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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08시 3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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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르틴 그레이 (미에테크 그라예프스키)
홈페이지
http://www.martin-gray.fr (영어, 불어)

1922년 4월2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사업가인 헨리 그라예프스키와 부인 이다(펠트)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틴 그레이는 세상 곳곳에 족적을 남긴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10대 소년이었던 마르틴은 혼란스러워진 전쟁 중에 세상과 사람에 대한 생생한 ‘길거리 지식’을 배우며 숱한 고초를 겪는다. 일가친척 110명은 홀로코스트로 거의 다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유대인 멸절 수용소로 알려진 트레블린카 수용소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일지도 모르는 시체들을 치우는 일을 하다가 트럭 하부 엔진에 벨트로 몸을 밀착해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바르샤바로 돌아와 게토 봉기에 참여하여 독일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복수를 위해 러시아-폴란드 지하 저항단체에 합류해서 파르티잔으로 싸운다.
하지만 그가 소련군 내정인민위원회(NKVD: 비밀경찰 조직인 KGB의 전신)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건 그의 날조된 경력이라는 의혹도 제기돼 있다고 한다. 이른바 비밀경찰로 오히려 소련과 동유럽 기독교인 박해에 앞장선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복수를 위해 자원해 돌아온 베를린에서 결국 ‘복수 또한 하나의 광기임을 어렴풋이 깨달은’ 그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일구기 위해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거주하는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영어 한 마디 못 하던 청년은 목숨을 걸고 게토를 오가며 사업수완을 발휘했던 것처럼 유대인 특유의 상업적 감각으로 맨손에서 골동품 도매 무역회사를 세워 성공하기에 이른다.

미국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프랑스 남부로 이주해 꿈 같은 전원생활을 이어나가며 네 명의 아이들을 둔, 꿈에 그리던 자신만의 ‘요새’인 다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1970년 대형 산불로 또다시 전 가족이 몰살당하는 고통을 겪으며 그의 세계는 다시 한 번 산산조각 난다. 하지만 그는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내가 생전에 적극 권장했던 끔찍했던 과거를 회고하는 책을 저술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지 불과 1년 만인 1971년 프랑스어로 된 이 책의 원본 <AU NOM DE TOUS LES MIENS>을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막스 갈로와 공동 집필해 내놓는다. 이 책은 1972년 <For Those I Loved>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이후 26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으로 30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2009년 국내에 소개된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2006년 영역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산불 이후 마음을 겨우 추스른 장면까지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의 후속편 격인 <LE LIVRE DE LA VIE: A book of life>에서는 이후의 삶을 정리했다고 한다. 인권과 환경, 문화 관련 운동과 저술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이후 베아트리스라는 프랑스 여인과 재혼하고 다섯 자녀를 두기도 했지만, 첫 번째 부인의 이름을 딴 ‘디나 그레이 재단’을 운영하며 산불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프랑스의 레바롱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위 사진)
그의 영화 같은 삶은 영화와 TV드라마로도 꾸준히 만들어져 왔는데, 영화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각각 만들어졌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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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라면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억이라고는 중학교 2학년 때 극장에 가서 엉덩이 아프도록 앉아 보았던 <쉰들러리스트>의 참혹한 장면들이 거의 전부다. 세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 내내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착잡했던 마음이 기억날 뿐. 생각해보면 유대인의 힘은 대단했다. 먼 한국 땅 중학생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할리우드의 영향으로 그 영화를 보러 갔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후 홀로코스트에 대해 접할 때마다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 우리와는 직접 관계도 없는 그 시절 그 사건에 대해 더 접할 기회도 차단되었기에 그냥 그렇게 ‘그런 일이 있었지’하며 살아왔던 세월이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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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2차 레이스에서 구본형 사부님의 <더 보스>를 읽으면서 살면서 종종 내 관심을 끌어당겼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를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 매주 과제 도서에 치여 아직까지 미뤄놓은 게 벌써 몇 달 째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생생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그 당시 상황을 내게 턱 펼쳐놓는다. 1970년에 집필했으면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은 지 20~30년이나 되었을 때인데도 그는 세부 사건을 하나하나 낱낱이 풀어놓는다. 끔찍했던 상흔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숨이 헛헛해지는 아픈 부분에서 그는 극단적인 단문을 구사한다. 아픔을 참고 한 문장 한 문장 짚어 나가는 그의 호흡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책이다.

