존재의 소리를 듣는 것 뿐이다.


명상의 112가지 방편을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방편들로 만들어 <탄트라 비전>에 소개했다.


매일 하루 60분 동안만 세상에 대해 잊어라.

그대는 분노와 미움, 탐욕, 온갖 종류의 블랙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풍부한 명상에 대한 정의와 안내와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이 부분에 다 나와 있다. 여러 번 읽으면 천천히 스며들어 일상이 명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다.


파트 4 :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 사건들


이 부분은 여러 권의 책으로 낼만한 주제를 짧게 요약해 둔 것 같아서 아쉬운 편집부분이다. 몇 가지 사건들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고 박해와 추방에 대한 설명은 정보가 불충분해서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추측하건데 아직도 재판중인 사건들도 있을 것이고  대규모의 공동체이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할 사업체이므로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마야트레야 붓다

스리 라즈니쉬 조르바 붓다

오쇼

Zen Manifesto

Inner Circle

죽음을 앞두고 이름을 정리하고 선언문을 발표하고 후계구도를 분명히 했다.


1990년 1월 19일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오쇼의 재는 그가 강의했던 장자홀로 옮겨져 오쇼의 지시대로 ‘침대 밑’에 안치된다.


오쇼 /태어난 적도 없고/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묘비명이다.


이상이 책의 구성이었고  그 내용은 마치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렀다.

난해한 문장으로 명상을 더 어렵게 서술하지 않아서 좋았고, 논쟁의 귀재였던 라즈니쉬의 말들 또한 이해하기 쉬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칸타르 선생님의 부당한 억압을 논리로 반박하는 과정이라든지 , 그의 독특한 취향을 방어하는 논리는 정말 대단했다.

죽음을 체험하는 과정과 깨달음의 과정은 또 하나의 스토리 텔링으로 독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밖에 오쇼의 하루 일과라든지, 명상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기록도 좋은 정보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심리치료 과정은 매우 의미있는 정보이다. 또한 공동체에서 행한 여러 가지 치료적 실험들도 기록을 더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만일 내가 저자라면 이 책속에서 명상에 관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이론적 배경과 구체적인 수행법을 좀 더 자세히 풀어 써 놓고 싶다. 이 작업은 지금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겠고, 그 밖에 일화와 우화들은 좀 더  각색하여 재미있게 생각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특히 라즈니쉬의 <예수, 도를 말하다.>를 늘 가까이 두고 재미있게 읽었다. 오쇼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부담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 좋았었는데 류시화씨의 번역이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책속의 책인 <완전한 길, The Perfect Way>와 <나의 길: 흰구름의 길, My Way: The Way of the White Clouds>는 기회가 닿는 데로 찾아 읽어봐야 하겠다.



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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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15:07:12 *.12.130.72
때로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이 참 많은데
오쇼의 추방 여정을 자세히 풀어주셨네요.
어쩐지 한편의 희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던 걸까요...

하안거 수행을 하시네요...
갑자기 이 말이 떠오릅니다.
나마스떼.
제 안의 신이 그대 안의 신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쩐지 이 말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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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6.23 09:32:53 *.12.21.21
읽으신 책이 많으셔선지.선생님은 늘 몇가지의 책을 동시에 보시네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같아 부럽습니다.  
오쇼가 행했던 명상이 막연하게 느껴졌었는데 심리치료라는 말로 바꾸니 쉽게 다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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