책은 생존, 복수, 신세계, 행복, 운명 이렇게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1부 <생존>이 500페이지 중의 300페이지를 넘게 차지할 정도로 길고 자세하다. 복수에 대한 부분은 그가 어떻게 러시아 경찰에 들어가고 베를린으로 가게 되는지에 대한 부분이라 공격을 받기도 하는 모양인데, 제대로 해명이 되었는지는 잘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짧다. 4부 행복은 너무 짧아서 더 가슴이 아프다. 일가를 몰살당한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아 동생들과 닮은 자식들을 낳아 기르는 부분은, 그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읽게 되는 독자 입장에서는 더욱 눈물샘이 자극된다.

아버지의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던 주문 같은 다짐을 실천해낸 그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삶이 벅차고 힘들다고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요즘, 생명이 붙어있는 것 하나만으로 나중에 그 때를 회상하며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 책이 출판된 것이 더욱 반갑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저자와의 인터뷰 –생명의 힘

저자는 독자들에게서 100만 통도 넘는 편지를 받았으며 (9)

마르틴 그레이와 식사를 하다니……. (중략) 이래서 나는 언론인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10)

자살을 고려해 보기는 했지요. 하지만 내 가족의 죽음이 헛되이 묻히게 할 수는 없었소. 그래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의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11)

“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내부에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생명력이 있다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12)

“모든 사람은 내부에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너무도 자주 억누르는 이 에너지를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자기 내부에 있는 사랑의 욕구를 나타낼 용기를 찾아내, 충만함과 부유함, 창의력과 용기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삶을 살기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13)

내가 언론인의 윤리 강령을 어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르틴 그레이 같은 위대한 사람을 만났던 것도 내게는 처음이었다. (13)


프롤로그- 머리가 터지기 전에

나의 인생, 우리의 인생이 어땠는지를 들려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우리의 삶,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속시켜야 하므로. (17)


제1부 생존

1939년 9월(하인리히 히믈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은 내가 진정한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난 때이다. (21)

나는 가난함이 무언지 몰랐다. 나는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우리는 중요한 유대 축일을 지켰지만 우리 친척 중에는 가톨릭교도도 있었다. 우리는 두 종교 사이에 끼어 있는 셈이었다. (22)

왜 그들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려고 하는가? 왜 그들은 유대인을 증오하는가? (24)

나도 웃었다. 무서우면서도 화가 나서. (32)

“절대로 잡히지 마라. 하지만 만일 그들에게 잡혔을 때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해라. 탈출하는 것.” (34)

나는 못 알아듣는 척했다. 폴란드 유대인만이 독일어를 아는 법이다. (37)

왜 우리는 아무 짓도 못했던 걸까? 왜 그들은 그렇게도 강했을까? (중략) 왜 모두가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였던 걸까? (42)

“너는 장갑 없이 일해야 한다, 알고 있잖나.” (45)

목숨이란 게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었다. 청어 몇 마리보다 하찮은 게 목숨이었다. 우리가 그걸 깨달았다. 목숨에 집착할 이유가 뭔가? (47)

나는 한 남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힘을 발견했다. 그가 원한다면 그는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그는 아무 불평 없이 죽을 수 있다. 그가 원한다면 그는 살아남을 수도 있다. (48)

가족은 온전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독일군들 때문에 그 세계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나는 언젠가 나만의 세계인 새로운 가족을 꾸려갈 방법을 밤마다 생각했다. (55)

어머니는 나더러 밖에 나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했지만 나는 내 눈으로 현장을 보고 싶었다. 물건을 팔려는 생각보다는 현장을 보고, 모든 걸 빨아들이고, 알아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내게는 독한 술과도 같았다. 나는 알아야 했고 이 잔인한 세계를 내 눈과 내 마음에 기록해서 언젠가는 내가 본 모든 것들, 우리가 받았던 모든 고통들을 말해줘야만 했다. 그러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57~58)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우리의 생사가 달려 있는 천 조각을 움켜쥐었다. 손톱으로 천을 조각조각 찢고는 입에 넣었다. (61)

그곳의 농부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농부들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내게 빵과 돈을 주었다. (64)

모두가 자기 재산을 보호하려고 자기가 누렸던 삶에 매달리면서 몇 시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69)

그 여위고 나이 든 얼굴, 그 숱 많은 회색 눈썹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가 나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전차가 다시 출발했다. 나는 게토를 벗어났다. 나는 인정 있는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71)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해도 자유로운 나를 죽이게 될 것이다. 그 점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72)

나는 도박을 했고 한 번뿐일지는 몰라도 살육자의 제복을 입은 남자에게도 인정이 있다는 걸 알았고, 또 자기를 증오하는 사람에게도 뇌물이 가능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니 도박에서 이긴 셈이다. (77)

하루에 몇 번이나 게토의 담을 넘어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내 생명을 걸고 도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는 기분이었고 자유로웠다. 매번 나들이를 할 때마다 일하는 방법이 더욱 완벽해졌고 새로운 계획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면 두뇌가 더 빨리 작동하는 법이다. (80)

어느 날 아버지에게 돈을 좀 주었다. 아버지가 아리안 구역에서 빚진 만큼의 액수였다. 아버지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아버지가 그 돈을 받아줘서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지는 의문이다. (83)

나는 사람들이 어떤지 파악해가고 있었다. 내게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보였다. 늙었건 젊었건, 어떤 옷을 입었건 상관없이 그들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나는 알았다. 그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그 점을 지적하면 그들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행동을 했다. (84)

그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강도짓을 했다. 좋다, 그들에게 마실 것을 주면 될 것 아닌가! (89)

나는 보드카, 매일매일의 수익, 풍부한 음식, 이익이 보장되고 위험은 적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동업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지요.”
그들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너는 정말 유대인이구나.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야.” (91)

방랑자들을 노리는 악당들이 많았던 탓에 그들은 내 주위에 서서 그들의 주먹으로 나를 보호해주기로 했다. 그 대가로 나는 즐로티와 보드카, 맛있는 음식을 주기로 했다. (93)

이 사람들이 나에게 충성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충성심을 보여야 했고 그들이 나를 존경하게 해야 했다. (102)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을 겉만 번지르르한 젊은이. 나는 내 젊음을 이용했다. (103)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성격을 바꾸고 언어까지 바꾸었지만, 국외 거주 독일인이나 불량배 노릇을 할 때면 스스로를 관찰하며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107)

나는 젊고, 빈틈 없었으며, 운을 믿고 덤벼 기회를 잡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운이 더디게, 더디게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108)

누가 우리를 돕는가? 전 세계가 우리를 죽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121)

조피아를 보자 근육이 풀어진 듯 웃음이 쉽게, 저절로 나왔다. 마치 지친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커지는 것 같았고 충분히 쉬고 깨끗해져 새로워지는 듯했다. (121)

내가 마지막으로 조피아를 만났을 때 그녀가 말했다. “두 사람이 늘 알던 사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도 몰라.” (123)

나는 앞으로 희미하게는 볼 수 있겠지만 사물을 보는 데는 실질적으로 한쪽 눈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중략)
“마지막까지 몸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겐 목숨밖에 없어. 너 같은 젊은이들이 우리의 생명이야. 몸조심해라.” (127)

그 여덟 명은 벌금을 내지 못해 사형당했다. 한 여자가 100즐로티 때문에 처형당했건만 그곳에서 좀 떨어진 메릴 카페에서는 우승 상금으로 2000즐로티를 주는 댄스 경연대회가 열렸다. 살육자들은 우리끼리 연민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우리 민족에 대한 이미지대로 우리를 만들어가려 했다. (128)

자살을 할까 신중히 생각해봤지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고 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로 다른 도박을 해서 약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또 운을 믿고 덤벼본 것이다. (138)

서류들마다 모두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랍비들은 가짜 결혼 증명서를 찍어냈고 유대인 경찰들은 비싼 값을 받고 서류를 발급해주었다. (145)

나는 탈출하기 위해, 이기기 위해 먼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두어야 했다. (147)

게토의 유대인 일부는 야만적인 짐승들처럼 변했고 일부는 미쳐버렸으며 대다수는 순한 양들처럼 살육자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인간다움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중략) 모두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데 혈안이 됐다. 내 목숨을 구하려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일은 다반사였다. 인간다움을 유지하기란 정말 힘든 때였다. (149)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외모에 신경을 썼다. 젊고 건강해 보여야 했다. 내 외모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경험이 이미 있었다. (156~157)

트레블린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180)

일을 느리게 하면 죽음, 너무 가벼운 짐을 옮겨도 죽음, 음식을 조금 씹어도 죽음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공포에 질려있기를 원했다. (186)

트레블린카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190)

나는 시체의 얼굴조차 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시체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했으며 굳이 아는 얼굴인지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196)

내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 생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살육자들은 이미 나를 눈여겨 보고 있다. 나는 이곳 수감자치고는 너무 오래 살아남아 있었다. 나는 무언가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죽게 될 터였다. (205)

나는 발을 움직여서 바야흐로 나를 흔들고 숨 막히게 하며 부르르 떠는 기계 어머니와 한 몸이 되었다. (208)

이 무관심,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이 태도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두 번 죽이고 트레블린카에서보다 더 깊은 곳으로 매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뉴욕이나 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관심이나 기울이겠는가? (271)

“생명은 신성하단다, 마르틴. 우리가 지금은 사람을 죽여야 하지만 부디 생명을 기억해라, 마르틴, 생명을. 너는 생명을 탄생시켜야 한다. (중략) 나는 네가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우리 쪽 사람들이 이기게 되면, 아이들을 갖기 바란다. 그런 후에 그 아이들에게 네 자신을 통째로 내주어라. 그 생명들은 신성하단다.” (286)

아버지는 게토의 돌 사이에 또 하나의 돌이 되어 누워 있었다. (300)


제2부- 복수

나는 파르티잔이며 배신자들을 정탐하고 그들을 처벌할 계획을 하는 미에테크였다. (320)

우리는 결코 원수를 갚을 수 없었다. 살육자들을 죽인다고 죽은 가족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326)

내가 갈 곳은 어딘가? 내 가족들은 어디 있는가? 뉴욕에 있는 외할머니 한 분? 나는 외할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329)

나는 살육자들에게서 탈출한 사람이었다. 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데 그렇게 많은 질문과 서명이 필요한 것이었을까? (333)

나는 그들의 죄를 찾아내려 했지만 복수라는 행위 역시 하나의 광기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347)

그러한 장면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곳 게토에서 본 것들과 똑같았다. 이번에는 승자로서 그 광경을 본다는 게 달랐을 뿐이었다. 나는 길도 익힐 겸 내 복수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해 보려고 죽어버린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363)

죽은 도시. 내게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는 살육자들과 희생자들을 구별할 줄 알았다. 살육자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고 희생자들은 방관하기만 했다. (364)

“자기들이 졌다는 걸 깨닫도록 해야 해, 중위. 그래서 전쟁을 다시 시작하려는 열망을 영원히 제거해야 한다고.” (366)

하지만 늘 가족의 꿈을 꾸었다. 아침이면 나는 그들을 쫓아냈다. 그러나 저녁이면 그들은 마음대로 내 꿈속을 찾아왔다. (370)

나는 얼간이었다. 그들은 환호하면서도 나를 업신여기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중략) 얼간이가 되는 쪽과 살육자가 되는 쪽에서 양자택일을 해 본 적이 있는가? (371)

내 인생은 그런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안 다녀본 곳이 없었지만 어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여기 살아 있지만 그들은 죽었다. (374)

나는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 터였다. 나의 조직, 내 가족, 아내와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피와 사랑으로 결속된 요새 안에서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377)

내가 장교들의 아내들을 위해 모피 코트나 조달하려고 게토와 트레블린카, 바르샤바 봉기 속에서 살아남았던가? (379)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오로지 새로운 생명만이 그 죽음이 잊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다른 생명들. (382)


제3부- 신세계

나는 내 가족들이 누워 있는 이 땅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393)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고는 내가 가족의 원수를 어떻게 샆았는지를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설명해주려고 간직한 사진 몇 장뿐이었다. 그 사진 속에는 붉은 군대 장교인 내 모습, 나치와 싸우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395)

나는 내 감정을 감추고 계속 침묵했다. 나를 안은 외할머니는 너무도 연약했다. 내 고통을 끌어내고 내 불행과 아픈 기억들을 들려준다면 외할머니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396)

내가 게토에서처럼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래서 주머니에 달러를 넣을 수 있는 수단을 얻을 때까지 미국을 알기 위해 이 일, 저 일을 잠깐씩 해보려는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돈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를 준다는 걸 나는 이미 게토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401)

다른 사람들 같이 돈 몇 푼을 벌려고 재봉틀 앞에서 일하다가는 내 존재를 알릴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중략) 게토에서처럼 담을 뛰어넘어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고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402)

그들은 삶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남들이 자기들을 이끌도록 내버려두었으며 시간표와 장소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만의 법을 만들고 나만의 지도를 만들 작정이었다. (402)

나는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 구속만을 받으며 자유로운 상태로만 살아갈 것이다. (403)

새 생명을 만들고 가족을 보호할 능력을 가지려면 빨리 갈 길을 정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405)

미국은 나를 반겨주었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꾸려가게 해줬다. (411)

가족이 살아 있을 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다. (412)

멘들이란 바로 나였다. 다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마르틴, 미에테크, 미샤에 이어 이제 멘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지만 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는 변함없는 원래의 나였다. (416)

몇 달러를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어야 할 요새가 있었고, 그것도 빨리 지어야 했다. 내가 몇 년이고 평화로운 생활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며 살아야 하는 팔자였다. 그 친구들은 학위가 있고 희망찬 미래가 있었고 시간도 넉넉했다. (중략) 그들은 파악되지 않은 세계로 뛰어들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파르티잔 같이 사는 사람이었다. (417)

나는 죽음에는 결코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에 종지부가 찍힌다는 부당함을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425)

나는 도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지언정 황금을 열망하는 인간의 탐욕만은 잘 알고 있었다. (428)

나에게 인생은 람블로프 숲에서 공격할 때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넘는 것이며, 끝까지 버티는 것이며, 위험을 감수하고 끊임없이 행동하며, 전부 다 얻거나 전부 다 잃거나 양단간의 선택을 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433)

나는 가격을 가지고 승강이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내 원칙은 빨리 사고파는 것이었다. 박리다매가 결국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41)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이루었으면서도 그것들을 이용해 이루려고 했던 목적은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였다. (중략) 나는 이 여자, 저 여자를 숱하게 사귀었지만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목소리, 이름들, 얼굴들, 장소들을 잠재우지 못했다. (449)

“당신은 찾고 또 찾죠. 하지만 그건 제 발로 걸어오거나 아예 오지 않거나 할 거에요. 당신이 그런 여자를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나는 그 여자가 아니에요, 멘들.” (450)

나는 살아남으려고, 증인이 되려고, 내 가족들의 복수를 하려고, 그들의 생명이 계속 이어지게 하려고, 요새를 건설하고 아이들을 가지려고 지금껏 발버둥을 쳐왔다. (455)

나는 뱃속에서 웃음이 끓어올라 가슴과 목으로 물결치듯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생명과 대면하고 있는 중이었다. 관자놀이를 늘 짓누르던 쇠테가 풀린 후 고통이 사라지는 곳에 이른 기분이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461)

그녀는 “당신 같은 남자의 아기를 갖고 싶어요.”라고 불쑥 말하고는 한쪽 발로 뛰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463)


제4부- 행복

나는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랐다. 멈출 수도 없었다!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내 삶을 제어하지 못하게 됐다. (467)

내가 정말로 더는 나를 억제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려 하던 그 때, 디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넓고 평화로우면서도 당당하고 조용한 강 같은 디나는 내게 진정한 삶을 가르쳐주었다. 그녀가 바로 생명이었다. (467~468)

그녀는 내게 평화와 생명을 주었다.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았고 삶은 의미를 되찾았다. (469)

디나를 만나기 전에 나는 외톨이었다. (중략) 나는 남에게 빚지기도 싫었으며 남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싫어했다. (중략) 그러나 디나와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우리는 사업은 물론 모든 일을 함께 했다. (중략) 그녀와 함께라면 나는 제국이라도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70)

디나와 함께 오니까 파리가 다른 도시처럼 여겨졌다. (471)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미소를 닮고 아버지의 강인함을 이어받은 아이들은 죽어간 내 가족의 한을 풀어줄 터였다. 나는 아이들이 디나도 닮았으면 했다. (474)

나는 다시 태어났다. 게토에서 묻은 먼지를 떨어내고, 트레블린카에서의 누런 모래와 땀을 씻어내고, 폴란드 숲에서 묻은 진흙을 떨어내고, 내 손에 배어 있던 피를 닦아냈다. 몸무게가 17킬로그램이나 빠졌다. (476)

그들은 나의 분신이었으며 니콜에게는 어머니, 조피아, 리브카, 외할머니의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477)

내가 살아남은 게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살아 있었던 증거입니다. 이건 죽어간 당신들의 기적입니다. 이건 당신들의 생명입니다.’ (478)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미국인들’로 불렀지만 디나는 마을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지냈다. 디나는 ‘샴페인 같은 디나’로 불렸다. 디나는 더듬거리는 프랑스어로 마을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자기도 웃었다. (480)

디나는 이곳 자연 속에 늘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해 이미 일꾼들 사이에서는 전설 같은 존재가 되었다. 숲의 자식인 디나는 과일과 채소만 먹고 살았다. (483)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사랑이 깃든 몸짓이었다. 그녀는 사람과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녀 자체가 사랑이었다. (485)

디나는 햇빛이 잘 드는 방에 서재를 꾸며 놓았던 것이다. “이제 당신이 본 걸 쓰세요. 당신 가족들과 우리를 위해서요.” (491)


제5부- 운명

‘왜, 왜 나인가? 왜 내 가족을 뺏어갔는가? 그것도 두 번이나?’ (502)

나는 행복함과 잔혹함, 삶과 죽음을 다 경험했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살육자들과 인간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완전히 성취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장벽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게토 한군데를 파괴하고 나면 다른 게토가 생겨난다. (505)

살아가고 끝까지 버텨내면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나의 죽음과 내 가족의 죽음을 보상해서,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이어가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누군가가 남아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증인이 돼 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507)


에필로그- 내가 사랑한 것들을 위하여

나는 책 인세와 영화에 대한 권리는 인권 단체와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나는 책의 성공을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나에게 말해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509)

우리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의 에너지는 독자들의 에너지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오면서 점점 커져갔다. 내가 삶에 기여한 모든 것이 곱절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다. (509)

나는 그때부터 내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와 사람이 역경에 대처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용기와 행복,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열두 권의 책을 썼다. (510)

인구가 증가한다는 말은 곧 희망의 원칙이 우리 마음에서 너무나 강력해 우리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들이 결국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생명을 잉태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513)

만약 내가 분노로 일어선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내 기쁨을 저지하거나 사랑을 잊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그 어떤 힘도, 어떤 정권도 인간의 행복에 대한 추구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515)

2006년에 나온 이 새 증보판의 인세는 미국의 자연적 건강, 웰빙, 대체 약물을 공부하는 교육자들과 학생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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